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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1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전도서

전도서 1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5. 11. 06:14

<전도서 1장 흐름정리>

기자는 먼저 자신의 신분을 밝힌 후 만물이 헛되다고 하는 본서의 주제를 제시한다(1~3절). 이어서 허무의 구체적인 내용을 열거한다. 그가 헛되다고 하는 것이 인간사 일부만이 아니라 인간사 전부와 만물의 존재 자체라고 한 점에서, 그리고 그는 온갖 부귀와 공명을 다 누려본 이스라엘의 왕이요, 전무후무한 지혜를 소유한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이 주제의 심각성이 있다. 얼핏 보면, 마치 염세주의적 허무 의식을 토로한 듯하다. 그러나 전도자의 본뜻은 바로 하나님을 배제한 천하 만물의 헛됨을 노래하는 데 있었다.


<전도서 1장 줄거리>

1. 전도자는 인간의 모든 행로가 다 헛되다고 함.

4. 피조물들이 그 행로에 있어서 쉼이 없기 때문에,

9. 그것들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옛것은 다 잊혀진다.

12. 또한 그가 지혜를 궁구하는 가운데 그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전도서 1장 개역한글>

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5.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8.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1.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4.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5.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이지러진 것을 셀 수 없도다    

16. 내가 마음 가운데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 하였나니 곧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줄을 깨달았도다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전도서 1장 성경주석>

1:1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말한다. 하나님께로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받았지만(왕상 3:9~13) 유산을 무모한 행복 추구에 낭비해 버린 그 사람보다 여기에 기록된 심오한 진리를 설명하기에 누가 더 적절하겠는가?

1:1 예루살렘 왕.

 이 구절은 다윗 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전도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말을 하고 있을 당시에 “전도자”는 “왕”으로 다스리고 있었다. 이 책에 그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의심할 여지없이 이 표현은 솔로몬 왕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다. 솔로몬을 가리키는 다른 표현들은 그의 지혜에 대하여 언급한 것과 여러 잠언의 저자로서 언급한 것이다(참조 전 1:12, 13, 16; 2:15; 12:9; 왕상 3:12; 4:32). 

  영광스럽게 위치를 정한, 나라의 수도 예루살렘 성은 왕의 유일한 거주지는 아니었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려고 택한 하나님의 자리였다. 여기에서 종교와 하나님의 지혜는 가장 순결하고 가장 탁월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한 도성에서 보좌 위에 앉은 통치자는 하나님의 지도를 쾌히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에 복종하는 이상적인 수행자가 되어 하나님의 지혜의 빛을 받아들이고자 기다리는 백성들에게 그것을 비추어 주어야만 할 것이었다.

1:1 전도자.

 히브리어 코헬레트(Qohelet), 동사 카할(qahal), “모으다”, “소집하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카할의 용례에 관해서는 대하 20:26; 에 9:2, 16, 18 등을 참조하라. “집회”, “회중”, “회합”으로 번역된 동계 명사(同系名詞)는 구약에 122회 나타난다. 

  유대인 저술가들은 코헬레트를 “회중을 모으고 교훈을 탐구하는 자”로 설명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설교자”라고 하는데, 솔로몬이 회중 앞에서 이 설교를 한 것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위대한 수집가”, “심오한 연구자”와 같이 여러 가지로 번역된 아랍어 어근과 비슷하다(전도서 서론).

1:1 말씀이라.

 이 책의 제목이 되는 첫 절은 이렇게 시작한다(「제임스왕역」에는 “The words of”라는 말로 문장이 시작됨-역자 주). 다른 세 성경책, 즉 느헤미야, 예레미야, 아모스가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시작한다. “말씀”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또한 “소식”, “보고”, “기별”, “이야기”, “명령”을 의미한다.

1:2 가로되.

 문자적으로 “말했다.” 영어의 어법이 현재나 현재완료형을 요구하는 곳에 히브리어는 계속적으로 과거 시제를 사용한다. “전도자가 가로되”라는 표현은 솔로몬이 말하는 사람이며 또한 책의 저자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1:2 헛되고 헛되며.

