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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7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사무엘상

사무엘상 7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6. 4. 12. 07:23

<사무엘상 7장 흐름정리>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겨오게 되었고(1~2절), 사무엘에 의해 주도된 영적 각성과 회개 운동에 힙입어 이스라엘은 블레셋을 물리치고 잃었던 땅을 되찾았다(3~17절). 사무엘의 인도를 따라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여 대대적인  회개를 단행하고 있을 때, 블레셋이 공격해 들어왔다(10절). 그들은 미스바 성회 소식을 듣고서 그것을 침략의 호기로 여겼지만, 그들의 침략은 도리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앙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분명히 깨닫게 해주는 기회로 작용했다. 이스라엘 백성의 간절한 회개와 간구는 그 어떤 무기보다 더 강력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을 가능케 하였다.


<사무엘상 7장 줄거리>

1. 기럇여앙림 사람들이 궤를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지키게 함.

2. 이십년 후,

3. 이스라엘 족속이 사무엘의 노력으로 미스바에서 전심으로 회개함.

7. 사무엘이 기도하고 번제를 드리는 동안 여호와께서 우레로 블레셋을 에벤에셀에서 물리침.

13. 블레셋이 굴복함.

15.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평화롭게, 신앙적으로 다스림.


<사무엘상 7장 개역한글>

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5.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7.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그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듣고 블레셋 사람을 두려워하여

8.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을 따라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13. 이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14.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15.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16.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17.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 자기 집이 있음이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사무엘상 7장 성경주석>

7:1 산에 사는.

 히브리어 박기브아(bag- gibe‘ah). 참조 삼하 6:3, 4(「제임스왕역」에는 “ln Gebeah”, “at Gebeah”로 되어 있음-역자 주). 이 말이 장소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는지, 구약의 다른 곳에서 한결같이 번역된 것처럼 단지 “산”을 말하는지는 문맥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베냐민 기브아(삼상 13:16) 또는 “사울의 기브아”(11:4)도 있었다(「개역한글판」의 삼상 13:16에는 “베냐민 게바”로, 15절에는 “베냐민 기브아”로 되어 있음-역자 주). 또한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비느하스의 “산”(문자적으로는 “기브아”)도 있었다(수 24:33). 기브온 사람들은 문자적으로 “산 거민들”이었으며, 기럇여아림이 그들의 성읍으로 열거된 4개 성읍 중 하나였으므로(수 9:17), 아비나답이 살았던 “기브아”는 가럇여아림 또는 그 근처에 있는 산으로 말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소들의 행동으로 판단해 볼 때, 벧세메스가 궤가 머물 합당한 장소라고 생각되지만 그들의 불경스런 호기심과 징벌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공포심은 이곳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의 거룩한 상징을 경건하게 수호할 자격이 없음을 지적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불과 16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의 평판은 벧세메스 사람들이 원하지 않았던 궤를 가져다가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는 믿음을 뒷받침해 주었다. 하나님의 권고를 존중하지 않고 그분의 계획을 따르지 않음으로, 이스라엘이 그분의 목적을 이루는 일에 얼마나 자주 하나님을 방해했던가! 그리스도는 유다를 사랑했고 그를 사도들의 지도자 가운데 하나로 만들기를 원하였으나 유다는 그것을 거부했다(참조 시대의 소망, 295). 그리스도는 또한 천국의 길에 대해 물은 젊은 부자 법관을 사랑했으나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초청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슬퍼하며 떠나갔다. 

7:1 아비나답.

 아비나답이라는 이름은 “나의 아버지는 존귀하다” 또는 “나의 아버지는 관대하다”를 뜻한다. 이 단어는 나다브(nadab)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었는데, 항상 좋은 의미로 “자극하다”, “재촉하다”라는 뜻이며, 따라서 “기꺼이~하다”, “자원하다”라는 뜻이 된다. 아비나답의 족보는 알 수 없지만, 궤를 지키는 자로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임명하기 위해서는 그는 틀림없이 아론과 매우 가까운 레위 자손이었을 것이다. 아론의 장자 이름이 나답이었으므로(민 3:2) 그의 직계 자손 중 하나가 아비나답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7:2 오래 있은지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기심과 반역의 씨를 파종함으로 하나님을 버리고 고난의 쓰디쓴 수확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20년이 걸렸다. 전에 하나님의 궤를 만들 일꾼을 필요로 할 때 하나님이 계획의 개략을 말하자 그 임무에 준비된 사람들이 발견되었다. 이동 중에 궤를 운반할 사람들이 필요할 때 시내산에서 모세를 도왔던 레위 지파가 자원해서 궤를 멨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의무에 실패했을 때 궤가 우상 숭배자의 수중에 들어갔고 이것을 되가져오는 일에 도움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실패했으나 들짐승은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였다. 모든 존경과 질서 가운데 궤를 운반하고 보호할 이들이 바로 가까이에 있었다. 그들은 그 의무에 왜 준비되어 있지 않았는가?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만한 그들의 배경이나 족보에 대한 암시가 전혀 없다. 기록된 것은 단지 우상숭배는 아무런 유익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이스라엘이 배우고 회개하며 사무엘에게 돌아가기까지 20년이 걸렸다는 사실이다. 예루살렘에 궤를 둘 장소가 마련되는 동안, 사울의 치하에서 사무엘이 사사로 지내는 동안과 다윗의 통치 초기까지 궤는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렀다. 

