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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2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열왕기상

열왕기상 12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2. 21. 06:18

<열왕기상 12장 흐름정리>

본문은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이 분열되고 만 원인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솔로몬을 이어 왕이 된 르호보암의 학정과 여로보암의 집권 야욕 때문이었다. 르호보암 통치하에서 가중한 세금과 노역을 견디지 못한 백성들은 선처를 요구하였지만 르호보암은 이를 무시하였다. 이에 여로보암을 필두로 한 이스라엘 열 지파가 반란을 일으킴으로 왕국이 분열되고 만 것이다. 한편,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솔로몬의 죄악을 징계하시기 위해 사용한 도구였다. 그러나 그도 우상 숭배를 일삼았으며 결국 하나님께 징벌을 당하였다.


<열왕기상 12장 줄거리>

1. 르호보암을 왕으로 삼기 위해 세겜에 모인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을 통하여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는 탄원서를 올림.

6. 르호보암이 원로들의 권고를 듣지 않고 소년 친구들의 말을 따라 백성에게 거친 말로 대답함.

16. 열 지파가 반역을 일으켜 아도니람을 살해하니, 르호보암이 도망함.

21. 스마야가 군대를 일으킨 르호보암을 만류함.

25. 여로보암이 성읍들을 세우고 두 금송아지를 숭배하게 하여 자기를 굳게 함.


<열왕기상 12장 개역한글>

1.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저로 왕을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2.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오히려 애굽에 있는 중에    

3. 무리가 보내어 저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고하여 가로되    

4.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5. 르호보암이 대답하되 갔다가 삼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    

6. 르호보암왕이 그 부친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7.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 만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8. 왕이 노인의 교도하는 것을 버리고 그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과 의논하여    

9. 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    

10.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고하여 가로되 이 백성들이 왕께 고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나의 새끼손가락이 내 부친의 허리보다 굵으니  

11. 내 부친이 너희로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소서    

12. 삼일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하여 이르기를 삼일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13.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쌔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14. 소년의 가르침을 좇아 저희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15.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고한 말씀을 응하게 하심이더라    

16.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 이새의 아들에게서 업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17.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르호보암이 그 왕이 되었더라    

18. 르호보암왕이 역군의 감독 아도니람을 보내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저를 돌로 쳐 죽인지라 르호보암왕이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더라    

19.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더라    

20.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의 돌아왔다 함을 듣고 보내어 저를 공회로 청하여다가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으니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좇는 자가 없으니라    

21.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다 온 족속과 베냐민 지파를 모으니 택한 용사가 십 팔만이라 이스라엘 족속과 싸워 나라를 회복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돌리려 하더니

22.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23. 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 온 족속과 또 그 남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24.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저희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좇아 돌아갔더라    

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26. 그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숭배함이더라    

31. 저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32. 팔월 곧 그 달 십 오일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 지은 산당의 제사장은 벧엘에서 세웠더라    

33. 저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팔월 십오일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열왕기상 12장 성경주석>

12:1 르호보암.

 솔로몬 통치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한 비교적 자세한 묘사가 12, 13, 14장을 통하여 내내 계속된다. 역대기의 기록은 솔로몬의 우상숭배와 그의 대적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 빼버리고 르호보암 이야기의 첫 부분을 열왕기에 나오는 것과 거의 같은 말로 기록하고 있다(대하 10:1~19; 11:1~4; 참조 왕상 12:1~24).

12:1 세겜.

 대관식 장소로 세겜을 택한 이유는 에브라임과 북쪽 지파들의 충성심을 얻어내려는 심산(心算)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겜은 팔레스타인의 중심부로서, 여호수아가 백성의 총회를 열었던 곳(수 8:30~35) 곧 그리심산과 에발산 사이에 있었다. 그곳은 요셉이 묻힌 묘 곁에 있었고(수 24:32), 가까이에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창 33:19; 37:12; 요 4:5, 6; 참조 수 24:32).

12:3 저를 불렀더라.

 대하 10:2, 3의 기록은 여로보암이 애굽이 아니라 에브라임에서 부름을 받았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여로보암은 이미 애굽에서 돌아와 있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로보암은 자타가 공인하는 지도자였다. 군주에게 불만을 토로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고, 따라서 이런 기회에 문제를 여로보암에게 제시하여 상소 절차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지당했을 것이다.

12:4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불평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솔로몬이 그 거대한 공공 건축사업을 위해 요구한 무거운 세금과 강제 노역 때문에 백성들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에브라임에서 강제 노역의 감독관이었던 여로보암은 필시 많은 사람의 불평을 들었을 것이며, 왕실의 다른 신하보다도 당시에 널리 유포되어 있던 불만에 대하여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짐을 가볍게 해 달라는 요구는 정당했고, 따라서 백성들의 불평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법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신중을 기할 문제였을 것이다.

