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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9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사무엘하

사무엘하 19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6. 9. 29. 07:14

<사무엘하 19장 흐름정리>

압살롬 반역 사건이 남긴 상처는 너무도 컸다. 이로 인해 다윗은 아들을 잃었고 이스라엘 지파와의 관계가 소원해졌으며 군대 장관 요압과의 감정도 극히 나빠졌다. 다윗으로서는 더는 자식 잃은 슬픔에만 잠겨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왕위 복귀 문제와 관련하여 유다 지파에 주도권을 주었지만, 그다지 지혜로운 처사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조치는 다른 지파들의 시기심을 유발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다윗은 도피 시절에 자신을 모함했던 시므이를 너그럽게 용서하였으며 주인의 소유를 가로채려 했던 시바도 용서했다. 하지만 이들이 진정으로 뉘우쳤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반면에, 다윗의 피신 시절에 그를 도왔던 바르실래는 함께 왕궁으로 가자는 왕의 권면을 겸손히 사양하는 충실한 사람이었다.


<사무엘하 19장 줄거리>

1. 요압이 왕의 애곡을 그치게 함.

9. 이스라엘 사람들이 왕을 다시 모셔 오는 일에 열심을 냄.

11. 다윗이 제사장들에게 사람을 보내 유다를 격려하도록 함.

18. 시므이를 용서함.

24. 므비보셋이 사과함.

32. 바실래(바르실래)를 떠나 보내고, 그의 아들 김함을 왕의 가족으로 불러들임.

41.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들과 의논하지 않고 왕을 모셔 온 것 때문에 유다 사람들에게 충고함.


<사무엘하 19장 개역한글>

1. 혹이 요압에게 고하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2.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이김이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3.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으로 들어가니라    

4. 왕이 얼굴을 가리우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5. 요압이 집에 들어 가서 왕께 말씀하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신복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6.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뻔하였나이다    

7. 이제 곧 일어나 나가서 왕의 신복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찌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8.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혹이 모든 백성에게 고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시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앞으로 나아오니라    

9.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가로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나라에서 나가셨고    

10.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11. 다윗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궁으로 도로 모셔 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12.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어늘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13.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장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14. 모든 유다 사람들로 마음을 일제히 돌리게 하매 저희가 왕께 보내어 가로되 왕은 모든 신복으로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15.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네려 하여 길갈로 오니라    

16.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왕을 맞으려 내려올 때에    

17. 베냐민 사람 일천명이 저와 함께하고 사울의 사환 시바도 그 아들 열 다섯과 종 스무명으로 더불어 저와 함께하여 요단강을 밟고 건너 왕의 앞으로 나아오니라    

18. 왕의 가족을 건네려 하며 왕의 선히 여기는대로 쓰게 하려하여 나룻배가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려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의 앞에 엎드려    

19. 왕께 고하되 내 주여 원컨대 내게 죄 주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옵시며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20. 왕의 종 내가 범죄한줄 아옵는고로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21.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가로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인하여 죽어야 마땅치 아니하니이까    

22. 다윗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로 너희가 오늘 나의 대적이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23.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저에게 맹세하니라    

24.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서 왕을 맞으니 저는 왕의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25.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저에게 물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뇨

26.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 나는 절뚝발이이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나의 종이 나를 속이고    

27. 종 나를 내 주 왕께 참소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28. 내 아비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었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 두셨사오니 내게 오히려 무슨 옳음이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29. 왕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30. 므비보셋이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저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31.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을 보내어 요단을 건네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서 함께 요단에 이르니    

32.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 팔십세라 저는 거부인고로 왕이 마하나임에 유할 때에 왕을 공궤하였더라    

33.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34. 바르실래가 왕께 고하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삽관대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35. 내 나이 이제 팔십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오히려 누를 끼치리이까

36.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어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37. 청컨대 종을 돌려 보내옵소서 내가 내 본성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컨대 저로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옵시고 왕의 처분대로 저에게 베푸소서    

38. 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내가 너의 좋아하는대로 저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39.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바르실래의 입을 맞추고 위하여 복을 비니 저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40. 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을 호행하니라    

41. 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서 고하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적하여 왕과 왕의 권속과 왕을 좇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네었나이까 하매    

42. 유다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지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내느냐 우리가 왕의 물건을 조금이라도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 주신 것이 있느냐    

43. 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십분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사무엘하 19장 도움말>

19:1 혹이 요압에게 고하되.

