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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ORY
역대상 서론 본문
<역대상 서론>
이 서론부에서는 역대상과 역대하를 함께 다룬다. 이 두 책은 원래 한권이었다.
1. 표제
열왕기의 책들과 같이 역대기의 두 책은 원래 한권이었다. 히브리어로는 “디브레하야밈”(dibre hayyamim), 즉 “그 당시의 사건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표제는 “세펠 디브레 하야밈”(sepher dibre hayyamim), 즉 “그 당시 사건들의 책”의 약식인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매일 사건들을 기록하는 동방 왕국의 궁정 일지(日誌)이다(왕하 14:18, 28; 15:6, 21, 31; 대상 27:24; 느 12:23; 에 6:1, 2). 70인역의 번역자들은 이 책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파라레이포메논a,b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누락된 사건들의 첫째, 둘째 부분들”이다. 헬라어 번역자들이 이런 표제를 사용한 것은 사무엘기와 열왕기의 보충적인 책으로, 먼저 역사책에 누락된 부분의 자세한 보충의 목적으로 기록된 것으로 간주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영어의 표제인 “역대기”(Chronicles)는 히브리 책의 명칭을 적절하게 옮긴 제롬이 사용한 “크로니콘”(Chronicon)이라는 용어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이 용어는 복수형으로는 “크로니카”(Chronica) 혹은 “크로니코룸 리베르”(Chronicorum liber), “역대기” “역대기의 책”으로 불가타역의 어떤 판에 사용되었는데, 거기에서부터 영어 번역자들이 그 이름을 따왔던 것이다.
역대기가 원래 분리되지 않은 단권이라는 사실은 히브리어 본에 의하면 역대상 27:25이 책의 중간이라는 마소라의 주(註)가 암시한다. 게다가 요세푸스와 오리겐, 제롬, 그리고 탈무드에서 역대기를 하나로 보고 있다. 70인역의 책 분리는 벌게이트에 이어졌고, 널리 퍼져서 현대의 여러 히브리 판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2. 저자
히브리어 성경의 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를 조심스럽게 검사해 보면 이 세 책은 어휘와 문체와 일반적 관점에 있어서 밀접하게 연관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상호 유사성은 저자의 동일성을 시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역대기가 덜된 문장의 중간에서 끝나 에스라의 시작하는 구절에서 연결되어 완성되는 사실이 이 두 책은 원래 구분되지 않는 한권의 책이었다는 것의 암시라고 생각한다(대하 36:22, 23; 스 1:1-3). 역대하 36과 에스라 1장 사이에는 실지 구분이 없다. 원래의 책을 둘로 나눌 때 아마도 역대기의 끝 구절들을 에스라의 시작에서 반복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 다른 이들은 다른 가능성을 시사하는데 그것은 에스라의 처음 몇 구절들이 역대기에 첨가되어서 예루살렘의 멸망이 책의 종결부분으로 되지 않도록 고려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초기 유대 저자들은 일반적으로 역대기의 저자가 에스라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에스라와 느헤미야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지적해 주는 것은 많이 있다. 고대인들은 이 책들을 현재 우리가 하듯이 둘로 나누지 않았다. 탈무드에서와 기독교 교부인 오리겐과 제롬은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한권으로 간주했다. 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를 통틀어 한 사람의 문체가 나타난다고 할 수 있는데, 현재의 학적 연구는 이 책들이 어느 한 저자의 작품이라고 간주한다. 그 작품의 어조와 사상은 이 책들이 B.C. 5세기 후반에 예루살렘 성전과 관계있었던 어떤 제사장의 소산이라고 시사하는 까닭에 제사장겸 학사 에스라(느 12:26)가 저자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에스라(스 7:1-21)와 느헤미야(느 2:1; 5:14)는 둘 다 아닥사스다를 언급한다. 그의 치세동안 에스라는 득세했었다. 이 사람은 분명히 아닥사스다 Ⅰ세였다(465-423 B.C.). 만약 에스라가 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의 저자라면, 역대상·하는 B.C. 5세기 후반의 산물로 연대가 결정되어야만 한다.
내적 증거도 책이 약 B.C. 400년, 페르시아 시대에 기록되거나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화폐 가치는 “드람” 즉 다릭(대상 29:7)으로 계산되었는데, 이 동전들은 다리우스 Ⅰ세(B.C.522-486)에 의해 도입되었다고 믿어진다. 다윗 가계의 족보는 스룹바벨 이후 여러 세대까지 내려갔다 (대상 3:19-24). 그는 고레스의 통치 때, B.C. 539-530년에 유대로 돌아왔다(스 1:1, 2; 2:2). 그러나 후대 족보의 이름들은 후대에 첨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대상 3:19). 히브리 왕들의 직계를 평균해 보면, 한 세대는 약 23년이다. 이러한 계산으로 스룹바벨 후 6세대는 거의 B.C. 400년으로 내려간다. 역대기가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하나로 붙은 책이었다고 추측됨으로 역대기 저자의 시대는 두 책의 내적 증거로부터 얻어질 수 있다. 느헤미야 12:10, 11, 22, 23에 나타나는 대제사장의 명단은 요나단 혹은 요하난과 야두아까지 포함한다.
