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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ORY
사무엘하 3장 & 성경주석 본문
<사무엘하 3장 흐름정리>
다윗가와 사울가 사이에 오랜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사울가는 더욱 몰락해 갔던 반면에 다윗가는 점점 강성해졌다. 2~5절에 언급된 다윗 아들들의 출생 기사는 다윗가의 강성함을 보여 주려는 의도에서 소개되었다. 다윗이 여러 아내들을 거느린 것은 당시 사회에서는 통념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성경의 가르침과는 어긋나는 일이었다. 한편, 사울가의 군대 장관이었던 아브넬은 사울의 첩과 통간함으로써 이스보셋의 분노를 유발하였다. 그래서 기회주의자 아브넬은 다윗 편으로 전향하였다. 다윗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가급적 억제하고 통일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아브넬에게 관대하게 대했으며, 이로 인해 요압이 불만을 품고서 마침내 아브넬을 살해하고 말았다.
<사무엘하 3장 줄거리>
1. 전쟁 동안에도 다윗은 계속 강대해짐.
2. 헤브론에서 다윗의 여섯 아들이 태어남.
6.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못마땅히 여겨,
12. 다윗에게 투항함.
13. 다윗이 자신의 아내 미갈을 데려오라는 조건을 요구함.
17.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야기한 아브넬이 다윗이 베푼 잔치에 참석한 뒤 돌아옴.
22. 전쟁에서 돌아온 요압은 왕을 못마땅하게 여겨 아브넬을 살해함.
28. 다윗이 요압을 저주하고,
31. 아브넬을 위해 애도함.
<사무엘하 3장 개역한글>
1.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가니라
2.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으되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3. 둘째는 길르압이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되었던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세째는 압살롬이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요
4. 네째는 아도니야라 학깃의 아들이요 다섯째는 스바댜라 아비달의 아들이요
5. 여섯째는 이드르암이라 다윗의 아내 에글라의 소생이니 이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자들이더라
6.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있는 동안에 아브넬이 사울의 집에서 점점 권세를 잡으니라
7. 사울에게 첩이 있었으니 이름은 리스바요 아야의 딸이더라 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첩을 통간하였느냐
8.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말을 매우 분히 여겨 가로되 내가 유다의 개 대강이뇨 내가 오늘날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과 그 형제와 그 친구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당신을 다윗의 손에 내어주지 아니하였거늘 당신이 오늘날 이 여인에게 관한 허물을 내게 돌리는도다
9.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대로 내가 이루게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브넬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10. 그 맹세는 곧 이 나라를 사울의 집에서 다윗에게 옮겨서 그 위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에 세우리라 하신 것이니라 하매
11. 이스보셋이 아브넬을 두려워하여 감히 한 말도 대답지 못하니라
12. 아브넬이 자기를 대신하여 사자들을 다윗에게 보내어 가로되 이 땅이 뉘 것이니이까 또 가로되 당신은 나로 더불어 언약하사이다 내 손이 당신을 도와 온 이스라엘로 당신에게 돌아가게 하리이다
13. 다윗이 가로되 좋다 내가 너와 언약하려니와 내가 네게 한가지 일을 요구하노니 나를 보러 올 때에 위선 사울의 딸 미갈을 데리고 오라 그렇지 않으면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고
14.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되 내 처 미갈을 내게로 돌리라 저는 내가 전에 블레셋 사람의 양피 일백으로 정혼한 자니라
15. 이스보셋이 보내어 그 남편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서 취하매
16. 그 남편이 저와 함께 오되 울며 바후림까지 따라 왔더니 아브넬이 저에게 돌아가라 하매 돌아가니라
17. 아브넬이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너희가 여러번 다윗으로 너희 임금 삼기를 구하였으니