7:3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버리고 섬겼던 여러 이방 신과 여신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표현. 아스다롯(단수형은 Ashtoreth, 복수형은 Ashtaroth)은 베니게 또는 가나안의 바알들과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가 가나안 여신 중 우두머리였기 때문이다(참조 삿 2:13 주석).

  아스다롯은 자연의 생식 능력을 대표한다고 믿었다. 그에게 바치는 예배는 보통 음란하고 흥청대는 주연(酒宴)으로 이루어졌으며, 많은 경우에 그의 숭배자가 된 “신성한 여인들” 즉 신전 창녀라고 불린 여인들이 인도했다. 가나안의 신과 여신들의 작은 입상이 많은 이스라엘의 가정에 있었음에 틀림없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평지에 사는 사람들의 영향력과 지배에 점차 빠졌는데, 왜냐하면 상업적 거래(삼상 13:19)를 갖거나 사교적인 관계(삿 14장)를 맺었기 때문이다. 궤를 여러 해 동안 기럇여아림에 방치하고 성전 봉사를 회복하거나 궤를 위한 적절한 장소를 마련할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이 여호와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났는지를 보여 준다. 후에 이스라엘이 앗수르나 바벨론으로 유배간 것처럼, 해변 평지로 끌려갔다는 어떤 역사적 기록도 없지만, 그들이 블레셋을 섬기고(삼상 4:9) 해마다 각종 공물을 바치며 그 땅 전역에 두루 퍼져 있던 산당의 음란한 제사를 즐기는 등 거의 모든 생활 영역에서 블레셋과 교제한 것이 틀림없다. 

  이제 사무엘이 이기적이고 우상숭배에 빠진 백성들을 하나님에게 돌아오게 하는 개혁자의 역할로 아벡 전투 이후 처음으로 이야기에 다시 등장한다. 이곳 저곳을 여행했던 수 년의 시간이 그에게 어떠했는지는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가 블레셋과 인접한 지역만 방문한 것은 아니었다. 온 이스라엘이 그의 간청과 경고와 기도를 들었고 점차 그들의 죄와 하나님을 새로이 신뢰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온 나라를 확실히 사로잡았다. 그는 그들의 현 상태를 하나님이 가진 원래의 계획과 비교하여 생생하게 그렸고, 그들이 진정한 이스라엘, 즉 문자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가 되기만 하면 블레셋으로부터 구원받을 것을 약속했다.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포기하고 블레셋 신들을 섬기기를 거절한다면, 이것이 블레셋 통치에 대한 반역과 같은 것이요 곧 전쟁을 의미함을 사무엘은 알았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버림받은 백성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일을 계속 했다. 

7:4 바알들과 아스다롯.

 참조 삿 2:11, 13 주석. 

7:4 여호와만 섬기니라.

 삼손과 엘리 시대에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블레셋의 종이었으나 이제 엘리가 죽은 후 20년 동안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우상숭배의 영향 아래 있었으므로 회개한 백성들이 다음으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를 몰랐다. 궤는 성막에서 떠났고 성막 봉사 자체도 중단되었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609). 예배자가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연중 절기도 없었다. 궤를 빼앗긴 후 실제적으로 새로운 세대가 생겼다. 이스라엘 백성은 산중에 방황하는 양떼와 같았다. 잃어버린 것은 깨달았으나 우리로 돌아갈 방법은 알지 못했다. 백성들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돌아오고 싶어할 때가 올 것을 예상하고, 하나님은 방황하는 그들을 찾아서 집으로 데려올 충실한 목자를 준비했다. 하나님이 계획한 대로, 이제 이스라엘은 근심 중에 사무엘에게로 향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가장 큰 격려 중 하나는,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은 준비 없이 있지 않는다는 보증이다. 처음부터 끝을 아시는 그분에게는 서두름도 지체함도 없다. 사무엘이 없었다면 이때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었을까? 모세가 없었다면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었을까? 다니엘이 없었다면 느부갓네살이 어떻게 하나님의 길로 인도받았을까? 인류 역사상 행동이 필요한 위기 때마다, 임무에 걸맞게 잘 훈련된 지도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이것이 여호와가 바라는 모든 것이 반드시 지도자에게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청함을 받은 이는 많으나 선택받은 이는 적다. 왜냐하면 많은 이가 삼손처럼 하나님의 지도를 거절하기 때문이다. 예레미야가 분명 특별한 사업을 위해 훈련되었고 그의 역할을 잘 수행했지만 이스라엘은 두려운 고통을 겪었는데, 이는 왕이었던 여호야김이 예레미야가 권한 충고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나 개인에게 심판 날에 주어질 큰 질문은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사 5:4)가 될 것이다. 

