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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ORY
시편 16편 & 성경주석 본문
<시편 16편 서론>
다윗의 믹담.
시 16편은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굴복에서 솟아나는 것과 같은 완전한 행복을 표현한 것이다.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유일한 보호자라는 생각에서 시작하여 영생에 대한 믿음의 선포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상을 발전시킨다. 이 같은 믿음의 선포는 구약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 시의 마지막 절들은 메시야적 의미를 지닌다. 이 시는 명료하게 구분된 여섯 개의 규칙적인 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특별한 한 사건, 곧 삼상 26:19에 기록되어 있는 경험을 이 시의 배경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다만 추정에 불과하다. 다윗이 이 시의 저자라는 사실은 행 2:25; 사도행적, 227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시편은 하나님을 선택한 영혼, 그분 안에서 영혼이 누리는 기쁨, 다른 신들에 대한 영혼의 배척, 하나님이 부여하는 운명에 대한 만족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 그를 도울 것임에 대한 조용한 확신 등을 아름답게 표현한 시이다.
* 믹담 : 히브리어 믹탐(miktam)을 음역한 것이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어떤 학자는 속죄의 시편 곧 죄를 덮는 일에 관계된 시편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또 속죄의 송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대 랍비들은 이를 "황금의 시"로 부르기도 한다.
<시편 16편 개역한글>
1.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찌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편 16편 성경주석>
16:1 나를 보호하소서.
이 시는 열렬하고 확신에 찬 기도로 시작된다. 여기서 시인은 위험한 시기에 도움을 받기 위해 부르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지속적인 보호를 간구하고 있을 뿐이다.
16:2 나의 주.
여기 쓰인 히브리 단어는 야훼(Yahweh)가 아닌 “나의 주인”이라는 의미의 아도나이(’Adonay)이다.
16:2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문자적으로 “나의 선함은 당신에게 없나이다.” 이처럼 번역된 히브리어 어구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개정표준역」은 “당신을 떠나서는 나에게 선한 것이 하나도 없나이다”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타르굼」과 제롬(Jerome)의 해석적 번역에 근거한 것이다.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은 내 모든 선함의 근원이시며, 따라서 나의 신뢰와 헌신의 유일한 대상이시니이다”라는 의미의 말을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16:3 성도.
히브리어 크도쉼(qedos∨im), 문자적으로 “거룩한 자들.” 거룩함은 곧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다(참조 레 19:2).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고 또한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그의 성도라 부르는 것을 기뻐한다. 다윗은 성도들과 교제하는 것을 즐겼다. 그들은 하나님의 탁월한 사람들, 곧 하나님께 속한 참 귀족들이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로 묶어 주는 가장 확실한 띠이다(참조 시 55:14; 133).
16:4 괴로움.
시인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것만을 받는 반면에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선택하는 자들은 계속 괴로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16:4 피의 전제.
이 구절은 포도주가 여호와를 경배하는 일에 “전제”로 쓰인 것처럼(출 29:40; 민 15:5, 7) 동물들의 피를 이방인들이 이와 유사한 목적으로 사용한 것을 나타내는 것 같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이것은 매우 혐오스런 일이었다(참조 창 9:4; 레 3:17; 7:26). 다윗은 이방신들을 섬기는 일과 관련된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간여하지 않고자 하였다. 그는 그 신들의 이름을 언급함으로 자신의 입술을 더럽히는 일조차도 하지 않고자 하였다.
16:5 산업.
참조 민 18:20. 가나안 땅이 지파들에게 할당될 때 레위 사람들에게 주어진 유업은 땅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인도 하나님이 자신의 유업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도 이처럼 하나님을 신뢰해야만 한다. “저는 오직 주님만을 신뢰하나이다”가 우리의 기도가 되게 하자.
16:5 나의 잔.
인생에서의 나의 운명 혹은 상황(참조 시 11:6). 우가릿 문헌에서는 “잔”이 “운명”을 의미한다. 시인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자신의 갈증이 해소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16:5 나의 분깃.
참조 민 26:55. 시인은 가나안 땅을 제비 뽑아 나눈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16:5 지키시나이다.
