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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3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전도서

전도서 3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5. 18. 06:25

<전도서 3장 흐름정리>

여기서 전도자는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루어질 때가 정해져 있음을 역설한다(1~8절). 이러한 깨달음은 자신의 미약함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 앞에 순종하도록 만든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섭리에 순종할 때, 먹고 마시는 일이나 수고하는 모든 일이 의미가 있고 참된 만족과 기쁨을 찾게 된다(9~15절). 또한, 하나님의 주권을 깨달을 때, 이 세상에 불의가 창궐하는 일로 인해서도 좌절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주권자께서 공의로 모든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17절). 비록 사람이나 짐승이나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기는 마찬가지지만, 여호와께 소망을 두는 인생은 영원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


<전도서 3장 줄거리>

1. 때의 변화는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로 인해 우리의 허무한 삶에는 괴로움이 더해짐.

11.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는 빼어나게 우수한 점이 있음.

16. 하나님은 사람들의 일을 심판하실 터인데, 이는 인간이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함임.


<전도서 3장 개역한글>

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 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9.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2.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14.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15.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16. 내가 해 아래서 또 보건대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있도다      

17.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목적과 모든 일이 이룰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18.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19.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것이 헛됨이로다      

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21.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22. 그러므로 내 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전도서 3장 성경주석>

3:1 기한.

 문자적으로 “정해진 때.” “결정하다”, “정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의 어근에서 유래했다. 그러므로 기한은 단순히 어떤 편의적인 시간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이다. 하나님은 여러 자연 현상을 위하여 어떤 기한들을 정하셨다(참조 애 3:37; 약 4:15).

3:1 목적.

 “~을 기뻐하다”, “~을 즐기다”라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어근에서 온 말이다. 그러므로 이 명사는 원래 “사람이 기뻐하는 것”, 곧 천직 혹은 취미를 의미한다. 바로 이 명사가 사 58:3, 13; 말 1:10에서 “오락”으로, 시 1:2; 16:3에서는 “즐거움”으로 번역되었다.

3:1 때.

 “때”에 대하여 보통으로 쓰는 히브리어에서 온 말이며, 흔히 어떤 한 기간의 시작을 의미한다.

3:2 날 (때).

 (「제임스왕역」에는 “to be born”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어떤 이들은 이 동사형을 능동으로 생각하여 그것을 “낳을 때”(a time to bring birth)로 번역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동사를 자동사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태어날 때”(to be born)로 번역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3:2 죽을 (때).

 한 개인의 삶에서 출생과 죽음은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당연지사이다.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이 세상으로 들어오는 시간을 맘대로 할 수 없고, 정상적인 환경에서는 그가 세상에서 떠나는 시간도 거의 마음대로 할 수 없다.

3:2 심을 (때).

 이 표현은 그 앞에 있는 표현과 잘 대응이 되는데, “심다”는 “낳는다”와 짝을 이루고 “뽑다”는 “죽다”와 짝을 이룬다. 후자는 인간의 생명과 관계가 되고 전자는 식물의 생명과 관계가 된다.

3:2 뽑을 (때).

 문자적으로 “뿌리를 뽑을 (때).” 아무리 좋은 과수도 잘려 나가야 할 때가 온다.

3:3 죽일 (때).

 솔로몬이 여기서 전쟁에 관한 말을 하는지 아니면 다른 상황을 말하는지에 관해 주석자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린다. 솔로몬은 범죄자들의 처형에 관해서 말하고 있거나, 사회를 위협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에 관해서 말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가 상처 입은 가축을 생각하고, 그 상처의 정도가 그 짐승을 죽여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이 더 자비로운 일인지, 그를 치료해 주는 것이 더 나을지를 결정해야 할 상황을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3:3 헐 (때).

 건물들은 헐어 버리고 그 대신 더 편리한 것들을 지어야 할 때가 있다. 수천 년 동안 어떤 문명의 잔해를 새로운 문명의 건축 자재로 이용하는 것이 근동에서는 일반적인 습관이 되어 왔다. 여기서 솔로몬이 자신의 방대한 건축 계획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3:4 울 (때).

 때로는 억압된 감정을 표출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좋다. 이스라엘은 유랑 중에 많이 울었다(시 137:1).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웃을 날도 올 것이다(시 52:1~6).

3:4 슬퍼할 (때).

 “슬퍼하다”(mourn)로 번역된 이 말은 동방 사람들이 슬픔에 빠졌을 때 공공연하게 큰 소리로 애곡하여 슬픔을 표현하는 것을 일컫는 전문용어이다(참조 삼하 3:31; 렘 4:8; 9:17~22; 49:3).

