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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장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이사야

이사야 3장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9. 7. 07:05

<이사야 3장 흐름정리>

이사야는 2장에 이어 본장에서도 계속해서 타락한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본문은 유다의 죄악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그것은 바로 사회 정의가 땅에 떨어져 불의가 성행하며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히 행하여 영적 간음 행위인 우상 숭배를 일삼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은 하나님의 징계의 궁극적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징계를 통해 택한 백성들을 다시 정결케 하시려는 데 있다는 점이다.


<이사야 3장 줄거리>

1. 죄로 인해 촉발된 큰 혼란.

9. 백성이 뻔뻔스럽게 행함.

12. 통치자들이 행한 학대와 그들의 탐욕.

16. 여인들의 교만을 심판하심.


<이사야 3장 개역한글>

1.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과      

2.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3.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공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 하실 것이며      

4. 그가 또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삼으시며 적자들로 그들을 다스리게 하시리니      

5.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며      

6. 혹시 사람이 그 아비의 집에서 그 형제를 붙잡고 말하기를 너는 의복이 오히려 있으니 우리 관장이 되어 이 멸망을 네 수하에 두라 할 것이면      

7. 그 날에 그가 소리를 높여 이르기를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않겠노라 내 집에는 양식도 없고 의복도 없으니 너희는 나로 백성의 관장을 삼지말라 하리라      

8.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스려서 그 영광의 눈을 촉범하였음이라     

9. 그들의 안색이 스스로 증거하며 그 죄를 발표하고 숨기지 아니함이 소돔과 같으니 그들의 영혼에 화가 있을찐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      

10.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11.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12.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 나의 백성이여 너의 인도자가 너를 유혹하여 너의 다닐 길을 훼파하느니라      

13.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14.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장로들과 방백들을 국문하시되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은 너희 집에 있도다      

15.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뇨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하시리로다      

16.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죽거려 행하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      

17. 그러므로 주께서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체로 드러나게 하시리라 

18. 주께서 그 날에 그들의 장식한 발목 고리와 머리의 망사와 반달 장식과      

19. 귀고리와 팔목 고리와 면박과      

20. 화관과 발목 사슬과 띠와 향합과 호신부와      

21. 지환과 코 고리와      

22. 예복과 겉옷과 목도리와 손주머니와      

23. 손 거울과 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을 제하시리니      

24. 그 때에 썩은 냄새가 향을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자자한 흔적이 고운 얼굴을 대신할 것이며      

25. 너희 장정은 칼에, 너희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이며      

26. 그 성문은 슬퍼하며 곡할 것이요 시온은 황무하여 땅에 앉으리라


<이사야 3장 성경주석>

3:1 예루살렘과 유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을 대표하는데, 이사야의 시대에 그들은 이미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으면서도 여전히 뻔뻔스럽고도 공허한 신앙 고백을 하고 있었다. 유사한 상황이 오늘날에도 이 세상에 널리 퍼져 있으며, 따라서 마지막 때에도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배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와 동일한 기별이 필요하다. 참조 마 15:7~9 주석.

3:1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

 여호와께서 삶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 곧 양식과 물을 이제 막 유다로부터 제거하시려 하는 중에 있다. “의뢰하는 양식”이라는 표현이 쓰인 레 26:26; 시 105:16; 겔 4:16; 5:16; 14:13을 참조하라. 물론 이사야가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실제 기근이 분명하다. 하지만 전체 문맥은 이 실제 기근을 훌륭한 지도자가 결핍되어 있는 상황에도 적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음식이 결핍되면 몸이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지도력이 결핍되면 나라 전체가 고통을 당할 수 있다. 훌륭한 정치가들이 쫓겨나면 그 후에는 행정의 책임이 연약한 자들의 어깨에 놓이게 된다. 그 결과로 나라가 쇠퇴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참조 2~5절).

3:2 재판관과 선지자.

 2절과 3절은 나라의 대들보 역할을 하였던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열거한다. 그 어떤 나라도 그 같은 지도자들이 없이는 존속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유다에서 이 같은 사람들이 제거될 것이며, 나라가 쇠약해지고 붕괴되는 결과가 그 뒤를 따를 것이었다. 하나님은 당신이 일부러 그 나라에서 그 같은 사람들을 제거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단지 인과(因果)의 법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에 주목하도록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으실 뿐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원하는 사람들을 자신들의 지도자들로 삼도록 허락하셨으며, 이렇게 뽑힌 지도자들은 백성이 통치받기를 원하는 방식대로 그들을 통치하였다.

