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ORY

사무엘상 14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사무엘상

사무엘상 14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6. 4. 22. 07:21

<사무엘상 14장 흐름정리>

13장에서 시작된 블레셋과의 전투가 본장에 이르러 이스라엘의 승리로 마감된다. 이 승리는 굳건한 신앙으로 무장했던 요나단의 용맹성에 힘입은 바 크지만,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을 높이시려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또한 본장에서는 요나단의 신앙적 용기와는 대조적으로 실수를 거듭하는 사울의 비신앙적이며 나약한 모습이 폭로되고 있다. 사울의 어리석은 저주의 맹세로 인해 온 군대가 고통에 처하게 되었고 요나단이 죽음에 처해질 위기에까지 몰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 기자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사방의 적을 격파한 사실을 높게 평가함으로써 그의 공로를 인정하고 있다(47~48절).


<사무엘상 14장 줄거리>

1. 요나단이 부친과 제사장과 백성들 모르게 나가서 기적적으로 블레셋 수비대를 침.

15. 하나님께서 불어넣은 공포로 블레셋 군인들이 서로를 침.

17. 사울이 제사장의 답변을 기다리지 않고 그들을 치러 나감.

21. 공포에 질린 히브리 사람들과 숨어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합세하여 그들을 침.

24. 사울의 분별 없는 맹세가 승리에 걸림돌이 됨.

32. 사울이 백성들에게 피를 먹지 못하도록 막음.

35. 사울이 단을 쌓음.

36. 요나단이 제비 뽑혔으나 백성들이 그를 건져냄.

47. 사울의 세력과 가족 내력.


<사무엘상 14장 개역한글>

1.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 병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하고 그 아비에게는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2. 사울이 기브아 변경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 머물렀고 함께한 백성은 육백명 가량이며  

3.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백성은 요나단의 간줄을 알지 못하니라  

4.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편에도 험한 바위가 있고 저편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  

5. 한 바위는 북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하나는 남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  

6.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7. 병기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하여 따르리이다  

8. 요나단이 가로되 보라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보이리니  

9. 그들이 만일 이같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다리라 하면 우리는 우리 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에게로 올라가지 말 것이요  

10. 그들이 만일 이같이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붙이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하고  

11. 둘이 다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 보이매 블레셋 사람이 가로되 보라 히브리 사람이 그 숨었던 구멍에서 나온다 하고  

12. 그 부대 사람들이 요나단과 그 병기 든 자를 대하여 가로되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너희에게 한 일을 보이리라 한지라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나를 따라 올라오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고  

13. 요나단이 손발로 붙잡고 올라갔고 그 병기 든 자도 따랐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매 병기 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으니

14. 요나단과 그 병기 든 자가 반일경 지단 안에서 처음으로 도륙한 자가 이십인 가량이라  

15. 들에 있는 진과 모든 백성 중에 떨림이 일어났고 부대와 노략군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  

16. 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숫군이 바라본즉 허다한 블레셋 사람이 무너져 이리 저리 흩어지더라  

17. 사울이 자기와 함께한 백성에게 이르되 우리에게서 누가 나갔는지 점고하여 보라 하고 점고한즉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든 자가 없어졌더라 

18. 사울이 아히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니 그 때에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음이라  

19.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의 진에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  

20. 사울과 그와 함께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이 각각 칼로 그 동무를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  

21. 전에 블레셋 사람과 함께하던 히브리 사람이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과 함께 와서 진에 들어 왔더니 그들이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한 이스라엘 사람과 합하였고  

22. 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블레셋 사람의 도망함을 듣고 싸우러 나와서 그들을 추격하였더라  

23.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  

24.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수하는 때까지 아무 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백성이 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25. 그들이 다 수풀에 들어간즉 땅에 꿀이 있더라  

26. 백성이 수풀로 들어갈 때에 꿀이 흐르는 것을 보고도 그들이 맹세를 두려워하여 손을 그 입에 대는 자가 없으나  

27. 요나단은 그 아비가 맹세로 백성에게 명할 때에 듣지 못하였으므로 손에 가진 지팡이 끝을 내밀어 꿀을 찍고 그 손을 돌이켜 입에 대매 눈이 밝아졌더라  