엘레판틴 파피루스에 의해 알려진 바로는 요나단은 적어도 410년 경에 대제사장이었다. 그래서 그 증거는 역대기의 완성시기를 B.C. 5세기 말이나 혹은 약 400년경을 지적한다.
역대기의 저자는 반복해서 일반적인 역사의 어느 책 즉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를 언급한다(대하 16:11; 25:26; 28:26; 35:27; 36:8). 이 책은 열왕기에 자주 언급되는 두 역사책 “이스라엘왕 역대지략”(왕상 15:31; 16:5, 14, 20, 27; 22:39; 왕하 10:34; 14:28; 15:21, 26)과 “유다왕 역대지략”(왕상 14:29; 15:7, 23; 왕하 8:23; 12:19; 15:6, 36; 16:19)의 집대성인 것으로 여겨진다.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는 모든 왕들의 기록이 담겨져 있는 하나의 완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 행위의 “처음과 나중”의 설명을 포함하기 때문이다(대하 16:11; 25:26; 28:26; 35:27). 게다가 그는 자주 개인이나 특별한 주제를 다루는 더 제한된 범위의 역사적 기록을 언급한다. 그런 것들 중에는 “다윗 왕의 역대지략”(대상 27:24), “선견자 사무엘의 책”, “선지자 나단의 책”, “선지자 갓의 책”(대상 29:29), “실로 사람 아히야의 예언”, “잇도의 묵시 책 곧 잇도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 대하여 쓴 책”(대하 9:29), “선지자 스마야와 선지자 잇도의 족보책”(대하 12:15), “선지자 잇도의 주석 책”(대하 13:22), “하나님의 아들 예후의 글”(대하 20:34), “열왕기 주석”(대하 24:27), 선지자 이사야에 대한 “웃시야의 시종 행적”(대하 26:22), “이사야의 묵시 책”(대하 32:32), “호새의 사기”[선견자들의 말씀](대하 33:19)등이 있다.
전술한 참고문헌의 목록은 방대한 자료를 이용할 수 있었다는 증거다. 에스라와 느헤미야 때에 그러한 자료들을 이용할 수 있었다는 암시들이 있다. 만일 마카베오 하 2:13의 진술이 믿을만하다면 느헤미야는 “왕들과 선지자들과 다윗의 행적들과 거룩한 선물들에 관한 왕들의 서한”들을 수집해 놓은 도서관을 설치했을 것이다.
3. 역사적 배경
역대기의 책들은 기본적으로 창조로부터 페르시아 시대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의 줄거리의 기록으로 되어 있다. 주요 강조절은 다윗과 유대에서의 그의 후계자들의 역사다. 만일 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가 원래 에스라가 기록한 한 작품이라면, 그는 아닥사스다 Ⅰ세 통치때(465-423 B.C.) 유대로 돌아왔는데, 제작 연대에 관한한 역대기의 역사적 배경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역사적 배경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역대기는 이 책들이 완성된 기간을 포함하지는 않고 있다. 단지 경미한 족보들의 내용이 그 기간까지 연결될 뿐이다. 그 기간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에서 취급된다. 그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거론하려면 에스라,느헤미야의 서론을 참조하면 된다. 역대기에서 취급하는 역사적 기간의 주요한 부분에 대한 간명한 논의를 위해서 사무엘과 열왕기의 서론부를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4. 주제
역대기는 고대 역사의 족보를 아담부터 다윗까지 열거하면서 시작한다. 창조 역사, 낙원, 타락, 초기 부조들, 홍수, 후기 부조들, 애굽 체제, 출애굽, 사사 시대, 사울의 통치 따위는 지나쳐 버린다. 저자는 오경이나 여호수아, 사사기에서 이미 나타난 자료들에 더 첨가하거나 할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 초기 시대를 그저 족보로만 나열했기 때문이다. 간혹 전기적 혹은 역사적 언급을 간단히 삽입한 곳도 있기는 하다(대상 4:9, 10, 38-43; 5:9, 10, 16-26; 6:31, 32, 48, 49, 54-81; 7:21-24; 9:17-34). 먼저 저자는 아담부터 야곱까지의 족보를 열거한다. 그는 이 족보를 따라 가면서 12지파를 살펴보는데, 다윗 족속과 제사장 족속인 레위 족속에 강조점을 둔다. 그리고 범위는 온 이스라엘에서부터 좁아져서 남방 왕국인 유다와 베냐민과 그 수도 예루살렘으로 축소된다. 서론부의 내용은 열왕기상의 처음 9장에 나타난다.
