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ORY

사무엘상 21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사무엘상

사무엘상 21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6. 5. 3. 07:58

<사무엘상 21장 흐름정리>

다윗의 도피 여정은 놉과 가드로 이어졌다. 놉은 예루살렘 북동쪽에 위치한 베냐민 지파에 속한 성읍이었고, 가드는 블레셋의 5대 성읍 중 하나였다. 다윗이 놉에서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은 것은 음식과 무기를 얻기 위함이었다. 그때 아히멜렉은 진설병을 다윗 일행에게 제공하였다. 이는 긍휼의 법이나 생명을 보전하는 도덕적 의무가 제사법보다 우위에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또한 가드로 피신한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친 자로 밝혀져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만, 미치광이인 체 함으로써 죽음을 모면했다. 이때의 심정을 노래한 것이 시편 34편, 52편, 56편 등이다.


<사무엘상 21장 줄거리>

1. 다윗이 놉에서 아히멜렉에게 거룩한 떡을 얻음.

7. 도엑이 그곳에 있었음.

8. 다윗이 골리앗의 검을 취함.

10. 다윗이 가드에서 미친 척함.


<사무엘상 21장 개역한글>

1.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며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2.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바와 네게 명한바 일의 아무것이라도 사람에게 알게 하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여차 여차한 곳으로 약정하였나이다  

3.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대로 내 손에 주소서  

4.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항용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부녀를 가까이만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5.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참으로 삼일 동안이나 부녀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나의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날 그들의 그릇이 성결치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6.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낸 떡 밖에 없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낸 것이더라  

7.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8.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병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9. 제사장이 가로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 밖에 다른것이 없느니라 다윗이 가로되 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10.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11.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고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12. 다윗이 이 말을 그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13. 그들의 앞에서 그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 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14. 아기스가 그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15.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 오겠느냐 하니라 


<사무엘상 21장 성경주석>

21:1 놉.

 성경에서 처음으로 언급된다. 구약 전체에서는 여섯 번밖에 나오지 않는데, 그중 네 번은 21장과 22장에 언급된다. 이들 중 어느 부분에서도 잘 알려진 다른 지역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명확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느 11:32에서 놉은 예루살렘 성전 지역에서 동북쪽으로 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성읍인 아나돗에 이어 바로 등장한다. 이사야가 이상 중에 앗수르군이 무리 지어 북쪽에서 예루살렘으로 다가오는 이상을 보는 장면에서 놉이 아나돗과 예루살렘 중간에 있다고 나온다(사 10:30~32). 그러나 그 이상에서는 아나돗과 놉 사이에 다른 두 성읍이 언급된다. 앗수르왕이 놉에 도착하여 시온산을 향하여 손을 흔드는 것이 나타난다. 세겜에 이르는 간선 도로는 예루살렘에서 스코푸스(Scopus) 산 너머로 뻗어 있으며, 이 산을 지나면서 도성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스코푸스 산 정상 가까이에서 도로 오른쪽으로 고원이 있으며 일부에서는 여기가 놉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 지점이 정확하게 예루살렘과 아나돗의 중간 지점은 아닐 것이다. 놉이 감람산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법궤를 빼앗긴 후 실로에서 성막을 옮겨 둔 장소가 놉이다. 아직 법궤가 기럇여아림에 위치한 아비나답의 집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후에 예루살렘으로 법궤를 옮긴다(삼하 6:2, 3). 그 당시는 법궤가 성막 안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성전의 지성소가 비어 있었던 그리스도 시대와 같은 방식으로 예배를 드렸을 것이다.

21:1 아히멜렉.

 참조 삼하 8:17 주석.

21:1 제사장.

 성소를 책임지는 대제사장임이 분명하다. 진설병이 있는 것으로 보아(참조 6절) 현재 성막이 놉에 있음을 알 수 있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656).

21:1 떨며.

 다윗의 얼굴에 근심과 공포가 어려 있었다. 아히멜렉은 무언가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알아챘다. 다윗의 행동은 예전과 너무 달랐기 때문에 당황한 아히멜렉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몰랐다.