28. 때에 백성 중 하나가 고하여 가로되 당신의 부친이 맹세로 백성에게 엄히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오늘날 식물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백성이 피곤하였나이다  

29. 요나단이 가로되 내 부친이 이 땅으로 곤란케 하셨도다 보라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 눈이 이렇게 밝았거든  

30. 하물며 백성이 오늘 그 대적에게서 탈취하여 얻은 것을 임의로 먹었더면 블레셋 사람을 살륙함이 더욱 많지 아니하였겠느냐  

31. 그 날에 백성이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쳤으므로 그들이 심히 피곤한지라  

32. 백성이 이에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취하고 그것을 땅에서 잡아 피 있는채 먹었더니  

33. 무리가 사울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백성이 고기를 피채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사울이 가로되 너희가 무신하게 행하였도다 이제 큰 돌을 내게로 굴려 오라 하고  

34. 또 가로되 너희는 백성 중에 흩어져 다니며 이르기를 사람은 각기 소와 각기 양을 이리로 끌어다가 잡아 먹되 피 있는 채 먹어서 여호와께 범죄하지 말라 하매 그 밤에 모든 백성이 각각 자기의 소를 끌어다가 거기서 잡으니라

35. 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단이었더라  

36. 사울이 가로되 우리가 밤에 블레셋 사람을 쫓아 내려가서 동틀 때까지 그들 중에서 탈취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 무리가 가로되 왕의 소견에 좋은대로 하소서 할 때에 제사장이 가로되 이리로 와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사이다 하매  

37. 사울이 하나님께 묻자오되 내가 블레셋 사람을 쫓아 내려가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하되 그 날에 대답지 아니하시는지라  

38. 사울이 가로되 너희 백성의 어른들아 다 이리로 오라 오늘 이 죄가 뉘게 있나 알아 보자  

39.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 아들 요나단에게 있다 할찌라도 반드시 죽으리라 하되 모든 백성 중 한 사람도 대답지 아니하매  

40. 이에 그가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너희는 저편에 있으라 나와 내 아들 요나단은 이편에 있으리라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왕의 소견에 좋은대로 하소서 하니라  

41. 이에 사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되 원컨대 실상을 보이소서 하였더니 요나단과 사울이 뽑히고 백성은 면한지라  

42. 사울이 가로되 나와 내 아들 요나단 사이에 뽑으라 하였더니 요나단이 뽑히니라  

43. 사울이 요나단에게 가로되 너의 행한 것을 내게 고하라 요나단이 고하여 가로되 내가 다만 내 손에 가진 지팡이 끝으로 꿀을 조금 맛보았을 뿐이오나 내가 죽을 수 밖에 없나이다  

44. 사울이 가로되 요나단아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45.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사하였음이니이다 하여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  

46. 사울이 블레셋 사람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매 블레셋 사람이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47. 사울이 이스라엘 왕위에 나아간 후에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곧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을 쳤는데 향하는 곳마다 이기었고  

48. 용맹 있게 아말렉 사람을 치고 이스라엘을 그 약탈하는 자의 손에서 건졌더라  

49. 사울의 아들은 요나단과 리스위와 말기수아요 그 두 딸의 이름은 이러하니 맏딸의 이름은 메랍이요 작은 딸의 이름은 미갈이며  

50. 사울의 아내의 이름은 아히노암이니 아히마아스의 딸이요 그 군장의 이름은 아브넬이니 사울의 숙부 넬의 아들이며  

51. 사울의 아비는 기스요 아브넬의 아비는 넬이니 아비엘의 아들이었더라  

52. 사울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사울이 힘 있는 자나 용맹 있는 자를 보면 그들을 불러 모았더라


