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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6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사무엘상

사무엘상 16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6. 4. 26. 07:51

<사무엘상 16장 흐름정리>

15장에서는 사울을 폐하기로 하신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피력되었거니와, 이제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왕으로 임명하는 기름을 부었다. 다윗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7절) 하나님에 의해 택함받은 인물로서 장차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기틀을 확립하게 된다. 본장 후반부(14~23절)는 여호와의 신이 떠나심으로써 악신에 시달리는 사울과 여호와의 신에 충만한 다윗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조된다. 한편, 다윗이 사울 앞에 발탁되어 왕궁으로 들어간 것은, 그를 왕좌에 오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의해서였다.


<사무엘상 16장 줄거리>

1.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사무엘이 제사를 구실로 베들레헴으로 감.

6. 사무엘의 인간적 판단을 책망함.

11.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음.

15. 사울이 자신을 괴롭히는 악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다윗을 부르러 사람을 보냄.


<사무엘상 16장 개역한글>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2. 사무엘이 가로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찌니라  

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가로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5. 가로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케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 아들들을 성결케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의 앞을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14.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15.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을 번뇌케 하온즉  

16. 원컨대 우리 주는 주의 앞에 모시는 신하에게 명하여 수금 잘 탈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17.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18.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탈줄을 알고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19. 사울이 이에 사자를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20. 이새가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를 나귀에 실리고 그 아들 다윗의 손으로 사울에게 보내니  

21.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병기 든 자를 삼고  

22.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청컨대 다윗으로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23.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


<사무엘상 16장 성경주석>

16:1 언제까지.

 사울은 백성을 고무시키는 지도자였었다. 새로운 정부 형태 아래서 초대 국가 원수로서 그는 높은 기개와 독립심을 지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거의 최면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는 급속도로 잔인 무도하고 용서할 줄 모르는 폭군으로 변해갔다. 왕이 하나님의 권고를 거부하고 나라를 그분의 지도로부터 분리시켰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한 개인으로서 사울이 구원받지 못하도록 막은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느부갓네살은 그의 신 마르둑이 여호와보다 강하다고 기뻐했지만, 하나님의 성령께서 다니엘을 통해서 그에게 호소했다. 그 호소가 간절했기 때문에 그는 다니엘의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분으로 칭송하게 되었다(단 4:34~37).

16:1 베들레헴 사람 이새.

 사무엘은 이전 방문 때 베들레헴 사람 가운데 몇 사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가 이새는 알았겠지만, 나머지 가족들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11, 12절).

16:2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선지자가 베들레헴을 찾아가 제사 드리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고 온당했다.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기럇여아림에 머물러 있었다. 사울의 통치 기간 중 최소한 한동안은 성소가 놉에 있었다는 것은 알려져 있지만(21:1~6), 실로에서처럼 거기서도 연례 절기 행사들이 개최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실로에서 희생제사를 드리는 일이 중단되어 나라 전역의 여러 성읍에서 드려왔다(부조와 선지자, 609). 그런 제사 모임이 있을 때 선지자는 백성에게 구원의 위대한 계획을 가르치는 한편, 나라의 지적 및 영적 상태를 고양시키기 위해 여러 선지자 학교에 젊은이들을 보내라고 촉구하곤 했다. 그러므로 왕은 사무엘이 베들레헴을 방문하는 것을 조금도 의심의 눈초리로 보지 않을 것이다. 백성에 관한 한, 그것은 선지자의 일상적 업무였고 오늘날의 지구(地區) 모임과 비슷했다.

16:2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다윗에게 기름 붓는 행위를 즉시 알리는 것은 일반 백성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사울에게 기름 부을 때도 거의 같은 방식으로 행해지지 않았던가? 당시 그 잔치에 참석하라는 초청에 응한 30명의 장로가 왜 사무엘이 사울을 상좌에 앉도록 했는지 알았던가? 잔치 후 사무엘과 사울이 함께 이야기할 때 그들은 자리에 없었다. 그들과 사울의 종들조차도 이른 아침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는 것을 보지 못했다(9:25). 사울의 가족들도 왕을 세우기 위해 미스바에서 회집이 있기 전까지는 그의 기름부음에 대해 몰랐었다(10:20~27). 기름부음은 사울에게는 그의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의 선포였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도록 초청을 받았지만 강요받지는 않았다. 이런 기름부음이, 행동을 개시하여 공중 앞에서 실제로 왕으로 취임하도록 허가장을 준 것은 아니었다. 기록에 의하면, 사울은 미스바에서 왕으로 세움받은 후 집으로 돌아가 여호와께서 다음 조치를 취해 주기를 기다렸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일과 이새의 집으로 간 일 사이에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이때에는 사무엘이 여호와께서 사울을 버렸다고 공표했기 때문에 선지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왕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안이 이렇게 민감했기 때문에 사무엘은 왕과 함께 예배에 참석하기를 크게 주저했음에 틀림없다. 15장과 16장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 간격이 있었을 것이다.

