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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9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열왕기상

열왕기상 9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2. 16. 06:10

<열왕기상 9장 흐름정리>

본 장은 솔로몬의 봉헌 기도가 응답되었음을 보여준다. 즉, 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그와 언약을 체결하셨다. 그 내용은 솔로몬과 백성들이 당신의 모든 계명을 신실히 준행하면 하나님이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모두 약속의 땅에서 추방되리라는 것이었다. 본 장 후반부는 솔로몬이 성전과 궁전을 건축한 일 외에 행한 다른 여러 건축 사업들과 조선 사업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께 순종하였을 때 그는 이처럼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넘치는 축복으로 인해 교만해진 솔로몬이 점차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불순종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국가적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열왕기상 9장 줄거리>

1. 하나님이 이상 중에 솔로몬과 언약을 맺음.

10. 솔로몬과 히람이 주고받은 선물.

15. 솔로몬의 역사를 할 때 이방인들은 그의 노예가 되어 일하고, 이스라엘인들은 존귀한 신복으로 일함.

24. 바로의 딸이 자기 궁으로 이사함.

25. 솔로몬의 매년제.

26. 솔로몬의 사공들이 오빌에서 금을 가져옴.


<열왕기상 9장 개역한글>

1.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치며 자기의 무릇 이루기를 원하던 일이 마친 때에    

2. 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3.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4.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5.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허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대로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6.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7.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8. 이 전이 높을찌라도 무릇 그리로 지나가는 자가 놀라며 비웃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전에 이 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9. 대답하기를 저희가 자기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부종하여 그를 숭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저희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    

10. 솔로몬이 두 집 곧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이십년 만에 건축하기를 마치고    

11. 갈릴리 땅의 성읍 이십을 히람에게 주었으니 이는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그 온갖 소원대로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을 지공하였음이라    

12. 히람이 두로에서 와서 솔로몬이 자기에게 준 성읍들을 보고 눈에 들지 아니하여    

13. 이르기를 나의 형이여 내게 준 이 성읍들이 이러하뇨 하고 이름하여 가불 땅이라 하였더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있으니라    

14. 히람이 금 일백 이십 달란트를 왕에게 보내었더라    

15. 솔로몬왕이 역군을 일으킨 까닭은 여호와의 전과 자기 궁과 밀로와 예루살렘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려 하였음이라    

16. 전에 애굽왕 바로가 올라와서 게셀을 탈취하여 불사르고 그 성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죽이고 그 성읍을 자기 딸 솔로몬의 아내에게 예물로 주었더니    

17. 솔로몬이 게셀과 아래 벧호론을 건축하고    

18. 또 바알랏과 그 땅의 들에 있는 다드몰과    

19.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과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또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 다스리는 온 땅에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하였는데    

20. 무릇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남아 있는자  

21. 곧 이스라엘 자손이 다 멸하지 못하므로 그 땅에 남아 있는 그 자손들을 솔로몬이 노예로 역군을 삼아 오늘까지 이르렀으되    

22. 오직 이스라엘 자손은 솔로몬이 노예를 삼지 아니하였으니 저희는 군사와 그 신복과 방백과 대장이며 병거와 마병의 장관이 됨이었더라    

23. 솔로몬에게 역사를 감독하는 두목 오백 오십인이 있어 역사하는 백성을 다스렸더라    

24. 바로의 딸이 다윗성에서부터 올라와 솔로몬이 저를 위하여 건축한 궁에 이를 때에 솔로몬이 밀로를 건축하였더라    

25.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단 위에 해마다 세번씩 번제와 감사제를 드리고 또 여호와 앞에 있는 단에 분향하니라 이에 전 역사가 마치니라    

26. 솔로몬왕이 에돔 땅 홍해 물 가 엘롯 근처 에시온게벨에서 배들을 지은지라    

27. 히람이 자기 종 곧 바다에 익숙한 사공들을 솔로몬의 종과 함께 그 배로 보내매    

28. 저희가 오빌에 이르러 거기서 금 사백 이십 달란트를 얻고 솔로몬왕에게로 가져왔더라


<열왕기상 9장 성경주석>

9:1 솔로몬이…건축하기를 마치며.

