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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4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전도서

전도서 4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5. 18. 06:31

<전도서 4장 흐름정리>

전도자의 허무의식을 더욱 부추긴 것은 바로 이 세상에 두루 만연해 있는 억울한 사연들과 부조리였다. 학대를 받고서도 하소연할 길이 없는 소외 계층들(1~3절), 의지할 데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고아와 같이 외로운 자들(8절) 등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어떤 사람은 비천한 신분을 극복하여 왕의 자리에까지 올라 만백성 위에 군림하기도 했지만, 전도자의 눈에는 그의 일생 역시 허무할 뿐이었다(13~16절). 물론 본장에서 언급되는 모든 사례들은 여호와 신앙이 배제된 채 인본주의가 창궐하는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광경이다.


<전도서 4장 줄거리>

1. 학대로 인해,

4. 또 시기로 인해,

5. 게으름으로 인해,

7. 탐욕으로 인해,

9. 고독으로 인해,

13. 완미함으로 인해 인생에게 허무감은 더해짐.


<전도서 4장 개역한글>

1.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보았도다 오호라 학대 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저희를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저희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2. 그러므로 나는 살아 있는 산 자보다 죽은지 오랜 죽은 자를 복되다 하였으며      

3. 이 둘보다도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서 행하는 악을 보지 못한 자가 더욱 낫다 하였노라      

4.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여러 가지 교묘한 일로 인하여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5. 우매자는 손을 거두고 자기 살을 먹느니라      

6.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보다 나으니라     

7. 내가 또 돌이켜 해 아래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8.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으니 아무도 없이 홀로 있으나 수고하기를 마지아니하며 부를 눈에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도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 수고하고 내 심령으로 낙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고 하나니 이것도 헛되어 무익한 노고로다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13.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소년은 늙고 둔하여 간함을 받을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      

14. 저는 그 나라에서 나면서 가난한 자로서 옥에서 나와서 왕이 되었음이니라      

15. 내가 본즉 해 아래서 다니는 인생들이 왕의 버금으로 대신하여 일어난 소년과 함께 있으매      

16. 저의 치리를 받는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찌라도 후에 오는 자들은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도서 4장 성경주석>

4:1 내가 돌이켜…보았도다.

 히브리어의 표현은 “내가 다시…생각해 보았다” 혹은 “내가 다시…보았다”(「개정표준역」)와 같은 말이다.

4:1 학대.

 히브리어 아슈킴(‘as∨uqim), “억압하다”, “학대하다”, “강제로 탈취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의 어근에서 온 말이다. 그것은 “난폭”, “불공평”을 뜻하는 아랍어 단어와 관련이 있다. 솔로몬은 여기서 역사를 통하여 많은 가난한 사람들과 힘없는 사람의 운명이 되어 온 것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참조 욥 35:9; 암 3:9; 삼상 12:4).

4:1 눈물.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시 39:12; 56:9; 사 38:5). 이와는 반대로 외식하는 자의 눈물은 하나님이 불쾌히 여기신다(말 2:13).

4:1 위로자.

 “위문하다”, “위로하다”라는 동사에서 온 말이다. 극한 슬픔 중에 있는 인간의 마음은, 이해해 주는 사람에게서 오는 위로의 말을 갈망하는데 위로자가 아무도 없을 때는 그들의 고통이 더욱 깊어진다(참조 시 69:20; 애 1:2).

4:1 권세.

 히브리어는 삼손에게 있는 것과 같은 그런 육체적인 힘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지만(삿 16:5, 6, 15), 좀 더 넓은 의미로는 어떤 방면의 재능이나 능력을 일컬을 때 쓰인다(잠 24:5). 여기서는 이것이 강한 자들이 약하고 힘없는 자들을 거칠게 취급하는 것을 묘사한다.

4:2 산 자보다.

 욥 3:13 그리고 유다에 관한 그리스도의 말씀(마 26:24)과 비교하라. 어떤 극악한 상태와 어떤 특정한 관점에서는 삶을 계속하느니보다는 죽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솔로몬이 이 글을 쓴 것은 이런 관점에서이다. 그것은 수천 년간의 죄의 결과로 생긴 불평등과 악이 야기시킨 분위기를 나타낸다. 오늘날은 과거 어느 때보다 남녀들이 인생의 허무함을 더욱 깊이 느낀다.

4:2 복되다 하였으며.

 즉 “내가 축하하였으며.”

4:3 더욱 낫다.

 마귀의 소산물인 비관주의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구주에 대한 굳은 신뢰 로(마 11:28) 가장 잘 대처할 수 있다. 잠잠히 신뢰하라는 바울의 말과 비교하라(롬 5:1).

4:4 수고.