21:2 왕이 내게 일을 명하고.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사실과 완전히 다르게 이야기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다윗은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상황의 변화에 너무나 당황한 다윗은 현재 겪는 시련을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보호의 손길로 돌보고 계신다는 명시적 증거의 관점에서 보지 못했다. 사무엘에게 도망갔다면 덕망 있는 사람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 기브아에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면 아내의 죽음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다윗은 진정한 마음으로 여호와께 여쭙기를 간절히 원했으며 생각해 낼 수 있는 곳이 놉에 있는 성소뿐이었다. 사울이 전쟁 중 아히멜렉에게 봉사를 해달라고 부탁했던 만큼, 천부장이었던 다윗(참조 18:13)은 전쟁을 치르러 가기 전에 도움을 구하기 위해 놉에 들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다윗에게 어려웠던 점은 아히멜렉에게 상황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여호와께 물어보도록 한 것이었다. 도엑이 사울에게 전한 이야기로 보아 아히멜렉이 다윗을 위하여 여호와께 물었음이 확실한 것으로 보이며(22:10), 아히멜렉이 사울에게 한 이야기로 보아 그는 사울과 그의 사위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22:14, 15). 다윗은 도엑이 있었기 때문에 놉에서의 상황이 아주 복잡하게 얽혀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이 그에게 불리한 듯 보였다. 다윗에게는 도움이 필요했고 유혹의 순간에 도움받는 동시에 제사장을 보호하는 길은 아히멜렉에게 그가 온 이유를 모르게 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속임수에 의존함으로 다윗은 잘못을 저질렀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650).

  성경에서 다윗의 이중성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행위의 정당화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성경에서는 엄격한 신실성을 요구한다.

  그 당시 표준의 관점에서 본다면 다윗의 위선은 꽤 타당하다. 근동지역 민족들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라고 믿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믿는 경우가 많다. 기브아 사람들은 그러한 책략에 의지했지만,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다(수 9:3~18). 하나님은 그 시대의 관습에 더럽혀진 사람을 받아들였지만, 그들을 좀 더 높은 표준으로 인도하려 했다. 그분은 그 당시의 관습을 어쩌다가 또는 습관적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을 거부하거나 버리지 않았다. 이러한 모든 것에 개혁을 가져오는 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이었다.

  다윗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구실로 무지를 내세울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모든 사태를 알고 있었던 사무엘에게 갔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하나님께는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있었다.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진실을 말해 주었다면, 제사장은 미리 경고받아 살인적인 왕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656).

21:2 약정하였나이다.

 이 문장은 문법적으로 볼 때, 사울이나 다윗의 말 어느 쪽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아마 다윗은 자신의 부하를 기브아에서 베들레헴에 이르는 동부 길 근처에 주둔시켜 놓고 사울의 부하들이 자신을 잡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가는지 망을 보게 했을 것이다. 사울이 보낸 밀정의 동태를 아는 것이 다윗에게는 크게 도움이 될 것이었다.

21:4 거룩한 떡.

 진설병 열두 덩이를 안식일마다 새로 구워 올렸다. 레위기의 규정에 따르면 시기가 지난 떡은 반드시 성소 안에서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었다(레 24:5~9).

21:4 부녀를.

 우리가 알기로 모세의 율법에 의식상 정결한 자에게 떡을 먹지 못하도록 금하는 구절은 없다. 고대 국가에서는 이방 제사장도 공식적인 직책을 수행하기 전 여자를 멀리하는 풍습이 있었으며, 레위인들도 이러한 풍습을 지켰을 가능성이 있다. 모세 율법에 따르면 성교를 하면 저녁이 될 때까지 부정했다(레 15:16~18; 참조 출 19:15). 왕의 일이 긴급했으며 다윗이 사위인데다 명백히 왕의 대리인이었기 때문에 아히멜렉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정하다는 근거에서 율법을 접어 두었다. 

  문자적으로 “임재의 떡”이라는 뜻이 있는 진설병은 살아있는 떡인 그리스도를 예표한다(요 6:28~51). 영적인 것이든 육신적인 것이든 인간이 먹는 모든 음식은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서만 얻어진다. 만나와 진설병은 모두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신 8:3)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물리적인 음식이라는 면에서 보면, 빵 다섯 덩어리는 다윗과 그의 부하들에게 별 의미가 없었다. 도엑이 증언한 대로 아히멜렉이 “음식물”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여호와께 물었다”면(삼상 22:10), 제사장을 찾아간 것이 더 큰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다윗이 얻은 떡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그가 어디를 가나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에게는 그 앞에 놓인 시험의 시기를 견뎌내기 위해 그러한 확신이 필요했을 것이다.





21:6 더운 떡.

 이 말은 다윗이 안식일에 성막을 방문했다는 증거라는 지적도 있지만, 여기에는 단순히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낸 것이더라”고 진술되어 있을 뿐이다.