 성전의 일은 솔로몬 제4년에 시작하여(6:1), 7년 후인 솔로몬 제11년에 완성되었고(참조 6:38), 궁전을 짓는 일에 또 13년이 걸렸다(7:1). 따라서 솔로몬의 성전과 궁전을 짓는 종합 건축에 도합 20년이 소요되었는데(9:10; 대하 8:1), 이는 그것이 솔로몬 24년에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솔로몬이…건축하기를 마쳤”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의문이 생긴다. 이 말은, 20년의 건축 기간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여호와가 솔로몬에게 나타나 “네가 성전 봉헌식 때 드린 기도를 내가 들었노라”고 말했다는 의미인가? 그렇다면 성전을 언제 봉헌했다는 말인가? 건물 완성 후 즉시 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종합 건축이 완성될 때까지 13년을 기다린 후에 했다는 말인가? 성전이 완성된 지 얼마 후에 봉헌되었는데도 여호와께서 13년을 기다린 후에야 솔로몬에게 그의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말했다는 말인가? 다시 말해 성전이 완성된 후 13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봉헌식을 거행하는 일이 가능한가? 이것들은 기록된 이야기가 너무나 간단해서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솔로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기도를 드리고 나서 얼마 후 곧 응답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참조 선지자와 왕, 45).

9:2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서.

 솔로몬의 통치 초기에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가 솔로몬의 꿈에 처음으로 나타나셨다(3:4~15). 솔로몬에게 다시 밤 이상이 주어졌지만 이 기별은 처음 이상에서 받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처음 이상의 두드러진 주제는 약속과 격려였고(3:12~14; 6:12, 13), 두 번째 이상에도 약속과 격려가 들어 있지만 범죄가 가져다줄 슬픈 결과에 대한 엄숙한 경고도 있었다.

9:3 내가 들었은즉.

 솔로몬은 하나님이 그의 열렬한 간구를 들었다는 보증을 받았다. 그는 백성들에게 여호와께 충성을 다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라고 힘을 다하여 격려했다. 하나님은 그의 정신과 뜻을 존중하여 그에게 하나님의 은총에 관한 새로운 보증을 주었다. 주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저들을 믿는다는 새로운 표현과 더불어 위로부터 오는 신선한 징표, 지난날의 봉사에 대해 칭찬하고 장래를 위한 은혜와 축복의 약속들을 얼마나 자주 주시는지!

9:3 거룩하게 구별하여.

 거룩하게 구별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 하나님의 임재가 사물을 거룩하게 한다. 성전이 거룩했던 까닭은 하나님이 거기 계셨기 때문이다. 겉으로 볼 때 성전은 궁전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손에 의해 나무와 돌로 지어진 건물과 같은 모양을 띤 빛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 성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임재로 장식되고 구별된 신성한 집이 되었다. 

  거룩한 것은 영적으로만 감지할 수 있다. 굳어진 마음을 지닌 무감각한 사람들은 신령한 것과 속된 것의 차이를 식별하지 못한다. 거룩한 안식일과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하는 집이 저들에게는 세상의 보통 사물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일지 모른다. 하늘이 매우 가까이 있지만 저들은 깨닫지 못한다. 이 이상에서 “너의 건축한 이 전”이라는 말이 강조된 것은 이상이 성전의 거룩한 경내에서 주어졌음을 암시하는데, 이는 마치 첫 번째 이상이 주어졌던 곳이 솔로몬의 희생을 드리러 갔던 기브온 “산당”이었던 것과 같다(3:4).

9:3 영영히.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성전이 거룩하게 남아 있었다면 그것은 영원히 서 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계속 충성을 다했더라면, 그들이 여호와의 택하신 자 곧 열국 중에서 그분의 “소유”임을 온 세상 앞에 내놓는 증거로서(출 19:5; 참조 선지자와 왕, 46) 그분의 임재와 이름이 영영히 그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다. “영영히”라는 말의 의미를 알려면 출 12:14 주석을 참고하라.