 다윗이 압살롬 때문에 크게 슬퍼한다는 소식이 모든 부하들에게 즉시 전해졌다. 요압은 압살롬의 죽음에 책임이 있었고, 따라서 아들로 인한 다윗의 큰 슬픔이 불순종한 군장에 대한 분노로 쉽게 바뀔 수 있었다.

19:2 슬픔이 된지라.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군대에 승리를 주셨으며 그 때문에 그들에겐 진정으로 기뻐할 이유가 있었다. 반란은 끝났고, 다윗은 다시 보좌에 올랐으며, 나라는 장기적이고 큰 희생이 따르는 내전의 공포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백성들은 다윗이 아들의 죽음 때문에 비탄에 빠져 성읍이 기쁨 대신에 슬픔으로 가득 찬 것을 보았다.

19:3 가만히.

 승리한 군대들이 성읍으로 가까이 올 때 마땅히 그들을 맞기 위해 곁에 있어야 할 왕은 그곳에 없었다. 그날 자기를 위하여 목숨을 걸었던 군대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말을 주는 대신에, 다윗은 성문 위에 앉아서 아들을 잃어버린 것 때문에 심히 통곡하고 있었다. 그러자 병사들은 승리 가운데 자랑스럽게 행진하는 대신 대열에서 이탈하여 풀이 죽고 부끄러워하며 성안으로 살금살금 들어갔다. 왕의 눈에는 그들의 모든 노력이 헛된 것이었고, 그들이 영광스러운 승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요, 오직 슬픈 패배에 불과한 것으로 보였다. 그들의 목적은 좌절되고 희망은 땅에 떨어진 채, 그들은 패전한 군인들의 모습으로 입성했다.

19:4 압살롬아.

 다윗의 마음은 억제할 수 없는 슬픔으로 찢어졌다. 그는 압살롬이 죽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압살롬이 죽은 마당에 자기 군대가 승리 가운데서 돌아온 것이나, 왕권이 회복된 것, 또한 내전의 종식 같은 것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19:5 부끄럽게 하시니.

 이 거칠고 나이 많은 군장은 귀환하는 병사들 앞에서 취한 왕의 행동을 가혹하게 책했다. 이 군인들은 용감하게 잘 싸웠다. 그들은 왕과 그의 가족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쳤으나, 왕은 그들에게 감사의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왕은 오직 자기의 잃은 것만을 생각할 뿐이었다. 그날 다른 사람들도 다윗이 자기 보좌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저들의 목숨을 바친 형제들, 남편들 그리고 아버지들을 잃고 슬퍼하며 애도했다는 것을 왕은 전혀 유념하지 않는 것 같았다. 노장의 책망은 신랄하고 가혹한 것이었으나 그는 단지 귀에 거슬리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19:7 일어나 나가서.

 그때는 행동이 필요한 경우였으므로, 요압은 퉁명스럽게 그러나 두려움 없이 다윗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려 주었다.

19:7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옵나니.

 이런 엄숙한 맹세를 함으로써, 요압은 자기가 다윗을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키도록 백성들을 이끌겠다고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달갑지 않은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입장은 큰 위험이 따랐다. 이미 나라의 상당 부분이 다윗에게서 돌아서서 그의 생명과 보좌를 취하려 했던 압살롬을 지지했다. 그런데 바야흐로 다윗은 자기에게 충성을 지켰던 자들까지 떠나게 하여 그들마저 자기의 원수가 되게 하였다.

19:7 왕이…당하신.

