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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ORY
사무엘하 12장 & 성경주석 본문
<사무엘하 12장 흐름정리>
여호와께서는 대죄를 지은 다윗을 책망하기 위해 선지자 나단을 보내셨다. 나단은 비유를 통해 다윗에게 죄를 깨우쳤으며, 그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 집안에 재난이 닥칠 것을 예언하였다. 그 재난의 하나로서, 밧세바의 몸에서 난 아들이 죽었다. 이때 다윗은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아들이 죽은 데 대해 가슴이 찢어질 듯하였으나, 여호와의 징계를 겸허히 받아들이고서 슬픔을 거두며 여호와께 경배하였다. 이 시기에 지은 것이 바로 시편 51편이다. 이 시편을 통해 우리는, 일시적으로 정욕의 노예가 되어 범죄하였으나 철저히 회개하고 돌아서는 한 인간의 진실한 신앙을 엿볼 수 있다.
<사무엘하 12장 줄거리>
1. 나단이 암양 비유를 통해 다윗이 스스로 정죄받게 함.
7. 나단에게 책망을 들은 다윗이 저를 고백하고 용서받음.
15. 다윗이 아이가 살아 있을 동안 슬퍼하고 기도함.
24. 솔로몬이 태어나고 여디디아라 이름지음.
26. 다윗이 랍바 성을 취하고 그 백성들을 괴롭게 함.
<사무엘하 12장 개역한글>
1.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와서 저에게 이르되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니
2. 그 부한 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3. 가난한 자는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저와 저의 자식과 함께 있어 자라며 저의 먹는 것을 먹으며 저의 잔에서 마시며 저의 품에 누우므로 저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4.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5. 다윗이 그 사람을 크게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6. 저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사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8.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14.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 하고
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17.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곁에 이르러 다윗을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저희로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18. 이레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복들이 아이의 죽은 것을 왕에게 고하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의 죽은 것을 고할 수 있으랴 왕이 훼상하시리로다 함이라
19. 다윗이 그 신복들의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깨닫고 그 신복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
21. 신복들이 왕께 묻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찜이니이까
22. 가로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23.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24. 다윗이 그 처 밧세바를 위로하고 저에게 들어가 동침하였더니 저가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25. 선지자 나단을 보내사 그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을 인함이더라
26. 요압이 암몬 자손의 왕성 랍바를 쳐서 취하게 되매
27. 사자를 다윗에게 보내어 가로되 내가 랍바 곧 물들의 성을 쳐서 취하게 되었으니
28. 이제 왕은 남은 군사를 모아 진 치고 이 성을 쳐서 취하소서 내가 이 성을 취하면 이 성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까 두려워하나이다
29. 다윗이 모든 군사를 모아 랍바로 가서 쳐서 취하고
30. 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있는 면류관을 취하니 그 중량이 금 한 달란트라 다윗이 머리에 쓰니라 다윗이 또 그 성에서 노략한 물건을 무수히 내어오고
31. 그 가운데 백성들을 끌어내어 톱질과 써레질과 도끼질과 벽돌구이를 하게 하니라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을 이같이 하고 다윗과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
<사무엘하 12장 성경주석>
12:1 나단을…보내시니.
시간이 지나면서 다윗의 죄는 드러났다. 바로 다윗이 밧세바가 낳은 그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알려져, 우리아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자가 다윗일 것이라는 의심이 일어났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720). 다윗은 백성의 통치자였을 뿐 아니라 “주의 기름 부은 자”요 신정(神政)의 우두머리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의 지도자요 또한 하나님의 율법을 받들고 집행해야 할 사람이었다.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불명예를 초래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잘못을 저지른 왕에게 나단을 보내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고 회개에 이르게 할 거룩한 책망의 기별을 전하도록 했다.
12:1 두 사람이 있는데.
이 우화는 다윗의 의분을 일으키도록 교묘하게 고안되었고 그리하여 그로 자기가 저지른 죄를 스스로 정죄하게 했다. 이 기별을 전하는 데는 지혜와 용기가 요구되었다. 이 책망이 왕의 마음에 깊이 와 닿지 않는다면 그것은 책망하는 자에게 죽음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12:3 암양 새끼.
자세한 이야기는 어린 암양의 주인에게 동정심을 일으키고 이웃의 소중한 것을 비열하게 취한 그 무정한 자에게 분노를 불러일으키도록 지혜롭게 전달되었다.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 이 이야기는 매우 실감나게 전개되었다. 오늘날에도 수리아 지역에는 깊은 애정으로 양을 기르는 집들이 있다.
12:5 크게 노하여.
