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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7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사무엘상

사무엘상 27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6. 5. 13. 06:48

<사무엘상 27장 흐름정리>

아무리 신앙이 좋은 인물도 때로는 눈앞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본장에서 다윗이 보여준 행동이 바로 그러했다. 유다 광야의 괴로운 도피 생활이 계속됨에 따라 다윗은 몸도 마음도 지쳤으며, 자신을 따르는 자들의 안위도 걱정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블레셋으로 도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결정은 여호와의 구원의 권능을 끝까지 신뢰하지 못한 데서 나온 불신의 행위였다. 결국 블레셋으로 피한 다윗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방 세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사무엘상 27장 줄거리>

1. 다윗이 가드에 있다는 것을 듣고는 사울이 더 이상 그를 수색하지 않음.

5. 다윗이 아기스에게 시글락을 달라고 함.

8. 다윗이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고 돌아와서 아기스에게 유다와 싸우고 왔다고 믿게 함.


<사무엘상 27장 개역한글>

1.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경내에서 나를 수색하다가 절망하리니 내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2. 일어나 함께 있는 육백인으로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각기 가족을 거느리고 가드에서 아기스와 동거하였는데 다윗이 그 두 아내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 되었던 갈멜 여자 아비가일과 함께 하였더니  

4. 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혹이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니라  

5.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께 은혜를 받았거든 지방 성읍 중 한 곳을 주어 나로 거하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거하리이까  

6.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7.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거한 날 수는 일년 넉달이었더라  

8.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로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거민이라  

9.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약대와 의복을 취하고 돌아와서 아기스에게 이르매  

10. 아기스가 가로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로하였느냐 다윗이 가로되 유다 남방과 여라무엘 사람의 남방과 겐 사람의 남방이니이다  

11. 다윗이 그 남녀를 살려 가드로 데려가지 아니한 것은 그의 생각에 그들이 우리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다윗의 행사가 이러하여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거하는 동안에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12. 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하였으니 그는 영영히 내 사역자가 되리라 하니라


<사무엘상 27장 성경주석>

27:1 내가 후일에는…망하리니.

 다윗은 사울의 묵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조용히 그분의 뜻을 이루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최근의 사건들을, 그를 파멸시키고 죽이려는 사울의 계획의 점차적인 성공과 화해의 가망이 없는 절망적인 상태의 증거로 해석했다. 과거에 다윗은 우림과 둠밈으로 갓과 아비아달에게 지도받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실의에 빠져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고 돌아서서 독단으로 계획을 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은혜롭게도 다윗의 실수들을 궁극적 성공의 디딤돌로 바꾸어 주셨다!

27:1 상책이로다.

 다윗이 동포들을 위해 행한 여러 가지 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가 왕의 미움을 받자 별로 동정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일라 사람들이 그를 사울(참조 23:1~13)에게 넘겨 주려 하였다. 십 사람들은 사울에게 다윗의 은신처(23:19; 26:1)를 두 번이나 알려주었고, 나발은 도엑이 그랬던 것처럼 비우호적이었다(25:10, 11). 다윗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광기어린 폭군에게 두 번이나 자비의 손길을 내밀었다(24:6~11; 26:8~12). 그에게 마땅히 온갖 정중함을 보였어야 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고 배은망덕했으며, 그들 가운데서 사는 삶은 끝없는 악몽이었다. 동굴과 숲에서, 사막과 험한 바위 산에서 빈약한 식량을 먹으면서 살아가는 그는 버림받은 자로 취급되었다. 

  이런 사건들(22:5)이 발생하기 얼마 전, 하나님은 다윗에게 모압에서 유다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그곳에서 다윗은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할 일이 많았고, 다윗은 기쁘게 응했다. 그는 유다로 돌아가라는 부르심이 주변 국가들의 침략으로부터 그의 백성들을 보호할 필요 때문이라고 결론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 왕으로 선택된 사람의 견인불발과 겸비와 용기 즉 하나님께서 좋다고 보시는 때에 그분의 뜻을 이루어내시도록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믿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 하나님이 목적하신 바였을 것이다. 몇 번이고, 여호와께서는 다윗을 위해 역사하셨으며, 평민들이 그를 불사의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구출될 때마다 또 다른 혹심한 시험이 닥쳐왔고, 마침내 다윗은 끝없이 닥쳐오는 것처럼 보이는 위험과 불확실성으로 인해 비관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를 따르고 있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부양하고 그들을 결속시키려면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의 정력도 소진되고야 말 것이다. 아비가일과 요나단이 다윗을 격려했지만, 대다수는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의 믿음은 약해져 갔다.

