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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2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열왕기하

열왕기하 12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6. 22. 07:24

<열왕기하 12장 흐름정리>

요아스는 통치 초기에 선정을 펼쳤지만 말년에는 패역을 일삼았다. 그가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고 유다의 영적 부흥을 이룬 것은 제사장 여호야다의 영향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고나자 그는 방백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우상 숭배를 허용하였으며, 이를 경고한 스가랴 선지자를 처형했다. 이때 아람 왕 하사엘이 유다를 침공한 사건은 하나님의 징계였지만 요아스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가 반란을 일으킨 신하들에게 살해당한 일은 하나님께 불순종을 일삼는 자들에 대한 준엄한 경계거리가 되고 있다.


<열왕기하 12장 줄거리>

1.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 요아스가 선하게 통치함.

4. 요아스가 성전을 수리하라고 명함.

17. 하사엘이 성물을 선물로 받고 예루살렘에서 물러남.

19. 요아스가 신복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아마샤가 대신하여 왕이 됨.


<열왕기하 12장 개역한글>

1. 예후의 칠년에 요아스가 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사십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시비아라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2.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을 동안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3. 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4.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무릇 여호와의 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은 곧 사람의 통용하는 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자원하여 여호와의 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5.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 들여서 전의 어느 곳이든지 퇴락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라 하였더니      

6. 요아스왕 이십 삼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오히려 전의 퇴락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7. 요아스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전의 퇴락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제부터는 너희 아는 사람에게서 은을 받지 말고 저희로 전 퇴락한 데를 위하여 드리게 하라      

8. 제사장들이 다시는 백성에게 은을 받지도 아니하고 전 퇴락한 것을 수리하지도 아니하기로 응락하니라      

9. 제사장 여호야다가 한 궤를 취하여 그 뚜껑에 구멍을 뚫어 여호와의 전문 어귀 우편 곧 단 옆에 두매 무릇 여호와의 전에 가져 오는 은을 다 문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그 궤에 넣더라      

10. 이에 그 궤 가운데 은이 많은 것을 보면 왕의 서기와 대제사장이 올라와서 여호와의 전에 있는대로 그 은을 계수하여 봉하고      

11. 그 달아본 은을 일하는 자 곧 여호와의 전을 맡은 자의 손에 붙이면 저희는 또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는 목수와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고      

12. 또 미장이와 석수에게 주고 또 여호와의 전 퇴락한 데를 수리할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게 하며 그 전을 수리할 모든 물건을 위하여 쓰게 하였으되      

13. 여호와의 전에 드린 그 은으로 그 전의 은대접이나 불집게나 주발이나 나팔이나 아무 금그릇이나 은그릇을 만들지 아니하고      

14. 오직 그 은을 일하는 자에게 주어 그것으로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게 하였으며      

15. 또 그 은을 받아 일군에게 주는 사람들과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성실히 일을 하였음이라      

16.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여호와의 전에 드리지 아니하고 제사장에게 돌렸더라      

17.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올라와서 가드를 쳐서 취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고자 한고로      

18. 유다 왕 요아스가 그 열조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모든 성물과 자기가 구별하여 드린 성물과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취하여 아람 왕 하사엘에게 보내었더니 하사엘이 예루살렘에서 떠나갔더라      

19.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것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0. 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서 모반하여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의 밀로궁에서 저를 죽였고      

21. 저를 쳐서 죽인 신복은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이었더라 저는 다윗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아마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열왕기하 12장 성경주석>

12:1 예후 칠 년에.

 요아스의 통치 기록은 다시 일반적인 형식을 따른다.

12:2 교훈을 받을.

 참조 대하 24:2.

12:3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상황은 아사(왕상 15:14)와 여호사밧(왕상 22:43) 그리고 그 후대의 왕들인 여호람, 아하시야, 아달랴의 통치기간에도 계속되었다. 같은 상태가 아마샤(왕하 14:4), 아사랴(15:4), 요담(15:35), 아하스(16:4) 등의 치세에도 지속되었다. 히스기야 시대가 되어서야 산당들이 마침내 제거되었다(18:4). 그러나 그가 죽은 후에 므낫세가 산당들을 다시 세웠다(21:3). 그러므로 유다를 다스렸던 많은 선한 왕들의 통치기간 중에도 산당 제사는 남방 왕국의 역사 전반에 걸쳐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산당들이 꼭 우상숭배를 위한 제단이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솔로몬 성전이 건설되기 전에는 산당에서 희생을 드리는 것이 관례였다(왕상 3:2). 요시야가 산당들을 파괴할 때 그곳에서 제사했던 “산당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단에 올라가지 못하고 다만 그 형제 중에서 무교병을 먹을 뿐이었”다(왕하 23:9). 므낫세의 시대에는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께만 제사를 드렸으나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대하 33:17). 그러나 이러한 산당들 중 상당수가 부패와 우상숭배의 온상이 되었을 것이다(레 26:30; 민 22:41; 33:52; 왕상 13:33; 왕하 17:29; 대하 14:3; 34:3, 4).

