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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0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사무엘상

사무엘상 20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6. 5. 2. 07:08

<사무엘상 20장 흐름정리>

본장은 급박한 위기에 처한 다윗이 요나단의 도움으로 피신하게 되는 아름다운 우정에 관한 기록이다. 왕의 신하들이 모두 배석하는 월삭 잔치에 다윗은 참석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의 의중이 어떠한지를 알아보기 위한 제안을 하였고, 요나단도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 결과,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의 결심은 아무런 동요가 없음이 확인되었다. 한편, 다윗과의 대화 가운데서 요나단이 다윗에게 여호와의 인자를 베풀 것을 구한 사실은(14~15절), 그가 사울 왕가의 후계자이면서도 다윗을 왕으로 세우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였음을 말해준다.


<사무엘상 20장 줄거리>

1. 다윗이 자신의 안전에 대해 요나단과 상의함.

11. 다윗과 요나단이 그들의 언약을 맹세로 새롭게 함.

18. 요나단이 다윗에게 신호를 보냄.

24. 다윗을 놓친 사울이 요나단을 죽이려 함.

35. 요나단이 애정어린 마음으로 다윗과 이별함.


<사무엘상 20장 개역한글>

1.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와서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부친 앞에서 나의 죄가 무엇이관대 그가 내 생명을 찾느뇨  

2.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되 결단코 아니라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내 부친이 대소사를 내게 알게 아니하고는 행함이 없나니 내 부친이 어찌하여 이 일은 내게 숨기리요 그렇지 아니하니라  

3. 다윗이 또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네게 은혜 받은 줄을 네 부친이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로 이를 알게 하지 아니하리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사심과 네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4.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  

5.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일은 월삭인즉 내가 마땅히 왕을 모시고 앉아 식사를 하여야 할것이나 나를 보내어 제 삼일 저녁까지 들에 숨게 하고  

6. 네 부친이 만일 나를 자세히 묻거든 그 때에 너는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성 베들레헴으로 급히 가기를 내게 허하라 간청하였사오니 이는 온 가족을 위하여 거기서 매년제를 드릴 때가 됨이니이다 하라  

7. 그의 말이 좋다 하면 네 종이 평안하려니와 그가 만일 노하면 나를 해하려고 결심한 줄을 알찌니  

8. 그런즉 원컨대 네 종에게 인자히 행하라 네가 네 종으로 여호와 앞에서 너와 맹약케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게 죄악이 있거든 네가 친히 나를 죽이라 나를 네 부친에게로 데려갈 것이 무엇이뇨  

9. 요나단이 가로되 이 일이 결코 네게 있지 아니하리라 내 부친이 너를 해하려 결심한 줄 알면 내가 네게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10.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 부친이 혹 엄하게 네게 대답하면 누가 그것을 내게 고하겠느냐  

11.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들로 가자 하고 두 사람이 들로 가니라  

1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증거하시거니와 내가 내일이나 모레 이맘때에 내 부친을 살펴서 너 다윗에게 대한 의향이 선하면 내가 보내어 네게 알게 하지 않겠느냐  

13. 그러나 만일 내 부친이 너를 해하려 하거늘 내가 이 일을 네게 알게 하여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내 부친과 함께 하신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14. 너는 나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를 내게 베풀어서 나로 죽지 않게 할뿐 아니라  

15.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16.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찌어다 하니라  

17.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18.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일은 월삭인즉 네 자리가 비므로 네가 없음을 자세히 물으실 것이라  

19. 너는 사흘을 있다가 빨리 내려가서 그 일이 있던 날에 숨었던 곳에 이르러 에셀 바위 곁에 있으라  

20. 내가 과녁을 쏘려 함 같이 살 셋을 그 곁에 쏘고  

21. 아이를 보내어 가서 살을 찾으라 하며 내가 짐짓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살이 네 이편에 있으니 가져오라 하거든 너는 돌아올찌니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평안 무사할 것이요  

22. 만일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살이 네 앞편에 있다 하거든 네 길을 가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셨음이니라  