18. 이제 그대로 하라 여호와께서 이미 다윗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종 다윗의 손으로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과 모든 대적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하셨음이니라 하고
19. 아브넬이 또 베냐민 사람의 귀에 말하고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온 집이 선히 여기는 모든 것을 다윗의 귀에 고하려고 헤브론으로 가니라
20. 아브넬이 종자 이십인으로 더불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가니 다윗이 아브넬과 그 함께한 사람을 위하여 잔치를 배설하였더라
21. 아브넬이 다윗에게 고하되 내가 일어나 가서 온 이스라엘 무리를 내 주 왕의 앞에 모아 더불어 언약하게 하고 마음의 원하시는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게 하리이다 이에 다윗이 아브넬을 보내매 저가 평안히 가니라
22. 다윗의 신복들과 요압이 적군을 치고 크게 노략한 물건을 가지고 돌아오니 아브넬은 이미 보냄을 받아 평안히 갔고 다윗과 함께 헤브론에 있지 아니한 때라
23. 요압과 그 함께한 모든 군사가 돌아오매 혹이 요압에게 고하여 가로되 넬의 아들 아브넬이 왕에게 왔더니 왕이 보내매 저가 평안히 갔나이다
24. 요압이 왕에게 나아가 가로되 어찌 하심이니이까 아브넬이 왕에게 나아왔거늘 어찌하여 저를 보내어 잘 가게 하셨나이까
25. 왕도 아시려니와 넬의 아들 아브넬의 온 것은 왕을 속임이라 왕의 출입하는 것을 알고 모든 하시는 것을 알려 함이니이다 하고
26. 이에 다윗에게서 나와서 사자들을 보내어 아브넬을 쫓아가게 하였더니 시라 우물 가에서 저를 데리고 돌아왔으나 다윗은 알지 못하였더라
27.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 오매 요압이 더불어 종용히 말하려는 듯이 저를 데리고 성문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를 인함이더라
28. 그 후에 다윗이 듣고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
29.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그 아비의 온 집으로 돌아갈찌어다 또 요압의 집에서 백탁병자나 문둥병자나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나 칼에 죽는 자나 양식이 핍절한 자가 끊어지지 아니할찌로다 하니라
30. 요압과 그 동생 아비새가 아브넬을 죽인 것은 저가 기브온 전쟁에서 자기 동생 아사헬을 죽인 까닭이었더라
31. 다윗이 요압과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아브넬 앞에서 애통하라 하니라 다윗왕이 상여를 따라 가서
32. 아브넬을 헤브론에 장사하고 아브넬의 무덤에서 소리를 높여 울고 백성도 다 우니라
33. 왕이 아브넬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가로되 아브넬의 죽음이 어찌하여 미련한 자의 죽음 같은고
34. 네 손이 결박되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착고에 채이지 아니하였거늘 불의한 자식의 앞에 엎드러짐 같이 네가 엎드러졌도다 하매 온 백성이 다시 그를 슬퍼하여 우니라
35. 석양에 뭇 백성이 나아와 다윗에게 음식을 권하니 다윗이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해 지기 전에 떡이나 다른 것을 맛보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하매
36. 온 백성이 보고 기뻐하며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무리가 다 기뻐하므로
37. 이 날에야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이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의 한바가 아닌줄을 아니라
38. 왕이 그 신복에게 이르되 오늘 이스라엘의 방백이요 또는 대인이 죽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
39.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날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대로 갚으실찌로다 하니라
<사무엘하 3장 성경주석>
3:1 전쟁이 오래매.
사울과 다윗의 집 사이에 공개적인 전쟁은 없었으나 적대적인 상태가 계속되었다. 이런 형세는 약 5년간 계속되었음이 분명한데, 이는 이스보셋이 전쟁 발발 전에 마나하임에서 2년간 통치했고(2:10)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 7년 6개월간을 헤브론에서 통치했기(5:5) 때문이다. 이 기간에 다윗은 사태가 자연스럽게 진행되도록 내버려두는 것에 만족하였다. 다윗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보다는 왕국에 관하여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약속이 조기에 성취될 것을 확신하며 사건의 결과를 기다렸다.
3:1 다윗은 점점 강하여가고.