9:4 네가…내 앞에서 행하며.

 하나님의 모든 축복의 약속들은 순종을 전제로 한 조건적인 약속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될 수 없다. 도덕적인 율법은 물론 자연 법칙도 하나님의 율법이며, 따라서 그 율법을 범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자가 된다. 모든 율법은 인간의 유익을 위해,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을 위해 주어졌다. 이 율법을 범하면 슬픔, 질병, 고통, 재난, 죽음이 피할 수 없는 결과로 나타난다. 이것은 국가는 물론 개인에게도 그러하며, 세계는 물론 한 공동체에도 마찬가지다. 순종의 길은 평화와 번영과 생명과 건강의 길이다. 사회의 안녕, 나라의 평안, 세계의 희망 등 이 모든 것을 얻으려면 사람들이 지혜를 배우고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 순종하는 일의 실제적인 가치를 배워야 한다. 이스라엘이 아직 번영하고 있을 때, 솔로몬이 아직 젊었을 때, 하나님은 죄는 기쁨이 아니라 슬픔을, 축복이 아니라 재난과 죽음을 초래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를 원했다.

9:5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택한 것은 훗날 내쳐 버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다윗의 집을 훗날 버리기 위해 택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모든 선택은 현명한 선택이며, 따라서 그 배후를 살펴보면 그것이 선한 것임을 입증하는 근본적인 이유들이 들어 있다. 다윗의 보좌와 이스라엘 나라가 영원히 서는 것이 그분의 계획이었다. 육신적인 다윗의 후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한다 해도 하나님의 목적은 영적 이스라엘(롬 2:28, 29; 4:16; 갈 3:29)과 다윗의 자손 예수(미 5:2; 행 2:34~36; 롬 1:3)를 통하여 언젠가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9:7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하나님은 거룩하며, 따라서 죄는 그분의 임재 안에 거할 수 없다. 사람들이 죄를 범할 때 하나님과 생명과 축복에서 그들 자신을 끊어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죄의 비극적인 결과들에 대하여 누차 경고하였고, 이스라엘과 유다 역사의 마지막 시기에 죄로 인해 백성들이 파멸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는 하나님의 엄숙한 경고의 음성들이 배가된 것으로 보인다(사 1:19~24, 28; 렘 7:9~15; 겔 20:7~24; 단 9:9~17; 호 4:1~9; 암 2:4~6; 4:1~12; 미 1:3~5; 습 3:1~8).

9:7 속담거리.

 참조 신 28:37. 여러 세기 동안 이스라엘의 운명이 되어온 불행과 치욕은 바로 이 경고의 비극적인 성취이다.

9:8 높을지라도.

 히브리어 엘룐(‘elyon). 이 말은 아마도 하나의 모본으로서 괄목할 만하다는 의미로 “지극히 높은”을 뜻할 것이다. 「수리아역」과 아랍어 역본에는 “폐허”(ruins)라는 의미의 르이인(le‘iyin)으로 되어 있다.

9:9 인도하여 내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은 마땅히 이스라엘에게 충성심을 지키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되어야 하였다. 어떻게 한 백성이 저들을 위하여 그처럼 많은 것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그토록 배은망덕할 수 있는지 상상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러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로 돌아선 이스라엘의 배은망덕과 어리석음이 이 백성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진 정당한 원인이라는 사실을 세상이 알아야 하였다.

9:10 이십 년 만에.

 여기서 20년은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시작한 때 곧 솔로몬 제4년에 시작한다(6:1). 따라서 성전 건축에 7년(6:38), 자신의 집을 건축하는 데 13년(7:1)이 여기에 포함된다.

9:11 갈릴리 땅의 성읍.

 “갈릴리”라는 명칭은 “원”(圓)을 뜻하며, 게데스가 자리잡은 곳으로 여호수아서에 두 번 언급된 지역(수 20:7; 21:32)을 가리킨다. 이 지방은 갈릴리 바다 북서쪽에 있었다. 이 영토의 서쪽 부분은 두로의 변경 근처에 있었으므로 솔로몬과 히람 두 사람의 뜻에 다 맞았을 것이다. 계약을 맺을 당시에는 이 성읍들의 주민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라 그 땅의 원주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성읍들을 솔로몬 왕에게 돌려준 지 20년 후에야 히람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거기에 살도록 했기 때문이다(대하 8:2).

