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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20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사무엘하

사무엘하 20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6. 9. 30. 06:55

<사무엘하 20장 흐름정리>

베냐민 지파 출신인 세바가 이스라엘 백성을 충동질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당한 사건이 수록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요압은 아마사를 살해했다. 이는 다윗이 요압 대신 아마사를 군대 장관으로 임명한 데 따른 질투와 적개심의 표출이었다. 아마사를 죽인 요압은 군대를 이끌고 세바의 거점이었던 아벨 성으로 갔다. 그리고는 그 성을 에워싸고 함락시킬 준비를 했다. 이때 그 성의 한 지혜로운 여인의 활동으로 인해 세바가 체포되고 그의 머리가 요압에게 인계됨으로써, 피비린내는 살육극이 예방되었다.


<사무엘하 20장 줄거리>

1. 말다툼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세바가 이스라엘 중에서 당을 단듦.

3. 다윗의 후궁 열 명이 평생 별실에 갇힘.

4. 유다의 군장이 된 아마사가 요압에게 살해됨.

14. 요압이 세바를 아벨까지 추격함.

16. 어떤 지혜로운 여인이 세바의 머리를 베어 바침으로 성읍을 구함.

23. 다윗의 신하들.


<사무엘하 20장 개역한글>

1. 마침 거기 난류 하나가 있으니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라 하는 자라 저가 나팔을 불며 가로되 우리는 다윗과 함께할 분의가 없으며 이새의 아들과 함께할 업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2. 이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좇기를 그치고 올라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좇으나 유다 사람들은 왕에게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좇으니라    

3. 다윗이 예루살렘 본궁에 이르러 전에 머물러 궁을 지키게 한 후궁 열명을 잡아 별실에 가두고 먹을 것만 주고 더불어 동침치 아니하니 저희가 죽는 날까지 갇혀서 생과부로 지내니라    

4.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위하여 삼일 내로 유다 사람을 소집하고 너도 여기 있으라    

5. 아마사가 유다 사람을 소집하러 가더니 왕의 정한 기한에 지체된지라    

6. 다윗이 이에 아비새에게 이르되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주의 신복들을 거느리고 쫓아가라 저가 견고한 성에 들어가서 우리들을 피할까 염려하노라 하매    

7. 요압을 좇는 자들과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과 모든 용사들이 다 아비새를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쫓으려고 예루살렘에서 나와서    

8. 기브온 큰 바위 곁에 이르매 아마사가 맞으러 오니 때에 요압이 군복을 입고 띠를 띠고 집에 꽂은 칼을 허리에 매었는데 저가 행할 때에 칼이 빠져 떨어졌더라    

9.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형은 평안하뇨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 입을 맞추려는체하매    

10.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치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 배를 찌르매 그 창자가 땅에 흐르니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죽으니라 요압과 그 동생 아비새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쫓을쌔    

11. 요압의 소년 중 하나가 아마사의 곁에 서서 가로되 요압을 좋아하는 자와 다윗을 위하는 자는 요압을 따르라 할 때에    

12. 아마사가 길 가운데 피 속에 굴어졌는지라 그 소년이 모든 백성의 섰는 것을 보고 아마사를 큰 길에서부터 밭으로 옮겼으나 거기 이르는 자도 다 멈추어 서는 것을 보고 옷을 그 위에 덮으니라    

13. 아마사를 큰 길에서 옮겨가매 사람들이 다 요압을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쫓아가니라    

14. 요압이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행하여 아벨과 벧마아가와 베림 온 땅에 이르니 그 무리도 다 모여 저를 따르더라

15. 이에 저희가 벧마아가 아벨로 가서 세바를 에우고 그 성읍을 향하여 해자 언덕 위에 토성을 쌓고 요압과 함께한 모든 백성이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더니    

16. 그 성에서 지혜로운 여인 하나가 외쳐 가로되 들을찌어다 들을찌어다 청컨대 너희는 요압에게 이르기를 이리로 가까이 오라 내가 네게 말하려 하노라 한다 하라    

