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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ORY
사무엘하 16장 & 성경주석 본문
<사무엘하 16장 흐름정리>
본장은 다윗이 피난 길에서 당한 몇 가지 일들을 소개한다. 므비보셋의 종 시바는 다윗을 만나 므비보셋을 모함하고서 그 소유를 자신이 차지하였다. 또 사울가 출신인 시므이는 다윗을 저주하였으나,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겸허하게 돌아보면서 인내하였다. 한편, 예루살렘으로 들어간 압살롬은 당대의 모략가였던 아히도벨의 계략을 받아들여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하였다. 아히도벨의 이 계략은 압살롬으로 하여금 왕위 찬탈 의지를 더욱 확고히 갖게 하려는 의도를 내포한 것이었다. 또한 이로써 다윗이 저지른 밧세바 사건에 대한 나단의 예언이 성취된 셈이었다(12:11)
<사무엘하 16장 줄거리>
1. 시바가 예물과 거짓된 보고로 주인의 유산을 얻음.
5. 바후림에서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함.
9. 다윗이 인내심을 가지고, 복수하는 것을 자제하고 다른 사람들을 제지함.
15. 후새가 압살롬의 환심을 사서 그의 모사가 됨.
20. 아히도벨의 권고.
<사무엘하 16장 개역한글>
1. 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사환 시바가 안장 지운 두 나귀에 떡 이백과 건포도 일백송이와 여름 실과 일백과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
2.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 왔느뇨 시바가 가로되 나귀는 왕의 권속들로 타게 하고 떡과 실과는 소년들로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곤비한 자들로 마시게 하려 함이니이다
3. 왕이 가로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뇨 시바가 왕께 고하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저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비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4. 왕이 시바더러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시바가 가로되 내가 절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나로 왕의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니라
5. 다윗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집 족속 하나가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저가 나오면서 연하여 저주하고
6. 또 다윗과 다윗왕의 모든 신복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7.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8.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9.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10. 왕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11. 또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1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 하고
13. 다윗과 그 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저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리더라
14. 왕과 그 함께 있는 백성들이 다 곤비하여 한 곳에 이르러 거기서 쉬니라
15. 압살롬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이르고 아히도벨도 저와 함께 이른지라
16. 다윗의 친구 아렉 사람 후새가 압살롬에게 나아올 때에 저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만세, 왕이여 만세 하니
17. 압살롬이 후새에게 이르되 이것이 네가 친구를 후대하는 것이냐 네가 어찌하여 네 친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18.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여호와와 이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택한 자에게 속하여 그와 함께 거할 것이니이다
19. 또 내가 이제 누구를 섬기리이까 그 아들이 아니니이까 내가 전에 왕의 아버지를 섬긴 것 같이 왕을 섬기리이다 하니라
20. 압살롬이 아히도벨에게 이르되 너는 어떻게 행할 모략을 우리에게 가르치라
21.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머물러 두어 궁을 지키게한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소서 그리하면 왕께서 왕의 부친의 미워하는바 됨을 온 이스라엘이 들으리니 왕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의 힘이 더욱 강하여지리이다
22.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지붕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 앞에서 그 부친의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니라
23. 그 때에 아히도벨의 베푸는 모략은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일반이라 저의 모든 모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이와 같더라
<사무엘하 16장 성경주석>
16:1 시바.
참조 9장. 다윗이 도피에 나설 때 선물을 가지고 영접하러 나온 시바를 만났다. 시바는 지금이 적은 비용으로 다윗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적기(適期)임을 알았다.
16:3 내 아비의 나라를.
시바가 한 이야기는 가능하기는 하나 너무 있을 법하지 않아 다윗이 어떻게 그것을 받아들였는지 알기 어렵다. 므비보셋은 절름발이였으며 압살롬의 반란에서 얻을 것이 별로 없었다. 그 반란이 성공한다 해도 사울의 후손에게 왕좌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압살롬 자신이 왕권을 원했기 때문이다. 시바는 아마도 다윗에게 어떤 특혜를 얻기 위해 이야기를 꾸몄을 것이다.
