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ORY

창세기 4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창세기

창세기 4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6. 25. 23:29

<창세기 4장 흐름정리>

아담 부부의 타락한 본성은 그 자손을 통해 그대로 이어졌다. 그들에게서 태어난 장자 가인은 아벨을 시기한 나머지 살해했다. 여기서도 불순종과 불신앙이 모든 죄의 근본으로 나타난다. 즉,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지만, 가인은 불신앙 상태에서 형식적인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열납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징계하시는 가운데서도 그의 생명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배려함으로써 크신 긍휼을 베푸셨다. 이러한 긍휼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통해 계속 이어진다. 또한 아담 부부가 셋을 낳음으로써 새로운 믿음의 계보가 시작되었다.


<창세기 4장 줄거리>

1. 가인과 아벨의 출생, 직업 및 종교.

8. 아벨이 살해됨.

11. 가인이 저주 받음.

17. 최초의 도성, 에녹.

19. 라멕과 그의 두 아내.

25. 셋의 출생.

26. 에노스의 출생.


<창세기 4장 개역한글>

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8.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찌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16.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17.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18.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19.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20.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

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24. 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찐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 하였더라      

25.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세기 4장 성경주석>

4:1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히브리어를 문자적으로 읽으면 “내가 남자, 곧 여호와를 얻었다”이다. 하와가 자신의 첫 아기를 팔에 안았을 때, 분명 3:15의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그가 약속된 구원자일 것이라는 희망을 마음에 품고 그의 이름을 “얻었다”는 뜻인 카인(Qayin)이라고 지었다(시대의 소망, 31). 얼마나 절망적인 희망인가! 복음의 약속의 신속한 성취에 대한 그녀의 열렬한 갈망은 가장 쓰라린 실망을 당할 운명에 처해 있었다. 그녀는 바로 이 아이가 세상의 최초의 살인자가 되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4:2 가인의 아우 아벨.

 “그리고 그가 잉태하여”라는 일반적인 표현이 여기에는 없고, 문자적으로 “그가 계속해서 출산하였다”는 뜻의 “그가 다시 낳고”라는 특별한 어법이 사용되었으므로, 어떤 주석가들은 이것을 아벨이 가인의 쌍둥이 동생이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사실일 수도 있으나, 본문이 반드시 그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아벨의 이름은 “허무” 또는 “무”(無)를 의미한다. 그것은 어머니의 소망이 자신의 큰아들로 인해 이미 좌절되었거나, 그녀가 인생의 불행을 아벨이라는 이름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이 장에서 아벨은 가인의 죄의 흉악성을 강조하는 뜻으로 일곱 번이나 가인의 아우로 불린다.

4:2 양치는 자.

 두 사람이 선택한 직업들에서 도덕적 품성의 차이점을 나타내는 암시를 찾아낼 이유가 없으며, 다만 이들의 선택은 아마 그들의 재능과 취미에 따라 결정되었을 것이다.

4:3 세월이 지난 후에.

 문자적으로는 “날들의 끝에”이다. 이것은 불명확한 상당한 기간의 경과를 나타내며, 추수 때를 가리킬 수도 있다. 어떤 주석가들처럼 그것을 한 주일이나 한 해의 끝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이 경우에는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어느 쪽이든 여기서 언급되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날들”에 해당하는 야밈(yamim)이라는 단어는 문맥상 한 해를 의미하는 것임이 분명한 많은 경우에 사용되고 있다. 그러한 경우에 그것은 “해”〔年〕로 번역되었다(참조 출 13:10; 민 9:22; 삼상 2:19; 27:7; 대하 21:19 등).

