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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1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요나

요나 1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7. 12. 00:33

<요나 1장 흐름정리>

구약에서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방 민족이 완전히 구원의 반열에서 제외되지는 않았다. 하나님은 언제나 구원의 문을 열어 놓고 만인을 초청하고 계신다. 요나가 니느웨에 전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스로 도망한 것은 바로 이 같은 하나님의 뜻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의 행위는 당시의 역사적, 정치적 정황을 고려해 볼 때 자연스러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나친 배타주의와 고질적인 선민 사상이 하나님의 섭리를 방해하는 것임을 요나는 깨달아야 했다.\


<요나 1장 줄거리>

1. 요나가 니느웨로 보냄을 받았으나 다시스로 도망감.

4. 그의 신분이 폭풍우로 인해 폭로됨.

11. 요나가 바다에 던져짐.

17. 물고기가 요나를 삼킴.


<요나 1장 개역한글>

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4.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5.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6.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7.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8.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10.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11.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13.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14.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까닭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15.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6.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요나 1장 성경주석>

1:1 아밋대.

 이 이름은 “성실” 혹은 “진리”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에메트(’emet)에서 유래했다. 아밋대는 이곳과 왕하 14:25에만 언급된다.

1:2 그 악독이.

 나훔은 니느웨를 “궤휼과 강포가 가득”한 “피 성”(나 3:1; 참조 19절)이라고 지칭했다. 그러나 그 도성에서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시민 전체가 악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선지자와 왕, 265).

1:2 내 앞에.

 . 창 18:20, 21과 비교하라. 하나님께서는 나라들의 평가서를 보관하고 계신다. 각 나라마다 시험 기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계획을 수행하심에서 모든 사람의 충성을 얻고 나라들의 협력을 확보하고자 애쓰신다.

1:2 상달하였음이니라.

 . 이러한 표현이나 이와 유사한 표현이 홍수 이전 세상(창 6:5, 11)과 소돔과 고모라 거민들의 죄악(창 18:20, 21)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양자의 경우 모두 유예기간이 막 끝나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니느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참조 단 4:17 주석).

1:3 일어나.

 요나는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순종하려고 일어났다. 젊은 부자 법관처럼 그는 자기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하려 하지 않았다(마 19:21, 22). 주님의 “제자”들 가운데 “여럿이” 그랬던 것처럼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이 감당하기에 너무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고, 따라서 그들처럼 적어도 이 경우에는 “그와 함께”(요 6:60, 66) 행하지 말아야겠다고 느꼈다. 그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이행해야 할 짐을 지우실 때에는 그들이 그 짐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질 때마다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도 이르러 온다. 선지자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참조 마 6:33) 제일 처음에 놓지 않는 실수를 범했다. 그는 자기에게 수행하도록 맡겨진 사명을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려 하였으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개입하지 않으셨다면 자기의 영혼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1:3 낯을 피하여.

 . 문자적으로 “여호와의 얼굴 앞에서.” 이루기에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가!(참조 시 139:7~12).

1:3 다시스.

 . 일반적으로 다시스는 스페인의 남쪽 해안에 위치한 고전 시대의 타르텟수스(Tartessus)였다는 데 동의한다. 다시스는 그것의 부(富)로 유명했는데, 베니게의 두로 성읍이나 다른 나라들에 은과 철과 주석과 납을 대규모로 수출했다(참조 겔 27:12). 요나는 자기 의무를 피하여 그렇게 멀리 떨어지고 분주한 곳으로 도망쳐 양심의 소리를 잠재우기를 희망했다.

1:3 욥바로.

 .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 54킬로미터 해상에 위치한 현대의 얍파(Jaffa)로 세상에서 아주 오래된 도시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곳은 유대인들에게 속한, 여러모로 중요하고 유일한 항구였다. 욥바를 통해 솔로몬 성전을 건축하기 위한 목재(참조 대하 2:16)와, 그것을 복구하기 위한 목재(참조 스 3:7)가 예루살렘으로 반입되었다.

1:4 대풍.

 여호와께서는 그 선지자가 그분에게서 도망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일련의 “시련과 기이한 섭리”를 통해 그분은 요나의 태도와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도록 힘쓰셨다(참조 선지자와 왕 266, 267,).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신 단순하고 자연적인 매체들을 주목하라. 바람(1:4), 큰 물고기(1:17), 고통(2:10), 박 넝쿨(4:6), 벌레(4:7), 동풍과 해(4:8).

1:4 거의 깨어지게.

