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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3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열왕기상

열왕기상 3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2. 8. 06:29

<열왕기상 3장 흐름정리>

솔로몬이 통치 초기에 애굽과 결혼 동맹을 맺은 것은 이미 그 당시 이스라엘이 주변국들에게 강대국으로 인식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일로 말미암아 이방 종교가 이스라엘에 유입되었고 이는 결국 나라를 멸망의 길로 몰고 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사실은 국가의 안위를 인간의 방책으로 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추구해야 함을 교훈해 준다. 이 사건 후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지혜를 주신 이유도 이 때문이다. 본문에 기록된 솔로몬의 지혜로운 재판은 그가 하나님께 받은 지혜를 실제로 사용한 예이다.


<열왕기상 3장 줄거리>

1. 솔로몬이 바로의 딸과 결혼함.

2. 솔로몬이 산당을 사용하도록 하고 기브온 산당에서 제사를 드림.

16. 기브온에서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원하는 것을 선택하라고 하자 지혜를 구하여 부와 영예까지 얻음.

16. 솔로몬이 두 창기의 문제를 재판하여 유명해짐.


<열왕기상 3장 개역한글>

1. 솔로몬이 애굽 왕 바로로 더불어 인연을 맺어 그 딸을 취하고 데려다가 다윗성에 두고 자기의 궁과 여호와의 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이 필역되기를 기다리니라    

2. 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3.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되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6. 솔로몬이 가로되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줄을 알지 못하고    

8.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11.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13.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14.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15. 솔로몬이 깨어보니 꿈이더라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수은제를 드리고 모든 신복을 위하여 잔치하였더라    

16. 때에 창기 두 계집이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17. 한 계집은 말하되 내 주여 나와 이 계집이 한 집에서 사는데 내가 저와 함께 집에 있으며 아이를 낳았더니    

18. 나의 해산한지 삼일에 이 계집도 해산하고 우리가 함께 있었고 우리 둘 외에는 집에 다른 사람이 없었나이다  

19. 그런데 밤에 저 계집이 그 아들 위에 누우므로 그 아들이 죽으니    

20. 저가 밤중에 일어나서 계집종 나의 잠든 사이에 내 아들을 내 곁에서 가져다가 자기의 품에 누이고 자기의 죽은 아들을 내 품에 뉘었나이다    

21. 미명에 내가 내 아들을 젖 먹이려고 일어나 본즉 죽었기로 내가 아침에 자세히 보니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더이다 하매    

22. 다른 계집은 이르되 아니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이 계집은 이르되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며 왕 앞에서 그와 같이 쟁론하는지라    

23. 왕이 가로되 이는 말하기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저는 말하기를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는도다 하고    

24. 또 가로되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칼을 왕의 앞으로 가져온지라    

25. 왕이 이르되 산 아들을 둘에 나눠 반은 이에게 주고 반은 저에게 주라    

26. 그 산 아들의 어미되는 계집이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가로되 청컨대 내 주여 산 아들을 저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한 계집은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27.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산 아들을 저 계집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 어미니라 하매    

28. 온 이스라엘이 왕의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저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열왕기상 3장 성경주석>

3:1 바로로 더불어 인연을 맺어.

 본 절은 바로 앞절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솔로몬이 왕위를 물려받은 후에 세운 첫 번째 목표는 나라 안의 안전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 목적이 이루어지자 이제 그는 국외 관계에 주의를 돌려야 할 입장이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성경에 첫 번째 언급된 기사는 바로의 딸과 결혼한 것이었다. 다윗이 유다를 통치했을 경우에도, 나라 안의 치안을 공고히 하기 위해 취한 조치를 언급한(삼하 2:1~32; 3:1) 후에 다윗의 아들들과 아내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삼하 3:2~5). 그리고 그가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삼하 5:1~3) 기록된 첫 번째 기사도 이스라엘에서 그의 왕권을 확립하는 것이고(삼하 5:6~12), 뒤이어 다시 한 번 그의 처와 첩들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다(삼하 5:13~16). 솔로몬이 인연을 맺었다고 기록된 바로(Pharaoh)는 수도를 하(下)애굽의 타니스에 정했던 제21왕조의 왕들 중 한 사람으로 추정된다. 틀림없이 그는 르호보암 왕 제15년 유다를 침공한(14:25) 제22왕조의 설립자인 시삭(셰송크)의 선왕(先王)이었을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솔로몬이 인연을 맺은 바로가 프수센네스(Psousennes)였다고 생각한다. 

  솔로몬이 애굽과 동맹을 맺은 때는 애굽이 약하고 분열되어 있었던 시기였다. 앗수르와 바벨론도 약하던 시기였고, 한때 강성했던 헷족(Hittites)도 더 이상 나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근동 지방이 전반적으로 약했던 그 시기는, 하나님이 구별한 땅에 다윗과 솔로몬이 강력한 국가를 세울 수 있도록 비할 데 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3:1 그 딸을 취하고.

