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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7편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시편

시편 17편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6. 6. 15. 06:48

<시편 17편 서론>

다윗의 기도.

원수들에게 종종 괴롭힘을 당한 시인은 자주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호소에 자신의 영혼을 쏟아 부었다. 시 17편은 이러한 기도들 중 하나로, 여기서 그는 하나님께 의인들을 옹호해 주도록 간구한다. 이 시에서 다윗은 자신의 호소에 대한 확신을 주장하고, 악한 세상에서 자신을 보호해 주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나는 데서 얻는 자신의 궁극적 만족을 묵상하고 있다. 본 시편은 그 구조와 사상에 있어서 16편과 유사하다. 다만 16편이 하나님에 대한 내면적 신앙 고백으로 나타난 반면, 17편은 그러한 신앙 생활 때문에 봉착하는 외부적 위협으로부터 구원과 보호를 의뢰하는 기도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1절에서 5절까지 시인은 하나님의 공의에 호소하면서 자신의 무지를 변호한다. 또한 6절에서 8절은 자신이 과거에 구원받은 경험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의 도움과 보호를 요청하고, 9절에서 14절까지는 시인이 의로운 자를 압제하며 괴롭히는 악인의 횡포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낱낱이 고발한다. 마지막으로 15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변호를 굳게 신뢰하고 소망을 가진다.


<시편 17편 개역한글>

1. 여호와여 정직함을 들으소서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오는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2. 나의 판단을 주 앞에서 내시며 주의 눈은 공평함을 살피소서   

3.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하시며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으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하리이다   

4.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좇아 스스로 삼가서 강포한 자의 길에 행치 아니하였사오며   

5.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지 아니하였나이다   

6.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는고로 내가 불렀사오니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7. 주께 피하는 자를 그 일어나 치는 자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인자를 나타내소서   

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9.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10. 저희가 자기 기름에 잠겼으며 그 입으로 교만히 말하나이다   

11. 이제 우리의 걸어가는 것을 저희가 에워싸며 주목하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12. 저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13. 여호와여 일어나 저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14. 여호와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 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   

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시편 17편 성경주석>

17:1 정직함.

 즉 “공의.” 다윗은 자신이 정직하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수 있다.

17:1 부르짖음.

 히브리어 린나(rinnah). 기쁨의 부르짖음(사 14:7; 35:10; 44:23 등)과 탄원의 부르짖음(왕상 8:28; 사 43:14; 렘 7:16) 둘 모두에 쓰인다.

17:1 거짓[된]…입술.

 문자적으로 “기만의 입술.”

17:2 판단.

 다윗은 원수들에 대하여 자신을 옹호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한다.

17:2 공평함.

 즉 “곧음.” 하나님은 공명정대한 심판자로서 성도나 죄인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분별하신다.

17:3 시험하시고.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이 이미 자신을 시험하여 그의 무죄함을 밝혔다고 주장한다.

17:3 밤에.

 사람들은 밤의 어둠 속에서 악한 일을 도모한다(참조 시 36:4).

17:3 감찰하셨으나.

 히브리어 차라프(s.arap), 금속이 불 속에서 제련되는 것처럼 “정련하다”, “녹이다”, “제련하다.”

17:3 입.

 참조 약 3:2. 다윗의 결심은 그의 생각과 행동 둘 모두에 영향을 끼쳤다.

17:4 주의 입술의 말씀.

 다윗은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임으로 자신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지 못하게 했다(참조 시 119:9).

17:5 주의 길.

 “강포한 자의 길”(4절)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17:5 실족지 아니하였나이다.

 곧 “비틀거리지 아니하였나이다.” 우리 자신이 시인이 처했던 것과 같은 곤경에 처하게 된다면 우리는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도록(고전 15:58) 기도해야만 한다. 마음에 품고 있는 한 가지 죄가 우리를 타락시킬 수도 있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452). 오직 순결한 원칙만이 죄에서 우리를 지켜 줄 수 있다(참조 교회증언, V, 397).

17:6 응답하시겠는고로.

 다윗은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그의 기도를 계속 이어 간다. 그는 하나님이 그의 기도에 응답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17:6 말.

 마음으로 하는 기도가 아닌 소리를 내어 하는 기도. 이 같은 진지한 기도는 이 시의 앞부분이 단순히 자기의 의로움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 준다.

17:7 구원하시는 주여.

 시편을 읽으면 시인이 드린 기도들 속에서 구주의 임재하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참조 시 106:21; 사 19:20; 49:26). 다윗은 자신의 구주를 알고 있었다.