17. 요압이 그 여인에게 가까이 가니 여인이 가로되 당신이 요압이니이까 대답하되 그러하다 여인이 저에게 이르되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대답하되 내가 들으리라    

18. 여인이 말하여 가로되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19. 나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이어늘 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미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어찌하여 당신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시나이까    

20. 요압이 대답하여 가로되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삼키거나 멸하거나 하려함이 아니니 21. 그 일이 그러한 것이 아니니라 에브라임 산지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라 하는 자가 손을 들어 왕 다윗을 대적하였나니 너희가 저만 내어 주면 내가 이 성읍에서 떠나가리라 여인이 요압에게 이르되 저의 머리를 성벽에서 당신에게 내어 던지리이다 하고    

22. 이에 여인이 그 지혜로 모든 백성에게 말하매 저희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진지라 이에 요압이 나팔을 불매 무리가 흩어져 성읍에서 물러나서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왕에게 나아가니라    

23. 요압은 이스라엘 온 군대의 장관이 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장관이 되고    

24. 아도니람은 감역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25. 스와는 서기관이 되고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 되고    

26. 야일 사람 이라는 다윗의 대신이 되니라


<사무엘하 20장 도움말>

20:1 세바.

 다윗의 집에 여전히 적대감을 품고 있던 베냐민 사람. 그는 왕을 대적하는 반항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하여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 사이의 불화(19:41~43)를 이용했다.

20:1 각각 장막으로.

 이 구절의 용례를 보려면 왕상 12:16; 대하 10:16을 참조하라.

20:2 다윗 좇기를 그치고.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저희가 유다 사람들보다 다윗에게 더 큰 요구를 할 권리가 있다고 항의의 목소리를 높였다(19:43). 참으로 인간의 본성은 변하기 쉽다. 다윗의 왕좌는 요란한 환영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정과는 멀었다.

20:2 유다 사람들…합하여.

 압살롬의 반란은 유다에서 시작되었고, 유다는 다윗의 깃발 아래로 돌아오는 일에도 마음내켜 하지 않았으나(19:11) 이제 다윗과 연합했다. 다윗이 유다 백성들의 호의를 모른 척하는 대신에 그것을 얻고자 노력한 것은 잘한 일이었는데, 그가 자기의 왕좌에 앉도록 도와준 이들이 곧 그를 마지못해 환영하던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20:3 생과부로 지내니라.

 다윗의 후궁 열 명의 불행한 운명은 분명히 아히도벨의 제안에 따라 이루어진 압살롬의 추행의 결과였다(16:21). 그 여인들에게는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숙식이 제공될 것이었지만, 사실상 그들에게 남편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20:4 아마사에게.

 다윗은 아마사에게 자기의 군대장관이 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고(19:13), 그 약속을 지켰다. 중대한 위기가 발생했으며, 아마사는 사흘 안에 반란을 진압할 군대를 준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갓 부임한 사람에게, 그러한 분열과 혼란의 시기에 해야 할 일은 쉽지 않았다.

20:5 지체된지라.

 군대를 소집하는 일에 아마사가 지체한 이유는 나와 있지 않다. 교활한 요압은 여전히 백성들을 거의 장악하고 있었으며, 자기의 적수요 후임자인 아마사의 지휘를 받게 될 전투 부대를 속히 조직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마도 아마사는 최선을 다했겠지만, 그때까지도 요압에게 충성하는 무관들과 병사들 때문에 그리고 그 당시에 만연된 전반적인 불안감과 분열로 인한 어려움 때문에 그는 사방에서 방해받았을 것이다.

20:6 아비새.

 요압의 형제(2:18). 얼마 전에 다윗은 그에게 조바심을 나타냈으나(19:22), 이제는 오히려 요압보다도 아비새에게 향했다. 위기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분명히 요압을 제쳐놓으려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사건들이 보여 주듯이 요압은 쉽게 제거되지 않았다.

20:6 우리를 더 해하리니.

