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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9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사무엘상

사무엘상 19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6. 4. 29. 07:06

<사무엘상 19장 흐름정리>

요나단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의 의지가 노골화됨에 따라, 다윗의 정치적 망명 생활이 시작되었다. 사울은 다윗이 달아난 곳을 수소문하여 그를 잡아오도록 사람들을 세 차례나 보내었지만, 그들 모두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예언을 하였다. 사울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하나님이 다윗을 특별히 보호하심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적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고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사울은 그 뜻을 받아들이기는커녕 더욱 패역한 길로 달려갔다.


<사무엘상 19장 줄거리>

1. 요나단이 다윗을 죽이려는 아버지의 의도를 알려 줌.

4. 아버지를 설득하여 화해하게 함.

8. 다윗이 새로운 전쟁에서 크게 승리함으로 사울이 다윗에게 사악한 분노를 발함.

12. 미갈이 다윗의 침상에 우상을 넣어 아버지를 속임.

18. 다윗이 나욧에 있는 사무엘에게 감.

20. 사울의 사자들이 다윗을 잡기 위해 가고,

22. 사울도 직접 에언함.


<사무엘상 19장 개역한글>

1. 사울이 그 아들 요나단과 그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기뻐하므로  

2. 그가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 사울이 너를 죽이기를 꾀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  

3. 내가 나가서 너 있는 들에서 내 부친 곁에 서서 네 일을 내 부친과 말하다가 무엇을 보거든 네게 알게 하리라 하고  

4. 요나단이 그 아비 사울에게 다윗을 포장하여 가로되 원컨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치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5.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무고히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6.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치 아니하리라  

7.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그 모든 일을 알게 하고 그를 사울에게로 인도하니 그가 사울 앞에 여전히 있으니라  

8. 전쟁이 다시 있으므로 다윗이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도륙하매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니라

9. 사울이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 집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접하였으므로 다윗이 손으로 수금을 탈 때에  

10.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 다윗이 그 밤에 도피하매  

11. 사울이 사자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그를 지키다가 아침에 그를 죽이게 하려 한지라 다윗의 아내 미갈이 다윗에게 일러 가로되 당신이 이 밤에 당신의 생명을 구하지 아니하면 내일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12. 미갈이 다윗을 창에서 달아내리우매 그가 도망하여 피하니라  

13. 미갈이 우상을 취하여 침상에 뉘고 염소털로 엮은것을 그 머리에 씌우고 의복으로 그것을 덮었더니  

14. 사울이 사자들을 보내어 다윗을 잡으려 하매 미갈이 가로되 그가 병들었느니라  

15. 사울이 또 사자들을 보내어 다윗을 보라 하며 이르되 그를 침상채 내게로 가져오라 내가 그를 죽이리라  

16. 사자들이 들어가 본즉 침상에 우상이 있고 염소털로 엮은 것이 그 머리에 있었더라  

17. 사울이 미갈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이처럼 나를 속여 내 대적을 놓아 피하게 하였느냐 미갈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그가 내게 이르기를 나를 놓아 가게 하라 어찌하여 나로 너를 죽이게 하겠느냐 하더이다 하니라  

18.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고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거하였더라  

19. 혹이 사울에게 고하여 가로되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더이다 하매  

20.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의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신이 사울의 사자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21. 혹이 그것을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다른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고로 사울이 세번째 다시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22. 이에 사울도 라마로 가서 세구에 있는 큰 우물에 이르러 물어 가로되 사무엘과 다윗이 어디 있느냐 혹이 가로되 라마 나욧에 있나이다  

23.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행하며 예언을 하였으며  

24. 그가 또 그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종일 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웠었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사무엘상 19장 성경주석>

19:1 다윗을 죽이라.

 문자적으로 “다윗을 죽게 하라.” 사울은 다윗을 정치적 숙청 대상으로 삼고는, 요나단과 정부 관료들 몇 명과 이 일을 의논했다. 틀림없이 다윗을 죽여도 어떠한 처벌도 하지 않겠다고 보장했을 것이다. 

