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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ORY
사무엘하 8장 & 성경주석 본문
<사무엘하 8장 흐름정리>
본장의 기록은 다윗 언약에 관한 내용인 7장 사건의 전후에 관한 것으로서, 다윗 왕국이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다윗은 서쪽으로는 블레셋(1절), 동쪽으로는 모압(2절), 북쪽으로는 소바와 다메섹과 하맛(3~12절), 그리고 남쪽으로는 에돔(13~14절)을 복속시킴으로써 국경을 한층 확장시켰다. 이처럼 밖을 향한 정복 사업과 아울러, 다윗은 내치에도 힘썼다. 그의 통치 원칙은 바로 공과 의였다. 16~18절은 당시 다윗의 통치와 정복을 든든히 뒷받침하였던 중요한 신하들을 소개한 내용이다.
<사무엘하 8장 줄거리>
1. 다윗이 블레셋과 모압을 항복시킴.
3. 다윗이 하닷에셀과 아람 사람을 침.
9. 도이가 요람을 축복해 달라고 선물을 들려 보냄.
11. 다윗이 선물과 전리품을 하나님께 바침.
14.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배치함.
16. 다윗의 관리들.
<사무엘하 8장 개역한글>
1. 이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서 항복 받고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2. 다윗이 또 모압을 쳐서 저희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모압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3.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저를 쳐서
4. 그 마병 일천 칠백과 보병 이만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승의 말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5. 다메섹 아람 사람들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지라 다윗이 아람 사람 이만 이천을 죽이고
6.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7. 다윗이 하닷에셀의 신복들의 가진 금방패를 빼앗아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고
8. 또 하닷에셀의 고을 베다와 베로대에서 매우 많은 놋을 빼앗으니라
9. 하맛왕 도이가 다윗이 하닷에셀의 온 군대를 쳐서 파하였다 함을 듣고
10. 그 아들 요람을 보내어 다윗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하니 이는 하닷에셀이 도이로 더불어 전쟁이 있던 터에 다윗이 하닷에셀을 쳐서 파함이라 요람이 은 그릇과 금 그릇과 놋 그릇을 가지고 온지라
11. 다윗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저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
12. 곧 아람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과 아말렉에게서 얻은 것들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노략한 것과 같이 드리니라
13. 다윗이 염곡에서 에돔 사람 일만 팔천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예를 얻으니라
14.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15.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할쌔
16.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대장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17.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고
18.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관할하고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이 되니라
<사무엘하 8장 성경주석>
8:1 블레셋 사람을 쳐서.
다윗은 왕위에 오른 후에 누린 평화로운 시절을 왕국을 조직하고 발전시키는 데 활용하였다. 이스라엘의 힘을 실감한 주변 국가들은 공격을 억제하였기에 다윗은 왕국 내의 일들로 만족했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적들이 기회가 올 때마다 공격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정복하기로 결심하였다. 블레셋은 패하여 속국이 되었고 영토의 일부가 이스라엘에 합병되었다.
8:1 메덱암마.
이 이름의 뜻은 모호하다. 이것을 “모성(母城)의 말굴레”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말굴레”는 권위를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평행 구절을 보면 다윗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가드와 그 동네를” 취하였다(대상 18:1). 그러므로 블레셋의 모성이요 주요 도성인 가드를 언급한 것 같다. 이런 요충지가 그때 이스라엘에 합병되었다. 다윗이 그곳을 보유했다는 것은 블레셋이 이스라엘에게 완전히 굴복했음을 나타낸다.
8:2 모압을 쳐서.
다윗은 이전에 모압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는데, 이는 그가 사울에게 쫓겨다니는 동안 모압 사람들이 자기 부모에게 피신처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삼상 22:3, 4). 다윗이 모압에 대한 태도를 바꾼 이유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모압 사람들이 자신들의 거짓된 신용이 탄로 나자 다윗의 부모를 살해했다는 유대 전승이 있다. 이 전승이 사실로 입증되지는 못했다. 다윗이 블레셋과 전쟁할 때 모압이 배반하는 과오를 저질러서 다음 공격 목표로 확정되었다는 주장도 사실일 수 있다.
여기에 언급된 모압이 어떤 사람들의 주장처럼 암몬을 오기(誤記)한 것이라는 추측은 불필요한 것이다. 메사가 지휘한 모압의 반역(왕하 1:1; 3:4~27)에 관한 기사는 그 나라가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 있었음을 입증한다. 이 기록 말고는 모압이 종속되었다는 이야기가 없다. 하지만 “침묵의 논증” 자체만으론 모압이 다윗 시대부터 아합이 죽을 때까지 계속 예속되었다는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없다. 그 기간에 또 다른 반역과 종속이 거듭 있었을 것이다.