자기도 죄를 지었지만, 타고난 정의감을 아직 지니고 있었던 다윗은 지체 없이 판결을 내렸다. 왕은 그 사람에게 엄숙한 맹세와 함께 형벌을 선고하였다. 그의 행위는 사실상 자기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12:6 사 배.
이것은 모세의 율법과 일치하는 것이다(출 22:1; 참조 눅 19:8). 「70인역」의 어떤 필사본들에는 잠 6:31과 일치하게 “칠 배”로 되어 있다.
12:7 당신이 그 사람이라.
심판자 다윗은 범법자 다윗이 죽어 마땅함을 보게 되었다. 그 형벌을 선고한 사람이 자신이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내린 심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제시된 사실이 저질러진 범죄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항변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다윗이 저지른 악행은 죽어 마땅하다고 스스로 선포한 그 행위보다 훨씬 더 악한 것이었다.
다윗은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하였으며, 선고된 형벌이 정당한 것임을 알았다. 죄가 중했지만 그의 양심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의 죄는 한동안 사람들의 눈에 감추어지는 데는 성공했으나 하나님에게는 그렇지 못하였다.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주님은 다윗에게 그가 범한 죄의 무서운 본질을 보도록 했고, 그 자신에게 올바른 선고를 내리도록 했다. 왕의 앞일지라도 위축됨 없이 적용된 이 비유는 하나님의 선지자의 거룩한 담대함과 신실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 노골적인 책망은 나단에게 생명이 요구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위축되지 않았다.
담대하고 갑작스러운 나단의 말은 악에 머물러 지내던 다윗에게 그의 범죄가 씌워놓았던 악한 주문(呪文)에서 깨어나게 하는 충격을 주었다. 다윗은 본래 선한 사람이었으며 주께 즐겨 순종하였다. 그러나 그는 시험에 넘어졌고 죄를 감추려고 시도하므로 악의 그물에 점점 더 깊이 걸려들었다. 잠시 그의 감각은 권세와 번영과 불신의 망상으로 마비된 것 같았다. 지금 그는 갑작스럽게 양심의 감각을 되찾게 되었다.
12:8 네 주인의 처들을.
여기에서 나단은 선왕의 후궁들을 새 왕에게 주었던 동방의 관습을 언급하고 있다. 성경에는 사울의 아내 한 명(삼상 14:50)과 아브넬이 범한 사울의 첩 한 명(삼하 3:7)만 언급돼 있다. 기록은 다윗이 사울에게 속했던 부인들을 자신을 위해 취했다고 진술하지 않으나, 최소한 그 관습은 허용되었고 당시 하나님은 그 관습에 간섭하지 않았다(참조 신 14:26 주석; 마 19:4~9).
12:9 말씀을 업신여기고.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하나님께 지명받은 다윗은 하나님의 법을 높이고 그의 교훈들을 백성들에게 가르칠 책임이 있었다. 다윗은 자신의 행위로써 하나님의 율법을 경멸하고 있음을 나타냈고,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교훈을 무시하도록 독려한 꼴이 되었다. 불법을 행하는 자에게 두려운 대상이 되어야 했던 왕은 백성이 악을 행하는 데 담력을 얻도록 만들었다. 그는 하나님이 부여한 엄숙한 책임에 불성실했음을 스스로 증거하였다.
12:9 네가…우리아를 죽이되.
다윗이 암몬 족속의 손에 우리아를 죽게 한 명령을 내려 충실한 부하의 피를 흘린 것은 자신의 칼로 살생을 저지른 것이나 다름없는 죄였다. 하나님이 친히 다윗을 살인자로 고소하였고 그는 이 선고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12:9 그 처를 빼앗아.
다윗은 밧세바에게 아무런 권리가 없었다. 그 여자는 우리아의 합법적인 아내였다. 우리아를 살해하고 그 아내를 취하는 죄를 범함으로써 다윗은 주를 대적하는 자들에게 세세토록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모독하고 비난할 기회를 주었다.
12:10 나를 업신여기고.
다윗의 죄는 우리아에게 행한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 대항하여 범한 잘못이기도 하였다. 주님은 다윗을 보좌에 앉히고 왕국을 그와 후손들에게 영원히 줄 것을 약속했다. 이 모든 축복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자신을 그토록 선대하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죄를 범하였다.
12:10 떠나지 아니하리라.
다윗이 다른 사람들을 다루었던 것과 같이 지금은 그 자신이 그대로 받게 되었다. 다윗이 열어 두었던 악의 수문(水門)이 그의 후손들을 고난과 재앙에 빠뜨렸다.
