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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2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전도서

전도서 2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5. 11. 06:23

<전도서 2장 흐름정리>

앞의 내용에 계속 연속되는 부분으로서, 헛됨의 사례들을 나열하고 있다. 전도자는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온갖 쾌락을 즐겨보았고 술로 흥을 돋워보기도 했으며 큰 사업을 일으켜 그 누구보다 더한 부귀를 누려보았다(1~11절). 하지만 그런 것들이 허무한 마음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또한,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지혜를 소유한 자신도 우매한 자들과 마찬가지로 죽으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허무했다(12~17절). 그래서 얻은 결론이 바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 안에서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데에 만족이 있다는 사실이었다(24~25절).


<전도서 2장 줄거리>

1.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 행로의 헛됨.

12.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더 낫기는 하지만 그 둘에게 임하는 일은 다 같음.

18. 인간의 수고 또한 헛된 것임은, 그 수고의 결과가 모르는 이에게 넘어가기 때문이요.

24. 수고 중에 낙을 누리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음은,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임.


<전도서 2장 개역한글>

1.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본즉 이것도 헛되도다

2.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노라      

3. 내 마음에 궁구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어떻게 하여야 어리석음을 취하여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활함에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 하여      

4.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5.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6.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7.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으며      

8.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9.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10.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11.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12.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의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꼬 행한지 오랜 일일 뿐이리라      

13. 내가 보건대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두움보다 뛰어남 같도다      

14. 지혜자는 눈이 밝고 우매자는 어두움에 다니거니와 이들의 당하는 일이 일반인 줄을 내가 깨닫고      

15. 심중에 이르기를 우매자의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가 어찌하여 지혜가 더하였던고 이에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16. 지혜자나 우매자나 영원토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다 잊어버린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17.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      

18. 내가 해 아래서 나의 수고한 모든 수고를 한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자에게 끼치게 됨이라      

19. 그 사람이 지혜자일찌 우매자일찌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서 내 지혜를 나타내어 수고한 모든 결과를 저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20.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도리어 마음으로 실망케 하였도다      

21.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써서 수고하였어도 그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업으로 끼치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라 큰 해로다      

22.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 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25. 먹고 즐거워하는 일에 누가 나보다 승하랴      

26.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도서 2장 성경주석>

2:1 내 마음에.

 곧 “내 자신에게”(「개정표준역」). 여기서 솔로몬의 마음의 이성적인 측면이 육체적인 욕망과 만족을 나타내는 측면을 향해 말하고 있다. 이 독백은 의지의 역할과 같다. 눅 12:17~19에 나오는 부자가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예와 비교해 보라.

2:1 시험적으로.

 어떤 특정한 행동의 결과를 알아보기 위하여 “실험” 혹은 “경험”을 해 보는 것을 뜻한다.

2:1 즐겁게.

 즉 “쾌락을 누리게.” 히브리어는 광범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기쁨”, “즐거움”, “흥겨움” 등으로 모두 육체적 감각에 기쁨을 주는 것이다. 비록 다른 곳에서 이 말이 종교적인 기쁨과 행복을 나타낼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세상적 쾌락에 참여함으로써 일깨워지는 감정과 욕구에 국한시켜 사용되었다.

2:1 낙을 누리라.

 문자적으로 “행운을 보라”, 즉 “삶의 모든 좋은 것을 한껏 맛보라”는 뜻이다. 현대의 관용구적 상당어구는 “좋은 시간 보내세요”(have a good time)가 될 것이다. 솔로몬은 세상이 주는 쾌락 속에서 지속적인 만족을 발견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그것을 싫증이 날 정도로 즐겨 보라고 제안하였다.

2:2 웃음.

 히브리어 스호크(seh.oq). 이 말은 “웃음거리”(잠 10:23) 혹은 “조롱거리”(애 3:14)를 뜻한다. 동사형은 “장난하다”(삼하 2:14)를 의미하는 것 같다. 감각적 쾌락과 오락을 인생의 궁극적인 행복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내리막길로 가는 큰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참조 선지자와 왕, 76).