3:3 귀인.

 또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개정표준역」). 이 절에도 계속해서 군대의 관리들과 행정직에서 봉사하는 관료들 등과 같이 나라를 부강케 하고 번창시키는 데 꼭 필요한 사람들이면서도 유다에서 쫓겨나게 될 훌륭한 지도자들의 목록이 열거되어 있다. 바로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참조 왕하 24:14; 렘 24:1; 단 1:3, 4).

3:4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삼으시며.

 아이들 수준의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나라의 내정을 이끌어가게 될 것이었다. 능력이 결핍된 사람들이 나라를 통치하도록 선택될 것이다. 능력 있는 지도자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이며, 그 결과로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어 갈 것이다. “아이들” 곧 생각이 명확치 않고 행동에 사려분별이 없는 변덕스러운 사람들이 의사를 결정하고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나라의 파멸이 신속하고도 확실하게 다가 올 것이다.

3:5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지혜롭고 능력 있는 통치자들이 있는 나라들은 부정과 압제로 인해 고통당하지 않는다. 평등과 공명정대를 촉진시키고자 하는 국가 지도자들의 단호한 결단은 문명의 파괴를 가져오는 학대를 방지해 준다. 어떤 나라의 국민들이 자기의 이웃들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하게 되면 그들의 신뢰와 번영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부정과 속임, 폭력과 압제가 있는 곳에서는 나라가 내리막길을 걷게 되며, 또한 심판의 날이 분명히 이르러 오게 된다. 이것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동일하게 해당되는 원칙이다. 이것은 이사야 시대에 유다에게 해당되었던 원칙이었으며, 또한 오늘날 우리의 시대에도 온전히 해당되는 원칙이다. 타락은 혼돈과 파멸로 나아가는 길을 예비한다.

3:5 아이가…할 것이며.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미약한 어린아이들이 노인들의 권고를 경멸하게 될 것이다. 십계명에 나와 있는 것처럼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람의 첫째 의무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출 20:12. 참조 레 19:32). 말세에 당할 고통들에 대한 예언들 중에는 “부모를 거역하”는 자녀들과 “자긍하며 교만”한 사람들과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는 자들이 포함되어 있다(딤후 3:1~4).

3:6 너는 의복이 오히려 있으니.

 사람들은 물질을 많이 소유한 것이 반드시 다스리는 능력의 훌륭함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재물이 많은 사람들에게 지도자가 되어 주라고 제안할 것이다.

3:6 이 멸망을 네 수하에 두라.

 “이 멸망”이라는 말을 통해서 화자(話者)는 그 나라 전체가 마치 황폐해진 집처럼 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때는 이미 번영의 시기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시기이다.

3:7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않겠노라.

 이것은 “멸망”(6절)을 다스리는 자가 되어 달라고 권함받은 형제가 하는 답변이다. 그 호소는 거절되었고, “고치는 자”의 자리는 채워지지 못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고치는 일은 그 자신에게는 아무런 득도 없는 일이다. 만일 회복해야만 하는 어떤 일이 있다면 다른 사람으로 그 일을 하게 하라. 그 일을 할 만한 자질을 갖추었든 갖추지 못했든 관계없이 그는 지도자의 책임을 맡는 일을 거절할 것이다.

3:8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산헤립이 침공한 때에(참조 제3권, 119, 120) 유다 왕국은 그 영토의 상당 부분이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 히스기야 왕은 이전에 이 앗수르 왕으로부터 힘에 버거운 징세를 바치도록 강요당한 적이 있었다(참조 2:7 주석). 비록 산헤립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데는 실패하였지만 예루살렘을 제외한 영토의 나머지 지역들은 이미 그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3:8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이사야는 여기에서 그 나라가 왜 수치를 당해야 했는지, 또한 왜 그 나라에 완전한 파멸이 이르러 올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진술하고 있다. 이는 그 백성이 이미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그분이 더 이상 그들에게 복을 주실 수도, 또한 그들을 보호하실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임을 공언하는 그들이 말과 행동 모두에서 그분에 대하여 반역을 범하고 있었다.

3:8 그 영광의 눈을 촉범하였음이라.