 . 이 문장은 “그리고 그 배는 자기가 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런 번역을 채택한다면 이것은 생생한 의인화 비유가 된다.

1:5 자기의 신을.

 선원들의 국적이나 종교는 확인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베니게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다른 이들은 다양한 나라 출신으로 다양한 종교를 대표했을 것이다.

1:5 물건.

 . 히브리어 켈림(kelim). “용기들”, “그릇들”, “비품.” 연장과 함께 화물도 배 밖으로 던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1:5 밑층.

 . 히브리어 야르카(yarkah), “뒤쪽”, 흔히 가장 먼 부분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1:5 깊이 잠이 든지라.

 . 히브리어 라담(radam), “코를 골다”, “깊은 잠에 빠지다.” 요나가 깊은 잠에 빠진 이유는 제시되지 않았다.

1:6 선장.

 문자적으로 “우두머리 선원.” “선원”이라는 단어는 “묶다”라는 의미를 지닌 어근에서 유래했는데, 같은 어근으로부터 “밧줄”이라는 명사가 파생되었다. 진술되지는 않았지만 요나는 그 요청에 응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1:7 제비를 뽑아.

 선원들은 누군가 신들의 노여움을 샀다고 느꼈다. 여호와께서는 누가 범인인지를 가리기 위한 그들의 방법을 주관하심으로 “제비가 요나에게 당하”게 하셨다. 

  제비뽑기의 옳고 그름에 대한 문제에 관하여는 겔 21:21 주석을 참조하라.

1:8 고하라.

 이러한 일련의 짧은 질문은 풍랑에 시달린, 배에 탄 사람들의 동요를 생생하게 느끼도록 해 준다.

1:9 히브리 사람.

 이스라엘 종족이 아닌 사람들이 흔히 이스라엘 사람들을 지칭하던 이름(창 39:14; 40:15; 41:12; 출 1:16; 2:7; 3:18; 삼상 4:6). 이 이름의 유래에 관해서는 창 14:13 주석을 참조하라.

1:9 지으신.

 . 참하나님의 우월성을 보여 주고자 제시된 특색 있는 면모들 가운데 하나(렘 10:10~12).

  선원들이 하나님에 대한 사전(事前) 지식(참조 출 15:13~16; 수 5:1; 삼상 4:5~9)을 통해 요나가 섬기는 하나님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다. 그러나 순간적인 죽음의 위협을 당하는 상황에서 틀림없이 여호와의 성품을 그들 자신의 이교 개념으로 해석하면서 그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1:9 하늘의 하나님.

 . 참조 창 24:7; 단 2:37, 44.

1:9 여호와.

 . 히브리어 야훼(Yahweh). 하나님의 개인적인 이름(참조 제1권, 151~153). “하나님”(히브리어 엘로힘[’Elohim])이라는 용어는 신에 대한 일반적인 이름이며 “여호와”(히브리어 아도나이[’Adonai])는 호칭이다. 엘로힘이라는 단어는 거짓 신들을 지칭하는 데 자주 사용되었다(출 18:11 등). 그러므로 야훼라는 이름은 특히 참하나님을 가리킨다.

1:10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알기 위한 질문이라기보다는 절규의 외침이다.

1:11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이곳에 사용된 히브리어 관용구는 폭풍우가 점점 더 사나워지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1:11 우리가…어떻게 하여야.

 .아마도 요나는 여호와를 잘 알고 범죄를 속하기 위한 방법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1:12 나를 들어…던지라.

 요나가 여기서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말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여간 그의 행동은 남자다웠다. 그는 자기의 파멸에 다른 이들을 연루시키기를 원치 않았다. 요나는 유감스럽게도 도덕적 용기는 부족했으나(2, 3절) 육신적인 면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1:13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아마도 요나의 하나님이 그렇게 극단적인 조치를 요구하시는가의 여부에 대해 약간의 의구심이 있었던 것 같다.

1:13 육지에.

 . 해안선을 따라 여행하는 것이 고대에 항해하던 선박들의 관습이었으므로 배는 육지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1:14 구하오니.

 선원들은 여호와를 경배하는 사람 하나를 죽음에 내어줌으로써 그분을 더 성나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그들의 기도는 자기들의 신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향한 것이었다.

1:15 그친지라.

 마 8:26과 비교하라. 갑자기 잠잠해졌고 선원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개입 행위로 인식했다.

1:16 여호와를…두려워하여.