16:4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9장에 주어진 설명으로 미루어볼 때, 사울에게 기름을 붓기 위해 베푼 잔치는 사전에 잘 알려진 잔치와 관련하여 산당에서 베풀어졌다. 그러나 사무엘이 사전에 알리지 않고 암송아지를 끌고 베들레헴으로 와서 잔치에 참석하도록 장로들을 부르자 자연히 추측이 무성했을 것이다. 장로들은 무슨 큰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하여 두려워 떨며 나아왔다. 고위 관리가 불쑥 나타났을 때 보인 이런 반응은 지극히 당연했으며, 따라서 오히려 이야기에 진실성을 더해 준다.

16:5 평강을 위함이니라.

 사무엘은 그들의 두려움을 진정시킨 후, 목욕, 의복의 세탁, 금욕 등을 포함하는 의식적(儀式的) 정결을 위한 과정을 통해 성결케 하라고 명했다(출 19:10~15; 삼상 21:4~6). 사무엘은 개인적으로 이새와 적어도 그의 나이 든 아들들이라도 성결케 하라고 조처했다(16:5). 그 후 모든 사람을 제사에 참석하도록 초청했다. 제사를 드리고 나서 잔치까지는 몇 시간이 경과되었을 것이다. 이는 암송아지를 먹기 전에 조리하기 위해 준비하고 구워야 하기 때문이다. 사무엘은 이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 이새와 그의 가족을 좀 더 잘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아직 모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앉아서 먹기 전에 들에서 다윗을 불러들인 이야기가 있는 11절을 보아 분명하다.

16:7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여기서 “중심”[heart, 마음]은 지성, 애정 그리고 의지를 가리킨다(시 139:23; 마 12:34 등).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잠 23:7)는 말씀에 나타난 것처럼, 그것은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지도적 요소이다. 선택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지성의 문제이지만 흔히 감정과 정서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유예 기간이 남아 있는 한 하나님은 사람들을 부른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사 1:18).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과 그분의 계획을 잘 알기를 원하는데, 이는 우리가 변화되는 것은 바라봄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고후 3:18). 하나님은 인간의 지성에 호소한다. 외모는 삶의 진정한 동기를 드러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행동은 잘못 해석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고 말했을 때, 그는 하나님과 개인적인 사귐을 통해 삶에 나타나는 지도적인 영향을 생각하고 있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친밀하게 교제함으로써 하나님을 보았다는 사실(요 14:8)은 그들을 위한 그분의 계획에 자신들을 굴복시키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다윗은 양떼를 보살피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비록 그의 형제들은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하나님과의 이런 친숙함이 있었기에 성령께서 그를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나가시는 일을 가능하게 했다.

16:12 얼굴이 아름답더라.

 또는 “잘 생겼더라.”

16:12 기름을 부으라.

 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당신의 대표자로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지나쳐 버리는가? 하나님께서 사울을 택한 것과 다윗을 택한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나님은 전지(全知)하기 때문에 사울이 정확히 어떤 길을 갈지 알았지만, 그에게 기름을 붓고 그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10:7). 하나님은, 그들의 최선의 유익과 그들을 위한 당신의 뜻에 배치되지만 왕을 달라는 백성의 요구를 들어 주었다. 사울이 백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는 그들의 마음에 합한 왕이었으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은 아니었다. 그들이 염두에 둔 것은 영적 지도력이 아니라 국력 신장이었다. 사울이 선택받았을 때 그에게는 심각한 결점들이 있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가 당할 위험을 사전에 경고했고 그것들을 대처할 방법에 관하여 명확한 권면을 주었다.