23. 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영토록 계시느니라  

24. 다윗이 들에 숨으니라 월삭이 되매 왕이 앉아 음식을 먹을 때에  

25. 왕은 평시와 같이 벽 곁 자기 자리에 앉았고 요나단은 섰고 아브넬은 사울의 곁에 앉았고 다윗의 자리는 비었으나  

26. 그러나 그 날에는 사울이 아무 말도 아니하였으니 이는 생각하기를 그에게 무슨 사고가 있어서 부정한가보다 정녕히 부정한가보다 하였음이더니  

27. 이튿날 곧 달의 제 이일에도 다윗의 자리가 오히려 비었으므로 사울이 그 아들 요나단에게 묻되 이새의 아들이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 식사에 나오지 아니하느뇨  

28. 요나단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다윗이 내게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간청하여  

29. 가로되 청컨대 나로 가게 하라 우리 가족이 그 성에서 제사할 일이 있으므로 나의 형이 내게 오기를 명하였으니 내가 네게 사랑을 받거든 나로 가서 내 형들을 보게 하라 하였으므로 그가 왕의 식사 자리에 오지 아니하였나이다  

30. 사울이 요나단에게 노를 발하고 그에게 이르되 패역부도의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31.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니라

32. 요나단이 그 부친 사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그가 죽을 일이 무엇이니이까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33. 사울이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치려 한지라 요나단이 그 부친이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줄 알고  

34. 심히 노하여 식사 자리에서 떠나고 달의 제 이일에는 먹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 부친이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다윗을 위하여 슬퍼함이었더라  

35. 아침에 요나단이 작은 아이를 데리고 다윗과 정한 시간에 들로 나가서  

36. 아이에게 이르되 달려가서 나의 쏘는 살을 찾으라 하고 아이가 달려갈 때에 요나단이 살을 그의 위로 지나치게 쏘니라  

37. 아이가 요나단의 쏜 살 있는 곳에 이를 즈음에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외쳐 가로되 살이 네 앞편에 있지 아니하냐 하고  

38.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또 외치되 지체 말고 빨리 달음질하라 하매 요나단의 아이가 살을 주워가지고 주인에게로 돌아왔으나  

39. 그 아이는 아무런지 알지 못하고 요나단과 다윗만 그 일을 알았더라  

40. 요나단이 그 병기를 아이에게 주며 이르되 이것을 가지고 성으로 가라  

41. 아이가 가매 다윗이 곧 바위 남편에서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세번 절한 후에 피차 입맞추고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  

4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으로 들어오니라


<사무엘상 20장 성경주석>

20:1 다윗이…도망하여.

 다윗이 요나단과 상의하기 위해 기브아로 갔던 것이 명백하다. 사울이 거기 있었다면 다윗이 감히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았겠지만, 성령의 제지하는 힘 아래서 사울은 하루 낮과 하루 밤이 다 가도록 라마에 머물렀다(참조 19:23, 24). 이렇게 사울이 지체하자 다윗은 요나단을 만나 사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이때 다윗이 아내를 찾아갔는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다윗은 요나단이 계속 조언해 주리라고 확신했지만 미갈에 대해서는 그렇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참조 673쪽 지도.

20:1 내 죄악이 무엇이며.

 “죄악”과 “죄”라는 두 단어는 되풀이하여 사용한 동의어가 아니다. “죄악”으로 번역된 단어 아온(‘aon)은 “마음이 비뚤어지다”라는 뜻의 어근 아와(‘awah)에서 나왔다. 아온은 죄과(罪過)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응징까지 포괄하기도 한다. “죄”로 번역된 핫타아(h.at.t.a’ah)는 “표적을 빗나가다”라는 뜻의 어근 하타(h.at.a’)에서 나왔다. 다윗은 이렇게 묻는다. 내가 어떤 죄를 지었으며, 왕과 나라에 대한 나의 태도가 무엇이 비뚤어졌는가?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울을 위해 일하지 않았던가? 이스라엘을 위해 적군과 용맹스럽게 싸우지 않았던가? 항상 나의 동기와 소원은, 사랑하는 백성에게 성공을 가져다주는 일 아니었던가? 내가 표적을 맞추지 못하여 내 목적에 미치지 못한 곳은 어디란 말인가?

20:2 결단코 아니라.

 (「제임스왕역」에는 “God forbid”[하나님이 금하시기를]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할릴라(h.alilah). 혐오나 항의를 나타내는 감탄사로 사용된다. 원문에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없다. 9절에서처럼 “결코 네게 있지 아니하리라”와 같은 번역이 선호된다. “하나님이 금하시리라”라는 표현은 항의를 나타내는 오래된 영어 관용구로, 히브리어를 문자적으로 번역한 것이 아니다. 요나단은 아버지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정신착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확신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울이 요나단 자신과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겠다고 말했을 때(19:1)처럼 비밀리에 일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다윗에게 확언한다. 요나단은 사울을 설득한 다음 안심시켰기 때문에 이제 해결책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선지자 숙소에서 사울이 하는 행동을 본 다윗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

20:3 다윗이 또 맹세하여 가로되.

