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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ORY
사무엘상 22장 & 성경주석 본문
<사무엘상 22장 흐름정리>
계속해서 다윗은 아둘람 굴과 모압 미스베로 도피하였고, 선지자 갓의 조언에 따라 유다 땅(헤렛 수풀)으로 들어갔다. 이 약속의 땅과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떨어져 있어서는 안된다는 사실과, 다윗의 유일한 은신처와 요새가 여호와시라는 사실을 주지시키는 메시지였다. 한편, 6절 이하는 도엑의 밀고로 인해 놉에 있는 제사장들과 그 가족들이 살육당한 끔찍한 사건을 보도한다. 사울은 오직 다윗을 죽여야 한다는 일념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준 사람들이면 모두 처단하는 살인마로 변해 있었다.
<사무엘상 22장 줄거리>
1. 일행들이 아둘람에 있는 다윗에게 나아옴.
3. 미스베에서 다윗이 모압왕에게 부모를 맡아줄 것을 청함.
5. 갓의 권고로 헤렛으로 감.
6. 사울이 신하들의 불충을 불평하면서 다윗을 추격하려 함.
9. 도엑이 아히멜렉을 고소함.
11. 사울이 제사장들을 죽이라고 명함.
17. 시위자들이 명을 거역함으로 도엑이 제사장들을 처형함.
20. 아비아달이 도망하여 다윗에게 그 소식을 전함.
<사무엘상 22장 개역한글>
1.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명 가량이었더라
3.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을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로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4.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이 다윗의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6.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나무 아래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 곁에 섰더니
7.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로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8.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것을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9.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가로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것을 내가 보았었는데
10.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식물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11. 왕이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 아비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
12. 사울이 가로되 너 아히둡의 아들아 들으라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13.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로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뇨
14.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모신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15.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컨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일의 대소간에 아는것이 없나이다
16. 왕이 가로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
17. 왕이 좌우의 시위자에게 이르되 돌이켜 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의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고발치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18.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이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이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자 팔십 오인을 죽였고
19.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20.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21.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고하매
22.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고할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비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연고로다
23. 두려워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보전하리라 하니라
<사무엘상 22장 성경주석>
22:1 아둘람굴.
요세푸스에 따르면(Anti- quities vi. 12. 3), 아둘람 성읍 근방에 있는 동굴이라고 한다. 아둘람은 산지 지역이 셰펠라 쪽으로 낮아지기 시작하는 서쪽 비탈에 위치한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26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키르베트 엣-셰이크 마드쿠르(Khirbet esh-Sheikh Madhkur)로 확인되었다. 아둘람 성읍은 다윗이 블레셋 거인과 대면한 엘라 계곡 동쪽 끝자락에 있다. 구릉 지역에는 동굴이 많이 있는데 몇몇 동굴은 아주 크다. 사암층이 아주 부드러워 조개 껍데기로도 벽을 깎아 내릴 수 있다. 수 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 껍데기 자국이 남아 있다. 이러한 동굴 중 일부에서 양치기들이 가축을 키웠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로 팔레스타인 성읍들에서 쫓겨났을 때 아둘람에서 남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몇몇 동굴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일부 동굴에는 로마의 카타콤과 유사한 납골당과 토굴이 있다. 아둘람굴을 은신처로 삼은 다윗은 베들레헴의 우물에서 길은 물을 마시고 싶어했다. 용맹스런 다윗의 부하 셋이 목숨을 걸고 예루살렘 근방 르바임 계곡을 침략했던 블레셋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랑하는 지도자에게 우물물을 가져다주었다. 이들의 충성심에 깊이 감동받은 다윗은 여호와께 예물로 물을 부었다(삼하 23:13~17; 대상 11:15~19). 이 사건은 추수기(삼하 23:13; 참조 삼상 23:1), 즉 한 해 중 봄과 초여름에 일어났다. 다윗은 이 동굴에서 겨울을 보낸 것 같다.
시 57편 표제에 따르면 다윗이 아둘람굴에서 이 시편을 썼다고 한다. 믿음과 용기를 회복한 다윗은 “사자 중에 처하며…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시 57:4)은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하나님이 구원해 주리라는 확신을 나타냈다. 그의 태도가 변한 이유는 부분적으로 선지자 갓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갓이 동굴에서 지내던 다윗과 그 일행을 만나 함께 지냈으리라 추측한다(참조 5절 주석).
22:3 미스베.