17:7 주의 기이한 인자를 나타내소서.

 곧 “주의 은혜를 눈에 띄게 하소서.”

17:8 눈동자.

 히브리어 이숀(’is∨on), 문자적으로 “작은 사람.” 이 용어는 눈동자를 나타내는 용어로 쓰이는데, 이는 아마도 사람이 거울에서 자기 자신의 작은 모습을 보기 때문인 듯하다. 시인은 사람이 자기의 시력을 보호하듯이 하나님이 그를 감찰하신다고 기도한다. 신 32:10과 잠 7:2에 나오는 이와 유사한 표현과 비교하라.

17:8 주의 날개 그늘.

 시편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 구절은 어미 새가 새끼들을 보호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신 32:11, 12과 마 23:37에 나오는 이와 유사한 표현과 비교하라.

17:10 기름.

 히브리어 헬레브(h.eleb), 할라브(h.alab), “덮다”라는 어근에서 파생된 것으로, 본래는 횡격막에 있는 기름을 일컫는 듯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근거로 여기서 할라브는 감성이 위치한 곳을 일컫는다고 추정한다. 따라서 「국제표준역」에는 “그들이 긍휼에 대하여 자신들의 마음을 닫고”로 번역되었다. 자아방종은 사람들로 다른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에 무관심하게 만들어 그들의 감정을 굳어지게 한다.

17:11 저희가…주목하고.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그들이 자신들의 눈을 땅에 고정시키고”가 된다. 마치 먹이를 사냥하는 사람들처럼 다윗과 동료들이 가는 길을 향하여 자신들의 눈을 고정시킨 사울과 동료들의 행동에서 이와 유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17:12 사자 같으며.

 시인을 쫓는 자들은 사자처럼 먹이를 향해 달려들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참조 시 10:8, 9 주석). 이 절은 후반부가 전반부의 사상을 반복하고 윤색하는 동의대구법의 대표적인 실례이다.

17:13 저를 대항하여.

 (「제임스왕역」에는 “disappoint him”[그를 낙담케 하여]로 되어 있음-역자 주). “그와 대결하여”가 더 나은 번역이다.

17:13 넘어뜨리시고.

 문자적으로 “그로 굴복하게 하시고.”

17:13 영혼.

 참조 시 16:10 주석.

17:14 금생에서.

 이런 사람들은 물질적인 만족에서 자신들의 존재 목적을 찾는다. 세속적 즐거움은 그들이 지닌 야망의 절정인 동시에 그들이 오로지 바라는 상급이다(참조 눅 6:24; 16:25). 따라서 그들은 그 어떤 것보다도 자신들의 현세적 관심사들을 우선시하며 하나님을 자신들의 생각 속에서 완전히 제쳐 놓는다.

17:14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악인들은 자신들이 정해 놓은 삶의 목표에 관한 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은 오직 이생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며 또한 이생의 사물들에 부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미래의 삶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그들은 일시적인 욕구 충족을 추구하다가 영원한 만족을 상실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가장 심오한 철학적 질문들 중 하나인 “악인들이 왜 번성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부분적인 대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번영은 덧없는 인생 중의 한 순간의 번영에 불과하다. 따라서 의인들이 누릴 영원한 행복과 비교해 볼 때 그것은 매우 하찮은 것이다.

17:14 자녀.

 동방 사람들은 자녀를 복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자녀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더 큰 복을 받은 것으로 여겼다(참조 시 127:3~5). 이에 반하여 자녀가 없는 것은 불행 중에서도 가장 큰 불행이었다(참조 창 30:1).

17:14 남은 산업.

 그들은 자신들을 위한 재산도 충분하고 또한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물려 줄 재산도 충분하다. 세속적인 번영에 대한 묘사에 관해서는 욥 21:7~11을 참조하라.

17:15 나는.

 세속적인 사람들과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다. 시인은 악한 자들이 누리는 일시적인 쾌락을 부러워하는 대신 하나님을 대면하여 뵙는 기쁨을 맛보기를 간절히 바란다(참조 시 13:1; 16:10, 11 주석).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 곧 창조주와 교통하는 것은 신실한 영혼에게 절정의 만족감을 가져다준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소망은 도덕적인 면에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것이다(참조 요일 3:2). 최상의 만족, 위대한 변화, 확장된 비전 등과 같은 요일 3:2의 요소들이 시 17:15에서도 발견된다(참조 마 5:8; 롬 8:29; 빌 3:21; 계 22:4). 시인은 이 진술을 통해서 자신이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가르침과 내세의 실제성을 믿고 있다는 논박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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