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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잠언

잠언 1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3. 9. 14:38

<잠언 1장 흐름정리>

여기서 기자는 잠언의 목적을 먼저 밝힌 다음(1~6절), 악을 멀리하고 지혜를 추구할 것을 권한다. 본서의 대부분을 저술한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세우심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였고 하나님은 그에게 탁월한 지혜를 허락하셨다. 그래서 나온 것이 솔로몬의 잠언이다. 이 잠언은 단순한 처세술과는 차이가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이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내용이다. 그러기에 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단언한다(7절). 20절 이하에서는 지혜가 의인화되어 길거리와 광장에서 자신을 찾으라고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잠언 1장 줄거리>

1. 잠언의 사용 목적.

7.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의 말씀을 믿으라는 권고.

10. 죄인의 꼬임을 피하라는 경고.

20. 지혜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을 한탄함.

24. 지혜가 자신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경고함.


<잠언 1장 개역한글>

1.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2.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3.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4.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5.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6.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8.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9.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10.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찌라도 좇지 말라    

11.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를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12. 음부 같이 그들을 산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게 통으로 삼키자    

13. 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에 채우리니    

14.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할찌라도    

15.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16.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 가며 피를 흘리는데 빠름이니라    

17. 무릇 새가 그물 치는 것을 보면 헛일이겠거늘    

18. 그들의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19. 무릇 이를 탐하는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20.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21. 훤화하는 길 머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가로되    

22.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24. 내가 부를찌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찌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27.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28.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29.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30.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31.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32.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33.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잠언 1장 성경주석>

1:1 솔로몬의 잠언이라.

 “잠언”이란 단어의 의미는 서론을 참조하라. 잠언 또는 격언은 히브리 시의 특징인 운율을 갖춘 평행구로 되어 있다. 솔로몬은 이 격언들을 쓸 만한 자격을 탁월하게 갖췄다. 그는 온 세계가 경이롭게 여길 정도의 지혜를 받았으며(왕상 3:12; 10:23~25),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들을 꾸준히 관찰하였으며, 모든 나라의 사람과 가진 관계를 통해 그의 지혜와 지식의 창고를 풍요롭게 하였다(참조 왕상 4:29~34; 10:1~3).

1:2 지혜.

 히브리어 호크마(h.okmah). 이 말은 성경에 141회 나오며 거의 예외 없이 “지혜”로 번역되었다. 호크마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1) 기술적인 능력(출 28:3; 35:26; 왕상 7:14), (2) 영리함, 기민함(왕상 2:6; 3:28; 욥 39:17; 사 10:13; 29:14), (3)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지혜(왕상 4:30; 사 47:10), (4) 경건한 지혜(신 4:6; 시 37:30; 90:12; 잠 10:31; 사 33:6; 렘 8:9), (5) 하나님의 속성으로서의 지혜(시 104:24; 잠 3:19; 렘 10:12; 51:15), (6) 의인화된 하나님의 지혜(잠 8:1~36; 9:1~6), (7) 인간의 이상적인 지혜(시 111:10; 잠 1:2 등)가 그것이다.

  “지혜”(wisdom)가 품성이나 행실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지식”(knowledge, 히브리어 다아트[da‘at], 7절)과 구별되는 반면, 지식은 근본적으로 지적인 계몽을 가리킨다. 지식은 실생활에 적용할 수 없는, 서로 관련이 없고 체계적이지 못한 사실들의 축적에 불과할 뿐일 수 있다. 지혜는 그러한 사실들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을 뜻한다. 그 중간쯤에 해당하는 의미를 “명철”(understanding, 히브리어 비나[binah], 2절)이라는 말 속에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명철은 사실들을 평가하고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데 그런 능력은 지혜의 틀을 갖추는 데 필수요건이다.

  잠언에서 극찬하는 지혜는 이상적인 도덕성이나 종교적 품성에서 드러나는 실용적인 현명함이다. 지혜의 여러 측면은 하나님의 표준에 다다른 사람들의 특징을 보여 준다. 솔로몬이 말한 지혜는 실생활 모든 면에 적용된다는 점에서 포괄적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경건함을 일상적인 의무들과 구별하지 않는다. 진정한 지혜를 가진 자의 경험에 비춰 볼 때, 모든 생각과 행동은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과 관련된다.