 요압은, 다윗이 자기의 온당치 못한 행위로 인하여 그의 생애 가운데 가장 큰 위기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고 있다고 예고하였다. 그는 강한 표현을 사용했으나, 그것은 왕을 일깨워 그의 이기적이고 맹목적인 슬픔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했다.

19:8 성문에 앉으매.

 다윗은 요압의 신랄한 책망이 온당하고 그의 권고가 지혜로움을 인식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백성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말을 할 수 있는 성문 앞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신속하게 반응을 나타냈다.

19:8 이스라엘은…도망하였더라.

 압살롬이 죽은 후에 그를 지지하던 자들은 고향으로 도망쳐 버렸다.

19:9 변론하여.

 압살롬의 죽음은 그 나라를 혼란한 상태에 빠뜨렸다. 아마도 서로 뜻이 맞지 않는 수다한 집단들이 있었을 것이다. 압살롬을 강하게 지지했던 어떤 사람들은 분명히 다윗이 보좌로 복귀하는 것을 좀처럼 환영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다윗 왕조에 무관심했으며, 다윗 외에 어떤 사람이라도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을 것이다. 물론 다윗에게는 여전히 많은 지지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상황에서는 자기 왕좌를 차지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 싶은 큰 열망이 없었다.

19:9 왕이 우리를…구원하여 내셨고.

 백성들은 다윗의 훌륭한 업적들을 상기했다. 그는 자기의 백성들을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해 냈으나 이제 그는 나라에서 쫓겨나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은 그를 다시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명히 다수의 백성들은 지도자들의 지체와 우유부단함에 대해 왈가왈부했을 것이다.

19:10 너희가…잠잠하고 있느냐.

 이렇게 주저하고 지체함으로써 백성들은 지도자들에게 항의하기 시작했고 다윗이 다시 왕좌로 돌아올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하였다.

19:12 나중이 되리요.

 이 말은 다윗의 귀환에 대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상당한 관심이 나타났었음을 시사해 준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의 골육인 유다인들이 자기를 다시 부르려는 대책을 좀처럼 세우지 않는 것 때문에 난감했다.

19:13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다윗은 공직자들을 다루는 데 노련했다. 아마사는 압살롬의 군대장관이었으므로 이제 압살롬은 죽었으나 누구보다도 반역의 정신을 생생하게 보유한 있는 지도자는 아마사였다. 요압과 마찬가지로 아마사는 다윗의 조카였으며(대상 2:13~17), 다윗은 그를 군대장관으로 삼는 극적인 조치를 통하여 아마사의 충성심을 얻고자 하였다. 그 대신 아마사는 압살롬의 군대 조직의 잔여 병력을 다윗에게 데려올 것이었다. 아마도 다윗은 요압의 고압적인 세력 아래서 불안했을 것이고 그를 쫓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압살롬을 망명지에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데려온 것도 요압의 영향력 때문이었으며, 다윗의 지시를 직접적으로 거슬려서 압살롬을 죽인 자도 요압이었다. 아직도 다윗의 귀에는 최근에 그가 했던 신랄한 책망(5~7절)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다윗은 분명히 요압을 교체할 시기가 되었다고 느꼈으며 아마사를 그 자리에 앉힌 것은 신속한 정치적인 조치였다.

19:14 왕은…돌아오소서.

 돌아와서 왕관을 취하라고 다윗에게 요청하는 유다 지도자들의 공식 초청이었다. 그는 오직 지파들의 찬성을 얻어서 왕이 되고자 하였다. 그는 먼저 왕국을 차지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자기는 국민이 그렇게 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는 한 자기의 지위를 다시 차지하지 않을 것임을 모든 백성이 이해해 주기를 원했다.

19:15 유다 족속이…길갈로 오니라.

 다윗은 마하나임에서 여리고 여울 맞은편에 있는 요단 동편 강변으로 내려왔다. 유다의 대표자들은 다윗이 요단을 건너서 자기들의 영토인 유다로 들어올 때 수행하기 위해 서편 강변에 있는 길갈로 갔다.

19:16 시므이.

