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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2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사무엘하

사무엘하 2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6. 9. 1. 07:05

<사무엘하 2장 흐름정리>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으로 즉위하자 아브넬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 다윗과 대치했다. 얼핏 생각하면, 사울 왕가를 이으려고 했던 아브넬의 행동은 너무도 당연한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자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정면으로 거스리는 행위였다. 기브온 못을 사이에 두고 다윗 군대와 이스보셋 군대간에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이 전투는 마침내 다윗 군대의 승리로 마감되지만, 그 과정에서 아브넬이 요압의 아우인 아사헬을 살해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사무엘하 2장 줄거리>

1. 하나님의 지시로 다윗이 자신의 권속과 함께 헤브론으로 올라가 거기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됨.

5. 다윗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에게 베푼 친절을 칭찬함.

8.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음.

12. 아브넬의 신복 열둘과 요압의 신복 열둘이 접전 끝에 사망함.

18. 아사헬이 살해됨.

25. 아브넬의 제의로 요압이 퇴각 나불을 붊.

32. 아사헬이 장사됨.


<사무엘하 2장 개역한글>

1.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다윗이 가로되 어디로 가리이까 가라사대 헤브론으로 갈찌니라   

2. 다윗이 그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되었던 아비가일을 데리고 그리로 올라갈 때에   

3. 또 자기와 함께한 종자들과 그들의 권속들을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에 거하게 하니라   

4.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을 삼았더라 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   

5.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가로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찌어다   

6.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7. 이제 너희는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찌어다 너희 주 사울이 죽었고 또 유다 족속이 내게 기름을 부어 저희의 왕을 삼았음이니라   

8. 사울의 군장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서   

9.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더라   

10.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비로소 이스라엘 왕이 될 때에 나이 사십세며 두해 동안 위에 있으니라 유다 족속은 다윗을 따르니   

11.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일곱해 여섯달이더라   

12. 넬의 아들 아브넬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신복들은 마하나임에서 나와서 기브온에 이르고   

13.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다윗의 신복들도 나와서 기브온 못가에서 저희를 만나 앉으니 이는 못 이편이요 저는 못 저편이라   

14. 아브넬이 요압에게 이르되 청컨대 소년들로 일어나서 우리 앞에서 장난하게 하자 요압이 가로되 일어나게 하자 하매   

15. 저희가 일어나 그 수효대로 나아가니 베냐민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편에 열 둘이요 다윗의 신복 중에 열 둘이라   

16. 각기 적수의 머리를 잡고 칼로 적수의 옆구리를 찌르매 일제히 쓰러진지라 그러므로 그곳을 헬갓핫수림이라 일컬었으며 기브온에 있더라   

17. 그 날에 싸움이 심히 맹렬하더니 아브넬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의 신복들 앞에서 패하니라   

18. 그곳에 스루야의 세 아들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이 있었는데 아사헬의 발은 들노루 같이 빠르더라   

19. 아사헬이 아브넬을 쫓아 달려가되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아브넬의 뒤를 쫓으니   

20. 아브넬이 뒤를 돌아 보며 가로되 아사헬아 너냐 대답하되 내로라   

21. 아브넬이 저에게 이르되 너는 좌편으로나 우편으로나 치우쳐서 소년 하나를 잡아 그 군복을 빼앗으라 하되 아사헬이 치우치기를 원치 않고 그 뒤를 쫓으매   

22. 아브넬이 다시 아사헬에게 이르되 너는 나 쫓기를 그치라 내가 너를 쳐서 땅에 엎드러지게 할 까닭이 무엇이냐 그렇게 하면 내가 어떻게 네 형 요압을 대면하겠느냐 하되   

23. 저가 치우치기를 싫어하매 아브넬이 창 뒤끝으로 그 배를 찌르니 창이 그 등을 꿰뚫고 나간지라 곧 그곳에 엎드러져 죽으매 아사헬의 엎드러져 죽은 곳에 이르는 자마다 머물러 섰더라   

24. 요압과 아비새가 아브넬의 뒤를 쫓아 기브온 거친 땅의 길 가 기아 맞은편 암마산에 이를 때에 해가 졌고   

25. 베냐민 족속은 함께 모여 아브넬을 따라 한 떼를 이루고 작은 산꼭대기에 섰더라   

26. 아브넬이 요압에게 외쳐 가로되 칼이 영영히 사람을 상하겠느냐 마침내 참혹한 일이 생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언제나 무리에게 그 형제 쫓기를 그치라 명하겠느냐   