12:11 재화를 일으키고.
여기 예언된 악의 창시자나 선동자가 하나님일 것이라는 의미로 이 말씀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728, 739). 누이 다말을 범했던 암논의 범죄(13장)나, 압살롬의 반역(15~19장)에서 다윗은 죄의 쓴 열매와 자기 아들들을 감독하고 감동시키는 데 무능했던 결과를 맛볼 것이었다.
12:11 다른 사람에게.
참조 16:22. 이것은 다윗이 지은 죄의 결과에 대한 또 하나의 예언이다. 자주 그렇듯이 여기서 하나님은 자신이 제지하지 않은 일을 행하고 있는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12:12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참조 16:22. 형벌은 그 죄가 비밀리에 저질러졌던 것만큼이나 널리 공개될 것이다.
12:13 내가…죄를 범하였노라.
본문은 이 말이 진실된 고백이었음을 보여 준다. 나단의 책망은 그의 심령을 꿰뚫었고 다윗은 죄인임을 겸손하게 고백했다. 이 당시에 기록된 시 51편에서 다윗은 죄를 깨닫고 용서를 간구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안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그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주시기를 기도했다(시 51:2, 3, 10). 시 32편도 마찬가지로 이 위기의 시기에 기록되었을 것이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724).
12:13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이 말은 모든 죄인에게 격려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죄가 아무리 클지라도 주님은 기꺼이 용서해 주시는 분임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우리아를 살해했던 다윗보다도 더 비열한 죄, 더 큰 배은망덕 그리고 더 강하고 잔인한 이기심의 죄를 범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했을 때 주님은 즉시 용서를 베풀었고 그에게 거룩한 은혜를 회복시켜 주었다. 하지만 다윗이 행했던 그러한 과정에는 커다란 위험이 뒤따른다. 회개는 기본적으로 죄인이 죄에 대하여 가지는 기본적인 태도의 변화를 포함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죄를 좋아하기 때문에 죄를 범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좋아서 계획하고 고의적으로 행한 죄를 슬퍼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그들의 태도와 행동에 완전한 변화를 원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불법의 원인이 되는 그들의 본성 안에 있는 악을 뿌리 뽑기를 기꺼이 원할 때에만 그들은 회개할 것이다. 죄를 반복해서 지으면서 지난날의 죄를 용서받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위선적이며 헛되이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12:14 훼방할.
주님이 다윗의 죄를 용서했을지라도 그것으로 악의 영향이 종결된 것은 아니었다. 많은 회의론자들은 이것을 지적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고 교회를 비난한다.
12:14 정녕 죽으리이라.
다윗이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5절)고 했을 때 이미 심판은 내려졌다. 그 자신의 선고대로 죽어야 할 사람은 다윗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 대신 그의 죄로 낳은 아들이 죽을 것이라고 선고했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722). 다윗에게 그 어린아이의 죽음은 자신의 죽음보다 더 큰 형벌이었을 것이다. 그가 치른 쓰디쓴 경험의 결과로 다윗은 더 깊은 회개와 회심에 이르렀을 것이다.
12:16 하나님께 간구하되.
심판을 선고한 후라도 하나님은 진정한 회개와 간절한 탄원에 반응하여 형벌을 가라앉히기도 했다(출 32:9~14; 참조 욘 3:4~10). 다윗은 하나님이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출 34:6) 분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용서와 아이의 목숨을 위해 열렬히 탄원했다. 어떻든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를 거역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는 단순히 하나님의 자비로 그 아이의 목숨을 구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12:20 다윗이…일어나.
아이의 죽음은 아버지의 간절한 탄원에 대한 하나님의 엄숙한 응답이었다. 하나님은 다윗의 간청에 호의적인 응답을 주지 않았지만, 왕은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복종했다. 하늘의 응답이 우리의 탄원과는 정반대일지라도, 하나님은 최선을 아시며, 때때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로 질병 가운데 있는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최선이 아님을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12:21 어찜이니이까.
다윗의 행동은 신하들의 눈에는 기이한 일이었다. 그들은 다윗이 아이의 죽음으로 심히 슬픈 기색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는 금식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음식을 청하였다.
12:23 어찌 금식하랴.
이 말은 다윗이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고, 죽음의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음을 묘사한다. 아이가 죽은 후 그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며 그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을 겸손하게 받아들였다.