4:3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제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민하(minh.ah)이다. 민하는 레위기의 율법에서 가루와 기름 또는 향과 함께 준비된 가루로 이뤄진 무혈(無血) 감사제를 나타낼 때 사용된다(레 2:1, 4, 14, 15). 그러나 여기서 그 단어는 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며, 소제와 동물의 희생 둘 다를 포함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인의 무혈 제사뿐 아니라 아벨의 희생제물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참조 4절). 가인이나 아벨이 그들의 제사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는 진술은 없으나, 그렇게 했을 것임이 분명하다(부조와 선지자, 71). 성경에서 이 다음 희생제사가 보도될 때는 제단도 언급된다(8:20). 희생제사 제도는 인간이 동산에서 추방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소개하였다(부조와 선지자, 68 71). 연속되는 구절들에는 가인이 하나님께 드린 그런 종류의 예물을 가져옴으로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음이 분명히 나타난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가 그의 죄를 속할 것이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의 죄를 위해 어린양을 희생시키는, 하나님이 정한 규칙을 따름으로 그는 희생제도를 제정한 하나님에게 충성을 나타내 보이며 구속의 계획에 대한 믿음(히 11:4)을 표현할 것이었다. 희생제사가 고대 백성들 가운데 전반적으로 유행한 것은 그것들의 기원이 인간의 고안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법도에 있음을 지적해 준다(참조 시대의 소망, 28).

  무엇 때문에 가인의 예물은 하나님에게 가납될 수 없었는가? 그는 자신에게 부과된 하나님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마지못해 인정하였다. 그러나 분개와 반역의 은밀한 정신이 하나님이 정한 계획을 정확하게 따르기보다는 그 자신이 선택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키도록 자극하였다. 표면상 응하기는 했으나, 그의 응낙 태도는 도전적인 정신을 나타냈다. 가인은 자신의 행위에 의하여 그 자신을 정당화시키려고, 곧 자신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려고 시도하였다. 자신은 구주가 필요한 죄인임을 인정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그는 죄에 대해 아무런 회개도 표현되지 않은 선물, 곧 피가 없는 예물을 드렸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레 17:11; 부조와 선지자, 71 72). 

  가인은 하나님의 존재와 세상적인 복을 줄 수도 있고 거둘 수도 있는 그분의 능력을 인정하였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사는 것이 유익하다고 느낀 가인은, 비록 마지못해 바칠지라도 예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거나 돌리는 것이 편리하다고 여겼다. 참된 순종과 마음의 회개의 대용으로서, 하나님의 명백한 요구에 대한 부분적이고 형식적인 응낙은 그분의 은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깨닫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는 가인처럼 하나님께 드린 예물이 가치 없고 가납될 수 없는 것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야 한다.

4:4 양의 첫 새끼.

 “첫 새끼”라는 말은 아벨이 그의 양 중에서 처음 난 것을 가져 왔음을 가리킨다(참조 출 13:12). 모세가 발표한 희생 의식은 초태생의 짐승의 피를 제단 위에 뿌리고 그 기름을 불에 태울 것을 요구하였다(민 18:17). 아벨의 제물은 믿음의 표현이었다(히 11:4). 대조적으로 가인의 제물은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려는 시도였다. 아벨의 경우처럼, 구원의 계획과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을 믿는 믿음은 의심하지 않는 순종을 통해 그 자체를 드러낸다.

4:4 열납하셨으나.

 샤아(s∨a‘ah)는 “호의적으로 생각하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을 가납한 방법이 여기에는 나타나있지 않지만, 그것은 종종 후대에 있었던 것처럼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태우는 방식이었다(참조 레 9:24; 삿 6:21; 왕상 18:38; 대상 21:26; 대하 7:1; 부조와 선지자, 71).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을 가납한 것이 그의 인격을 가납한 증거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실제로 이야기 중에서도 아벨 자신을 가납한 사실이 그의 제물을 가납한 사실에 앞서 언급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제물보다는 그것을 가져온 사람에게 더 관심이 있었음을 나타내는 암시이다.

4:5 가인과 그 제물은.