 정치적 동맹 관계는 흔히 왕실간의 결혼으로 확고해졌다. 성경 역사가들은 솔로몬이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의 공주와 결혼한 일에 대하여 아무런 책망의 말도 기록하지 않고, 단순히 그 사실들만 기록한다. 그러나 책망의 말이 없다는 것이 그 행위를 인정하는 표는 아니다. 그 결혼은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파기하는 행위였다. 바로의 딸이 비록 자기 민족 종교를 버리고 히브리인들과 운명을 같이하며, 그들 사이에서 살았다고 해도(선지자와 왕, 53) 이런 건전한 결과가 이방인과의 결혼을 정당화시키지는 못한다. 바로는 가나안 사람들에게서 게셀을 탈취하여 자기 딸 솔로몬의 아내에게 예물로 주었다(9:16).

3:1 다윗 성.

 여기서는 다윗 성과 예루살렘을 구분하여 언급한다. 시온의 고대 성채 곧 여부스인들의 요새(삼하 5:7~9)는 동쪽 산맥의 남단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곳은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기혼 샘 서쪽이며 후에 성전을 세운 지역의 남쪽이었다.

3:1 자기 궁의.

 다윗 성에 있었던 바로의 딸의 거처는 솔로몬이 자기 궁을 지을 때까지만 있을 임시 처소였다. 이 궁전은 다윗 성 북쪽 곧 성전 지역에 있었을 것이다. 후에 솔로몬이 애굽인 아내를 위해서 별궁을 지었다(7:8).

3:2 산당에서 제사하며.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희생제물은 회막으로 가져와야 하고 야외에서 드릴 수 없었다(레 17:3~5). 여호와는, 희생제물을 가져갈 특별한 장소를 지정할 것이라고 약속했다(신 12:10, 11). 그러나 이 중심 장소를 선정하기 전에는 나라 전역의 여러 곳에서 희생을 드렸는데(삿 6:25, 26; 13:16; 삼상 7:10; 13:9; 14:35; 대상 21:26), 예배자들 편에는 잘못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산당에서 희생제사를 드리지 못하도록 금한 데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땅의 타락한 우상숭배가 행하여지는 곳에 가지 못하게 하려고, (2) 거짓된 예배가 생겨날 수도 있는, 여호와의 인가를 받지 않은 성소의 난립을 방지하기 위해.

3:3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이 표현을 솔로몬의 생애의 이 시기에 우상숭배가 있었다는 증거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기록에는 “그는 여호와를 사랑하고” “다윗의 규례대로 행하였”다고 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중앙 성소 외의 장소에서 희생제사를 금한 모세의 규례를 지키지 않았다. 비록 이 명령이 사사 시대와 사무엘 및 다윗 시대까지(2절) 무시되어 왔다 해도 이제 이스라엘은 종교적인 경험에 있어서 새로운 시기에 이르렀다. 하나님이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행 17:30) 이제는 더 이상 묵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3:4 기브온으로 가니.

 기브온은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 10킬로미터 지점에 있었다. 나라를 견고히 하기 위하여 취해진 조치가 성공을 거두고 난 후 솔로몬은 받은 축복에 여호와께 감사를 드리면서 기브온에서 전 국민을 위한 큰 축제를 열었다. 광야에서 건립된 성막이 거기에 있었다(대하 1:3). 여기서 오래 전에 기브온 사람들이 여호수아를 속여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자가 되라”(수 9:23)는 선고를 받은 일이 생각났을 것이다.

3:5 꿈에.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 시대에는 여호와의 뜻이 나단 선지자와 갓 선지자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나타나기도 했고(삼하 7:2~17; 12:1~14; 24:11~14), 제사장들이 드리는 특별한 예배를 통해서 나타나기도 했다(삼상 23:9~12; 30:7, 8). 게다가 다윗 자신도 시편을 기록할 때와 같은 경우(참조 삼하 23:2)에 자주 성령의 감동을 입고 말하였다. 솔로몬은 꿈으로 계시를 받았다. 하나님은 자신을 당신의 종들에게 계시하는 방법으로 꿈이라는 수단을 자주 사용한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창 15:12), 야곱(창 28:12~16), 요셉(창 37:5~10), 다니엘(단 2:9; 7:1) 등에게도 꿈을 사용했다. 그는 또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들에게도 꿈으로 말씀하셨다. 예를 들면, 아비멜렉(창 20:3~7), 라반(창 31:24), 바로와 그의 신하들(창 40:5; 41:1~8), 미디안 사람들(삿 7:13), 느부갓네살(단 2:1; 4:10~18) 등에게 그렇게 하셨다.

3:5 너는 구하라.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았지만 구하라고 명하였다. 젊은 솔로몬에게 그 일은 시험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구하는 것의 성질에 따라 그의 마음의 본 바탕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3:7 작은 아이라.