둘째 부분으로 주요한 부분이 시작되는데 사울의 죽음에 대한 간결한 내용이 나와 있다(대상 10장). 그 뒤로 다윗과(대상 11-29장) 그의 후계자들 즉 유다 계통의 히스기야, 예루살렘의 멸망과 바벨론 유수까지의(대하 1-36장) 역사가 이어진다. 원작품의 제3부는 유수로부터의 귀환과 화목한 유대 사회의 종교적 중심으로서의 예루살렘 재건을 다루는 것 같다(에스라-느헤미야).
이스라엘 역사의 황금기인 다윗의 통치에 상당히 치중하고 있다. 그러나 다윗에 관한 많은 사항들이 누락되었는데, 헤브론 통치, 헷사람 우리야에 관한 그의 죄, 압살롬의 반역등이다.
솔로몬의 통치(대하 1-9장)는 분량은 조금 많은 듯하나, 그 이후에 있는 통치보다 더 간단하게 처리되었다. 성전과 그 봉사에 대해 상당한 강조를 기울였다. 성전 건축과 관련된 사건들이 솔로몬 통치 기술 중 단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대하 2-7장).
열왕기에 기록된 많은 사건들은 역대기에 나타나지 않는데, 아도니야의 왕위 찬탈 기도, 솔로몬의 기름부음(왕상 1, 2장), 바로의 딸과의 결혼과 신당에서 경배함(왕상 3:1, 2), 어린아이를 놓고 벌인 심판 결정(왕상 3:16-28), 솔로몬의 심복들, 지혜, 잠언들(왕상 4장), 그의 궁궐(왕상 7:1-12), 이방신 섬김과 그의 역경들(왕상 11장)등이다. 성전 건축에 관한 어떤 항목들은 누락되었고 다른 것들은 더욱 간결하게 제시되었고, 어떤 것은 열왕기의 글과 같이 되었고, 또 다른 것들은 완전히 새로운 글로 되었다.
그 나머지 뒷부분은 주로 유다의 기록이며, 이스라엘의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과 관련된 항목들은 사건과 연관해서만 나타난다. 이스라엘 왕들의 연대기적 자료는 없고, 유다 왕의 치세와 때를 같이 하는 이스라엘의 통치자를 시대적으로 일치시키지 않았다. 한가지 예외는 있다(대하 13:1). 이스라엘의 역사가 거의 통째로 무시되는 한편 유다의 역사는 주로 종교적 관점에서 제시된다. 정치적, 군사적, 개인적 사실과 사건들이 영적인 사실과 사건들에 종속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역사의 목적은 선민의 경험 중에 하나님의 목적을 발표하며, 어떻게 국가가 쇠망하며, 성결한 의식의 거룩한 성전일지라도 죄의 결과로 종내는 파괴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유다의 선한 왕들의 통치는 적어도 통치기간의 한 부분이라도 선하다면-여호사밧, 요아스, 히스기야, 요시야- 현저하게 다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건들, 그 통치자들이 종교 개혁과 성전과 그 봉사의 회복에 관심을 가졌던 사건들을 특별히 강조했다.
이로써 역대기는 단지 열왕기의 역사적 보충서가 아니다라는 점이 명백해졌다. 특징있고 독립적인 책으로 목적을 갖고 있으며, 그 특출한 관점으로부터 기록된 것이다. 바벨론 유수로부터 돌아와 성전 봉사를 회복시킨 후에, 예루살렘이 회복된 후에 경건한 유대인들은 의심할 바 없이 미래를 내다보면서 이 봉사가 결코 다시는 중단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들은 확신했다. 하나님의 축복 아래서 이스라엘은 번영할 것이며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할 나위없이 그때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난 역사의 끝까지 상기시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하사받은 영광스러운 특권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바로 적절한 시기였다.
그래서 역대기의 저자는 성전과 성전 봉사와 종교적 축제들에 대한 새로운 자료들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그는 의식보다는 생활에, 성전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에 더 관심을 표명했다. 이스라엘은 순종과 범죄의 결과인 보상과 형벌에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이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에 맞추어 생활하도록 되어 있었다. 의와 경건과 번영의 밀접한 관계와 패역과 역경의 관계에 대한 자세한 설명등이 새로이 강조되었다.