 가인은 자신의 제물을 하나님이 기뻐하거나 가납한다는 눈에 보이는 어떤 표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결과는 맹렬한 분노였다.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 구절은 문자적으로 “그것은 가인을 심히 격분시켰다”로 번역될 수 있다. 그는 자기 동생과 하나님에 대하여 맹렬한 분노를 느꼈다. 명백히 죄에 대한 아무런 슬픔도, 자아를 살피는 정신도, 빛이나 용서를 구하는 기도도 없었다. 가인의 행동은, 교정과 견책에 의해서도 마음이 녹지 않고 더욱 더 완강하고 반역적이 되는, 고집스럽게 회개하지 않는 죄인의 전형적인 실례이다. 가인은 자신의 실망과 불만과 분노의 감정을 숨기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그의 분개를 나타냈다.

4:6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하나님이 사람을 에덴 동산에서 추방한 때에라도 그들과 개인적으로 접촉하기를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14절과 16절에서처럼 여기서도 명백해진다. 가인의 제물을 거절한 것은 반드시 가인 자체를 거절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비와 인내로 하나님은 그에게 다른 기회를 주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제물을 거절함으로써 불쾌함을 분명히 표현했지만, 하나님은 그 죄인에게 나타났으며 그릇된 길에서 그를 돌이키고 그의 분노의 부당함을 설득하기 위한 시도로 그와 의논하였다. 가인의 마음문 앞에 야수처럼 웅크리고 있던 것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하나님은 고집스런 아이에게 하듯 가인에게 말했다. 이 질문은 가인이 분노할 근거가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도록 하기 위하여 의도되었다. 그의 제물을 거절한 데에는 분명 타당한 이유가 있었으므로, 그는 그것을 찾아내 제거해야 하였다.

4:7 네가 선을 행하면.

 이 구절에는 몇몇 현대의 주석가들이 필사자의 실수로 이 히브리 본문이 변경되었다고 생각하는 언어학상의 난점들이 제시되어 있다. 「70인역」의 번역자들이 그 당시에도 그 의미가 모호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사실은 그들이 그것을 왜곡되게 번역한 것에서 명백해진다. 랍비들은 가인의 제물이 거절된 것은 그가 레위기의 제사 규정들을 정확하게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의미로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선을 행하는 것”과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의 결과 사이의 뚜렷한 대조는 그러한 설명을 배제한다. 앞에 있는 구절은 문자적으로 “네가 선을 행하면 들지 못하는 일이 있겠느냐?”는 뜻이다. 무엇이 들릴 것인가? 죄책감인가 아니면 안색인가? “기뻐하다 또는 무죄하다”에 해당하는 “얼굴을 들다”는 표현은 히브리어에서 흔하며(욥 11:15; 22:26; 삼하 2:22), 아마도 여기서는 가인의 안색이 변했다(6절)고 말한 앞선 진술에 대한 보충으로서 축소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을 것이다. 만일 가인이 자신의 길을 수정하고 하나님의 교훈을 따라 살 것 같으면, 하나님이 불쾌함을 나타낼 이유가 더이상 없을 것이며 그가 실망하고 분노한 얼굴을 보일 이유도 없을 것임을 이해하기를 하나님은 원했다. 그러나 만일 가인이 변하지 않고 악한 길을 계속 고집한다면, 죄가 그를 압도할 것이었다. 야수처럼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는 구절은 아마도 경구(警句)일 것이다(참조 벧전 5:8).