9:11 히람에게 주었으니.

 솔로몬과 히람 사이에 체결된 계약에는 이 성읍들이 언급되지 않고, 다만 히람이 성전 건축과 관련된 활동들을 위하여 목재와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일정양의 식품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5:5~11). 또 원래 협약에는 히람이 솔로몬에게 “금을 지공”할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 모세의 율법의 엄격한 규정에 의하면 솔로몬이 이 성읍들을 그에게 줄 권한이 없었다(레 25:23). 그러나 이렇게 율법의 규정들이 쉽게 무시되는 것은 세속적 정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9:11 금.

 여기서 히람이 솔로몬에게 준 금은 성전이 건립될 당시에 준 것이 아니고, 14절에 언급된 120달란트를 말할 것이다. 20년간의 건축 공사로 솔로몬의 재정이 상당히 고갈되었음이 분명하며, 그 결과 솔로몬이 호소하여 히람이 솔로몬에게 몇몇 성읍을 받은 대가로 금을 주기로 합의했을 것이다.

9:12 눈에 들지 아니하며.

 히람은 악고(Accho) 만(灣)이나 비옥한 곡창지대에 눈을 돌렸을 것이며, 따라서 오지(奧地)의 열악한 성읍들을 받고 실망했을 것이다. 히람이 솔로몬의 선물을 거절하고 그 성읍들도 받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9:13 가불 땅.

 가불 땅은 악고(Acre) 만(灣)에서 남동쪽으로 약 14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땅으로, 수 19:27에는 아셀 지파의 땅이라고 언급되어 있지만 납달리 땅 갈릴리에 있었다. 히람은 말놀이(play on words)를 사용하여 솔로몬의 선물에 불만을 표시하였다. “가불”이라는 말의 정확한 어원과 의미는 알려져 있지 않다. 요세푸스는, 페니키아어로 그 말의 해석은 “기쁘게 하지 못하는 것”(Antiquities viii. 5. 3)이라고 말하였다. 그 말은 아람어 어근 ㅋ-ㅂ-ㄹ(kbl) 곧 “황량하다”에 기초되었을 수 있다. 랍비들의 전승에는 그 이름이 “족쇄를 채운” 혹은 “사슬에 매인”을 뜻하는 단어의 어근에서 나온 것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9:14 금 일백이십 달란트.

 솔로몬의 연간 수입은 금 666달란트였다(10:14). 그러므로 히람에게 받은 금의 합계는 솔로몬의 수입의 6분의 1 정도에 해당한다. 1달란트의 금전적 가치를 정확히 확정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1달란트의 무게는 대략 34.3킬로그램으로 환산한다.

9:15 역군.

 본 장의 나머지 부분은 간단한 역사적인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거기에는 매우 가치 있는 몇 가지 사항이 들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역군은 5:13, 14에도 언급되어 있다. 이 같은 노동력 동원은 처음에는 성전 건축을 위해서, 후에는 궁전 및 기타 사업을 위해서 이루어졌다.

9:15 밀로.

 예루살렘에 있는 성이나 단지(段地) 혹은 요새로 생각된다. 다윗은 자신이 함락시킨 옛 여부스 요새 곧 후에 다윗 성으로 알려진 곳에 거했으므로, 밀로는 다윗이 그것을 취했을 때 성안에 있었던 견고한 요새로서 성의 북쪽 끝에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다윗(삼하 5:9; 대상 11:8)과 솔로몬(왕상 9:24; 11:27)은 본래의 요새에 보강 공사를 하였고 후에 히스기야가 추가 공사를 하였다(대하 32:5). 다른 학자들은 밀로가 모리아산 남쪽에 있는 동쪽 산비탈을 따라 흙으로 돋우어 만든 단지(段地)였다고 설명한다.