 문자적으로는 “그의 영광의 눈앞에서 반역을 행하였음이라.” 이는 곧 “그가 임재하신 가운데서” 그 같은 일을 행한 것을 의미한다(참조 9절). 하나님은 오래 참고 인자하시며 범죄한 자들에게 심판을 행하시기 전에 오랜 기간 주저하는 분이시다. 하지만 비록 오랫동안 지체되긴 할지라도 심판의 날은 분명히 이르러 올 것이다.

3:9 그들의 안색.

 문자적으로는 “얼굴들에 대한 그들의 관심.” 이는 곧 “그들의 편파성”을 의미한다(참조 행 10:34). 이 악인들은 옳고 그른 것을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행할 뿐이다. 그들은 공의는 염두에도 두지 않고 그저 편리한 것만을 추구한다. 하나님이 보실 때 바로 그들 자신의 태도와 행위가 그들이 죄인들임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3:9 그 죄를 발표하고 숨기지 아니함이 소돔과 같으니.

 소돔 사람들은 공공연히 범죄를 행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성읍은 그곳의 죄악으로 유명하였으며, 그 거민들은 자신들이 악한 사람들로 평판받는 것을 즐거워하였다. 그들은 바른 행동을 하는 것처럼 꾸며대는 일 따위는 전혀 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 앞에서 공공연히 자랑삼아 뻔뻔스러운 죄악들을 행하였다. 이 같은 부류의 죄인들은 하나님께 공공연히 반역하는 자들로, 그들은 전혀 사실을 숨기고자 시도하지 않았다. 이 단계는 선을 행한 것처럼 꾸미는 것으로 악행을 덮고자 하는 시도는 더 이상 하지 않는 단계였다. 그들은 악행과 불법적 행위를 공공연하게 드러냈으며, 또한 잘못을 행하여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성읍들이 마치 그 평지에 있던 방탕한 성읍들과도 같았다. 이제 파멸의 때가 무르익었다.

3:9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

 죄는 스스로 멸망의 씨를 뿌린다. 죄인의 악행은 그의 영혼을 불사르고 그의 존재 자체를 파괴하는 죄악의 쓴잔이 되어 그에게로 돌아온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선의 보응이 아닌 악의 보응을 받는다.

3:10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심은 것을 수확한다. 의인들은 좋은 씨를 심기 때문에 그 씨가 자라서 그들에게 좋은 수확을 가져다준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심는 그대로 거두어들인다는 이 큰 교훈을 깨달아 알아야만 한다. 부모들이나 교사들이 범할 수 있는 잘못들 중에 젊은이들에게 그들이 악한 것을 심을지라도 선한 것을 거둘 수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 냉혹한 운명이 죄인에게 이미 저주를 선포하였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시온에 있는 죄인에게 그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지 못하게 하라. 하나님이 이미 저주를 선포하셨기 때문에 그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죄를 버리고 바른 삶을 사는 사람만이 하늘의 복을 기대할 수 있다.

3:11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것은 하나님이 독단적으로 내리시는 판결이 아닌 본질적 사실에 대한 진술이다.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는 것보다 더 분명한 일은 이 세상에 없다. 사람들이 죄악을 심으면 그들 자신과 그들의 주변 세계가 분명히 슬픔과 고뇌를 수확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그 죄악으로 인해 스스로를 파멸하고 있었다. 죄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또한 그 결과로 나라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이 사실을 모든 사람의 마음에 영원히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다. 의의 설교자는 그 누구보다도 더 위대한 애국자요 또한 더 훌륭한 시민이다. 이사야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한 삶을 살았으며, 또한 그것이 어느 정도는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개혁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그 같은 개혁이 없었으면 신속히 그 땅을 삼켜버렸을 파멸에서 나라가 구원된 것은 주로 그의 설교의 결과로 일어난 일이었다.

3:11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근자에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 1QIsa(참조 제1권, 32; 이사야 서론)에는 이 구절이 “(그에게로) 보응이 돌아올 것임이니라”로 되어 있다.

