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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5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열왕기상

열왕기상 15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2. 24. 01:46

<열왕기상 15장 흐름정리>

유다의 2,3대 왕인 아비얌과 아사, 이스라엘의 2,3대 왕인 나답과 바아사에 대한 기록이다. 아사는 남북 왕국의 분열 이후 최초로 종교 개혁을 단행한 왕이다. 하지만 그러한 그도 바아사와의 전쟁에서는 하나님 대신 아람 왕을 의지하였으며 이 일로 그를 책망한 선지자 하나니를 감옥에 가두는 잘못을 범하고 말았다(대하 16:7~10). 한편, 아사의 통치 기간 중 이스라엘에서는 바아사가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에게 반란을 일으켜 왕권을 탈취하는 쿠테타가 일어났다. 이는 여로보암의 가문이 진멸되리라는 저주의 성취였다(14:10).


<열왕기상 15장 줄거리>

1. 아비얌의 사악한 통치.

7. 아사가 아비얌의 뒤를 이음.

9. 아사 왕의 선한 통치.

16. 아사가 바아사와의 전쟁 때문에 벤하닷과 동맹을 맺음.

23. 여호사밧이 아사 왕을 계승함.

25. 나답의 악한 통치.

27. 나답을 모반하여 아히야의 예언을 이룸.

31. 나답의 행적과 죽음.

33. 바아사의 악한 통치.


<열왕기상 15장 개역한글>

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왕 제 십팔년에 아비얌이 유다 왕이 되고    

2. 예루살렘에서 삼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3. 아비얌이 그 부친의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 마음이 그 조상 다윗의 마음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나    

4.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저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 아들을 세워 후사가 되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케 하셨으니    

5.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6.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사는 날 동안 전쟁이 있었더니    

7. 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있으니라 아비얌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8. 아비얌이 그 열조와 함께 자니 다윗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9.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제 이십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    

10. 예루살렘에서 사십 일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11. 아사가 그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12.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 열조의 지은 모든 우상을 없이 하고    

13. 또 그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서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14. 오직 산당은 없이 하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15. 저가 그 부친의 구별한 것과 자기의 구별한 것을 여호와의 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기명들이더라  

16. 아사와 이스라엘 왕 바아사 사이에 일생 전쟁이 있으니라    

17.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한지라

18. 아사가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남은 은금을 몰수히 취하여 그 신복의 손에 붙여 다메섹에 거한 아람 왕 헤시온의 손자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에게 보내며 가로되    

19.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가 있고 내 부친과 당신의 부친 사이에도 있었느니라 내가 당신에게 은금 예물을 보내었으니 와서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저로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20. 벤하닷이 아사왕의 말을 듣고 그 군대장관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성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벧마아가와 긴네렛 온 땅과 납달리 온 땅을 쳤더니    

21. 바아사가 듣고 라마 건축하는 일을 그치고 디르사에 거하니라    

22. 이에 아사왕이 온 유다에 영을 내려 한 사람도 모면하지 못하게 하여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가져오게 하고 그것으로 베냐민의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    

23. 아사의 남은 사적과 모든 권세와 무릇 그 행한 일과 성읍을 건축한 것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저가 늙을 때에 발에 병이 있었더라    

24. 아사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열조와 함께 그 조상 다윗의 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25. 유다 왕 아사 제 이년에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년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26.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아비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중에 행한지라    

27. 이에 잇사갈 족속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저를 모반하여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에서 저를 죽였으니 이는 나답과 온 이스라엘이 깁브돈을 에워싸고 있었음이더라    

28. 유다 왕 아사 제 삼년에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고    

29. 왕이 될 때에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생명 있는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멸하였는데 여호와께서 그 종 실로 사람 아히야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으니    

30. 이는 여로보암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죄로 인함이며 또 저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동시킨 일을 인함이었더라    

31. 나답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이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2. 아사와 이스라엘 왕 바아사 사이에 일생 전쟁이 있으니라    

33. 유다 왕 아사 제 삼년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디르사에서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십 사년을 치리하니라

34.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열왕기상 15장 성경주석>

15:1 제십팔년에.