시간은 다윗의 편이었다. 이스보셋이 나약하여 몇 년간 무능하게 통치하였고 그 후 몇 년간 왕이 존재하지 않음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다윗이 유다에서 행사하는 것 같은 의욕적인 지도력을 갈망했다. 다윗은 인품과 용맹을 겸비한 사람이었고 기상과 용기로 인해 그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해가 거듭됨에 따라 그는 왕국을 위해 여호와께 기름부음받은 자임이 점점 분명해졌다. 심지어 사울이 최후의 전투를 치를 때에도 므낫세 지파 중에 다윗을 향한 상당한 귀순 행렬이 있어 사람들이 “날마다”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대상 12:19~22).
3:2 아들들을 낳았으되.
하나님께서는 한동안 일부다처제를 허용하셨지만(참조 신 14:26 주석), 그러한 삶의 방식으로 초래된 나쁜 결과를 막지는 않으셨다. 싸움, 논쟁, 불화, 질투 그리고 고통이 다윗 일가에 이르렀고 왕국 백성에게도 나쁜 영향을 남겼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 중 세 아들로 인해 원통함과 비애가 그와 그의 가족과 나라에 닥쳤다.
3:2 암논.
문자적으로 “신실한.” 이 아들로 인해 다윗이 겪은 불행한 경험을 기록한 13장을 참조하라.
3:3 길르압.
대상 3:1에는 “다니엘”로 되어 있다. 그에 관하여는 더 이상 알려진 것이 없다. 어릴 적에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
3:3 압살롬.
이 아들에 관한 슬픈 역사인 그의 반역과 죽음이 13~18장에 기록되어 있다.
3:3 그술.
헤르몬 산 동쪽 아래, 갈릴리 바다 북쪽 지역(신 3:14; 수 12:5; 13:11, 13; 대상 2:23). 그러나 다윗이 시글락에 거주하는 동안 침공했던 유다 남쪽 네겝의 한 지역에 살았던 것으로 언급된 그술 사람들도 있었다(삼상 27:8). 삼하 15:8의 진술에는 마아가의 고향 그술을 수리아의 한 지역으로 언급하는 것 같다.
3:4 아도니야.
문자적으로 “여호와는 나의 주인이다.” 이 아들은 다윗이 늙었을 때 왕위를 열망하던 아들로서(왕상 1:5), 후에 솔로몬에게 살해당하였다(왕상 2:24, 25). 길르압이 죽었다고 추정하면 형 셋이 죽은 것이므로, 아도니야는 자신이 왕위를 잇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3:4 스바댜.
문자적으로 “여호와가 심판했다.” 이 아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3:5 이드르암…에글라의 소생이니.
이 모자(母子)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3:5 다윗의 아내.
유대인의 해설에 의하면 이 칭호는 다윗의 아내들 중 에글라가 서열상 첫째였음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 표현은 앞서 나열된 여성 모두에 해당되는 표현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3:6 점점 권세를 잡으니라.
아브넬은 사울 집의 대소사(大小事)에 점점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그는 흔들리는 사울 왕조의 대들보였으며, 자신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였다. 아브넬의 위력이 아니고서는 이스보셋이 결코 이스라엘의 왕위를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3:7 리스바.
참조 21:8~11.
3:7 어찌하여.
동방 국가들에서 왕의 첩은 왕의 후계자의 소유로 간주되었기에 선왕의 여인을 취하는 것은 왕권을 주장하는 것으로 여겨졌다(참조 삼하 12:8; 16:21; 왕상 2:22). 고소당한 그 행위가 유죄일지라도 기록상으로는 아브넬에게 이스보셋의 왕권을 찬탈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하지만 왕은 그 혐의를 오히려 반역 행위로 여겼고 이로 인해 아브넬의 분노가 촉발되었다. 이스보셋의 책망도 이해가 가는 이유는 아브넬의 혐의가 왕의 권리를 침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3:8 매우 분히 여겨.