문자적으로 “망대.” 모압의 산악 지역 곳곳에서 이러한 “요새”의 유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들은 산등성이에서 서로 볼 수 있도록 지어졌다. 각 요새에는 정찰대가 주둔해 연락망을 구축했다. 미스베가 정확하게 모압 어디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기르에서 멀지 않은 모압 산지의 요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기르는 후에 모압의 수도가 된 것으로 보인다(참조 왕하 3:25~27). 오늘날의 지명은 케라크(Kerak)인데, 와디 케라크(Wadi Kerak)의 비탈에 위치한 마을로, 방어하기에 적합한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었다. 기르에서 22.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와디 헤사(Wadi H.esa-)가 있는데 에돔의 북부 경계선인 세렛강으로 성경에 나온다. 사울은 왕위에 오른 후 모압과 전쟁을 벌였다(삼상 14:47). 그러므로 사울이 무법자로 선언한 이들은 모압으로 도망갔다. 다윗 또한 증조할머니 룻이 모압 사람이라는 사실에 영향을 받아 거기로 도피한 것 같다.
22:4 요새.
히브리어 므추다(mes.udah). “성채” 또는 “요새”라는 뜻으로, “사냥하다”는 의미의 어근 추드(s.ud)에서 나온 말이다.
22:5 갓.
다윗의 생애에서 두각을 나타낸 한 사람이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다. 사울이 제사장들뿐 아니라 사무엘의 수하에 있던 선지자들에게도 등을 돌리자, 진실로 경건한 사람들의 마음이 왕에게서 소원해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아마도 다름 아닌 사무엘 자신이 갓을 보내 다윗과 연락을 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이스라엘왕은 하나님께 영감받은 선견자와 함께함으로써 크게 도움받을 것이었다. 다윗의 생애 동안 갓은 그와 함께한 선견자이다(삼하 24:11~19). 선지자 나단과 함께 갓은 다윗의 전기를 편찬했다(대상 29:29). 갓이 평생 친구였던 다윗 왕보다 오래 살았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젊었을 때 다윗을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갓은 다윗을 찾아 미스바까지 여행했다기보다는 다윗이 아둘람에 있을 때 그에게 가서 모압까지 동행한 듯하다.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다윗과 관련한 정보의 편린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돕는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많은 상세한 이야기가 빠졌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이야기를 복원한다면 흥미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선지자를 보내 인도한 것처럼 사울에게도 똑같이 했다. 두 사람의 삶은 대조를 이루며,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다.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은 실패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진정한 성공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일들을 하나라도 덜 이루기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계획이 계속 거부되었기 때문이다.
22:5 요새에 있지 말고.
다윗은 모압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유다에서 그를 필요로 했다. 사울의 군대는 계속되는 블레셋인의 침략에 무기력했으며(삼상 23:1, 27; 대상 11:15), 상황이 불안정했다. 나발의 이야기는 목자들도 무장 병력의 보호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삼상 25:15, 16, 21). 사울이 다윗을 증오하는 것이 다윗이 외국으로 도망갈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과거에 다윗을 수없이 많이 보호했던 하나님이 지금 와서 그를 버리지 않을 것이며, 고난과 시련을 통해 미래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상황을 전개시켜 나갈 것이었다.
고난을 통한 훈련은 심지어 예수의 생애에서도 효력이 있었다. 우리 구원의 주도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히 2:10) 되었다. 다윗은 온갖 문제의 요인이 도사리고 있는 유다의 한복판으로 돌아옴으로써 주위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어야 했다. 오늘날 하나님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당신의 자녀들에게 신실함을 보여 주고 싶어한다. 그분은 상황이 어려워질 때 자신의 자녀들이 후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기독교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기독교가 인간 자신과 사단을 섬기는 것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기를 원한다.
22:5 헤렛.
헤브론 서북쪽 산악지역 끝자락에 위치한 오늘날의 카라스(Kharas)로 보는 학자들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22:6 다윗과…나타났다.
이 장에 나오는 나머지 이야기를, 히브리 문서에서 때때로 사용하는 대로 다른 주제를 논하기 전에 한 주제를 결론으로 끌어가기 위해 엄격한 연대 순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보여 주는 실례로 보는 성경 주석자들도 있다. 이 구절을 그렇게 해석한다면, 도엑이 제사장 아히멜렉을 고발한 것과 놉에서의 학살이 다윗의 처음 탈출 직후에 있었지만, 다음 장에서 아비아달이 그일라에 도착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학살 사건을 도입할 필요가 생길 때까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의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해석은 다윗이 실제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몰랐다는 아히멜렉의 자백에 주로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추론이 비논리적인 것은 아니다.