 즉 다윗은 자신의 말이 틀림없음을 맹세로 확언했다. 다윗은 그들이 친한 친구 사이임을 사울이 알고 있으며, 요나단이 과거에는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두렵건대 사울이 몰래 흉계를 꾸미면서 아들은 물론이요 아무와도 의논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요나단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아마도 요나단은 라마에서의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 아버지를 보지 못했으며 갑자기 사태가 악화되었음을 알지 못했다.

20:3 걸음.

 히브리어 페사(pesa‘). 이 단어는 구약에서 여기에만 등장한다. 이 구절에 “걸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현대의 관용구에 비견할 만한 구어적 표현의 실례를 보여 준다. 이러한 표현은 이야기에 생동감을 더해 주며 그 일이 실제로 있었음을 뒷받침해 준다. 

  공포에 휩싸인 다윗은 몇 시간 뒤에야 정신을 가다듬고 제대로 생각한 다음 거기에 따라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그는 장래의 행동을 결정짓는 데 필수적인 정보를 얻기 위한 계획을 세우면서 진정한 지도력을 보여 주었다.

20:5 월삭.

 주변의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유대인들도 음력을 지켰다. 음력으로 매달 첫 번째 날은 초승달이 뜨는 저녁에 시작했다. “월삭”이라 불리는 매달 첫날은 특별한 절일로, 예물을 드리고(민 28:11~15), 예물과 제물 위에 나팔을 불었다(민 10:10). 그 당시에 이러한 절기는 지파와 공동체 행사였으며, 따라서 사울의 사위로서 다윗은 참석해야 했을 것이다. 이야기에는 연중 어느 달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베들레헴에서 “매년제”(삼상 20:6)라는 절기가 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것은 연례 절기였을 것이며, 십중팔구 일곱 번째 달인 티쉬리(Tishri)월 첫날에 있던 신년 잔치였을 것이다. 이 티쉬리월은 오늘날 유대력도 그렇듯이 가을에 있었다. 이러한 집회는 모든 지파가 모일 수 있는 중앙 지역에서만 갖도록 정해져 있었다(신 12:5~16). 엘리의 시대에는 그곳이 실로였고 후일 왕정 시대에는 예루살렘이었다. 실로에서 법궤를 옮긴 후에는 지역별로 각기 모임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기브아에서 열리는 잔치와 동일한 잔치가 베들레헴에서도 열리고 있었다.

20:6 온 가족을 위하여.

 “온 족속(clan)을 위하여”라고 하는 편이 더 낫다.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로 나뉘어 있었지만, 이러한 지파도 다시 종족 즉 족속으로 무리 지어 있었다(참조 출 6:14~30). 베냐민과 유다 지파 가운데 어떤 종족은 기브아에서 만나고, 다른 종족은 베들레헴에서 만났다.

  어떤 사람들은 다윗이 베들레헴에 갈 계획이 전혀 없었다고 보기 때문에, 집을 방문할 것이라고 사울에게 전해달라는 부탁을 요나단에게 한 다윗의 진실성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나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러한 주장을 확인할 수 없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에서는 상세한 설명을 생략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만약 상세하게 설명했다면 상황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다윗의 짤막한 이야기는 이 모든 사건들은 사울의 행동을 시험하기 위해 단지 꾸며낸 것이라는 인상을 받게 만든다. 그러나 요나단이 아버지에게 한 말(28, 29절)로 미루어 보아 두 친구가 문제 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여기 기록되어 있는 것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음이 확실하다. 다윗은 형제들을 볼 생각이었고, 베들레헴에 잠시 들렀음이 확실하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654 655). 그러나 사울이 그를 추격할 사람들을 보내기 전에, 다윗은 들로 돌아와 몸을 숨기고 사울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알기 위해 요나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20:8 내게 죄악이 있거든.

 다윗에게는 자신이 도망다니는 신세가 된 것은 죄를 범해서가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다. 정적으로 낙인찍히고 도망자로 비참하게 살아가는 가운데 죄책감마저 든다면, 마음의 짐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결백함을 알고 있었기에 다윗은 어려운 시기를 견딜 수 있었다. 