12:5 삼 일 후에.

 제3일에 곧 모레(12절).

12:6 노인들.

 솔로몬의 모사들은 백성들의 심정을 잘 알고, 어떤 정책을 펴야 할지 좋은 안(案)을 내놓을 만한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꼭 나이만 많다기보다는 경험도 풍부한 신하들이었다.

12:7 종이 되어.

 왕이 된 자의 일차적 임무는 백성들을 섬기는 일이지 다스리는 것만이 아니다. 만약 백성들이 통치자의 첫 번째 관심사가 저들의 관심사임을 안다면 백성들의 마음은 통치자의 마음과 하나가 될 것이며 백성들은 기꺼이 그의 신하가 되고자 할 것이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마 20:28) 함이었다.

12:8 노인의 교도하는 것을 버리고.

 나이가 들면 경험이 많아지고 지혜도 증가하는 법이다. 나이도 경험도 다 어린 사람들이 노인들의 권고를 무시하는 곳에는 어리석은 자들의 권고가 판을 치는 법이다.

12:8 소년들과.

 노인들뿐 아니라 청년들과도 의논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일이지만, 청년들의 눈은 경험이 많고 연만한 자들의 눈에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하는 수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12:10 왕은 대답하기를.

 르호보암의 젊은 친구들이 준 권고는 지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급하고 오만방자한 권고였다. 이 권고에는 백성들을 섬기라고 임명한 왕의 자애로운 배려는 나타나 있지 않고, 명확하게 드러난 백성들의 뜻을 무시하고 지배하려는 결심만 나타나 있다. 또한 그것은 지나치게 거친 말로 표현되었고 어려운 사태를 진정시키기보다는 사태를 악화시키는 말들이었다. 그 젊은이들은 고집을 원기 왕성한 것으로, 자만을 지혜로 오해하였다. 그들은 시대의 징조들을 읽지 못했으며, 따라서 저들의 권면은 반역이 불가피하게 했다.

12:11 전갈.

 날카로운 갈고리와 바늘 끝이 달려 있어 때리면 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채찍을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으로 생각된다.

12:13 포학한 말로.

 물론 이렇게 한 목적은 힘을 과시하는 것이었으나 실상 그것은 약함과 어리석음을 드러낼 뿐이었다. 친절한 말은 친절하고 관대한 마음에서 나오며, 따라서 순종에 이르게 하고 행복과 평화의 길로 인도한다. 거친 말은 소인배에게서 나오는 것이며 격정을 자극하고 원통한 마음을 품게 하여 소란과 폭동을 초래한다.

12:15 여호와께로.

 왕과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진언한 권고가 하나님의 권고였다거나 왕의 답변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요, 지혜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왕의 말은 냉혹하고 어리석은 자의 말이었다. 하나님은 자비와 동정의 마음을 갖게 하는 분이지, 분노나 원한의 감정을 품게 하는 분이 아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저들의 고집스런 행위로 말미암은 열매를 거두게 하심으로 사람을 심판한다. 솔로몬의 죄는 물론 르호보암의 지각없고 경솔한 행동은 모두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죄이며 하나님이 아닌 다른 근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는 지혜로써 죄로 죄를 벌하고 어리석음으로 어리석음을 징계하는 길을 허락하셨다. 일반적으로 여호와는 인간의 정욕이나 분노, 교만이나 괴팍한 행위 및 오만함 등의 결과를 제거하기 위해 이적을 행하지는 않는다. 개인의 구원과 관련하여 말하자면,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손상하지 않고, 거룩하지 못한 악인들의 악행에 억지로 영향을 끼치지 않고 개인이나 국가의 행로를 현명하게 인도하여 당신의 뜻을 이룬다. 그렇게 하여 인간의 분노를 당신을 찬양하는 쪽으로 돌린다.

12:16 다윗과 무슨 관계가.

 이 말은 지파 간에 질시와 적개심이 있음을 나타낸다. 에브라임은 유다에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고, 북쪽 지파 사람들은 남쪽 사람들과 상관없이 자기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였다. 세바도 다윗을 반역할 때 이와 비슷한 말을 사용하였다(삼하 20:1).

12:16 너희의 장막으로.

 이것은 전쟁을 부추기는 말이 아니고, 르호보암을 인정하지 말고 모두 각 지파와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외침이었다.

12:16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이것은 다윗 왕가(王家)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감의 표현이었다. 다윗의 집은 이제 자기 집안 일이나 돌보고 자기 지파 일이나 살필 일이지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의 일에는 관여하지 말라는 뜻이다. 유다 지파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행할 것이며 이제 후로는 유다 지파의 간섭을 묵인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12:17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이 구절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로, 유다의 경내에 유다 지파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유다와 함께 기업을 분배받은 베냐민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많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후에 북방 왕국을 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합류하였다(대하 11:12~17). 둘째로, 이제부터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일차적으로 남방 유다와 대치하는 북방 왕국을 뜻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구절을 사용한 것은 독자들에게 참 이스라엘 자손은 유다에서도 발견될 것이며, 따라서 이 자랑스런 이름을 북방 왕국만 지닐 권한이 없다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12:18 아도니람.