12:4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성전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은 제사장 여호야다가 아니라 요아스 왕에 의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여호야다는 이때 나이가 매우 많았다(참조 11:4). 확실히 노령의 제사장은 더 이상 막중한 문제들에 의욕적으로 직접 관여할 만한 활력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성전을 회복하는 일을 시작하는 것은 왕의 몫이었다.

12:4 모든 은.

 이곳에는 세 가지 각각 다른 헌금이 언급되어 있다. (1)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은.” 여호와께 서원한 사람들이나 그분께 어떤 생축이나 물건을 드린 사람들의 헌물을 말한다(레 27:2~28). (2) “사람의 통용하는 은.” 이것은 각 사람에게 부과된 헌금을 말한다. 부자나 가난한 자에게 반 세겔이 부과되었다(출 30:13~15). (3) “자원하여 여호와의 전에 드리는 은.” 이것은 자원하여 드린 헌금으로 구성되었다.

12:5 각각.

 각 제사장은 자신이 아는 자들에게서 돈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일은 예루살렘뿐 아니라 나라 전역에서 시행된 것이 분명하다.

12:5 수리하라.

 제사장들은 수리하는 일을 감독할 것이었다.

12:6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요아스가 보위에 오른 지 23년이 되기 전에도 성전을 수리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그 노력은 전적으로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었으며 이루어진 것도 거의 없었다.

12:7 너희가 어찌하여…수리하지 아니하였느냐.

 성전 수리를 완수하지 못한 의무 태만에 대하여 제사장들을 책망하고 있다.

12:7 은을 받지 말고.

 분명한 것은 제사장들이 돈을 받아서 자신들을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왕은 이제 이러한 일을 근절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모든 돈은 의도된 대로 성전을 수리하는 목적에 사용하라고 명령하였다.

12:8 제사장들이…응낙하니라.

 이제 이 불성실한 제사장들은 이 문제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그들은 이 목적으로 더 이상 자금을 모으려 노력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수리하는 일을 감독하는 데 동의하였다.

12:9 한 궤를 취하여.

 이것은 왕의 지시였다(대하 24:8).

12:9 단 옆에.

 성전 뜰에 있는 번제단을 가리킨다. 대하 24:8에 따르면 그것은 “주의 집 문 곁에” 있었다. 이것은 같은 위치를 달리 표현한 것이거나 은을 모으는 과정에서 옮겨진 것을 의미할 수 있다.

12:10 왕의 서기.

 이 사람은 성전 뜰을 맡은 중요한 관리였다. 그는 왕의 서신뿐 아니라 왕궁의 창고를 관리했다. 앗수르 조각상에는 서기들이 전장(戰場)에서 가져오는 전리품들을 기록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서기는 왕과 관련된 일들에 대해 직접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요아스는 성전 수리를 위한 헌금이 그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확신했다.

12:10 대제사장.

 이 명칭이 사용된 것은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 이후 처음으로 있는 일이다(레 21:10; 민 35:25; 수 20:6). 대제사장과 왕의 서기가 협력하여 일함으로 재원(財源)이 잘못 쓰이지 않도록 이중으로 점검할 수 있었다.

12:10 계수하여.

 히브리어 마나(manah). 문자적으로 “숫자를 세다”, “헤아리다” 혹은 “할당하다”를 의미한다.

12:11 달아본.

 히브리어 타칸(takan), “측량하다”, “무게를 재다.” 여기서는 확인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당시에는 아직 화폐가 도입되지 않아 귀금속을 무게에 따라 사용하였다.

12:13 아무 금그릇이나 은그릇.

 성전을 수리하는 동안에는 어떤 다른 목적으로도 돈이 사용되지 말아야 했다. 성전 봉사를 위한 기명(器皿)들을 교체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일을 다 마친 후에야 남은 돈을 왕과 대제사장 앞에 가져왔으며 그들은 여호와의 집에서 사용될 기명들을 위해 재원을 사용하도록 지시하였다(대하 24:14). 아달랴가 하나님의 집에 바쳐진 성전 기구들을 바알에게 드렸기 때문에 새로운 기명들을 갖추어야 할 필요가 생겼던 것이다(대하 24:7).

12:15 성실히 일을 하였음이라.

 이것은 중요한 책임을 맡도록 선택된 자들의 성품에 대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증언이다. 요시야 시대에 유사한 개혁을 수행했던 자들에게도 같은 칭찬이 주어졌다(22:7). 제사장들의 불성실한 성품 때문에 이러한 과정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참조 12:4~8).

12:16 속건제의 은.