  다윗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백성이 사울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 사실상 아말렉 족속과 벌인 전쟁의 결과에 전적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다윗은 그 아버지 집에서 가장 연소한 자였고, 동방에서는 나이에는 존경과 우선권이 동반되었다(창 29:25, 26). 그는 애송이로서 집안 식구들에게도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했다(17:28). 그는 사울처럼 키가 크지도 않았고 삼손처럼 체력이 대단하지도 않았다. 사울은 장로들이 긴급하게 왕을 요구하는 바람에 밭을 갈다가 부름을 받았다. 그는 훈련을 받을 시간이 별로 없었다. 다윗은 양떼를 돌보다가 아주 젊은 나이에 부름을 받았고, 열두 지파의 지도자로서 힘든 과업을 수행할 준비를 갖출 수 있는 시간이 10년 정도 있었다.

  다윗은 청년의 때 택함받았기 때문에 높은 직책을 맡기 전에 훈련과 시험의 기간을 거칠 기회를 누렸다. 다윗의 성품에 하늘의 표준에 미달되는 것이 있다면 그의 대관식 이전에 고칠 수 있었다. 하나님은 그분의 나라의 일원이 되도록 초청하는 모든 사람들, 특히 중임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을 그와 유사한 방법으로 다룬다.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사람은 마침내 하나님께서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마 25:23)라고 말씀할 때까지 삶의 평범한 사건을 통해서 시험을 받는다. 지금까지 다윗은 젊음의 패기와 사랑 깊고 유순한 정신과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확신에서 우러나오는 담력을 소유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는 세상의 때로 더럽혀지지 않았으며, 깊이 명상하는 그의 영혼은 베들레헴의 외진 산지에 격리되어 자라고 있었다. 거기서 미디안의 모세처럼 양을 치면서 그는 책임감을 터득했으며, 평생토록 지니고 다닐 지도자의 자질들을 계발했다.

16:13 뿔.

 히브리어 케렌(qeren). 황소, 염소 혹은 숫양의 “뿔.” 영어 단어 “cornucopia”(풍요의 뿔)는 히브리어의 케렌이 라틴어 코르누(cornu)를 거쳐 생성된 말이다.

16:13 여호와의 신.

 여호와의 신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는 사울에게 새 마음을 주고 그 앞에 놓여있는 함정을 지적해 주었다. 그런데도 사울은 신속하게 하나님의 지도를 거부했다. 하나님은 사울을 지도하려 했지만 헛수고에 그쳤다. 이제 하나님은 다윗을 지도하겠다고 제안했다. 세상의 위대한 지도자 가운데 많은 사람이 그랬듯이, 다윗은 성령의 지도 아래 조용히 순수한 품성을 계발하면서 미천한 환경 가운데 자라났다. 성령은 언젠가 그를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그가 맡을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자격을 구비시켜 줄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받을 때 하나님의 영이 그분에게 임했던 것처럼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을 때도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임했다(참조 마 3:16 주석).

16:14 여호와의 신이…떠나고.

 사울은 하나님의 신을 배척했다. 그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했다. 이제 하나님이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었다(참조 15:35 주석). 여호와의 신이 독단적으로 사울을 떠난 것이 아니라, 사울이 그분의 인도하심에 항거하여 성령의 감화에서 고의적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 139:7과 선택의 자유라는 근본적인 원칙과 조화되게 이해해야 한다. 사울이 원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당신의 뜻을 따르도록 강요했다면 하나님은 왕을 단순한 기계로 만든 분이 될 것이다.

16:14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

 성경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막지 않은 일을 당신이 한 것처럼 나타낸다. 사단에게 자기의 원칙을 시범해 보일 기회를 주심으로써 하나님은 사실상 그분 자신의 능력을 제한한 것이다. 물론 사단이 넘어가지 못할 한계가 있지만(참조 욥 1:12; 2:6), 그의 제한된 영역 내에서만 행동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허락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의 행위들이 하나님의 뜻에 배치되지만 그는 하나님이 허락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그와 그의 악한 영들은 어떤 일이든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행할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신을 사울에게서 거두어 갔을 때(참조 16:13, 14 주석), 사단은 그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16:14 그를 번뇌케 한지라.

 요세푸스는 이 질병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울로 말하면, 어떤 희한하고 악마적인 착란 증세가 엄습하여 그는 질식해 곧 숨이 넘어갈 지경이 되었다”(Antiquities vi. 8. 2).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에게 왕권을 빼앗길 것이라는 선지자의 통고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그에게 심각한 우울증이 생겼음이 분명하다(15:28). 간헐적으로 악신에 들리면 사울은 광기어린 사람처럼 느끼고 행동했다.

16:15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

 이에 해당하는 표현을 보려면 14절 주석을 참조하라.

16:16 수금.