아브넬이 분노한 것은 전적으로 자기 덕에 왕위를 얻은 자가 감히 자기를 꾸짖고 힐책했기 때문이다.
3:8 개 대강.
아브넬이 보인 반응의 앞부분은 문자적으로, “내가 유다에 속한 개머리란 말인가?”가 된다. 「70인역」에는 “유다에 속한”이라는 표현이 생략되어 있다. 아브넬의 말은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이스보셋의 견책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이스보셋이 아브넬을 꾸짖는 표현을 썼을 것이며, 이에 아브넬은 유다를 향해 그토록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고 사울의 집에 그처럼 큰 친절을 베푼 자기가 결국 부도덕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느냐는 질문으로 응수했다.
3:9 여호와께서…맹세하신 대로.
이 진술은 여호와께서 다윗을 사울의 후계자로 선택하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알려졌는지를 보여 준다. 왕국을 다윗에게 주겠다고 하나님께서 서약하셨다는 기록은 없지만, 아브넬은 아무래도 그 약속을 엄숙한 맹세로 이해했던 것 같다. 어쩌면 사울에게서 왕국을 떼어 다윗에게 주겠다고 사무엘을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약속에 언급된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라는 말에 암시가 있었을 것이다(삼상 15:28, 29).
3:9 하나님이 아브넬에게…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이 말은 엄숙한 서약의 형태로 되어 있다(참조 룻 1:17; 삼상 3:17; 25:22; 삼하 19:13; 왕상 19:2; 왕하 6:31). 아브넬은 그 왕국을 다윗에게 넘길 것이라고 맹세하고, 만일 자신의 말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자신에게 임할 것이라고 기원했다.
3:10 나라를…옮겨서.
사울의 왕국을 다윗에게 넘기겠다는 아브넬의 결심은 성급한 판단의 결과는 아닐 것이다. 그 군장은 비틀거리는 사울의 집을 지탱하려는 노력을 포기할지에 대한 타당성을 오랫동안 숙고했을 것이다. 이스보셋의 견책으로 인해 그는 이전에 내린 결정을 실행할 기회를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3:10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 표현은 북단에서 남단까지 이스라엘의 전 영토를 나타낸다. 이 말은 사사 시대뿐 아니라 솔로몬 시대까지도 사용되었으나(삿 20:1; 삼상 3:20; 삼하 17:11; 24:2, 15; 왕상 4:25; 대상 21:2), 왕국이 분단된 후로는 단 한 번 사용되었는데, 히스기야가 “브엘세바로부터 단까지”(대하 30:5) 온 이스라엘에게 유월절을 지키자고 초청한 때뿐이었다.
3:11 아브넬을 두려워하여.
이 절에는 이스보셋 정권의 진정한 특성이 분명하게 지적되어 있다. 연약한 왕은 진정한 막후 세력으로 알고 있는 그에게 대답하기를 두려워하였다.
3:12 자기를 대신하여.
문자적으로 “그가 있던 곳으로.” 루키아누스 판(版) 「70인역」에는 “헤브론으로”라고 되어 있다.
3:12 이 땅이 뉘 것이니이까.
아브넬은 자신이 다윗과 교섭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을 인식하였다. 그는 한 가지 조건 곧 다윗이 자신과 동맹을 맺고 자신에게 적합한 배려를 해 준다는 확답을 준다는 조건 아래 영토를 양도하려고 했다. 이 제안에는 아브넬의 편협하고 오만하며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신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다윗과 운명을 같이하려고 하되 비싼 대가를 요구하였고, 먼저 그 대가가 확실하게 지불되기를 원하였다.
3:13 미갈을 데리고 오라.
미갈은 사울이 다윗에게 주었기 때문에(삼상 18:20, 21, 27) 당연히 다윗의 아내였다. 그러나 다윗의 요구는 정당성 문제 외에도 사울의 딸을 유다의 왕비로 삼음으로 사울의 일당에게 끼치는 효과를 정치적으로 고려한 것이었다. 이는 다윗이 사울의 집에 아무런 악의가 없음을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되며, 선왕의 사위가 됨으로써 그 왕국에 대한 권리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될 것이었다.