왕들의 통치는 독자들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처리되었다. 그것은 영적 표준에 순종하는 길이 평화와 번영의 길이요, 악한 길은 패망과 황폐의 길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두드러진 재난과 성공은 직설적으로 의인을 상주시고 악인을 벌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적 행위의 탓으로 돌렸다. 그래서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다(대상 10:13).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대상 11:9). “하나님이 이 일을 괘씸히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대상 21:7). “자손이 이기었으니 이는 저희가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대하 13:18; 16:7; 17:3, 5; 22:7; 25:20; 28:6; 32:25; 33:10, 11; 36:15-17).
이스라엘은 역대기에서 죄악과 사망의 길을 걷는 배교한 국가로 취급된다. 유다는 의의 통치 아래서 번영하고 주를 버린 왕들의 통치하에서는 죄의 형벌을 당하는 국가로 나타나 있다.
같은 사건들이 열왕기와 역대기에서 취급되는 방법들의 특징적인 차이가 조금 있다. 열왕기에서는 르호보암의 기사 중에 훌륭한 기록이 없지만, 역대기에서는 그를 인정해 주는 기록이 있어 여로보암의 악행과는 완연한 대조를 이루도록 한 점이 있다(대하 11:13-17). 후에 여로보암이 “여호와의 율법을 버렸을” 때 “저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시삭이 예루살렘을 침공했다는 설명을 한다(대하 12:1, 2).
왕들에 대한 기록 중에서 아비얌에 관한 한 “그 부친의 이미 행한 모든 죄악을 행하고 그 마음이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다”는 것 외에는 실제적인 기록이 없다(왕상 15:3). 그러나 역대기는 칭찬할만한 행위를 몇가지 언급한다. 그는 여로보암이 주께 반역한 것과 이스라엘에 거짓 제사장들을 세운 것에 대해 책망한 것으로 나타난다. 기사에 의하면 그는 주께 의지함으로 북방 왕국을 누르고 큰 승리를 거두었다고 명시되어 있다(대하 13:4-18).
아사에 관하여는 역대기에 열왕기가 잠잠히 있는 것으로서 구스의 세라에게 큰 승리를 거둔 것을 기록하고 있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심을 보고 유다로 돌아온 것을 보도하며 하나님과의 언약이 갱신된 큰 종교적 집회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대하 14:9-15, 15:1-15).
열왕기는 여호사밧이 선한 왕이라고 말하나 간결한 통치를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왕상 22:42-50). 역대기는 어떤 사건에 대해 길게 언급하고 있는데, 그때 여호사밧은 국가적 위기에 봉착하여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놀라운 승리를 받았으며, 적군들은 서로를 살상하게끔 되었다 (대하 20:1-30).
여호람의 악한 통치는 열왕기에서 간단하게 취급되었으나(왕하 8:16-24), 역대기에는 그의 악한 길로 인해 하나님의 극심한 심판이 이르렀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대하 21:8-19). 열왕기는 아하시야가 예후의 손에 죽었다고 짧게 말하나(왕하 9:27, 28), 역대기는 더 광범위한 설명을 곁들이면서 그가 따랐던 악한 권면은 “그의 멸망으로” 인도했고 그의 멸망은 “하나님으로부터”였다고 말한다(대하 22:4-9).
열왕기는 요아스가 자기 심복들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말한다(왕상 12:20, 21). 역대기는 다음의 중요한 세목을 추가한다.
(1) 여호야다가 죽은 후 백성들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긴고로 이 죄로 인하여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2) 왕의 명령에 따라, 여호야다의 아들이 백성들의 범죄 때문에 번영하지 못한다는 것과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들을 버렸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려고 하자, 그를 살해했다.
(3) 그 결과로 유다의 많은 무리가 적은 아람 군대에 잡히게 되었다. “이는 유다 사람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4) 이 전투에서 입은 상처를 회복하느라 병상에 있을 때, 요아스는 그의 심복들에게 모살당했다(대하 4:17-25).
열왕기는 아마샤가 에돔을 이긴 것과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의 손에 번번히 패하는 것을 기록한다(왕하 14:7-14). 그러나 역대기는 아마샤가 개선하여 돌아온 후에 나타난 사항을 첨가하는데, “세일 자손의 우상들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마샤에게 진노하사” 그가 취한 길 까닭에 그를 멸하시기로 작정하셨다(대하 25:14-16).
열왕기에 나타난 아사랴(웃시야)의 통치에 관한 간단한 서술과 관련해서(왕하 15:1-7), 그의 문둥병이 언급되었지만 그 원인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역대기에는 아사랴의 통치에 대해 더 긴 서술이 있으며(대하 26:1-23), 문둥병의 이유가 명백하게 진술되었는데 즉 그가 강성할 때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이 일에 대하여 그는 제사장들의 질책을 받고 곧 문둥이가 되었는데 이는 “여호와께서 치”셨기 때문이다.