  낙심한 다윗은 마침내 여호와의 원수들 가운데서 피난처를 찾았다. 이런 길을 따라야만 안전할 것처럼 보였다.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게도, 다윗은 이제 기만과 음모의 가시밭길에 발을 들여놓았다. 자신 나름대로 “안전”이라는 개념을 따르기 위해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저버린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종들이 사람들과 천사들의 앞에서 전시하기를 바라고 계시는 믿음을 더럽혔다. 이전에 모압을 떠날 때처럼(참조 22:5), 그가 유다를 떠나기 전에도 열렬하게 여호와의 지도를 구하고 따랐더라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얼마나 달라졌겠는가.

27:2 마옥의 아들 아기스.

 “아기스”라는 이름은 유래가 불확실하다. 어떤 학자들은 이 아기스가 왕상 2:39에 언급된 마아가의 아들과 동일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아가는 여성형(참조 왕상 15:2; 대상 2:48; 3:2; 7:15)인 반면 마옥은 그 단어의 남성형이다. 만약 이 두 성경절이 동일인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라면, 왕상 2:39의 아기스는 매우 연로했을 것이다. 이는 거기 기록된 사건은 다윗이 아기스에게 처음 도망간(21:10) 후 거의 50년이 지나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마옥의 아들 아기스가 마아가라는 이름을 지닌 여자와 결혼했다면, 그 아들을 “마아가의 아들”로 칭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마옥의 손자가 된다. 그러나 다윗이 그 앞에서 미친 체하기 전의 아기스(21:12, 13)는 필시 지금 다윗이 도망하여 간 그 왕과 동일인일 것이다. 이 두 사건 사이의 간격은 그리 길지 않다. 첫 번째 경우, 다윗은 혼자였다. 그러나 이제는 수백 명의 추종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동반하고 있다. 적어도 한동안 피난민들은 가드에 머물러 있었다. 타르굼에 따르면, 시 8; 81; 84편의 표제에 나타난 “깃딧”은 다윗이 가드에 우거하던 기간에 발명한 악기 혹은 그가 처음 작곡한 음악 형태를 가리킨다. 깃딧은 가드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들에게 잡힌 때”라는 표제가 붙은 시 56편을 다윗이 작사한 것도 가드를 방문한 때였다. 참조 21:13 주석.

27:4 다시는…수색하지 아니하니라.

 사울은 다윗을 붙잡기 위해 적의 영토를 침략하는 것을 당연히 삼갈 것이다. 이런 작전은 전쟁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는 이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본문의 어구(語句)는, 만일 다윗이 유대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사울이 최근의 약속을 잊고 다시 한 번 수색했을 것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를 별로 남기지 않는다. 아마도 사울은 이전 경우에 그렇게 바랐듯이(18:17, 25), 이번에는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수중에 떨어지기를 원했을 것이다.

27:6 시글락.

 이 지명의 유래는 불확실하다. 시글락은 유다 지파가 기업으로 받은 성읍들 중 하나로, 수 15:31에 처음 언급된다. 그러나 시므온이 유다 접경 지역 내의 몇몇 성읍들을 받았을 때, 시글락은 그 지파에게 넘어갔다(참조 수 19:1~5). 시글락은 평원 지대의 동쪽에 위치했으며, 사사시대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시므온에게서 탈취했다. 시글락은 오늘날 텔 엘-쿠웨이페(Tell el-Khuweilfeh)로 알려진 지역으로, 아둘람 남서쪽 32.4킬로미터, 브엘세바에서 북동쪽으로 15.2킬로미터 떨어진 곳일 가능성이 높다. 베냐민, 갓, 므낫세, 유다 그리고 기타 지파들에서 온 많은 용사들이 다윗에게 합류한 것은 시글락에서였다(대상 12장).

27:7 일 년.

 히브리어 야밈(yamim). 문자적으로 “날들.” 레 25:29에서 “만 일 년”[문자적으로 “날들”]에 해당하는 야밈은 분명히 “만 일 년(샤나[s∨anah], 일반적으로 ‘해’를 가리키는 말)”을 가리킨다. 1:3에는 엘가나가 실로에 “매년”, 문자적으로 “나날이”(from days to days) 올라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일한 관용구가 2:19에는 “매년”으로 번역되었다.

27:8 올라가서…침노하였으니.

