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ORY

아모스 9장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아모스

아모스 9장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9. 5. 07:03

<아모스 9장 흐름정리>

성전 문지방이 붕괴되는 환상을 통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또다시 선포된다. 성전(교회)의 타락이 결국 이스라엘 사회 전반의 몰락과 국가적 멸망을 가져온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종교는 한 사회의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은 항상 심판의 와중에서도 남은 자를 향하여 은혜 중에 펼쳐져 있음을 본문은 다시 한 번 증거한다(7~15절). 이 약속은 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영적 이스라엘이 재건되고, 성도가 복음의 축복에 참여함으로써 성취되었다.


<아모스 9장 줄거리>

1. 황폐의 확실성.

11. 다윗의 장막을 회복함.


<아모스 9장 개역한글>

1. 내가 보니 주께서 단 곁에 서서 이르시되 기둥 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숴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 내가 그 남은 자를 칼로 살륙하리니 그 중에서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 중에서 하나도 피하지 못하리라      

2. 저희가 파고 음부로 들어갈찌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찌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3. 갈멜산 꼭대기에 숨을찌라도 내가 거기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찌라도 내가 거기서 뱀을 명하여 물게 할 것이요      

4.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찌라도 내가 거기서 칼을 명하여 살륙하게 할 것이라 내가 저희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5. 주 만군의 여호와는 땅을 만져 녹게 하사 무릇 거기 거한 자로 애통하게 하시며 그 온 땅으로 하수의 넘침 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 같이 낮아지게 하시는 자요      

6. 그 전을 하늘에 세우시며 그 궁창의 기초를 땅에 두시며 바다 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니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 같지 아니하냐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길에서 올라 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8. 보라 주 여호와 내가 범죄한 나라에 주목하여 지면에서 멸하리라 그러나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는 아니하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 체질하기를 곡식을 체질함 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10. 내 백성 중에서 말하기를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며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 모든 죄인은 칼에 죽으리라

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12. 저희로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는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그 때에 밭 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14.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저희가 황무한 성읍을 건축하고 거하며 포도원들을 심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으리라      

15. 내가 저희를 그 본토에 심으리니 저희가 나의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모스 9장 성경주석>

9:1 내가 보니 주께서.

 선지자에게 하늘의 주권자를 어렴풋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분은 이곳에서 그분의 반역하는 백성에게 형벌을 내리려고 준비하시는 것으로 묘사된다(참조 사 6:1; 겔 10:1).

9:1 단.

 어떤 이들은 이 “단”이 벧엘에 있는 송아지 숭배의 제단이며, 여호와께서는 정죄와 심판을 내리기 위해 그 곁에 서시는 것으로 해석한다. 다른 이들은 벧엘에는 하나 이상의 단들이 있었으므로(3:14), 여기서는 예루살렘에 있던 번제단을 뜻한다는 견해를 갖는다.

9:1 기둥머리.

 히브리어 캅토르(kaptor). 이 단어는 손잡이, 곧 고대 성소에 있는 등대의 “꽃받침”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출 25:31, 33). 이곳에서 카프토르는 아마도 기둥의 머리 부분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9:1 쳐서.

 이것은 멸망시키는 천사에게 한 말일 것이다(참조 삼하 24:15, 16; 왕하 19:35).

9:1 문지방.

 히브리어 십핌(sippim). “문지방” 혹은 “창문턱.” 그 타격은 매우 강하여 건물의 구조가 느슨해지고 약화되며 문지방들이 흔들리고 건물이 파괴될 정도였다.

  그것으로 부서져서. 무너지는 구조물은 그 넘어지는 잔해에 사람들이 상하거나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9:1 그 남은 자.

 즉 이 멸망에서 살아남는 자들이다. 그들은 도망칠 가망성이 없을 것인데, 이는 그들이 칼로 살육될 것이기 때문이다.

9:2 저희가 파고.

 2~4절은 도망치려는 시도가 무익함을 강조한다(참조 시 139:1~12).

9:2 음부.

 히브리어 셔올(s∨e’ol). 죽은 자의 상징적인 거처로서, 죽은 자들은 함께 잠을 자는 것으로 묘사된다(참조 잠 15:11 주석).

9:2 취하여 낼 것이요.

 징벌할 목적으로.

9:3 갈멜.

 특별히 숨는 장소로 은유되었는데, 그것은 그곳의 동굴들, 바위틈, 삼림, 우거진 관목들이 은폐할 기회를 많이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9:4 사로잡혀 갈지라도.

 이 악한 배도자들은 사로잡혀 간 땅에서도 칼로부터 안전하지 못할 것이었다(참조 레 26:33).