4:7 죄.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죄”로 번역된 히브리어 핫타트(h.at.t.a’t)는, 구약에서 그것이 나오는 구절의 거의 절반 정도에서 “속죄제”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예컨대, 출 30:10; 레 4:32; 민 7:16, 22 등을 참조하라; 참조, 호 4:8; 히 9:28; 고후 5:21). 그렇다면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가 무죄했다면, 너의 (피 없는) 제물은 감사제로 가납되었을 것이다. 안 그런가? 그리고 네가 죄를 지었다면, 속죄제가 바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핫타트를 “속죄제”로 번역하는 데 한 가지 어려움이 지적되어야 한다. 핫타트는 여성형인 데 반해, “엎드리다”에 해당하는 분사 로베스(robes)는 남성형이다. 만일 그것이 주어인 핫타트와 일치하려면, 그것은 여성형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차이는, 모세가 “죄”를, 문앞에 웅크리고 있는 야수로 의인화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로베스(robes)를 문자적인 의미에서 주어인 “죄” 또는 “속죄제”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사용한 비유법에서 남성인 야수와 의도적으로 일치시키기로 선택하였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제임스왕역」에는 “그의 소원이 너에게 있을 것이다”로 되어 있음-역자 주). 아벨이 형에 대하여 “소원”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하와가 남편에 대하여 가졌던 소원(참조 3:16), 곧 그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리킨다고 볼 수 없다. 그러한 설명은 문맥과 일치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원칙과도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만일 죄가 엎드려 가인을 기다리는 야수로 의인화된 것이라면 「개정표준역」처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번역함으로써 비교를 계속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4:8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한 이야기의 주제는 진술되어 있지 않다. 「사마리아오경」과 「70인역」을 따르는 「개정표준역」은 “들로 나가자”는 말을 첨가하였다. 비록 문맥상 원문을 그렇게 읽는 것이 전적으로 가능하지만, 이 구절은 필사자가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 가인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한 말을 아벨에게 이야기했을 것 같지는 않으나, 그는 하나님이 자기를 그렇게 취급하는 것이 불의하다고 비난하면서 아우와 다투었을지도 모른다.

4:8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요일 3:12). 이것이 바로 가인이 그 아우를 죽인 이유이다.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기 전에 하나님에 의하여 예언된 선악간의 적개심은 가장 두려운 형태로 이제 처음 나타났다. 가인이 지은 죄의 혐오스러움을 분명히 드러내기 위하여 이 구절에서 “그 아우”라는 말이 두 번씩이나 아벨의 이름에 더해지고 있다. 가인 안에서 여자의 후손은 이미 뱀의 후손이 되었다. 가인의 범죄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8:44)인 사단의 참된 본성을 드러내었다. 이미 인류 안에 현저한 “후손들”의 대조점, 곧 인간의 전 역사를 통하여 계속될 대조점이 나타났다.

4:9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아담과 하와의 경우에서처럼, 하나님은 이제 가인의 범죄를 참된 빛 가운데서 그에게 제시하고, 그의 죄된 양심을 회개하도록 일깨우며, 그 안에 새 마음을 창조하기 위하여 가인을 찾았다. 하나님은 가인의 부모에게 한 가지 질문을 가지고 다가왔던 것처럼, 이제 가인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매우 판이하였다. 가인은 대담하게 자신의 죄를 부인하였다. 불순종이 살인을 가져왔다. 그는 이제 자신의 범죄를 하나님으로부터 숨길 수 있다고 맹목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인에 거짓과 불경을 더했다.

4:10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재치 있는 간접적인 접근 방식이 소용이 없게 되자, 하나님은 가인에게 그의 범죄를 추궁하는 식으로 나아갔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는 질문은 사실을 완벽하게 알고 있음을 암시하였다.

4:10 네 아우의 핏소리.

 전율하는 살인자는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아는 하나님이 그의 벌거벗은 영혼을 읽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참새가 떨어지는 것을 주목하는 그, 생명의 창시자인 그가 어떻게 최초의 순교자의 소리 없는 부르짖음에 귀머거리가 될 수 있었겠는가?(참조 시 116:15). 피는 생명이므로, 생명의 위대한 시여자에게는 그만큼 귀중하다(9:4). 

  온 시대를 통하여 드러난 동료 인간에 대한 인간의 모든 비인도적인 행위에 항거하여 아벨의 부르짖음이 하나님에게 상달된다(히 11:4). 아벨은 가장 가까운 혈족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마찬가지로 인류의 친족으로 이 땅에 온 예수도 거절을 당하고 그의 형제들에 의해 죽었다.