3:4 춤출 (때).

 특히 동방에서 춤추는 것은 고대 종교의식과 축제의식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참조 출 15:20; 32:19 주석; 삼하 6:14, 16; 대상 15:29; 마 11:17).

3:5 돌을 던져 버릴 (때).

 여기에 나온 이 말은 아마도 농사짓는 데 방해가 되는 돌들을 밭에서 치워 밭과 포도원의 옹벽을 쌓는 데 사용하는 것을 말할 것이다(사 5:2, 5).

3:5 안을 (때).

 아마 남편과 아내의 결혼 관계를 나타내는 완곡어법이거나(참조 잠 5:20) 아니면 게으름을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일 것이다(참조 전 4:5에는 “우매자는 손을 거두고”라고 되어 있음).

3:6 찾을 (때).

 문자적으로 “찾을 (때).” 탐색하는 것 혹은 찾는 것에 공통적으로 쓰이는 히브리어이다.

3:6 잃을 (때).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하고 포기할 (때)”가 더 나을 것이며, 그것은 “찾다”라는 표현과 멋진 균형을 이룬다. 이 말은 교인들 중 잃어버린 신자들을 언급한 것일 수도 있다. 지나치게 열렬히 찾고자 하여 압력을 가하면 가까이 있는 가족들로부터 불쾌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거나 아무런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3:6 버릴 (때).

 이 표현의 예증으로 왕하 7:15; 잠 11:24, 25; 욘 1:5; 마 16:25; 행 27:18, 19, 38을 참조하라.

3:7 찢을 (때).

 참조 창 37:29; 삼하 1:11; 왕상 11:11; 대하 23:13; 욥 1:20; 2:12.

3:7 잠잠할 (때).

 “침묵이 금”일 경우가 있다(참조 레 10:3).

3:8 사랑할 (때).

 마 5:43, 44에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비교하라.

3:8 전쟁할 (때).

 이 말씀이 진리임을 설명할 만한 하나의 예증은 아직 오지 않은 여호와의 큰 날의 전쟁(계 16:15~17)과, 뒤따라오는 영구한 평화(계 21, 22장)가 될 것이다.

3:9 무슨 이익이 있으랴.

 참조 1:3 주석. 솔로몬의 질문은 부정적인 대답을 암시한다. 인간의 삶이 굽이마다 방해를 받을 때 자신의 형편을 개선하기 위하여 그처럼 애쓸 필요가 왜 있단 말인가? 그는 그의 인생길에 시험거리를 갖다 놓으시는 분은 사랑의 아버지이며 이를 통해서 그분은 지상의 자녀들을 훈련시켜 영원한 유익을 얻게 하신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참조 히 12:11; 계 3:19~21).

3:10 노고.

 참조 1:13 주석. 불멸의 생명을 구하는 자들에게(참조 롬 2:6, 7) 필요한 삶의 엄격한 훈련은 모두 전능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의 손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자신의 삶의 길을 택하고, 자신의 품성을 계발하고,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할 자유가 있다. 실제적인 생활의 난관들은 하나님의 지도 아래에서만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가 있다.

3:11 아름답게.

 창 1:31에 나오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관한 설명과 비교하라. 모든 것이 “좋았”을 뿐 아니라 아름다웠고, 미학적으로도 만족스러웠고, 실제적인 용도에 완전했을 뿐 아니라, 보기에도, 취향에도 좋았다. 몇 가지 사물뿐 아니라 “모든 것”이 다 그러했다.

3:11 또.

 이 말은 저자가 독자들이 간과하지 않기를 바라는 어떤 추가적인 요점을 암시한다.

3:11 영원.

 (「제임스왕역」에는 “world”[세상]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올람(‘olam). “숨기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의 어근에서 온 말이다. 그러므로 올람은 분명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올람의 의미에 관하여 좀 더 연구해 보려면 출 12:14; 21:6 주석을 참조하라. 올람을 “세상”으로 번역한 것은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 “영원”, “영구”, “연속”으로 되는 것이 더 일반적일 것 같다. 미래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내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시공의 무한성에 관한 이같은 인식은 이 세상 사물의 덧없는 성질에 불만족스러움을 불러 일으킨다. 참조 14절 주석.

3:11 마음.