 비록 사울에게 야수처럼 쫓기고 동족에게 멸시당했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다윗의 관심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시글락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간 이래 계속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괴롭혀온 사막의 약탈자들의 영토와 경계선을 맞대고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아말렉처럼 약탈을 일삼는 부족들을 완전히 진멸하라고 명했다(출 17:16; 민 24:20; 신 9:1~4; 25:17~19; 참조 창 15:16). 보좌에 오르도록 기름부음을 받은 후계자로서 다윗은 사울이 이루지 못한 과업을 수행할 책임을 느꼈다. 이렇게 하여 다윗이 자기 나라 백성의 충성을 얻어내려고 의도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27:8 그술 사람.

 시혼과 옥의 영토를 침공했을 때(수 12장), 이스라엘은 헤르몬산 근처 그술 접경 지대에 이르렀다(수 12:5; 13:11). 이 그술인들이 남방(참조 창 12:9; 삿 1:9 주석)과 바란 광야에서 북쪽으로 이주해 왔으며, 따라서 그들의 한 동족(同族)이 블레셋 근처에 거주했을 가능성이 있다.

27:8 기르스 사람.

 그들이 살았던 지역은 사막에서 그들이 아말렉 족속과 나누었던 친밀한 관계를 통해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거민이라.”

27:8 아말렉 사람.

 참조 15:2 주석.

27:9 다윗이 그 땅을 쳐서.

 사막의 부족들은 수 세기에 걸쳐 이스라엘의 원수였으며, 사막에 인접한 이스라엘 마을들을 간헐적으로 습격했다. 이전에 사울이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을 때”(15:8)에도, 그들 중 다수가 사막으로 사라졌다가 짧은 기간 내에 다시 나타나서 계속 습격했을 가능성이 높다. 유랑하는 베두인 사람들은 신비한 방식으로 갑자기 사라졌다가 때가 되면 다시 나타났다. 다윗이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였다는 진술은, 물론 그가 공격했던 마을들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만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접경 지역 성읍들에 항구적 평화를 확보해주는 유일한 방법은 이 부족들을 사막으로 멀리 내쫓아서 그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그들을 멸절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들은 유격전으로 획득한 전리품에 의존해 살았다. 이때 다윗이 탈취한 가축과 기타 물품들은 대부분 이스라엘의 마을들에서 취했을 것이다.

27:10 유다 남방.

 문자적으로 “유다의 네겝”(참조 창 12:9 주석). 여기에 언급된 부족들이 차지하고 있던 지역은 네겝 지방 안에 있다. 그러므로 다윗이 “유다의 네겝”을 습격했을 때, 자기 백성들과는 싸우지 않고 유대 영토를 침범한 이방 백성들과 싸웠다. 동시에 그의 진술은 상당히 모호해서 아기스가 그 말을 다르게 해석하도록 만들었다.

27:10 여라무엘 사람.

 여라무엘은 유다의 손자(대상 2:9, 25)인 헤스론의 장남이다. 그는 아마도 야곱이 애굽으로 간 후에 태어났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애굽으로 이주한 70명의 야곱의 식솔들 가운데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애굽 때에 이 일족(一族)이 이스라엘과 동행했는지의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그들은 헤브론 남쪽 지역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들은 유목민으로 살았을 것이며,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일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27:10 겐 사람.

 참조 창 15:19 주석.

27:11 [기별].

 이 단어는 첨가된 말이기 때문에 생략해야 한다. 이 구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윗이 시글락으로 돌아갈 때 포로를 데려가지 않았는데, 이는 그 노예들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그 습격을 알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27:12 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다윗의 이중성은 또 다른 중대한 실수로서, 영적인 특권을 그토록 많이 누려온 사람에게 합당하지 않은 것이었다.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는, 간단없이 경계하고 하나님의 뜻에 끊임없이 굴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은 낙담에 빠져있던 다윗을 버리지 않으셨다. 다윗은 결심이 확고부동했고 하나님의 계획에 전폭적으로 협력하려는 진실한 갈망을 품고 있었다. 이런 태도는 자신의 죄악이 드러날 때에 시인하고 즉시 잘못을 바로잡게 만들었다.

  다윗은 유다를 떠남으로써 첫 번째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하나님의 허락 없이 동포들을 버린 죄에다 불성실이라는 두 번째 죄를 보탰다. 다윗이 유다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하나님은 이전처럼 그를 구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의 공격을 물리치기 위하여 길보아로 갔을 때(28:4), 여호와께서 다윗을 사용하여 그에게 국민 전체의 갈채를 받을 만한 승리를 얻게 해 주셨다. 사울이 다윗의 목숨을 노림으로써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던 반면에, 다윗은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명확한 조언을 받지 않은 채 고국을 떠남으로써 치명적이라 할 만한 큰 실수를 저질렀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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