  이상적인 “지혜” 대신에 신약은 “의”(마 6:33), “거룩함”(고후 7:1; 히 12:10), “사랑”(고전 13장)에 관하여 언급하지만, 이러한 것들도 서로 유사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개념들의 초점은 형식주의 또는 이론적인 신앙과 관련된 교리보다는 품성에 맞춰져 있다. 훈계. 히브리어 무사르(musar), “훈계하다”, “가르치다”, “수정하다”, “혼내다”라는 뜻을 가진 어근 야사르(yasar)에서 유래했다. 무사르는 교훈의 결과를 나타낼 수도 있으므로 지혜와 거의 동일하다. 

  지혜 가운데서 성장하는 것은 교훈의 결과이지만, 그 교훈은 거룩한 계시에 근원을 두고 있을 때에만 성장한다. 성경은 그러한 가르침의 진정한 기초이다.

1:3 지혜.

 히브리어 세켈(sekel). 2절에 번역된 “지혜”와는 다른 말이다. 세켈은 “세심함”, “통찰력”, “사려”를 뜻한다. 하지만 이 말은 지혜와 동의어이다. 히브리 시는 특징적으로 동의어를 배가시킨다. 그런 것들은 다른 개념을 각기 나타낸다고 이해하기보다는 대구적인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확대해서 표현하는 것의 효과는 다루는 주제의 포괄성을 강조하고 그 주제를 그것이 지닌 모든 측면으로 충분히 적용하기 위한 것이다.

1:4 슬기.

 히브리어 오르마(‘ormah), “교활함”, “분별.” 이 말은 경우에 따라 출 21:14에서처럼 나쁜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교활”로 번역되어 있음), 이 절이나 잠 8:5, 12에서처럼 좋은 의미로도 쓰인다.

1:4 주기 위한.

 4~6절은 누구를 위해 잠언이 기록되었는지를 말한다. 곧 어리석은 자, 젊은 자 그리고 지혜 있는 자를 위해서이다.

1:5 지혜 있는 자.

 우리는 지혜 있는 자에게는 이 책이 필요하지 않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진정 지혜 있는 자는 자신이 온 우주의 값진 보화 중 극히 작은 부분만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도움을 기꺼이 받으려 할 것이다.

1:6 비유.

 히브리어 믈리차(melis.ah), “풍자문”, “풍자시”(합 2:6). 여기서는 아마도 “비유” 또는 “수수께끼”로 쓰였을 것이다.

1:6 오묘한 말.

 곧 “수수께끼”, 즉 설명이 필요한 불가사의한 암시.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여호와를 공경하는 것을 말한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무가치함을 느끼고, 하나님의 은혜로운 계획 안에서 구원을 발견한 사람들을 특징짓는 사랑과 두려움과 감사로 가득 찬 존경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성경 말씀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는 지적인 훈련은 어디에도 없다.

1:7 근본.

 히브리어 레쉬트(re’s∨it). 이 말은 “중요한 부분”을 뜻하기도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모든 참된 지식을 얻는 첫 단계일 뿐 아니라, 지식의 가장 중심적인 강조점이기도 하다. 만약 지식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생애를 바치는 쪽으로 인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세상의 빛이 되시며 생명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할 지혜가 없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한 사람의 탁월함은 그가 그리스도의 덕목들을 갖추고 있는가에 따라 판단된다”(Ellen G. White, Letter 106, July 15, 1902).

1:7 미련한 자는…멸시하느니라.