 히브리어 하벨 하발림(habel habalim). 이 말은 책 전체의 제목을 진술하며 서문의 주제를 이룬다. 헤벨(hebel), “헛되다”는 전도서에 37회나 나오지만 구약의 다른 곳에는 33회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것의 일차적인 의미는 “숨” 혹은 “증기”이다. 그것은 헛되고 무익한 우상들과 또한 그것들을 경배하는 것에 대하여 사용된다(왕하 17:15; 렘 2:5; 10:8). 어떤 사람들은 전도서에 우상숭배를 반대하는 말이 단 한마디도 없다고 말하지만 이 책의 핵심어가 바로 우상과 우상숭배에 관하여 자주 사용된 이 단어이다. 전도자는 인간이 하나님과 하나님께 대한 순종 대신에 구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지 다 헛된 것이라고 말한다. 

  하벨 하발림은 “하늘들의 하늘”(왕상 8:27)과 “노래들 중의 노래”(아 1:1)와 같이 강세적(强勢的) 표현과 비교되는 최상급이다. 문자적으로 “호흡들 중의 호흡”과 같은 강세적 형태로 솔로몬은, 만약 인간의 모든 노력과 삶이 하나님께로 향한 것이 아니면 허망하고 아무런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결과가 된다고 강조한다.

1:2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것은 모든 인생을 포함한 세상이 전체적인 면에서 이른바 하나의 호흡에 불과하고 아무런 희망을 약속해 주지 못한다는 의미로 “총체적으로 헛되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1:3 사람.

 히브리어 단어는 “사람”을 나타내는 통칭 용어 혹은 우리가 “인류”라고 말할 때의 그 단어이다. 인간 생명의 순환은 새로운 세대와 함께 거듭거듭 되풀이된다.

1:3 해 아래서.

 “하늘 아래서”(1:13; 2:3; 3:1)라는 구절과 같은 의미이다. 이것은 전도서에서 약 30회 나온다.

1:3 수고.

 “노고”, “고생” 혹은 “해악”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에서 유래했다. 여기서는 이 말이 사람이 일생 동안 하는 노력 전체에 적용된다.

1:3 모든 수고.

 이 표현은 해 아래서 이루어지는 모든 형태의 활동에 대해서 하는 말이다.

1:3 유익한고.

 히브리어 이트론(yitron). 이 말은 이 책의 다른 곳에 9회 나오며(2:11, 13; 3:9; 5:9, 16; 7:12; 10:10, 11), “뛰어나다”, “탁월”, “유익한”, “유용한” 등 여러 가지로 번역된다. 이트론은 “잔존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므로 거기서 파생된 명사는 “나머지”, 나아가 “여분”, “풍부”를 뜻하고, 또한 히브리어로 “우월”, “이점”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부단히 애를 쓰고 있지만 그의 모든 수고에 대한 영속적인 결과는 아무것도 없다. 

  솔로몬이 여기서 사용한 은유는, 끊임없는 활동을 요하면서도 그 목적은 물질적인 목표에 해당하는 것을 얻는 데 불과한 세상 사업 중 하나일 것이다(참조 2:11 주석). 그러나 흔히 사람의 일생은 그의 후계자가 허물어 버리는 그 무엇인가를 세우는 데 허비된다. 무익과 불확실이 모든 인간의 노력을 특징짓는다. 

  무엇”이라는 의문대명사는 강한 부정적 대답을 요구한다. 그것은 주께서 문자적으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묻는 마 16:26의 말씀들과 비교할 수 있다. 전도자가 기대하는 대답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1:4 세대.

 히브리어 도르(dor), “기간”, “시대”, “세대.” “쌓아올리다”, “축적하다”를 의미하는 동사에서 유래되었다. 이 말은 본래 “집단으로 돌아다니다”라는 의미였지만 그 후에 “장막에 거하다”가 되었는데, 아마도 유목민 생활의 불안정과 관련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므로 이 단어 속에는 불안정이라는 고유한 사상이 들어 있다. 그것은 “사곡한 종류”(신 32:5)라는 구절 속에 있는 것과 동일한 종류와 특성과 상태에 관련이 있고, 아무라도 거리낌 없이 저주하는(잠 30:11) 자들과 흔히 무자비한 사람들과도 관계가 있다(잠 30:14).