2:2 미친 것.

 문자적으로 “어리석은 것.” 1:17에서 이 말과 관련된 히브리어와 비교하라.

2:2 희락.

 히브리어는 오만하고 정욕적인 환락과 일반적이고 합법적인 쾌락에 다같이 쓰인다.

2:2 저가 무엇을 하는가.

 즉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문자적으로 “이것이 무엇을 하는가?” “그것이 무슨 영향을 끼치는가?” 혹은 “그것이 무슨 결과를 가져오는가?” 롬 6:21에 있는 바울의 적절한 질문과 비교하라.

2:3 다스림을 받으면서.

 문자적으로 “안내를 받으면서.” 같은 동사가 “인도하다” 혹은 “지도하다”와 같은 여러 말로 번역되었다(신 4:27; 28:37; 시 48:14; 78:52; 사 49:10). 시사된 은유에 의하면, 솔로몬은 자신의 훌륭한 판단력이 식욕과 정욕을 통제하여 절제의 길에 머무르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는 시험적으로 하는 것이므로(참조 1절 주석) 양식(良識)을 완전히 포기하거나 도에 지나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물론 이런 생각은 감각적 쾌락에 굴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취지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들을 적당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은 치명적인 기만이다.

2:3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제임스왕역」에는 “to give myself unto wine”[내 자신을 술에 내어 줄까]로 되어 있음-역자 주). “술로 육신을 상쾌하게 하다”가 더 낫다. “내어 주다”로 번역된 말은 문자적으로 “이끌다”를 의미한다(참조 신 21:3; 시 28:3; 호 11:3). “내 자신”은 히브리어로 브사리(besari)인데 문자적으로 “나의 육신”, 곧 육체적인 본질, 몸을 가리킨다. “술”은 히브리어 야인(yayin)인데(참조 민 27:8 주석; 창 9:21), 성소 봉사와 이교 제의에서 “전제”를 묘사하는 데에 사용되었다(출 29:40; 레 23:13; 민 15:5, 7, 10; 28:14). 그러므로 솔로몬은, 마치 육신이 술의 형상으로 된 말[馬]에 끌리는 수레인 양 “나는 내 육신을 취하게 하는 음료로 이끌었다(혹은 기운을 북돋웠다)”라고 말하고 있다.

2:3 어리석음.

 이것은 아마 그 자체로서는 실제로 죄된 것이 아닐지라도 “죄 가운데로 이끌고 갈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하는 것 같다. 그 의미는 솔로몬이 만족이 어떤 것인지 경험을 통하여 배우되 그것들에게 지배당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을 기대하고서 그 실험으로 많은 것을 얻어 내고자 노력했다는 뜻인 것 같다.

2:3 인생.

 히브리어 아담(’adam), 남자와 여자를 포함한 포괄적인 용어(참조 창 1:26; 3:17; 민 24:3).

2:3 종신.

 문자적으로 “숫자”, “이야기.” 사파르(sapar), “자세히 얘기하다”, “헤아리다”, “이야기하다”, “측정하다”라는 뜻을 가진 어근에서 온 말이다. “책”이라는 뜻을 가진 명사 세페르(seper)도 같은 어근에서 온 말이다.

2:3 알까 하여.

 솔로몬은 여기서 그의 목적을 분명하게 말한다. 어느 누구도 그처럼 위험하고 어리석은 짓을 해보라고 그에게 요구한 적이 없다. 하나님이 그 일을 해보도록 그에게 권하였을 리도 없다.

2:4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제임스왕역」에는 “I made me great works”[나는 나에게 큰 사업을 하게 하였노라]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이것은 분명히 그가 건축한 건물들의 크기와 화려함에 관한 언급이다. 이것은 분명히 1~3절의 방종보다는 훨씬 나은 모양의 방종이었다(참조 왕상 7:1; 9:1).