 문자적으로 “고생”, “노고”, “노력.”

4:4 여러 가지 교묘한 일.

 (「제임스왕역」에는 “every right work”[모든 옳은 일]로 되어 있음-역자 주). 문자적으로 “여러 가지 일의 능숙함.” 이 표현은 “성공적인 일” 혹은 “유익한 일”을 의미할 수도 있다.

4:4 시기를 받으니.

 경쟁은 경쟁 상대가 가까울수록 시기심과 괴로움을 더욱 격동시킨다. 여기에 제시된 원칙은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노동 조건, 사업상의 경쟁관계, 국제적인 문제들에도 적용된다.

4:4 바람을 잡으려는 것.

 곧 “바람을 따라잡으려고 애쓰는 것”(「개정표준역」). 세속적 성공을 행복의 보증으로 삼으려는 노력의 허무함을 나타내는 비유적인 말이다.

4:5 손을 거두고.

 문자적으로 “손을 모으고.” 게으름을 나타내는 히브리식 표현이다(참조 잠 6:10; 24:33).

4:5 자기 살을 먹느니라.

 유대인 주석자들은 “살”이라는 말 대신에 “고기”라는 말을 사용하여 오직 인생의 쾌락에만 관심을 갖고 식탁에 앉아 있는 멍청한 사람의 모습을 시사한다. 그들은 이 해석을 뒷받침하려고 출 16:8; 사 22:13을 인용한다. 아마 이 표현에 대한 적절한 설명은 게으른 멍청이는 극도의 가난에 빠지게 되고 그와 함께 있는 가족들도 같은 신세가 되게 한다는 말일 것이다.

4:6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문자적으로 “한 손 가득히 평온함을 채우는 것.” 히브리어는 찻종 모양의 손을 가리킨다. 여기의 평온함이란 물론 마음의 평화를 말한다. 이 말은 6:5에서 행복을 의미하는 “평안함”으로, 9:17에서는 잠잠함을 의미하는(참조 사 30:15) “조용히”로 나타난다.

4:6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최고의 이익을 올리기 위하여, 가지각색의 것들을 얻고자 애쓰는 중에 심한 활동과 초조하게 달려가는 삶을 매일 살아가지만 충만하고 행복한 삶은 이 세상 것들의 풍부함에 달려 있지 않다.

4:7 헛된 것을 보았도다.

 솔로몬은 삶의 또 다른 현상, 곧 탐욕에 관하여 생각한 것을 말하고 있다.

4:8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으니.

 수고 중에 있는 그를 고무시킬 만한 동기가 거의 없는 애처롭고 고독한 모습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부양하기 위한 노력은 고상하고 만족스런 과업이다. 사랑하는 자들을 위한 책임은 품성 계발에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런 동기가 없으면 사람은 자기중심적이 되고, 그의 내면에 있는 자비의 샘물은 말라버린다.

4:8 홀로.

 이 묘사는 친구들이나 가까운 벗들도 없이 홀로 지내는 한 외로운 사람에 대한 것이다. 그에게는 친척들도 없고 그를 계승하거나 그의 사업을 진척시켜 나갈 상속자도 없다.

4:8 마지 아니하며.

 즉 “중단하며.” “잘라 내다”라는 동사의 어근에서 유래했다. 홀로 있는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아무런 책임을 지고 있지 않으나 더 칭찬받을 만한 목적에서 나온 열정으로 계속 일하고 저축한다.

4:8 부를…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도.

 그는 많이 저축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많이 갈망한다. 부의 획득은 그에게 강박관념이 되었다(참조 잠 27:20). 자신의 현재 상태를 만족히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4:8 내 심령으로 낙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고.

 이 말은 “내 자신을 희생한다, 자신을 부인한다”는 말이다(네페쉬[nepes∨]의 이러한 쓰임새에 대해서는 시 16:10 주석을 참조하라). 탐심의 노예가 된 이 사람은 왜 그가 그처럼 쉼 없이 일하는가에 관하여 결코 자문해 보지 않았다. 욕망으로 인해 눈이 멀었으므로 그는 부를 쌓는 일에 자신을 바쳤지만 만족은 찾지 못했다. 근면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미덕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품안에서만 완전한 만족이 있다(롬 12:11; 엡 4:28; 딤전 6:8; 히 13:5). 게으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권장할 만한 것이 못된다(잠 12:24; 전 10:18).

4:8 무익한 노고로다.

 곧 “악한 일이로다”, “불행한 일이로다.”

4: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

 협력해서 일하는 두 노동자는 혼자 일하는 사람의 노임의 두 배 이상을 버는 경우가 흔히 있다. “상”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임금에 대한 일반적인 히브리어이다. 이 말은 종과 관련해서 사용되었고(창 30:28, 32, 33), 군인들과 관련해서(겔 29:18, 19), 삯일 나간 짐승들과 관련해서도(슥 8:10) 사용되었다.