 이 사건에서 천연계를 주관하시는 여호와의 능력이 매우 명백했고 요나의 말도 매우 현저하게 성취되었으므로(12절), 선원들이 그렇게 반응한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1:16 제물을 드리고.

 . 그 사람들은 그들의 제한된 지식 안에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했다.

1:17 큰 물고기.

 물고기가 이 경우를 위해 창조되었는지, 아니면 사람을 삼킬 수 있는 기존의 물고기 종류를 여호와께서 사용하셨는지는 기록되지 않았다. 이 점에 대한 추측은 무익하다. 물고기의 종류는 확인되지 않는다. 히브리어는 “물고기”라는 일반적인 용어를 사용한다. 「제임스왕역」은 이를 “고래”로 번역하지만, 신약에서 이 경험을 언급하고 있는 마 12:40은 이 물고기를 헬라어 케토스(ke-tos), “바다 괴물”로 칭한다. 「70인역」에는 욘 1:17에 케토스가 사용되었다.

1:17 예비하사.

 . 히브리어 마나(manah), “지정하다.” 이 단어는 단 1:5, 10에서도 이렇게 번역된다.

1:17 삼일 삼야.

 . 이 표현에 관련된 시간의 길이는 예수께서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고(마 12:40) 선언하셨기 때문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히브리어 용례에 따르면 이 표현이 꼭 총 72시간이 되는 매일 24시간의 옹근 3일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쉽게 입증된다. 이 문제에 관한 논의는 마 12:40 주석을 참조하라.

  히브리 성경과 「70인역」에서 17절은 제2장의 첫 절이다. 


 

제1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앗수르 성읍들 가운데서 매우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가 앗수르어로 니누아(Ninua)인 니느웨였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그것은 니므롯이 창설했다(참조 창 10:11 주석). 고고학적 증거 역시 그 도시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증명한다. 수 세기에 걸친 역사를 통해 니느웨는 여러 번 앗수르 왕국의 수도로 사용되었다. 그 도성은 BC 9세기부터 BC 7세기에 이르는 제국 기간에 그 중요성이 최고에 달했는데, 특히 니느웨를 당대의 가장 영화로운 도성으로 만든 산헤립 왕의 통치 기간 중에 그러했다. 그 도성의 일반적인 배치와 궁전들에 대한 그의 묘사를 통해 이 고대 수도 성읍의 분명한 그림을 얻을 수 있다. BC 612년 바벨론과 메대가 니느웨를 철저히 파괴한 이후로, 그 도성은 폐허로 남아 있었다. 19세기 중엽에 그 성읍이 다시 발견되기까지는 그 위치마저 잊혀져 있었다(참조 제1권, 120, 121). 니느웨는 오늘날의 모술(Mosul)시 맞은편 힛데겔강의 동편 기슭에 위치한다. 고대에 그 강은 도성의 서쪽 성벽을 따라 흘렀으며 따라서 그 방향에 부가적인 보호 장치를 형성하였다. 그 후에 그 흐름은 변경되었으며 지금은 옛날 하상(河床)에서 약 1.2킬로미터 서쪽을 흐른다.

 니느웨 지역 내에는 두 개의 토둔이 된 폐허가 고대 도성의 주요한 왕궁들과 신전들을 덮고 있다. 그중 하나가 느비 유누스(Nebi Yunus)인데 그 밑에는 에살핫돈의 왕궁이 묻혀 있다. 다른 토둔인 쿠윤직(Kuyunjik)은 산헤립과 아슈르바니팔의 왕궁들의 폐허들을 포함하고 있다. 느비 유누스에는 고고학자들의 삽이 거의 닿지 않았다. 이 유적지 위에 한 마을과, 전통적으로 회교도들이 선지자 요나의 것으로 여기는 무덤이 있기 때문에, 고고학자들이 이 토둔에 손을 댈 수가 없다. 한편 쿠윤직은 몇 번의 탐색이 이루어졌다. 이 토둔 발굴 작업은 1840년 보타(Botta)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 후로 산헤립과 아슈르바니팔 궁전의 일부가 발굴되었다. 아슈르바니팔 궁전에서 레이어드(Layard)와 랏삼(Rassam)은 대략 20,000개의 점토판이 있는 왕립 도서관을 발견했는데 그것들은 현재 영국박물관의 주요 보물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 원본들은 고대 메소보다미아인들의 역사와 문화와 종교에 관하여 많은 것들을 드러내 주었다.