9:15 예루살렘 성.

 다윗은 고대 여부스 성의 성벽을 크게 강화하고 확장하여,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았다(삼하 5:9). 솔로몬이 보수하고 증축하여 다윗 성의 방어 시설의 몇 가지 취약점을 완전히 없앴다(왕상 11:27). 

  후에 여러 왕들이 보수와 증축을 계속하여 마침내 성벽 남쪽에 있는 힌놈의 골짜기 근처까지 확장했는데(렘 19:2), 왕의 정원 근처 남동쪽에 있는 이중 벽(왕하 25:4)과 “다윗 성 밖 기혼 서편 골짜기 안에 외성을 쌓되…오벨을 둘러 심히 높이 쌓았던 벽”(대하 33:14)이 여기에 포함된다. 북서쪽 모퉁이의 문은 중요한 문으로, “모퉁이의 문”(렘 31:38)이라고 불렸다. 아마샤의 재위 기간 중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허물어뜨린 성벽은 이 북쪽 성벽의 일부로,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왕하 14:13)이었다. 웃시야 왕이 그 성벽을 보수하고 강화하여, “모퉁이 문과 골짜기 문과 성굽이에 망대를 세워 견고케”(대하 26:9) 하였다.

9:15 하솔.

 이곳은 북쪽 높은 산지에 있던 중요한 도성으로, 훌레 호수가 있던 자리 근처에 있었다. 하솔은 북방 동맹국의 맹주였던 야빈의 도성이었다(수 19:36). 이 도성은 북방에서부터 접근하는 중요한 침입로에 접해 있는 요지이기 때문에 솔로몬이 그곳을 강화하였다. 이스라엘 왕 베가의 재위 시에는 디글랏 빌레셀 III세가 그곳을 점령한 적이 있다(왕하 15:29).

9:15 므깃도.

 이곳은 에스드랠론 평지의 남쪽에 있던 중요한 요새로, 사론 평야와 에스드랠론 평지 사이에 있는 통로를 점하고 있었다. 이 도성은 원래 므낫세 지파에게 할당된 곳이었지만 땅을 분배할 당시에는 그들이 그곳을 정복하지 못하였다(수 17:11~13). 므깃도는 가나안 왕들과 드보라 및 바락 사이의 전쟁 이야기에 언급된다(삿 5:19). 아하시야가 예후의 침공을 받아 쫓겨 간 곳도 므깃도였으며, 그가 죽은 곳도 거기였다(왕하 9:27). 또한 요시야가 죽은 곳도 므깃도였다. 그때 그는 유브라데로 북진하는 느고의 군대를 저지하려 했다가 변고를 당했다(왕하 23:29). 

  그동안 고고학자들은 므깃도를 철저히 발굴해 왔다. 발굴된 폐허에서 시멘트 바닥으로 된 돌구유들이 발견됐는데, 말 500마리 정도가 먹을 수 있는 구유였다. 처음에는 이것을 솔로몬 때의 것으로 추정했다가 지금은 아합 왕 때의 것으로 믿고 있다.

9:15 게셀.

 이곳은 에브라임과 접경 지대에 있는 가나안 사람들의 중요한 성읍이었으며, 해안 평야로 뻗어 있는 요새 위에 있는 곳으로, 아얄론 북서쪽 10킬로미터 지점에 있었다(수 16:3). 이 성읍은 본래 레위 자손들에게 할당되었다(수 21:21). 하지만 정벌 당시에는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하였으나 잠시 동안 조공을 바치게 한 때가 있었다(수 16:10). 그곳은 아얄론 평지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를 점하고 있는 중요한 통로였고, 블레셋이 종종 중앙 고원지대로 가는 길로 이용하였다. 게셀은 다윗의 전쟁들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된다(삼하 5:25; 대상 14:16; 20:4).

9:16 예물로.

 게셀은 바로가 탈취하여 자기 딸이 솔로몬과 결혼할 때 지참금으로 주었다. 고대 동방에서 왕실간 결혼이 있을 때 중요한 영토의 권리를 결혼 지참금으로 하사한 기록이 많이 있다.