 이 베냐민 사람은 기회주의자였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그는 왕이 예루살렘에서 도망갈 때 저주하였다. 이제 다윗이 돌아오고 있었으므로 시므이는 지체 없이 그와 화해하고자 노력했다.

19:17 일천 명이.

 베냐민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윗에게 아무런 원한이 없으며 그가 왕으로 돌아오는 것을 환영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열심이었다. 결국 사울 가문의 그루터기는 사라졌고, 그의 후손 중 어느 누군가가 이스라엘의 왕관을 다시 받게 되리라는 희망은 없었다.

19:17 시바.

 참조 9:2, 9, 10. 시바가 분명 교활한 방법으로 므비보셋에게 속한 모든 것을 다윗에게 받았으며(16:1~4), 그 일에 대해 응보의 때가 오리라는 것도 알았던(참조 19:24~29) 점으로 보아, 다윗이 귀환할 때 맞이하는 것이 시바에게도 정략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19:17 왕의 앞으로.

 시므이와 시바는 다윗의 귀환을 환영해서 그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의 귀환을 두려워했고 오히려 그가 멀리 있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다윗과 화해하기를 시도해야만 하며, 만일 화해하지 못하면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을 알았다. 그들이 관계를 회복하려고 애쓴 것은 진심이 아니라 필요 때문이었다.

19:18 나룻배가 건너가니.

 문자적으로 “여울이 건너갔다”이지만, “그들이 여울을 건너갔다”라고 해야 옳다. 그들이 왕의 권속을 모시러 여울을 건너, 왕과 모든 각료 및 그 소유물들의 도강(渡江)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뜻이다.

19:20 내가 범죄한 줄.

 시므이는 변명이 쓸데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그는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자신을 다윗의 처분에 맡긴다.

19:21 죽어야 마땅치 아니하니이까.

 그 당시의 관습에 따르면 다윗이 도망갈 때 시므이가 다윗에게 했던 잔혹한 저주는 마땅히 죽음을 받아야 할 짓이었으나, 시므이는 자신을 다윗의 처분에 맡기고 용서를 구하였다. 다윗은 기꺼이 관대함을 베풀고자 했지만 아비새는 가차없는 처벌만을 생각하였다.

19:22 나의 대적이 되느냐.

 이때는 엄하고 냉혹한 처벌이 아니라, 자비를 베풀어야 할 때였다. 이전에 다윗에게 등을 돌렸던 모든 사람에게 형벌을 내릴 것이 아니라, 화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다윗의 대범함과 관대함이 나타났다. 왕은 친절과 자비로 나라를 자기에게 되돌리고자 시도하였다. 그는 자기와 화해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용서를 베풀 것임을 피력했다. 만약 다윗보다 도량이 좁은 사람이라면 죄 지은 자들의 피를 많이 흘렸을 것이며, 그 결과 더 많은 적대감이 생겨났을 것이다. 보복하는 정책을 지지하여 스루야의 아들들은 다윗의 사업에 친구가 되기보다는 반대자가 되었다.

19:22 오늘날…왕이 된 것.

 다윗은 왕이었기 때문에 자비를 베풀 만한 여유가 있었다. 만약 그의 왕권이 여전히 의문시되었다면 반대파를 확실하게 진압하기 위하여 더 가혹한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19:23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다윗은 특유의 관대함으로 시므이에게 목숨을 살려 주겠다고 보증하였다. 시므이는 중죄를 범했으므로 처벌받아 마땅했으나, 그를 처형하는 것은 이 상황에 걸맞지 않을 것이었다. 다윗은 시므이가 하는 외양만의 회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시므이의 불성실함은 때가 되면 자명해져야만 할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다윗은 후일에 그에 관하여 솔로몬에게 당부하기를,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왕상 2:8, 9; 참조 2:44)고 하였기 때문이다.