선한 왕 요담의 통치에 대해 열왕기는 간단하게 말한다(왕하 15:32-38). 그러나 역대기는 그가 어떻게 암몬 사람들을 물리쳤는지 더 상세하게 나온다. 그들은 후에 조공국이 되었다. 또 어떻게 그가 “강하여졌”는지를 “요담이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정도를 행하였음”이라고 말한다(대하 27:5, 6).
열왕기에 따르면, 아하스는 이스라엘과 아람 왕들에 의해 뚜렷하게 심한 결과는 없는 채 공격을 당했다. 왜냐하면 그가 디글랏빌레셀의 도움을 구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는 다멕섹을 점령하고 그 왕을 죽였다(왕하 16:1-9). 그러나 역대기에 의하면 아하스의 우상 숭배 때문에 여호와께서 “그를 아람 왕의 손에 붙이”셨다. 아람 왕은 그를 쳐부수고 수많은 포로를 잡아갔고, 또 그를 “이스라엘 왕의 손에 붙이시매 저가 쳐서 크게 살륙하였”고, “그 아내와 자녀를 합하여 20만명을 사로잡고” 많은 재물을 노략하여 갔다. 그리고 디글랏빌레셀이 원조 요청을 듣고 왔는데, “돕지 아니하고 도리어 군박하였”다. “이는 유다 왕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대하 28:3-20).
열왕기는 선한 왕 히스기야에 대해 자세한 기록을 남긴다(왕하 18-20장). 그러나 역대기는 히스기야의 선행을 크게 칭찬하여 성전 정결과 그 봉사의 회복, 예루살렘에 모든 백성을-심지어 북방왕국의 아셀, 므낫세, 스불론까지-모아 유월절을 지킨 것등을 기록하였다. 역대기는 유월절 봉사를 이어 우상과 목상과 산당을 제하였는데 유다와 베냐민에서 뿐만 아니라 에브라임, 므낫세까지 포함시켰으며 여러 종류의 제사와 봉헌과 제사장 봉사를 회복시켰다(대하 29-31장).
열왕기는 므낫세의 죄악을 자세히 기록하지만(왕하 21:1-18), 역대기는 그의 죄악과 더불어 앗수르 왕에게 잡혀서 착고에 묶여 바벨론까지 갔으며, 거기서 환난 중에 “그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 열조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하여”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시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하셨으며, 돌아가서 이방신들을 내어 버렸으며, “여호와의 단을 중수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그 단 위에 드리고 유다를 명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하였다(대하 33:11-16).
암몬에 관하여 열왕기는 그가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함이 그의 아비 므낫세가 한 것과 같았다”고 기록한다(왕하 21:20). 역대기는 “그 부친 므낫세의 스스로 겸비함 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비치 아니하고”를 첨가하고 있다(대하 33:23). 열왕기는 요시아가 여호와의 경배를 회복한 것과 일반적 개혁을 위해 취한 조처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그가 애굽 왕 느고의 손에 어떻게 죽었는지를 진술하면서 그의 통치에 대한 기술을 마친다(왕하 22장; 23:1-30). 역대기는 그의 회복과 개혁에 대해 좀더 장황하게 설명하고, 느고와의 접전에 있어서, 느고가 요시아를 설득해서 그를 대항하지 않도록 노력하였으며 요시아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그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대하 34, 35장).
열왕기는 유다의 마지막 네 악한 왕의 통치와 예루살렘의 함락을 어느 정도 다루고 있다(왕하 23:30-37; 24:1-20; 25:1-30). 그런데 그저 그 결과를 “여호와께서 진노하심”으로 예루살렘과 유다가 그의 앞에서 쫓겨남을 당했다고 하는 간결한 진술만 제공한다(왕하 24:20). 그러나 역대기는 이 악한 네 왕에 대해서 매우 짧게 언급하고(대하 36:1-13), 유다의 멸망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들을 열거한다. 이는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크게 범죄하여 이방 모든 가증한 일을 본받아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거룩하게 두신 그 전을 더럽게 하였으며”, 하나님이 보낸 사자들을 조롱하였으며, 그의 선지자들을 핍박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기 때문이다(대하 36:14-16).