  깨끗한 양심은 이 세상의 어떠한 손실도 상쇄할 수 있다. 죄의 쾌락에 빠져있는 악인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이러한 쾌락은 자책과 자기혐오라는 대가를 치르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이 땅의 더러워진 샘물을 마신 사람들은 과거를 되돌리고 생애에서 찍힌 오점을 지워낼 수만 있다면 가진 것을 모두 주려고 할 것이다. 반면에 거리낌이 없는 양심으로 하나님과 동료들을 대할 수 있는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물질적인 재물이 없을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부로도 살 수 없는 보화를 지니고 있다(참조 벧전 3:13~17).

20:9 너를 해하려 결심한 줄 알면.

 요나단은 사울의 태도와 관련한 다윗의 추론이 틀렸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사울이 때때로 마치 악귀처럼 행동하는 것은 정신착란 증세가 있기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단호하게 다윗의 말에 반박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 경험이 개인적으로 다윗에게 영향을 미쳤으므로, 기꺼이 사울의 태도를 확인하는 데 친구의 방법을 따르기로 한다. 잘한 일인지는 미래에 가서 밝혀지겠지만, 다윗의 방법을 따른다고 해가 될 것은 없었다.

  이 경험에는 소중한 교훈이 들어 있다. 사람마다 유전적 형질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삶의 문제에 부딪쳤을 때 대처하는 방식도 같지 않다. 하나같이 자신의 방법이 옳다고 믿는다. 그 결과 의견차이가 일어나고 반목하며 서로 비난하는 경우가 생긴다. 흥분하여 서로에게 내뱉은 말로 가족, 친구 심지어는 연인과도 결별하게 된다. 이기심은 높아만 가고, 지위를 차지하면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자만심으로 지위를 유지하려 한다. 이 장에서는 그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사울과 요나단의 방식이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참을성 없고 포악하며 완고하기만 한 사울은 자신이 우선하여야 하며 자신이 한 말이 틀림없으며 최종적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되어야 했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 요나단은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삶을 살았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훈련을 받았는데도 아버지와 아들이 왜 이렇게 다를까? 하나님께서 한 생애는 교화시키시고 다른 생애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사울은 악하게 태어나고 반대로 그의 아들은 고귀한 성격을 타고났단 말인가? 백성들은 사울의 모든 기행(奇行)을 받아들이고 그의 독단과 거만함을 허용해야만 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바울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롬 6:16) 된다. 인간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두 주인 가운데 하나에게 봉사하고 자신의 생각과 인생관을 맡긴다. 두 주인은 완전히 대립되는 표준을 대표한다. 아마도 사울은 어린 시절 내내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았던 것 같다. 아버지의 집에서 문제아였으며 친구들을 괴롭혔지만, 유다처럼 타고난 지도자인 듯하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울이 나귀를 쫓아 집을 떠날 때 아버지가 왜 걱정했는지 쉽게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하나님이 그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를 받아들였으며 새로운 심령을 주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10:6, 9). 그러나 사울은 하늘의 빛 가운데서 걷기를 거부했다. 반면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자아가 아닌 다른 관심사를 따라가기로 선택했다. 어린 시절부터 기도를 통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하나님의 섭리에 자신을 내 맡긴 요나단은 삶을 바라보는 방침을 확립했다. 이러한 삶에 대한 접근방식으로 요나단은 다윗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다른 경험과 함께 이러한 경험을 염두에 두고 다윗이 나중에 이렇게 노래한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20:13 여호와께서…너와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니.

 들로 나간 다음, 요나단은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지 상관없이 다윗을 버리지 않겠다고 엄숙히 맹세한다. 그가 바라던 대로 좋은 소식이 들리면, 다윗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나쁜 소식이 들리면, 다윗에게 진실을 알려 주고 그가 살기 위해 도망치는 동안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할 것이다. 요나단은 사울이 왕국을 다스리는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임재하셨음을 개인적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다윗을 만난 후부터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해 고귀한 운명을 계획해 놓았으며, 사울이 다윗을 향해 악의를 품을지라도 그 계획은 이루어지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요나단은 이러한 행동을 통해 진정한 아량을 보여 주었다.

20:15 내 집에서.