 그들의 사상 속에 있다는 말이다. 현재의 물질세계가 인간 존재의 총화를 구성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인간은 두 세계와 연결된다. 즉 육체적으로는 세상에, 지성적·정서적·심리적으로는 영원한 세상에 연결된다. 죄로 인해 어두워진 의식을 갖고서도 인간은 이 불만족스러운 삶의 좁은 경계선 저 너머에서 삶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깨닫고 있는 것 같다.

3:11 주셨느니라.

 문자적으로 “주어졌다.” 이 의미는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하심을 시사하는 것으로 강조되어야 한다.

3:11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인간의 지성만으로는 하나님이 창조한 경이로운 사물들 속으로 혹은 하나님이 계시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신 영원한 신비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 사실 자체가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더 밀접한 연합을 구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3:13 먹고 마시는 것.

 금욕주의적인 생활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배치된다. 사람이 자신의 필요와 행복을 위하여 제공된 좋은 것들을 적절히 즐기는 것이 창조주의 뜻이다.

3:13 또한.

 참조 11절 주석.

3:14 영원히.

 11절에서 “영원”으로 번역된 것과 동일한 히브리어 단어에서 유래했다(참조 11절 주석). 여기서 솔로몬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일 가운데 작용하는 하나님의 뜻의 실제적인 불변성을 증명한다(참조 시 33:11; 사 46:10).

3:14 사람으로…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

 비굴한 공포심이 아니라(참조 신 4:10; 6:5 주석) 하나님의 속성(시 40:3; 64:9)과 사람의 일상사에 역사하는 그분의 뜻에 대한 밝은 이해 위에 기초한 경외심이다(참조 사 45:18; 말 3:6; 계 15:3, 4).

3:15 옛적에 있었고.

 이 절은 하나님의 창조물들에 대한 완전성과 영원성에 관한 회화적 표현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분께는 과거도 미래도 없고 무궁한 세월이 항상 현재일 뿐이다(참조 계 1:8).

3:15 하나님은…다시 찾으시느니라.

 문자적으로 “하나님은…찾으신다.”

3:15 이미 지난 것.

 문자적으로 “추적자.” 라다프(radap), “추적하다”, “추격하다”, “박해하다”에서 유래했다. 수 8:16에서는 “따르다”, 렘 29:18에서는 “학대하다”로 번역했다(「개역한글판」에는 수동형 “학대를 당하다”로 번역되어 있음-역자 주). 여기에 있는 사상은 아마도, 하나님 앞에는 과거의 모든 것이 마치 현재의 것인 양 공개된다는 뜻일 것이다. 그분은 자신의 생각을 과거 속으로 투영시키기를 마치 현재와 미래에 관하여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하신다. 만일 이것이 그 의미라면 “추적자”는 마치 그들이 서로를 추적하고 있던 것처럼 의인화된 과거 시대의 순환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3:16 재판하는 곳.

 즉 “정의의 장소.” 말하자면 사법 관청으로 바쳐진 장소이다. 정의 구현을 위해 구별된 바로 이 법정들에서 악이 왕좌를 차지한 중에 뇌물과 부패가 생겼다.

3:16 악.

 “사악”으로 번역된 것과 동일한 히브리어에서 온 말이다. 악(iniquity)과 사악(wickedness)의 두 용례 중에서 후자가 더 적합하다. 솔로몬은 “의”라는 말로 정의를 다루는 일을 구현하고 그 화신이 되어야 할 재판관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첫 번째 표현은 그 장소를 가리켰고, 두 번째 표현은 그곳에서 권위를 갖고 앉아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3:17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하나님과 관련하여 사용된 “심판하다”의 히브리어 동사는 그분이 의인과 악인의 송사를 판단하여 결정짓는 재판관으로 행하실 뿐 아니라, 그 형벌을 집행하는 분이라는 사상을 표현한다.

3:17 모든 목적.

 참조 1절 주석. 같은 히브리어 단어가 전 5:4; 12:1; 사 44:28; 46:10; 말 1:10에서는 “기쁨”으로, 말 3:12에서는 “아름다워짐”으로 번역되었다.

3:17 일.

 참조 1:14 주석.

3:18 일.

 “반차”(시 110:4)와 비교하라. 이 구절 전체를 좀 더 잘 번역하려면 단순히 “사람의 아들들에 관하여”라고 해야 할 것이다.

3:18 시험하시리니.

 문자적으로 “정결케 하다”, “택하다”, “시험하다”, “증명하다.” 이 동사는 사 52:11에서는 “정결케 할지어다”, 단 11:35에서는 “정결케 되며”, 단 12:10에서는 “스스로 정결케 하여”로 번역되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하나님이 사람을 정결케 하고 깨끗케 하기 위하여 연단의 수단으로 그들을 시험하는 경향을 표현한다(참조 욥 5:17; 23:10; 참조 전 3:19 주석).