4:11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하나님의 저주는 이미 뱀과 땅에게 내려졌다(3:14, 17). 이제는 그 저주가 처음으로 사람에게 내린다. 「제임스왕역」에서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구절은 “네가 땅보다 더 저주를 받으리니”라고 비교급으로 번역해도 동일하게 옳을 수 있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 본문을 가인이 덜 비옥한 지역으로 추방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문맥(12, 14절)은 이와 같은 설명이나, 아마도 가인이 땅의 열매들을 오용하였으므로 하나님은 더 이상 그가 땅을 경작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자 했다는 생각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목자이거나 유목민이거나 간에 땅에서 유랑하는 자(14, 16절)는 성공적인 농부가 될 수 없다.

4:12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가인은 자신과 그의 가족과 짐승들을 위한 식물(食物)을 구하기 위하여 계속적인 유랑의 삶을 살 운명이 되었다. 무죄한 피를 마시도록 강요를 받았으므로, 말하자면 땅은 살인자에게 반항하였다. 그러므로 설혹 그가 땅을 경작한다고 할 때에도, 땅은 그 힘을 허락하지 않고 둘 것이었다. 가인은 자신의 노력에 대하여 거의 보상을 받지 못할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훗날 가나안 땅도 가나안 사람들의 가증한 일 때문에 그들을 “토”했다(레 18:28)고 말한다.

4:13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하나님의 선고를 듣고 가인의 반항은 절망으로 변했다. 가인은 죽음의 형벌을 받아야 하였지만, 자비롭고 인내심이 많은 하나님은 그에게 회개하여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더 주셨다. 그러나 회개하는 대신에 가인은, 자신의 형벌이 받아야 할 정도보다 더 심하다고 불평하였다. 그의 입술에서는 아무런 슬픔의 말도 나오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죄나 수치를 인정하는 말도 없었다. 오직 그가 정당하게 받아야 할 형벌을 피하기에는 자신이 무력함을 깨달은 범죄자의 서글픈 체념만이 있었다.

4:14 주께서…나를 쫓아내시온즉.

 가인은 자신이 땅의 축복들뿐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의해 하나님과의 모든 접촉으로부터 끊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4:14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가인은 하나님의 저주가 아벨의 피에 대하여 복수하고자 하는 자들을 억제하던 하나님의 손길을 거두는 것을 의미한다는 두려움에서 그 자신의 삶에 절망하였다. 죄책감은 그에게, 그가 죽어야 마땅하며 이후로는 그 자신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음을 경고하였다. 그러나 그의 몫인 죽음의 형벌은 생명 대신에 추방으로 감형되었다. 감옥에 갇히는 대신에 그는 동료 인간들과의 모든 행복하고 정상적인 교제로부터, 그리고 그 자신의 선택에 의해 하나님으로부터 차단되었다. 아우의 생명을 취한 그는 동료 피조물들에게서 그 자신을 처형할 만한 사람들을 보았다.

4:15 그렇지 않다.

 이 말(「제임스왕역」에는 “그러므로”로 되어 있음-역자 주)이 앞에 있는 어떤 생각을 전제하고 있는지 아주 분명한 것은 아니다. 「개정표준역」은 「70인역」, 「시리아오경」 및 「불가타역」을 따라 그것을 “그렇지 않다”로 번역한다. 바꾸어 말하면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라는 가인의 선언에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였다.

4:15 칠 배.

 이것은 가인을 살해하는 자에게 가해질 가장 심한 형벌을 의미한다(참조 레 26:18, 21, 24, 28; 시 79:12; 잠 6:31).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롬 12:19)는 원칙과 조화되게 특별한 보호가 그에게 허락되었다. 가라지는 알곡과 함께 자란다. 죄의 열매도 그 씨의 특성이 드러날 수 있도록 성숙할 때까지 자라도록 허락되어야 한다. 가인과 그의 후손들의 생애는 이성적인 존재들에게 죄의 결과에 대한 예증이 되어야 하였다(부조와 선지자, 78).