 고대에는 거의 모든 나라가 자체의 달력이 있어서 그들 나름의 계산 방법을 사용하여 다른 나라들과 관련된 연대를 기록하였다. 오늘날에도 원래 여러 다른 달력으로 기록된 고대의 모든 연대를 표시할 때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달력과 BC 연대를 함께 사용한다. 히브리 군주 시대에 사용한 연호들은 연속하여 계수된 것이 아니고(예컨대 2004년은 기원 후 2004년째 되는 해를 의미하는 것처럼), 각 왕의 통치년 수로 헤아린 것이다. 따라서 유다에서 아비얌이 통치를 시작한 해는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제18년이라 칭했다. 이것은 두 히브리 왕국의 통치기간 사이의 상호 관계를 나타내는 여러 번의 언급들 중 첫 번째 사례이다. 이런 상호 관계에서 분명해지는 것은, 열왕기는 유다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연대 계산법에 의해서 유다 왕의 즉위와 관련된 연대를 기록하였고, 이스라엘 왕의 즉위와 관련된 연대는 이스라엘에서 사용하던 계산 방법으로 연대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이 성경절의 진술은 유다 왕의 통치와 관련된 기록이므로, 여로보암 18년이라고 한 것은 유다의 계산 방법에 따라 계수한 18년을 의미할 것이고, 따라서 반드시 여로보암 자신이 계산한 제18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15:2 딸.

 대하 13:2에 미가야라고 불린 아비야의 어머니가 “기브아 사람 우리엘의 딸”이라고 된 점으로 보아, 손녀였을 것이다. “압살롬”(대하 11:20)이라 칭해진 본 구절의 “아비살롬”도 다윗의 아들 패륜아 압살롬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의 어머니 이름도 마아가였다(삼하 3:3). 압살롬에게는 “다말”(삼하 14:27)이라는 딸 하나만 있었는데, 아마도 우리엘에게 시집간 것 같다. 르호보암의 “아내 십팔과 첩 육십” 명(대하 11:21) 중에 마아가가 가장 총애를 받았고 르호보암은 아들 28명 가운데 마아가의 아들 아비야를 세자로 책봉하였다.

15:3 그 부친의 이미 행한 모든 죄.

 아비얌은 우상을 숭배하는 부친의 습관을 따르기는 했지만 이스라엘 앞에 예루살렘 성전과 여호와 숭배를 옹호하는 자로 자신을 내세웠고,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책망하였다(대하 13:4~12).

15:4 등불.

 아비얌의 후손을 가리킨다. “다윗을 위하여”라고 말한 것은 삼하 7:12~16에서 다윗에게 한 여호와의 언약을 가리킨다.

15:5 우리아의 일 외에는.

 이런 식으로 다윗을 칭송하여 평가한 말은 이 성경절에만 나타난다. 「70인역」의 여러 필사본에는 우리야에 관한 언급이 없다.

15:6 전쟁이 있었더니.

 14:30의 진술을 반복하는 이 성경절은 「70인역」의 필사본에는 대부분 빠져 있다.

15:7 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에 관한 이 기사는 대하 13:3~20에도 있다. 열왕기 기자는 군사적인 문제를 가볍게 취급하고, 역대기에 비교적 상세히 기록된 항목들을 대부분 생략한다.

15:10 그 모친의 이름은 마아가.

 동방의 관례와 같이 유대인들은 어떤 남자의 조상을 아무리 관계가 멀어도 아버지라고 일컬었고 여성일 경우에는 어머니라 불렀다(참조 창 3:20; 10:21; 17:4; 36:43). 마아가는 아비얌의 모친였으므로 아사 왕의 할머니였다. 마아가는 태후라 칭해졌는데, 이는 그녀가 궁중에서 태후라는 영예로운 지위에 있었으며 더구나 당시에도 여전히 그녀를 매우 존경했음을 나타낸다.

15:11 정직하게 행하여.

 아사의 통치는 유다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선지자 아사랴와 하나니(대하 15:1, 2; 16:7)가 여호와의 도에 행하려고 애쓰는 그 왕을 지도하고 영감을 주었다. 열왕기는 흥미를 끄는 이 치세에 관한 사항을 간단하게 몇 가지만 언급하지만 역대기는 훨씬 더 자세히 보도한다(대하 14:1~16:14).

15:12 쫓아내고.

 나라에서 남색하는 자들을 완전히 쫓아내려는 그의 노력의 성과는 그다지 크지 못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아들 여호사밧에게 그 일을 완성하도록 위탁했기 때문이다(왕상 22:46).

15:13 우상.

 히브리어 미플레세트(mipleset). 이 단어는 여기와 평행 구절인 대하 15:16에서만 사용되었다. 그것은 가증스럽고 충격적인 어떤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매우 기괴한 종류의 어떤 음란한 형상을 의미했음이 분명하다. 그런 우상을 만든 마아가의 행위는 극악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는 노령에 높은 지위에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내쳐졌고 우상은 공중 앞에서 불태웠다.