 솔로몬은 여기서 자신이 나이 어린 아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적은 아이와 같다는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겸손한 표현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지워진 나라의 무거운 책임 앞에서 자신이 그 임무에 부적합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는 등극할 때 이미 결혼하여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가 위에 있은 지 40년 후에 죽었을 때 그에게는 41세 된 아들이 있었다(대하 12:13)는 사실(왕상 11:42)이 이를 암시한다.

3:9 지혜로운 마음.

 사람의 첫째가는 필요이며 가장 큰 필요는 지혜로운 마음 곧 하나님의 뜻은 물론 마음 자체의 문제들과 필요를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이다. 사람이 부름을 받아 감당해야 할 책임이 크면 클수록 지혜로운 마음의 필요성은 그만큼 커진다. 권세 있는 자리에 앉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이해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 주어야 한다. 법을 집행하고 국사(國事)를 처리하는 데는 실제적인 지혜와 예민한 통찰력과 명확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나라 안의 하급 재판관들이 위촉해 오는 어려운 송사를 듣는 일이 솔로몬의 주요 직능 중 하나였을 것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백성의 수장(首將) 자리에 올랐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큰 지혜가 필요함을 느꼈다. 솔로몬이 기록한 다음의 말에서, 지혜의 근본적인 성질에 관한 가장 좋은 이해를 발견할 수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한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10).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지니라”(잠 4:7).

3:10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하나님은 사람이 지혜롭고 선한 것을 구할 때 기뻐하신다. 사람이 삶의 문제들에 대해 지혜롭게 처신할 때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이 된다.

3:12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

 솔로몬의 지혜에는 도덕적인 면과 지적인 면이 아울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삶의 모든 측면, 인간의 일과 마음, 하나님의 일과 생각에 관련된 실제적인 지혜였다.

3:13 너의 구하지 아니한.

 여기에 솔로몬이 구한 지혜에 관하여 하나님이 친히 하신 확증이 있다. 솔로몬은 겸손하게 지혜를 구하였다. 그것은 생애의 다른 모든 축복을 함께 가져온다. “지혜를 얻는 자와 명철을 얻는 자는 복이 있나니”(잠 3:13),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잠 3:17, 18).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이라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잠 8:35, 36).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기초를 이루는 큰 법칙이다. 이에 관하여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3:15 꿈이더라.

 단순한 꿈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꿈이었다. 솔로몬에게는 그 꿈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왔으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맛보았다는 온전한 확신이 있었다. 그는 수도로 돌아가면 곧바로 언약궤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확신하였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의 생각이 옳았고, 여호와께 직접 기별을 받았음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3:15 언약궤 앞에.

 솔로몬은 당시 이스라엘에 있었던 거룩한 두 장소에서 각각 엄숙한 종교 의식을 거행하면서 그의 통치를 시작하였다. 그중 한 곳은 회막이 있던 기브온이고, 다른 한 곳은 예루살렘 곧 몇 년 전 다윗 성으로 옮겨 놓은 법궤 앞이었다(삼하 6:12, 16).

3:15 수은제.

 (「제임스왕역」에는 “peace offering”[화목제]로 되어 있음-역자 주). 하나님께 헌신하는 행위를 나타내기 위해 “향기로운 냄새”로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레 1:9, 13, 17)인 번제라는 종교적 의식뿐 아니라, 수많은 화목제 희생 곧 백성들을 초청하여 받은 축복을 인하여 찬양과 감사를 드리도록 하는 즐거운 교제의 축제가 있었다(레 7:12, 13, 15; 삼하 6:18, 19; 대상 16:2, 3).

3:16 두 계집.

 이것은 보통 어려운 재판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송사를 왕에게 가져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솔로몬의 지혜가 가장 어려운 시험대에 올려지게 되었다. 고소자 양측은 의심스러운 인격의 소유자들이었다. 어느 쪽 말도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의 증언은 팽팽한 균형을 이루면서, 한쪽이 단호한 어조로 확언을 하면 다른 쪽도 똑같은 강도로 맞받아 쳤다. 확실한 결정 또는 공정한 결정을 내리기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재판정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왕이 혹시 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지나 않을까? 이런 경우에 추론, 추정, 연역, 가설 등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것들은 단지 법의 수레바퀴를 잘 구르지 못하게 방해하는 무거운 짐일 뿐이다. 그러나 솔로몬은 성가신 법적 장치를 초월하여 신속하고 확실한 판결, 곧 논쟁의 소지가 전혀 없는 재판을 내렸다. 아이는 어머니에게 돌아가고 공의가 제 길을 찾아, 지혜와 재판에 대한 솔로몬의 명성은 미래의 모든 세대 동안에도 보증되었다. 

  오늘날 나폴리에 있는 국립 박물관에는 폼페이에서 가져온 벽화 한 점이 있는데, 솔로몬이 두 창기를 재판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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