9:4 내가…주목하여.

 참조 시 34:15, 16; 렘 44:11.

9:5 주 만군의 여호와.

 참조 렘 7:3 주석.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심판을 능히 이루실 수 있는데 그것은 그분이 하늘의 모든 “만군”을 다스리시며 천체뿐 아니라 모든 계층과 신분의 하늘 존재들도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9:5 녹게 하사.

 시 46:6; 97:3~5; 미 1:4; 나 1:5과 비교하라.

9:5 솟아오르며.

 참조 8:8 주석.

9:6 전.

 히브리어 마알로트(ma‘alot). 문자적으로 “오르막 경사.” 이 단어는 흔히 “층계들”을 묘사한다(출 20:26; 왕상 10:19; 겔 40:6 등). 여기서의 그 정확한 의미는 확실치 않다. 어떤 이들은 “방들”을 의미했다고 생각하는데(참조 「개정표준역」), 사실 “방들”은 마알로트보다는 마알로트와 동일한 어근에서 파생한 알리요트(‘aliyyot)를 번역한 말이라고 하면 더 적합하다. “방들”은 시적(詩的)으로 하나님의 거처를 나타낸다.

9:6 궁창.

 히브리어 아굿다(’aguddah). 여기서는 그 의미가 확실치 않은 단어이다. 이 단어가 출 12:22에서는 “묶음”으로 번역되었는데 그것은 우슬초 묶음을 묘사하며, 삼하 2:25에서는 “떼”로 번역되었는데 아브넬 뒤에 모인 한 무리의 사람들을 묘사하고, 사 58:6에서는 “멍에의 줄”로 번역되었는데 멍에의 줄이나 띠를 묘사한다. 이런 의미들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아모스가 진술하는 문맥에 적합한 것 같지 않다. 어떤 이들은 그 의미가 “건물” 또는 “둥근 천장”이라고 제안했다.

9:6 쏟으시는.

 참조 5:8 주석.

9:7 구스 족속 같지.

 다른 나라들과 동일한 기준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조건 하에서만 하나님의 선민이었다(참조 출 19:5, 6 주석; 마 3:7~9). 이스라엘은 그들이 하나님을 선택할 때에만 하나님의 선민이었다. 그분께로부터 멀어질 때에 그들은 그분에게 이방인들처럼 되었다.

9:7 블레셋.

 이곳에서 블레셋과 아람을 언급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야곱의 자손으로서 약속하신 땅에 거하도록 특권을 받은 유일한 백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목하도록 하려는 데 있을 것이다. 사실상 아람과 블레셋 사람들은 아브라함 자손에게 약속하신 영토에서 살았다(창 15:18).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모든 땅을 소유하기 위해 힘있게 전진하지 못했다. 아모스 당시에 반역적인 북방 왕국의 백성은 약속하신 땅에서 그들이 거주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인정하심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그들의 이방 이웃들도 역시 그곳에 살았음을 보게 될 것이었다.

9:7 갑돌.

 아마도 그레데 섬일 것이다(참조 창 10:14 주석).

9:7 길.

 길(Kir)의 위치가 어딘지 확실하지 않다(참조 1:5 주석).

9:8 범죄한 나라.

 그 나라가 악하므로 완전히 멸망되어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은혜롭게 약속하신다(참조 렘 30:3, 11).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유다의 귀환하는 유배자들과 함께 돌아왔다(참조 호 1:11; 9:17 주석).

9:9 체질하기를.

 문자적으로 “내가 이리저리 던지리라” 혹은 “내가 비틀거리게 하리라.” 동사 누아(nua’)의 사역형이다(참조 8:12 주석). 이스라엘은 “만국 중에” 흩어질 것이며, 말하자면 거기서 고통과 핍박의 “체”로 이리저리 던짐을 받아 그런 시련을 통해 누가 하나님의 충성된 추종자로 남을 것이며, 누가 이방 나라를 고수하여 유수에서 돌아오기를 거절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었다.

9:10 임하지.

 히브리어 카담(qadam), “앞에 있다”, “직면하다”, “마주 대하다.” 선지자의 경고를 무시한 자들은 환난이 뒤에서 그들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며, 앞에서도 그들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선언하였다.

9:10 칼에 죽으리라.

 거짓 안전감으로 자기 자신을 속이고 선지자의 경고에 유의하지 않는 자들은 아무도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

9:11 그날에.