<사무엘상 14장 성경주석>

14:1 아비에게는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요나단은 기브아에 주둔한 국가 경비대 3분의 1의 지휘권을 위임받은 이야기인 13장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사울은 나머지 병사 3분의 2의 병력과 함께 북동쪽의 믹마스에 주둔했다. 게바에 주둔한 수비대가 요나단에게 패한 것을 보복하기 위해 블레셋 군대가 나타나자 사울은 길갈로 후퇴했다. 그때 요나단은 게바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믹마스는 블레셋에게 점령당한 것으로 보인다(13:16). 본문을 보아서는 사무엘이 라마로 돌아갔는지 기브아에 머물고 있었는지 분명치 않지만(15절), 아마도 본 장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드러나는 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당신을 온전히 의존할 필요성을 깨닫게 하려고 노력하고 계셨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 사울은 길갈에서 버림받았지만, 요나단이 행한 은밀한 작전은 그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이다. 대체로 어리석은 행위로 분류될 일이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했음을 나타내는 강력한 증거가 되는 경우가 있다. 여호와께서는 무지한 백성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신시키고, 죄의 속박에서 구출되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기 위해 온갖 종류의 물적 증거를 이용했다.

14:4 어귀 사이.

 요세푸스는 이렇게 말한다. “적진은 꼭대기에 작지만 끝이 날카롭고 길쭉한 세 봉우리가 있는 절벽 위에 있었으나, 적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호벽처럼 그들을 둘러싼 바위가 하나 있었다”(Antiquities vi. 6. 2). 그 지역을 방문하여 이 깎아지른 듯한 와디의 북쪽을 본 사람들은 그곳 주민이 지금도 그곳을 “요새”라고 부른다고 말한다. 이 암벽은 보세스로 불리는데, “흰” 혹은 “빛나는”을 뜻할 수도 있지만 아마 “부드럽다”, “유하다”라는 뜻이 더 정확할 것이다. 와디의 남쪽에는 “세네”(Seneh) 즉 “가시떨기나무”로 불리는 암벽이 있는데, 북쪽 절벽보다 오르기가 훨씬 쉽다. 알렌비(Allenby)는 1917년 투르크에게 믹마스를 탈취할 때 이 성경 구절에 주어진 지형 정보를 이용했다고 한다.

14:6 여호와께서…일하실까 하노라.

 요나단은 자신의 병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의지했다. 그는 그저 자기 수중에 있는 것을 사용했을 뿐이며, 하나님은 겸손히 하늘에 의존한 그에게 축복했다. 하나님은 모든 이스라엘에게, 비록 왕이 순종의 길에서 이탈한다 할지라도 구원은 개인의 선택과 행위의 문제이지 어떤 단체적 행동의 문제가 아님을 입증하겠다고 제안했다. 왕이 순종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을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모두 버렸다면 상황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14:10 그들이 만일 이같이 말하기를.

 기드온이 이슬을 땅에만 내리고 양털에는 내리지 않게 해달라고 했을 때,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거의 불가능한 표적을 요구한 것이다(삿 6:39). 그와 같이 요나단도 “올라오라”는 적군의 요청을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싸울 것이라는 표징으로 삼았다. 깎아지른 듯한 북쪽 암벽을 특히 병기를 들고 기어오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사람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기대하고 그분을 위해 큰 일을 시도할 때 그분은 영광을 받는다.

14:13 요나단이 손발로…올라갔고.

 요세푸스는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든 자가 새벽 미명에 블레셋의 전초 기지로 다가가, 적군이 대부분 아직 잠들어 있을 때 도착했다고 본다(Antiquities vi. 6. 2). 14장의 이야기는 그때가 이른 아침이었음을 확증해 준다(참조 15, 16, 20, 24~2823, 24~28, 30, 31, 45절). 이 두 이스라엘 사람이 기다렸다가 밤에 올라갔는지 아니면 절벽을 오르는 데 단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는지는 기록되지 않았다. 블레셋 수비대가 극도의 혼란에 빠진 점으로 보아, 그들이 그 요새를 완벽하게 기습했음이 분명하다.

14:15 큰 떨림.