1:4 가고.

 히브리어에서 이 말과 “온다”라는 말은 모두 계속적이고 끝없는 변화를 강조하는 단순 분사로 되어 있다(참조 욥 10:20~22; 시 39:13).

1:4 영원히.

 이렇게 번역된 히브리어는 우리가 그 의미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어떤 동사의 어 근에서 온 것 같다. 여기서 전치사 “for”와 함께 사용된 명사는 남성명사이며 그것의 헬라어 상당어구처럼 여러 가지로 사용된다. 그것은 “옛날”, “고대”, “장기간”, “계속적인 존재” 등을 언급할 수도 있고, “무한한”, “끝없는 미래”, “영원” 등을 의미할 수도 있다. 또한 이 단어의 헬라어 상당어와 같이 그것과 함께 사용된 주제의 성격에 맞추어 하나하나 살펴보아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참조 출 12:14; 21:6 주석).

1:4 있도다.

 히브리어 아마드(‘amad), “서 있다.” 이 말은 계속성과 지속성이라는 사상을 담고 있다. 이 절에서 솔로몬이 나열하고 있는 대조는 부분적으로 산들의 표면적인 영구성과 강들의 중단 없는 흐름과 밤낮의 부단한 연속성에서 이끌어 낸 것이다.

1:5 떴던.

 히브리어 자라흐(zarah.). 연속적 혹은 반복적 활동을 강조하는 분사형이다.

1:5 빨리 돌아가고.

 히브리어 샤아프(s∨a’ap), “헐떡거리며 뛰다”, “열심히 붙잡으려고 하다”, “열망하다.” 이 비유는 경기 중인 말이 속력을 내기 위해서 힘을 다하여 숨을 들이쉬고 있는 생기 넘치는 말에서 가져 온 것이다. 이런 비유의 예로는 렘 2:24을, 이것을 영적 생활에 적용한 것은 시 119:131을 참조하라.

1:6 바람.

 히브리어 루아흐(ruah.), “바람.” 항상 움직임을 시사하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구속의 경륜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여러 활동과 관련하여 많이 사용된다.

1:6 돌이키며.

 끝없는 활동과 반복을 묘사하는 말이다. “북”과 “남”은 5절의 해가 뜨고 지는 위치인 “동”과 “서”와 대조를 이루어 언급되고 있다.

1:6 이리 돌며 저리 돌아.

 이 절의 히브리어에서는 네 번이나 “돌다”, “선회하다”라는 단어 의 어근에서 파생된 어형들이 끊임없는 활동과 반복을 강조할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또한 여호수아의 군대가 여리고 성을 두루 돌며 행군하는 것(수 6:3, 15)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러 날 동안 세일 산을 두루 행”한(신 2:1, 3) 것을 말할 때에 사용되었다.

  솔로몬은 자연의 끊임없는 순환에 대해 불평하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서 인간 생활의 순환과의 유사성을 보았다(전 1:4).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이어지는 인간의 삶은 더 이상 숭고한 목적도 없는 단순한 반복일 뿐인가? 인류의 삶에는 그 어떤 절정이 있지 않을까? 하나님은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이어지면서 끝없이 반복되는 것같이 보이는 이 같은 인간의 활동을 마침내 대체시킬 어떤 영원한 목적을 갖고 계시지 않을까? 

  지구 표면을 떠도는 기단(氣團)들의 움직임에 관하여 여기에 주어진 표현의 과학적 정확 성은 고대 문헌이 이에 견줄 수 없으며 천연계의 법칙에 관한 통찰력이 대부분의 고대인들의 그것보다 훨씬 우월함을 드러낸다.

1:7 모든 강물.

