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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3편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시편

시편 73편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6. 10. 13. 06:51

<시편 73편 서론>

아삽의 시.

시 73편은 37편과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악인은 형통하고 의인은 핍박받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에 존재하는 갈등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73편은 37편보다 그 해답에서 더 진전을 보인다. 시 73편은 우리를 이생을 넘어 영광스러운 영원 속으로 이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궁극적인 해답과 궁극적인 만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많은 시편처럼 먼저 결론이 진술되고 그 다음에 문제와 그에 관한 해답이 균등하게 양분되고 있다. 혼란에 빠진 시인은 실제로 하나님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가 성소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 문제를 분석하고 해답을 얻으려는 노력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는 거기서 만족스러운 해답을 찾는다. 이 시는 의인의 구원과 악인의 멸망에 대한 온전한 확신을 표현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이 시편에서 시인은 거룩한 예배에 성실하게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웅변적으로 기원하고 있는데, 그 거룩한 예배는 우리 영혼을 혼란케 하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장소이다. 욥기처럼 이 시는 정직하게 의심하는 자에게 인내의 교과를 가르친다. 시인은 하나님의 의로움을 믿었으나 인간의 필요에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정직하게 탐구한 결과, 그는 승리를 거둔 믿음의 빛 가운데로 나왔다.


<시편 73편 개역한글>

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 나는 거의 실족할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뻔 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4.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5.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7.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8.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9.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10.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13.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16.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8.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21.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22.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27.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시편 73편 성경주석>

73:1 하나님이…선을 행하시나.

 겉으로 다르게 보일지라도 그렇다.

  “아직 사태는 미칠 듯한 혼란에 빠져 있고 

  폭풍과 홍수에 시달리나

  변치 아니하시는 한 분께 내 영혼이 매달리노니 

  나는 아노라, 하나님은 선하심을!”

73:1 참으로.

 히브리어 아크(’ak). 참조 시 62:1 주석. 아크는 13절(“실로”라고 번역되었다)과 18절(“참으로”라고 번역되었다)에도 나온다.

73:1 마음이 정결한.

 곧 “마음이 맑은”(참조 시 24:4; 51:10; 73:13; 마 5:8).

73:2 나는.

 이 구절은 이 시의 문제에 대한 해답에 시인이 도달하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과 시인 자신에게 주의를 집중시킨다. 그 문제는 왜 악한 사람이 형통하고 선한 사람은 고난받는가 하는 것이다.

73:2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시인이 자기 믿음을 잃을 뻔했다는 의미의 인상적인 비유이다(참조 시 44:18).

73:2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참조 시 17:5. 시인은 믿음의 반석에서 회의의 웅덩이로 미끄러지기 직전에 있었다.

73:3 형통함을.

 문자적으로 “평온함을.”

73:3 질시.

 참조 시 37:1 주석.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이 세상의 물질에 더 중점을 두고 있음이 그러한 질투를 통하여 드러난다.

73:4 고통.

 곧 “격통(激痛).” 시인에게 악인들은 죽음의 고통을 겪지 않고 평온한 종말에 이르는 것처럼 보였다(참조 욥 21:13, 23).

73:4 건강하며.

 “살찐”이 더 낫다.

73:5 타인과 같은(as other men).

 히브리어 에노쉬(’enos∨), “연약에 싸여 있는 사람”을 번역한 말이다(참조 시 8:4 주석).

73:5 고난.

 그들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운명이라 간주되는 것을 피하는 듯하다(참조 욥 5:7).

  타인과 같은(like other men). 히브리어 아담(’adam), “인류”(참조 시 8:4 주석).

73:6 목걸이.

 장식품인 “목걸이”(참조 잠 1:9; 3:22).

73:6 옷이며.

 강포(참조 창 6:11)가 그들에게는 옷입는 것처럼 일상적인 것이다(참조 시 109:18, 19).

73:7 살찜(으로).

 여느 사람들처럼 힘든 일로 인하여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높은 생활수준 때문에 살이 찐다.

73:7 저희 소득은.

 그들은 맘먹는 것은 무엇이든지 소유한다. 그들은 무엇이든 가지기를 원하기만 하면 그 소원이 충족되며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충족된다.

73:8 압제하여.

 이 절,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압제하여 거만히 말하며”는 악인들에게 배어 있는 거만한 분위기를 얼마나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가!

73:9 하늘에.

 이 말은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하늘에 있는 것처럼 말한다”라는 뜻이 있다. 이 구절은 동의대구를 이루는 두 번째 절의 “땅에 두루”(문자적으로는 “땅에”)와 균형을 이룬다. 그들은 거짓으로 꾸민 권위를 가지고 말을 한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악하게”(8절) 말하기에 분주하다.

73:10 그 백성이.