19:24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

 므비보셋도 다윗에게 자기의 충성을 알리기 위해 되도록 빨리 그에게 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느꼈다. 자기 몸을 돌보지 않음으로 다윗에 대한 자기의 충성심을 보인 데서 드러나듯이, 므비보셋은 다윗이 도망간 후에 그에 대한 가장 깊은 애도의 표를 나타냈다.

19:25 예루살렘에서 와서.

 요단에서 가진 모임에 관한 이야기는 므비보셋의 행동을 부연하기 위해 중단된다.

19:26 나를 속이고.

 므비보셋은, 시바가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다윗에게 비열한 거짓말을 했으며, 그로 인해 다윗으로 하여금 예전에는 자기에게 충실했던 종을 배은망덕하고 불충성한 종으로 여기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하였다(16:1~4). 그 사건에 대한 새로운 설명에 따르면 시바가 다윗에게 가져왔던 두 나귀는 실상 므비보셋이 다윗과 함께 도망가기 위하여 그에게 지시하여 준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바는 나귀를 훔쳐 갔고, 절뚝발이여서 무력한 므비보셋을 집에 남겨 두었다.

19:28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

 대개의 경우 왕은 폐위된 왕조의 남은 왕손을 모두 살해함으로써 그들 중 누구든지 왕권을 되찾고자 하는 시도를 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다윗은 므비보셋을 살려 주었을 뿐 아니라, 왕의 하사품들 가운데 한 몫을 할당해 주어 호의를 베풀었다. 므비보셋은 다윗이 자기에게 전에 너무도 친절하게 대해 주었기 때문에, 비록 시바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나 하소연하려 하지 않았다.

19:29 밭을 나누라.

 다윗은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시바의 말을 받아들여, 그 경우에 대하여 상대편 말을 들어 보기도 전에 시바에게 주인의 모든 소유를 줌으로써 므비보셋에게는 불공평한 일을 저질렀다(16:4). 이제 다윗은 불공평한 일이 행해졌음을 깨닫고 므비보셋의 재산의 절반을 돌려주어 그 일을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은 공의를 충족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만약 시바가 진실을 말했다면 그는 그 모든 것을 보존할 수 있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는 자기가 얻은 모든 것을 빼앗길 뿐더러 처벌도 받아야 할 것이었다. 다윗의 타협은 설득력이 없고 공평하지 못했다.

19:30 저로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므비보셋은 자기가 다윗에게 온 목적이 시정하려 함이 아니라 자기의 충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고, 따라서 그 일이 불공평하지만 시바가 모든 것을 차지하기를 바란다는 의중을 다윗에게 알리고자 하였다. 다윗이 평안히 돌아온 것이 중요한 사실이었고, 이를 인하여 므비보셋은 감사를 표했다.

19:31 길르앗 사람 바실래.

 참조 17:27. 여기서 이야기는 다시 다윗이 요단을 건너는 사건으로 돌아간다. 므비보셋과 만난 다음에 다윗이 자기 부하 바실래와 작별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19:31 왕을…함께.

 내빈(內賓)이 여행할 때 그를 수행하는 것이 예의였다. 바실래는 자기가 친절한 사람이며 손님을 공손히 대접하는 자임을 입증했다. 더욱이 그는 다윗에 대한 자기의 충성심도 입증했다.

19:32 늙어.

 80세의 바실래는 매우 연로한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초기 부조들의 시대 이후로 평균 수명은 크게 떨어졌다. 분열 왕국 시대 동안에 유다의 왕 중에서 최고령에 이른 자도 68세를 넘지 못했다(참조 왕하 15:1, 2). 포함식 연대 계산법에 의하면, 므낫세는 그의 통치 55년 후 67세에 죽었다(왕하 21:1).

19:36 왕께서…갚으려 하시나이까.

 바실래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자애로우셨다. 이 세상의 쾌락 가운데서 더 구할 만한 것은 전혀 없었다. 요단 건너편에서 다윗이 유랑하고 있을 때 그의 생활은 바실래가 친절히 대해 주었기 때문에 더욱 행복할 수 있었다.

19:37 김함.