4:10 넘어지면.

 히브리어 동사는 육체적으로 넘어지는 것에, 죽음에, 다른 사람의 권세에 말려드는 일에, 사업의 실패에 적용될 수 있다. 어떤 한 사람이 불행한 처지가 되었을 때 그의 짝이 와서 그를 구조해 주는 일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므로 여기서는 맨 마지막 의미가 더 적절하다. 고대에는 열악한 교통수단과 강도들 때문에 여행 조건이 대부분 위험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 사람이 실패할 수도 있는 여행을 두 사람은 안전하게 해낼 수 있었다. 협력은 그 가치를 측량할 수 없고, 고립은 대개가 위험하다. 제자들을 파송하는 것과 비교하라(눅 10:1). 잘된 일에 나타나는 동료의식과 상호간의 기쁨은 가장 가치 있는 축복이다(행 13:2; 14:27).

4:11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10절은 곤란 중의 협조와 후원에 관하여 말하고, 11절은 위로에 관해서 말한다. 여기서 솔로몬은 낮의 온기에 이어지는 밤의 냉기에 관하여, 그리고 자신의 겉옷이 유일한 침구가 되었던 일반인의 가난에 대하여 생각한다(참조 출 22:26, 27).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여기서는 협조와 보호의 축복이 강조되고 있다. 똑같은 진리가 “뭉치면 산다”라는 격언에도 나타나 있다.

4:12 삼 겹 줄.

 줄이 세 가닥이라도 따로따로 있으면 쉽게 끊어지지만, 그것들을 꼬아서 하나의 줄로 만들면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어떤 주석자들은 여기서 삼위일체의 암시를 본다고 주장하므로 이 절을 해석하는 데 정당하다고 할 수 없는 극단으로 치우쳤다. 그들은 나사로와 그의 두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 사이에 오고간 사랑과 우애와 같은 일을 인용하기도 하고, 예수님이 세 제자를 택하여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도록 한 일을 인용하기도 한다. 이런 기상천외(奇想天外)한 해석은 피해야 한다.

4:13 소년.

 “청년” 혹은 “젊은이”로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이 히브리어 단어는 17세 소년 요셉에 대하여(창 37:30), 그리고 성경 여러 곳에 나오는 “청년”들에 대하여 사 용되었다(왕상 12:8, 10, 14; 대하 10:8, 10, 14).

4:13 둔하여.

 (「제임스왕역」에는 “and foolish”[그리고 둔하여]로 되어 있음-역자 주). “그러나 둔하여”가 더 나을 것이다.

4:13 간함을 받을 줄.

 이렇게 번역된 단어는 “충고하다”, “계몽하다”, “권고하다”, “경고하다”라는 말의 어근에서 온 것이다. 왕은 노령으로 인해 완고해져서 자신의 길을 고집한다. 완고함으로 그는 모든 충고를 거절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그의 나라와 백성들에게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4:14 가난한.

 신하들의 복리에 무관심한 우둔한 왕은 폐위될 수도 있고, 큰 고생을 하다가 어쩌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4:14 옥에서 나와.

 문자적으로 “죄수들의 집에서 나와.” 아마 비유적으로 금지된 환경 가운데서 나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의미는 한 청년이 그의 앞에 놓인 불리한 처지를 극복하고, 그가 만약 현명하고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 인생의 길에서 성공하여 나라의 최고 지위에까지 오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참조 왕상 11:26~28).

4:15 내가 본즉.

 화제를 바꿀 때 쓰는 표현이다.

4:15 버금으로…소년.

 이 절은 폐위된 왕을 대신하여 그를 계승한 새로운 통치자의 열렬한 추종자들에 관한 언급일 것이다.

4:16 저의 치리를 받는 백성들.

 문자적으로 “그의 뒤에 있던 그들 모두.” 이 의미는 “그가 다스렸던 자들”이다. 히브리인들은 지도자를 “앞서 행하는 자”라고 한다(삼상 18:16; 대하 1:10).

4:16 무수하였을지라도.

 15절에 언급된 군중들의 열성에 관한 계속적인 묘사이다. 이것은 앞 구절의 히브리어가 확증해 주는데, 그것을 좀 더 잘 이해하면 “그의 다스림을 받던 그들 모두일지라도”라는 뜻이 된다.

4:16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오늘의 대중의 갈채가 내일의 집단적인 비난이 될 수도 있다. 애굽에 있던 요셉은 세상 관심의 변덕스러움을 잘 예증한다(출 1:8).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6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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