 구약에서는 (1) 에윌(’ewil)과 (2) 크실(kesil), 이 두 단어가 자주 미련한 자로 쓰였다. 둘 다 멍청한 사람을 나타낸다. 둘 모두 잠언과 전도서에 빈번히 쓰였으며 구약의 다른 책들에서는 드물게 사용되었다. 미련한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 있는 자와 대비되기 때문에, 그는 회개하지 않는 죄인을 묘사한다. 솔로몬은 하나님과 그분의 방법을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들과 의에 등을 돌리고 영원한 죽음의 길을 걷는 자들의 극명한 대조를 보여 준다. 경솔하게 쾌락을 사랑하든지 고의로 저항하든지,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미련한 자들은 참된 모든 지혜를 거부한다. 아무리 지식을 많이 쌓았을지라도 그들의 중심이 비어 있으므로 균형이 깨지게 되고, 허망한 철학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1:8 내 아들아.

 교사가 학생들에게 말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이 절에서도 그렇게 쓰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미를 언급한 것은 마치 솔로몬이 자신의 경험의 열매들을 아들에게 전달하는 듯한 개인적인 관계를 시사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따르는 일은 부모를 존경하여 순종하는 것이다. “훈계”란 단어는 규율이란 개념을 포함하여 아버지가 가정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럼에도 자녀를 교육하는 일은 대체로 어머니의 일이다. 또한 종종 청년을 바른 길로 가도록 붙들어 주고 방황할 때 다시 돌이켜 주는 것은 어머니의 자상한 보살핌에 대한 기억이다.

1:9 아름다운 관.

 순종으로 은혜롭고 아름다운 관을 쓰는 자들이 얼마나 적은지! 요셉이나 다니엘(창 41:42; 단 5:29)과 같이 부모님의 말씀에 유의하는 자들을 위해 강압의 사슬이 아닌, 영광의 금사슬이 기다리고 있다.

1:10 좇지 말라.

 의지가 모든 것을 주관함을 상기시켜 주는 말이다. 사람 혹은 악마라도 우리로 하여금 죄 지을 의지를 갖도록 구슬리지(참조 롬 6:13) 않고서는 우리를 죄 짓게 할 수 없다. 반드시 심령이 죄된 행위를 꾀한 다음에야 열정이 이성을 지배할 수 있다(참조 교회증언 5권, 177). 때때로 오래도록 저항해 온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여기고 죄악에 굴복한다. 그러나 유혹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죄에 대한 핑계거리가 되지 못한다. 아무리 계속된 저항으로 중압감이 증가할지라도 우리의 의지는 끝까지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법을 배울 수 있고 또한 마땅히 배워야 한다.

1:11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이 잔인함과 탐욕에 대한 노골적인 호소는 이 문명화된 시대에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정욕은 변하지 않는다. 명성이나 호기심의 충족과 같은 사소한 이유로 냉혹한 살인을 저지르는 일들이 이 시대에 존재한다. 무감각한 강도질, 정직하고 빈곤한 자들에게 커다란 고통을 안기는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 구절들은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아주 긴요한 경고이다.

1:13 집에 채우리니.

 여기에 강도(强盜)를 자극하는 요인이 묘사되었다. 악명 높은 단체의 일원이 되고 탈취한 물건들로 이익을 챙겨 나누자는 권유에 탐욕스럽고 게으른 자는 쉽게 우쭐해진다. 다음 부분(15~19절)은 남의 것을 탈취하여 영속적이고 만족스러운 이익을 얻으려는 소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보여 준다.

1:15 다니지 말라.

 저자는 죄를 범하는 삶-혹은 법의 범위 내에서라도 과도한 이익을 내려는 시도-이 왜 보상받지 못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제시한다. 악행을 저지르도록 자신들 외의 어떤 힘이 악한 자들에게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므로 그들과 무심결에 나누는 교제에도 위험이 있다. 또한 그들과의 연합은 옳고 그름에 관한 개념을 왜곡시키므로 그들의 생활 방식에 동참하게 될 수도 있다

1:16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악한 자들과 운명을 함께한 자의 몰락은 무서울 정도로 신속하다. 오래지 않아 양심이 너무 완고해져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운데 자란 청년일지라도 살인에 대한 충동이 일어나게 된다.

1:17 그물 치는 것.

 죄를 범하는 삶의 불만족스러운 결과들은 너무 일반적이고 명백하게 펼쳐져 있으므로 새 정도의 지능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자신을 잡기 위해 놓은 덫을 충분히 피할 정도의 지혜는 있다.