9:17 게셀.

 이 성읍은 면밀히 발굴되어, BC 1,000년경에 있었던 그곳의 파괴와 재건에 관한 성경의 기록들이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흥미로운 발견은 바위를 뚫어 만든 터널인데, 그것은 바위를 통해서 아래로 내려가 바위 표면에서 약 29미터 아래의 동굴에 있는 한 샘에 이른다. 그 샘은 현재의 지표면에서 약 37미터 아래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 성에 망대들이 있는 대규모 요새들이 있었다는 점이며, 망대는 후에 솔로몬이 원래 있던 성벽에다 보강했을 것이다.

9:17 아래 벧호론.

 벧호론이라는 성읍은 두 개가 있었다. 두 성읍 모두 아얄론 골짜기와 중앙 고원의 기브온 사이에 있는 산 고개에 위치하고 있다. 아래 벧호론은 예루살렘 북서쪽 19킬로미터 지점에 있고, 거기서 동쪽으로 약 3킬로미터 지점에 아래 벧호론보다 225미터 더 높은 곳에 윗 벧호론이 있다. 솔로몬 왕은 이 두 성읍을 다 요새화하였다(대하 8:5). 여호수아는 기브온에서 아모리 족속을 치고 난 후에 저들을 이 고개 아래로 추격해 갔다(수 10:10). 블레셋이 사울과 싸우러 올라갔던 곳도 바로 이 고개였으며(삼상 13:18),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앨런비(Allenby) 장군이 투르크와 접전하여 협공해 갔던 곳도 이 고개였다.

9:18 바알랏.

 정확히 어떤 성읍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본래 단 지파에게 할당된 영토로, 해안 평야 끝에 있는 아얄론과 에그론 등의 성읍과 함께 들어 있다(수 19:42~44). 요세푸스는 그것이 게셀 가까이 있었다고 보았다(Antiq- uities viii. 6. 1).

9:18 다드몰.

 히브리어 타모르(Tamor). 그러나 평행 구절에는 타드모르(tadmor)라고 되어 있다(대하 8:4). 이것이 어떤 성읍을 말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떤 이들은, 에스겔이 이스라엘의 새 땅 남쪽 경계로 언급한(겔 47:19; 48:28) 타모르와 동일한 곳으로 본다. 성읍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사해 남쪽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타드모르라고 불리는 다른 성읍이 있다. 그곳은 다메섹 북동쪽 약 211킬로미터, 수리아 사막의 오아시스에 있는 유브라데강 서쪽 약 179킬로미터 지점에 있다. 이 성읍은 디글랏 빌레셀 Ⅰ세의 명각에서 수리아의 아무루(Amurru) 땅에 있다고 여러 번 언급된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 다드몰은 로마의 지배 아래 들어갔고, 로마는 그 성읍을 헬라식 이름으로 팔뮈라(Palmyra)라고 일컬었다. 그리고 요세푸스가 솔로몬이 건축한 “광야의 다드몰”이라고 언급한(Antiquities viii. 6. 11) 곳이 바로 이 성읍이다. 히브리어 타마르(tamar)는 종려나무를 뜻하는 말로, 후에 로마가 지어준 팔뮈라라는 이름에 그 의미가 보존되어 있다. 

  대체로 학자들은 솔로몬 왕국이 그처럼 광범한 국경을 포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광야의 다드몰” 건축과 관련하여 역대기에는 솔로몬이 가서 “하맛소바를 쳐서 취하고 또 광야에서 다드몰을 건축”(대하 8:3, 4)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 하맛소바는 다메섹 북쪽 약 96킬로미터, 다드몰-팔미라 서쪽 약 160킬로미터 지점에 있던 것으로 생각해 왔으며, 그곳을 언급한 것은 이 북방 지역 전체가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 들어오게 한 정벌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왕상 4:24에는 솔로몬 왕국의 북방 한계선이 딥사라고 되어 있는데, 이 딥사는 유브라데강 유역에 있는 성읍으로 생각되며, 다드몰 북쪽 160킬로미터 지점에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솔로몬 왕국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범위가 넓었고, 따라서 “들에 있는 다드몰”(9:18)은 수리아 광야에 있는 유명한 “다드몰-팔뮈라”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9:18 그 땅의.