27. 요압이 가로되 하나님이 사시거니와 네가 흔단의 말을 내지 아니하였더면 무리가 아침에 다 돌아갔을 것이요 그 형제를 쫓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28. 나팔을 불매 온 무리가 머물러 서고 다시는 이스라엘을 쫓아가지 아니하고 다시는 싸우지도 아니하니라   

29. 아브넬과 그 종자들이 밤새도록 행하여 아라바를 지나 요단을 건너 비드론 온 땅을 지나 마하나임에 이르니라

30. 요압이 아브넬 쫓기를 그치고 돌아와서 무리를 다 모으니 다윗의 신복 중에 십 구인과 아사헬이 궐이 났으나   

31. 다윗의 신복들이 베냐민과 아브넬에게 속한 자들을 쳐서 삼백 륙십명을 죽였더라   

32. 무리가 아사헬을 베들레헴에 있는 그 아비 묘에 장사하고 요압과 그 종자들이 밤새도록 행하여 헤브론에 이를 때에 날이 밝았더라


<사무엘하 2장 성경주석>

2:1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다윗은 하나님의 권면을 듣지 않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일이 어리석다는 것을 쓰라린 경험을 통해 배웠다(참조 삼상 27~30장). 이 중요한 시기에 그의 첫째 관심사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아는 것이었다. 그는 제사장 아비아달을 통하여 하나님께 문의했을 것이다(참조 삼상 23:6, 9~12; 30:6~8).

2:1 내가…올라가리이까.

 한동안 다윗은 조국을 떠나 망명생활을 하였지만 사울이 죽어 자신의 영토로 돌아갈 길이 열렸다. 모든 정황으로 보아 귀국할 때가 된 것으로 보였지만, 돌아가기 전에 다윗은 여호와의 뜻을 알고자 하였다.

2:1 헤브론으로.

 아브라함의 옛 집(창 13:18)이며, 아브라함, 사라, 이삭 그리고 야곱의 매장지. 그곳은 브엘세바에서 동북쪽으로 약 40킬로미터, 시글락에서 27킬로미터 가량 떨어졌으며 기름진 언덕과 비옥한 땅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골짜기에 있다. 그 지역은 포도원으로 유명하여 그곳의 포도는 팔레스타인의 최상품으로 여겨졌다. 다윗은 사울의 생전에 이 도성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헤브론은 다윗의 남방 왕국의 임시 수도로 아주 적합하였는데, 이는 다윗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이 사는 유다의 산악지대에 견고하게 서 있을 뿐 아니라 초기 부조들이 거룩하게 연상되기 때문이었다. 그 도성은 이후 7년 동안 다윗의 본거지가 되었다.

2:2 그 두 아내.

 참조 삼상 25:42, 43.

2:3 종자들.

 다윗과 함께 아기스로 간 600인(삼상 27:2, 3). 그들 중 다수는 결혼하여 가족과 양떼와 소떼를 포함한 소유물과 함께 돌아왔다.

2:3 헤브론 각 성.

 사마리아가 사마리아 도성 주변 지역을 가리키는 용어이듯이, 헤브론도 그 도성이 위치한 지역에 붙여진 이름임에 분명하다.

2:4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다윗은 이미 개인적으로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다(삼상 16:13). 이는 그를 지명한 분이 하나님임을 드러내는 증거가 되었다. 이번에 그는 유다 지파에서 그를 왕으로 받아들였다는 표시로 공개적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사울 역시 처음에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이후에 공개적으로 왕으로 선포되었다(삼상 10:1, 24; 11:14, 15). 유다에 있는 다윗의 동족들은 다윗이 그들의 미래의 왕으로서 하나님께 선택받았음을 오랫동안 인식하였으며, 다윗이 추방당한 자와 사울에게서 도망하는 자로 지낸 긴 세월 동안 대체적으로 그와 친근하게 지냈다. 그들의 친절에 보답하는 표로 다윗은 선물을 보내(삼상 30:26~31) 우정과 애정의 인연을 유지하였다. 그 후 다윗은 모든 지파의 왕으로 세 번째 기름부음을 받았다(5:3).

2:4 길르앗 야베스.

 요단 동쪽으로 4.3킬로미터, 갈릴리 바다에서 남쪽으로 34.4킬로미터 떨어진 성읍. 이 지역에 대한 더 상세한 정보를 알려면 삼상 11:1 주석을 참조하라. 사울은 암몬 사람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를 향해 진 쳤을 때 그들을 구출하였고 암몬 족속을 물리쳤다(삼상 11:1~11).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벧산 성벽에서 사울의 시체를 취하여 명예롭게 장사지낸 것은 바로 앞선 사울의 친절 때문임이 분명하다(삼상 31:11~13; 대상 10:11, 12).

