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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6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열왕기상

열왕기상 16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2. 27. 06:24

<열왕기상 16장 흐름정리>

이스라엘의 왕조가 또다시 바뀐 것에 대한 기록이다. 하나님은 여로보암 왕가를 징벌하기 위해 바아사를 왕으로 세우셨다. 그러나 그 역시 여로보암의 죄악을 답습하였으며 선지자 예후의 경고를 듣고도 회개치 않았다. 그 결과 엘라, 시므리에 이어 오므리가 권력을 장악함으로 이스라엘의 제3대 왕조인 오므리 왕조가 들어섰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정치적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종교적으로는 암흑기를 초래하고 말았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베니게와 결혼 동맹을 맺고 바알 숭배자인 이세벨과 결혼한 것은 북왕국을 우상 숭배지로 만든 대표적인 사례이다.


<열왕기상 16장 줄거리>

1, 7. 바아사에 대한 예후의 에언.

6. 엘라가 바아사를 계승함.

8. 시므리가 엘라를 모반하고 왕이 됨.

11. 시므리가 예후의 예언을 이룸.

15. 군인들이 왕으로 세운 오므리가 시므리를 맹렬히 밀어붙이자 불을 놓아 자결함.

21. 나라가 이분되었으나 오므리가 디브니를 이김.

23. 오므리가 사마리아를 건축함.

25. 오므리의 악한 통치.

27. 아합이 오므리를 이어 왕이 됨.

29. 아합의 악한 통치.

34. 여리고를 건축한 히엘에게 여호수아의 저주가 이루어짐.


<열왕기상 16장 개역한글>

1.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예후에게 임하여 바아사를 꾸짖어 가라사대    

2. 내가 너를 진토에서 들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여 저희 죄로 나의 노를 격동하였은즉    

3. 내가 너 바아사와 네 집을 쓸어버려 네 집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 같이 되게 하리니    

4. 바아사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 하셨더라    

5. 바아사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과 권세는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6. 바아사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디르사에 장사되고 그 아들 엘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7.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선지자 예후에게 임하사 바아사와 그 집을 꾸짖으심은 저가 여로보암의 집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모든 악을 행하며 그 손의 소위로 여호와의 노를 격동하였음이며 또 그 집을 쳤음이더라    

8. 유다 왕 아사 제 이십 륙년에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디르사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년을 위에 있으니라    

9. 엘라가 디르사에 있어 궁내대신 아르사의 집에서 마시고 취할 때에 그 신복 곧 병거 절반을 통솔한 장관 시므리가 왕을 모반하여    

10. 들어가서 저를 쳐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 곧 유다 왕 아사 제 이십 칠년이라    

11. 시므리가 왕이 되어 그 위에 오를 때에 바아사의 온 집을 죽이되 남자는 그 족속이든지 그 친구든지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12. 바아사의 온 집을 멸하였는데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후로 바아사를 꾸짖어 하신 말씀 같이 되었으니    

13. 이는 바아사의 모든 죄와 그 아들 엘라의 죄를 인함이라 저희가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여 그 헛된 것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    

14. 엘라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이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5. 유다 왕 아사 제 이십 칠년에 시므리가 디르사에서 칠일 동안 왕이 되니라 때에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을 향하여 진을 치고 있더니    

16. 진중 백성들이 시므리가 모반하여 왕을 죽였다는 말을 들은지라 그 날에 이스라엘의 무리가 진에서 군대장관 오므리로 이스라엘 왕을 삼으매    

17. 오므리가 이에 이스라엘 무리를 거느리고 깁브돈에서부터 올라와서 디르사를 에워 쌌더라    

18. 시므리가 성이 함락됨을 보고 왕궁 위소에 들어가서 왕궁에 불을 놓고 그 가운데서 죽었으니    

19. 이는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범죄함을 인함이라 저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20. 시므리의 남은 행위와 그 모반한 일이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1.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둘에 나뉘어 그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좇아 저로 왕을 삼으려하고 그 절반은 오므리를 좇았더니    