3:14 이스보셋에게.
사자들은 아브넬이 아니라 이스보셋에게 보내졌는데, 이는 아브넬과 다윗 사이의 협상이 아직 비밀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미갈의 송환 명령을 내려야만 하는 이는 바로 왕인 이스보셋이었다. 아브넬의 지지가 없는 이스보셋은 다윗의 요구를 거절할 처지가 못 되었다. 그 요구에 따른다는 것은 이스보셋이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다윗에게 행한 잘못과 다윗의 요구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스보셋은 공개적으로 이 요구에 동의함으로 온 유다와 이스라엘에게 자신의 시절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다윗이 곧 전 왕국을 접수할 것임을 알게 해 주었다.
3:14 양피 일백.
사울은 양피 100개를 요구하였지만 200개를 전달받았다(삼상 18:25, 27).
3:15 발디엘.
혹은 “발디”로 그의 집은 갈림(삼상 25:44)에 있었는데, 그곳은 사 10:29, 30에 의하면 기브아와 아나돗에서 그리 멀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사울의 지지자들과 함께 요단 건너편 마하나임 지역에 거주했을 것이다.
3:16 울며…따라.
이 문장은 “그 남편이 그녀와 함께 오되 그녀를 뒤따라오면서 울며”라고 묘사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가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긴 하지만 발디엘이 다른 사람의 아내를 취하여 그릇 행한 것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3:16 바후림.
예루살렘 정동북쪽, 스코푸스(Sco- pus) 산 동편에 있는 라스 엣-트밈(Ras et.-T.mim)으로 여겨진다.
3:16 아브넬이…하매.
이 말은 미갈의 송환과 관련된 협상이 아브넬의 손에 달려 있음을 가리킨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아브넬이 친히 관여했음이 분명하다.
3:17 너희가…다윗으로…구하였으니.
이 말은 사울이 길보아에서 죽은 후에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려는 백성들의 움직임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 당시에는 아브넬이 그러한 요구에 반대하였다. 이제 방침을 바꾼 그는 자신이 천거하는 내용과 그들의 제안이 똑같다고 장로들에게 조심스럽게 상기시켰다. 아브넬에게는 이 고관들의 동의와 협조를 확보하는 것이 임박한 상황에 긴요했다.
3:18 여호와께서 이미…말씀하시기를.
이 진술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지만 이런 취지가 담긴 정확한 말이 성경 기록에 전해지지 않는다. 그 선언은 선지자 사무엘이나 갓 혹은 나단 중 한 사람이 말했겠지만, 이 선지자들의 말은 매우 적은 부분만 보존되었다.
3:19 베냐민의.
사울은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다. 그 지파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협상에 필요했을 것이다. 그들은 친족의 인연을 통해 사울에게 유대감(紐帶感)을 느꼈고 그와의 연줄 덕분에 큰 이득을 누렸다. 아브넬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했던 것처럼 베냐민 사람들과 협상을 수행하기 위하여 직접 갔다.
3:21 저가 평안히 가니라.
협약이 체결되고 동맹이 정식으로 비준되었으므로 아브넬은 자기편의 계약 이행을 준비하기 위해 돌아갔다.
3:22 적군을 치고.
히브리어 그두드(gedud). 일반적으로 “비적”(匪賊), “군대”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침략”이나 “습격”의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이 문장은 “요압이 침략하고 돌아오니라”로 되어야 한다. 아말렉이나 블레셋 또는 기타 유다의 적국을 습격했을 것이다. 이 원정은 아브넬이 방문하는 동안 요압이 참석하지 못하도록 다윗이 계획했을 가능성이 있다. 요압은 승리와 많은 전리품으로 의기양양하여 돌아왔다.
3:22 다윗과 함께…있지 아니한 때라.