 참조 레 5:15~18; 민 5:6~8. 모세의 법에 따르면 이러한 헌물은 합법적으로 제사장들에게 속했으므로 그들에게 주어졌다. 성전 수리를 위하여 특별한 헌물이 드려지는 동안에도, 제사장들에게 주어지는 정규적인 헌물이 중단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목적을 위해 드려진 헌물을 제사장들이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오용하는 것은 모두 불법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중요한 계획을 수행할 수 없었다. 높은 수준의 성실성을 유지하고 신뢰와 믿음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일이 번영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러한 과정은 필요한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는 수단들을 제공한다.

12:17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

 여기 언급된 사건은 성전 수리를 마친 후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났다. 성전 수리는 요아스 23년에 시작되었으며(6절), 같은 해에 여호아하스가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다(13:1).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요아스는 죄악에 빠져 결국 하사엘의 손에 크게 상함을 입게 된다(대하 24:15~25).

12:17 가드.

 하사엘은 벧산과 이스르엘 골짜기와 해안 평야를 거쳐 이 블레셋인의 성읍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그는 북방 이스라엘을 장악했을 것이다(참조 13:3). 가드는 아람에서 너무 멀기 때문에 곧 블레셋의 손에 다시 들어갔을 것이다. 그 후에 유다의 아사랴(웃시야)가 가드의 성벽을 무너뜨렸다(대하 26:6). 이 성읍의 위치는 불확실하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아라크 엘-멘쉬예(‘Araq el-Menshiye)를 지지한다. 이곳은 지금의 키르야트 가트(Kiryat Gat), 곧 베이트 지브린(Beit Jibrin, 신약 시대의 Eleutheropolis)에서 서쪽으로 약 1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베이트 지브린과 텔 엣-차피(Tell es.-S.afi-, 일반적으로 립나와 동일시된다) 역시 가능성 있는 지역으로 제시되어 왔다. 많은 이스라엘 학자들이 지지하는 키르야트 가트(Kiryat Gat)의 바로 북쪽 지역은 텔 셰이크 엘-아레이니(Tell Sheikh El-‘Areini)이며, 베이트 지브린에서 서쪽으로 약 10킬로미터 그리고 헤브론에서 서북서쪽으로 32킬로미터 지점이다.

12:17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사엘이 가드를 취했을 때 그는 예루살렘의 남서쪽에 있었고, 따라서 예루살렘은 다메섹으로 돌아가는 편리한 길에 있었다. 아람의 군대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러 백성 중에서 모든 방백을 멸절한 사건은 바로 이때 벌어진 일이었다(대하 24:23).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의 왕과 그의 방백들은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다(대하 24:18).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이러한 범죄에 항변하자 그들은 왕의 명을 좇아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스가랴를 돌로 쳐죽였다(대하 24:21). 그때 하사엘이 예루살렘에 이르렀으며 거기서 심히 큰 군대와 대면했으나, 적은 무리로도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는데 이는 유다 백성들이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이다(대하 24:24).

12:20 실라.

 이 지역이 어디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12:20 밀로.

 아마도 다윗이 정복한 고대 여부스인의 도성 북부에 있는 견고하게 요새화된 지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윗은 이 지역을 강화하기 위해 힘썼으며(삼하 5:9; 대상 11:8), 솔로몬 시대에 중요한 요새로 변모되었다(왕상 11:27). 요아스는 안전을 위하여 주로 밀로의 이 요새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12:20 저를 죽였고.

 아람인들은 떠나면서 치명상을 입은 요아스를 버리고 갔다(대하 24:25). 그리고 요아스가 그의 침상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때 모반한 자들이 그를 쳐죽였다. 모반은 명백하게 왕의 배도와 연관이 있었다. 그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였다. 요아스의 생명과 왕좌는 신실한 대제사장에게 빚진 것이었다. 은인의 아들을 죽인 것은 실로 배은망덕한 행위였다. 요아스가 죽었을 때 그에 대한 원성은 심각한 지경에 달하여 사람들은 그 시체를 열왕의 묘실에 장사하지 않았다(대하 24:25).

12:21 요사갈.

 암몬 여인의 아들 사밧이라고 불렸다(대하 24:26). 요사갈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라는 의미이다.

12:21 여호사바드.

 모압 여인 시므릿의 아들로 불렸다(대하 24:26). 여호사바드는 “여호와께서 주셨다”라는 의미이다. 모반을 꾀한 이 두 사람의 이름과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요아스의 명령으로 돌로 쳐죽임을 당할 때 부르짖은 말 사이에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스가랴는 죽으면서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대하 24:22)라고 말하는데, 이는 “여호와께서 보시고 심판을 내리소서”라는 의미이다. 요아스 왕은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에게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여호와께서는 기억하시고 심판을 내리셨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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