 이 구절은 이 변방 성읍이 솔로몬의 광대한 영역의 경계 안에 있었음을 자랑스럽게 나타내기 위해 덧붙여졌을 것이다.

9:19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솔로몬은 야심에 차고 번영으로 교만해져 매우 거대한 건축 사업에 착수했다. 전 2:4~10에는 야망에 찬 그의 사업의 일부가 묘사되어 있는데, 집과 정원 그리고 과수원과 연못 등 “무엇이든지 내 눈에 원하는 것”(전 2:10)이 그중에 포함된다. 주변 국가들의 영광스런 업적을 능가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솔로몬의 야망은 하나님의 뜻과 최선의 국익과 배치되는 사업을 벌이도록 그를 내몰았다. 백성들은 부과되는 무거운 짐들을 견딜 수 없게 되어 불만과 비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결국 반역으로 치달았다.

9:21 노예로 역군을 삼아.

 솔로몬의 광범한 건축 사업을 위해 강행된 노동력 착취. 가나안 정벌 직후 그 땅의 몇몇 족속은 조공을 바치는 나라들이 됐지만 이스라엘이 강성할 때 잠시뿐이었다(삿 1:28). 다윗은 많은 원주민에게 강제 노역을 시켰다(대상 22:2).

9:21 마시는 그릇.

 술잔과 사발과 접시들을 금으로 만든 것은 고대 동방의 궁중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은 토기에다 마시나, 화려하게 금으로 장식한 잔에다 마시나 똑같이 달콤하고 신선하다.

9:22 노예를 삼지 아니하였으니.

 그 땅 원주민들에게 부과한 형태의 강제 노역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면제해 주었지만, 그렇다고 저들에게 모든 종류의 강제 노력 동원을 면제해 준 것은 아니었다(대상 22:2). 솔로몬이 “온 이스라엘에서”(왕상 5:13, 14) 역군 30,000명을 동원하였다. 이 노역이 되도록 마음에 들게 하기 위해서 애를 썼지만 백성들의 높은 원성을 사서 솔로몬이 죽었을 때 보좌를 거스르는 불만의 주된 원인이 되었고(12:4), 그 결과 르호보암 왕이 역군의 감독을 삼았던 아도니람이 돌에 맞아 죽는 사태가 발생했다(12:18).

9:22 군사.

 하지만 대체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우월하고 지배적인 민족으로 대우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저들은 왕의 전사 또는 조신(朝臣)으로, 다양한 종류의 사업의 감독자, 병거와 마병의 지휘자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왕의 절대 권력이 커짐에 따라 그는 점점 억압적이고 냉혹한 전제 군주로 변질되어 갔다. 그의 총애를 받던 신하들은 교만하고 변덕스러워져 갔고, 총애를 덜 받던 사람들의 상태는 농노나 다름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불만은 깊고 넓게 확산되어 갔다.

9:23 역사를 감독하는 두목.

 (「제임스왕역」에는 “chief of the officers”[감독관들의 두목]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솔로몬에게는 3,300명의 관리가 있었으므로(참조 5:16 주석), 여기서 말하는 550명의 두목은 좀 더 높은 지위의 관리를 말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대하 8:10에는 “솔로몬 왕의 공장을 감독하는 자가” 250명이라고 되어 있고, 대하 2:18에는 감독자의 총수가 3,600명이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열왕기와 역대기의 기록은 감독자의 총수로 보면 일치하지만, 두 계급을 하나 하나 놓고 보면 그 수가 차이를 보인다.

9:24 저를 위하여 건축한 궁.