역대기의 저자는 책 전체를 통틀어 선지자들과 그들의 사업을 찬양하고 있다. 구약의 다른 부분에 나타나지 않는 유수한 몇몇 선지자들에 관한 부가적인 정보들이 역대기에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역시 성경 다른 부분에 나타나지 않는 선지자들에 관한 정보도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자들은 위기의 때에 경고와 권고를 주는 사람들로 그려져 있다. 그래서 스마야는 르호보암에게 시삭의 침입은 백성들이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이라고 알려준다(대하 12:5). 아사랴는 아사를 격려한다(대하 15:1-8). 하나니는 아람에게 도움을 청한 아사를 나무란다(대하 16:7-10). 예후는 여호사밧이 아합과 조약할 때 책망한다(대하 19:2). 야하시엘은 여호사밧이 모압과 암몬과 세일산 족속들과 접전할 때 격려한다(대하 20:14-17). 엘리에셀은 여호사밧이 아하시야와 손잡는 것을 책망한다(대하 20:37). 스가랴는 요아스 시대에 백성들에게 죄때문에 번영이 없다고 알려 준다(대하 24:20). 오뎃은 베가와 아하스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한다(대하 28:9-11).
이런 관찰을 통해 역대기의 기록은 단지 역사라기 보다는 설교라고 할 수 있다는 점과 역대기의 저자는 사건을 나열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설교자라는 점을 알아볼 수 있다. 그의 어떤 사건에 대한 기록이 열왕기의 것과 다를 때, 그것은 두 설명이 기본적으로 불일치한다는 증거가 아니라, 강조점이 다른 것임을 알게 된다. 역대기의 저자는 도덕 교육자적 기질을 보인다. 그는 그것이 교훈을 가르치고, 경고를 주기 때문에 그가 말해야 할 바를 말한다. 그는 유다가 멸망하여 포로로 잡혀간 후에, 예루살렘이 중건되고 성전 봉사가 회복된 후에 그의 작품을 완성했다.
죄가 다시 들어와 국가를 망치지 않기를 그가 간절히 바랬던 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죄는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었다. 죄는 한번 더 나타났고(스 9:1-15; 10:1-19; 느 5:1-13; 13, 3-11, 15-30), 하나님의 진노가 다시한번 그의 백성들에게 내릴 위험이 있었다. 이것을 그는 모든 힘을 다해 방지하려고 하였다. 위대한 책 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는 제2의 배도와 유다의 황폐를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기록되었다고 하는 것은 온당한 가정이다.
성경 주석가들은 대대로 역대기에 나타나는 엄청나게 큰 숫자들 때문에 어려움을 당해왔다. 예를 들자면, 역대상 22:14에 의하면 다윗은 10만 달란트의 금과 백만 달란트의 은을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 짓는 데 쓰도록 봉헌하였다. 여기에다가 다윗과 이스라엘의 귀족들이 같은 목적으로 기부한 다른 엄청난 것들을 더해야 할 것이다(대상 29:3-7). 현대의 가치로 계산하면 10만 달란트의 금만 해도 30억 달러는 될 것이며, 이 숫자는 정확하게 추측할 수는 없지만, 사실상 고대에 전세계를 통틀어 알려진 모든 나라의 양을 합한다고 해도 겨우 30억 달러가 될지 의심스러운 정도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대 학자들은 역대기의 저자가 과장했으며, 그러기에 그 정보는 부정확하다고 선언하였다. 최근 발견들이 저자의 역사적 신빙성을 드러내었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은 고수될 수 없다. 이에 따라 역대기에 나타나는 엄청난 숫자에 의해 제기되는 난관들을 해결하기 위해 색다른 설명을 찾아내어야만 한다.
역대기는 느헤미야 시대까지 이어지는 족보의 명단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B.C. 5세기 후반에 구성되거나 혹은 적어도 완성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히브리 성경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보아 맨 나중에 기록된 책들 중에 속한다. 이 책을 마련하는데 선지자들이나 영감받은 저자들에 의해 기록된 공식적인 문서들이 이용되었다. 그 문서들은 “선지자 나단의 책”, “선견자 갓의 책”, 또는 “다윗 왕의 역대지략”등이다(왕상 29:29; 27:24). 이것들은 포로 이전의 문자로 기록된 반면 역대기는 포로기 이후에 사용하게 된 아람식의 사각형 문자로 되어 있다. 이 문자는 유대 전통에 따르면 에스라에 의해 도입되었으며 조금 수정되어 사용되고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모든 알려진 히브리어 성경의 사본들은 공히 수를 문자로 기록하였다. 그러나 고대 히브리 문헌과 페니키아, 아람, 나바테아(Nabataean), 팔미레니아(Palmyrenian), 애굽, 바벨론 문헌에는 숫자들이 사용되었다. 히브리 성경 저자들 사이에서 숫자가 사용된 데 대하여 지식이 불충분한 것은 고대 히브리 자료들이 소량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크 리즈바르스키(Mark Lidzbarski)가 1898년 북부 셈의 비명(碑銘) 연구에 대해 출판했을 때 그는 히브리인들이 숫자를 사용하지 않았고 문자로 썼다고 명백히 진술하였다. 그의 주장은 숫자들이 문자로 쓰인 실로암 비문과 모압석에 근거를 두었다. 그 당시까지는 이 둘만이 숫자를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비록 그중 하나인 모압석의 문자 어휘는 히브리 문자, 어휘와 매우 비슷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중 하나인 모압석은 진짜 히브리 비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 50년간 여러 개의 포로 이전 히브리 비문들-사마리아, 라기스, 텔 카실레(Tel Qasile)로 부터의 패각문(ostraca)-이 나타났는데 숫자를 포함하고 있었으며 어떤 것은 모두 문자로 썼고 어떤 것은 숫자로 썼다. 지난 50년간에 발견된 엘레판틴의 아람어 파피루스는 숫자를 널리 통용한 것을 보여주며 문자로 써 놓은 수도 포함하고 있다.