  이것은 다윗을 제거하려는 사울의 다섯 번째 시도이다. (1) 그는 다윗에게 창을 던졌다(18:10, 11). (2) 그리고는 다윗을 최전선에 배치하여 전사하게 하려는 흉악한 계획을 이루려 했다(18:17). (3) 그 다음으로 사울은 자신의 딸 메랍을 주기로 약속해 놓고는 그를 기만하여 다른 딸을 주어 다윗이 경솔하게 행동하여 벌을 받게 되기를 바랐다(18:19). (4) 그는 다윗에게 위험한 임무를 맡겨 미갈과의 결혼에 필요한 지참금을 마련하도록 허락했다(18:25). (5) 이제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이 확실해지자, 사울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다윗을 죽이려 하고 있다.

19:3 말하다가.

 역경을 통해 우정의 진실성 여부가 드러난다. 요나단은 다윗이 왕위를 빼앗을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사울에게 그 사실을 납득시킬 수 없었다. 요나단은 입장이 난처했다. 그가 독재자의 욕망에 반기를 든다면, 자신의 아버지에게 불충하다고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나단은 진정한 친구로서 다윗에게 사울에 대해 사실대로 말했다. 그것은 다윗에게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미리 경고해 주고 진정한 친구로서 계속 다윗을 정치적으로 지원하겠다는 확신을 심어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사실 요나단에게 큰 시험이었다. 요나단은 아버지와 다윗 중 어느 쪽에 충성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했다. 더 이상 양쪽에게 충실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는 현명한 판단력을 발휘하여, 아버지에게 감화를 주는 동시에 다윗을 임박한 죽음에서 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행동했다.

19:4 왕은…범죄치 마옵소서.

 친구와 “여자의 사랑보다 승한”(삼하 1:26) 사랑으로, 혈연을 나눈 사람들보다 더 가까운 유대관계로 묶여 있으면서 다윗의 내면 깊숙한 생각까지도 알고 있는 요나단은 다윗과 사울 사이의 중재자로 적격이었다. 요나단은 아버지에게 간청하면서 권위에 존경을 표하고 원칙을 엄중히 준수한다는 것을 나타냈다. 사울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그는 왕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말을 알고 있었다. 곧 그것은 다윗이 골리앗에게서 승리를 거두고 어떤 경우에든지 개인적으로 왕에게 충성을 계속했다는 사실이었다.

19:5 무고히.

 요나단은 사울에게 다윗이 충성스럽게 봉사한 것에 감사해야 할 이유를 조목조목 대면서 그를 죽일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재치 있게 증명했다.

19:6 사울이…말을 듣고.

 적절한 순간에 하는 적절한 말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가!(참조 잠 25:11; 사 50:4). 요나단은 이번뿐 아니라 다른 많은 경우에도 아버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가 아버지의 잘못을 비난했더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19:8 크게 도륙하매.

 하나님은 사울에게 다윗의 충성심과 봉사의 가치를 깨닫게 할 추가적인 증거를 제공했다.

19:9 악신.

 참조 16:14, 15 주석. 사단은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을 때부터 그가 왕이 되기 위해 훈련받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사단은 당연히 하나님의 계획을 훼방 놓으려 했다. 다윗이 왕국을 빼앗으려 한다는 생각을 사울에게 심어 주는 것만큼 하나님의 계획을 훼방 놓는 데 효과적인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19:10 그 밤에 도피하매.

 전형적인 히브리식 이야기 전개 형태에 따라 다윗이 도망쳤다는 결과를 먼저 꺼내고 그 이후에 더 자세한 내막을 첨가하고 있다. 다윗이 당장 도망을 가지는 않았다. 먼저 집에 잠시 들렀다.

19:11 이 밤에.

 사울이 다윗을 죽이라고 명한 것을 미갈이 어떻게 알았는지 나와 있지 않다. 아마도 숨어서 다윗을 기다리고 있는 신하를 보자, 아버지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린 듯하다. 아니면, 다윗의 마음이 움직여 미갈에게 다 털어놓았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행보는 여호와께서 세우시고”(시 37:23)라고 열정적으로 찬양할 때, 아마 다윗은 지금의 경험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산중턱에서 집도 없이 산짐승처럼 쫓기는 다윗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러나 다윗은 밤새도록 울고 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시 59:16; 참조 시 59편의 표제).

19:12 창에서 달아 내리우매.