 그때까지도 나라는 불만과 불안한 상태에 있었으며, 다윗은 아직도 국사(國事)를 회복시켜 굳게 장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반적인 혼란 가운데서는 무슨 일이든지 발생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다윗은 그런 상황의 극단적인 위험성을 예민하게 인식하였다. 더욱이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의 해묵은 분열의 노선을 따라 깊은 골이 나 있었다.

20:6 견고한 성에.

 만약 세바가 다수의 요새화된 성읍을 차지하여 그중 하나의 성벽 뒤에 은신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면, 그 반란을 진압하는 일은 매우 어려워질 것이었다. 다윗의 가장 큰 희망은 세바가 자기의 군대를 통합 정리하여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기 전에 신속히 대처하는 것이었다.

20:6 우리들을 피할까.

 문자적으로 “우리의 눈을 취하여 가다.” 이 구절은 몇 가지로 해석되었다. 「제임스왕역」 번역자들은 이 구절을 “눈을 회피하는”이라는 뜻에서, “우리의 눈을 다른 데로 돌리다”로 이해하였다. 「70인역」은 “우리 눈에 그림자를 드리우다”로 번역할 수 있다. 그러나 타르굼에는 “우리에게 해를 끼치다”로 번역되어 있는데, 「개정표준역」은 그것을 받아들여 “우리를 근심하게 하다”라고 번역한다.

20:7 요압을 좇는 자들.

 다윗은 요압에게서 지휘권을 박탈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노력했으나 군대는 여전히 대부분 그의 통솔을 받았고 병사들도 여전히 그에게 충성을 나타냈다.

20:7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과.

 이 사람들은 다윗의 특별 친위대를 이루고 있었다(참조 15:18 주석). 그들은 잘 훈련된 군인들로 이루어진 작은 집단이었으며 그들의 충성심은 절대적으로 신뢰할 만했다. 그들을 전쟁터로 보낸 것은 상황이 극히 위태했음을 보여 주는데, 그것은 예루살렘에 있는 다윗을 거의 무방비 상태에 남겨 두는 셈이기 때문이다.

20:7 모든 용사들.

 이는 용사들의 특별 집단으로, 다윗의 초기에는 추방당한 자로 그리고 후기에는 왕으로 지내는 동안 발군의 실력을 나타냈던 자들이다(참조 23:8~39).

20:8 기브온.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약 10킬로미터 지점에 있던 마을로, 지금의 엣-지브(ej-Jib)이다.

20:8 맞으러 오니.

 즉 “그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 아마사는 자기의 군대를 모아 아비새를 따라 북쪽으로 갔던 것으로 보인다.

20:8 칼이 빠져 떨어졌더라.

 자세한 내용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요압은 허리띠를 두른 군복을 입었었는데, 허리띠 속에 단검을 꽂고 있었다. 그가 걸어갈 때 단검이 빠져 떨어졌다. 어떤 이들은 아마사가 나타났을 때 그가 몸을 숙여 왼손으로 그것을 집어들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들은 그가 다른 무기를 숨기고 있었으나 무기를 지니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고 칼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한다.

20:9 오른손으로.

 요압이 사촌의 수염을 잡고 입을 맞추는 행위는 친족 사이에 하는 일반적인 인사 형태였음이 분명하다.

20:10 주의치 아니한지라.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고 요압의 행동은 매우 솔직하게 보였으므로 아마사는 그가 배신할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20:10 그 배를 찌르매.

 요압이 아마사의 복부를 찌르니 창자가 흘러 나왔다(참조 2:23 주석).

20:10 요압과 그 동생 아비새가.

 아마사가 죽음으로, 왕의 지시와는 상관없이 이제 다윗 군대의 군장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이 사라졌다. 아마사가 직분을 부여받았고(4절), 그런 다음 아비새는 휘하에 있는 군대와 더불어 파병되었다(6절). 그러나 이제 요압은 자기의 옛 지위를 간단하게 접수했고, 따라서 물어볼 필요도 없이 세바를 계속 추격했다.

20:11 요압의 소년 중 하나가.