이야기가 연속적인 사건을 서술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 또한 타당하다. 그럴 경우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아둘람 요새에 위치한 은신처에서 나와 헤렛 수풀에 진을 쳤음이 알려졌으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왕은 부하들에게 반역자와 공모했다며 불만을 터트렸다(8절)는 뜻이다. 그리하여 목자였던 도엑은 기회를 잡아 아히멜렉을 밀고하기에 이른다(9, 10절). 도엑과 같은 신분의 사람이 다윗을 성소에서 보았을 때 그가 거기에 온 실제 이유를 알았다고 생각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다윗이 사울의 심부름을 가는 길에 자문을 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곳에 들른 것에 이상한 점이 없었을 것이므로 그 당시 도엑은 이것을 신고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히멜렉의 대답은 사건의 순서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다윗이 방문했을 당시 아무것도 몰랐다고 해명함으로써, 배신으로 추정된 행위를 한 때와 제사장들이 사울 앞에서 심문을 받을 때 사이의 시간 간격이 얼마나 되는지에 상관없이 자신을 논리적으로 변호했기 때문이다(참조 14, 15절 주석). 그러므로 반드시 다윗이 성소를 방문한 직후에 제사장 학살과 놉에서의 대학살이 일어났다고 볼 수는 없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658 659).
22:6 에셀나무.
(「제임스왕역」에는 “라마에 있는 한 나무”로 되어 있음-역자 주). 라마와 기브아는 꽤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참조 1:1 주석), 사울이 라마에 위치한 나무 아래 앉아 있으면서 기브아에 있을 수가 없다. 여기서 히브리어 라마(ramah)는 겔 16:24, 25에서처럼 “높은 곳” 즉 “높은 대(臺)”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 기브아의 높은 곳은 아마도 그 성읍 사람들이 좋아하는 만남의 장소였을 것이다.
22:8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정신병에 가까운 질투심에 사울은 자신을 동정하면서, 다윗을 잡으려는 계획이 좌절된 것을 자신을 뺀 모든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자신의 부족이 유다에서 온 적수를 돕기 위해 정보를 숨겼다며 비난에 열을 올린다. 사울은 아들조차도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반역죄를 지었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도 한 번 아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한 적이 있다(14:44). 이제 그는 백성들이 전에 없이 요나단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22:9 도엑이…대답하여 가로되.
목자장 도엑은 왕과 함께 자신의 지위를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복수할 기회가 왔음을 알아챘다(참조 21:7 주석). 도엑은 다윗에게 음식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묻고 무기까지 제공해 준 제사장(10절)에 비하면 요나단과 베냐민 지파는 잘못이 없다고 사울에게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 도엑은 상을 후하게 주며 높은 지위도 주겠다는 유혹를 받고서야 자청해서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659).
22:14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아히멜렉은 다윗을 도왔다는 죄목은 부인하지 않았지만 불충했다는 죄목은 부인했다. 그의 대답으로 이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 의견이 분분하다(참조 6절 주석). 다윗이 기브아에서 도망간 즉시 이 사건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히멜렉의 대답에서 그가 그 순간까지 다윗이 더 이상 사울의 가장 충실한 신하가 아니며 왕의 집안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무지했다고 해석한다. 다윗이 오랫동안 도망자이자 범죄자였는데도 사울에게 그가 “왕의 모신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라고 말할 만큼 아히멜렉이 무지하고 어리석을 리가 없다.
이러한 결론은 동사를 현재 시제로 번역한 영어 성경에 근거하고 있다. 실제로 히브리어 본문에는 제임스왕역에서 “goeth”로 번역된 수르(sur)라는 동사 하나만 있다. 이 절에서 “is”가 세 번 나오지만 원문에 첨가된 것이다. 여기 나오는 수르라는 동사의 형태는 현재와 과거의 의미가 모두 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논의 중인 기간과 관련하여 문장을 매우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시제는 문맥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아히멜렉의 말을 문자적으로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만큼 충실한 자가 누구인가? 그는 왕의 사위이며 당신의 분부대로 따르는(또는 따랐으며),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문맥상 과거형을 쓰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이러한 문장을 영어로 번역할 때 필요한 동사를 삽입하는 것은 번역자가 제일 좋다고 판단하는 대로 맡겨야 하겠지만, 그럴 경우 본질적으로 의견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아히멜렉의 말은 분명 그 당시(최근이든 오래 전이든) 왕의 존귀한 대표자라고 생각한 사람을 도왔다는 뜻이다.
22:15 내가 그를 위하여…오늘이 처음이니이까.