 문자적으로 “하나님[엘로힘]의 떨림”(참조 「제임스왕역」의 난외주). 여기서 엘로힘(’elohim)이라는 단어는 지진의 강도를 나타내며, 널리 퍼진 공포와 혼란을 보여 준다. 엘로힘이라는 단어는 이따금 이와 같이 최상급으로 사용되었다(참조 창 23:6; 30:8 주석). 이 지진은 하나님이 개입하여 행한 일임이 분명하다(부조와 선지자, 623). 하나님은 홍해(출 14:21~28), 아얄론 골짜기(수 10:11~14), 블레셋이 진멸된 에벤에셀(7:10) 등 기타 경우에서 그랬듯이 자주 천연계의 힘을 이용하여 개입한다.

14:16 베냐민 기브아.

 기브아와 게바(혹은 가바[Gaba])는 “언덕” 혹은 “고지”를 뜻하는 단어의 여성형과 남성형으로, 둘 다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었다(수 18:24, 28; 삼상 13:16). 그러나 간혹 그 명사의 남성형과 여성형을 서로 바꾸어 썼던 것으로 보인다. 두 성읍이 별개의 성읍이라는 것은 사 10:29에 분명히 나타나는데, 거기 보면 북쪽에서 접근하는 침략자들이 그 성읍들에 도달한 순서대로 언급되어 있다. 그 옛 터에는 오늘날 제바(Jeba)라는 마을이 있는데, 믹마스에서 서남쪽으로 2.2킬로미터, 예루살렘에서 동북쪽으로 9.6킬로미터 지점이다. 오늘날의 텔 엘-풀(Tell el-Fu-l) 마을이 일반적으로 사울의 기브아로 간주되는데, 예루살렘 북방 5.6킬로미터 지점에 있다. 최근 발굴에서 사울의 궁전 터로 보이는 것이 발굴되었다(참조 제1권, 138). 삼상 14:16의 “기브아”는 믹마스에서 와디 건너편에 있는 게바(5절; 부조와 선지자, 622)이지, 사울의 고향 기브아가 아니다. 사울의 기브아가 오늘날의 텔 엘-풀이 맞다는 전제 하에 그렇다(참조 13:2, 3 주석). 믹마스 남서쪽 7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해 있고 그 사이에 두 산맥이 있는 기브아에서는 믹마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찰하기가 불가능했겠지만, 와디 바로 건너편에 있는 게바에서는 관찰하기가 비교적 용이했을 것이다.

14:19 네 손을 거두라.

 사울의 성급함이 매우 급속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적진에 분명히 혼란이 발생한 것을 보고 크게 흥분한 나머지 그는 하나님에게 권면을 받기 위해 기다릴 수조차 없었다. 여러 날 동안 지켜보고만 있었던 사울과 그의 군대는 적군이 근처 부락들을 노략질했다는 보고를 들었다. 그는 적군이 도주하는 까닭도 모른 채 돌연히 공격 명령을 내렸다. 만일 그가 시간을 내어 하나님의 지도를 구했더라면, 그 다음 몇 시간 동안 이스라엘 군대가 당한 문제 중 많은 것을 피할 수 있었고, 그는 원수에게 훨씬 더 완벽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확실히, 이것은 급히 먹는 밥에 목이 멘 경우와 같다. 명상과 기도 시간은 예수를 기다리고 있는 고초를 인내하면서 견디는 데 필요한 침착한 판단력을 그에게 주었다. 얍복강에서 야곱이 천사와 더불어 씨름하던 밤은 형 에서를 마주 대할 뿐 아니라 그후에 닥쳐온 당혹스런 문제로 가득 찬 세월에 대처할 힘을 주었다.

14:21 히브리 사람.

 참조 13:3 주석.