2:5 사자들을 보내어.

 길르앗 야베스를 향한 다윗의 행위가 친절과 진실에서 우러나왔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또한 현명한 정책이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선왕(先王)에게 친절을 보임으로 새 왕에게 칭찬을 받은 것이다. 다윗은 비록 사울에게 모진 고통을 받았지만 그를 떠올리며 원한을 품지 않았다. 사울에게 충성했던 그들의 친절과 용맹을 인정해 줌으로 다윗은 그들에게 충성을 받게 되었다.

2:6 너희에게 갚으리니.

 이전에 사울이 그랬던 것처럼 다윗도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에게 친구와 보호자가 되겠다고 서약하였다. 그 도성은 동쪽 사막에서 접근하는 침략에 취약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새 왕의 도움이 필요한 때가 있을 수 있었다. 다윗은 그들이 사울에게 충성했다고 해서 불편한 심기를 품지 않았으며, 그들이 사울에게 기댔던 것처럼 자신에게도 기댈 수 있음을 알기 원하였다.

2:7 너희는…담대히 할지어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선왕에게 신실하였던 것처럼 자기에게도 신실함과 담대함을 보여 달라는 다윗의 권유이다.

2:8 사울의 군장.

 사울은 왕이 되었을 때 숙부 아브넬을 자기 군대의 군장으로 삼았다(삼상 14:50). 그리하여 아브넬은 혈연과 지위를 통하여 사울 집과 끈끈한 인연을 맺었다. 그는 사울과 함께 다윗을 추격했었고, 따라서 이번에는 그토록 오래 추격하던 이가 사울이 통치하던 왕국을 계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아브넬은 호위 중에 잠잤다고 자기를 나무란 다윗의 견책을 결코 잊지 못했다(삼상 26:7~16). 그는 거만하며 집념이 강하고 야심에 찬 인물로서, 다윗이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로서 다스리도록 인정하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길을 고집하기로 결심하였다.

2:8 넬의 아들.

 참조 삼상 14:50 주석.

2:8 이스보셋.

 사울의 네 아들 중 막내. 나머지 아들들은 길보아산 전투에서 사울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삼상 31:2). 그의 이름(삼상 14:49에는 축약형 리스위[「제임스왕역」에는 “Ishui”]라고 되어 있음)은 원래 “바알의 사람”이라는 뜻의 에스-바알(Esh-baal)이었을 것이며(대상 8:33; 9:39), 이는 아들의 이름을 “수치스러운 사람”이라는 뜻의 “이스보셋”(Ish-bosheth)이라고 지을 왕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8 마하나임.

 문자적으로 “두 진영.” 이 성읍은 요단 동편에 있었지만 그 위치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마하나임으로 볼 수 있는 두 곳 중 한 곳은 길르앗 야베스의 동쪽에 있다. 야곱이 라반을 떠난 후 얍복을 건너기 전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난 곳에 그 이름을 붙였다(창 32:1, 2). 그곳은 레위인의 성읍이었다(수 21:38). 국토의 동쪽에 있었기에 블레셋의 침략과 다윗의 군대에서 비교적 안전하여, 다윗이 자신의 적수를 진압차 온다고 해도 그랬다. 다윗이 후에 압살롬에게서 도망쳤을 때 마하나임을 도피처로 삼았다(17:24). 그 성읍은 시삭의 승전 명각에 애굽인들의 모음 없는 상형문자인 ㅁ-ㅎ-ㄴ-ㅁ(Mh.nm)로 언급돼 있다(참조 왕상 14:25 주석).

2:9 길르앗.

 이스보셋이 통치한 영토에 대한 묘사는 수도인 마나하임을 둘러싼 지역에서 시작하여 점차 먼 지역으로 확대된다. 길르앗을 제외하고는 모든 지역이 요단 서쪽, 예루살렘 북쪽에 있으며 남쪽으로 베냐민의 영토가 있다.

2:9 아술.

 어떤 사람들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이는 아셀 지파 사람들을 가리킬 것이다(참조 삿 1:32). 「70인역」에는 싸시리(Thasiri)로, 「불가타역」과 「수리아역」에는 “그술”(Geshur)로 되어 있다. 이스보셋은 길르앗에서 처음 공인되었고 후에 통치권을 “온 이스라엘”로 확장하였다.

2:9 왕을 삼았더라.