현존하는 자료의 수들이 어떻게 잘못 읽혔졌는가 하는 것의 분명한 보기를 제시하는 데는 불충분하지만, 접할 수 있는 자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문서들(어떤 것은 숫자가 사용되었고, 어떤 것은 모두 문자로 씌였다)이 쉽게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역대기의 저자가 참고한 어떤 문서들에 수가 숫자로 기록된 것이 있고, 어떤 다른 것들에는 전혀 문자로만 기록된 것이 있다면, 그것들 중에 얼마가 오해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찾아낼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문헌이 “100천”인데, 사실상 그 저자가 “백 그리고 천”을 의미했는데도 10만이라고 잘못 읽을 수도 있다.
역대기의 저자가 큰 수들을 사용할 때 문자적으로 정확한 수를 의도했는가 하는 문제도 제기된다. 동양에 살았던 사람들은 “천천”을 막연히 큰 수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런 뜻으로 수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용례를 모르는 사람들이 문자적으로 그 수를 풀이하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역대기 저자가 사용한 “놋과 철을 중수를 셀 수 없을 만큼”(대상 22:14)과 “불가승수”(대하 12:3)라는 표현들은 원래 의도된 대로 풀어야지, 문자적으로 풀어서는 안된다. 만약 역대기 저자의 일반적 의도가 현대 역사가들의 그것과 다르다면 엄격한 문자 의식에 준거해서 역대기의 수들을 생각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세심한 독자들은 족보나 통계 사항에서 저자가 나타낸 편파성에 대해 알아차릴 것이다. 명단들이 반복해서 주어졌다-성전이나 궁정 관리들, 행정관들, 군대, 요직들 등등-그런 것들은 다음과 같다.
역대상 11:26-47, 다윗 군대의 용사들.
12:1-14, 다윗이 시글락에 있을 때 온 자들.
14:4-7, 다윗의 아들들.
15:5-24, 법궤를 관리하는 레위인 관리들.
18:15-17, 다윗의 주요 정치인들.
23:6-24, 다윗의 레위인 관리들.
24:1-31, 아론의 아들들의 24반차.
25:1-31, 노래하는 이들의 24반차.
26:1-32, 성전 담군들과 감독들.
27:1-34, 다윗의 대장들과 시종들.
역대하 11:5-10, 르호보암의 방비성.
17:7-18, 여호사밧의 레위인들과 대장들.
23:1, 여호야다의 대장들.
28:12, 에브라임의 두령들.
29:12-14, 주요한 레위인들.
31:12-15, 헌물의 감독자들.
34:12, 성전 수축 일군들의 감독자들.
35:9, 레위의 족속의 두목들.
비슷한 통계가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나온다.
에스라 1:9-11,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온 기명의 목록.
2:2-65,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온 사람들의 수들.
2:66, 67, 말들과 노새와 약대들의 수들.
4:9, 10, 아슈르바니팔에 의해 사마리아로 간 사람들.
7:1-6, 에스라의 족보.
8:1-14,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
8:16-19,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레위의 아들들.
8:20,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느디님
8:26, 27, 33, 34, 바쳐진 금과 은.
10:18-44,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은 사람들의 명단.
느헤미야 3:1-32, 벽을 쌓은 사람들의 명단.
7:6-73, 스룹바벨과 함께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
8:4, 에스라와 함께 선 사람들의 명단.
8:7, 율법을 낭독한 사람들의 명단
10:1-27, 언약에 서명한 사람들의 명단.
11:3-24, 예루살렘에 살던 사람들의 명단.
12:1-42,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명단.
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에 나오는 많은 족보적, 통계적 목록들은 이 세 책이 한 저자의 손에서 나왔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 저자는 역시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였다(스 7:6, 10-12; 느 8:1, 4, 9, 13; 12:26, 36).