14:23 여호와께서…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여기에 인간의 노력과 협력하는 하나님에 관한 뚜렷한 본보기가 있다. 요나단은 블레셋의 침략에서 구원받기를 갈망했다. 그날의 사건들을 볼 때 성령께서 그런 포부를 갖도록 했다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요나단은 부친을 괴롭히고 있는 우울증의 충동적인 발작을 보았지만, 사울을 먼저 불렀던 거룩한 통치자에 대한 그의 신뢰를 더욱 북돋워 줄 뿐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면서 요나단은 믿음에서 비롯되는 능력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으며, 다음 발걸음을 내디딜 힘을 얻었다. 그날 그는, 여호와는 언약을 지키는 하나님, 인간의 분노를 바꾸어 그분을 찬양할 수 있게 해주는 분임을 입증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이 문장 속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지! 젊은 전사의 공격적인 힘과 용맹, 병기 든 자의 동행과 충직한 협력, 절벽 위에 있었던 파수병들의 자만, 정확한 공격 타이밍, 기습 공격으로 야기된 공포, 지진, 혼란에 빠진 적군의 패주, 요나단의 전공(戰功)에 자극을 받아 그들을 사로잡았던 자들에게 칼끝을 돌려댈 담력을 얻은 노예들의 해방, 적군 앞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치욕을 당했던 왕과 그의 군대가 돌아온 일! 이제 모든 사람은 원수를 완패시키고야 말겠다는 열망을 나타내고 싶은 듯이 보였다.

  벧아웬. “벧아웬”이라는 이름은 “우상의 집”이나 “공허의 집”을 뜻할 것이다. 이곳은 믹마스 북쪽, 벧엘 동쪽 지역에 있는 한 장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블레셋의 주요 작전로는 그들의 본국 방향인 서쪽으로 나 있었지만, 극심한 혼란에 빠진 그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달아났다.

14:24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사울이 더 이상 승리를 여호와 덕분으로 생각하지 않고(참조 11:13), 자기 원수들에게 복수할 수 있기만을 생각한 점으로 보아, 그가 자신의 “체면을 세우”려고 했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하루 동안에 그가 여호와의 권면을 구하지 않고 돌아선 두 번째 경우이다. 그는 전에 제사장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백성들에게 자신의 뜻을 따를 것을 강요했다(14:19). 아마 길갈에서 사무엘에게 견책을 당한 일로 여전히 그의 감정이 상해있었던 것 같다. 제사장 아히야가 그의 고문으로 함께 있었다는 사실(3절)은 선지자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기브아에(참조 13:15) 머물지 않고 라마로 돌아갔음을 암시한다. 

  그의 부친이 부주의했던 데 반해 요나단은 하나님의 말씀에 세심하게 유의했다. 이것은 대부분 사무엘이 끼친 감화의 결과였을 것이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623). 지금 요나단에게 이런 대담한 공격을 하려는 마음을 먹도록 한 것은 앞서 사무엘의 격려 말씀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사건이 일어나기 여러 달 전에 사울이 길갈에서 겪을 경험에 미리 경고를 받았던 것처럼(10:8; 13:8), 사무엘이 준 비슷한 기별이 이 기념할 만한 날 발생할 사건들에서 행할 역할을 위해 사울의 아들을 준비시켰을 것이다. 아무튼 요나단은 그의 부친이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렸다가 그것을 따르고, 그 결과의 공을 하나님께 기꺼이 돌려드리는 겸손한 사람이었다(14:10, 12). 하루 동안 금식하라는 독단적이며 성급한 사울의 요구는 개인의 욕구와 필요를 개의치 않고 그 지시를 신실하게 따른 백성들의 순종심과 확연히 대조된다.

  사울의 겸손은 영원히 사라졌고, 거짓된 열성과 은밀한 교만 그리고 직권 남용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것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커져 마침내 그가 자신의 목숨을 버리기에 이를 것이었다. 유다처럼 사울도 한동안은 잘 나갔다. 만일 이스라엘을 길갈로 소집하기 전에 죽었더라면, 그는 훌륭한 왕의 일람표에서 제일 높은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신뢰를 저버렸지만 모든 사람이 이기심과 패역의 열매를 볼 수 있게 좀 더 생존하도록 허락되었다.

14:29 내 부친이 이 땅으로 곤란케 하셨도다.