 이스보셋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은 것은 아브넬의 단호한 결의로 이뤄진 것이었다. 사울과의 오랜 인연으로 아브넬은 하나님께서 왕으로 택하신 사람을 미워하게 되었다. 그는 줏대 없는 사람이었고, 여호와의 뜻이나 백성들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천박하고 이기적인 이득에 눈먼 사람이었다. 그는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기보다는 왕국에 분열과 국가에 재난을 초래하려고 하였다.

2:10 두 해.

 이스보셋은 다윗과 같은 해에 통치를 시작하여 마나하임에서 두 해를 다스렸다. 이것은 이스보셋이 도합 두 해 동안 통치했다는 의미가 아니며, 앞으로 서술하려는 사건들이 두 해 후에 발생했다는 뜻이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699). 그 사건들로는 아브넬과 다윗의 전쟁(12~32절), 사울의 집과 다윗 집의 오랜 전쟁(3:1), 아브넬이 다윗에게 반기를 든 사건(3:6~39) 등이 있다.

2:11 일곱 해 여섯 달.

 이 진술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통치한 전체 기간을 전달하기 위해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스보셋의 통치기간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참조 10절 주석) 이스보셋의 죽음과 다윗이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때 사이의 간격을 알지 못한다(5:3).

2:12 나와서.

 즉 전쟁을 벌이려는 의도로 “나와서”(참조 삼상 18:30; 삼하 21:17; 대상 20:1).

2:12 기브온에.

 아브넬은 세력을 온 이스라엘로 확장하려는 야망으로 다윗 영토의 접경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갔다. 기브온은 베냐민의 영토 안에 있었으며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약 9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그 지역은 현재 엣-지브(ej-Jib)로 알려져 있다.

2:13 스루야.

 스루야는 다윗의 자매였으므로(대상 2:16) 요압은 다윗의 조카였다. 그는 후에 다윗의 군대장관이 되었다(대상 11:6; 참조 삼하 5:8).

2:13 기브온 못.

 석회암 바위에 판 저수지로 흘러 들어가는 풍부한 샘이 기브온 산지 남동쪽에 있다. 그 아래, 지금까지 폐허로 남아 있는 탁 트인 큰 저수지에 이 지하천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저장되었다. 요압과 아브넬의 군대는 서로 완전히 노출된 상태로 그 못의 양편에 마주 대하여 앉아 있었다.

2:14 장난하게.

 아브넬은 요압에게 각 편에서 같은 수의 전사를 뽑아 싸움을 시켜 힘을 겨뤄 보자고 도전하였다. 고대에는 흔히 전투에 앞서 힘 대결을 하였다.

2:16 헬갓 핫수림.

 “부싯돌의 들” 혹은 “[칼]날의 들”이라는 뜻의 기념 지명. 「70인역」에는 “배반자의 운명”이라고 되어 있다.

2:17 싸움이 심히 맹렬하더니.

 총 전사자가 다윗 편에 20명, 이스라엘 편에 360명 정도인 것으로 보아(30, 31절) 교전을 벌인 횟수가 많지는 않았겠지만, 맹렬하게 싸워 유다 군대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안겨 주었다.

2:19 아사헬이…쫓아 달려가되.

 아브넬은 다윗에게 항거하는 중추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대결에서 패한다면 이스보셋의 목적은 와해되고 왕국 전체는 신속히 다윗 수하로 합병될 것이었다. 이것을 알아차린 아사헬은 이스라엘 군대장관의 뒤를 집요하게 추격하였다.

2:21 너는…치우쳐서.

 자신을 추격하는 적군이 요압의 동생임을 알아차린 아브넬은 그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방향을 틀어 더 계급이 낮은 상대에게 향하라고 재촉했다. 아사헬은 비록 발이 빨랐지만(18절) 더 강건하고 노련한 장수에게는 맞수가 되지 못했다.

2:22 대면하겠느냐.

 아브넬은 다시 한 번 아사헬에게 추격을 단념하라고 설득하면서, 다윗의 용맹스런 군대장관의 동생을 살해했을 때 불가피하게 뒤따를 피의 반목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2:23 배를 찌르니.

 참조 3:27; 4:6; 20:10.

2:24 암마 산.

 암마 산이나 기아(Giah)는 모두 어디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2:25 함께 모여.

 아브넬의 군대가 넓게 분포되어 있었던 반면, 베냐민 족속은 집결하여 산꼭대기의 견고한 진지에 있는 아브넬과 합류했던 것으로 보인다.

2:26 영영히 사람을 상하겠느냐.

