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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편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시편

시편 7편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6. 5. 31. 06:48

<시편 7편 서론>

다윗의 식가욘,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대하여 여호와께 한 노래.

“이 땅의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이가 바르게 행치 아니하시겠는가?”가 시 7편에 붙일 수 있는 적절한 제목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시인은 하나님의 불변하는 율법이 의인들은 구원하고 악인들에게는 형벌을 내린다는 것을 온전히 확신하면서 원수들의 공격에서 자기를 보호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는 자신이 아무런 죄도 범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가 어떤 죄를 범하였다면 그것은 부지불식간에 범한 죄이다. 이에 반하여 그의 원수들은 그에 대하여 음모를 꾸미는 죄를 범하였다. 그는 자기 자신의 구원과 원수들의 멸망을 위하여 기도한 후에, 하나님의 도덕적 정부를 옹호하는 수단의 하나로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주어질 것임을 확신 있게 기대하면서 이 시를 끝맺는다. 유대인들은 부림절에 이 시를 노래하는데, 이는 이 시가 원수에게 행하여진 복수를 기리는 시이기 때문이다(참조 에 9:13~32). 내용과 어조로 보아 이 시는 시인의 감정을 몹시 상하게 하고 또한 그의 영혼의 평화를 깨뜨려 버린 어떤 말이나 행위에 대하여 노래한 것인 듯하다. 탈무드는 베냐민인 구시는 곧 사울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이름이 다윗과 사울 사이에 존재했던 적대감을 회상하게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름답고도 훌륭한 삼하 1:17~27의 시를 지었던 너그러운 마음의 소유자인 다윗이 사울을 언급하면서 시 7:14~16의 언어를 사용하였을 것 같지는 않다. 이 베냐민인은 사울과 같은 지파에 속한 사람으로 다윗을 대적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던 자들 중 하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 식가욘 : 히브리어 쉭가욘(siggayon). 시 7편의 표제로 나타난다(그 외에는 합 3:1에 복수형으로 나타난다). 이 말의 의미는 모호하다. 거칠고 열정적인 성격을 띤 불규칙한 송시(공덕을 기리는 시, 서정적 시가 문학의 한 형태)에 대하여 사용되었다고 사람들은 믿어왔다. 히브리어 어근은 샤가(sagah), "방랑하다", "떠돌다", "비틀거리다"일 것이며 자주 변하는 격렬한 리듬을 의미한다.


<시편 7편 개역한글>

1.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2. 건져낼 자 없으면 저희가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것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4.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 무고히 빼앗았거든  

5. 원수로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고 내 영광을 진토에 떨어뜨리게 하소서(셀라)  

6.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하셨나이다  

7. 민족들의 집회로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8.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내게 있는 성실함을 따라 나를 판단하소서  

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  

10.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2.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13. 죽일 기계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 만든 살은 화전이로다  

14. 악인이 죄악을 해산함이여 잔해를 잉태하여 궤휼을 낳았도다  

15. 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16. 그 잔해는 자기 머리로 돌아오고 그 포학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17. 내가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시편 7편 성경주석>

7:1 피하오니.

 (「제임스왕역」에는 “put my trust”[신뢰하오니]로 되어 있음-역자 주). 문자적으로는 “피난처를 찾다.” 이 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심을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참조 시 11:1; 16:1; 31:1; 71:1). 산에 있는 동굴보다 더 안전한 그 피난처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팔에 안겨 쉬면서 그를 쫓는 자들에게서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한다.

7:2 저희.

 베냐민인 구스를 일컫는 듯하다(참조 시 7편 서론).

7:2 사자같이.

 시인을 쫓는 자들의 맹목적이고도 비이성적인 흥분 상태가 사자의 본능적 사나움과 비교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과 농부들은 맹수들의 습격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참조 삼상 17:34~37).

7:3 내가 이것을 행하였거나.

 3~5절을 욥 31장의 확대된 맹세와 비교하라. 시인은 자신의 무죄함을 열렬히 옹호하고 있다. 그는 격한 감정 때문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다. 시인은 원수로부터 다른 사람의 소유 중 귀중한 가치가 있는 어떤 물건을 제멋대로 취해갔다는 비난을 받은 듯하다(참조 절 주석). 그것은 그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그의 품성을 비방하는 비난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참조 삼상 24:12; 26:18).