15:14 산당은 없이 하지 아니하니라.

 아사는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이 하고” 나라에서 부패한 산당을 제하기 위하여 열렬한 노력을 기울였지만(대하 14:3~5) 그의 노력이 온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15:15 받들어 드렸으니.

 르호보암의 치세 동안(14:20) 시삭이 탈취해 간 성전의 보물들을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해 아비야와 아사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5:16 아사와 이스라엘 왕 바아사 사이에.

 아사 왕이 다스리기 시작한 첫 10년 동안에는 그 땅에 평화가 있었다(대하 14:1, 6). 아사 왕 15년에 그는 구스 왕 세라의 침략군을 맞아 대승을 거두었다(대하 14:9~15; 참조 15:10).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적대 관계에 놓인 것은 그 후의 일이었을 것이다.

15:17 라마를 건축하여.

 세라에게 아사 왕이 대승을 거둠으로,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시므온 가운데” 우거하는 많은 자들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았기”(대하 15:9) 때문이다. 바아사는 자신의 신민이 이런 식으로 아사에게 귀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라마를 건축하여 변방 통제를 강화하였다. 라마는 예루살렘 북쪽 약 1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베냐민 지파의 한 성읍이었고, 이스라엘과 유다의 국경선 바로 가까이 있었다.

15:18 헤시온.

 솔로몬의 대적이었던 르손이거나 르손의 아버지였을 것이다(11:23). 솔로몬 시대부터 아사에 이르는 짧은 기간에 아람은 엄청난 군사 강국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이제 아사는 성전의 보물을 주고 벤하닷의 군대를 사서 바아사의 군대를 물리치려 하였다. 벤하닷이라는 한 왕의 기념비가 몇 년 전에 발굴되었는데, 그것에는 그의 모습이 나타나고 아람어 명각도 실려 있다. 어떤 학자들은 그 왕이 바로 이 벤하닷일 것이라고 여긴다.

15:18 벤하닷.

 벤하닷 I세를 가리킨다. 벤하닷 II세도 있었는데 그는 아합 왕 때의 사람이었고(20:1, 34), 벤하닷 III세는 하사엘의 아들로서 여호아하스와 동시대 사람이었다(왕하 13:24, 25).

15:20 이스라엘 성들.

 공격당한 성읍들은 북방 곧 아람의 국경 근처에 있었다. 이욘은 헐몬산 서쪽 곧 레바논과 동 레바논(Anti-Lebanon) 산맥 사이에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단은 갈릴리 호수 북쪽 38킬로미터 지점에 있었다. 아벨벧마아가는 단에서 3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고, 긴네롯은 갈릴리(긴네렛) 호안(湖岸)에 있었다. 납달리 땅은 앞에 나온 성읍들이 자리잡고 있는 지역으로, 갈릴리 호수 북쪽에 있었다. 20:34에 비춰볼 때, 위에 언급된 성읍들을 적어도 아합 왕 때까지 아람이 점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5:21 건축하는 일을 그치고.

 아사의 정책은 바아사의 위협을 제거하려는 절박한 목적을 이루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적절하거나 현명한 정책은 아니었다. 아사는 구스 사람 세라가 그 땅을 침략해 왔던 위기의 때처럼(대하 14:9~15) 다시 한 번 여호와를 의뢰했어야 하였다. 자신이 어떤 난국에 처했든, 이방 왕의 도움을 얻기 위해 여호와의 전의 보물을 이용할 권리가 그에게 없었다. 이 문제로 그는 선지자 하나니의 책망을 들었지만 화를 내었고, 선지자를 감옥에 가두었다(대하 16:7~10). 훗날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와 비슷한 책망을 하였는데, 이는 저들이 하나님보다 애굽을 더 의뢰하였기 때문이다(사 30:1~17).

15:22 그것으로 베냐민과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

 아사는 강력한 군사 정책을 펴서 요새를 건축하였고,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대하 14:6, 7)을 만들었다. 바아사가 베냐민 지파에 속한 라마 곧 지금의 에르-람(er-Ram)에서 물러간 후, 아사는 라마 동편 약 3킬로미터 지점에 더 강력한 요새지를 택하여 게바(Geba)를 건축하였는데, 그곳은 지금의 제바(Jeba)로, 단구(段丘)의 꼭대기에 세워져 북쪽으로 나 있는 계곡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또 다른 요새는 미스바로, 어떤 학자는 그곳을 북서쪽 약 6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지금의 텔 엔-나츠베(Tell en-Nas.beh)로 본다. 라마를 요새화하기 위해서 바아사가 모아 들였던 자재들을 아사가 게바와 미스바를 요새화하는 데 사용하였다. 미스바는, 느부갓네살이 임명한 유다의 총독 그다랴가 자신의 본부로 택하고 세겜과 사마리아에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간선도로를 관할하고 있었던 점으로 보아(렘 41:1~5) 강력하고 중요한 요새였음이 분명하다.