1:18 자기의 피를 흘릴 뿐.

 범죄는 필연적으로 범죄자를 파멸로 치닫게 한다. 영구적인 재산의 이익을 얻는 자는 많지 않고, 이익을 얻은 자라도 정직함만이 보장해 줄 수 있는 평온한 행복을 잃는다. 악한 동료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배신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자랑스럽게 들어갔던 그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전의 악행에 대한 값을 기꺼이 치르겠다는 결심을 포함하는 회개가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1:19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탐욕스러운 자는 폭력에 의해서든 승인된 상거래 관행에 의해서든 자신이 탈취한 것 때문에 가난한 자들의 생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다는 것과 자신이 압제한 가난한 자들의 고통에 유의하지 않는다. 여기 열거된 엄숙한 경고들은 그러한 죄는 이생은 물론이고 심판의 날에도 그 자신에게 악한 결과들을 가져오게 될 것을 가리킨다(참조 롬 6:23; 약 1:14, 15).

1:20 지혜가…부르며.

 이 책의 앞부분 전체에 걸쳐 지혜는 순결하고 고상한 여인으로 의인화되어 있다. 히브리어는 단수 동사와 함께 사용된 지혜를 가리키는 복수형 명사 호크모트(h.okmot)를 사용한다. 아마도 호크모트는 모든 종류의 지혜를 나타내기 위해 강조하는 복수형일 것이다. 그것은 강렬함의 복수형으로서 모든 종류의 지혜를 대표하는 것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호크모트가 단수 추상명사 호크무트(h.okmut)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1:22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22~33절은 지혜가 말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말들을 제공한다. 다음에서 유죄의 정도가 점진적임을 주목하라:의로 교훈받을 필요성을 자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 선한 것을 공개적으로 조롱하는 이들, 그리고 미련한 자들이라 불리는 상습적인 죄인들. 어리석은 자들과 거만한 자들은 하찮은 일들과 교만에 너무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경고에 유의하지 않는다. 또한 미련한 자들은 의를 강하게 미워하고 의에 저항한다.

1:23 나의 신을…부어주며.

 어리석은 자들, 거만한 자들 혹은 미련한 자들일지라도 돌이켜 듣는다면 지혜는 그들을 지도하고 그들에게 꼭 필요한 지식의 영을 부어줄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의 영께서는 죄를 깨닫게 하는 말을 분명하게 보여 주며 그들을 회개하도록 인도할 것이다. 성령의 분량은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자의 수용력이 좌우한다.

1:24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무관심한 자들과 강하게 반대하는 자들에게 계속 말하면서, 지혜는 하나님의 지식을 얻으라는 초청에 유의하기를 소홀히 한 것에 대한 두렵고 피할 수 없는 결과를 서술한다. 이 미련한 자들은 경고하는 말에 귀먹고 초청하는 두 팔을 보지 못한 채 자기 자신들의 길로 간다.

1:25 멸시하며.

 히브리어 파라(para’), “무시하다”, “간과하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거절하는 자들은 선한 것을 모르거나 구원이 무가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묘사되지 않았다. 그들은 더 사소한 일들에 너무 바쁘고 죄에 무감각해져 부르심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것으로 단순하게 묘사되었다(눅 14:18; 행 24:25). 그들은 이방인이 아니라 부주의하거나 타락한 신자들이다. 지혜의 간청에 응답하는 때를 늦추는 것은 위험하다.

1:26 내가 웃을 것이며.

 어리석은 자들이 구원의 제안을 비웃으며 지나쳐 버린 것처럼 지혜도 그들의 곤경을 무시하고, 미련한 자들과 거만한 자들이 생명의 길을 조롱한 것처럼 자비에 대한 그들의 울부짖음도 심판의 엄숙한 집행에 직면할 것이다.

1:27 [고난].

 “고난”과 “고통”(「개역한글판」에는 이 말이 없음-역자 주)은 동의어이며, 넓은 공간에서의 자유로움과 대조되는, 문자적으로 “압착과 협소함”을 나타낸다. 지혜가 이 재앙들을 불러오는 것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이러한 것들은 지혜의 교훈을 무시하고 지혜가 제공하는 거룩한 보호를 거절함으로써 오는 결과이다.