 고대 니느웨의 크기는 상당히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 성벽들을 폐허가 된 상태에서도 지금도 여전히 명확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민 언덕 형태의 이 성벽들은 문들이 있던 자리는 끊어져 공백이 되었으나 아주 먼 거리에서도 볼 수 있다. 모두 합한 길이는 약 12킬로미터에 달하며, 그 영역은 663.7 헥타르 정도인데, 지도상에는 변칙적이고 기다란 삼각형 모양으로 나타난다(참조 724쪽).

 요나의 시대 훨씬 후에 그 도성을 확장한 산헤립의 팔각형 진흙 기둥에는 그 왕의 건축 활동과 15개의 성문 이름들이 기술되어 있는데, 그중에 일곱 개는 남쪽과 동쪽 성벽에 있었고, 세 개는 북쪽 성벽에, 다섯 개는 서쪽 성벽에 달려있었다. 발굴하는 동안 헨리 레이어드(Henry Layard)는 북쪽 문들 가운데서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한 문 하나를 발견했다. 그 문의 측면에는 거대한 황소들이 있었는데 그는 그것들을 본래의 위치에 남겨두었다. 방문객들은 아직도 그곳에서 그것들을 볼 수 있다. 두 곳의 망대를 덮고 있는 성벽 가운데 언덕들은 그 높이가 대략 18.3미터에 달한다. 동쪽 성벽은 약간 굽어 있는데 길이가 대략 5.1킬로미터이며, 서쪽 성벽은 4.3킬로미터, 북쪽 성벽은 1.9킬로미터, 남쪽 성벽은 800미터이다. 산헤립의 설명에 따르면 그 성벽은 두께가 약 12.2미터이고 높이는 대략 18.3미터였다. 동쪽에서 볼 때 니느웨는 그 성벽들뿐 아니라 성벽과 평행을 이루는 여러 개의 추가적인 제방으로 보호를 받았는데 그 잔해는 아직도 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그 도성 안의 거주 가능 인구를 160,000명으로 추산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도성 바깥에서 살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어떤 저술가들은 좌우를 분별치 못하는 120,000명에 대한 욘 4:11의 언급을 어린아이들에게만 적용시킨 것으로 해석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니느웨의 총 인구가 600,000명에서 2,000,000명은 되었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그처럼 많은 인구가 니느웨 도성 안에서 살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요나서의 니느웨에 현재는 코르사바드(Korsabad)라 불리며 니느웨에서 북쪽으로 19.2킬로미터 떨어진 “사르곤의 성읍”과 니느웨 남쪽 대(大)자브(Greater Zab)와 힛데겔강의 합류점에 위치한 지금의 님루드(Nimrud)인 갈라(Calah)를 포함시켰다. 그러나 그 성읍들이 앗수르에 속하기는 했지만 자체적인 방어 성벽과 행정부를 갖춘 분리된 단위들이었으며 고대 역사의 기록들에서 결코 니느웨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 결과 4:11의 “십이만 명”은 단지 어린아이들만을 언급한 것이며 기록자는 니느웨 본성(本城)만을 언급했다고 믿는 현대의 어떤 주석자들은 요나서를 허구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 도성의 실제적인 크기에 비추어 볼 때 4:11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는 이들을(참조 해당 주석)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최선일지 모른다. 만약 120,000명이 그 본성 자체의 대략적인 전체 인구를 의미했다면 1차 세계 대전 이후 확장되기 전까지는 니느웨보다 약간 컸던 현대의 모술(Mosul)과 비교해 볼 때 그것은 적당한 수효일 것이다. 

 3의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 일 길이라”라는 진술은 한 사람이 그 성곽 내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접하기를 원했다면, 그 시가지들을 오르내리면서 그 전 지역을 답파하는 데 삼 일이 소요되었을 것임을 의미할 것이다.

 또한 3:4의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라고 진술한 본문은 요나가 경고하는 일을 시작한 그 도성의 어떤 장소에 도착하기까지 하루 종일 걸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이 본문은 요나가 일을 시작한 것과 첫째 날에 그가 기별을 선포한 것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 결과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었다(3:5).

 더욱이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니느웨는 그가 알고 있는 서아시아의 다른 어떤 성읍과도 그 크기를 비교할 수 없는 도성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스라엘 나라의 수도 사마리아는 그 면적이 7.7헥타르에 불과했는데, 예루살렘을 제외하면 팔레스타인의 그 어떤 성읍도 사마리아보다 크지 못했다(참조 느헤미야 제3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그런 지역에서 온 사람들에게 그 면적이 약 40.5헥타르로 추산되는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었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8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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