22. 오므리를 좇은 백성이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좇은 백성을 이긴지라 디브니가 죽으매 오므리가 왕이 되니라    

23. 유다 왕 아사 제 삼십 일년에 오므리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 이년을 위에 있으며 디르사에서 육년 동안 치리하니라

24. 저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산을 사고 그 산 위에 성을 건축하고 그 건축한 성 이름을 그 산 주인이 되었던 세멜의 이름을 좇아 사마리아라 일컬었더라    

25.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    

26.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여 그 헛된 것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케 하였더라    

27. 오므리의 행한 그 남은 사적과 그 베푼 권세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8. 오므리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합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29. 유다 왕 아사 제 삼십 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 이년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32.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사당 속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33.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 저는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    

34.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열왕기상 16장 성경주석>

16:1 하나니의 아들.

 하나니는 유다 왕국의 아사 왕에게 보냄을 받은 선지자였다(대하 16:7~10). 여호와는 이제 하나니의 아들 예후를 이스라엘 왕 바아사에게 보내 당신의 기별을 전하게 하였다. 이때에 예후는 분명히 청년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합이 죽은 후에 여호사밧을 책망하는 모습(대하 19:12)과 여호사밧의 치세 연보(年譜)를 기록한 것(대하 20:34)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16:2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여.

 바아사에게 보낸 이 책망의 기별은 여로보암에게 보낸 아히야의 기별과 비슷한 데가 있다(14:7~11). 14:7에는 나타나지 않는 “진토에서 들어”라는 표현은 바아사가 부나 지위 등의 전력(前歷)을 전혀 지니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미인 것 같다. 다시 말해, 이런 것들이 여로보암에게 높은 지위를 얻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지만 바아사는 백성들 중 가장 비천한 계층에서 뽑혀 나왔다는 의미이다.

16:3 네 집을 쓸어버려.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집을 쓸어 버리기 위해 사용된 도구였다. 따라서 그가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간다면 참으로 두려운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하였다. 만일 회개했더라면 그 끔찍한 파멸을 어느 정도는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기별은 흔히 죄인이 자기 길을 고집할 때 닥쳐올, 되돌릴 수 없는 파멸에 대한 경고로 주어진다. 하나님은 구원하기를 원하며, 파멸시키기를 원하지 않는다.

16:5 남은 사적.

 바아사는 24년간 다스렸다. 따라서 공식적인 연대기에 선별하여 실어, 그의 치세에 관한 포괄적인 설명을 제시할 만한 흥미 있는 기삿거리가 분명히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열왕기의 기자는 그 모든 사항을 지나쳐 버리고, 그러한 일들은 이미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만을 독자들에게 언급한다. 기자가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각 통치자들이 여호와와 이스라엘을 향한 그분의 뜻에 대해 취한 입장과 그 입장이 하나님의 선민의 국가 역사에 끼칠 영향이다. 그 나라가 번영할 것인가 아니면 쇠퇴할 것인가? 그 나라가 영원히 존속할 것인가 아니면 쇠패하여 멸망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을 향한 왕과 백성들의 태도에 달려 있었다.

16:7 선지자.

 언뜻 보기에 이 구절은 문맥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바아사의 치세에 관한 공식적인 기록은 앞 절에서 그의 죽음과 장사(葬事) 그리고 아들의 등극을 선포함으로써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예후가 바아사와 그의 집에 보낸 기별을 또 한번 언급함으로써 이야기가 다시 바아사 치세로 거슬러간다. 이 추가적 언급은 특별히 바아사의 극악무도한 죄를 확실하게 규명하기 위해 기록되었을 것이다.

16:7 여로보암의 집을 본받아.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집을 진멸하는 일을 했지만 그 자신도 그보다 조금도 낫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뒤엎은 집에 내린 징벌의 원인이 된 동일한 악의 길로 행하였다.

16:8 이 년을 위에 있으니라.