8:2 저희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
문자적으로 “저희로 땅에 눕도록 하고.” 이는 다윗이 모압 사람들을 땅에 엎드리게 한 뒤 3등분한 줄로 재고, 3분의 2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3분의 1 길이의 사람은 살려준 것으로 보인다. 평행 구절(대상 18:2)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렇게 과격한 처사를 한 이유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전쟁의 원인에 대한 정보가 이 측량 사건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8:3 소바.
유브라데강 서편과 다메섹 동북편에 있었고, 하맛에서 남쪽으로 8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작은 아람 왕국이었다. 그 왕국은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번영하였다(참조 삼상 14:47; 대상 18:3; 대하 8:3). 앗수르 통치 시대에 이 지역은 추부투(S.ubutu)라는 이름의 도가 되었다.
하닷에셀(Hadadezer). “하다레셀”(Hadarezer)로도 표기되었다(대상 18:3, 5, 7, 10 등; 「개역한글판」에는 모두 “하닷에셀”로 되어 있음-역자 주). 하닷에셀로 표기하는 것이 더 정확한데, 이는 하닷이 아람의 중요한 신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이 신의 명칭은 벤하닷(왕상 20:1, 2; 왕하 8:7)이라는 이름에도 나타난다.
8:3 유브라데강으로.
이 절은 다윗의 영토가 얼마나 넓었는지 가늠하게 해 준다. 이스라엘 영토의 국경은 유브라데강까지 확장되지는 않았으나 다윗은 그 지역의 국가들에서 그들의 종주로 인정받았다.
8:4 마병 일천칠백.
(「제임스왕역」에는 “병거 일천 승과 마병 칠백”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병거”라는 단어가 히브리어 본문에 없고, 단순히 “마병 일천칠백”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평행 구절(대상 18:4)에는 “병거 일천 승”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제임스왕역」의 번역처럼 사무엘서의 기사에도 “병거”를 첨가해야 함을 암시한다. 「70인역」에는 대상 18:4에 기록된 숫자인 “기병 칠천”으로 되어 있다.
8:4 남기고.
다윗이 잘못했는지에 대한 여부를 여기서는 알려 주지 않는다. 그는 신속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될 말이 다수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들을 도입한 것은 솔로몬이 말을 번식시키는 발단이 되었을 수 있는데(참조 왕상 4:26; 10:26, 28, 29), 이렇게 한 것은 신 17:16에 정면으로 위배되었다.
8:4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즉 뒷다리의 건(腱)을 끊었더니. 말의 뒷다리 근육을 끊어 동물을 전쟁용으로 부적합하게 만드는 조치이다(참조 수 11:6~9).
8:5 다메섹 아람 사람들.
수리아 곧 아람 사람 가운데는 여러 집단이 있었는데, 그중 다메섹 아람 사람들이 가장 세고 유명하였다(참조 왕상 20장; 왕하 16:5~12 등).
8:6 다윗이…이기게 하시니라.
14절 및 7:9과 비교하라. 다윗은 대적들과의 잦은 충돌로 위태로운 생애를 살았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승리를 주시고 그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셨다.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심은 다윗이 지은 많은 시편의 주제가 되었다(참조 시 18; 34편 등).
8:7 금방패.
금으로 도금한 방패일 것이다. 이런 방패는 실전 방어용이라기보다는 주로 전시용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솔로몬도 그의 유명한 “레바논 나무 궁에” 전시할 금방패를 만들었다(왕상 10:17). “방패”가 「70인역」에는 “갑옷 팔받이”로 되어 있다.
8:8 베다와 베로대에서.
아람-소바에 있던 베다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없다. 베로대는 바알벡(Baalbek)에서 남쪽으로 13킬로미터 떨어진 베레이탄(Bereitan)일 것이다.
8:8 놋.
(「제임스왕역」에는 “brass” 곧 “황동”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황동은 정확히 말하자면 구리와 아연의 합금이다. 하지만 「제임스왕역」에 나오는 “황동”이라는 용어는 대개 구리와 주석의 합금인 청동에 해당한다. 이런 금속은 고대 동방에서 흔히 사용되었다. 그 금속으로 만든 물건들이 메소보다미아, 애굽, 수리아 등지에서 다수 발견되었다. 다윗은 미래에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청동과 기타 금속들을 비축하였다(11절). 솔로몬은 수리아인들에게서 취한 청동을 성전의 “놋바다와 기둥과 놋그릇들”을 위하여 사용하였다(대상 18:8).