 자연의 끝없는 순환에 관한 세 번째 예증으로 솔로몬은 물의 순환을 들고 있다. 자연의 힘은 끝없는 반복을 묘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활동들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바이므로 그분의 뜻에 일치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인간의 활동들은 대부분 하나님이 계획하신 바가 아니므로 그분이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의도했던 목적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 인류는 만족과 기쁨에 이르는 새로운 길들을 지속적으로 추구하지만 창조주와 화목하는 단 하나의 길에서만 그의 참목적에 이를 수 있다(참조 마 11:28~30).

1:8 만물.

 히브리어 드바림(debarim). 1절에서는 “말씀”으로 번역되었으나 여기서는 “만물”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 분명하다. 신약에서 “말씀” 혹은 “만물”을 뜻하는 헬라어 레마(rhe-ma)도 이곳에 쓰인 히브리어처럼 이중적 의미가 있다.

1:8 피곤함.

 이렇게 번역된 히브리어는 “고생하다”, “수고하다”라는 동사에서 온 형용사이며, “고생하다”, “고통을 겪다”라는 의미의 아랍어 어근과 연결된다. 인간 활동의 명백한 헛됨과 이에 수반되는 실망 등이 여기서 강조된 요점들이다.

1:8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사람”으로 번역된 단어는 3절에 나오는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고 여자와 확연히 구별되는 “남자”를 언급한 말이다. “말하다”(utter)로 번역된 동사는 1절에서는 “말씀”으로, 8절에서는 “만물”로 번역된 단어의 어근이다. 히브리어에서 “말하다”라는 동사는 “만물”(all things)대하여 말하고 있다.

1:8 족함이 없고.

 외적인 경험은 심령의 내적 갈망을 충족시킬 수 없다. 만물 즉 물질적 축복은 생각이 깊은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외적인 감각을 통해서가 아니고, 내적인 경험을 통해서 마련된다. 하나님은 영이므로(요 4:24) 그에게 나아가는 자는 영으로 나아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육신의 귀에 들리는 것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의 영적 본성에 속한 내적인 귀로 중계되지 않으면 지속적인 유익이 이루어 질 수 없다.

1:9 이미 있던 것.

 이 구절은 문자적으로 “지금껏 있어 온 것이 앞으로 있을 것”으로 해석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에 따라 되풀이되는 자연의 변함없는 순환에 관한 언급이다. 「70인역」과 「불가타역」은 이 구절과 다음 구절을 의문문으로 잘못 번역했다.

1:9 새것이 없나니.

 말하자면 자연의 끊임없는 순환 속에는 변이(變異)가 없다. 사람이 한 번의 순환을 보았다면 순환을 모두 본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순환은 별로 다를 바 없는 다른 순환과 알아차릴 수 없게 뒤섞인다. 그 순환들은 영속적인 자기 보전 외에는 어떤 더 큰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1:10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저자는 자신이 9절에서 한 말에 대하여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고 도전해 올 수도 있는 묵시적 반대를 논박한다.

1:10 오래 전 세대.

 문자적으로 “각 시대.” “오래 전 세대”로 번역된 단어 올람(‘olam)은 4절에서 “영원히”로 번역된 것과 같은 단어이다(참조 출 12:14; 21:6 주석). “세대”로 번역된 단어는 복수이지만 그 단어에 단수 동사가 쓰인 것은 그 명사를 집합명사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1:10 이미 있었느니라.

 새것처럼 보이는 것도 과거에 그 근본을 두고 있다. 문맥상 9절과 10절에 있는 솔로몬의 말이 인간 생활의 순환을 포함한 자연의 여러 현상에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 준다.

1:11 이전 세대(former things).

 “things”(「개역한글판」에는 “세대”로 번역 되어 있음-역자 주)는 첨가된 단어이다. 히브리어 형용사 “이전”이 남성 복수이므로 “이전”이라는 말은 아마도 사람들에 대해서 하는 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들은 물론이요 (10절) 사람들까지 모두 다 잊혀진다.

1:11 기억함이 없으니.