 아모스는 이제 자기 백성의 죄됨과 그에 따르는 징벌의 어두운 장면에서 돌이켜 장래 회복될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약속으로 향한다. 이런 약속들은 바벨론 유수 후에 귀환한 자들에게서 일부 성취되었다. 그 약속들은 충분히 성취될 수 있었으나 이스라엘과 유다는 모두 그들의 가능성에 부합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참조 제7권, 43~46). 그 결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이 상실한 기회를 이방인들에게 주셨으며, 이 영광스러운 약속은 여호와의 교회를 구성하게 될 열국의 충성된 자들이 실현하게 될 것이다(참조 행 15:13~17; 선지자와 왕 714, 715,).

9:11 천막.

 문자적으로 “그 초막”(참조 욘 4:5) 혹은 “나뭇잎으로 가린 것.” “무너진” 천막은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기 전의 비참한 영적 상태를 나타내는 비극적인 모습이다. 문자적인 이스라엘의 실패와 더불어 이 구절의 영적인 의미는, 이제 문자적인 이스라엘이 기회를 상실함으로써 일어난 영적 이스라엘 즉 그리스도의 세계적인 교회의 등장에서 찾아야 한다(참조 마 23:37, 38; 행 13:44~48; 더 상세한 내용은 제7권, 49~51을 참조하라).

9:11 그 틈.

 다윗의 집은 내부적으로는 여로보암 I세의 반역으로 인해(참조 왕상 12장), 외부적으로는 앗수르와 바벨론의 정복으로 인해 깨어지게 되었다(참조 왕하 15:29; 17:1~6; 18:9~13; 24; 25). 포로들이 돌아왔을 때 그 “틈”은 부분적으로 수리되었으며, 이 “퇴락”은 어느 정도 일으킴을 받았다. 그러나 유대 민족이 그들의 구주를 거절했을 때 이스라엘 나라에 대한 축복과 약속은 아브라함의 영적인 자손, 곧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주어졌다(참조 갈 3:29; 위의 “그날에”에 대한 주석).

9:12 에돔.

 히브리어 에돔(’Edom). 후에 이두매인들(Idumaeans)로 불린 에돔 사람들은 주변국들 가운데서 이스라엘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졌으며, 가장 적대적인 국가였다(참조 1:11 주석). “남은 자”란 분명히 1:11, 12에 선고된 형벌을 피할 자들을 가리킨다.

  에돔 대신 「70인역」에는 “사람들”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분명히 히브리어 아담(’adam)을 번역한 것으로 에돔과는 단지 모음만 다르다(참조 제1권, 23, 24).

9:12 만국.

 혹은 “이방인들.” 이 구절을 인용한 사도 야고보의 말은 「70인역」의 11, 12절과 매우 유사하다(참조 행 15:16, 17).

9:13 보라 날이 이를지라.

 13~15절은 문자적인 이스라엘에 이르러 올 수 있었으나(참조 11절 주석) 이제는 하나님의 참이스라엘이 되는 모든 자에게 이르러 올 수많은 축복을 인상적인 언어로 묘사한다(참조 선지자와 왕, 300).

9:13 밭가는 자가…뒤를 이으며.

 “밭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를 따라잡을 것인데 그 이유는 파종과 추수가 끊임없이 서로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상징적으로 말해서 곡식 수확물과 포도 수확물이 너무 많으므로 다음 밭갈이와 파종이 시작되기 전에 그것을 다 거두어들일 수 없을 것이다.

9:14 돌이키리니.

 이 구절의 주요 관련 대상은 70년의 포로 기간이 끝났을 때 유수에서 돌아오는 유대인들이었다(참조 대하 36:22, 23; 렘 29:10~14). 그러나 이 절은 “사로잡힌” 자들이 죄에서 구원받아 영원한 평화와 행복 가운데 거하게 될(참조 사 65:21, 22; 선지자와 왕, 300), 선과 악 사이의 대쟁투의 마지막 장면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9:15 내가…심으리니.

 영원히 확립됨을 나타내는 수사법(참조 렘 24:6).

9:15 나의 준.

 아브라함 자손이 가나안 땅을 상속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약속(참조 창 15:13 주석)은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갔을 때에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 유수 후에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했을 때에도 하나님의 목적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놀라운 약속의 최종적인 성취는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와(계 21:2) 가나안 땅에 영원히 확립될 때에 이를 것이다(참조 슥 14:4 주석). 더 상세한 설명은 제7권, 42, 43을 참조하라.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8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성경주석 > 아모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모스 8장 성경주석  (0) 2017.09.05
아모스 7장 성경주석  (0) 2017.09.05
아모스 6장 성경주석  (0) 2017.09.05
아모스 5장 & 성경주석  (0) 2017.08.25
아모스 4장 & 성경주석  (0) 2017.08.25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