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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2편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시편

시편 22편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6. 6. 22. 21:35

<시편 22편 서론>

다윗의 시, 영장으로 아얠렛샤할에 맞춘 노래.

이 시는 가장 큰 비애의 예언, 메시야 시편으로 불려 왔다. 또한 때때로 십자가의 시편으로 명명되기도 하는데, 이는 신약 기자들이 이 시에 언급된 구절들을 하나님의 죄 없는 아들이 고난 주간에 당했던 고통들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 기간은 그가 하나님을 신뢰했음에도 하나님이 그를 버린 것처럼 보였던 기간이었다. 이 시에서는 죄의 고백이나 원한의 기색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이 시에서 발견되는 시적 영상들은 다윗의 것이다. 또한 이 시는 일반적으로 다윗이 쓴 것으로 여겨지는 시들에서 발견되는 표현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시인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신약에서의 빈번한 언급들은 이 시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메시야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입증한다. 이 시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 부분인 처음의 21개 절은 고난당하는 자의 탄원과 기도로 되어 있으며, 둘째 부분인 나머지 10개 절(22~31절)은 구원받은 후의 감사 기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는 이 두 부분 사이에 어떤 과도적인 변환을 두지 않고 극적으로 갑작스럽게 낙담에서 찬양으로 돌변한다. 이 시의 메시야적 특징들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시대의 소망, 741~757을 참조하라. 우리는 시 22편을 덮기 전에 감명적인 가사에 J. S. 바하(J. S. Bach)의 숭고한 합창곡 화음이 붙여진 “오 거룩한 머리에 가시관 쓰셨네. 슬픔과 멸시받아 머리 상하셨네”(참조 찬미가 103장)라는 찬미의 가사를 반드시 읽어 보아야만 한다.

* 아얠렛샤할 : 문자적으로 "새벽 암사슴"으로 번역되는데, 여기서는 고난당하는 자를 가리킨다. 「타르굼」에 의하면 아침 제사 시간에 양을 드릴 때 이 시편을 노래하였다.

* 타르굼 : 구약성서의 아람어 번역본 혹은 주해서.


<시편 22편 개역한글>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4.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저희를 건지셨나이다   

5. 저희가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걸 하나이다   

9.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모친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   

11.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   

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19.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0.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21. 나를 사자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락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찌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찌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찌어다   

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부르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25. 대회 중에 나의 찬송은 주께로서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찌어다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이로다   

29. 세상의 모든 풍비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에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30. 후손이 그를 봉사할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31. 와서 그 공의를 장차 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시편 22편 성경주석>

22: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여기서 묘사된 것은 맹수가 그 먹이를 덮쳐서 그것을 갈기갈기 찢으려고 하는 순간의 모습이다.

22:13 부르짖는 사자.

 마치 황소들의 탐욕에 대한 묘사로는 충분치 않다는 듯이 시인은 지금 먹이를 갈급하며 크게 부르짖는 사자의 모습을 소개함으로 그 개념을 증대시킨다.

22:1 내 하나님이여.

 히브리어 엘리(’Eli). “내”(my)라는 말은 이 절의 나머지 부분을 감싸고 있는 듯한 절망감에 대하여 애정 어린 믿음을 슬쩍 더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믿음이 두려움과 더불어 투쟁을 벌이고 있다.

22:1 어찌.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버린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절망감에 빠진 어린아이의 부르짖음.

22:1 나를 버리셨나이까.

 히브리어 아잡타니(‘azabtani). 예수께서 부르짖으신 사바흐타니(sabah.tani)는 아람어에 대한 헬라어 음역이다(참조 마 27:46; 막 15:34).

22:1 나를…돕지 아니하옵시며.

 문자적으로 “나를 구원하지 아니하옵시며.”

22:1 신음하는.

 히브리어 셔아가(s∨e’agah). 사자의 포효를 묘사하는 데 쓰임(욥 4:10; 사 5:29; 겔 19:7; 슥 11:3). 사람에 대하여 쓰일 때에는 강한 부르짖음을 나타낸다(참조 시 32:3). 더 깊은 연구를 위해서는 시대의 소망, 753~756을 참조하라.

22:2 잠잠치 아니하오나.

 하나님은 모든 부르짖음을 다 들으셨지만, 그리스도는 응답의 증거를 얻지 못하였다(참조 시대의 소망, 753).

22:3 [그러나].

 (이 단어가 「제임스왕역」에는 있으나 「개역한글판」에는 나오지 않음-역자 주). 수난자가 자신이 겪고 있는 시련을 인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거룩하고 긍휼이 충만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그를 이런 식으로 취급할 수 있는가?

22:3 찬송 중에 거하시는.

 성소에 거하면서 그를 찬양하는 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하나님의 모습을 묘사한 듯하다.

22:4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수난자가 하나님께서 당신을 의뢰한 열조들을 건지셨기 때문에 분명히 그도 건져 주실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는 듯하다. 흑암 중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구조되는 것을 바라보면 자신의 운명이 한층 더 비참해 보일 수 있다.