1:28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하나님이 지혜를 통해 손짓해 부르셨을 때에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여호와의 지식을 구하려고 헛되이 부르짖는다(암 8:11, 12). 폭풍과 지진의 때에, 전쟁과 궁핍한 때에 부주의하고 죄를 지은 이들은 하나님께 구원을 부르짖고 그분이 자신들을 위험에서 건져주면 생애를 개혁할 것이라고 흔히 약속한다. 하지만 평화와 안정을 되찾으면 그들은 두려울 때에 했던 약속들을 너무나 자주 웃어넘긴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때로는 진정한 회개를 할 수도 있지만 오랫동안 성령의 부르심에 귀먹은 자들이 마지막 순간 구원을 보장받기란 매우 어렵다. 

  이 예언의 가장 완전하고 가장 무서운 성취는 세상의 역사가 끝날 때 일어날 것이다. 마침내 여호와의 신이 거절되고 은혜의 보호가 제거될 때,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대신에 섬기기로 선택한 잔인한 주인의 뜻대로 되어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614). 

  어찌하여 응답이 없는가? 이 불쌍한 이들을 위해 당신의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보고 비웃으시는가? 하나님이 비웃으신다는 표현은 물론 비유적인 언어를 사용한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날 때에 몹시 슬퍼하신다(참조 겔 33:11; 호 11:8). 그러나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도덕적인 존재들이며 하나님은 인간들이 선택한 것의 결과를 막지 않으신다. 동시에 하나님은 인간들이 반대의 선택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오랫동안 선(善)의 적이었을지라도 자신에게 오라고 모두에게 호소한다(겔 18:21; 마 11:28; 롬 5:8; 계 22:17).

1:29 지식을 미워하며.

 그들의 마음이 감동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부드러워졌을 때 그들은 성령이 자신들에게 역사하는 것을 거절했다. 이제 그들의 심령은 완고해지고 그들의 품성은 고정되었다. 이제 때는 이미 늦었다. 모든 가장된 회개는 자신들이 지은 죄의 무서운 결과를 피하기 위한 욕망일 뿐이다. 이들에게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진정한 용서는 그저 죄를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깨끗하게 해 주는 것이다(요일 1:9). 성령의 교훈과 지도에 대한 참된 굴복과 변화되기 위한 간절한 소망 없이는 어떤 죄인도 구원받을 수 없다.

1:29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경외함이 그들에게 구원하는 지식의 근본이 되었어야 했다(7절).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자들에게 그 지식은 악행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되었을 것이므로 그러한 지식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피할 수 없는 결과들을 피하고 싶어 한다.

1:31 자기 행위의.

 하나님이 악한 자들을 그의 안전(眼前)에서 제거하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 독단적으로 힘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호 13:9; 14:1). 생명의 근원과 대치되는 곳에 의지를 둔 것은 회개하지 않은 자신들이었기 때문에 그 결과 그분의 사랑스러운 임재는 그들에게는 소멸하는 불이 될 것이다(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36). 경솔한 자들과 완고한 자들은 모두 완전한 세상에서 살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운명으로 고통을 받는다. 그들에게 죄 없는 환경에서의 영원한 삶은 영원한 고통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헛된 후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자비로운 해방이 된다(참조 정로의 계단, 20).

1:32 퇴보.

 이 세상의 부요함에 몰두하여 하나님을 거절하는 상태로까지 퇴보하면 영생을 굳게 의존하는 많은 이들에게 파멸이 닥쳐올 것이다(참조 렘 8:5).

1:33 오직 나를 듣는 자는.

 하나님의 지혜로운 권고를 마음에 새기고 지혜의 교훈을 순종하는 자들은 이 고뇌의 세상에서도 평안하다. 그들은 고난받는 자들에 대한 연민으로 마음이 움직이기는 하지만 그들 자신들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은 확신을 갖고 약속된 구원을 내다본다(참조 시 16:9).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6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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