2:4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참조 왕상 7:1~12; 9:15~19. 솔로몬은 방대한 건축 공사에 몰두했다.

2:4 포도원.

 참조 아 8:11. 솔로몬 당시의 일반인들의 경제 상태는 왕상 4:25에 다음과 같이 암시되어 있다.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

2:5 여러 동산.

 문자적으로 동사 “담으로 에워싸다”, “둘러싸다”에서 유래한 “울타리.” 근동 지방의 염소와 나귀와 다른 동물들의 자유로운 방목 습관 때문에, 튼튼하고 손질이 잘 된 울타리가 없는 동산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2:5 과원.

 히브리어 파르데스(pardes). 페르시아 왕의 거대한 동식물 공원을 가리키는 페르시아어 파이리-다에자(pairi-dae

 za)에서 유래했다(참조 창 2:8 주석). 그러므로 파르데스는 왕실 소유의 금렵지나 동산 혹은 공원이었다. 영어의 “paradise”(낙원)라는 말은 헬라어 파라데이소스(paradeisos)의 음역이다. 파르데스는 느 2:8에서 “삼림”으로, 아 4:13에는 “과수”로 나타난다.

2:5 과목.

 솔로몬은 거대한 원예 사업 계획에 몰두해 있었고, 우리가 공원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의 과원들을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과수들도 전문적으로 연구했음이 분명하다. 예루살렘 남쪽 언덕 기슭에 그는 왕궁 정원을 갖고 있었으며(왕하 25:4), “포도의 집”이라는 뜻의 벧학게렘에는 그의 포도원이 있었다. 이 포도원은 예루살렘 서쪽 6.4킬로미터 지점에 있던(렘 6:1) 아인 카림(‘Ain Karim)과 대체로 동일시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예루살렘 남쪽 4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라모트 라헬(Ramoth Rahel)과 동일한 곳으로 보고 있다. 바알하몬(아 8:11)에도 또 다른 포도원이 있었다.

2:6 못.

 팔레스타인의 강수량은 물을 공급하기에 턱없이 부족하였다(참조 제2권, 110; 창 12:10 주석). 오늘날은 관개(灌漑)가 필수이지만, 고대에도 농부들은 집수정(集水井)을 파서 물을 저장하였다. 느 2:14의 “왕의 못”을 요세푸스(Wars v. 4, 2)는 “솔로몬의 못”이라고 부른다. 이른바 솔로몬의 못들은 아마도 로마 시대의 것 같으며,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은 길이 182.9미터, 너비 63.1미터, 깊이 15.2미터 정도이다. 이 못들은 베들레헴 동남쪽 약 4.8킬로미터 지점에 있다. 솔로몬은 물고기 부화장들도 만들어서 여러 종류의 물고기를 길렀던 것 같다(아 7:4).

2:7 노비.

 솔로몬의 방대한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종자들과 일꾼들이 필요했던 것 같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공공 시설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왕상 10:5). 솔로몬은 분명히 히브리인이 아닌 노예들을 두고 있었을 것이다(왕상 9:21; 대하 8:8). 또 동시에 노예라고 하기에는 좀 부적당한 다수의 히브리인 종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참조 출 21:2, 20; 신 15:12, 15 주석).

2:7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문자적으로 “그 집의 아이들이 내게 태어났으며.” 이들은 그가 “가진” 노예들 외에 더해진 자들이거나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얻은 자들이었다. 팔려 왔거나 포로로 잡혀온 노예들은 자녀들도 있었을 것이다. 솔로몬의 종복들의 수에 관해서는 왕상 4:21~27; 10:25, 26을 참조하라.

2:7 소와 양떼.

 (「제임스왕역」에는 “great and small cattle”[크고 작은 가축들]로 되어 있음-역자 주). 「개정표준역」에는 “소떼와 양떼”로 되어 있다. 성전 봉헌 시에 드린 희생제물의 수(왕상 8:63)로 미루어 볼 때 솔로몬의 소떼와 양떼의 수는 엄청난 규모였음이 분명하다. 희생제물로 드려진 것 외에 왕이 부리고 있던 노예들과 군인들도 엄청난 양의 고기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참조 왕상 4:22, 23; 대상 27:29~31).