 부친이 분별없는 명령을 내린 것을 알자 요나단은 군대가 감수해야 할 불리한 조건을 즉시 알아차리고 지체 없이 백성에게 자신은 이런 제한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것을 알렸다. 이것은 군인은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거듭 주어진 진술에 비추어 볼 때 퍽 흥미롭다. 원문은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켰음을 암시한다. 그들은 그렇게 했기 때문에 물론 개인적으로 맹세를 지킬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던 반면, 그런 맹세를 하지 않은 요나단은 그렇게 할 개인적 의무가 전혀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14:29 이 땅.

 즉 백성(참조 25절).

14:31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중부 팔레스타인의 산악 고지대를 지나 와디 셀만(Wadi Selman) 같은 협곡들을 통과하여 믹마스보다 305미터 낮은 셰펠라의 구릉지대에 이르기까지 21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 릿다(Ridda)에서 믹마스로 가는 직행길은 예루살렘 북방 8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세겜으로 가는 북쪽 길을 건너 와디 셀만을 관통한다. 믹마스와 아얄론 사이에 있는 지대를 행군하는 데는 보통 하루가 걸린다. 본문은 요나단이 아주 이른 새벽에 공격했음을 암시한다(참조 13절 주석). 그럴 경우, 이스라엘은 온종일 적을 추격했고, 전리품을 노획하기 위해 멈추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랬더라면 막대한 전리품을 얻었을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엄청난 수효의 병거와 군마를 집결시켜 놓았다. 그뿐 아니라 창, 방패, 음식 그리고 군대가 지니고 다녀야 할 기타 보급품이 있었다. 사울의 군대가 거둔 군사적 업적은 잘 먹은 군대도 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며, 그가 지휘하는 훈련되지도 않고 잘 먹지 못한 시골뜨기 무리들에게는 훨씬 더 엄청난 일이었다. 책망받은 것 때문에 아직도 심기가 불편하고 자신의 명성에만 급급하고 있는 사울에게 이 경험은 얼마나 큰 교훈이 되었겠는가. 그러나 교만이라는 모래톱에 일단 발을 내딛고 난 후 거기서 빠져 나오려고 힘없이 우유부단한 시도를 할 때마다 그는 더욱 더 깊이 빠져들 뿐이었다.

14:32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저녁이 되자 사람들은 맹세에서 풀려났다(참조 24절). 굶주린 그들은 서두른 나머지 소와 송아지를 잡을 때 피를 제대로 제거하는 일을 소홀히 했다(레 17:10~14).

14:34 이리로 끌어다가.

 그리스도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사울은 더 중한 것들은 소홀히 하면서 외적 형식을 준수하는 일에는 아주 엄격했다. 이때에도 백성들은 왕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 죄가 사람을 얼마나 눈멀게 하는지! 만일 사울이 백성들의 범죄가 어느 정도 자신이 저지른 죄에서 기인되었는지를 잠시나마 숙고했더라면 성경의 기록은 얼마나 달라졌을 것인가! 하나님은 당신의 가르침을 배척하는 사람에게 다시 돌아와 진정한 겸비 가운데 그분의 얼굴을 구할 기회를 얼마나 많이 주시는지! 그러나 죄로 눈 먼 영혼이 이런 기회를 받아들이고 탕자처럼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14:35 이는 그가…처음 쌓은 단.

 문자적으로 “그것은 그가 쌓기 시작한 단”(「제임스왕역」 난외주를 참조하라). 어떤 사람들은 이 표현을, 그가 단을 쌓기 시작했으나 마치지 못했다는 뜻으로 보고,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그가 쌓은 첫 번째 제단으로 해석한다. 번역자들이 후자의 해석을 채택한 것이 분명하며, 그렇기 때문에 헤헬(heh.el)을 “시작했다”가 아니라 “첫 번째”로 번역했다. 그들은 이런 번역이 히브리어의 관용적 용법에 더 부합한고 생각했다. 이것은 구약에서 헤헬이 이렇게 번역된 유일한 경우이다.

14:36 이리로 와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사이다.