「제임스왕역」이나 「개정표준역」보다는 「개정역」이나 「미국표준역」의 다음 번역이 원문에 가깝다. “내가 그를 위해 하나님께 묻는 일을 시작한 것이 오늘입니까?” 이 말은 만약 다윗의 처지를 알고 나서 지금 그를 위해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기 시작한다면 사울의 공식적인 적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겠지만, 사울과 다윗 사이에 분쟁이 있음을 알기 전에 한 행위는 충성심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의미이다. 아히멜렉은 사울의 문책-사울의 생각을 거슬려 우림과 둠밈을 사용한 것-에 대해, 사울과 참으로 가까운 사람, 충성되고 헌신적이었던 사람을 위해 여호와께 여쭈었으며, 왕을 대신한 사자에게 도움을 제공했다고 진술함으로써 침착하게 답했다. 그가 마지막 한 말은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부인한 것이다.
22:17 시위자.
히브리어 라침(ras.im). 문자적으로 “달리는 자”라는 뜻이며 명백히 여기서처럼 시위대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요구한 왕이 아들을 취하고 그들 중 일부를 징집하여 “병거 앞에서 달리도록”(8:11) 할 것이라고 경고했을 때 이 직책을 두고 한 말이었다. 사울은 시위병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 치기를 거부하자 좌절감을 느꼈다. 왕이 요구한 것은 충격적인 행동이었다. 오늘날 이교도 가운데서도 의사(醫師)는 신성하게 여겨지며 아무도 감히 손을 들어 그를 치려고 하지 않는다. 하물며 사울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종을 얼마나 존중해 주어야 하겠는가!
22:18 에돔 사람 도엑.
여기에 나오는 에서의 자손은 질투가 심하고 화를 잘 내며, 악의를 품고 악한 본성에서 나온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어떠한 핑곗거리라도 얻으려 갈구하는 사울의 마음을 닮은 사람으로 등장한다. 이제 이스라엘의 왕으로부터 허락을 맡은 도엑은 아히멜렉과 그의 동료들이 신성한 예복을 입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들어 하나님의 종을 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날 여든다섯 명이 이기적인 탐욕 앞에서 쓰러져 갔다. 사울이 아각을 살려 주면서 자신에게 종교적인 열정이 있다고 공언했을 때(15:20)와, 광란에 휩싸여 유대인 역사상 전대미문의 만행을 저질렀을 때가 얼마나 큰 대조를 이루는가.
22:19 남녀.
무고한 사람들이 죄를 뒤집어 쓴 채 고통을 받았다. 놉의 주민들은 성막과 제사장의 가족을 놉으로 이주시키는 것(참조 21:1 주석)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러나 사울은 무분별하고 극악무도한 증오심에 사로잡혀 성읍 전체를 쓸어버렸다. 이전에 블레셋인들이 성스러운 도성 실로를 파괴한 적이 한 번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적이었지만 성읍 전체를 절멸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22:20 아비아달.
놉에서의 유일한 생존자로 기록되어 있다. 다윗의 “뒤를 좇아” 도망한 그는 다윗이 하렛 수풀을 떠나 그일라로 향할 때 다윗에게 이르렀다(참조 23:2, 6 주석).
22:21 다윗에게 고하매.
문자적으로 “다윗이 알도록 했다.” 다윗은 그 전에 소식을 전해듣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다윗이 놉을 방문한 것과 관련하여 잔학 행위가 이전에 있었다기보다는 아비아달이 그일라에 도착하기 직전에 일어났음을 나타낸다.
22:23 내게 있으라.
다윗이 아비아달을 일행으로 환영할 때 얼마나 기뻤을까? 우림과 둠밈을 보았고(23:6) 놉이 초토화되었지만 하나님의 손이 에봇과 그것을 지키는 제사장 위에 있음을 알고 용기백배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그 비극의 끔찍한 면면을 전해 들었을 때, 대제사장의 죽음과 그와 함께 다른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데에는 자신에게 책임이 있음을 깨닫고 자책감에 사로잡혔다. 이제 남을 속이려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하고 후회하고 있다. 그 해를 되돌려 다시 살 수 있다면 그는 기꺼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를 되돌려 놓을 수는 없다. 자책감이 무섭게 밀려왔지만 “앞에 있는 것을 잡는”(빌 3:13) 수밖에 없었다.
시 52편은 다윗이 도엑의 행위를 들은 후에 쓴 것이다(참조 52편 표제). 다윗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에 의지하지 않고 오만하게 반항하며 그분의 계획에 맞설 수 있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도엑은 면도날같이 날카로운 혀로 기만과 재난을 뿌림으로 협잡과 악의 화신(化身)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뿌린 대로 거두게 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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