5. 개요
Ⅰ. 족보표들 1:1-9:44
1. 아담부터 이스라엘과 에돔까지 1:1-2:2
(1) 아담부터 노아까지의 부조들 1:1-4
(2) 노아의 후손들 1:5-54
① 야벳의 후손들 1:5-7
② 함의 후손들 1:8-16
③ 셈의 후손들 1:17-54
1) 셈부터 아브라함까지 1:17-27
2) 아브라함의 후손들 1:28-2:2
2. 이스라엘의 자손들 2:3-7:40
(1) 유다의 후예들 2:3-4:23
① 유다부터 이새까지 2:3-12
② 이새의 아들들과 손자들 2:13-17
③ 갈렙의 아들들 2:18-20
④ 헤스론의 자손들 2:21-41
⑤ 갈렙의 후손들 2:42-55
⑥ 다윗의 후예들 3:1-24
1) 다윗의 아들들 3:1-9
2) 솔로몬부터 히스기야까지의 왕통 3:10-16
3) 여고니야의 아들들 3:17-24
⑦ 유다의 족속들 4:1-23
1) 유다의 자손들 4:1
2) 훌의 자손들 4:2-4
3) 아스훌의 자손들 4:5-7
4) 고스의 아들들 4:8
5) 야베스와 그의 기도 4:9, 10
6) 글룹의 아들들 4:11, 12
7) 그나스의 아들들 4:13, 14
8) 갈렙과 다른 이들의 아들들 4:15-20
9) 셀라의 아들들 4:21-23
(2) 시므온의 후예들 4:24-43
① 시므온의 아들들 4:24-27
② 시므온 자손들의 거주지 4:28-33
③ 시므온 자손들의 이주 4:34-43
1) 시므온 자손의 족장들 4:34-38
2) 그돌에서의 정복 4:39-43
(3) 르우벤의 후예들 5:1-10
(4) 갓의 후예들 5:11-17
(5) 르우벤, 갓, 므낫세 족속들의 정복 5:18-22
(6) 므낫세 반지파의 분깃 5:23-26
(7) 레위의 후예들 6:1-81
① 레위부터 바벨론 포로까지의 아론자손 6:1-15
② 레위의 세 가계 6:16-48
③ 아론의 제사장 후손 6:49-53
④ 레위인들의 성읍들 6:54-81
(8) 잇사갈의 족속들 7:1-5
(9) 베냐민의 족속들 7:6-12
(10) 납달리의 아들들 7:13
(11) 므낫세의 후손들 7:14-19
(12) 에브라임의 후예들 7:20-29
(13) 아셀의 후예들 7:30-40
3. 베냐민의 족보들 8:1-40
(1) 예루살렘에 살던 수령들의 세계 8:1-28
(2) 기브온의 가족들과 사울의 왕가 8:29-40
4. 예루살렘 거민들의 족보 9:1-34
5. 기브온의 거주자들 사울의 조상들과 후손들 9:35-44
Ⅱ. 예루살렘 왕들의 역사 10:1-29:30
1. 사울의 죽음 10:1-14
(1) 사울이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당함 10:1-7
(2) 블레셋이 사울을 이김 10:8-10
(3) 야베스 길르앗에 사울이 묻힘 10:11, 12
(4) 사울은 죄로 인해 죽음 10:13, 14
2. 다윗 11:1-29:30
(1) 헤브론에서 기름부음 11:1-3
(2) 예루살렘 탈환 11:4-9
(3) 다윗의 용사들의 용감성 11:10-12:40
(4) 기럇여아림에서부터 법궤를 가져옴 13:1-14
(5) 다윗의 집과 가속 14:1-7
(6) 다윗이 블레셋을 이김 14:8-17
(7) 예루살렘으로 법궤를 가져옴 15:1-16:43
(8) 성전을 짓고자 한 다윗의 의도 17:1-27
(9) 다윗의 전쟁들 18:1-20:8
(10) 다윗의 인구 조사 21:1-30
(11) 다윗이 솔로몬의 통치를 위해 준비함 22:1-29:25
① 재료 준비 22:1-5
② 솔로몬에게 준 지시 22:6-19
③ 솔로몬의 즉위 23:1
④ 레위인의 반차 23:2-32
⑤ 제사장의 반차 24:1-19
⑥ 다른 레위인들의 반차 24:20-31
⑦ 노래하는 이들의 반차 25:1-31
⑧ 담군과 그외 관리들의 반차 26:1-32
⑨ 족장들과 부장들 27:1-34
⑩ 성전에 대한 마지막 지도 28:1-21
⑪ 성전을 위해 바쳐진 헌물 29:1-21
⑫ 솔로몬이 제대로 왕이 됨 29:22-25
(12) 다윗의 죽음 29:26-30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5권, 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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