 대하 8:11에는 바로의 딸이 이사하게 된 이유가 언급돼 있다. “네 아내가 이스라엘 왕 다윗의 궁에 거하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궤가 이른 곳은 다 거룩함이니라.”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겨왔기 때문에(삼하 6:12) 솔로몬은 분명히 성의 전 지역을 거룩한 곳으로 생각하여 자신의 이방인 아내의 집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새로운 왕실 거처가 그 사이로 튀로포에온(Tyropoeon) 골짜기가 지나가는 성전 지역의 서편 언덕에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9:25 솔로몬이…감사제를 드리고.

 어떤 이들은 본 절을 들어 솔로몬이 1년에 세 번씩 희생을 드리고 향을 사르는 제사장 역할을 한 증거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 견해를 지지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희생을 가져오는 사람이 그것을 드렸다고 되어 있다(레 2:1; 3:1, 3, 7, 9, 14). 그러나 성전 봉헌 후에 드린 제물과 관련하여, “때에 제사장들은 직분대로 모셔 섰다”(대하 7:5, 6)라는 구절이 덧붙여 있다. 그런 의식에서 향을 사르거나 희생제물을 드릴 때 솔로몬은 보통 사람이 할 일 이상은 하지 않았을 것이며 제사장만 할 수 있는 일은 저들이 하도록 했을 것이다(레 1:7, 8, 11; 2:2, 9, 16; 3:11, 16; 10:1, 2; 민 16:1~7, 17~40 등).

9:25 해다마 세 번씩.

 무교절, 오순절, 장막절(대하 8:13)은 매년 모든 히브리인 남자가 예루살렘에 모여야 하는 중요한 절기였다(출 23:14~17; 신 16:16).

9:26 에시온게벨.

 이곳은 아카바 만(灣)의 맨 상단에 있고, 아라비아 만의 지류에 있는 에돔의 항구 도성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할 때 이 근처에 장막을 친 적도 있었다(민 33:35; 신 2:8). 현재 바다에서 약 500미터 떨어진 유적지가 에시온게벨이거나 혹은 그곳과 연계된 교외의 상업 중심지였을 것이다. 거기에서 한 건물이 발굴되었는데, 전에는 그것을 제련소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요새화된 창고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유적지의 다른 곳에서 구리로 만든 여러 문화 유물들이 발견되었다(참조 신 8:9 주석). 솔로몬이 팔레스타인에서 아라비아로 연결되는 육상 상업로와 오빌로 가는 해상로를 관할했을 것이다. 이 상업로들을 장악하려는 야망이 아마도 이스라엘과 에돔이 싸운 주요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사울이 에돔과 싸웠고(삼상 14:47), 다윗은 거기에 수비대를 두었다(삼하 14:47; 대상 18:13). “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척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취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었다(22:48). 여호람 때에는 에돔이 유다를 배반하여 자기들 위에 왕을 세웠다(왕하 8:20). 아마샤는 에돔과 싸워 크게 이겼고(왕하 14:7), 그의 아들 아사랴는 “엘랏을 건축하여 유다에게 돌렸”다(왕하 14:22).

9:26 엘롯.

 엘랏이라고 기록되기도 한다. 에시온게벨 근처 아카바 만에 있다. 현재는 이 근처에 있는 현대 도시 에일라트(Eilat)라는 이름에 당시의 이름이 남아 있다.

9:27 히람이 자기 종…보내니라.

 히브리인들은 배에 익숙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 때문에 솔로몬은 베니게 선원들을 이용했는데, 그것은 마치 애굽인들이 홍해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상업적인 일에 비블로스 선원들을 고용한 것과 같다.

9:28 오빌.

 이제는 푼트(Punt)와 함께 오빌의 위치가 사실상 확정되었다. 아마 푼트는 지금 아프리카 북동 해안에 있는 소말릴랜드(Somaliland)로 알려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을 것이다. 금과 더불어 거기서 나는 품목에는 백단목(白壇木), 은, 상아, 보석, 잔나비, 공작(10:22) 등이 있었다. 애굽의 여왕 핫셉수트가 자신의 신전을 지을 몰약 나무들을 가져오기 위해 푼트로 원정대를 보낸 기록이 있다. 애굽 여왕의 배들은 흑단, 상아, 금, 계피나무, 흑표범 가죽, 잔나비 등도 실어 날랐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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