7:5 미스바.

 “망보는 곳”이라는 뜻이다. 히브리어로 미즈페(mizpeh)는 “망대”였고, 따라서 사 21:8에도 그렇게 번역되었다. 심지어 같은 장소를 지칭할 때도 두 가지 형태(Mizpeh, Mizpah)가 교대로 사용되었다. 사무엘의 미스바가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8킬로미터 떨어진 현재의 느비 삼윌(Nebi Samwil)이라고 수 년 동안 생각했으나(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아랍인들이 전승에 따라 이곳에 있는 한 무덤을 사무엘의 매장지로 신성하게 여기기 때문에 아직까지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굴은, 예루살렘 북쪽 12.2킬로미터 지점에 사마리아로 가는 대로(大路)상에 있는 현재의 텔 엔-나츠베(Tell en-Nas.beh)를 미스바로 지지하고 있다. 

7:6 물을 길어…붓고.

 본문의 의미에 대해 주석자들의 견해는 일치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 없이는 이스라엘의 운명이 땅에 쏟아진 물 같다(삼하 14:14)고 보고, 이 말이 자신의 죄에 대한 이스라엘의 슬픔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들은 이 말이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긷는 기쁨(사 12:2, 3)을 나타내는 초막절의 절정에 제사장이 부었던 물과 포도주와 관련이 있다고 제안한다. 초막절은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에게 베푼 하나님의 보살핌, 곧 모세가 친 반석에서 물이 풍성하게 흘러나온 사건을 기념한다. 

  광야에서 있었던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 그리스도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라고 선언했다. 아마도 이것에 대한 진정한 의미는 두 가지 개념의 결합을 통해 알 수 있다. 구원을 가능케 하기 위해 그리스도는 분명 “물같이 쏟아졌”다(시 22:14). 미스바에서 전제(奠祭)를 쏟아 부음으로써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무가치함을 인정했고 그들의 영적 방황에도 불구하고 두 팔을 벌리고 기꺼이 받아 주시는 하늘 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신뢰를 진지한 마음으로 기뻐했다. 

7:6 다스리니라.

 이것은 장기간에 걸친 사무엘의 사사 통치의 시작을 의미한다. 

7:7 블레셋 사람이…올라온지라.

 우상숭배를 단호하게 끊어 버리기로 결정한 후,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였다. 블레셋 방백들은 이것을 독립 선언과 동일하게 보고, 이스라엘이 이에 따른 어떤 행동도 시도하기 전에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서둘렀다. 블레셋이 아주 빠른 속도로 공격해 왔기 때문에, 평화의 목적으로 각지에서 모여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에 대한 준비 없이 그들과 대면해야 했다. 유일한 탈출구는 기도뿐이었다. 

7:8 쉬지 말고 부르짖어.

 문자적으로 “당신은 부르짖기를 잠잠하지 말라.” 모든 사람에게는 각기 자신의 활동 영역에 시험의 순간이 온다. 사무엘에게 그것은, 첫째로 여호와가 지도하도록 자신은 기다릴지, 둘째로 백성들이 과연 진격해 오는 군대를 보고 공포에 휩싸여 도망치는 대신 여호와를 신뢰할지에 대한 시험이었다. 이것은 백성들에게 하나의 심각한 시험이었는데, 왜냐하면 백성들은 이제까지 섬기던 우상을 버렸지만 자신들을 때마다 찾아왔던 이 선지자가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 20:20)는 여호사밧의 말에 대한 실제적인 증거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7:9 응답하셨더라.

 (「제임스왕역」에는 “들으셨다”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문자적으로 “대답하셨다.” 아나(‘anah)는 자주 나오는 동사인데, 영어 성경에서 여러 가지 뜻으로 번역되었지만 근본적인 의미는 “대답하다”이다. 하나님 편에서는 28:15에서처럼 종종 눈에 보이는 응답을 의미하는데, 사울은 하나님이 더 이상 그의 말을 듣거나 응답하지 않는다고 엔돌의 여인이 불러 온 영에게 불평하였다. 

7:10 여호와께서…우레를 발하여.