7:4 빼앗았거든.

 (「제임스왕역」에는 “have delivered”[구원하다]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할라츠(h.alas.). 이 단어가 여기서 쓰인 형태로는 “약탈하다”, “강탈하다”를 뜻할 수도 있다. 만일 이것이 시인이 의도하는 의미라면, 이는 곧 원수의 비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3절 주석 참조). 하지만 할라츠는 “구원하다”라는 의미로 더 널리 쓰인다(참조 삼하 22:20; 욥 36:15; 시 34:7 등). 따라서 (「제임스왕역」의 번역이 더 선호된다. 이 번역에 따르면 여기서 시인은 자기와 “화친한 자”를 이용하지 않고 오히려 그와 정반대로 행한 것이 된다. 그는 자기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그 사람을 구원하였다(참조 삼상 24:4~7).

7:5 원수로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시인은 여기서 자기 자신에게 저주를 내려 달라고 기원하는 것은 곧 그가 무죄함에도 아주 잔혹하게 부당한 취급을 당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어법이다. 고소당한 사람들은 정죄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것보다는 오히려 온전히 멸망당하는 것을 더 원할 것이다. “나의 영혼[나]을 좇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고”, “내 영광을 진토에 떨어뜨리게 하소서” 등과 같은 매우 극단적인 강조법이 쓰이고 있다.

7:5 셀라.

 여기서 이 단어가 사용된 것은 매우 적절한 쓰임으로 여겨진다. 앞의 자포자기적 맹세와 이어지는 기도 사이에는 어떤 유형으로든 간격을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7:6 일어나사.

 시인은 여호와께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을 벌할 준비가 된 심판자로 나타나 주시기를 요청하고 있다(참조 시 3:7). 그는 여호와께 공개적으로 심판자의 자리에 앉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7:6 대적들.

 원수의 개념이 단 한 사람에게서 그 사람에게 협력하는 모든 사람 혹은 다윗의 모든 대적에게로 확대된다.

7:6 심판.

 다윗은 하나님께 이 특정한 원수들에게 그분의 율법이 규정하고 있는 형벌을 집행해 달라고 요구한다. 말하자면, 다윗은 여기서 하나님께 그분 정부의 도덕적 원칙들을 옹호하시도록 솔직 담대하게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참조 창 18:25). 사람은 종종 전능자가 그의 계획을 속히 수행하시도록 그를 재촉하는 일을 시도한다. 하박국의 경험과 비교하라(1:1~2:4).

7:7 [그들을 위하여].

 (「제임스왕역」에는 “for their sakes”[그들을 위하여]가 있음-역자 주). 하나님이 그분의 율법을 옹호하시면 그로 인해 그분에 대한 신뢰가 고취될 것이었다. 또한 그 결과로 그분의 백성이 그들의 감사와 찬양을 표현하기 위해 그분 주위에 모일 것이었다.

7:8 나의 의와 내게 있는 성실함을 따라.

 이 말은 현재 직면한 어떤 특정한 경우를 일컫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구원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하지만, 부당하게 비난을 받을 때에는 하나님이 그 특정한 경우에 대하여 그분의 뜻에 따라 우리를 옹호하시고 또한 거짓 비난에 대하여 우리가 무죄하다는 것을 선언하시도록 간구하는 것이 타당하다. “성실함”(“완전하다”라는 의미의 타맘[tamam]이라는 어원에서 파생된 히브리어 톰[tom])은 “의”에 상당하는 단어인데, 여기에서 그 같은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7:9 악.

 사람이 어떤 한 경우에 죄의 악함을 깨닫게 되면 모든 죄가 끝나기를 바라게 된다. 하나님께 악을 끝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7:9 심장.

 고대에는 “심장”을 생각이 자리한 곳으로 여겼다.

7:9 [신장].

 (「제임스왕역」에는 이 절의 후반부가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과 신장을 감찰하시나이다”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클라요트(kelayot), “콩팥.” 고대에는 신장이 감정, 곧 영혼의 내적 느낌들과 목적들과 동기들이 위치한 곳으로 여겨졌다. 여기에 쓰인 “심장과 콩팥을 감찰하신다”는 구절은 하나님의 전지성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된다(참조 렘 11:20; 시 26:2; 계 2:23).