 그 순간의 중요한 과업은 세바를 신속히 추격하여 반란을 진압하는 일이었다. 일단 그 목적이 달성되자 요압은 자기가 다윗과 화해해야 할 입장에 놓였다고 느꼈다. 그러나 한편 피투성이가 되어 땅 바닥에 나뒹굴며 쓰러져 있는 아마사의 문제가 남아 있었다(12절). 요압은 자기가 신임하는 부하들 중 한 사람을 그 자리에 배치하고, 마치 아마사는 다윗의 사업을 배반했기 때문에 살해되었으며, 이제는 요압이 다윗의 왕권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반란군을 추격하는 일을 이끌고 있는 것처럼 떠들어대도록 했다. 지금 전쟁터에 있는 병사들에게 다윗에 대한 요압의 충성은 잘 알려져 있었고, 그들은 또한 아마사를 자기들이 최근까지도 대적하여 싸웠던 압살롬 군대의 지휘관으로 기억하였다. 

  이 병사들은 아마사를 거의 신뢰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가 제거된 것을 좋아했을 것이다. 물론 요압이 아마사를 죽인 것은, 경쟁자로서 그를 용납할 수 없어 자기의 옛 지위를 유지하고자 결심했기 때문이다.

20:12 그 소년이…보고.

 세바를 추격 중이던 병사들이 죽어 있는 아마사를 보고 멈추어 서서 질문한 것은 당연했다. 추격하는 일에 지장을 주었으므로, 아마사의 시체를 길에서 치워버렸다. 그 지점에 도달한 병사들이 그들 앞에 가는 군인들을 따라 그냥 그들의 길을 계속하여 나아갔다.

20:14 요압이.

 (「제임스왕역」에는 단순히 “그가”로 되어 있음-역자 주). 세바로 보아야 한다.

20:14 아벨과 벧마아가와.

 이곳은 아마도 멀리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 납달리 지파 내의 한 요새화된 성읍인 아벨-벧-마아가였을 것이다(왕상 15:20; 왕하 15:29). 그곳은 오늘날의 텔 아빌(Tell Abil)로 여겨지며, 단(Dan) 근처의 훌레(Huleh) 호수에서 북쪽으로 약 19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요단강 상류 서쪽의 한 야산에 위치했다.

20:14 베림 온 땅에.

 이것은 아마도 아벨-벧-마아가 근처에 살고 있던 한 족속의 이름일 것이다. 그들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언급된 사람들이 세바 족속의 구성원인 비그리 사람들(Bechrites)일 것이라고 믿는다. 세바는 비그리의 아들이었다(1절).

20:14 저를 따르더라.

 그들은 세바의 뒤를 따라갔다. 분명히 세바는 이곳 북쪽 지역에서 힘을 모으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냥 내버려둔다면 곧 다윗의 군대를 대적하여 가공할 만한 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입장에 놓일 것이었다.

20:15 세바를 에우고.

 세바는 요새화된 성읍 안에 자신의 자리를 잡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가졌으므로 그 성읍은 포위 공격을 통해서만 점령할 수 있었다.

20:15 해자.

 히브리어 헬(h.el), “방어벽.” 어떤 사람들은 헬이 더 낮은 외벽과 성읍의 주벽(主壁) 사이에 있는 요새화된 지역이나 외벽 자체 또는 경사진 방어벽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이들은 그것이 해자(垓字)나 도랑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포위군들은 본 성벽을 마주 대하여 그 지역에 토성을 쌓아 최종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입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었다.

20:15 토성을 쌓고.

 참조 왕하 19:32; 사 37:33. 이것은 고대 동방에서 흔히 사용하던 공성(攻城) 전법이었다. 성벽에서 가장 약한 부분은 흙벽돌로만 이루어진 상단 부분이었으며, 반면에 밑바닥은 대개 돌로 되어 있었다. 성벽을 마주 대하여 토성을 쌓고, 공성퇴를 사용하려면 그 위에다 올려놓으면 되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성벽에 구멍을 내면 성읍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20:15 성벽을 쳐서.