3:12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때로는 이 말이 당시 유다 왕들의 나이를 일컫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사야의 시대에는 현저히 어린 나이에 그의 치세를 시작한 통치자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적용은 그 타당성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요담은 25세(왕하 15:33), 아하스는 20세(왕하 16:2) 그리고 히스기야 또한 25세(왕하 18:2)에 각각 보좌에 올랐다. 아사랴(웃시야)는 왕이 될 때 16세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의 치세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가서야 이사야가 그의 사역을 시작하였다(참조 사 6:1). 므낫세와 요시야는 각각 12세(왕하 21:1)와 8세(왕하 22:1) 때 왕위에 올랐다. 이사야 시대의 왕들이 실제로 어린아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이 임명한 관리들 또한 실제 어린아이들로 보기는 어렵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당시의 통치자들이 그들의 사고방식과 능력에서 어린아이들과 같았다는 것이다. 왕궁에서도, 가정에서도, 또한 그밖에 어느 곳에서도, 경험 있는 지도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이 말은 특히 아하스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그는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은 후 몇 년이 지나서 보좌에 올랐으며, 후에 선한 왕인 히스기야에게 왕위를 계승한 왕이었다.

3:12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

 이 말 또한 그 나라가 지도력을 전혀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 의하여 통치되었음을 의미한다. “아이”와 “부녀”를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되지만 그럴지라도 16~24절에 묘사되어 있는 오만하고 방종한 “시온의 딸들”이 나라의 지도자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분명히 국사(國事)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 같은 여인들은 자기들의 남편들을 돕는 대신에 오히려 그들에게 장애가 되었으며,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의의 길을 가르치는 대신에 오히려 그들을 죄악의 길로 가도록 인도하였다.

3:12 너의 인도자.

 지도자의 책임은 실로 매우 중요하다. 이는 그가 인도하는 대로 백성이 따라가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면 온 나라가 잘못된 길을 따라가게 된다. 이사야 시대의 지도자들은 국가 지도자나 종교 지도자를 막론하고 모두 자칭 하나님의 백성을 죄악과 파멸의 길로 인도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세계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그리고 확실하게 죄악의 길로 인도하고 있는 악한 세력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 그 길의 종국은 영원한 파멸이다. 지구 역사에서 올바른 지도력이 오늘날보다 더 절실히 필요한 시기는 일찍이 없었다.

3:13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죄악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일정한 한계에 이르게 되면 그가 심판자로서 일어나실 것이다(선지자와 왕, 364; 교회증언, V, 208, 524,). 중보는 그치고 심판의 집행이 시작된다. 하나님은 지금 당신의 백성에게 너무 늦기 전에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킬 것을 호소하고 계신다.

3:14 장로들.

 (「제임스왕역」에는 “노인들”-역자 주). 그 나라를 지배하고 있던 장로들과 지도자들. 그들은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마 15:14)였다. 백성은 지도와 지혜를 구하며 그들을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그 백성을 죄악과 어리석음의 길로 인도할 뿐이었다.

3:14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며.

 포도원은 한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상징한다(5:7; 참조 1:1, 8, 27; 2:1, 3; 3:1, 8, 16; 4:3, 4). 국가와 종교 지도자들은 포도원지기였다. 그들은 그 포도원을 돌보지는 않고 오히려 그것을 삼켜 버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스리는 백성의 행복에는 관심을 쏟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들에게만 관심을 쏟았다.

3:14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

 나라의 가난한 자들은 그들을 다스리는 자들에 의해 편취를 당하였다. 백성이 곤궁하게 된 것은 힘과 영향력이 있는 지위에 있는 자들의 탐욕 때문이었다.

3:15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불행하고 가난한 자들도 부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었다. 하늘의 통치자의 눈에는 그들도 부유한 자들 못지 않게 귀한 존재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부정한 행위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록해 놓으셨다. 그는 모든 압제자들에게 각각 자신의 악행들에 대한 책임을 지우실 것이다. 힘없고 가난한 자들은 그 연약함과 궁핍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종이라 공언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는 것은 하늘 왕국의 기본 원칙들을 어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이용해서 부를 쌓고, 그렇게 얻은 부정한 이득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므로 자신의 양심을 노예로 삼고자 시도하는 자들을 결코 호의적으로 바라보지 않으실 것이다.

3:16 시온의 딸들.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방백들과 장로들에 대하여 이야기 한 후에 이제 역시 그들 못지않게 철저히 타락한 그들의 아내들과 딸들에게로 방향을 돌린다. 성경에서 여인들의 타락한 모습을 여기보다 더 상세히 고발하고 있는 곳은 찾아볼 수 없다. 이사야 시대의 여인들이 그들의 모습 그대로 정확히 묘사돼 있다. 그들은 허영심 많고 방자하고 교만하고 잘난 체하였으며, 또한 여호와께와 주변 사람들의 필요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자신들의 일에만 골몰하였다. 베드로는 이와 완전한 대조를 이루는 참된 그리스도인 여인상을 제시하고 있다(벧전 3:1~5).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딸들”의 삶 속에서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이 반영되는 것을 보기 원하셨지만 그들의 삶은 이와는 정반대로 오만함으로 특징지어져 있었다.