8:9 하맛.
오론테스(Orontes) 강에 인접해 있던 왕국. 이 나라는 솔로몬의 속국이었다가(왕상 4:24; 대하 8:3, 4) 다시 독립했으며, 여로보암 II세가 이스라엘 땅으로 수복하였고(왕하 14:28) 결국 앗수르에 의해 몰락하였다(왕하 19:13; 사 37:13).
8:10 요람.
도이 왕이 자신의 아들을 사절단의 책임자로 임명한 것은 다윗에 대해 높은 존경심을 지녔다는 암시이다.
8:10 은그릇과 금그릇과 놋그릇을 가지고 온지라.
그러한 선물들을 가져오는 것은 동방에서는 일반적으로 조공 바치는 것과 동일하게 간주되었다. 다윗의 통치로 이스라엘의 영향력은 서아시아의 넓은 지역으로 크게 확대되었다.
8:11 여호와께 드리되.
이 선물들을 자기를 위해 사용하는 대신에 다윗은 그것들을 여호와께 드렸다. 다윗은 성전이 지어지는 것을 보고자 매우 갈망했기 때문에, 비록 자기에게는 그 과업을 착수하도록 허용되지 않았지만 건축을 위해 가능한 모든 준비를 하였다.
8:12 아람.
「70인역」과 「수리아역」과 몇몇 히브리어 필사본에는 “에돔”이라고 되어 있다. 또한 대상 18:11에 기록된 동일한 국가 목록에는 “아람” 대신에 “에돔”이 들어 있다. 두 국가 모두 실상 다윗에게 정복당했다. 두 이름 아람(’aram)과 에돔(’edom)에는 히브리어 자음상 한 글자밖에 차이가 없다. 아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에서 ㄹ(r)이 있는 자리에 에돔에는 ㄷ(d)가 있다. 두 글자가 매우 흡사하여 자주 혼동되었다. 예를 들면, 하닷에셀(삼하 8:10)이 삼하 10:16, 19에는 “하다레셀”(「제임스왕역」)로 기록되어 있다(「개역한글판」에는 모두 하닷에셀로 되어 있음-역자 주).
8:12 암몬.
다윗의 초창기부터 외관상 튼튼한 우호관계를 유지하던 암몬과 10장에서 분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본 절에는 10장의 전쟁에서 공격당한 국가들을 포함하여 다윗이 통치기간 내내 전리품을 취한 모든 국가가 열거되어 있다고 결론짓는 주석자도 있다.
8:12 아말렉.
이것은 다윗이 왕이 된 후 아말렉과 전쟁했다는 유일한 언급이다. 사울은 아말렉과 싸워 대승을 거두었으며(삼상 15장), 그 후 다윗은 도망자로서 일부 아말렉인 무리를 쳤다(l/30/1).
8:13 에돔 사람.
(「제임스왕역」에는 “아람 사람”이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70인역」과 「수리아역」과 몇몇 히브리어 필사본에는 “에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평행 구절인 대상 18:12에도 “에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혼동할 수 있는 두 이름에 관해서는 삼하 8:12의 주석을 참조하라). 에돔의 “염곡”에서 격퇴했다는 사실로 보아, 에돔 사람을 가리킨 것이 분명하다(왕하 14:7; 시 60편 표제; 연속되는 사건임이 확실한 삼하 8:14 주석도 참조하라).
8:13 일만 팔천.
요압의 동생 아비새가 다윗의 장수로 임명되어 18,000명을 죽였다(대상 18:12). 요압도 같은 장소에서 에돔 사람 12,000명을 죽였다(참조 시 60편 표제). 요압이 “에돔의 남자를 다” 쳐서 죽인 회전(會戰) 기록도 있다(왕상 11:15, 16).
8:14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다윗의 군대가 염곡에서 에돔 사람들에게 대승을 거둔 다음(삼하 8:13; 대상 18:12), 다윗은 이전에 아람에 수비대를 둔 것(삼하 8:6)과 동일하게 에돔에 수비대를 두었다.
8:16 군대장관.
다윗이 적국에게 거둔 승리들을 열거한 후 사무엘서의 저자는 왕국의 주요 관료들을 간략히 요약하여 소개하는데(16~18절), 역대기의 기자도 그렇게 하고 있다(대상 18:15~17). 대체로 동일한 관료 명단이 삼하 20:23~26에 다시 기록되어 있다. 요압이 이 직위까지 등용된 것에 대해서는 대상 11:6을 참조하라.