7:10 방패.

 (「제임스왕역」에는 “defence”[방어]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마겐(magen), 문자적으로 “방패.” 시인에게는 무죄한 자를 옹호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곧 그의 방패이다. 

  우가릿어에서는 mgn이라는 어원이 “애원하다” 혹은 “탄원하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따라서 마긴니(maginni), “나의 방패”를 “나의 애원”으로 번역하여 이 구절을 “나의 애원이 하나님께 있나이다”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7: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제임스왕역」에는 “God judgeth the righteous”[하나님은 의인들을 심판하시며]로 되어 있음-역자 주). 11~16절에는 하나님이 악인들을 어떻게 취급하시는지가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7:11 매일.

 시인은 마치 하나님이 그의 곤경에 대하여 무관심하셨으며 또한 하나님이 그를 옹호하는 일에 실패하신 후에 그가 다시 그분께 자기를 옹호해 달라고 요구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기 원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시인은 지금 하나님이 악인들을 불쾌히 여기시는 일은 항구적인 것임을 명백히 진술하고 있다. 그는 비록 일시적으로는 정반대로 보일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불공평한 듯이 보이는 어떤 예외적인 경우가 하나님의 일관된 목적을 전체적으로 의심하게 하는 빌미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7:12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하나님을 악인들의 처벌을 위하여 그의 병기를 예비하는 힘센 용사로 묘사함으로써 회개치 않는 죄인에게 필연적으로 형벌이 내려진다는 율법을 명백히 하고 있다(참조 신 32:41~43).

7:13 죽일 기계.

 형벌하는 수단. 

7:13 화전. 

 (「제임스왕역」에는 “persecutors”[박해하는 자들]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돌킴(dolqim), “불타오르게 하다”라는 의미의 달라크(dalaq)라는 어근에서 파생됨. 따라서 이것은 적들의 막사를 태우고 그들의 몸에 더 큰 상처를 가하기 위하여 불화살을 쏘아대던 고대 관습에 대한 암시일 수 있다. 멸망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히 나타나 있다.

7:14 악인이 죄악을 해산함이여.

 즉 악인이 죄악을 잉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동사는 “잉태하다”와 “낳다”라는 두 가지 행위를 모두 포함한다. 해악(害惡)을 저지르는 것이 아이를 낳는 것에 비유되고 있다(참조 사 33:11; 약 1:15).

7:15 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어떤 사람이 구덩이를 파다가 푸석푸석한 흙이 무너져 내려서 들짐승 대신 그 자신이 거기에 빠지는 장면을 그려볼 수 있다. 죄는 죄인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악은 부머랭이다. 하만의 삶에서 이 원칙에 대한 구약의 두드러진 실례를 찾아볼 수 있다(참조 에 5~7장; 잠 26:27; 전 10:8).

7:16 그 잔해.

 즉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행하려고 했던 해악(害惡). 이 말은 14, 15절에 표현된 사상을 다른 형태로 되풀이한 것이다(참조 시 9:15; 35:8; 37:15).

7:16 정수리.

 머리 그 자체 혹은 머리의 꼭대기. 악한 자가 다른 사람들을 겨냥하여 계획한 바로 그것이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절의 두 구절은 동의대구법의 한 실례이다. 우가릿 문헌에서는 “머리”를 뜻하는 단어와 “정수리”를 뜻하는 단어가 여러 차례에 걸쳐서 동일한 의미로 등장한다(참조 68, 69쪽).

7:17 여호와의 의.

 하나님의 의는 무죄한 자들을 옹호하고 구원하는 그의 행위를 통해서 드러난다.

7:17 지극히 높으신.

 히브리어 엘룐(‘Elyon), “고귀한”(참조 제1권, 154). 다윗은 공의를 행하심을 통하여 자기 자신이 다른 어떤 존재들보다도 고귀하심을 나타내 보여 주는 여호와를 찬양한다. 

  이것은 여러 시편에서 발견되는 전형적인 형태의 송영(頌詠)이다. 찬양으로 기도를 끝맺는 것은 아주 적절한 일이다.

7:17 이름.

 구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여기서도 “이름”은 그 존재 자체를 의미한다. 또한 이름은 때때로 그 존재의 본질이나 품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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