16:4 있는 것이 다.
시바의 이야기는 명백히 자기 주인에 대한 비열한 중상모략이었으나, 다윗은 그 말을 믿고 시바가 구하는 상급을 주었다. 왕이 므비보셋 쪽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그의 재산을 남에게 주는 것은 전적으로 불공정한 일이었다. 그러나 도피의 고통과 걱정 가운데 있던 다윗은 시바가 제공한 도움만을 생각했다.
16:5 바후림.
예루살렘에서 요단강으로 가는 길에 있는 한 성읍(참조 3:16 주석). 오늘날 스코푸스 산 동쪽 라스 엣-트밈(Ras et-Tmim)을 가리킨다.
16:5 시므이.
시므이는 베냐민 지파였다. 다윗이 강대해졌을 때 근신 중에 있던 이 지파는 기회만 오면 언제든지 다윗에게 대적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시므이가 이전에 다윗에게 불충했다는 어떤 언급도 없다. 그러나 역경을 당하자 그는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이전에 다윗을 공경하였으나 이제는 욕하고 저주했다. 그러한 정신은 사단이 불러일으킨 것으로, 그는 이미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면서 기뻐한다.
16:6 돌을 던지니.
그 길은 좁은 계곡을 따라 나 있고, 시므이는 한 쪽 편에, 다윗과 그의 무리는 다른 쪽 편에 있었을 것이다(9절에서 아비새는 “건너가”도록 허락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시므이는 직접 붙잡히지 않고 돌로 귀찮게 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에서 도망자들을 나란히 따라갔다.
16:7 가거라.
문자적으로 “없어져라” 혹은 “나가라.” 시므이는 다윗의 불행에서 즐거움을 얻었고, 왕에게 증오에 찬 저주를 퍼부으며 나라 밖으로 떠나라고 말하였다.
16:7 피를 흘린 자여.
다윗이 성전 짓기를 원했을 때에 주께서 그것을 허락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는 “피를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기”(대상 22:8) 때문이다. 다윗이 여러 전쟁에 참여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대항하는 전쟁이었고, 이스라엘을 동방의 강국으로 만들기 위한 전쟁이었다. 그 전쟁들은 다윗이 개인적으로 무자비하거나 “피 흘린 사람”이라고 전혀 증거하지 않는다. 시므이가 사용한 이 성급한 말들은 근거 없는 모함이었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736).
16:7 비루한 자여.
(「제임스왕역」에는 “man of Belial”[벨리알의 사람]이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비루한”으로 번역된 “벨리알”은 “무가치함” 혹은 “사악함”을 의미한다. “벨리알의 사람”이란 비루한 불한당을 가리킨다(참조 삿 19:22). 히브리어로 악한 여인은 “벨리알의 딸”(「개역한글판」에는 “악한 여자”)이라고 불린다(삼상 1:16). 고후 6:15에는 그 말이 의인화되어 있다. 시므이는 악한 기질을 지닌 사람이었다. 다윗을 비방하는 이 욕설 가운데 그의 악한 특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16:8 그 대신에.
이 구절은 시므이가 보인 증오와 적의의 실제 이유를 설명한다. 그가 원한을 품은 이유는 이스라엘의 왕위가 사울의 집에서 취해져 다윗의 집에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울을 거절한 분은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이었다. 시므이의 고소는 사실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16:8 나라를…붙이셨도다.
여호와께서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여, 다윗의 나라가 압살롬의 손에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 것은 사실이나, 그 이유는 시므이가 말한 것과 사뭇 달랐다. 다윗의 양심은 그에게 닥친 돌연한 비운의 책임이 다윗 자신에게 있음을 엄히 말하고 있었다. 주께서는 다윗 왕이 밧세바와 우리아에게 저지른 죄 때문에 심판이 닥쳐 올 것을 경고했었다(12:10~12). 다윗은 자신이 형벌을 받아 마땅함을 알았으나, 형벌을 그토록 오래 지체시킨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놀랍게 여길 뿐이었다. 하나님의 공의만큼이나 하나님의 자비와 선하심을 잘 알고 있는 다윗은 절망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그에게 다시 나라를 회복시킬 때를 바라보았다.