22:5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

 (「제임스왕역」에는 “not confounded”[당황치 아니하였나이다]로 되어 있음-역자 주).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였나이다”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사람들은 신뢰하였다가 자신의 신뢰가 배신당한 것을 알게 되면 마치 바보짓이나 한 것처럼 수치심을 느낀다(참조 렘 14:3).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신뢰할 만한 분임을 입증하였다.

22:6 벌레.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보잘것없는 벌레처럼 여겨 무시했다고 느꼈다. 참조 사 41:14; 49:7; 52:14; 53:3. “사람”(히브리어 이쉬[’is∨])과 “사람”(히브리어 아담[’adam])의 차이점에 관해서는 시 4:2; 8:4 주석을 참조하라.

22:7 비웃으며.

 히브리어 라아그(la‘ag), 시 2:4에서처럼 “조롱하다”, “비웃다”의 의미를 지님(참조 막 15:29).

22:7 입술을 비쭉이고.

 즉 경멸적으로 입을 오므리다(참조 시 35:21).

22:7 머리를 흔들며.

 경멸의 몸짓(참조 시 44:14). 그들이 하는 말이 시 22:8에 이어진다.

22:8 의탁하니.

 문자적으로 “명부에 기재하니.” 이는 곧 자기 자신을 위탁하고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시 37:5; 잠 16:3).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바라보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실제로 이 조롱의 말을 인용하여 십자가에서 당한 그의 굴욕에 적용하였다(참조 마 27:43).

22:9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그가 기억할 수 있는 한에서는. 원수들의 조롱이 구원에 대한 논증으로 바뀐다. 이제 그는 자신에 대한 원수들의 조소를 생각하는 일에서부터 그를 향한 그들의 난폭한 행위들로 이야기를 옮겨간다.

22:9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그는 영아 시절부터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

22:12 황소.

 그를 파멸하고자 의도하고 있는 흉포한 자들을 일컫는 비유적 표현.

22:12 바산.

 요단강 동쪽에 위치한 풍성한 목초지와 크고 힘센 가축으로 유명한 지역(참조 신 32:14; 겔 39:18; 암 4:1).

22:12 힘센 소들.

 히브리어 압비림(’abbirim). 우가릿어로 된 몇몇 문서들(참조 68, 69쪽)에서는 이 단어가 “들소”(buffalo)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바알(Baal) 신의 자매인 아나트(Anath)가 그에게 낳아 준 신화적 존재를 일컫는 용어로도 한 차례 쓰이고 있다.

22:14 물같이 쏟아졌으며.

 참조 수 7:5. 이것은 힘의 상실을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인 것처럼 보인다(삼하 14:14).

22:14 녹았으며.

 그의 마음은 이제 굳은 마음이 아니었다. 그는 활력이 모두 소진된 상태가 되었다(참조 애 2:11).

22:15 질그릇 조각.

 그의 힘은 자라나는 나무의 힘처럼 생기롭지 못하고 질그릇의 깨진 조각처럼 마르고 허약했다.

22:15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필시 심한 갈증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22:15 사망의 진토.

 죽음에 대한 비유적 묘사. 죽음은 무덤의 진토와 연관되어 있다.

22:16 개들.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개들을 닮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그의 생명을 노리며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동방의 도시들에는 굶주린 개떼들이 많았는데, 이 개들은 종종 매장되지 않은 시체들을 가지고 잔치를 벌였다(참조 왕상 14:11; 시 59:6, 14, 15). 여기서 시인은 사자와 바산의 황소들에 개들을 첨가함으로 그 상황의 잔인성을 한층 더 증대시킨다(참조 12, 13절 주석).

22:16 찔렀나이다.

 히브리어 크아리(ke’ari). 사 38:13에서처럼 “사자같이”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 어형은 이곳과 사 38:13 외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처럼 해석하는 경우에는 이 문장의 뜻이 “악한 무리가 사자같이 나의 손과 발을 둘러쌌나이다”가 된다. “그들이 찔렀나이다”는 크아리의 정확한 번역이 될 수 없다. 이 단어의 철자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70인역」, 「수리아역」, 「불가타역」 등과 같은 고대 번역판들의 역자들은 이 단어를 그 본래의 독법에 따라 “그들이 찔렀나이다”로 번역했을 수도 있다. 구주는 이 말들을 인용해서 그가 당하실 일들을 예언하셨다(참조 시대의 소망, 746). 참조 요 20:25~27.

22:17 셀 수.

 문자적으로 “계산하다.” 그가 쇠약해져서 뼈들이 튀어나왔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뼈들을 셀 수 있었다. “세다”라는 동사와 유사한 용법에 관해서는 시 147:4을 참조하라.

22:18 제비 뽑나이다.

 마 27:35; 눅 23:34; 요 19:23, 24에 나와 있는 이 예언의 성취를 참조하라.

22:19 [당신].

 (「제임스왕역」에는 이 절의 전반부가 “당신[Thou] 여호와여, 나를 멀리 떠나지 마옵소서”로 되어 있다-역자 주). 히브리어에서는 이 단어가 문장의 맨 앞에 놓여서 강조되고 있다. “당신”(Thou)은 박해자들과 대비를 이룬다. 시인은 여기서 11절의 기도가 그 기도를 처음 드릴 때보다 훨씬 더 절박한 심정으로 되풀이한다.

