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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6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전도서

전도서 6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5. 19. 00:14

<전도서 6장 흐름정리>

본장에서 전도자는 인간의 행복과 만족이 외적인 번영과 성공 여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전도자의 견해에 따르면, 높은 지위와 풍부한 재물을 얻었다고 해도 염려와 불안이 끊이지 않는다면 그는 차라리 낙태된 자만도 못하다. 또한, 일백 자녀를 낳고 천 년의 갑절을 산다고 해도 낙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 역시 낙태된 자만도 못하다. 일평생 동분서주하며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 모든 날을 그림자같이 허망하게 보낸다면 모두 다 부질없는 헛수고에 불과하다. 이러한 언급을 통해, 전도자는 인생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전도서 6장 줄거리>

1. 사용하지 못한 재물의 헛됨.

3. 자녀들의 헛됨.

6. 재물이 없는 장수의 헛됨.

9. 눈으로 보는 것과 종잡을 수 없는 욕망의 헛됨.

11. 헛된 것의 결론.


<전도서 6장 개역한글>

1. 내가 해 아래서 한가지 폐단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에게 중한 것이라      

2.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3. 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찌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      

4.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 이름이 어두움에 덮이니      

5. 햇빛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나 이가 저보다 평안함이라      

6. 저가 비록 천년의 갑절을 산다 할찌라도 낙을 누리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7. 사람의 수고는 다 그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차지 아니하느니라    

8.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뇨 인생 앞에서 행할줄을 아는 가난한 자는 무엇이 유익한고      

9. 눈으로 보는 것이 심령의 공상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0. 이미 있는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 이름이 칭한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11.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이 있나니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12.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그 신후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전도서 6장 성경주석>

6:1 이는 사람에게 중한 것이라.

 문자적으로 “이는 사람들에게 많이 있는 것이다.” 솔로몬은 자신이 직접 목도한 것을 말한다.

6:2 심령.

 그 사람 자신을 말한다(참조 2:24; 4:8).

6:2 재물과 부요와 존귀.

 다윗은 하나님을 이 모든 축복의 근원으로 인정했다(대상 29:12). 여기서 말하는 “존귀”는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내리신 것과 같은 물질적인 영광과 화려함을 말한다(왕상 3:13; 대하 1:11, 12).

6:2 하나님께 받았으나.

 우주의 창조자와 주인은 하나님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좋은 것은 마땅히 다 그의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6:2 누리게.

 (「제임스왕역」에는 “eat”[먹게]로 되어 있음-역자 주). 여기서 이 말은 사 3:10; 렘 15:16에서와 같이 “즐기다”, “좋아하다”라는 의미를 이렇게 비유적으로 사용하였다.

6:2 다른 사람.

 문자적으로 “외국인인 사람.” 같은 단어가 “이방인”(신 14:21; 15:3)으로 번역되었다. 여기서 이 말은, 이 불행한 사람은 그의 사업을 계승하고 그의 이름을 길이 보전할 후사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경험과 비교해 보라(창 15:2).

6:2 병.

 같은 단어가 사 53:3, 4; 렘 6:7; 10:19에서는 “슬픔”으로 번역되었다.

6:3 일백 자녀.

 “자녀”로 번역된 이 단어는 히브리어 본문에는 없지만 분명히 그런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많은 아들을 갖는 것은 모든 경건한 유대인들의 희망이었다. 그들은 자녀들을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축복으로 간주하였다(창 24:60; 시 127:3~5). 본문에 주어진 숫자는 “많다”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사용된 어림수이다(창 26:12; 삼하 23:3; 잠 17:10). 그럴지라도 르호보암의 가솔(대하 11:21)과 아합의 가솔(왕하 10:1)의 규모를 비교해 보라.

6:3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조사(早死)는 저주로 여겨졌고, 장수는 바람직한 축복으로 생각했다(출 20:12; 시 11:9, 21; 참조 시 90:10).

6:3 매장되지 못하면.

 이것은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모든 불운 가운데서 아마도 최악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정당하게 매장되지 못하는 것은 최악의 불명예로 여겨졌다. 다윗이 골리앗을 위협한 말(삼상 17:46)과 여호야김의 경험(렘 22:18, 19)을 참조하라. 주변의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유대인들도 명예롭게 매장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참조 사 14:19, 20; 렘 16:4, 5).

6:3 낙태된 자.

 살아 본 적이 전혀 없는 사산아(死産兒, 참조 욥 30:16; 시 58:8). 사산아는 삶의 기쁨을 전혀 경험한 바 없지만, 삶의 고통과 실망도 전혀 당해 보지 않았다.

6:4 낙태된 자.

 (「제임스왕역」에는 “he”[그]로 되어 있음-역자 주). “그”라기보다는 “그것”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낫다. “그”는 사산아를 말하지 그 부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6:4 헛되이.

 낙태된 자는 아무런 목적 없이 세상에 온다는 뜻이다.

6:4 어두운 중에.

 낙태된 자는 장례식도 없이, 그를 영화롭게 하기 위한 혹은 그를 기억하기 위한 의식도 없이 즉시 처리된다. 그것은 이름도 기록도 남지 않는다. 어린이는 영광과 존귀와 명성을 얻을 수도 있지만 낙태된 자는 죽음의 침묵과 어둠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6:5 햇빛을 보지 못하고.

 태양은 삶의 모든 경험과 기쁨을 표상하는 상징적 표현이다(참조 욥 3:16; 시 58:8).

6:5 …보다 평안함이라.

 평안은 동방인의 이상인데, 그것은 열반과 같은 관념인 불교의 이상적인 미래의 상태, 그리고 대우주아(大宇宙我)로 다시 병합하고자 하는 힌두교의 소망 속에 표현된 이상이다. 여기서는 역설적으로 낙태된 자의 경험이 인간 존재의 정상적인 한 과정을 이루어 겪게 되는 부침(浮沈)의 삶보다는 바람직한 삶으로 여겨졌다.

