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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2편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시편

시편 42편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6. 7. 26. 08:55

<시편 42편 서론>

고라 자손의 마스길, 영장으로 한 노래.

시 42편은 다윗이 지은 애처로운 애가이다. 그는 거룩한 예배에 참여하여 기쁨을 누렸던 하나님의 전에서 쫓겨나 “도망하는 신세가 되어 들의 바위틈과 동굴 속에서 피난처를 찾”(교육, 164)고 있었다. 형식이 매우 아름다운 이 시는 각각의 길이가 비슷한 두 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연의 끝에는 후렴이 붙어 있는데, 첫째 연의 후렴은 5절에, 둘째 연의 후렴은 11절에 나온다(그리고 세 번째 것은 시 43:5에 나온다). 시 42편과 43편을 하나의 시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그 근거로 다음과 같은 이유들을 제시한다. 몇몇 히브리어 필사본이 이 두 시를 하나로 묶어 놓았고(시 42편에서 두 번 되풀이되는 후렴이 시 43편의 마지막 부분에 다시 나온다), 시 43편은 제2권에서 유일하게 표제가 붙어 있지 않은 시이며, 42:4과 43:3에서 매우 비슷한 정취가 느껴진다.

* 마스길 : 히브리어 마스킬(maskil)을 음역한 것으로 13개의 시편에 나타나는 이 표제는 이들 시들이 교훈적이요 지시적인 것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마스킬은 시 47:7에서 "지혜"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이들 모든 시편에 교훈이란 관념을 억지로 적용할 수 없으므로 마스킬을 어떤 종류의 음악 연주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시편 42편 개역한글>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3.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땅과 헤르몬과 미살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엄몰하도소이다   

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10.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편 42편 성경주석>

42:1 사슴.

 히브리어 아이얄(’ayyal), “수사슴.” 히브리어에서 여성형인 “갈급하다”라는 동사와의 일치를 위해서 “암사슴”이라는 의미의 아이얄라(’ayyalah)를 썼어야 옳은 듯하다.

  1~6절이 이 애가의 첫 번째 연을 구성한다.

42:1 갈급함.

 히브리어 아라그(’arag), “~을 갈급하다.” 아라그는 이곳과 욜 1:20에만 나오는 단어이다. 요엘서에서는 이 단어가 “부르짖다”(「개역한글판」에는 “헐떡거리다”로 되어 있지만 「제임스왕역」에는 “부르짖다”(cry)로 되어 있음-역자 주)로 번역되었지만 그 의미는 여기서의 의미와 동일한 것으로 여겨진다.

42:1 내 영혼.

 즉 “나”를 의미한다(참조 시 16:10 주석).

42:2 생존하시는 하나님.

 이 시와 다음 시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호칭을 선택하는 일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통해서 그분을 필요로 하는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강조하고 있다(참조 8, 9절; 43:2, 4).

42:2 갈망하나니.

 당시 다윗이 도망자 신세로 떠돌아다니던 땅이 여름철이 되어 몹시 덥고 종종 물까지도 부족한 곳이었다는 관점에서 볼 때 이 비유는 그 상황을 매우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겁 많은 사슴들이 맹수들 때문에 몇 개밖에 안 되는 물 공급원에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42:2 하나님 앞에 뵈올꼬.

 이 표현이 성소를 향한 순례 여행에 대한 언급과 더불어 사용된 것에 관해서는 출 23:17; 시 84:7을 참조하라. 이 시에는 하나님 앞에 거한다는 사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참조 시 43:5; 출 34:24; 신 16:16; 31:11). 성소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특별한 장소로 여겨졌다.

42:3 사람들이…하는 말이.

 다윗의 대적들은 그가 신뢰하는 하나님이 그의 행복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뜻의 조롱을 하면서 비웃었다.

42:3 눈물.

 참조 시 80:5.

42:4 이 일.

 다윗은 유랑 생활을 하는 중에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던 회중과 함께 하나님의 전에서 경배하던 때를 기억한다. 이러한 회상이 그의 고통을 더욱 증가시켰다. “슬픔 중 최고의 슬픔은 행복했던 일들을 회상하는 것이다”(Tennyson). 반면에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하는 사람은 비록 그가 고난 중에 있다 해도 그로 인해 불요불굴의 큰 용기를 얻을 수 있다.

42:5 내 영혼아.

 시인은 지금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42:5 어찌하여.

 5절은 이 시의 후렴이다(이 후렴은 약간 변형되어서 11절과 시 43:5에서 다시 되풀이된다). 다윗은 그런 즐거운 회상들을 하면서 낙망 중에 있는 자기 자신을 꾸짖는다.

42:5 낙망하며.

 문자적으로는 “인사하며”, “굴복하며.”

42:5 불안하여 하는고.

 히브리어 하마(hamah). 이 단어는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다, 파도처럼 노호하다(참조 시 46:3), 바람처럼 윙윙거리다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42:5 바라라.

 참조 시 25:3; 27:14; 애 3:24.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하나님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서 위로를 찾고자 애쓴다.