 새것처럼 보이는 것은 단지 사람들이 옛 것을 잊어 버렸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 세대의 어떤 사물들도 다음 세대가 잊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명성에도 당연히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없어서는 안 될 것같이 보이는 오늘의 걸출한 인물도 내일에는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고 잊혀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3절).

1:11 장래 세대.

 거듭하는 말이지만 “things”(「개역한글판」에는 “세대”로 번역 되어 있음-역자 주)는 첨가된 단어이며, “장래”로 번역된 히브리어 형용사는 남성복수이다. 사람들의 세대는 아마도 여기서 나온 사상인 것 같다. 현 세대의 명성은 다음 세대에 의하여 잊혀진다. 솔로몬은 그의 책 서두를 명성의 덧없는 성격에 대한 단정적인 말로 맺는다. 이 점은 문자적으로 “지금 이후”, 곧 “그 후 (세대)”라는 말로 거듭 강조되었다.

1:12 왕이 되어.

 (「제임스왕역」에는 “was king”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왕으로 있다”(참조 1절 주석). 히브리어는 화자(話者)가 이제는 더 이상 왕이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의미하지는 않는다. 히브리어 동사의 단순과거는 영어의 현재형이나 현재완료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 때가 종종 있다. 이 “전도자”는 솔로몬이었다. 왜냐하면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아래에서만 예루살렘은 한 왕이 이스라엘 전체를 통치한 나라의 수도였고, 화자가 “다윗의 아들”(1절)이기 때문이다.

1:13 마음을 다하며.

 이 구절과 그 상당어구는 이 책(1:17; 7:25; 8:9, 16)과 성경의 다른 곳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히브리인들은 마음을 단순히 감정의 근원만이 아니고 지성의 근원으로도 간주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라”라는 말은 “정신을 진정하여”(참조 대상 22:19) 혹은 “마음을 두고”(참조 욥 7:17)와 같은 의미가 되곤 했다. 솔로몬은 부지런히 마음을 갈고 닦았다. 그는 자연사와 철학과 시문학과 기타 유용한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

1:13 지혜를 써서.

 문자적으로 “그 지혜.” 아마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솔로몬의 직접적인 연구와 관찰로써 그가 평생 쌓은 지혜와 관련된 말일 것이다. 히브리어 단어는 여러 분야에 걸친 기술과 명철에 적용된다.

1:13 모든 일.

 “일”은 첨가된 말이다. 히브리어는 “하늘 아래서 행해지는 모든 것”으로 해석되며, 여기서는 일차적으로 인간의 활동들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1:13 궁구하며.

 히브리어 다라쉬(daras∨), “탐색하다”, “뜻을 자세히 풀이하다”, “토론하다”, “반복하여 실습하다”, “연구와 응용으로 탐구하다” 등의 의미를 다 포괄하는 폭넓은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참조 창 25:22; 출 18:15; 신 19:18; 대하 14:7; 시 119:10; 암 5:14).

1:13 살핀즉.

 “탐험하다”라는 의미에서, “정탐한즉.” 이 말은 가나안 땅을 탐지하는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민 13:16, 17, 25, 32). 이것은 지식을 위한 개척자적인 연구를 의미한다. “궁구하다”와 “살피다”라는 두 단어를 함께 쓴 것은 어떤 문제의 근저(根底)에 이르러 그것을 모든 면에서 샅샅이 살펴본다는 것을 시사한다.

1:13 이는 괴로운 것이니.

 문자적으로 “이 악의 고통이니” 혹은 “사악한 이 고통이니.”

1:13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에 연구하고 살펴보고자 하는 강한 충동을 불어 넣으셨다. 그것은 사람의 육체적 및 정신적 힘을 크게 요하는 힘든 일이다.

1:14 일.

 이것들은 인간의 계획과 활동들로서 대부분 무가치한 것 아니면 쓸모없는 것들로 판명된다.

1:14 본즉.