 김함의 신분에 관하여는 명확한 증거가 없으나, 다윗이 솔로몬에게 한 “길르앗 바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라(왕상 2:7)는 당부를 미루어 볼 때 그는 바실래의 아들로 보인다. 렘 41:17에 언급된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김함의 여관)”을 참고해 볼 때 김함은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집을 한 채 주겠다는 다윗의 제안을 수락하여 집을 받았던 것으로 추측된다(렘 41:17의 이 부분이 「개역한글판」에는 “게롯김함”으로 되어 있고 난하주에는 “김함의 여관”이라고 되어 있으나, 「제임스왕역」에는 “김함의 거처”[habitation of Chimham]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19:39 백성이 다.

 이 이야기에서 사용된 “백성”이란 용어는 다윗의 추종자들을 가리킨다(참조 15:17, 23, 24, 30; 16:14; 17:2, 3, 16, 22; 18:1~4, 6, 16; 19:2, 3, 8, 9). 압살롬의 추종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는 “이스라엘”이 사용되었다(참조 16:15; 17:15; 18:16, 17).

19:39 왕도 건너가서.

 바실래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다윗과 함께 강을 건넌 것으로 보인다.

19:40 온 유다 백성과.

 결국 유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왕좌를 회복시켜 주는 일에 가장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윗이 유다 장로들에게 했던 말(11, 12절)은 분명히 효력을 나타냈으며, 따라서 그가 망명지에서 자기의 왕좌와 왕관과 왕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환영하기 위해 백성들이 모두 모였다.

19:40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

 11절에서는 “온 이스라엘”이 다윗의 귀환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으나, 이제는 단지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만이 그를 맞기 위해 나온다. 이스라엘은 유다와는 달리 거리가 멀었고, 따라서 많은 백성이 다윗을 환영하기 위해 나오는 것이 여의치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적은 사람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했다. 더욱이 다윗의 귀환에 대한 소식이 북쪽에서는 유다에서 만큼 널리 유포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참조 41절).

19:41 온 이스라엘 사람이.

 르호보암 때에 분열되기(왕상 12장) 오래 전부터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 백성 사이에는 어느 정도 불화가 존재했었다(참조 삼상 11:8; 17:52; 18:16; 삼하 2:4, 8~10; 3:10, 12, 21; 5:5). 심지어 아주 초기에도 지파들 사이의 시기심은 그들 가운데 자주 나타났다(삿 8:1; 12:1).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도 처음에는 그가 온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고 단지 “유다 족속”만을 다스렸다(2:4). 후일에 “이스라엘과 유다”(3:10)를 통할해 그의 보좌를 세우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7년을 통치한 후에야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그에게 나와 그를 저희의 골육지친으로 인정하고 그를 저희의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5:1~5). 이제 다윗이 자기의 망명지에서 귀환한 지금, 그 해묵은 질투가 또다시 나타났다.

19:42 우리의 지친인 까닭이라.

 다윗이 저희 지파에 속했다는 점에서 유다 사람들이 그에 대한 특별한 관계를 주장한 것은 당연했다(참조 12절). 그러나 그들은 다윗이 그들에게 특별한 편애도 나타내지 않았음을 분명히 하기를 원했다. 유다 사람들이 한 이 진술은 다윗 정부의 공정성을 보여 주는 현저한 증거이다. 다윗은 모든 지파를 똑같이 처우하고자 노력했으며, 어떤 지파에게는 특별한 호의를 베풀고 다른 지파에게 베풀지 않는다는 구실을 늘어놓지 못하도록 하였다.

19:43 더 강경하였더라.

 지파들 간에 벌어진 분개한 언쟁에서 유다 사람들은 북쪽에 있는 저희의 동포들보다 더 격렬했다. 다행히도 그 언쟁은 얼마 후에 멈췄으나, 그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미래에 대한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현존하는 남북 왕조 간의 불화는 다가올 더 큰 분쟁들을 알리는 전조가 되었다. 지역 간의 시샘과 경쟁심은 재난의 씨앗을 끊임없이 뿌리고 있었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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