 다윗의 군대가 공성퇴(攻城槌) 같은 공격 기구를 소유하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런 기구들은 후일 앗수르나 바벨론 군대에게 일반화되어 큰 성과를 안겨주었다.

20:16 지혜로운 여인 하나가.

 이 여인은 요압과 대담을 요청했다. 그녀의 성읍은 다윗을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킨 한 사람 때문에 피에 잠길 판이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합당하지 않게 보였다.

20:19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세바에 대한 요압의 전쟁은 아벨과의 전쟁이 되었으며, 이제 그 고도(古都)는 평화를 사랑하는 그곳 거민들과 함께 멸망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20:22 모든 백성에게.

 그 여인은 참으로 현명함을 입증했다. 그녀는 이해 관계와 생존이 위기에 처한 백성들에게 가서 함께 그 문제를 의논했다. 만약 그녀가 세바에게 갔었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백성들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다만 자신에게 재난만을 초래했을 것이었다. 만일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아벨의 거민들은 세바의 이기심과 야망 때문에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었다.

20:22 나팔을 불매.

 교전의 끝을 알리는 신호(참조 2:28; 18:16).

20:22 각기 장막으로.

 각기 집으로(참조 18:17 주석).

20:23 요압은…온 군대의 장관이 되고.

 23~ 26절에는 다윗의 신하들이 열거되어 있다. 이보다 앞서 열거된 신하들의 명단(8:16~18)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세바의 반란이 진압된 후 요압은 군대장관으로서 자기의 지위를 계속 유지했다.

20:23 브나야.

 브나야는 계속해서 다윗의 시위대장직을 유지했다(참조 삼하 8:18; 대상 18:17). 그는 다윗의 용사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사자와 같은 모압 사람 둘”(23:20)을 죽임으로써 용맹을 떨쳤다(「개역한글판」에는 23:20이 “모압 사람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였고”라고 되어 있으나, 「제임스왕역」에는 “사자와 같은 모압 사람 둘을 죽였고”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20:24 감역관이 되고.

 문자적으로 “노동자 집단의 우두머리”(참조 왕상 5:14; 여기서 “감역관”이라고 번역한 것과 똑같은 히브리어 단어를 왕상 5:14에서는 “감독”으로 번역했다). 이 관직은 삼하 8:16~18이나 대상 18:14~17에 나오는 초기 목록에는 언급되지 않았는데, 그것은 다윗의 통치 말기에 가서야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같은 관직을 솔로몬의 통치기간에는 “압다의 아들 아도니람”(왕상 4:6)이, 르호보암의 통치 초기에는 “아도람”이 보유했다(왕상 12:18; 「제임스왕역」에는 왕상 12:18의 인물이 “아도람”으로 되어 있으나, 「개역한글판」에는 “아도니람”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이 상이한 성경절들은 동일한 인물을 가리킬 가능성이 있다. 솔로몬의 치세에 강제 노역 제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육체의 가시가 될 지경이었으므로, 북방의 지파들이 폭동을 일으켰던 르호보암 통치 초기의 난국(難局)에는 아도람이 돌에 맞아 죽었다(왕상 12:18).

20:24 여호사밧.

 다윗의 신하들의 초기 목록에 언급되어 있다. 그는 여전히 솔로몬의 통치기간에도 같은 직분을 맡고 있었다(왕상 4:3). 그의 활동에 대해서는 삼하 8:16을 참조하라.

20:25 사독과 아비아달.

 이보다 앞에서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들로 이름이 수록돼 있다(8:17). 그러나 이곳의 목록은 다윗의 통치 후기의 것이며, 따라서 아들이 제사장으로서 아버지보다 윗자리를 차지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사람들에 관한 논의를 보려면 8:17 주석을 참조하라.

20:26 야일 사람 이라.

 이 신하는 8:16~18이나 대상 18:14~17에는 나오지 않는다. 삼하 23:28에 나오는 다윗의 용사들 가운데 열거된 “이델 사람 이라”와 동일한 인물로 추정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이 점에 대해 침묵한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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