3:16 다니며.

 시온의 여인들은 남자들의 주목을 끌기 위하여 창기들의 걸음걸이를 즐겨 흉내 내었다. 이 연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주위를 끌어 먹이를 자신들의 힘이 미치는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죽거려 행하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내면서 거리를 돌아다녔다(참조 잠 7:6~21).

3:16 쟁쟁한 소리.

 어떤 동방 나라들에서는 발목에 은방울을 달고 다녔는데, 그것을 달고 있는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거기에서 딸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또한 여인들은 팔뿐 아니라 다리에도 팔찌를 차고 다녔는데, 이것 역시 그들이 거리를 걸어 다닐 때 딸랑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시온의 딸들”은 주변 나라들의 관습들을 쫓아 이 같은 일들을 행하였다.

3:17 딱지.

 그 여인들은 각종 질병에 걸릴 것이며, 또한 그들에게서 값비싼 옷들을 벗겨 버릴 잔인한 침략자들의 희생물이 될 것이었다.

3:18 장식.

 문자적으로는 “아름다움.”

3:18 발목 고리.

 (「제임스왕역」에는 “딸랑거리는 장신구”[tinkling ornaments]-역자 주). 히브리어 아카심(‘akasim), 문자적으로는 “발목 장식.” “발목 장식을 흔들다”, “딸랑딸랑 울리다”라는 의미의 아카스(‘akas)라는 어근에서 파생됨. 16절에서는 아카스가 “쟁쟁거리는 소리를 내다”로 번역되었다.

3:18 머리의 망사.

 히브리어 셔비심(s∨ebisim). 아마도 “머리그물” 또는 귀에서 귀까지 머리에 착용하였던 금이나 은으로 만든 “머리띠”를 일컫는 듯하다.

3:18 반달 장식.

 히브리어 사하로님(saharonim), 문자적으로는 “작은 달들.” 목걸이로 착용되던 초승달 모양의 펜던트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고대 동방에서는 금이나 은 또는 다른 보석들로 만들어진 다양한 모양의 목걸이를 사용하였다.

3:19 귀고리.

 (「제임스왕역」에는 “사슬”[chains]-역자 주). 히브리어 느티포트(net.ipot), 문자적으로 “귀고리.” 이것들은 아마 귀에 달고 다니던 장식이었을 것이다.

3:19 팔목 고리.

 팔목 고리는 예나 지금이나 동방 나라들에서 선호하는 장신구이다. 팔목 고리들 중에는 종종 번쩍거리는 큰 것들도 있었으며, 때로는 한꺼번에 여러 개를 같이 차고 다니기도 하였다.

3:19 면박.

 히브리어 르알로트(re‘alot), “베일.” 즉 스카프나 길게 늘어진 베일을 의미한다.

3:20 화관.

 (「제임스왕역」에는 “보닛”[턱 밑에서 끈을 매는 여자와 어린이용의 챙 없는 모자]-역자 주). 히브리어 프에림(pe’erim), 다양한 형태의 “머리 장식들.” 아마 여기에는 머리띠와 리본과 모자와 화려하게 장식된 머리핀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프에림이 제사장이 쓰던 “관”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 출 39:28을 참조하라(참조 겔 44:18).

3:20 발목 사슬.

 히브리어 츠아도트(s.e‘adot), “팔찌.” 다리에 끼었던 장식으로 여겨지며, 팔에도 끼었을 가능성이 있다. 동방에서는 종종 팔을 장식하는 것 못지 않게 다리를 많이 장식하였다.

3:20 띠.

 (「제임스왕역」에는 “머리띠”-역자 주). 히브리어 쿳슈림(qus∨s∨urim). 머리 또는 가슴에 매던 “띠.” 이것은 동방 나라들에서 예복에 딸려 있는 매우 화려하게 장식된 물품으로 특히 신부들이 입는 예복에 딸린 것은 그 화려함의 도가 크게 더하였다. 쿳슈림이 “고운 옷”으로 번역된 렘 2:32과 비교해 보라.

3:20 향합.

 문자적으로는 “호흡 용기.” “향수 상자” 혹은 “향수 병”을 일컫는 듯하다.

3:20 호신부.