히브리어 타마크(tamak), “꼭 붙잡다”에서 파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16:6 줄.
히브리어 하발림(h.abalim), “들판을 재고 분배하는 데에 쓰이는 끈의 길이.” 시인의 기업은 하나님이 택해 주신 것이었기 때문에 실로 극상의 기업이었다.
16:6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5절의 “산업”을 의미함. 시인은 이 일을 깨닫자마자 이어지는 절들에서 즉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
16:7 밤마다.
하나님은 밤의 고요함 중에 특별히 달콤한 목소리로 사람의 마음에 말한다(참조 시 4:4).
16:7 심장.
(「제임스왕역」에는 “reins”[신장]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참조 시 7:9 주석. 내면의 깊은 느낌이 하나님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16:8 내가 여호와를…모심이여.
베드로는 8~10절을, 또한 바울은 10절을 육신으로 부활한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하였다(행 2:25~31; 13:35~37). 이처럼 이 시의 이 부분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임이 명백하다.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일어나고 또한 부활한 사건을 통해서 이 절들의 온전한 의미가 분명히 드러났다. 예수의 부활에 관해서는 눅 24:39; 요 20:27을 참조하라.
16:8 항상 내 앞에.
다윗의 눈에는 하나님이 단지 추상적 존재가 아닌 실제로 자기 곁에 있는 존재였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창 5:22; 참조 교회증언, V, 596; 교회증언, Ⅷ, 329,). 모세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다(참조 교회증언, V, 652). 우리는 하나님이 지속적으로 임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인식은 죄 짓는 것을 막아 줄 뿐 아니라 마음을 기쁘게 하고, 삶을 밝게 하며,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의 의미를 깨닫도록 이끌어 주기도 한다.
16:8 내 우편에.
사람과 하나님 둘 모두에 적용되는 이 구절은 시편에서 특히 많이 발견된다. 우편은 영예와 위엄을 나타내는 자리인 동시에 방어와 보호를 의미하는 위치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쓰였다.
16:8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참조 시 15:5. 그리스도인은 만세반석 위에 서 있기 때문에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다.
16:9 영광.
히브리어 카보드(kabod), “영예”, “명성.” 「70인역」에는 “혀”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행 2:26의 번역과 동일한 번역이다(「개역한글판」에는 “입술”로 되어 있음-역자 주). 다윗은 매우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사람이다. 그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 땅에서 그의 삶은 하늘에서의 삶을 미리 맛보는 것이다. “찬양의 선율은 하늘의 분위기이다”(교육, 161).
16:9 거하리니.
히브리어 샤칸(s∨akan), “자리를 잡다”, “거하다”, “살기 위해 자리를 잡다.”
16:10 영혼.
히브리어 네페쉬(nepes∨). 흔히 “영혼”으로 번역된 단어로 구약에는 755회, 시편에는 144회 나온다. 이 같은 번역은 잘 된 번역으로 볼 수 없는데, 이는 “영혼”이 독자들에게 네페쉬의 적절한 의미를 전달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히브리어 단어에 대한 간략한 분석을 통해서 우리는 성경 기자들이 어떤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했는지 좀 더 명백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네페쉬는 나파쉬(napas∨)라는 어근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나파쉬는 구약에 단 3회만 나오는 동사로(출 23:12; 31:17; 삼하 16:14) 각각의 경우에 “소생하다” 혹은 “기운을 차리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이 동사는 근본적으로 “숨을 쉬다”라는 의미를 지닌 듯이 보인다.
네페쉬의 의미는 인간 창조에 대한 성경 기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창 2:7). 성경은 하나님이 몸을 만드시고 거기에 생명을 주셨을 때 사람이 실제로 “생령이” 되었다고 선포한다(창 2:7). 이 “영”은 그 이전에는 존재한 적이 없었고 다만 아담이 창조될 때에야 비로소 존재하게 되었다. 아이가 하나씩 태어날 때마다 새로운 영혼의 존재가 시작되는 것이다. 각각의 탄생은 이와 유사한 다른 생명의 단위들과는 전혀 분리된 새롭고도 유일한 생명의 단위로 존재하게 한다. 새로운 생명의 단위는 결코 다른 생명의 단위와 혼합될 수 없다. 그 생명은 언제나 그 생명이다. 그와 유사한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의 개체들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그 어떤 것도 바로 그 생명체가 될 수는 없다. 이 같은 개체의 유일무이성이 히브리어 단어 네페쉬에서 강조되는 개념인 듯이 보인다.