 히브리어 단어는 흔히 외양이나 모양을 보는 것 이상의 것, 즉 예리한 통찰 혹은 지각을 의미한다. 파생된 명사는 “이상” 즉 계시를 의미한다. 여기서 이것은 복잡한 사실들에 관한 연구에서 보인 솔로몬의 예리한 관찰력을 가리킨다.

1:15 구부러진 것.

 “구부리다” 혹은 “비틀다”라는 의미를 지닌 어근의 형태에서 온 것이다. 이것은 본래부터 구부러진 것이나 조화되지 않는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원인으로 그렇게 된 것에 대해서 말한다. 구부러진 것은 다 “사람의 일”이다(14절).

1:15 곧게.

 “가지런히 하다”, “곧게 하다”, “정리하다”라는 히브리어 어근에서 온 말이다. 강조점은 인간에게는 계속적으로 자신이 직면하는 상황에 대처할 힘이 없다는 것이다.

1:15 셀 수 없도다.

 결손이 너무 커서 인간은 결손이 생기기 시작한 것에 관하여 할 말이 전혀 없을 만큼 그것에 관하여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없다. “세다”로 번역된 단어는 “할당하다”, “지정하다”로도 번역할 수 있다.

1:16 내가…말하여 이르기를.

 다른 사람에 대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과는 반대로 개인적인 명상을 시사하는 히브리어의 강세적 언급이다.

1:16 내가….

 문자적으로 일하고 연구하는 일에서 자기 재능의 연마 그리고 그 결과로 얻은 지식과 경험의 성장에 있어 “내가…되게 했다”라는 말이다.

1:16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곧 “지혜를 붙잡았으므로.”

1:16 예루살렘에 있던.

 더 정확히 말하면 “예루살렘을 지배하던”, 즉 통치자로 그 도성을 “지배하던”이다. 이것은 솔로몬 이전 시대의 현인들과 통치자들에 대해서 하는 말이다.

1:16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만나 보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는 14절에 나오는 “본즉”과 같은 동사이다. 문자적으로 “많이 보았다”[예리한 통찰력을 받았다]인데 물론 이것은 “지혜와 지식에 관해서”이다. 「70인역」은 “지혜”를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말로, “지식”은 지적인 노력의 사색적인 측면을 나타내는 말로 번역한다.

1:17 미련한 것.

 이렇게 번역된 말은 아마도 엇갈리게 놓는다”를 뜻하는 단어의 어근에서 온 것 같다. 지혜가 반드시 솔로몬이 연구한 일반적인 원칙으로 그를 인도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여기서 암시할 수도 있다.

1:17 바람을 잡으려는 것.

 참조 14절 주석.

1:18 번뇌.

 이렇게 번역된 말은 “짜증나게 하다”, “화나게 하다”를 뜻하는 어근에서 유래되었다. 지나친 연구는 불면증을 가져오고, 신경을 소모시키고, 때로는 건강을 잃게 한다. 그러나 솔로몬이 무지가 최상의 행복이라는 생각을 옹호하고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1:18 근심.

 문자적으로 정신적이요 육체적인 양면의 “고통.” 만약 어떤 사람이 지혜를 원한다면 그는 깊이 탐구해야 하고(참조 잠 2:4), 끊임없는 탐구와 연구는 건강과 힘을 손상시킨다. 위대한 지식도 품성의 지표는 아니라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믿음으로 받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천국 문을 열어주지, 지식만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1:14 바람을 잡으려는 것(vexation of spirit).

 “잡으려는 것”(vexation)으로 번역한 이 단어는 “먹이다” 혹은 “목양하다”라는 말의 어근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바람”(spirit)이라는 말은 “바람”(wind)이라는 일반적인 단어에서 왔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바람을 따라 잡으려고 애쓰는 것”(「개정표준역」) 혹은 “바람을 먹고 사는 것”으로 번역할 수 있다. 호 12:1의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라는 표현과 비교해 보라. 어떻게 번역하든 이 말은 만족을 얻지 못하는 인간의 노력과 연구의 특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 44:20의 “그는 재를 먹고”라는 표현과도 비교해 보라.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6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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