 사울은 음악 치료를 통해 증세를 완화시켜보라는 권고를 받았다. 다윗의 수금 소리와 고상한 찬미 소리로 그를 괴롭힌 악신으로부터 잠시나마 놓여나곤 했다. 다윗의 음악에 귀를 기울일 때 사울의 자기 연민의 악한 감정들과 질투가 잠시 그를 떠났지만, 시간이 지나면 두 배나 더 강력하게 돌아올 뿐이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계속 거부한 결과 그는 그리스도의 비유에 나오는 귀신 들린 사람처럼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었다(눅 11:24~26).

16:17 나를 위하여…구하여.

 사울을 괴롭히는 악령으로부터 놓여나게 해 줄 희망을 주는 수단이라면 무엇이든 소홀히 여길 수 없었다.

16:18 이새의 아들.

 음악가로서, 용감하고 건전한 판단력과 기지를 겸비한 사람으로서 다윗의 명성은 그가 궁궐에 들어가기 전에, 골리앗에게 승리를 거두기 전에 이미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다윗은 성인이 되기 직전의 청년이었을 것이다. 이는 얼마 후 골리앗과 조우했을 때, 다윗이 히브리어 나아르(na‘ar) 곧 “소년”(참조 17:58)으로 불렸고, 17:56에서는 히브리어 엘렘(‘elem) 곧 “청년”(17:56, 「개역한글판」에는 역시 “소년”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16:18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사실이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기름부음을 받을 때 특별한 방식으로 그의 생애를 붙들었던(참조 13절 주석) 성령께서 그의 앞에 놓인 중요한 과업을 행할 수 있도록 그를 성공적으로 준비시키고 계셨다는 사실은 어떤 것도 숨길 수 없었다.

16:20 나귀.

 이새의 선물은 다윗에게 궁중에서 봉사해 달라는 왕의 소원에 호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선물을 보내지 않으면 틀림없이 악의의 표현으로 받아들일 것이고, 따라서 궁정에서 다윗의 성공에 득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16:21 그 앞에 모셔 서매.

 이 진술은 사울 앞에 서있는 다윗의 자세가 아니라 다윗이 “그를 섬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일컫는 말이다(「개정표준역」; 참조 창 41:46; 단 1:19). 하나님의 섭리로 이렇게 다윗은 나라의 지도급 인사들-그들은 이렇게 하여 그의 재능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과 다양한 국사(國事)를 접할 수 있는 환경으로 들어왔다. 사울은 그의 생애 속에서 악의 씨앗이 자라나 확실한 수확을 거둘 때까지 그리고 다윗의 예비 훈련이 끝날 때까지 보좌에 머물러 있도록 허락되었을 것이다.

16:21 크게 사랑하여.

 사울조차도 자연스럽게 마음을 끄는 다윗의 인격을 존귀히 여기고, 성령께서 그의 마음에 심은 특성들을 존경하였다. 사울은 장래가 촉망되는 이 청년의 우월성을 한눈에 알아보고, 왕권의 계승자를 선택한 하나님의 지혜를 넌지시 인정했다.

16:21 병기 든 자.

 다윗은 이 직임에 임명됨으로 왕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가질 수 있었고, 왕의 안전을 개인적으로 책임지게 되었다. 이 표현[“병기 든 자”]은 골리앗과 싸워 승리한 후에 다윗이 궁정에서 맡을 역할을 예상하여 미리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참조 18:2, 5).

16:22 다윗으로 내 앞에…서게 하라.

 궁중에서 시험 기간을 거친 후 사울은 처음에는 임시직으로 의도했던 것을 영구직으로 바꾸었다.

16:22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참조 21절 주석.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을 눈여겨보고 당신의 사업에 사용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입증된 것에 흡족해 했다(참조 7절). 어느 정도 다윗의 마음 속에서도 비쳐 나오는 것이 있지만, 사울은 외모와 행동만을 보고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참조 잠 23:7).

16:23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문자적으로 “사울이 숨을 쉬었다.” 루아흐(ruah.)란 말은 “숨쉬다”, 특히 코로 “숨을 내쉬다”를 의미한다. 이 동사의 용례는, 크고 길게 숨을 내쉼으로써 흔히 한동안의 긴장 후에 이완(弛緩)이 동반되고 그 후에는 정상적 호흡이 뒤따르는 상태를 나타낸다. 사울이 경험한, 귀신들림에 의한 발작에는 신체와 신경의 긴장 상태가 동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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