네페쉬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적용된다.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창 1:20)는 구절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물들로 하여금 생명의 영혼들의 무리(생명의 개체들)로 가득 차게 하라”가 된다. 여기에서 짐승과 새가 “생물”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이를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생명의 영혼”, 더 적절한 번역으로는 “생명의 개체”(창 2:19)가 된다. 따라서 사람 뿐 아니라 동물도 “영혼”이다.
“영혼”이 개체의 일부분이 아닌 개체 자체가 된다고 하는 기본적 개념은 네페쉬의 다양한 용례에 근거된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어떤 사람 혹은 어떤 동물이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기기보다는 그 사람 혹은 동물 자체를 한 영혼으로 여기는 것이 더 올바른 이해이다.
네페쉬가 한 개체 혹은 한 존재라는 기본적 개념에서 네페쉬를 인칭대명사 대신 사용하는 관용적 용법이 생겨났다. 따라서 이 같은 용법에서는 “내 영혼”은 “나”를, “너의 영혼”은 “너”를 그리고 “그들의 영혼”은 “그들”을 의미한다.
새로운 네페쉬는 각기 새로운 생명 단위를 의미하므로 네페쉬가 종종 “생명”의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제임스왕역」은 119회에 걸쳐 네페쉬를 “생명”으로 번역하였다. 그 외에도 “생명”으로 번역해야만 그 의미가 더 정확히 전달될 수 있는 경우들도 있다.
네페쉬는 “사람”, “개인”, “생명”, 고유의 인칭대명사 등으로 적절히 번역될 수 있다. “하란에서…얻은 사람들”(창 12:5)은 단순히 “하란에서…얻은 사람들”이란 의미이다(「제임스왕역」에는 “하란에서 얻은 영혼들”로 되어 있음-역자 주).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창 12:13)는 단순히 “내가 너로 인하여 살 것이니라”라는 의미이다(「제임스왕역」에는 “내 영혼이 너로 인하여 살 것이니라”로 되어 있음-역자 주). “그가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레 19:8)는 단순히 “그가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라는 의미이다(「제임스왕역」에는 “그 영혼이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로 되어 있음-역자 주).
16:10 음부.
히브리어 셔올(s∨e’ol). 죽은 자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여겨지는 상징적인 장소. 이생을 떠난 자들이 그곳에서 모두 함께 잠자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예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성취되었다(행 2:25~31).
16:10 버리지.
히브리어 아자브(‘azab), “버리다.” 이 문장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리이다”이다(참조 「제임스왕역」-역자 주).
16:10 거룩한 자.
히브리어 하시드(h.asid). 흔히 “성도”로 번역됨(참조 시 30:4; 31:23; 50:5; 79:2 등; 시 36편에 대한 추가적 설명).
16:10 썩지.
히브리어 샤하트(s∨ah.at), “구덩이.” 샤하트는 “구덩이”로 자주 번역되며(욥 33:18, 24, 28, 30 등) 또한 “개천”(욥 9:31), “무덤”(욥 17:14), “웅덩이”(시 55:23) 등으로도 번역되었다.
16:11 생명의 길.
생명에 이르는 길.
16:11 내게 보이시리니.
문자적으로는 “나로 알게 하시리니.”
16:11 기쁨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만족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충만함(참조 엡 3:20).
16:11 주의 우편에는.
하나님의 손은 그의 자녀들에게 영원한 기쁨을 부여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 기쁨의 창고는 결코 고갈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무한하신 자와 더불어 영원히 공존한다(참조 고전 2:9).
이 시편은 하나님을 선택한 영혼, 그분 안에서 영혼이 누리는 기쁨, 다른 신들에 대한 영혼의 배척, 하나님이 부여하는 운명에 대한 만족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 그를 도울 것임에 대한 조용한 확신 등을 아름답게 표현한 시이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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