6:6 천 년의 갑절.

 즉 2,000년. 만약 어떤 부자가 므두셀라(참조 창 5:27)가 산 수명의 갑절을 살지라도 그의 삶에서 얻는 것이 별로 없거나 진정한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장수가 그에게는 거의 아무 득이 되지 못할 것이다. 건강과 행복 없이 단순히 길기만 한 수명은 별로 이로울 것이 없다.

6:6 낙을 누리지 못하면.

 하나님이 땅에 태어난 자기 자녀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뜻하신 최고의 낙을 얻지 못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삶은 그 최고의 낙을 명확히 이해할 경우에만 가치가 있음이 판명되었다.

6:6 한곳.

 고대 유대인들은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모두가 한 곳, 즉 무덤으로 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전 3:20; 참조 잠 15:11 주석). 무덤은 죽은 자를 누구나 다 받아들인다. 솔로몬은 그곳에서는 낙태된 자가 마땅히 축하의 인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그가 슬픔과 질병과 실망의 인생 여정을 통과하지 않고 셔올(s∨e’ol)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6:7 입.

 감각적 쾌락에 탐닉하는 것에 대한 비유이다(시 128:2; 잠 16:26; 전 2:24; 3:13).

6:7 식욕.

 히브리어 네페쉬(nepes∨). 같은 단어가 3절에는 “심령”으로, 9절에서는 “욕망”(「개역한글판」에는 “심령”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으로 나타난다. 여기서는 인간의 감각적 측면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참조 욥 12:11; 잠 16:26; 사 29:8). 인생은 항상 달라고만 말하는 식욕의 요구에 응하기 위하여 수고로운 일생을 보내면서도, 현인을 주시해 보기는 하지만 지고의 선에 이르지는 못한다.

6:8 지혜자가…나은 것이 무엇이뇨.

 (「제임스왕역」에는 “what hath the wise”[지혜자가 가진 것이 무엇이뇨]”로 되어 있음-역자 주). 문자적으로 “지혜자가 가진 유리한 점이 무엇이뇨?” 「제임스왕역」이 번역하지 않고 남겨놓은 히브리어 요테르(yoter)는 “우선권”, “이점”, “이익”을 의미한다. 우매자와 마찬가지로 지혜자도 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수고로이 일한다.

6:8 가난한 자는 무엇이 유익한고.

 (「제임스왕역」에는 “what hath the poor”[가난한 자가 가진 것은 무엇인고]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여기서는 “인생들 앞에서 행할 줄 아는 가난한 사람이 그것을 알지 못하는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라는 말로 첫 번째 구절과 비슷한 또 다른 대조가 분명히 의도되었다. 궁핍과 역경 속에 있는 가난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가장 잘 이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우매자가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정욕과 욕망뿐이므로 자기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항상 안달하고 싸운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든 우매자이든 간에 자신이 갖고 싶은 걸 모두 다 가질 수는 없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6:9 눈으로 보는 것.

 없는 것을 항상 그리워하는 것보다는 손 안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편이 더 낫다. 우매자의 눈은 세상에 한정되어 있다.

6:9 공상.

 (「제임스왕역」에는 “wandering”[방황]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말한다. 이같은 “욕망의 방황”은 흔히 폭행죄로 발전한다.

6:10 오래 전부터 그 이름이 칭한 바 되었으며.

 1:9에서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다”라고 한 관점의 또 다른 표현이다.

6:10 사람이 무엇인지도.

 어떤 개인도 인간 그 이상은 아니다. 여기서 “사람”에 대해서 사용한 히브리어는 아담(’adam)인데, 그것은 흙, 곧 아다마(’adamah)에서 취한 바 된 인간을 묘사한다(참조 창 1:26; 민 24:3 주석). 사람들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그는 단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갈 운명을 타고난 존재일 뿐이다(전 12:7).

6:10 다툴 수.

 아마도 사 45:9; 롬 9:20과 조화되게 하나님과 다투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참조 욥 33:12). 유대인 주석자들은 “그것보다 더 강한 자”라는 번역을 선호하여, “그것”이라는 대명사가 죽음을 언급한다고 주장한다. 「제임스왕역」의 번역(참조 “contend with him”)이 오히려 낫다.

6:11 일.

 “말(들)”이라고 번역하는 편이 더 낫다. 그것이 이렇게 번역된 히브리어의 근본적인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쉽게 말하고 불평하는 경향이 있지만, 말을 많이 한다고 어떤 상황이 개선되지는 않는다. 좀 더 유익한 것은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창조자를 신뢰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사 45:11~18; 행 17:24~31).

6:11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문자적으로 “사람에게 어떤 이익이 있느냐”이다. 많은 말과 헛된 공론은 삶의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바가 거의 없다.

6:12 그림자.

 여기서 인간은 한 순간 있다가 사라져 버리는 그림자에 비유된다(참조 대상 29:15; 욥 8:9; 시 102:11; 144:4; 약 4:14).

6:12 무엇이 낙인지.

 삶을 기울여 바칠 만한 가치 있는 것들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자력(自力)으로 삶의 궁극적인 선(善)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고 논쟁을 벌이는 일이 무익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여기에 제기된 질문은 부정적 대답을 예기하는 질문이다.

6:12 무슨 일이 있을 것을.

 인간은 미래를 알아낼 수 없다. 그의 생명은 두 영원, 즉 과거의 영원과 미래의 영원 사이에 있는 한 순간에 불과하다. 시간에 속한 것들은 일시적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하며 하나님의 손에 맡겨져 있다(참조 고후 4:17, 18).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6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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