 “창”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구멍을 내다”, “꿰뚫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나왔다. 고대에는 집을 지을 때 대문을 제외한 모든 창문은 벽으로 둘러싸인 뜰과 마주보게 했다. 흔히 지붕이 평평하여 집안에서나 뜰에서 올라갈 수 있었다. 미갈이 다윗을 내려보낸 창문이 지붕으로 나 있었는지 아니면 집 뒤쪽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어느 경우든, 사울이 보낸 밀사가 망을 보고 있는 대문의 반대편 어딘가에 있었다. 정탐꾼들도 유사한 방법으로 여리고 성벽 밑으로 달아 내려졌다(수 2:15). 바울은 다메섹의 벽에서 달아 내려졌다(행 9:25). 제자들은 평평한 지붕을 열어 중풍병자를 예수께 달아 내렸다(눅 5:19). 미갈의 신속한 조치가 현명했다는 것은 다음날 다윗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받은 신하들이 문을 열라고 소리칠 때 확연해졌다.

  의를 위한 목적은 싸우기보다는 오히려 도망쳐야 훨씬 훌륭하게 진척될 때가 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고 사울은 살인을 기도할 만큼 의의 길에서 멀리 벗어나 있었으므로 다윗이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다윗은 지금까지 원수에게도 등을 돌린 적이 없다. 다윗이 골리앗과 맞설 때와 같은 정신으로 사울을 대했더라면,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을 그의 편으로 끌어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면, 사울 역시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무조건 그에게 복종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전이 일어났을 것이다. 사울이 죽은 지 7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리스도의 경우도 다윗과 마찬가지였다. 구주께서는 용감하고 두려워하지 않으시면서 하늘의 군사를 불러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그렇게 하는 대신, 악한 사람들이 번영하도록 허용했다.

19:13 우상.

 히브리어 트라핌(terapim). 참조 창 31:19; 레 19:31 주석. 사람으로 착각할 만큼 큰 우상은 정말 흔치 않다.

19:13 엮은 것.

 (「제임스왕역」에는 “베개”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베개”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구약의 다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으며, 무슨 뜻인지 확실하지 않다. 고대의 “베개”가 보통 딱딱하며 나무, 진흙, 돌 혹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참조 창 28:11 주석), 여기서 언급한 물건은 “베개”가 아닌 다른 것으로 보인다. 사람 머리처럼 우상의 머리에 붙인 검은 염소털로 만든 가발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19:14 그가 병들었느니라.

 다윗이 실제로 “아팠을”지도 모르지만, 미갈이 의도적으로 거짓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다윗이 도망갈 시간을 벌기는 했지만(참조 15, 16절) 미갈의 행위는 간과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19:17 너는 어찌하여 이처럼 나를 속여.

 사울은 기꺼이 미갈을 미끼로 이용해 다윗을 죽음으로 몰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 딸이 자신보다는 다윗에게 더 충실하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감쪽같이 속은 사울은 신하들에게 체면이 깎일까봐 두려워했다. 미갈은 분명 아버지의 특성을 어느 정도 물려받았다. 그는 서슴지 않고 남편이 자신을 죽이겠다고 위협했다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 거짓말은, 다윗이 자신의 딸을 위협한다고 생각하여 그를 죽이려는 목적을 이루는 데 더욱 혈안이 될 수 있는 빌미를 사울에게 제공했다. 다윗이 자신의 아내를 죽이려고 했다면, 그를 제거하기 전에는 왕가의 어느 누구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미갈이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은 사울이 그렇게 훈련을 시킨 결과이므로 모든 것이 사울의 탓이다. 라반이 속임수를 써서 그 벌이 자신에게 돌아온 것과 마찬가지다(창 31:14~20, 35). 라반, 야곱, 사울 모두 그리스도가 한 말씀이 사실임을 증명했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2).

19:18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다윗은 분명히 하나님이 임명한 지도자인 사울의 행동으로 매우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하나님은 왜 사울을 계속 왕으로 두는 것일까? 하나님은 유별난 분인가? 그분이 이 나라를 버리셨는가? 실로에 있는 성막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은 중단되었고 법궤는 기럇여아림의 한 레위인의 집에 있었다. 수 세기에 걸쳐 계속된 이 종교와 예배가 다 속임수였단 말인가? 정말 하늘에 하나님이 계실까? 그분에게 이스라엘을 위한 계획이 있을까? 다윗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높은 표준이 내팽개쳐질 것이었다면, 그가 양치기 일을 그만두고 왕국을 세우는 일을 도와야 했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왕이 블레셋인에게서 승리를 거둔 사람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블레셋인과 싸워서 무슨 득이 있을까? 다윗은 감히 손을 들어 여호와께서 기름 부은 자를 치지 못했다(24:6, 10). 그러나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참조 673쪽 지도.