16:9 이 죽은 개.
참조 삼상 24:14; 삼하 9:8. 아비새가 볼 때 다윗을 저주하던 시므이는 멸시받아 마땅한 속물이었다. 무자비하게도 그는 다윗의 불행을 악용하였고, 따라서 살려두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다윗은 아직 왕이었고 그에게 퍼붓는 이러한 모욕을 당할 필요가 없었다.
16:10 저주하라 하심이니.
다윗은 자신이 당하는 모든 고통은 하나님의 손에서 왔고, 따라서 시므이의 이 비방도 하나님의 허락에 의한 것이라 믿었다. 그는 시므이의 비난을 제지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다만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에만 마음을 썼다. 지금 당하는 이 어려움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왔으므로, 시므이를 훼방하려 한다면 주의 뜻을 대적하는 일이 된다고 생각했다.
16:10 할 자가 누구겠느냐.
주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여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한다면 누가 그를 비난할 수 있겠으며, 누가 그를 대적하겠는가? 다윗은 그렇게 생각하였다.
16:11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다윗은 여기서 왕위뿐 아니라 왕의 생명까지 취하려는 압살롬을 터놓고 질책한다. 혈육인 압살롬이 아버지를 대적하여 그의 생명을 취하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시므이의 행동은 그렇지 않다. 그는 사울의 집에 속한 사람이었고, 따라서 그가 사울의 집에서 왕위를 취해 간 자에게 원한을 품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16:11 버려 두라.
시련의 때에 다윗 같은 태도를 보일 만큼 자비를 지닌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시므이에게 “이제 되었으니 그만 중단하라”고 명령하기가 훨씬 더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그렇게 믿는 것처럼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는 통탄스러운 죄를 지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에게 잘못을 변명할 빌미를 주었다. 그러나 회개와 깊은 통회 후에는 자신을 변명하려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고 그가 취했던 행동을 정당화하지도 않았다. 주께서 꾸짖을 때 그는 겸손히 책망을 받아들였다. 심판이 그에게 임했을 때 그는 그것을 피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겸비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자비를, 주의 뜻에는 복종을 보여 주었다.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통해 다윗은 청렴한 성품과 영혼의 고결함을 드러냈다.
16:12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다윗은 여호와가 동정심과 자비가 크신 하나님임을 알고 있었다. 다윗은 자신의 신하 중 한 사람에게 능욕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보고 아신다는 생각으로 위로를 얻었다. 아마도 바로 이러한 고난 때문에 주께서는 자비로써 특별한 보상과 축복을 대신 내리실 것이었다.
16:13 저를 향하여.
다윗과 그의 백성들이 길을 따라 걷고 있을 때 시므이는 반대쪽 산비탈로 따라갔다. 즉 시므이는 계곡 한쪽 편에, 다윗은 다른 편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16:14 거기서 쉬니라.
이 구절에서 다윗과 그의 일행이 멈추었던 장소가 어디인지 언급할 필요가 있다. 「70인역」 루키아누스 판(版)의 일부 필사본에는 “요단강 옆”이라는 말이 덧붙여 있다. 요세푸스도 그 독법에 동의한다(Antiq- uities vii. 9. 4). 이곳은 아마도 다윗이 전에 후새와 합의하여 그에게 소식을 들을 때까지 머물기로 했던 장소일 것이다(15:28).
16:15 예루살렘에 이르고.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탈출했기 때문에 압살롬은 도성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상황은 압살롬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좋게 보였다. 상황이 확실해질 때까지 본부를 헤브론에 설치하는 것이 압살롬의 첫 번째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남으로 도성을 즉시 점령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16:15 아히도벨.
참조 15:31; 16:22 주석.
16:16 다윗의 친구.