 아브넬의 군대가 전투에서 심한 손실을 입었지만, 이 산꼭대기 진지에서는 요압의 군대에게 계속 공격당해도 상대편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을 것이다. 아브넬은 이길 형국이 아님을 파악하고, 견고한 방어 진지를 갖춘 자기를 패주시키려면 상당한 희생을 치러야만 된다는 것을 요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적군에게 동포인 히브리인들을 추격하지 말라고 호소하였다. 아브넬은 도발을 포기하고 강화하자고 호소하였다. 이렇게 호소한 아브넬은 자신의 패배와 현재의 위험 때문에 동기가 부여된 것이지, 다윗 집과의 싸움을 종식하려는 진지한 갈망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상황이 변해서 회유책을 내놓은 것이지 마음이 변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2:27 네가 흔단의 말을 내지 아니하였더면.

 요압의 이 말은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여러 해석이 제기되었다. ⑴ 요압은 당일 아침 사건을 언급하면서, 전투의 책임을 아브넬에게 지웠고 만일 아브넬이 도발하지 않았더라면 양편 백성은 싸움 없이 아침에 각자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⑵ 요압은 만일 아브넬이 강화(講和)를 요청하지 않았더라면 백성들은 아침까지 전투를 계속하였을 것이고, 그랬다면 아브넬에게 더욱 비참한 결과가 임했을 것임을 분명하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⑶ 아브넬이 말하지 않았더라도 요압은 전쟁을 아침까지만 지속할 의향이 있었는데, 마침 아브넬이 요청한 까닭에 이 시점부터 기꺼이 교전을 중지하려고 하였다. 전반적으로 요압은 아브넬에게 기브온에서 성급하게 도전함으로 형제들간의 싸움을 초래한 책임을 지우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내전 발발은 가장 불행한 일이었기에 요압은 그 사건의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였다.

2:28 다시는.

 히브리어 오드(‘od), 문자적으로 “여전히”, “아직”, “다시.” 이 단어는 단순히 계속성을 표현할 뿐, 반드시 끝없는 기간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여기서는 기간이 제한된 것이 분명한데,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3:1)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다시는”이란 이 단어는 특정 전쟁의 종식을 단순히 표시한 말이다.

2:29 밤새도록 행하여.

 아브넬은 다음날 아침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전투를 계속할 의도가 없었으므로 즉시 퇴각하였다.

2:29 아라바를 지나.

 아라바는 갈릴리 바다에서 사해까지 이어지는 요단의 저지대와 사해의 남쪽에서 아카바 만까지 이어지는 저지대를 일컫는 용어이다.

2:29 비드론.

 어근 바타르(batar)에서 파생된 말로, “둘로 자르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비드론은 산지와 계곡으로 깎아지른 듯한 지대라는 의미의 협곡일 것이다. 비드론은 일반적으로 마하나임에 이르는 미지의 계곡이나 지역으로 추측되어 왔다. 어떤 이들은 “둘로 자르다”는 개념을 하루라는 시간에 적용하여, 아브넬과 그의 무리가 철야로도 모자라 이튿날의 절반인 “오전 내내” 계속 후퇴한 것이라고 한다(참조 「개정표준역」).

2:30 십구 인.

 이들은 그날 아침 기브온에서 죽은 12명(15, 16절)을 제외한 추가 수일 것이다.

2:31 삼백육십 명.

 유다인과 이스라엘인의 손실이 이렇게 크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다윗의 부하들이 그가 사울에게 오랜 세월 추격당할 때 함께했던 노련한 군인들(참조 삼상 23:13; 27:2; 30:9)이었던 반면, 아브넬의 부하들은 사울 군대의 패잔병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2:32 아사헬을…장사하고.

 전사한 다른 군사의 시체는 그들이 쓰러진 곳에 매장했을 것이지만, 아사헬의 시체는 다윗과 요압의 관계를 고려하여 베들레헴으로 옮겨 그곳에 있는 가족 무덤에 매장했다.

2:32 날이 밝았더라.

 헤브론은 베들레헴에서 남쪽으로 약 22킬로미터, 기브온에서 약 37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다윗의 부하들이 아브넬의 군대를 오랫동안 추격한 후 해 질 녘에 전쟁터를 떠나면서(24절) 아사헬의 시체를 취하여 베들레헴으로 옮겨와 가족의 묘지에 매장하고, 동트기 전에 헤브론까지 계속 행진한 것은 특기할 만한 업적이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철야 행군의 출발지가 전쟁터였는지 베들레헴이었는지 명확히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도 출발지는 베들레헴이었을 것인데, 이는 아사헬의 매장에 일정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무분별하게 보이는 행동을 취하도록 부추긴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때가 종종 있다. 다만 더 나은 판단이 서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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