 엘라는 아사 26년에 즉위하여 아사 27년에 통치를 끝마쳤으므로, 포함식 연대 계산법에 따른 2년이다(10절; 참조 15:28 주석).

16:9 마시고 취할 때에.

 술 취함은 나라를 패망으로 몰아가는 행위이다. 통치자들이 술에 탐닉하게 되면 국정을 태만히 하여 나라가 고통받게 된다.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고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에게 마땅치 아니하도다”(잠 31:4, 5).

16:9 모반하여.

 이것은 이스라엘이 처해 있는 저속한 수준의 도덕적 상태를 보여 준다. 시므리는 엘라의 군대에서 신망받는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불충을 드러내 왕위를 굳게 붙드는 것이 자신의 임무인데도 왕을 배신하였다. 이기심이 지배하여, 왕을 암살하는 또 하나의 기록이 추가된다. 왕과 백성이 하나같이 하나님의 율법을 짓밟고 저들의 생애가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따라 꼴 지어지기를 거절하는 곳에는 평화와 안보가 있을 수 없고 평온과 안전도 존재할 수 없다.

16:11 그 친구든지.

 이 말은 얼마나 가혹하게 멸했는지를 보여 준다. 왕실의 모든 가족뿐 아니라, 모사와 대신들을 포함하여 친구들까지도 모두 멸절되었다. 백성들이 그러한 왕을 선대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특별히 선왕을 섬기던 군대장관으로서 자신의 안전을 염려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오므리에게는 달리 대했다. 다른 사람을 위태롭게 하는 사람은 곧 자신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16:12 하신 말씀같이 되었으니.

 흔히 선지자들의 예언은 하나님의 작정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예고의 성격을 띤다. 하나님은 자신이 내다보는 일을 모두 작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 어떤 경우에는 선지자의 말이 심판의 선고인 때가 있다. 악한 통치자에게 내릴 형벌을 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권이다. 죄악이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은 사망이다. 심판의 의지를 실행에 옮길 때 하나님의 판결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하늘의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참조 왕하 9:7). 그러나 종종 저들은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그렇게 했고, 복수하려는 동기로 움직였다. 그러한 저들이 그러한 동기에서 움직인 만큼 상당한 죄를 자초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했던 앗수르는 저들의 행위를 부추긴 이기적이고 잔인한 동기 때문에 훗날 벌을 받았다(사 10:5~13). 시므리도 바아사의 집에 내려진 심판의 본래 의도를 넘어서, 죽여서는 안 될 많은 사람을 죽인 것 같다.

16:13 그 헛된 것으로.

 우상숭배를 말한다(참조 신 32:16, 21; 삼상 12:10, 21; 렘 8:19). 사람이 자신의 손으로 신을 만들고 그 앞에 몸을 굽혀 경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러한 행동의 어리석음을 거듭거듭 밝히고 있다(시 115:4~8; 사 41:21~29; 44:9~20; 렘 10:3~8).

16:15 칠 일 동안.

 통치기간이 채 1년도 안 되는, 며칠 혹은 몇 달로 주어진 경우가 자주 나타난다(왕하 15:8, 13; 23:31; 24:8; 대하 36:2, 9).

16:15 깁브돈.

 24년 전 바아사는 나답이 깁브돈을 포위하고 있을 때 그를 쳐죽였다(15:27).

16:16 오므리.

 엘라는 디르사에 있는 자기의 궁내대신의 집에서 취해 있는 동안에 시므리에게 죽임을 당했고(9절), 그 소식이 깁브돈에 있는 군대에 전해지자 곧 저들은 오므리를 왕으로 삼았다. 이 사건은 특히 로마 군인들이 좋아하는 관례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로마에서 황제가 암살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면 저들의 군사령관에게 곧잘 자색 옷을 입히곤 하였다.

16:18 성이 함락됨을.