  목숨을 노리는 사울 때문에 겁에 질린 다윗은 당연히 양우리를 지키던 그를 이스라엘을 책임지는 자리로 불렀던 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했다. 그가 라마에서 다윗을 가르친 것으로 추정된다. 다윗은 사무엘과 함께 있으면서 성소로 도망한 것처럼 사울로부터 안전함을 느꼈을 것이다(참조 왕상 1:50~53; 2:28~34).

19:18 나욧에 가서 거하였더라.

 문자적으로는 “숙소에 앉았다”라는 뜻 같다. 하지만 나욧의 의미는 불분명하다. 야샤브(yas∨ab)라는 동사는 “거하다”라는 뜻말고도 왕이 옥좌에, 판사가 법정에, 선생이 학생 앞에 “앉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숙소”는 라마에 있었으며(19, 22, 23절), 아마도 사무엘이 그의 학교에서 훈련받는 젊은이들을 위해 세운 기숙사인 듯하다. 사무엘이 연례 순회로 떠나있지 않고 라마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 다윗이 찾아왔다(삼상 7:16, 17).

19:20 사울이…사자들을 보내었더니.

 사울이 다윗을 잡으라고 기브아에 보낸 사자들이 엉뚱한 행동(참조 21절)을 하는 바람에 사울의 계획은 세 번이나 좌절되었다. 연달아 보냈던 사자들은 성령에 의해 다윗을 체포하지 못하도록 제지당하고는 대신 선지자 학교 활동에 참여하였다.

19:20 수령으로 선 것을.

 즉 학교의 우두머리로 선 것을.

19:23 하나님의 신.

 기브아에서 라마까지는 기껏해야 12~13킬로미터밖에 안 되었다. 사울은 그 날 일이 진행된 과정에 격분한 나머지 마침내 결과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 다윗을 죽이기로 마음먹는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653 654). 그러나 성령의 힘이 아주 강했기 때문에 사울은 그의 영혼이 하나님을 배반했다는 사실만 드러냈으며, 인간의 분노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19:24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사울은 전에 기름부음을 받을 때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했으며, 목적이 순수했기 때문에 마음의 변화가 일어났었다(10:5~11). 이제 사울의 분노는 다시 자제되었고 하나님이 다윗을 보호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를 보았다. 요세푸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정신적으로 혼란에 빠졌으며 영적으로 심하게 불안정했다. 그래서 사무엘과 다윗이 있는 자리에서 옷을 벗어 던지고 넘어지더니 밤낮으로 꼬박 하루를 땅바닥에 누워 있었다”(Antiquities vi. 11. 5).

19:24 벌거벗은 몸으로.

 이렇게 번역된 말은 아마도 완전히 옷을 벗었거나(욥 1:21), 해지고 초라한 옷을 입고 있거나(욥 22:6; 24:7, 10; 사 58:7), 외투는 옆에 놓아두고 윗옷만 입고 있다(참조 사 20:2)는 것을 뜻하는 듯하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된 듯하다. 즉 사울은 왕의 예복을 벗어두고 집안에서 보통 입는 속옷인 윗옷만 입고 있었다. 길거리에서는 대개 겉옷, 즉 외투를 그 위에 입는다. 사울이 왕의 예복을 벗어서 선지자 학교의 학생들과 거의 비슷한 용모로 보였을 것이다.

  아마도 여기서 성령이 마지막으로 사울에게 직접 탄원한 것 같다. 그는 다윗의 명분이 정당하다는 고백뿐 아니라 자신의 고집스런 행동을 정죄하는 말을 토로했을 것이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영혼들의 큰 원수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경륜이 공의롭고 자신의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할 것이다(참조 빌 2:10, 11). 그러나 해묵은 질투와 적개심을 다시 느끼고 폭발하면서 마지막으로 증오와 분노의 말들을 쏟아 부을 것이다(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671, 672,). 사울이 다윗에게 품은 적개심도 마찬가지였다. 사울을 아주 오랫동안 조종했던 악신이 다시 돌아와 보니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전혀 없는 것을 발견하고 어느 때보다 더 강하게 그를 사로잡는다(마 12:44, 45).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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