 절호의 기회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음을 깨달은 사울은 식사를 했으니 이제 야간 추격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작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울은 길르앗 야베스를 암몬 사람 나하스에게서 구하기 위해 베섹에서부터 그 성읍까지 야간 행군을 감행한 적이 있다(11:11). 기드온도 미디안 군대를 칠 때 비슷한 작전을 편 일이 있다(삿 7:19~23). 백성은 선선히 사울의 제안에 동의했지만 제사장 아히야는 여호와께 물을 것을 제안했다. 아히야는 그날 아침 왕이 하나님의 권면을 구하지 않음으로써 실수를 범했다고 느꼈음이 분명하다(14:18, 19).

14:39 내 아들 요나단에게 있다 할지라도.

 왜 사울이 “비록 이 죄가 왕에게 있다 할지라도”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요나단이 음식을 맛본 사실을 누군가 사울에게 알렸을까? 여호와의 침묵은 그분의 불승인을 뜻했고, 따라서 사울은 진영 중에 죄가 있다고 판단했다. 백성은 그날 거듭거듭 그들의 충성을 나타내 보였고, 사울의 양심은 비난의 손가락으로 자신의 심령을 지목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아마도 자신의 죄책감을 가리기 위해 사울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큰 승리를 이루어낸 자신의 아들을 비난했다. 길갈에서 그가, 잘못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다고 강하게 암시했던 것처럼, 지금 그는 왕으로서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암시했다. 그는 백성에게는 죄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잘못을 범했을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사람은 자기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당시의 지도자들도 자신들은 비난받을 일이 없다고 느꼈고, 우리의 구원의 위대한 영웅이 온 민족을 위하여 저주를 짊어지도록 가결했다. 사울의 무모한 폭언에 대경실색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에게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백성마저 침묵하는 상황에서 사울이 제비 뽑는 일 외에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14:42 요나단이 뽑히니라.

 탐구심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요나단은 결백하고 사울은 과오를 저지른 증거를 여러 번 나타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하나님은 사울 대신 요나단을 제비 뽑히게 했는가. 하나님은 사울이 시킨 맹세를 승인하지 않은 것이 틀림없고(24, 39절), 그날 요나단을 기적적으로 인도한 하나님께서 그를 처형하는 일에 동의하지 않은 것이 매우 확실하다. 그러나 그리스도 당시에 무죄한 분이 유죄 판결을 받도록 허락함으로써 하나님이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사악함을 드러낸 것처럼, 이제 하나님은 무죄한 요나단을 제비 뽑히게 허락함으로써 매우 효과적으로 왕의 악한 행로를 폭로했다. 겸비한 마음으로 통치를 시작했던 사울이 이제 자기 합리화라는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버렸다. 어떤 비범한 경험을 통하여, “왕은 어떤 잘못도 범할 수 없다”라는 기만을 떨쳐 버리도록 사울을 흔들어 깨우지 않는 한 지도자로서의 그의 유용성은 곧 파괴될 것이다.

14:43 내가 죽을 수밖에 없나이다.

 요나단은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을 훌륭하게 입증할 수 있었지만 진실을 말하고 왕의 명령에 순복했다. 만왕의 왕의 명령에 불순종한 부친을 그가 이보다 더 효과적으로 정죄할 수 있었을까? 사울은 사무엘 앞에서 자신의 공개적인 반역 행위를 변명했지만, 요나단은 부친의 무모한 판단에 순복함으로써 그날 자신의 행위가 정당함을 밝혔다.

14:44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사울이 판결을 얼마나 쉽게 내리는지! 요나단이 시인한 의식상의 과오는 속건제를 드리면 충분히 면죄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사울은 도덕적인 잘못을 범했다. 이런 과오는 자기 아들에게 내린 무모한 판결로 공중 앞에 드러났다. 사울의 양심은 백성에게 음식을 먹지 말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 그를 정죄했지만, 그는 맹세라는 수단에 의지하여 자기의 불안을 감추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는 자신만 정죄할 따름이었다.

14:45 백성이…요나단을 구원하여.