22:20 영혼.

 참조 시 3:2; 16:10 주석.

22:20 유일한 것.

 (「제임스왕역」에는 “darling”[가장 소중한 것]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여히다(yeh.idah), 무남독녀(삿 11:34)처럼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 여히다가 히브리어에서는 여성형인 “영혼”과 평행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 어형이 여성형으로 되어 있다. 「70인역」은 여히다를 모노게네스(monogene-s)로 번역하는데, 이 단어는 요 3:16에서 “독생(하신)”으로 번역된 형용사이다.

22:20 개.

 참조 16절.

22:21 사자 입.

 참조 13절.

22:21 주께서 내게 응락하시고.

 완전한 안도감으로 시인의 탄원이 끝을 맺는다. 그는 여호와가 가까이에서 그를 돕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처럼 절의 한 가운데서 일어나는 갑작스런 감정의 변화는 여러 시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다(참조 시 3, 6, 12, 28편 등). 아마도 이 시는 시편에서 히브리어의 독특한 특징인 극적 독백의 가장 두드러진 실례를 보여 주는 시일 것이다.

22:21 들소.

 (「제임스왕역」에는 “unicorns”[일각수]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르밈(remim), “들소”(참조 욥 39:9 주석). 영국의 문장(紋章)에 사자와 들소가 새겨진 것은 이 절에서 유래된 것이다. 참조 민 22:22 주석.

  수난자는 “개”와 “사자”와 “황소”와 “들소”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자신이 버림받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낙담과 슬픔이 신뢰와 평화와 즐거운 찬양으로 바뀐다. 22~31절은 승리의 찬양이다. 시 22편을 배경으로 한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의 합창곡은 곡의 이 지점에서 완전한 감정 변화를 묘사하기 위하여 갑자기 단조가 장조로 바뀐다.

22:22 회중.

 그는 예배를 위해 모인 회중 가운데서 찬양의 간증을 할 것이다(참조 시 1:5; 사 38:19, 20).

22:23 그를 찬송할지어다.

 그는 온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찬양을 돌리는 일에 연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2:25 대회.

 참조 22절.

22:25 주께로서 온 것이니.

 (「제임스왕역」에는 “of thee”[당신의 것이니]로 되어 있음-역자 주). 문자적으로 “주로 말미암아 온 것이니.” 하나님은 찬양의 이유가 되는 구원뿐 아니라 찬양하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까지도 주셨다.

22:25 서원.

 구원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 드리기로 약속한 희생제물들.

22:26 먹고.

 서원의 희생을 드리는 자들이 그 제물의 일부를 먹었다(참조 레 7:16). 이스라엘에서는 감사의 표로 연회를 벌이는 것이 예배의 일부분으로 되어 있었다. 겸손한 자들이 이 식사를 함께 나눌 것이며 또한 함께 먹는 것으로 그들은 하나로 연합하게 될 것이었다.

22:26 너희.

 “겸손한 자”, 곧 “그들”(they, 3인칭)로부터 “너희”(your, 2인칭)로의 갑작스런 변화는 히브리어의 전형적 문체로 이 말씀의 직접성을 강조하고 있다.

22:27 땅의 모든 끝.

 바라보는 범위가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과 “야곱의 모든 자손”과 “이스라엘 모든 자손”(23절)으로부터 “열방의 모든 족속”을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된다(창 13:2의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참조하라).

22:28 나라.

 “왕의 지위” 또는 “왕권”이 더 적절한 번역이다. 참조 슥 14:9; 계 11:15.

22:29 세상의 모든 풍비한 자.

 이 절은 앞의 기술과 연관해서 이해해야 한다. 여호와가 열방의 왕이기 때문에 그 가운데 있는 부한 자와 번성한 자들이 제사와 경배를 위하여 성소로 나아오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또한 “진토에 내려가는 자”로 묘사된 더 연약한 자들, 곧 쇠퇴하는 나라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절하기 위해 나아온다.

22:29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

 (「제임스왕역」에는 “아무도 자기 영혼을 살게 하지 못할 것이다”로 되어 있다-역자 주). “자신의 영혼을 살게 하지 못하는 자”가 더 적절한 번역이다. 이 구절은 좀 더 연약한 나라들이라는 사상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 이해될 수 있다. 「70인역」은 이 문장을 “그리고 내 영혼은 그에게 대하여 살아 있다”로 번역함으로 전혀 다른 해석을 시사한다. 하지만 히브리어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고 비교적 단순한 것을 보인다.

22:30 후손.

 (「제임스왕역」에는 “seed”[씨]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제라(zera‘), “자손”, “후손.” 복음 전파의 결과로 많은 사람이 돌아와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었다.

22:30 주.

 히브리어 아도나이(’Adonay).

22:30 전할 것이며.

 곧 “자세히 이야기할 것이며.” 구원의 기쁜 소식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대를 이어 계속 전해질 것이다(참조 딤후 2:2).

22:31 그 공의를…전함이여.

 참조 롬 3:21~26.

22:31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하나님이 이 시에 기술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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