2:8 은금.

 귀금속과 은과 금으로 된 기물에 나타난 솔로몬의 부에 대해서는 왕상 9:28; 10:14~27; 대하 1:15; 9:20~27을 참조하라.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왕이 요구한 조공을 왕궁 곳간에 있는 것 일부로 바쳤다(왕하 18:14~16). 히스기야는 또한 바벨론 왕의 사자들에게 보고(寶庫)를 보여 주었다(왕하 20:13).

2:8 왕들의 보배.

 (「제임스왕역」에는 “peculiar treasure”[특수한 보배]로 되어 있음-역자 주). 문자적으로 “재산.” 아마 솔로몬이 징수해 들인 여러 종류의 공물과 세금에 관한 언급일 것이다. “특수한 보배”로 번역된 말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도 적용한다(출 19:5; 시 135:4; 참조 신 7:6; 14:2; 26:18; 말 3:17, “나의 특별한 소유”).

2:8 여러 도의(of the provinces).

 정관사는 이 구절을 아마도 “그리고 그들의 도”라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피지배국의 통치자들과 그 백성들에게서 징수한 공물을 가리키는 말이다(참조 왕상 4:21, 24; 10:15).

2:8 노래하는 남녀.

 솔로몬은 여러 나라에서 온 방문객들을 접견하는 일들을 했기 때문에 손 님 접대를 위해서 꽤 큰 연회를 자주 열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서 직업적인 큰 연예인단이 필요하였을 것이다(참조 삼하 19:35; 암 6:5).

2:8 처와 첩들을.

 (「제임스왕역」에는 “musical instruments”[악기들]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쉿다 워쉿도트(s∨iddah wes∨iddot), 대체로 “많은 첩”, 문자적으로 “첩과 첩들”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쉿다는 어원이 불확실하지만, 전쟁에서 패한 백성의 여인들을 취하는 것과 관련하여 “약탈하다”라는 동사에서 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또 아랍어의 “젖게 하다”와 동의어인 어떤 동사에서 오지 않았나 생각되는데, 이 단어에서 여자의 젖가슴을 뜻하는 히브리어가 파생되었다. 「70인역」은 “술 따르는 사람(남녀 다 포함)”을 암시하고 있다. 아마도 솔로몬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문자적으로 “젖가슴”)와 첩들(문자적으로 “젖가슴들”)을 두었노라.” 물론 솔로몬은 그렇게 하였다. 이 설명에 의하면 쉿다 워쉿도트는 라함 라하마타임(rah.am rah.amatayim)과 비교될 것인데, 그 말의 뜻은 “한두 처녀”, 문자적으로 “한 자궁 또는 두 자궁”(삿 5:30)이다.

2:8 많이.

 이 말은 번역자들이 덧붙였다.

2:9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느부갓네살이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단 4:30)라고 자신의 영광을 자랑할 때와 똑같은 정신으로, 솔로몬은 흡족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그의 치세의 융성함을 나타낸다. 여기서 솔로몬은 교만과 자만심으로 자신의 부와 지혜가 모든 선임자보다, 심지어는 아버지보다도 낫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2:9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문자적으로 “나의 지혜가 나의 명령을 대기하고 서 있어서.” 이 말은 “그의 지혜가 모든 재산을 취득하는 일을 돕기 위하여 그의 곁에 서 있었다” 혹은 “지혜가 그를 지나치게 방종하지 못하도록(참조 3절 주석) 붙들어 주었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유대인 주석들은 이 두 사상을 다 포함한다고 말한다. 솔로몬은 어리석음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마치 술 취한 사람이 자신은 정신이 말짱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였다.

2:10 원하는 것.