 여기서 하나님의 응답(참조 시 99:6)은 우레를 발함으로 왔다. 하나님이 자연의 힘을 기적적인 방법으로 사용한 다른 사례가 삼상 14:15에 나온다. 백성들은 여호와에게서 떠난 죄를 고백하고 우상을 버린 후, 겸비한 심령으로 하나님이 얼마나 빨리 그들을 당신의 보호 아래 두며 돌아온 탕자에게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내는지 목도해야 했다. 하나님은 씁쓸한 감정을 표현하면서 그의 백성이 여러 해 동안 겸비한 희생을 통해 그들의 태도가 바뀌었음을 명백히 보여 주기까지는 계속 멀리 떨어져 있는 그런 분이 아니다. 그분은 즉시 보호의 팔을 폈다. 그들은 이 장소를 하나님의 영원한 헌신과 사랑의 돌봄 그리고 지키고 구원하는 그분의 능력에 대한 기념으로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7:11 벧갈.

 이곳의 위치가 확실하지 않지만 어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6.7킬로미터 떨어진 오늘날의 아인 카림(‘Ain Ka-rim)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보는 것이 그동안 일반적인 의견이었으나 최근에는 이곳의 위치를 예루살렘 남쪽 4.6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라마트-라헬(Ramath-Rahel)로 본다. 폭풍우가 북쪽에서 왔고, 바알이 폭풍의 신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블레셋인들은 미신적인 생각에서 북쪽 산중에 거처를 두었다고 믿은 이 신으로부터 도망했을 것이다. 남쪽으로 도망하며 블레셋인들은 아마 평지로 가는 가장 쉬운 길을 택했고, 벧세메스를 거쳐 에그론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들은 도중에, 모여 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쉴새없이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수 세기 후에 이사야가 말한 대로, 즉시 거기서 하나님은 은혜롭게도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게 하였다. 

7:12 에벤에셀.

 히브리어 에벤 하아제르(’eben ha‘azer). 문자적으로 “도움의 돌”을 뜻하며, 바로 앞에 언급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구원을 분명하게 지칭한다. 그 도움이 구체적이었듯이 기념비도 명확하고 영구적이어야 했다. 하나님이 이번에 원수로부터 백성을 구원했다는 사실은 미래의 섭리에 대한 하나의 보증일 뿐이었다. 사무엘은, 여호와의 도움은 백성이 매일 매일 그분을 순종할 때만 그들편에 있는 것이지, 그들의 태도에 상관없이 단번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스라엘이 이해하기를 바랐다. 또한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섭리의 구원으로 자신에 대한 불신과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순종과 신뢰를 이뤘던 삶의 에벤에셀로 끊임없이 돌아가는 것이 좋다. 

7:13 여호와의 손.

 동일한 섭리의 사건이 동시에 은혜와 징벌을 가져올 수 있다. 즉 여호와가 인도하는 손에 굴복하는 자에게는 은혜요 자신을 섬기기로 선택한 자에게는 징벌이다. 그 동일한 폭풍우가 무력한 이스라엘에게는 승리를 가져온 반면 거짓 신의 힘과 자신의 팔의 솜씨를 의지했던 블레셋인에게는 패배를 가져왔다. 여호와의 군대에게 빛을 제공한 하나님의 임재의 동일한 불기둥이 애굽 군대를 흑암으로 둘렀다. 블레셋 사람들은 폭풍의 신 바알이 이제 자신들에게 대항하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운다고 결론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새로워진 관계로 그 같은 이교의 전통적인 견해를 이용하여 원수에 대한 최고의 승리를 이루어 낼 수 있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그렇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이 매우 불만족스럽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이른다. 그는 자신이 만든 어떤 종류의 우상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지금까지 계발해 온 습관과 지금까지 소중히 간직해 온 동기와 지금까지 추구했던 욕심이 무용함을 느낀다. 그는 이스라엘이 20년 동안 사무엘에게서 본 그런 관계를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과 즐기는 것을 보고 매료된다. 그는 자신의 지난 삶을 버리고 자신의 힘으로는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무능력함을 고백한다. 이제 그는 성령에 굴복함으로, 자신 속에 자제력 곧 이제까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고상한 삶에 순응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적시에 베푸는 영적 도움을 수용하는 마음이 창조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과거의 실패는 디딤돌이 된다. 아골 골짜기가 희망의 문이 된다(호 2:15). 

7:15 사무엘이…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가지고 성공적으로 장사한 사람에게 더 많은 달란트가 주어졌다. 사무엘은 처음 실로에 왔을 때 그의 어깨 위에 놓일 책임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못했다. 베드로도 벳새다를 떠나 베다니에 있는 요한을 방문했을 때 자신이 언젠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가 언젠가 그리스도와 함께 우주의 보좌 위에 앉으리라는 것은 더더욱 꿈꾸지 못했을 것이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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