42:5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문자적으로 “그의 얼굴의 구원들을 인하여”(참조 시 13:1). 하나님의 구원은 다양하다. 루터가 자포자기 직전에 이 절에 있는 질문을 발하면서 멜란히톤에게 “이보게 필립, 우리 함께 시 46편을 노래하세”라고 말했다고 한다.

42:5 오히려.

 만일 우리가 계속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그가 정해 놓으신 시간이 되면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될 것이다.

42:6 내 하나님이여.

 6~11절은 이 애가의 두번 째 연을 구성한다. 시인이 그의 절망감을 계속 표현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 어투는 다소 차분해진 느낌이 든다.

42:6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시인이 자신의 깊은 절망감을 솔직히 인정하고 있다(5, 11절과 43:5에 나오는 후렴을 참조하라).

42:6 헤르몬(Hermonites).

 문자적으로 “헤르몬들.” 해발 2,814미터의 헤르몬산을 주봉으로 하는 헤르몬 산맥을 일컫는 말인 듯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헤르몬 거민들을 일컫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42:7 폭포 소리.

 「70인역」에는 카타락트(katarrakt)로 되어 있음. 카타락트에서 “cataract”(큰 폭포)라는 영어 단어가 유래했다. 시인은 여기에서 요단강의 빠른 물결, 특히 홍수 때의 빠른 물결을 일컫는 듯하다.

42:7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시인은 헤르몬산의 눈 녹은 물이 홍수가 되어 언덕들을 넘어 골짜기로 흘러내리며 큰 소리를 내고, 또 그 소리가 다시 메아리쳐 울려 퍼지는 곳에 있는 듯하다. 그에게는 이러한 자연 현상들이 마치 그를 엄습하고 있는 고난들처럼 보인다.

42:7 파도.

 계속해서 홍수 때의 요단강 상류 폭포들과 급류의 모양을 묘사하는 듯하다. 부서지는 파도와 소용돌이치는 큰 물결은 시인의 영혼을 엄습하고 있는 큰 슬픔들, 그중에서도 특히 하나님의 전에서 쫓겨나 유랑 생활을 하는 슬픔에 대한 묘사이다. 다윗은 마치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사람처럼 문득 문득 실망과 낙담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도(참조 시 88:7) 하나님이 모든 일을 형통케 하실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 속에서 곧바로 다시 일어선다.

42:8 인자함.

 히브리어 헤세드(h.esed). 여기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참조 시 36편에 대한 추가적 설명).

42:8 베푸시고.

 다윗은 낙담 중에서도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본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이 효력을 발하도록 명령하실 것이다. 그 엄청난 급류를 다스리는 하나님이 고난의 물결도 다스리고 그의 종을 거기에서 건져낼 것이다.

42:8 밤에는 그 찬송이.

 참조 욥 35:10; 시 32:7; 63:6; 행 16:25.

42:9 내 반석이신 하나님.

 참조 시 18:2.

42:9 [내가] 말하기를.

 시인은 여호와의 선하심에 희망을 걸고 계속 하나님께 자신이 당하는 고난의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기로 결심한다.

42:9 어찌하여.

 참조 시 22:1.

42:10 칼.

 이같이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히는 알 수 없다. 이 단어는 “살인하다”, “죽이다”라는 의미의 어근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 단어가 쓰인 곳이 이곳 말고 겔 21:22이 있는데, 거기서는 “살육”으로 번역되었다. 「70인역」에는 시 42:10의 앞부분이 “나의 뼈는 으스러지고 나의 핍박자들은 나를 책망하오니”로 번역되었다.

42:10 내 대적이…말하기를.

 참조 3절; 욜 2:17; 미 7:10.

42:11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두 번째 후렴이다. 여기서는 마지막 부분에 “네 하나님”을 첨가함으로 후렴의 형식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5절의 “그 얼굴의 도우심”이 여기에서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으로 바뀐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5절에서는 다윗이 자신의 영혼을 향해 말을 하였고, 여기서는 두드러진 친밀감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께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참조 시 43:5).

42:3 음식(meat).

 히브리어 레헴(leh.em), “빵.” “meat”는 일반 음식을 나타내는 옛 영어이다. 시인이 눈물로 자기의 음식을 삼았다고 하는 이 표현이 우가릿 시(참조 68, 69쪽)에는 “눈물을 포도주같이” 마신다고 되어 있다.

42:6 미살산(Hill Mizar).

 미살이 문자적으로는 “하찮은 것”, “소수의 사람”, “소량의 것”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산의 최고봉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산(hill)이라는 말이 쓰인 것을 볼 때 헤르몬 산맥의 비교적 낮은 봉우리들 중 하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바로 이 헤르몬 산맥에서부터 요단 강물이 불어나기 시작하였다.

42:6 내가…주를 기억하나이다.

 다윗은 유랑 생활 중에서라도 하나님을 기억할 것을 맹세한다. 바로 이것이 그의 강점이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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