4:15 표.

 어떤 주석가들은 이 표를 가인의 신체에 부착된 어떤 외형적인 표로 간주하였다. 한편 다른 주석가들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도 그의 생명을 위협하지 못할 것이라는 보증으로서의 어떤 표를 받았다고 믿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은 하나님의 용서의 표가 아니라 일시적인 보호의 표에 불과하였다.

4:16 가인이…나가.

 그는 후회도 회개도 느끼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노여움을 산 무거운 부담만을 느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떠나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며, 에덴의 동편에 있는 놋 땅에서 그는 방랑자로서의 생애를 시작하였다. 그 이름이 “방랑”, “도주” 또는 “추방”을 뜻하는 홍수 이전의 이 땅은 가인의 불경한 후손들의 본거지가 되었다.

4:17 아내와 동침하니.

 가인의 아내에 대한 갑작스런 언급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5:4은 이름이 거명된 세 아들 외에도 아담이 “자녀를 낳았”다고 진술한다. 최초기의 지상 거주자들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성취하기 위하여 형제자매들과 결혼하지 않을 수 없었다(참조 행 17:26). 그 관습이 오랫동안 유행한 사실은 아브라함이 이복누이인 사라와 결혼한 일에서 드러난다. 그러한 결혼은 나중에 금지되었다(참조 레 18:6~17).

4:17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불순종하고 사악한 가인의 출산을 하나님이 금하지 않은 사실은 그분의 자비로운 품성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이다(시 145:9; 마 5:45). “에녹”이라는 이름은 “봉헌” 또는 “헌신”의 뜻일 수도 있으며, “시작”을 의미할 수도 있다. 아마도 가인이 그의 아들에게 지어준 이름은 그가 원하는 대로 그의 삶을 살기 시작하고자 하는 의도를 나타냈을 것이다. 루터는, 어머니가 에녹이라는 이름을 선택하였을지도 모르며, 그로 인하여 그 아이가 그들의 슬픈 가정을 위하여 축복의 전조가 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4:17 가인이 성을 쌓고.

 문자적으로는 “그가 건축하기 시작하였다”이다. 이것은 단지 영구적인 거주지로서 그의 가족들을 위하여 아마도 요새화 된 영지(領地)를 세우려는 시도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가인이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보증을 크게 확신하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성을 세우려는 그의 시도는 그에게 유랑 생활을 선고한 저주에 반항하고자 하는 욕구의 사주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세상의 첫 “성”이 그의 생애를 온전히 절망적으로 악에 바친 채 하나님을 무시하는 일로 시간을 보낸, 고집스럽게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었던 최초의 살인자에 의하여 건축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인간이 자연 가운데 살며 그 속에서 창조주의 능력과 권세를 보도록 한 하나님의 계획은 이와 같이 저해되었다. 오늘날 존재하는 많은 악들은 인간의 최악의 본능이 지배하며 온갖 유형의 부도덕이 성행하는 큰 도시들로 인간들이 무리하게 모여든 일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4:17 성을 이름하여.

 그 성의 이름을 “봉헌” 또는 “시작”의 뜻인 그의 아들 에녹의 이름을 따라 지음으로, 가인은 분명히 그 성을 자신의 죄된 야망을 실현하는 일에 바쳤을 것이다.