요압의 귀환에 관한 언급 직후에 이 항목을 삽입한 것은 아브넬이 요압의 귀환 이전에 떠난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님을 시사한다. 서로 적수인 두 장군이 이 시점에서 맞닥뜨렸다면 화친의 가망성이 깨졌을 것이다.
3:24 어찌 하심이니이까.
요압은 아브넬과 비밀리에 협상했다고 다윗에게 격렬하게 항의하였다. 요압이 아브넬의 진실성을 의심한 것에 잘못은 없었겠지만 개인적인 적개심이 존재하였는데, 그것은 요압이 그 유명한 백전노장을 만만찮은 적수로 여겼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고, 아사헬을 살해한 일로 아브넬과 요압 사이에 생긴 피맺힌 원한(삼하 2:22, 23) 때문이기도 하였다.
3:26 사자들을 보내어.
다윗에게 알리지 않고 다윗의 이름으로 보냈을 것이다.
3:26 시라의 물가.
혹은 “시라 저수지.” 이 샘의 위치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이곳을 헤브론에서 북쪽으로 약 2.4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아인 사라(‘Ain Sa-rah)와 동일한 곳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보면 요압이 도착했을 때 아브넬이 헤브론을 막 떠났다는 말이 되므로 그 장소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그곳을 헤브론에서 북쪽으로 4.3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산꼭대기 치레트 엘-벨라(S.iret el-Bella‘)와 동일한 곳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거기서 한 망대의 폐허를 볼 수 있다.
3:27 성문으로.
동방에서 성문은 일상적인 만남의 장소이다.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요압은 아브넬이 다윗을 만나기 전에 그를 만나야 했다.
3:27 아사헬의 피를 인함이더라.
요압은 피의 보복을 위해 아브넬을 살해하였다. 그는 민 35:26, 27의 규정으로 자신의 보복을 정당화했을 것이다. 매우 흥미롭게도 헤브론은 도피성이었으며(수 20:7), 이런 사실에 비추어 요압은 성문 안에서 그 일을 자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사헬의 죽음은 전쟁터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아브넬의 편에서 그 살해는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없이 저지른 자기 방어 행동이었다. 요압은 상세한 내용을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행위가 얼마나 원대한 영향을 끼칠지를 숙고해야만 했는데, 그 행위로 인해 통일왕국 형성이 얼마동안 지연되었다. 다윗에 대한 신임이 너무 두터웠던 나머지 아브넬은 아무런 의심을 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3:28 무죄하니.
다윗에게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평판이 있었지만 아브넬 살해 사건으로 그의 명성이 위태로워졌다. 그는 이 사건으로 자신에게 닥칠 비난에서 벗어나고자 가능한 모든 방편을 취하였다.
3:29 그 죄가…돌아갈지어다.
문자적으로 “그 죄가…순환할지어다[혹은 회전할지어다].” 다윗은 여기서 개인적인 복수를 추구하여 비열한 행위를 자행한 요압에게 저주를 기원하고 있다. 이 저주에는 매우 비열한 행위를 한 개인의 범죄에 대한 다윗의 예민한 정의감과 격렬한 의분이 나타난다. 다윗은 인간 아브넬이 모독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약속했다. 요압의 행위로 인해 다윗의 진실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다윗은 자신이 이러한 배역 행위와 아무 관련이 없으며 그러한 명예 모독을 진정 혐오한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아주길 원했다.
3:29 아비의…집으로.
요압의 동생 아비새도 아브넬의 살해 음모에 한 몫을 담당하였다(30절). 그래서 그도 저주에 포함되었다. 저주는 이 두 사람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자손에게까지 미쳤다. 고대에는 범죄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사람도 국가 형벌에 연루되는 경우가 흔하였다. 아간의 죄에 대한 형벌은 그의 온 가족에게 임하였다(수 7:22~26). 마찬가지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심판을 보면 그들뿐 아니라 다단과 아비람의 아내와 자녀까지 멸망당했다(민 16:27~33; 참조 왕하 5:27). 간혹 자녀가 부모의 범죄에 연루되었을 수도 있다(참조 수 7:15 주석). 어떤 때에는 무고한 자녀가 웃어른의 완고함 때문에 처형당하였다(참조 민 16:27 주석). 본 사건에서 다윗이 단언한 저주가 영감에 의한 것인지, 그리하여 그것이 그 행위에 대한 다윗의 극심한 분노를 표현하는 것 이상의 어떤 효력이나 결의가 있는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3:29 백탁병자.