 이 절의 정확한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70인역」은 다르게 번역한다. “그러므로 내 백성이 여기로 돌아올 것이며 그들을 위하여 충분한 날들이 발견될 것이다.” 「개정표준역」은 히브리 본문의 변화에 따라 번역한다. 이 히브리어는 이제껏 다양하게 번역되어 왔다. 대명사 “그(의)”(his)를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번역도 있고 또 악한 자를 가리키는 번역도 있다. 만약 의인들이 이 절의 주어가 된다면 “이리로 돌아와서”라는 구절은 이 시에서 눈에 띄는 문제를 재차 거론되게 할 수도 있으며 만약 악한 자들이 주어가 되면 이 구절은 악인들이 그들의 악한 지도자와 결합하기 위하여 돌아오는 것을 묘사할 수도 있다.

73:11 하나님이 어찌 알랴.

 참조 시 10:4, 11, 13; 14:1.

73:12 평안하고.

 참조 욥 21:7~15.

73:13 실로.

 히브리어 아크(’ak). 참조 1절 주석.

73:13 내 손을 씻어.

 무죄 혹은 정결함의 상징이다(참조 욥 9:30).

73:13 헛되도다.

 시인이 관찰한 바에 비추어 보면(3~12절) 그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됨이 아무 유익이 없다고 느낀다(참조 욥 9:27~31).

73:14 재앙을.

 시인은 악인들이 “재앙”을 당하지 않는다고 앞에서 주장한 바 있다(5절).

73:14 아침마다.

 시인에게 재앙은 새 날이 와도 날마다 되풀이된다(참조 욥 7:18).

73:15 내가 만일…이르기를.

 곧 “만일 내가 말했었다면.” 아마 자신에게 말하는 것일 것이다. 여기에서 믿음의 승리가 시작된다.

73:15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만일 내가 생각한 것을 다 표현한다면.

73:15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내가 그들을 다치게 했을 것이며 그들에게 진실하지 못했을 것이며 그들이 가는 길에 장애물을 놓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침묵하는 편이 나았다. 고상한 과묵함이여!(참조 약 3:2).

73:16 심히 곤란하더니.

 시인은 하나님 나라의 정부에 명백히 존재하는 불의에 대한 이유를 캐면서 그 문제를 심사숙고하였지만 결과는 다만 혼란뿐이었다. 그 문제는 그가 풀기에 너무 심오한 것이었다.

73:17 성소.

 시인은 그 문제의 해답을 얻기 위한 자신의 방법을 논하려는 노력을 중단하고 성소로 들어갔다(참조 왕하 19:14). 삶의 진짜 문제들은 하나님과의 교제에서만 풀린다.

73:17 때에야.

 그 문제가 바야흐로 풀리려고 한다.

73:17 결국을.

 아무리 악인들이 겉으로는 형통한 것 같아도 그들의 위치는 불안정하다. 그들에게는 확실한 발판이 없어 어떤 순간에 추락할지 모를 일이다. 악인들의 궁극적 멸절이 적용되는 그때에 이 논점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계 20:9, 14, 15).

73:17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인의 의문들이 성소의 고요함 속에 녹아들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그 문제에 대한 참해답을 주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그는 올바른 견해에서 벗어나 악인들의 형통을 과장시켰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

73:18 파멸.

 시인의 믿음을 회복시킨 것은 이 세상 악인들의 종말, 곧 그들이 형통한 중에 몰락할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올바른 관점을 상실함으로써 시인은 악인들에게 종종 내리는 징벌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는 성소에 들어가서야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었다. 그는 소돔과 고모라가 하늘에서부터 온 불로 멸망한 것을 잊고 있었다. 바로의 땅이 전염병으로 황폐하게 되었고 그의 군대는 바다에 빠졌음을 잊고 있었다.

73:19 졸지에.

 악인들의 형통 혹은 악한 정부의 형통함은 종종 졸지에 무너진다. 이 시에 드러난 문제는 졸지에 이르러올 악인들의 종말을 바라볼 때에야 풀렸다.

73:19 놀람으로.

 그들을 놀라게 하는 재난(참조 욥 18:11; 24:17; 27:20).

73:20 꿈을…같이.

 형통함은 꿈과 같다(참조 사 29:7, 8). 잠자는 자들이 깨어날 때 현실로 돌아온다.

73:20 저희 형상을.

 영원의 고요함 속에 있는 하나님은 이 땅에서의 꿈 같은 인간의 존재를 무시한다. 영원은 사람의 참품성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관련이 있다.

73:21 [그래서].