 시므리의 통치기간이 고작 7일에 불과한 점으로 보아(15절),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성을 포위했을 것이다. 오므리가 성을 포위하자마자 곧 함락시킨 점을 보면 도성 내부로부터 도움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16:18 왕궁 위소에 들어가서.

 왕궁 안의 가장 견고한 요새로 들어 간 것 같다. 시므리는 왕궁에 불을 놓아 그 가운데서 죽었는데 동방 역사에는 그와 유사한 사례가 많이 있었다.

16:19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시므리는 고작 7일 동안 이스라엘의 왕위에 있었지만 가장 오래 왕위에 있었던 왕들이 받았던 것과 같은 단죄를 받았다. 그의 죽음은 열왕기의 기자가 이스라엘 모든 군주의 역사에서 이끌어 낸 교훈, 곧 저들이 여로보암의 죄를 고집스럽게 따라감으로써 나라와 백성들에게 저주가 임하여 결국 왕실마다 수치스럽고 피비린내 나는 종말을 맞았음을 보여 주는 예증이 된다.

16:21 둘에 나뉘어.

 시므리가 죽음으로 이스라엘에 두 왕이 일어났다. 두 왕은 각기 나라를 절반씩 다스리게 되었다. 시므리는 아사 왕 27년에 7일간의 짧은 통치를 시작하였고(참조 10, 15절) 디브니와 오므리도 그때 통치를 시작하였으므로 이들은 모두 아사 왕 27년에 통치를 시작한 셈이다.

16:22 디브니가 죽으매.

 디브니가 어떻게 다스리다 죽었는지 알 수 없지만 “디브니가 죽으매 오므리가 왕이” 되었다는 간단한 기록에는 좋지 못한 뜻이 내포돼 있다. 분명 두 왕 사이에는 계속 싸움이 있었고, 오므리가 자신의 경쟁자를 제거하고 나서야 비로소 싸움이 끝났을 것이다.

16:23 아사 제삽십일년에.

 분명히 오므리가 단독 통치를 시작한 때를 가리킬 것이다. 그가 처음 왕이 된 때는 아사 왕 27년이었다(15, 16절). 포함연대 계산법에 따라, 5년 후(아사 왕 31년) 그는 단독 통치를 시작했다.

16:23 십이 년을 위에 있으며.

 이 기간은 성경 연대기 학자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안겨 주었지만 비교적 간단하게 해결된다. 여기서 12년은 오므리가 왕으로 다스린 기간 전체, 곧 그가 단독으로 통치한 기간뿐 아니라 디브니가 나라의 일부를 함께 다스리고 있던 때도 포함한다. 따라서 오므리의 통치기간은 백성들이 그를 왕으로 삼은 때(15, 16절)인 아사 왕 27년에 시작하여 아들 아합이 뒤를 이어 왕이 된 해인 아사 왕 38년에 끝나므로(29절), 포함식 연대 계산법으로 12년이 된다.

16:23 디르사에서 육 년.

 오므리가 다스리기 시작한 때로부터 디브니가 죽은 지 조금 후까지. 오므리의 경쟁자가 죽고 난 후 1년 동안 디르사는 계속 그의 수도였다.

16:24 사마리아산.

 오므리의 등극은 북방 왕국에 안정된 정부와 번영을 가져온 새로운 시대를 이루었다. 수도가 디르사에 있는 동안 나라는 알력과 불안정의 긴 시기를 지냈다. 아직도 불만의 씨가 디르사에 상존해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이 때문에 오므리는 새로운 수도를 정하기로 결심한다. 세겜 북서쪽 약 12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사마리아산을 택한다. 나라의 수도로 이보다 더 완벽한 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곳은 경관이 아름다운 위치에 있어서, 바다가 바라다 보이며 수 킬로미터 떨어진 주변 지역도 둘러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나라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마리아산은 사면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뤄져 있어서, 장기간의 포위에도 잘 견뎌낸 사실이 보여 주는 것처럼(왕상 20:1; 왕하 6:24; 17:5; 18:9, 10) 군사적인 요새로도 적합했다. 주변 지역은 대단히 비옥하였고, 언덕 위에는 물이 풍족한 샘들이 있었다. 사마리아의 역사는 그 설립자가 얼마나 현명한 사람이었는지를 입증해 준다. 왜냐하면 사마리아는 그 나라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 이스라엘의 수도였기 때문이다. 고대 사마리아 유적지를 발굴한 결과 도성의 가장 아래층은 오므리 시대의 것으로 연대가 매겨졌다.