 4:6; 5:14에 의하면, 아도니람(아도람이라는 이름의 확대 형태)은 감역관이었다. 아도람은 강제 노역으로 인한 불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르호보암은 그가 이 문제에 타협점을 찾는 데 적임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강제 노역의 공사 감독자인 이 사람을 보자 분노가 폭발하여 아도람은 죽음으로 몰고 갔다.

12:18 돌로 쳐죽인지라.

 고대에는 폭도들이 분노를 터뜨려 사람을 죽일 때 대개 이렇게 죽였다. 애굽에서 모세는 애굽인들이 분노하여 일어나서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출 8:26)라고 말하였다.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돌질할 지경에 이를 만큼 분노하였다(출 17:4). 다윗도 격분한 무리가 그를 돌로 쳐죽일 위험에 직면한 적이 있었다(삼상 30:6).

12:18 [그의] 수레에 올라.

 당시로는 수레가 가장 빠른 교통 수단이었다. 길이 잘 보수되어 팔레스타인의 많은 지역에서 병거를 이용할 수 있었다.

12:20 여로보암의 돌아왔다 함을 듣고.

 이 말은 열 지파가 반역한 이후에 비로소 여로보암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3절을 보면 르호보암에게 백성의 대표자를 보낼 때 이미 그가 그들의 우두머리로 행동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70인역」 필사본 가운데 하나를 지지하여, 3절과 12절에서 여로보암이라는 이름을 빼 버리고 20절에서 그가 처음 등장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히브리 성경을 따라, 1절의 “온 이스라엘”은 여러 다른 지파의 대표자들을 의미하는 말로 이해하고, 20절의 “온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각기 장막으로 돌아갈 때(16절) 대표자들에게 여로보암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나라를 뜻하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더 낫다. 

  반역의 소식은 곧 왕국 안에 두루 전해졌다. 반란에 착수한 후 교활하게도 여로보암은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백성들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큰 군중이 모여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했다.

12:20 온 이스라엘.

 이 구절은 북쪽의 열 지파가 자신들만이 참 이스라엘이라고 주장함을 나타내는 것 같다.

12:21 베냐민.

 베냐민 지파는 이전에 유다 지파보다는 에브라임 지파와 더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었다. 다윗과 베냐민 사람 사울 간의 오랜 대립(삼상 9:1), 요압과 아브넬 간의 전쟁, 다윗의 종들과 베냐민 사람들 간에 있었던 전쟁(삼하 2:2, 12~31; 3:1~27), 베냐민 사람 세바가 다윗을 대항하여 일어섰던 일 등은 유다에 대한 베냐민의 반감을 나타낸다. 그러나 두 지파 사이의 경계선(수 15:8; 18:16)인 예루살렘에 수도를 정한 것은 이런 관계에 변화를 가져오는 데 도움을 주어, 그 후로 베냐민의 운명은 유다의 운명과 하나가 되었다.

12:21 십팔만이라.

 다윗이 인구 조사를 실시했을 때 유다의 인구는 500,000명이었다(삼하 24:9). 얼마 후 아비야는 400,000명의 군사를 모집할 수 있었다(대하 13:3).

12:22 하나님의 사람.

 이 용어는 모세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지만(신 33:1; 수 14:6) 역대기를 포함하여 초기나 후기의 성경에는 불과 몇 번 밖에 사용되지 않았으나 열왕기의 기자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다. 스마야는 르호보암의 치세에 유다 최고의 선지자였다(대하 12:5~8, 15).

12:24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일반적으로 내전(內戰)은 가장 치명적인 전쟁이며, 그 상처의 치료 또한 가장 힘들다. 서로를 죽이라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인도한 것이 아니다. 저들이 서로 적대하는 두 나라로 나뉘어 지내도록 계획하지도 않았다. 여호와는 분리해 나간 열 지파에게 복을 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르호보암이 선언한 포악한 통치 정책을 시인할 수도 없었다. 열 지파를 잃은 것은 르호보암에게 내린 심판이었다. 이런 마당에 군대의 힘으로 열 지파를 르호보암의 치하로 되돌려 놓으려는 운동을 여호와가 축복할 수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두 왕국의 역사가 전개되면서 여호와가 한 왕국은 정죄하고 다른 한 왕국에는 심판을 내린 것의 정당함이 입증되도록 작정하였다. 흔히 시샘이 많은 사람들은 양편에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어려운 문제를 성급하게 해결하려 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본 절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깊이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12:25 세겜.