 히브리어 샤알(s∨a’al), 문자적으로 “구걸했다”, “요청했다.” 히브리인의 흔한 이름인 샤울(s∨a’ul), “사울”(Saul), 문자적으로 “요청했다”는 이 어근에서 유래한다(참조 삼상 9:2 주석). 여기서 솔로몬은 자신이 극단으로 나갔다는 것과 그가 시험해 보지 않은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참조 요일 2:15~17).

2:10 즐거워하는 것을…기뻐하였음이라.

 히브리어 심하…사메아흐(simh.ah…sameah.). 명사가 동사에서 파생했다. 이 두 말은 종교적 경험이든, 합법적인 쾌락이든, 노동이나 방탕한 유희 속에서든 실제적으로 모든 종류의 즐거운 감정에 대하여 말할 것이다. 확실히 솔로몬은 자신이 궁구하고 실험해 본 모든 것의 열매를 바로 맛보았음을 말하고 있다.

2:10 분복.

 전리품이든 약탈물이든, 음식이든 재산이든 혹은 생활양식이든, “몫” 혹은 “상품”을 말한다. 시 50:18에서는 “동류”로 번역되었는데, 그것은 간음하는 자들의 친구가 되는 것을 말한다. 분명히 솔로몬은 그의 삶의 방식, 즉 그의 행복 추구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2:11 본즉.

 문자적으로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기 위하여 “내가 눈을 돌린즉.” 히브리어는 “무심코 보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이 어근에서 유래된 명사는 “얼굴”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로서, 어떤 사물에 주의를 기울이기 위하여 그 쪽으로 얼굴을 돌린다는 생각을 내포한다. 또한 히브리어에서는 마치 솔로몬이 “나는 개인적으로 자세히 살펴보았다”라고 말한 때처럼 강세 대명사가 사용된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vaxation of spirit). 연회, 축제, 음악, 관능적 쾌락, 이 모든 것은 다 영속적인 만족을 주지 못한다. 요 4:24에 의하면 많은 영들 중 한 영이라는 의미에서 “한” 영이 아니고, 본질적이고 절대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은 영”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인간적인 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오직 이러한 연합 속에서만 인간은 완전한 만족과 충족을 발견할 수 있다. 솔로몬은 세상의 모든 쾌락이 그저 단순한 “바람”이요 “호흡”이며 “바람을 잡으려는 노력임”을 발견했다(참조 1:14 주석).

2:11 해 아래서.

 이 표현은 전도서에 29회 나오는데, 이는 인간의 활동 범위에 관해서 하는 말이다. 유사한 표현들이 여러 다른 언어에서도 발견된다.

  무익(no profit). 참조 1:13 주석. “유익”(profit)이라는 단어는 전도서의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이다. 이 단어는 전도서에서 10회 나타나고 구약의 다른 책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솔로몬은 그의 모든 경험과 사업 그리고 자신이 탐닉한 쾌락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익이 무엇인지를 시험해 보았다. “유익”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어근의 문자적인 의미는 “잉여금” 혹은 “차감 잔액”으로, 아마도 유대인들의 상거래에서 사용되던 말로 시사되어 왔다.

2:12 내가 돌이켜.

 참조 11절 주석. 이때까지 솔로몬은 물질생활의 기쁨들을 실험하고 고려해 왔었다. 이제 그는 실제적인 면에서 지혜와 어리석음에 관한 시험을 시작한다.

2:12 무슨 일을 행할꼬.

 이 구절의 문자적인 번역은 “왕의 뒤에 올 사람은 무엇을 위해서인가?”이다. 그 의미는 아마도 “솔로몬보다 못한 사람이 그가 해 본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질문인 듯하다. 그는 왕이었고 모든 자원을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었고, 더 나아가 그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2:12 행한 지 오랜 일일 뿐이리라.