21:7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

 아마도 사울이 에돔과 전쟁을 벌였을 때 데리고 온 포로나 노예로 보인다.

21:7 머물러 있었는데.

 도엑은 히브리 종교를 받아들이고, 성막에서 서원을 갚고 있었다(부조와 선지자, 656). 서약을 하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분명 그는 아히멜렉의 질책을 살 만한 죄를 범했고, 이는 도엑이 후에 아히멜렉을 배반하고 밀고자가 된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부조와 선지자, 659).

21:8 창이나 칼.

 도엑을 본 다윗은 기브아를 너무 서둘러 떠났기에 공격을 방어할 만한 무기를 챙길 시간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역자인 다윗의 운명은 그를 발견한 사람의 처분에 달려 있었다.

21:9 골리앗의 칼.

 골리앗이 지녔던 모든 갑옷과 무기는 다윗의 개인 재산이 되었다. 이전에 다윗이 하나님께 감사예물로 검을 성막에 바쳤을 것이다. 다윗은 성막이 병기고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지만, 검이 아직도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제사장이 빌려 줄 수 있는 무기가 있는지 무심코 물어 보았다.

21:9 그 같은 것이 또 없나니.

 성막에 칼이 놓인 위치와 싸여 있는 방식으로 보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선사하신 대승리를 기념하는 뜻에서 보관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윗은 이 칼을 손에 넣게 되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것은 검이 가지고 있는 무기로서의 가치 때문이라기보다는 여호와의 보호와 인도하심의 손길을 계속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순간 다윗에게는 그러한 격려가 필요했다.

21:10 아기스.

 시 34편의 표제에서는 아비멜렉이라고 불린다. 아기스는 블레셋 이름이며 아비멜렉은 셈족의 이름이다. 이 시편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미친 척할 때 쓴 것이다. 다윗은 반역자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도움을 얻을 수 없었다. 한 나라의 반역자가 적국에서 은신처를 제공받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가드는 놉에서 48킬로미터도 되지 않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사울은 거기서 다윗을 찾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윗은 아내 미갈의 지참금을 마련했던 지역에 익숙했다. 아기스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면 사울이 그를 데려가지 못할 것을 알았다.

  역사상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기 민족에게 박해받고 적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시드기야는 예레미야가 한 예언 때문에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렘 32:3). 그러나 유다를 점령한 바벨론인이 그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렘 40:1~6). 다윗의 경험은 이상한 대조와 역설을 보여 준다. 어찌하여 하나님은 다윗이 망명자가 되도록 허락한다는 말인가? 하나님이 어느 날은 왕의 사위가 되게 했다가 다음 날에는 빵을 구걸하도록 한 데는 어떤 훈련의 의미가 있단 말인가?

21:11 그 땅의 왕.

 블레셋인들의 이러한 추단(推斷)은 그들이 다윗의 기름부음 받았음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골리앗의 결투 신청을 받아들인 사람이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으로 다윗은 적과 친구 양쪽에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제일 용감한 용사로 정평이 나 있었다.

21:13 미친 체하고.

 두 번째로 저지른 실수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참조 21:2). 이러한 경험으로 다윗은 하나님께 더 크게 의지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하나님과 관계를 새롭게 함으로써 그의 마음은 감사로 가득 찼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운데 영감을 얻어 시 34편을 썼다. 일각에서는 다윗이 가드왕을 처음으로 방문한 기간에 시 56편을 썼다고 본다. 그러나 아마도 이 시편이 쓰여진 시기는 다윗이 목숨조차 연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울이 가차없이 추격한 이후(참조 27장), 다윗이 가드왕을 두 번째 방문했을 때로 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극심한 개인적인 유혹과 시련의 때 곧 적들은 의기양양하고 친구들은 변절해 버린 때, 어디를 가더라도 필요한 조언과 도움을 얻지 못하는 때에, 다윗이 사울에게서 도망쳐 놉에서 아히멜렉과 도엑을 만나고 가드에 있는 이스라엘의 적들에게 도망을 가는 이 이야기를 숙고한 다음, 다윗이 그 시기에 지은 것으로 추측되는 영감받은 감사의 노래(시 34편)를 읽어 보면 유익이 될 것이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3권


'성경주석 > 사무엘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무엘상 23장 & 성경주석  (0) 2016.05.09
사무엘상 22장 & 성경주석  (0) 2016.05.04
사무엘상 20장 & 성경주석  (0) 2016.05.02
사무엘상 19장 & 성경주석  (0) 2016.04.29
사무엘상 18장 & 성경주석  (0) 2016.04.28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