8:16 사관.
일종의 비서실장 같은 요직임이 분명하다. 그는 국사(國事)와 특별히 왕의 교시(敎示)를 기록할 뿐만 아니라 왕의 고문이기도 하였다. 다윗의 사관인 여호사밧은 동일한 직무를 솔로몬 통치 초기까지 유지하였다(왕상 4:3).
8:17 사독.
여기서 사독과 아히멜렉이 제사장으로 올라있지만 대제사장인 것이 분명한데, 이는 목록이 왕국의 고등 관리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사독은 다윗의 통치 역사 초기에 이미 등장하여,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해 올 때 아비아달과 함께 이름이 거론된다(대상 15:11). 다윗 통치기 동안 그 두 사람은 동료로서 반복하여 이름이 거론되는데, 분명 동등한 위치였을 것이다.
다윗이 왜 두 명의 대제사장을 거느린, 퍽 이상하게 보이는 조치를 취했는지 세 가지 이유가 제시되었다. (1) 두 제사장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 자손의 반차를 각각 대표하였다(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이 언급된 대상 24:1~6을 참조하라). (2) 오랜 전쟁 끝에 유다와 이스라엘을 통일하면서 다윗은 대제사장직을 두 가문에 분배하여 국가의 종교적 정서 연합을 공고히 하기를 희망했는지 모른다. 아비아달의 제사장 반차는 다윗에게 협조했다고 하여 사울에게 거의 말살당했지만(삼상 22:9~20), 사독으로 대표되는 분파는 최소한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될 때까지는 사울에게 계속 충성했다(대상 12:23~28). (3) 여호와께 대한 국가적인 경배는 아직 중앙 집중화되지 않았는데, 이는 법궤가 예루살렘에 있는 반면에 성막은 놉 대학살 이후 이전하여 기브온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위 제사장 두 명이 필요했으며, 사독은 특별히 기브온에서 봉사한다고 언급되어 있다(대상 16:39, 40). 사독과 그 동료 관리들의 역사에 관해서는 이어지는 아히멜렉 항목을 참조하라.
8:17 아히멜렉.
아비아달의 아들로 언급된 곳은 이곳뿐 아니라 평행 구절인 대상 18:16(“아비멜렉”으로 표기됨)과 “아히멜렉”으로 언급한 대상 24:6도 있다. 하지만 다윗의 공동 대제사장(참조 “사독” 주석)은 다윗의 생애 동안과 솔로몬 통치 시작에 이르기까지 반복하여 “사독과 아비아달”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그러므로 본 절과 역대기에서 사독과 아히멜렉에 대한 언급은 “필사상의 오류”와 “혼동된 이름”에 관련된 추론을 불러 일으켰는데, 특히 아히멜렉이 아비아달의 아들로, 아비아달이 아히멜렉의 아들로 불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류라고 추정할 필요는 없다. 비평가들은 자신들이 가정한 문제가 고대의 저자나 필사자 편에서 저지른 실수만큼, 충분한 정보의 부족으로 쉽게 야기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고려하지는 않는다. 제사장 가문의 여러 세대에 대한 언급들이 분산되어 있기에 온전한 이야기를 이루지 못한다. 예를 들어, 미국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 한 외국인이 미국 정치에 관한 책을 읽는다고 상상해보자. 그 사람은 클리블런드(Cleveland) 대통령을 벤저민 해리슨(Benjamin Harrison)의 후임이라고 했다가 다른 곳에서는 그가 해리슨의 선임이라고 진술된 것을 이해하는 데 혼란을 느낄 것이다. 만일 그 시기의 역사 전체를 읽는다면 두 가지가 모두 맞음을 알게 될 것이다.