 (「제임스왕역」에는 “thus”로 되어 있음-역자 주). 곧 “이는 ~때문이다.” 이 문제의 해답을 발견하지 못한 까닭은 문제를 차분하게 숙고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있다. 그는 “산란”, 곧 문자적으로 “꽤 까다로워”졌는데, 이 히브리어 낱말은 발효라는 의미에 사용되었다(참조 출 12:34, 39). 그의 마음은 마치 효소의 작용 아래 있는 것처럼 단맛을 잃었다. 풀이 죽은 영혼은 사람의 판단에 손상을 준다. 시인은 영원한 가치가 아닌 겉모습에 따라 한층 비참해진 마음 상태에서 그 문제를 풀려고 노력을 기울인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73:21 심장.

 참조 시 7:9 주석.

73:22 내가.

 이 절에서 이 히브리어 대명사는 맨 앞에 위치해, 강조를 하고 있다.

73:22 우매.

 참조 시 92:6; 잠 30:2. 시인은 진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73:22 주의 앞에.

 만일 시인이 좀 더 혼자 있었다면 그의 어리석음 때문에 그는 매우 위험할 뻔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목전에서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었다(참조 시 51:4).

73:23 내가.

 이 말이 22절에서처럼 맨 앞에 나와 강조되었다. 내가 하나님의 공의를 불평하고 의심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하나님은 나와 함께한다. 그는 내게 머물러 계실 것이다.

  23~28절에서 시인은 이 시의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해답을 표명한다. 그 해답은 하나님 안에, 그리고 그의 임재와 이생과 영원한 삶을 통한 그의 인도를 인식하는 데 있다. 이 정묘한 구절에 담긴 절정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는 사상과 말 그 어느 것으로도 거의 불가능하다.

73:23 내 오른손.

 참조 시 18:35; 63:8.

73:24 주의 교훈으로.

 시인은 이생에서 자신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음을 인지한다. 그는 하나님의 인도와 교훈을 바라보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거의 의심할 뻔하였다(참조 시 48:14).

73:24 후에는.

 이 생이 마쳐질 때에는.

73:24 영광으로.

 시인은 여기서 미래의 삶을 자신이 신뢰하고 있음을 내비친다. 하늘의 영광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영원한 삶의 참된 광채, 곧 영광은 악한 사람의 존재 방식인 “형상”, “꿈”, “헛된 과시”와 대조적이다.

73:25 하늘에서는.

 하나님과 비교될 자가 하늘에 아무도 없다. “아무도 내게 하나님 같은 분이 없다”(Barnes). 

  땅에서는 주밖에…없나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충족시켜 주는 분이다. 나의 모든 행복은 그분 안에 있다. 이렇게 하나님께 몰입됨이 시편의 기본적인 가르침 중 하나이다(참조 시 42:1, 2; 63:1).

73:26 반석.

 문자적으로 “반석”(「제임스왕역」에는 “strength”[힘]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73:26 분깃.

 친구도 명예도 부도 그 어떤 지상적인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 시인의 행복의 근원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전부였다. 이 절에 자극을 받은 찰스 웨슬리(1707~1788)는 임종의 자리에서 자신이 지은 6,500개의 찬미가 중 하나를 아내에게 받아 적게 했는데,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예수님은…스러져가는 내 육신과 마음의 힘이시라.”

73:27 주를 멀리하는 자.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생명이며 그를 멀리하는 것이 죽음이다. 시인은 이런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하나님이 사람을 다루는 것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였다(참조 3~12절).

73:27 음녀같이…떠난.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는 종종 결혼 관계와 비교되었다(참조 시 45편; 렘 3:8, 9, 14; 5:7; 13:27; 고후 11:2; 엡 5:25; 약 4:4).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분과 사이가 틀어질 때 그들은 결혼 서약에 성실치 못한 것이다. 「제임스왕역」의 “a whoring”(음행 중에)은 전치사 “a”(~하고 있는 중에)와 동명사 “whoring”(음행)으로 구성되었다.

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참조 히 10:22.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때 그분은 우리에게 가까이 오신다(참조 약 4:8).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아름다운 상호 관계가 놓여 있다. 우리가 그분께 더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분은 더욱 완전히 자신을 계시하실 수 있다.

73:28 주 여호와를.

 히브리어로 아도나이 야훼(’Adonay Yahweh)인데, 이것은 흔치 않은 결합이다. 시인이 의심 아래 있을 때에는 항상 하나님을 적당히 신뢰해 왔지만, 이제부터는 더 이상의 의심은 없고 다만 평온한 신뢰만 있을 뿐이었다.

73:28 전파하리이다.

 시인은 자신이 어떻게 의심에서 신뢰로 나아갔는지, 시편의 주제인 그 문제를 주 여호와 안에서 어떻게 풀었는지를 남들에게 이야기해야 할 책임을 깨닫는다. 이 시는 이런 엄숙한 서원으로 끝맺는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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