 요나단은 다윗 집안과 공공연히 반목하고 있었던 집안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신의 매제(妹弟)에게 맡기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바 몰락해 가는 자신의 가족을 대신할 집안과 기꺼운 마음으로 제휴하기로 했다. 요나단에게는 하나님의 계획이 가족간의 유대보다 먼저였다. 그것은 개인적인 안녕을 원해서가 아니라 진리가 결국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20:15 영영히.

 히브리어 아드-올람(‘ad-‘olam). 문자적으로 “한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라 할 때 그 기간은 그것과 연관된 개념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이 경우 시간의 범위는 양가가 동시에 존재하는 기간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영히”란 “끝없이”라는 뜻일 필요는 없다. 참조 출 21:6 주석.

20:16 언약하기를.

 15절의 히브리어를 번역하는 것은 어렵다. 「70인역」은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여호와께서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끊어버린 때 그대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혹 요나단의 이름이 다윗의 집에서 발견될진대 그때에 여호와께서 다윗의 적을 찾아낼지어다.”

20:23 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요나단이 좋은 소식이 나오기를 바란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 않더라도, 여호와가 당신의 목적을 어떻게든 이룰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자신과 다윗이 함께한 시간을 허락하신 동일한 하나님이 그들을 계속 지켜볼 것을 알았다.

20:26 부정한가보다.

 성격이 악한 사울은 분명 형식에 얽매이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다윗이 그렇게 특별한 잔치에 오지 않은 이유는 예식적 부정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참조 레 15; 삼상 21:3~5 등). 그러나 이때 그의 최대 관심사는 예배의 형식이 아니라 감히 왕에 앞서 백성의 갈채를 받은 젊은이의 행방이었다.

20:27 이튿날.

 의식적(儀式的) 부정의 문제였다면, 다윗은 씻고 일몰 무렵에 정(淨)하여져 이튿날 참석했을 것이다. 다윗이 참석하지 않았음을 안 사울은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이새의 아들”에 대해 요나단에게 물어 본다. 다윗을 향한 증오가 컸기 때문에 그의 말투가 결코 상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참조 31절). 다윗은 두 번이나 사울의 살인적인 손에서 벗어났다. 사울은 다시 한 번 다윗을 살해하려 마음먹는다.

20:28 가기를 간청하여.

 참조 6절 주석.

20:30 패역부도의 계집.

 “계집”이라는 단어는 히브리 성경에서는 빠져있지만, “패역한”, “부도한”이라는 단어가 그 형태에 있어서 여성이기 때문에 이 말이 들어가야 분명해진다. 따라서 “계집”이라는 말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사울은 “계집”이라는 단어를 빼고 여성형 한정사를 두 개 사용하여 모욕에 모욕을 더하고 있다. 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계집”, “어미”라는 말을 빼고 서술적인 저주의 말만 퍼부었다. 동방에서 가장 모욕적인 말은 어머니에 대해 치욕적인 말을 하는 것이다.

20:31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사울은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왕국을 유지할 결의에 차 있었다. 이러한 목적을 추구하면서 이스라엘의 왕은 무력과 투쟁을 통해서 왕권을 손에 쥐고, 왕국을 유지하기 위해 싸우다 죽어간 이웃나라 왕의 표본을 따랐다. 사울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최고 통치자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20:34 다윗을 위하여 슬퍼함이었더라.

 이 경험은 요나단에게 충격으로 와 닿았으며 환멸감을 느끼게 했다. 아버지와 공개적으로 결별하는 것은 그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새의 아들”과 운명을 함께하겠다는 그의 결정이 시험을 받았지만 옳은 일에서 떠나기를 거부했다. 애굽 왕좌를 거절한 모세와 같이 요나단은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다(히 11:25). 그는 예수께서 후에 말씀하신 사실을 경험으로 알았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37).

20:35 작은 아이.

 요나단은 “아이”와 함께 활과 화살을 들고 나가, 들판으로 가려는 이유를 위장했다. 그가 사냥이나 활쏘기 연습을 하러 나가는 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20:38 빨리 달음질하라.

 22절과 비교하라. 이 말은 다윗에게 상황이 아주 중대함을 알리기 위해 첨가되었다.

20:41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

 문자적으로 “다윗이 위대하게 되었다.”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다. 「70인역」에는 오랫동안 울었거나 최고조로 울었다는 개념이 들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다윗이 앞으로 닥칠 시련에 대비해 “위대하게” 되었거나 “강해졌다”는 의미로 본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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