4:18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다음 세대들에 대해서는 오직 이름만 언급된다. 그 이름들은 이랏과 야렛, 므후야엘과 마할랄렐, 므드사엘과 므두셀라, 가인과 게난의 경우처럼 셋의 후손들의 이름을 닮았으나, 에녹과 라멕의 이름은 양 가계에 모두 나타난다. 비평적인 학자들은 이것을 두 족보들이 본래 하나의 전승에서 나온 단순히 다른 형태들임을 증거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름들 가운데 보이는 유사성이 결코 사람들의 동일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고라는 레위(출 6:24)와 에서(36:5)의 가계에 나타나며, 에녹은 가인의 아들과 셋의 경건한 후손들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일 뿐만 아니라 르우벤의 장자(46:9)와 미디안의 한 아들(25:4)의 이름이다. 가인의 아들 에녹의 품성은 셋의 혈통에 속한 에녹의 품성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므로 두 사람을 한 사람으로 동일시할 수 없다. 

  이름들의 다른 쌍(雙)들에 대해서는 유사성이 다만 피상적일 뿐이다. 히브리어 이름들은 영어 이름과 마찬가지로 철자나 의미에서 일치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랏은 “성읍 사람” 또는 “성(城)의 장식품”으로, 야렛은 “하락”으로 번역되었다. 므후야엘은 “하나님에게 침을 당함” 또는 “하나님에게 멸망당함”을, 마할랄렐은 “하나님을 찬양하라”를 의미할 수 있다. 므드사엘은 “하나님의 사람” 또는 “기도의 사람”, 므두셀라는 “성숙한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라멕의 뜻은 알려져 있지 않다.

4:19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라멕은 첫 부인에게 아이가 없다는 구실도 없이 하나님이 정한 결혼을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으로 왜곡시킨 최초의 사람이었다. 일부다처는 오랜 세기 동안 그 입장을 굽히지 않은 새로운 악이었다. 라멕의 아내들의 이름은 관능적인 매력들을 암시하는 것으로, 아다는 “장식품”, 실라는 “그림자”나 “딸랑거림”을 뜻한다.

4:20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아다의 두 아들의 이름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 뜻은 분명치 않다. 야발은 “싹”, “지도자” 또는 “시내”를, 유발은 “즐거운 소리” 또는 “통로”를 뜻할 수도 있다. 이 이름들은 그들의 특별한 능력들을 나타낼 수도 있다. 전자는 전형적인 유목 생활을 하는 목자였다. “가축”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소유”를 뜻하는데, 양과 다른 가축들로 구성된 유목민의 재산을 의미한다.

4:21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

 “수금”(harp)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킨노르(kinnor)이다. 이 세상의 최초의 악기인 “수금”은 구약에서 42번 언급된다(참조 시 33:2 등). 킨노르라는 단어는 그것이 실제로는 칠현금(lyre)일지라도 「제임스왕역」에는 항상 “수금”(harp)으로 되어 있다. 애굽, 팔레스타인 및 메소보다미아에서 출토된 이 악기에 대한 고대의 많은 그림들은 킨노르가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한 분명한 개념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이 그림들은 이 악기를 공명판 위에 현(絃)이 가로질러 걸려 있는 것으로 보여 준다. 최초기의 악기들에서는 현들이 나란히 걸려있지만, 후기의 모델에서는 바깥쪽으로 뻗어나가듯이 되어 있다.

  「제임스왕역」에서 “퉁소”(organ)로, 「개정역」에서 “피리”(pipe)로 번역되고, 어떤 자들은 백파이프(bagpipe)와 동일시하는 단어의 기원은 수금의 기원만큼 확실치 않다. 그 이름에 대한 올바른 설명이 무엇이든지, 현대의 모든 학자들은 이 악기가 플루트였다는 데 일치한다. 이 악기는 근동 전역에서 목자들에 의해 지금도 연주되고 있다.

4:22 두발가인.

 비록 “두발”은 구약에서 개인의 이름으로 자주 등장할지라도(창 10:2; 사 66:19; 겔 27:13 등), 그 의미는 모호하다. “가인”이라는 말은 아마도 그를 가인 족속으로 간주하기 위하여 나중에 첨가되었을 것이다.