15:23 아사의 남은 사적.

 아사의 남은 사적들 중 얼마는 역대기에 기록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스 사람 세라와 맞붙은 전쟁, 아사 15년에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큰 경축 행사, 선지자 하나니를 옥에 가둔 일, 백성을 압제한 일, 말년에 병이 났을 때 여호와께로 가지 않고 의사에게 간 일 등이다.

15:23 늙을 때에.

 대하 16:12에 의하면 이 일은 아사 왕 39년에 있었다.

15:24 여호사밧.

 본 주석이 사용하는 연대 계산법에 의하면 여호사밧은 부왕이 죽기 전에 한동안 공동 통치를 하였다. 분명히 아사는 쇠퇴해 가는 자신의 건강 때문에 아들에게 국정의 임무를 수행하는 일을 돕도록 했을 것이다.

15:25 제이년.

 북방 이스라엘의 계산 방식에 따르면 2년이지만, 아사 왕 자신의 계산법에 의하면 1년이다(참조 1절 주석). 일반적으로 왕들의 치세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할 때 연대기적 자료는 왕위에 오른 순서에 맞추어 배열된다. 아사 왕의 후계자인 여호사밧 치세를 소개하지 않고 오히려 나답의 치세를 아사 왕 다음에 소개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열왕기상에 기록된 나머지 왕들의 치세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나온다.



 위의 치세들은 정확하게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 정리되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여호사밧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는 아합 왕 4년이었으므로 아합의 치세가 제시되고 나서야 비로소 여호사밧이 소개되었으며, 아하시야가 통치를 시작한 때는 여호사밧 17년이었으므로 아하시야의 치세는 여호사밧 다음에 소개되었다. 이것은 어떻게 열왕기라는 책이 연대기적 자료의 얼개를 축으로 구성돼 있는지를 보여 준다.

15:26 악을 행하되.

 이것은 나답의 치세에 관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사항이다.

15:27 잇사갈 족속.

 바아사는 미미한 잇사갈 지파 출신으로, 히브리 역사의 어느 시대에도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15:27 깁브돈.

 본래 단 지파에게 할당된 영토에 있던 레위 지파의 성읍이었다(수 19:44; 21:23). 그것은 셰펠라에 있었다(참조 수 19:44 주석). 이 변방 지역에 있던 많은 성읍의 지배자가 어떤 때는 히브리인들로, 어떤 때는 블레셋인들로 자주 바뀌었다. 이 성읍은 당시 블레셋의 지배 아래 있었고, 24년 후에도 여전히 그러하였다(16:15).

15:28 아사 제삼년.

 나답은 아사 2년에 통치를 시작하여(25절), 2년을 다스린 후 아사 3년에 바아사에게 죽임을 당했다. 여로보암의 마지막 해가 나답의 첫 해로도 계산될 수 있는 방식에 따라 나답의 치세를 계산했기 때문에 이렇게 될 수 있었고, 따라서 나답의 통치 제2년의 어떤 시점도 나답의 제2년으로 간주된다. 그가 두 통치년의 양쪽 해에 걸쳐 왕위에 있었으므로 2년간 위에 있었다고 말해졌을 것이다(선지자와 왕, 109).

15:29 온 집을 쳐서.

 참조 16:12 주석. 바아사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쳤”고, 이렇게 하여 아히야의 예언을 성취시켰다(14:7~11).

15:33 디르사.

 여로보암이 수도로 정했던 이 도성(14:17)은 바아사 집의 통치 하에서뿐 아니라 오므리 때까지도 계속 이스라엘의 수도로 있었다. 이곳은 한때 가나안 사람들의 왕도(王都)였고(수 12:24), 예루살렘처럼 아름다운 도성으로 유명하였다(아 6:4).

15:33 이십사 년.

 바아사가 아사 3년에 통치를 시작하여 아사 26년까지 왕위에 있었으므로(16:8), 포함식 연대 계산법으로 24년이 된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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