 이 도성은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 처음 들어갔던 때로부터 족장 시대의 역사에 자주 언급된다(창 12:6; 33:18; 35:4; 37:12, 13). 가나안을 정복했을 당시 그곳은 도피성이 되었고(수 20:7; 21:21), 여호수아가 죽기 바로 전에 언약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모든 지파를 불러모은 장소도 바로 여기였다(수 24:1~25). 아비멜렉이 스스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세겜에 도읍지를 정하였고(삿 9:1~20), 그 도성이 그를 배반하자 그곳을 헐고 소금을 뿌렸다(삿 9:22~45). 이제 그 도성은 재건되어 여로보암의 도읍지가 되었다.

12:25 부느엘.

 야곱이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본 후에 명명한 요단 동편에 있던 곳이다(창 32:30, 31). 기드온 때에는 부느엘에 망대가 하나 있었는데, 그가 그것을 헐었다(삿 8:8, 9, 17). 여로보암은 이 성읍을 재건하여 전초 기지로 사용하였다. 그 성읍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는 숙곳 동편 6.5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얍복 강변의 툴룰 엣-다바브(Tulul ed-dabab)이다.

12:27 돌아가서.

 여로보암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여호와께 드리는 경배가 강력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계속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저들의 형제 유다와 함께 하나님께 경배하였더라면 백성들의 마음은 다시 하나가 되어 왕국은 다시 통일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결과는 틀림없이 모든 백성들에게 다 유익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여로보암이 첫째로 여기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12:28 금송아지.

 이것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자초했던 바로 그 예배(출 32:1~35)의 재생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여호와를 거절함으로써 파멸로 끝장날 수밖에 없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인간이 금송아지를 섬기기 위하여 하늘과 땅을 지으신 창조주를 저버릴 때 오는 불행은 피할 길이 없다.

12:29 벧엘.

 이스라엘의 남쪽 변경에 있던 성읍. 벧엘이라는 지명의 뜻은 “하나님의 집”이고, 야곱이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갈 때(창 28:11~22)와 돌아올 때(창 35:8~15)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났던 꿈을 기념하여 그가 붙인 이름이다. 벨엘은 유다와 경쟁이 되는 전(殿)을 세우기에 적합한 장소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12:29 단.

 사사 시대의 상당한 기간 동안 이미 성전 터였던 북방 변경의 성읍(삿 18:30, 31).

12:30 죄가 되었으니.

 백성들에게 죄 지을 빌미가 되었다는 말이다. 죄의 광범위한 영향력을 고려해 볼 때 여로보암에게 두려운 책임이 지워졌다.

12:30 그 하나에게.

 「70인역」의 후기 필사본 중에는 “단”이라는 말 뒤에, “그리고 벧엘에 있는 다른 하나에게”라는 구절이 추가되어 있다. 그러나 원문을 있는 그대로 취하여 처음에는 백성들이 대부분 단에 있는 성전에만 갔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12:31 보통 백성으로.

 레위 사람들은 이런 우상의 제단에서 제사장 직무를 행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저들은 성직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갔다(대하 11:13~16; 선지자와 왕, 101). 도덕적 표준이 가장 낮은 사람들만 “산당들과 마귀들과 그가 만든 송아지들을 섬기”는(대하 11:15) 제사장 노릇을 하겠다고 했다. 그 결과 백성들의 도덕적 표준은 계속하여 점점 낮아졌다.

12:32 팔월.

 이것은 7월에 예루살렘에서 열렸던 장막절에 맞대응하기 위해 만든 절기였다. 겉보기에는 옛 종교의 몇몇 형태와 같았지만 많은 점에서 이 새 종교는 여호와를 섬기는 일과는 정면으로 배치되었다. 왜 이스라엘의 절기가 유다의 절기보다 한 달이나 뒤에 있어야 했는지 질문이 제기되었다. 이 시점에서 이스라엘과 유다 사이에 단절이 생겼을 것이고, 따라서 새 정부 수립을 경축하려는 목적으로 전 국민이 모이는 절기를 즉시 제정했을 것이다.

12:33 저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여로보암은 왕의 직무뿐 아니라 제사장 직분까지 자기가 맡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을 제쳐두고 자신이 마음대로 택한 새 제사장들을 구별한 후에, 자신이 창안한 비합법적인 제사장 직분의 수장 역을 떠맡음으로써 그 절차를 매듭지었을 것이다. 벧엘은 “왕의 성소요 왕의 궁”이라 일컬어진다(암 7:13). 이것은 벧엘에 있는 “성소“가 왕이 종교적인 일을 주관하는 특별한 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국사(國事)를 맡아보는 왕궁이 있었음을 가리킬 것이다. 세겜은 정식 수도로, 평상시 왕궁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왕이 벧엘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때는 거기 있는 궁전에서 재판을 열었을 것이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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