4:22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제임스왕역」에 “만드는 자”(instructor)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문자적으로 “망치질하는 사람”, “칼 따위를 연마하는 사람” 또는 “대장장이”를 의미하며, 청동이나 철로 하는 초기 작업을 언급하는데, 그것은 제련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망치질하는 과정이었다. 창세기가 말하는 것만큼 일찍 철이 알려졌느냐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애굽과 메소보다미아에서 이루어진 최근의 발견은 기록상 최초기의 역사 시대에도 철로 만든 물건들이 생산되었음을 보여 주었다. 최초의 철제 물건들은 운철로 되어 있었는데, 높은 함량의 니켈은 그것들이 땅에서 기원되지 않은 것임을 말해준다. 운철로 만든 물건들은 제련하기보다는 망치질함으로써 생산되었음이 틀림없으며, 다시 한 번 성경의 기록을 확증한다. 비록 초기 사람들이 많은 양의 청동과 철을 가지지는 못했을지라도, 홍수 전 사람들이 이러한 금속들을 사용하는 법을 알았다고 하는 성경 진술의 정확성을 의심할 이유는 없다. 구리, 청동 및 철로 된 물건들(장식품, 연장, 무기, 그릇 등)은 문명의 바로 초기 단계에서부터 무수히 발견되고 있으며, 그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4:22 나아마.

 두발가인의 누이가 특별히 언급되고 있는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유대인의 전승에는 그녀가 노아의 아내로 되어 있다. “아름다운 자” 또는 “호감이 가는 사람”을 뜻하는 그녀의 이름은 여인들에게서 주된 매력의 요소로서 품성보다는 미를 찾았던 가인 족속의 세속적인 마음을 반영한다.

4:23 내가 사람을 죽였고.

 히브리 시적 형태로 된 라멕의 말은 적절하게 “라멕의 노래”로 불려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 “노래”가 세계 최초의 시문(詩文)이다. 다소 신비한 그의 말의 정확한 의미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오리겐은 그 “노래”에 대하여 두 권의 책을 쓴 후에 그것을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공표하였다.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들은 그들이 라멕에게 입힌 상처로 인해 라멕이 한두 사람을 죽였다는 설명을 가능케 하며, 그럴 필요성이 생길 때는 다시 그가 그와 같은 행동을 저지를 준비가 되어 있었음을 암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복수의 위협은 모호하며 한 가지 이상의 해석을 낳게 할 여지가 있다. 「개정표준역」에는 “내가 입은 상처로 인해 내가 한 사람을 죽였다”고 되어있다.

4:25 셋.

 가인의 불경한 가계의 전개 과정을 기록한 다음에 기자는 다시 아담과 하와에게로 돌아가 하나님에게 충성한 자들의 역사를 간략하게 회고한다. 아벨의 죽음 직후에 세 번째 아들이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그에게 “지명된 자”, 아벨에 대한 “보상” 또는 “대리”라는 뜻의 셋(Sheth)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하와는 자신의 경건한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약속된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저주를 받은 가인에게서는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 후에, 약속된 구원자는 셋을 통하여 오리라는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였다. 그녀의 믿음은 보상을 받았는데, 이는 셋의 후손들이 여호와께 순종하였기 때문이다.

4:26 에노스.

 에노스의 시대에 보다 공식적인 예배가 시작되었다. 물론 사람들은 에노스의 출생 이전에도 여호와를 불렀으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보다 공공연한 구분이 여호와를 섬기는 자들과 그분을 멸시하는 자들 사이에 생겼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표현은 여기서처럼 공중 예배를 지칭하기 위하여 구약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시 79:6; 116:17; 렘 10:25; 습 3:9).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1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성경주석 > 창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 5장 & 성경주석  (0) 2017.06.30
창세기 3장 & 성경주석  (0) 2017.06.23
창세기 2장 & 성경주석  (0) 2017.06.22
창세기 1장 & 성경주석  (0) 2017.06.21
창세기 서론  (0) 2017.06.21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