3:18 짐승.

 대개 “가축”으로 번역됐다. 이 말은 “말 못하게 되다”라는 단어의 어근에서 유래되었고 “말하는 데 방해를 받다”, “말문이 막히다” 등의 의미를 가진 아랍어와 관계가 있다.

3:18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자신의 죄 많고 부정한 상태를 인정하는 사람은 희망이 있다.

3:19 임하나니.

 19절에서 “임하다”라는 말이 세 번 나온다. 이 세 경우 각각은 “기회”, “운명”, “행운”이란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에서 온 것인데, 그것들은 “마주치다”, “만나다”, “일어나다”라는 동사에서 온 것이다. 이 말의 명사형이 룻 2:3과 삼상 6:9에는 “우연히”로, 삼상 20:26에는 “무슨 사고가 있어”로, 전 9:2, 3에는 “임하는 모든 것”으로 나타난다.

3:19 호흡.

 히브리어 루아흐(ruah.). 생기가 떠날 때 생물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죽는다(참조 21절 주석).

3:19 죽음.

 죽음이라는 불가해(不可解)한 현상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든 산 자의 운명이다. 시인은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12)라고 말한다. 죽음의 지배 아래 있다는 점에서는 인간이 짐승들보다 결코 나은 것이 없다.

3:19 뛰어남이 없음.

 모든 산 자는 호흡의 중단과 함께 죽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육체적 죽음의 결과는 다 똑같다. 외관상으로는, 사람이 짐승보다 나은 것이 조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영감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이 사람을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실 것을 믿는다(고전 15:51~58).

3:20 흙.

 참조 창 2:7; 3:19; 단 12:2.

3:20 한 곳.

 그곳은 무덤이다(참조 욥 7:9, 10).

3:21 혼.

 히브리어 루아흐(ruah.). 19절에서 “호흡”으로 번역했다. 생명의 원칙은 물리적 영역, 즉 육신의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그분께로 돌아간다(12:7). 21절에서 루아흐는 혼(spirit)으로 번역되었다. 사람과 짐승이 다같이 루아흐를 가졌고, 사람의 루아흐와 짐승의 루아흐가 같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그렇다면 만약 죽을 때에 사람의 루아흐, 즉 사람의 “영”이 육체를 떠나 의식 있는 존재가 된다면 짐승의 루아흐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사람이 죽을 때 육체를 떠난 의식 있는 “혼”이 계속 살아 있다고 추론할 만한 것은 없고, 짐승에 대해서 이렇게 주장하는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없다. 21절에서 솔로몬은 사람의 루아흐는 위로 올라가고, 반면에 짐승의 루아흐는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을 누가 알며 누가 증명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질문을 하고 있다. 솔로몬은 그러한 과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어느 누가 아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루아흐 자체가 그것을 증명하게 하자. 여기서와같이 문자적 호흡을 가리키는 루아흐의 용도(참조 욥 9:18; 19:17)와 생명의 원리를 가리키는(참조 창 6:17; 7:22) 루아흐의 비유적 용도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명”을 의미하기 위해서 루아흐를 비유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피”에 대하여 비유적으로 사용하는 것과도 유사하다(참조 창 4:10; 9:4 주석).

3:21 누가 알랴.

 「개정표준역」에는 “사람의 혼이 위로 올라가는지의 여부를 누가 알랴?”로 되어 있다. 거룩한 지혜가 없이는 아무도 모른다. 육체의 운명은 부패의 과정을 거쳐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알려져 있지만 인간의 지혜로는 그 “혼”, 즉 “호흡”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 외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에 관해서 확인할 수 없다(참조 12:7 주석).

3:22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

 즉 현세의 삶이 제공하는 것에서 만족과 기쁨을 발견하라. 이것은 영원한 사물에 확고하게 기초한 믿음을 갖지 아니한 사람의 정상적인 생각이다.

3:22 신후사(身後事).

 무덤 저편에 무엇이 있느냐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지식의 범위 밖에 속한다. 마찬가지로 죽은 자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는 것도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다. 하나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다(참조 살전 4:14~18). 옛날의 사두개인들처럼 미래의 부활에 대해서 믿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므로(참조 마 22:23~32), “하나님의 아들들”(요일 3:1, 2)은 다시 살 것이다. 무덤 저 너머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예수께서는 확실하게 말씀하셨다(고전 15:16~22; 딤후 1:10).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6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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