 “왕의 뒤에” 오는 그보다 못한 사람은 솔로몬이 이미 이룬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리라고는 거의 기대할 수 없었다. 솔로몬은 이 세상 쾌락의 헛됨과 무익함을 이미 증명하였다. 그러므로 그 문제는 이제 일단락지어졌다고 생각하였다.

2:13 내가 보건대.

 대명사는 강조형이다. 모든 문제를 직접 탐색해 보지 않고는 만족할 줄 모르는 자들이여 그리고 의심하는 자들이여, 이제 나는 모든 것을 “보았노라”라는 의미이다.

2:13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문자적으로 “지혜가 우매보다 유익함이.” 솔로몬은 참 지혜는 가치 있는 것이라고 자부해 왔다.

2:13 빛이 어두움보다 뛰어남.

 문자적으로 “빛의 유익이 어둠을 능가한다.” 이 비유적인 말에서 빛은 지적이고 영적인 성장을 가리키고, 반면에 지적이고 도덕적인 퇴폐와 타락은 어둠에 비유된다. 사도 바울은 엡 5:8; 살전 5:5에서 똑같은 은유를 사용했다. 의의 길은 빛에 비유되고(시 37:6; 119:105; 사 51:4), 죄악의 길은 어둠으로 묘사된다(욥 37:19; 잠 4:19).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의 어둠 속에 빛나는 하늘의 빛이라고 설명한다(요 1:4, 5).

2:14 눈.

 지혜자의 눈은 하나님이 뜻하시는 곳, 즉 앞을 똑바로 보기 때문에 걸려 넘어지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요 11:9에 있는 예수의 말씀과 비교해 보라. 또 다른 영적 적용에 대해서는 엡 1:18을 참조하라.

2:14 우매자.

 지혜자는 자신이 가고 있는 곳을 보고 가장 곧은 길로 행하지만 우매자는 불확실 한 길에서 더듬거리다가 걸려 넘어진다. 잠 17:24에는 비슷한 사상이 다른 은유로 주어졌다. “미련한 자는 눈을 땅에 두느니라.”

2:14 이들의 당하는 일이 일반인 줄을.

 문자적으로 “하나의 사건이 일어남을”(참조 시 49:10; 90:3~5). 결국 지혜자나 우매자가 다 죽음에 붙잡히게 된다.

2:14 내가 깨닫고.

 강조형으로, 문자적으로는 “나 곧 나까지도.” 이 말은 지혜를 찬양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솔로몬이 알았음을 시사한다.

2:15 나도 당하리니.

 지혜자도 우매자도 다 죽는다. 외관상으로는 전혀 구별이 없는 것같이 보인다.

2:15 내가 어찌하여 지혜가 더하였던고.

 그렇다면 “밤중까지 촛불을 밝히며” 행한 수고로운 연구과제가 대체 무슨 유익이 있었단 말인가? 인생의 문제들에 맞서 해결하고자 불요불굴의 노력을 경주한 사람도 죽을 때에는 단지 생존을 위해서만 삶을 산 우매자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죽음을 맞게 된다.

2:15 이것도 헛되도다.

 그러므로 발전적인 삶을 위한 야망과 노력도 아무 가치 없는 한낱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하다고 솔로몬은 결론을 내렸다. 하나님을 제쳐놓고는 실로 인생과 그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은 단 하나도 찾을 수 없다. 인간이 자신이 존재하는 참 목적을 발견하는 것은 그가 거룩한 지혜 속에서 자라나고 그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게 정리할 때뿐이다(참조 마 6:33).

2:16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지혜자나 우매자가 다 저희 동료 인간들에게서 오래지 않아 잊혀질 것이다. 이 세상에 관한 한 이 말은 물론 참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거룩한 지혜로 잘 보존하고 정리한 사람은 영원히 기억되고(시 112:6; 잠 10:7), 그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그는 확신을 가지고 기뻐할 수 있다(눅 10:20; 빌 4:3).

2:16 잊어버린 지.

 세상은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기억하신다(참조 말 3:16, 17; 요 14:1~3).

2:16 오호라.