16:25 더욱 악하게 행하여.

 세속적인 측면에서 볼 때 오므리는 성공한 통치자였다. 그는 어지러운 나라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기 위해 많은 일을 하였다. 그의 이름은 유명한 모압 돌(Moabite Stone)에 실려 있는데, 거기에 오므리가 모압을 점령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인들에게도 “오므리의 나라”로 알려져 있었고, 오므리가(家)를 궤멸시킨 예후까지도 “오므리의 아들”로 언급돼 있다. 그러나 여호와가 보기에 오므리는 전에 있던 모든 악한 왕들보다도 더욱 악하였다. 그는 이미 존재해 왔던 우상숭배를 수용했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돈 사람들의 바알을 들여와 숭배하도록 장려하였다. 미가는 “오므리의 율례”를 “아합 집의 모든 행위”와 연관지어 철면피하고 희망 없는 배도의 상징이라고 말하였다(미 6:16).

16:31 시돈 사람의 왕.

 두로는 당시에 베니게의 주요 도성이었지만(참조 창 10:15 주석) 역사적으로 유명한 시돈의 명성 때문에 두로의 왕들은 “시돈 사람의 왕”이라는 칭호로 불리게 되었다. 구브로 섬에서 발견된 한 봉헌 술잔에는 바로 이 칭호가 명각(銘刻)되어 있다.

16:31 이세벨.

 이세벨이라는 이름은 악의 대명사가 될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 엣바알은 바알의 제사장이었다(선지자와 왕, 114). 요세푸스는 그를 여신 아스다롯(Astarte)의 제사장이라고 일컬었는데, 그는 두로 왕 펠레스(Pheles)를 죽이고 새로운 왕조를 창건하여 32년간 두로를 다스렸다(Against Apion i. 18). 이스라엘에 거짓 종교를 전파한 그 왕녀의 광신적인 신앙은, 이세벨이 제사장 가문 출신이라는 사실로 설명될 수 있다.

16:31 바알.

 문자적으로 “주”(主). 바알은 폭풍의 신을 지칭하기도 했고 여러 지방의 많은 다산 신들을 지칭하였는데, 다산 신은 자연 속에 있는 생산의 원리로서 경배되었다. 이때 아합은 이 타락한 종교를 장려하였다.

16:32 바알의 사당.

 이 사당의 유물이 발견된 적은 없고, 지금까지 발굴된 것은 아마도 아합의 찬란한 궁전의 일부일 것이다.

16:33 아세라 목상.

 참조 삿 3:7; 왕상 14:15 주석. 바알은 흔히 여신 아세라와 결부되었고(삿 2:13), 바알의 제단 곁에는 여신 아세라를 상징하는 나무 그루터기 곧 아세라 목상(삿 6:25, 30)이 있었다.

16:34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참조 수 6:26 주석. 이때 여리고가 재건되어 다시 상당히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여리고는 자연이 주는 이점이 많아서, 관개가 잘 되었고 요단 계곡으로부터 벧엘 고원에 이르는 간선도로의 요충지를 점유하고 있었다. 여리고는 아합의 후원을 받아 벧엘 사람들이 재건한 것 같다.

16:34 아비람.

 참조 선지자와 왕, 230. 어떤 학자들은 이 구절을 그 시대의 타락한 종교의 잔인한 일면이었던 인간 제물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렇게 이해한다면 맏아들은 기공식의 제물처럼, 말째 아들은 준공식의 제물처럼 바쳐졌을 것이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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