 히브리어 르하쉼(leh.as∨im), “주문(呪文)” 혹은 “부적.” 주문이 써 있는 것으로, 마술적 효력을 기대하여 지니고 다녔을 것으로 생각된다.

3:21 지환.

 히브리어 탑바오트(t.abba‘ot). 손가락에 끼거나 귀에 다는 “고리” 또는 “인장 반지”(참조 창 41:42; 출 35:22; 민 31:50; 에 8:8).

3:21 코 고리.

 (「제임스왕역」에는 “코 장신구”-역자 주). 즉 “코 고리.” 동방에서는 고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코고리가 매우 널리 사용되고 있다.

3:22 예복.

 (「제임스왕역」에는 “변하기 쉬운 복장”-역자 주).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정장”, “명절 옷”, “예복.” 슥 3:4의 “아름다운 옷”과 비교해 보라. 여기 언급된 의복은 예식에 참여할 때만 입는 의복이었다. 예식이 끝나면 그 옷을 벗은 후에 일상의 활동으로 돌아갔다.

3:22 겉옷.

 혹은 “튜닉.”

3:22 목도리.

 히브리어 밋파호트(mit.pah.ot). 튜닉 위에 “외투”처럼 걸치는 큰 “숄.” 밋파호트가 룻이 입었던 겉옷을 나타내는 데 쓰인 룻 3:15을 참조하라. 근자에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 1QIsa(참조 제1권, 32; 이사야 서론)에는 “목도리와”라는 구절이 빠져 있다.

3:22 손 주머니.

 히브리어 하리팀(h.arit.im). “돈지갑” 혹은 “손가방”을 의미하는 듯하다(참조 왕하 5:23).

3:23 손거울.

 히브리어 길료님(gilyonim). “폭로하다”, “드러내다”라는 의미를 지닌 갈라(galah)라는 어근에서 파생됨. 길료님(gilyonim)이 “투명한 옷”을 의미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이와는 달리 “거울”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자는 「70인역」을, 후자는 「불가타역」을 따른 것인데, 이 둘 중 어떤 것이 옳은지는 명확하지 않다. 투명한 옷은 고대 애굽에서 널리 유행했는데, 아마도 배도한 유다의 여인들이 애굽에서 이 유행을 받아들였던 듯하다. 윤을 낸 금속 거울도 또한 고대 동방에서 널리 유행하였었다(참조 출 38:8 주석). 여기에 열거된 다른 품목들이 모두 입거나 혹은 몸에 지니는 물건들인 것으로 미루어 길료님(gilyonim)도 필시 일종의 의복이었거나 아니면 복장의 일부로 몸에 지니고 다니던 어떤 물건이었을 것이다.

3:23 세마포 옷.

 세마포 옷은 때때로 최상품 비단이나 얇은 천에 필적하던 것으로 고대 동방에서 매우 값비싼 물건이었다.

3:23 머리수건.

 또는 “두건.” 이것으로 완전한 복장을 갖추었고, 이 두건 위로 베일을 드리웠다.

3:24 썩은 냄새.

 즉 “곰팡핀 냄새.” 사치한 삶을 사는 자들의 상당수가 세상의 재물을 빼앗기고 포로가 되어 외국으로 끌려가게 될 것이었다. 앗수르 사람들은 매우 잔인한 정복자들이었다. 산헤립은 자신이 701년에 200,150명의 유다 백성을 포로로 잡아서 앗수르로 데려갔다고 주장하다. 그는 그 포로들 중에 특별히 왕족의 딸들과 왕의 첩들과 남녀 음악하는 자들이 있었음을 언급한다. 벌거벗겨져서 굴욕과 수치 중에 앗수르로 끌려가던 자들 중에 이사야가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는 바로 그 시대에 자신들의 화려한 옷들과 장신구들을 자랑하고 다녔던 “예루살렘의 딸들”의 상당수가 포함되어 있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향수에서 나는 향기 대신에 불결함과 질병과 죽음의 악취를 맡게 될 것이었다.

3:24 향.

 (「제임스왕역」에는 “향기로운 냄새”-역자 주). 즉 “향기.” 발삼 기름에서 나는 향기였을 것이다.

3:24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넝마 조각이 아름답게 장식된 띠를 대신하게 될 것이며, 그들은 “띠”를 두르는 대신에 “끈”으로 자신들의 허리가 묶일 것이었다.

3:24 숱한 머리털.