아히멜렉과 아비아달과 아비멜렉에 대한 진술을 통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놉에서 도망자 다윗에게 진설병을 준 아히멜렉은 아히둡의 아들(삼상 22:9~12)이자 엘리의 후손이었는데, 이는 그의 아들 아비아달이 엘리의 집에 관한 예언을 성취시켰기 때문이다(왕상 2:27). 삼상 14:3의 계보대로라면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도움을 주었을 때 노인이었음이 틀림없다. 그의 아들 아비아달도 함께 직분을 유지했다면 같은 시기에 대제사장이었을 수 있다. 또는 엘리와 그 아들들의 관계나 그리스도 당시의 안나스와 가야바의 관계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처럼, 그의 아버지는 “명예 대제사장”으로, 그는 현직 대제사장으로 재직했을 것이다(참조 눅 3:2 주석). 사울이 아히멜렉 가문의 제사장들을 살해하자 아비아달은 제사장 직분의 상징인 에봇(참조 출 28:6~30 주석)을 가지고 도망하여, 추방된 다윗의 고문과 제사장이 되었다(삼상 20:20; 23:6, 9; 30:7). 아비아달과 사독은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축제 예식에서 공동 대제사장으로 다시 언급된다(대상 15:11, 12). 그 후로 사독과 아비아달은 다윗의 후기 생애(삼하 15:29, 35, 36; 17:15; 19:11; 20:25)와 솔로몬의 통치 초기(왕상 4:4)까지도 반복하여 “제사장”으로 함께 거론된다.
본 장에 명시된 대로(1~15절) 다윗의 군대가 여러 대적들에게서 승리하고 다윗이 왕국을 통합하며 국내의 사법질서를 안정시킨 후에야 다윗의 고위 관료 명단이 등장한다. 하지만 평행 구절(대상 18:16)처럼 이곳에도 “제사장” 사독과 아히멜렉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 잠시 그의 아들이 아비아달을 대신한 것으로 보인다. 아히멜렉이 이 직무를 얼마 동안 맡았는지 혹은 왜 영구적으로 맡지 못했는지를 알려주는 내용이 없다. 아마도 그는 아버지가 건강이 좋지 않은 동안만 임시로 제사장에 임명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노인은 예기치 않은 사태-아마도 압살롬의 반역-로 말미암아 의도적으로 직임에서 물러났다가 복직했는지도 모른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알려주지 않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제사장 직분에 변화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필사상의 오류라고 추정할 필요는 없다.
수 년 후 다시 한 번 공중 행사에 참여하는 아히멜렉을 보게 된다. 그 행사는 솔로몬 즉위식보다 앞선 것으로, 그때 연로한 다윗은 앞으로 짓게 될 성전의 봉사를 위해 레위인의 직무를 할당하였다. 아론 족속에 속한 두 가문의 대표인 “제사장 사독 그리고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대상 24:1~3; 참조 6, 31절)과 다윗 앞에서 제비를 뽑았다. 이 행사에 아비아달이 참석하지 않은 것은 전혀 놀랍지 않은데, 이는 당시에 그가 왕위를 찬탈하려는 아도니야의 기도(企圖)에 적극적으로 관여했기 때문이다(왕상 1:5~7, 19). 아비아달의 부재로 그의 아들 아히멜렉이 이다말 일가의 우두머리로서 엘르아살 집안의 사독과 마주하여 직분을 이행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따라서 그의 이름이 사독과 함께 거론되었다고 해서 대제사장 직분에 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는 아히멜렉이 제사장이라고 세 번 불렸지만(대상 24:3, 6, 31) 여기서는 그렇게 불리지 않기 때문이다. 솔로몬 즉위식 때에는 사독만이 대제사장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대상 29:22).
그러나 다윗이 죽기 전 솔로몬이 통치를 시작할 때 아비아달의 이름은 최초의 고위 관료직 명단에 여전히 거론되어 있다(왕상 4:4; 이 명단이 통치 시작 때에 언급된 것임을 시사하는 왕상 4:1을 참조하라). 솔로몬은 다윗이 그를 오랜 친구요 상담자로 존중한 것을 고려하여 그를 유임시켰을 것이다. 적어도 솔로몬은 다윗이 죽을 때까지는 아비아달을 제사장직에서 물러나게 하지 않았고, 위협적인 것으로 여긴 모반을 아도니야가 꾀했을 때야 비로소 그를 폐했다(왕상 2:22, 26, 27). 그때 이후로 사독만이 유일한 대제사장이었다(왕상 2:35).
그러므로 여러 이야기는 상호 보완적이며 모순된 것이 아니므로 수정할 필요가 없다.
8:17 서기관.
고위직임이 분명하며 오늘날의 국무장관과 유사한 직분이다(참조 왕하 12:10; 18:37; 19:2).
8:18 브나야.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장관이었던 브나야는 솔로몬의 즉위식에서 요압의 뒤를 이어 군대장관이 되었다(왕상 4:4).
8:18 대신.
히브리어 코헨(kohen), 문자적으로 “제사장.” 여기서는 성직과 관련이 없는 일반 직책을 가리킬 것이다. 「70인역」에는 “궁내 대신”(princes of the court)으로 되어 있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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