 16절의 후반부는 아마도 다음과 같이 읽는 것이 본래의 의미를 살려서 읽는 방법일 것이다. “세상에! 지혜자가 우매자처럼 죽다니!” 영어와 마찬가지로 히브리어에서도 의문 부사는 의문문에서는 물론 감탄문에서도 쓰일 수 있다.

2:17 한하였노니.

 히브리어는 불쾌감, 혐오감, 권태감, 반감 등과 같은 증오나 적의의 감정을 가리키고 있지 않다. 이 어근의 일차적인 의미는 신체적인 면에서나 기질 혹은 성벽 측면에서 “추함” 혹은 “기형”을 뜻한다. 같은 동사가 말 1:3에 나타나는데, 거기서는 하나님이 에서를 “미워하였다”고 한다. 하나님이 에서를 실망감과 유감스러움을 가지고 바라보았다는 의미이지 그 단어의 일반적인 의미인 “증오심”을 갖고 보셨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나님이 비록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하신다. 전 2:17 후반부에서 솔로몬은 “해 아래서 행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라고 자신의 의중을 분명히 밝힌다. 솔로몬이 시도했던 모든 것은 그가 기대했던 만족감을 주는 일에는 너무나 미흡한 것이었으므로 그 일들에 대한 생각 자체가 그의 불만족을 증폭시키는 데 기여할 뿐이었다.

2:17 내게 괴로움이요.

 문자적으로 “내게 사악한 것이요”(참조 욥 3:24~26; 7:14~16).

2:17 바람을 잡으려는 것.

 곧 “바람을 먹고 사는 것”(참조 전 1:14; 2:11 주석; 호 12:1).

2:18 모든 수고.

 솔로몬은 자신이 건축한 모든 큰 건물과 그가 이룩해 놓은 큰 사업들을 다른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하여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임을 알았다(참조 19절 주석).

2:19 누가 알랴.

 솔로몬은 의심을 표명하기 위해서 “알다”라는 동사를 흔히 사용한다. 여기서 그가 괴로워하고 있는 것은 그의 유업을 이을 자들이 그 가치를 알고 그것들을 관리할 만한 자격이 있는 자일지의 여부를 그가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가 한 수고를 계속 이어갈 수도 있고 그냥 내팽개쳐 버릴 수도 있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사실은 그가 그 문제에 도무지 관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솔로몬이 자신의 후계자인 르호보암에 대한 걱정을 이런 식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2:19 관리하리니.

 히브리어에서 이 말은 사람이나 사물을 지배하는 절대 권력을 시사한다. 그가 평생토록 수고한 결과를 어떤 후계자가 다 탕진해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가장 괴로운 생각이다(참조 욥 27:16, 17; 시 39:6; 잠 23:5; 사 65:22; 눅 12:20).

2:20 내가…대하여 도리어…하였도다.

 좀 더 좋은 표현을 쓰자면 “내가…대하여 도리어…되돌렸도다.” 즉 다른 방향 혹은 반대 방향으로 간다는 뜻이다. 그것은 솔로몬이 일생 동안 해 온 사업을 되돌아본 결과로 그의 견해와 활동에까지도 완전한 변화가 생겼음을 암시한다.

2:20 실망케.

 솔로몬은 자신이 발견한 사실들에 대해서 체념하지 않을 수 없음을 말한다(참조 삼상 27:1; 욥 6:26).

2:21 재주.

 여기서 “재주”로 번역된 단어는 성경의 다른 책에서는 나오지 않는 말로서 “적당하다”, “알맞다”, “옳다”라는 의미를 가진 말의 어근에서 유래했으므로 “적성”, “타고난 재능”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따라서 솔로몬의 생각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모든 재능을 다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그 일을 일으켜 세우는 데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줄 모르는 자에게 그가 수고한 결과를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2:21 업.

 상속 재산, 곧 땅이나 재산 혹은 전리품의 배당.

2:21 끼치리니.