 백성은 온 종일 사울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 그들은 그가 아주 터무니없는 명령을 내렸을 때에도 순종했다. 그들은 사울이 사소한 의식상의 규정에 끝까지 집착할 때에도 순순히 복종했다. 그들은 우림과 둠밈이 침묵할 때 사울이 분개하는 것을 보았지만, 제비를 뽑자고 할 때 동의했다. 그들은 요나단이 무죄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그가 제비 뽑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그들은 그날의 영웅이 행한 엄청난 전공과,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의 용맹과 믿음을 통해 그들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는지를 기억했다. 요나단에게 힘을 주어 그 유명한 공훈을 세우도록 하신 그 하나님이 이제 군대의 마음을 북돋아 한 목소리로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할 것이라”고 외치게 했다.

  요나단에게는 감당해야 할 어려운 역할이 남아 있었다. 그 일이 완수될 때까지는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었다. 요나단은 어떤 취급을 받든 상관없이 부친에게 충성을 다했다. 때로는 이 충성심이 아버지의 급한 성미를 누그러뜨렸고, 다시금 아버지 편에서 싸우도록 했다. 그는 최후의 일각까지 충성을 다해 싸웠다. 요나단의 정직, 성실 그리고 믿음은 이스라엘 역사의 이 시점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특성이었다. 사울이라 할지라도 성령께서 정하신 경계를 뚫고 들어올 수는 없었다.

14:47 이기었고.

 본 장의 마지막 몇 절은 나라의 영적 진보보다는 물질적 진보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사울은 자신의 군사적 천재성에 매우 기뻐한 듯하다. 그는 자기 백성의 권익을 보호하는 일은 소홀히 하면서 왕으로서 자신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 이웃 나라들에 대항하여 공세를 취했다. 그는 새롭고 더 완벽한 행정 방법을 세상에 제시할 수 있었는데도 이방 나라들을 본받았다.

14:49 리스위.

 이스바알(Ishbaal) 즉 이스보셋임이 분명하다(참조 삼하 2:8 주석).

14:50 사울의 숙부 넬의 아들이며.

 이 성경절만으로는 사울의 숙부가 아브넬인지 넬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넬은 아비엘의 아들로 불렸고(51절), 동시에 여이엘의 아들로도 불렸다(대상 9:35, 36). 그러므로 아비엘과 여이엘은 동인이명(同人異名)일 수 있다(참조 출 2:18 주석). 사울의 아비 기스도 “아비엘의 아들”(9:1)로 불린 점으로 보아, 기스와 넬은 형제일 수 있지만 기록은 “넬이 기스를 낳았다”(대상 9:39)고 되어 있다. 이런 명백한 모순은 단순히 이름뿐 아니라 세대에도 차이가 나타나는데, 이는 넬이 또한 아비엘의 아들로 불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사무엘서와 역대기가 상충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독립적인 이야기들의 세부 사항이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히브리인 관습과 사고와 표현 방식에 비추어 살펴보면 조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이름이 다른 것은 두 가지 상황으로 설명될 수 있다. (1) 9:1의 명부는 넬의 이름을 생략하고 기스를 아비엘의 (손)자로 기록했을 것이다. 이는 “아들”이 이따금 손자나 그보다 더 먼 후손을 지칭하는 데도 사용되었고, 성경의 족보가 항상 모든 세대를 다 포함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참조 왕상 19:16; 단 5:11, 13, 18 주석; 제2권, 82, 83, 88). (2) 넬의 아들 기스는, 마치 요셉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야곱의 아들이 되어 지파의 우두머리로 그의 아들들 가운데 수록된 것처럼 양자로 입양되어 조부의 아들이 되었을 것이다(참조 창 48:5, 6; 민 1:10; 수 14:4). 두 설명 모두 주어진 사실들에 부합하므로, 아브넬이 사울의 숙부가 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경우는 민 10:29; 마 1:12 주석을 참조하라.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3권


'성경주석 > 사무엘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무엘상 16장 & 성경주석  (0) 2016.04.26
사무엘상 15장 & 성경주석  (0) 2016.04.25
사무엘상 13장 & 성경주석  (0) 2016.04.21
사무엘상 12장 & 성경주석  (0) 2016.04.20
사무엘상 11장 & 성경주석  (0) 2016.04.19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