후새는 다윗의 절친한 친구로 알려졌고, 따라서 그가 압살롬의 궁정에 나타난 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그가 자신의 친구요 주군(主君)인 다윗을 저버린 것은 참으로 이상하게 보인다. 압살롬은 다윗이 많은 사람, 특히 후새 같은 영웅적인 추종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아 왔다. 다윗을 버리고 온 후새를 얻게 된 것은 믿기 어려울 만큼 큰 행운이었다. 압살롬은 놀라고 우쭐해졌으며, 아무 의심 없이 그의 계획이 성공할 것을 더욱 확신했다.
16:18 자에게 속하여.
후새의 이 말은 그가 단순히 한 개인에게 바치는 충성보다 더 높은 충성을 지녔음을 암시하는데, 곧 첫째는 하나님께, 그 다음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충성을 지녔음을 뜻한다. 하나님이 압살롬을 왕으로 선택했다면 후새는 압살롬을 섬기기를 원할 것이었다. 후새의 말 가운데 내포된 이중적 의미 그리고 “여호와와 이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택한 자”에 함축된 “만약에”라는 조건은, 자기를 선택받은 사람으로 확신하던 압살롬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16:19 왕의 아버지를.
후새는 변절자나 불충한 자로 간주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는 다윗의 절친한 친구였으나, 지금 다윗의 아들 압살롬을 섬김으로 여전히 다윗의 집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것처럼 나타내고 있다. 압살롬은 이 말에 설득되어 더 이상의 질문이나 의심도 없이 후새를 받아들였다.
16:21 후궁들로.
참조 왕상 2:17 주석. 아히도벨은 압살롬의 반역이 아직 확실히 성공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는 먼저 감정을 터뜨리면 반응이 올 것을 알았다. 다윗의 현 상태는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다윗에게는 능력 있는 장군들과 경험 많은 군사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많은 백성은 아직도 그를 잊지 않았다. 만일 상황이 바뀌어 압살롬이 불리해지고 다윗이 왕국을 되찾게 된다면 왕은 압살롬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압살롬을 지지했던 주모자들에게는 어떠한 호의도 베풀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럴 경우 아히도벨은 가장 큰 죄인으로 취급될 것이며, 따라서 가장 심한 형벌이 주어질 것이었다. 이 교활한 모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려고 결심했다. 그래서 압살롬을 그의 아버지와 화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철저히 이끄는 것이 그의 최대 관심사였다. 그의 권고는 사단의 간교함을 드러낸다.
16:21 강하여지리다.
아히도벨은 자기가 제안한 것을 따르면 압살롬이 반역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증거하는 것이 되어, 자기에게 동조한 사람들이 자기의 대의명분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6:22 지붕에.
장막은 다윗이 밧세바와 은밀한 죄를 범했던 궁궐의 지붕에 쳤다. 나단은 다윗이 은밀히 저지른 죄에 대한 공개적인 형벌을 예언했었고(12:11, 12) 그것은 그의 말대로 성취되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예언했기 때문에 이 끔찍한 범죄에 대한 책임이 하나님에게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예고가 반드시 그분의 명령은 아니다. 다윗의 죄 때문에 하나님은 그 악한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 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어떻든 성경에서 자주 하나님은 자신이 막지 않은 것을 행하시는 것처럼 묘사된다(참조 12:11, 12; 부조와 선지자, 739). 다윗이 타인의 아내를 더럽혔을 때 자신의 침상도 더럽혀졌다. 그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힌 대로 다른 사람도 그에게 해를 끼치도록 허락되었다. 밧세바의 할아버지 아히도벨은 그 쫓겨난 왕이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마시게 했던 쓴 잔을 왕 자신도 마시도록 의도했을 수 있다.
16:23 다윗에게.
아히도벨은 압살롬의 모사가 되기 전 다윗의 모사였다(15:12). 그는 그의 지혜 때문에 높은 존경을 받았었다. 그러나 양심을 저버렸을 때 그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떠한 수단에라도 매달리게 되었다. 압살롬의 모사로서 그는 오직 성취하려는 결과만을 추구하고, 필요하다고 여기면 어떠한 수단이라도 동원하는 약삭빠르고 간교한 자였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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