 “넘겨주다”라는 의미에서, 문자적으로 “주리니.”

2:22 소득이 무엇이랴.

 향유할 만한 영구적인 결과나 보상이 무엇인가? 예상되는 대답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얻은 것은 쏟은 수고에 상응한 것이 아닌 것 같다.

2:23 일평생.

 (「제임스왕역」에는 “days”[낮들 동안]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밤”과 대조되는 말이다. 일하는 시간들은 활동으로 메워지고 밤에는 낮에 하던 일들을 생각하며 자지 못했다. 솔로몬은 수고와 슬픔과 낙망이 주는 연단에서 느낄 수 있는 축복을 충분히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참조 욥 35:10; 롬 8:35; 고후 12:9; 히 12:11; 계 3:19).

2:24 먹고 마시며.

 여기서 솔로몬은 자신의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결론을 말한다. 결국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는데 왜 먹고 마시지 않을 것이며, 삶이 제공하는 것들을 즐기지 않겠느냐고 그는 생각한다.

2:24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

 문자적으로 “그의 영혼에 좋은 것을 보여 주는 것.” 여기서 “심령”(soul)이라는 단어는 사람의 욕망이나 식욕에 관해서 하는 말이다(참조 창 2:7; 9:5; 신 6:5 주석; 잠 10:3; 13:25; 27:7). 이 말은 그가 수고한 결과를 실제로 즐기는 것을 말할 수도 있고, 그의 계획과 책임들을 이행한 데서 오는 만족감을 말할 수도 있다.

2:24 하나님의 손.

 사람이 자신이 한 수고의 결과를 누릴 뿐 아니라, 그의 임무 수행에서 오는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 표현은 또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힘을 솔로몬이 인정한다는 것과 땅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하는 고통과 실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선한 결말을 기대하고 계신다는 것을 시사한다.

2:25 보다.

 더 정확한 독법은 아마도 “그분”, 즉 “하나님을 제쳐두고”가 될 것이다. 그 취지는 하나님만이 모든 사람의 삶의 배후에 계시므로 그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2:25 승하랴.

 “누가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했겠는가?”가 더 나을 것이다. 솔로몬은 그의 일생 동안 행한 일에 관해서, 또한 그 결과에 대해서 다른 어떤 사람이 하는 평가보다 더 나은 평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그가 가졌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일 수도 있다(참조 24절). 25절에서 이 절의 독법이 “하나님을 제쳐두고 누가 먹으며, 하나님을 떠나서 누가 경험을 한단 말인가?”가 될 것이다.

2:26 하나님이…주시고.

 (「제임스왕역」에는 “for God giveth”[이는 하나님이…주시기 때문이다]로 되어 있음-역자 주). “for”는 25절과 26절을 대등하게 연결시키는데, 그것은 두 절이 차례로 24절에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우주적인 감찰력을 시인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

2:26 죄인.

 범죄자, 즉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고 반항하는 사람. 문자적으로 “목표에서 빗나간 사람.”

2:26 모아.

 죄인은 영원한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닌 일을 하면서 삶을 허비한다. 그가 쌓는 모든 것은 이 세상의 삶만을 위한 것이다. 그는 돈을 모으려고 애쓴다. 그는 그것들을 쌓지만 영원한 목표를 위해서 하지 않는다(참조 마 13:12; 25:28; 눅 12:20).

2:26 하나님을 기뻐하는.

 악인들의 수고한 열매가 의인들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사상은 욥 27:16, 17; 잠 13:22; 28:8에서 발견된다.

2:26 바람을 잡으려는 것.

 참조 1:14 주석. 여기서 강조하는 바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처리하신다는 근본적인 사실에 근거를 둔다.

2:8 두었노라.

 문자적으로 “내 자신을 위하여 만들었노라.” 여기에 나온 이 동사는 “취득했다”, “정했다” 혹은 “만들었다”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창 12:5에서는 이 말이 “얻은”으로 번역되었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6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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