 히브리어 믹셰(miqs∨eh), “잘 손질된 머리.” 아름답게 잘 손질된 머리는 간 데 없고 털이 다 깎여 버린 노예의 머리만이 남아 있을 것이었다.

3:24 화려한 옷.

 히브리어 프티길(petigil). 좋은 재료와 훌륭한 솜씨로 만든 “옷.” 그들은 그 같은 옷을 입는 대신에 허리를 가리기 위한 베옷 조각만을 걸치게 될 것이었다.

3:24 자자한 흔적이 고운 얼굴을 대신할 것이며.

 (「제임스왕역」에는 “불타는 것이 아름다움을 대신할 것이며”-역자 주). 이 번역은 키-타하트 요피(ki-tah.at yopi)라고 되어 있는 마소라 히브리어 본문에 근거한 것이다. 「70인역」과 「불가타역」에는 이 구절이 완전히 빠져 있다. 다만 「70인역」의 루키아누스 개정판(Lucian’s revision)에만 “장식 대신에 이 모든 것이 너에게 (임할 것이다)”라는 의미의 타우타 소이 안티 칼로피스무(tauta soi anti kallopismou)가 묘사를 위한 번역으로 첨가되어 있을 뿐이다. 이 같은 번역에서는 24절의 마지막 구절이 여기 열거되어 있는 재난의 마지막 항목이 되는 대신에 24절 전체에 대한 요약이 된다. 「제임스왕역」의 번역은 히브리어 키(ki)가 “불타다”, “태우다”, “낙인을 찍다” 등의 의미를 지닌 카와(kawah)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었다는 확신에 근거한다. 키(ki)가 이러한 용법으로 쓰인 것을 다른 곳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여기에서도 이 단어가 과연 그러한 의미로 쓰였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매우 크다. 현대의 번역가들과 주석가들은, 예루살렘 여인들이 가축들처럼 달구어진 쇠로 낙인찍혔을 것임을 암시하면서(참조 「모팻역」) 추측에 근거한 「제임스왕역」의 번역을 따라왔다. BC 125년에 만들어진, 따라서 가장 오래된 이사야서의 마소라 본문보다 1,000년이나 더 오래된 것으로 근자에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참조 이사야 서론)가 키-타하트 요피 보셰트(ki-tah.at yopi bos∨et)라는 구절을 통해서 이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있다. 여기에서 보셰트는 “수치”를 의미하므로(참조 삼하 2:8 주석) 전체적으로 “아름다움 대신에 수치를”이라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히브리어 키(ki)가 “이처럼”, “그러므로”, “참으로”, “왜냐하면” 등의 의미를 지닌 접속사로서의 통상적인 용법으로 쓰이면서 사 3:24 전체를 요약하는 구절을 시작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키(ki)가 “왜냐하면”으로 번역된 실례들을 사 5:7; 51:3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사 3:24은 근자에 발견된 이사야서의 필사본을 통해서 히브리어 본문의 본래 모습이 복원된 하나의 흥미로운 실례를 제공한다.

3:25 칼.

 다가오는 심판의 때에 유다 사람들은 침략군의 칼에 쓰러지게 될 것이었다. 이사야의 시대에 유다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앗수르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만일 701년 산헤립이 침공하였을 때 200,000명이 넘는 남녀들이 포로로 잡혀갔다면 그의 첫 번째 원정 중에 죽임을 당한 사람의 수는 이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참조 왕하 18:13 주석). 하지만 산헤립의 표현에는 종종 과장이 잘 섞인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3:25 너희 용사는 전란에.

 산헤립은 자신이 히스기야의 정예군을 격파하였다고 말한다. 용사들이 상당수 죽임을 당하고 다른 많은 사람이 포로가 되어 먼 앗수르 땅으로 끌려갔음이 분명하다.

3:26 그 성문.

 예루살렘이 매를 맞은 후 황무하고 거친 땅에 앉아서 자기에게 엄습한 그 무서운 일들로 인하여 몹시 슬프게 울부짖는 여인으로 묘사된다. 옛적 이스라엘의 경험은 우리로 그와 동일한 잘못들을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고전 10:1~10)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롬 15:4), 또한 “우리의 경계로”(고전 10:11) 기록되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우리가 당신의 백성을 위한 그분의 영광스런 목적을 깨닫게 되기를 바라신다(참조 히 3:7, 8, 12~15; 4:1~3, 11, 14, 15).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7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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