12:23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히브리인들은 비유적으로, 죽은 자들이 스올(s∨e’ol)이라는 영역에서 함께 잠자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이 말은 「제임스왕역」에서 “무덤”(grave)과 “지옥”(hell)으로 번역되었다. 지옥(hell)이란 번역은 부적당하다. 왜냐하면 스올은 고통이나 의식(意識)이 있는 상태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은 때때로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는 것으로(삼하 7:12; 왕상 1:21; 2:10) 혹은 그의 열조에게 돌아가는 것으로(왕하 22:20) 나타난다. 다윗은 자신이 죽으면 아들과 같은 처지로 가겠지만, 그의 아들은 산 사람의 땅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12:24 솔로몬.
아마도 “평화로움”을 뜻할 것이다. 솔로몬은 왕국을 상속받고, 따라서 메시야의 조상이 될 것이었다. 다윗의 일생은 전쟁의 생애였고 솔로몬의 일생은 평화의 생애였다.
12:25 여디디야.
문자적으로 “여호와의 사랑을 받는 자.” 다윗은 죄를 지었으나 용서받았다. 하나님은 아직도 그를 사랑했고, 밧세바에게서 태어난 그 아이도 사랑했다.
12:26 랍바를 쳐서.
요압이 랍바를 포위 공격한 이야기(11:11)가 다윗과 밧세바의 사건으로 중단되었다가, 암몬의 수도를 포위 공격하는 이야기로 다시 이어진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우리아를 살해한 이야기(11:2~ 12:25)는 역대기에 없다.
12:27 물들의 성.
랍바는 얍복강 상류의 좁은 계곡에 위치해 있었다. 이 성채는 저지대의 성읍에서 떨어져 있는 벼랑 위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성이었음이 분명하다. 저지대의 도성은 “물들의 성”으로 불렸는데, 아마도 강으로 흘러가는 샘물 때문에 이렇게 불렸을 것이다. 이 낮은 지역을 요압이 정복한 후 윗 도성의 방어자들은 물 공급이 끊어져 오랫동안 버틸 수 없었다.
신약 시대에 이 도성은 빌라델비아로 불렸다(계 1:11에 나타난 소아시아에 있던 도시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현대의 이름은 암만(‘Am- man)으로, 제1차 세계대전 후 트랜스요르단의 수도였고 후에는 새로운 요르단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12:28 이 성을…취하소서.
랍바의 포위공격은 사실상 끝났다. 그 도성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미 함락되었고 나머지 부분도 곧 이스라엘의 손에 넘어갈 것이 확실했다. 요압은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나머지 군사들을 모아오라고 정중히 부탁함으로, 왕이 친히 그 도성을 취하여 성을 정복하는 영광을 누리게 할 참이었다.
12:28 내 이름으로.
다윗이 예루살렘을 취했을 때 그 성에는 “다윗 성”이라는 이름이 주어졌다(5:7, 9). 요압은 랍바 성을 정복한 후에 자기의 이름이 아닌 다윗의 이름으로 일컫고자 했던 것 같다.
12:29 모든 군사를.
요압은 랍바를 정복하기 위해 모든 백성을 소집했다(28절). 다윗은 이 계획을 수행했고 몸소 성의 마지막 정복에 참여했다. 도성의 함락이 임박했기 때문에 국가적 힘의 동원은 필요라기보다는 선택에 의해 촉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2:30 그 왕의 머리에서.
여기에 “그 왕”이라는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 자음들은 암몬 족속의 국가신인 말감(또는 밀곰)을 나타낼 수도 있다(습 1:5). 그래서 혹자는 다윗이 취한 왕관은 왕이 아닌 우상의 관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 왕관은 한 사람이 쓰고 있기에는 너무 무거워 보이기 때문이다. 한 달란트는 약 34킬로그램이다.
12:30 다윗이 머리에 쓰니라.
이 구절의 문법적 구문으로 보아, 왕관이든 보석이든 왕의 머리에 썼다고 결론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무거운 왕관은 오래 쓰고 있을 수 없었을 것이고, 평상시에 쓸 수도 없었다. 왕관은 잠시 동안만 승리의 상징으로 다윗의 머리에 씌워졌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보석을 취해서 다윗의 왕관에 박아 넣었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이 행위는 다윗이 암몬을 통치하게 되었음을 나타냈다.
12:31 백성들을…톱질과.
즉 백성들에게 톱과 기타 도구를 가지고 일하라고 지시했다. 평행 구절은 동사의 한 글자가 바뀌어 “톱으로 켜고”(「개역한글판」 대상 20:3)라고 되어 있다. 사무엘서에 사용된 것과 동일한 동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필사자의 실수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다윗이 암몬 죄수들을 고문했다고 생각하였다(참조 대상 20:3 주석). 그러한 잔혹함은 그 당시의 일반적인 관습에 일치되지만 다윗의 성품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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