참조 레 15:2.
3:29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물레 가락을 잡은 자”로 번역하며, 따라서 이것은 여성의 일을 하기에나 알맞은 약한 사람을 가리킨다.
3:30 요압과…아비새.
음모에 가담한 아비새의 역할에 대해 아무것도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 진술에는 아비새가 아브넬을 살해하는 데 형 요압을 기꺼이 도운 공모자이므로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도 분담해야만 한다는 내용이 암시되어 있다.
3:31 굵은 베를 띠고.
요압은 공개적인 애도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공중 앞에서 책망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다윗은 친히 상주(喪主)로서 상여를 따라갔으며, 이곳에서 특별히 “다윗 왕”이라고 불린 것을 보면 왕복을 입었던 것이 분명하다.
3:32 헤브론에.
헤브론이 유다의 수도였으므로 이렇게 한 것은 명예와 존경의 또 다른 표시였다. 당연히 베냐민 지파 영지에 있는 아브넬의 고향이 장지가 되었겠지만, 왕도 헤브론에 매장됨으로 더욱 명예롭게 되었다. 자신의 수도에 아브넬을 장사하도록 명령함으로 다윗은 살해된 장군에게 악한 감정을 품지 않았으며 그를 기리어 경의를 표하기로 했음을 백성들에게 수긍시키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3:33 왕이…애가를 지어.
간결하지만 감동적이고 감명적인 애가를 통하여 다윗은 슬픔을 표현하며 쓰러진 원수에게 아름다운 찬사를 보냈다.
3:34 불의한 자식의 앞에.
아브넬을 위한 다윗의 애가는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을 살해한 자들에게 가하는 통렬한 견책이었다. 그는 매우 악랄한 행위를 수행한 자들을 향한 경멸과 조소를 공개적으로 표현하였다. 이전에 잠깐 동안 자신의 큰 원수였던 자의 공로에 대해 다윗이 관대하게 인정함으로 온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았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700). 백성은 다윗과 같은 인물이 보좌에 앉아 있는 왕국은 용기와 양심을 겸비하고 칼과 동정심을 모두 갖춘 사람의 수중에 있게 될 것을 알았다.
3:35 해 지기 전에.
저녁까지 금식하는 것은 깊은 애도의 표시였다(1:12). 그 날이 지나기 전에 금식을 중단하고 음식을 들라고 백성들이 재촉했으나 다윗은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그의 거절은 백성에게 깊고 호의적인 인상을 남겼다.
3:38 방백.
어떤 면에서 아브넬은 대단히 능력 있는 사람이었고 이스라엘에서 위인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는 다윗과의 조약에는 신실하였지만 이기적인 동기에 이끌렸다. 그는 다윗에게 전향함으로 운이 다한 계획을 포기하고 새로운 명예와 영광을 얻고자 했다. 그는 다윗의 신하 가운데 최고의 자리를 원했을 것이며, 야망과 이기심과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결핍으로 다윗의 왕국의 국익이나 여호와를 위하여 제대로 봉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브넬의 죽음은 유다 왕국에는, 말하자면 슬픔으로 위장된 축복이었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700).
3:39 내가…오늘날 약하여서.
요압의 힘과 영향력은 다윗에게는 약점이었다. 할 수만 있었다면 다윗은 즉시 요압을 벌했을 것이지만, 당장은 불가능하였다. 그는 군부에서 점한 요압의 세력과 인기 때문에 총체적인 반란을 부르지 않기 위해 당장 법적으로 처리하지 못했다. 다윗은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고, 따라서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히 고백하였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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