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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9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사무엘상

사무엘상 9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6. 4. 15. 07:00

<사무엘상 9장 흐름정리>

본장은 사울이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택함받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사울로 하여금 그의 아버지가 잃은 암나귀를 찾아 나서게 함으로써 사무엘과의 만남을 주선하셨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의 유력한 집안에 속한 자로서 용모가 준수하고 키가 크며(2절) 효성이 지극한 인물이었다. 또한 그는 사무엘이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그를 상석에 앉힐 때 몸둘 바를 몰라할 정도로 겸손한 인물이었다(21절). 그만하면 백성이 왕으로 모실만도 하였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 후의 그의 행적을 보면, 참된 신앙이란 사람들의 일반적인 관점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무엘상 9장 줄거리>

1. 사울이 아버지의 나귀 찾는 것을 단념함.

6. 사울의 사환이 제안함.

11. 소녀들이 안내함.

15. 사울이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18. 사무엘에게 감.

19. 사무엘이 잔치에서 사울을 대접함.

25. 사무엘이 비밀 대화를 나눈 후 사울을 자기 길로 보냄.


<사무엘상 9장 개역한글>   

1.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라 베냐민 사람이더라

2. 기스가 아들이 있으니 그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 하더라

3. 사울의 아비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한 사환을 데리고 일어나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4.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니되 없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니라

5. 그들이 숩 땅에 이른 때에 사울이 함께하는 사환에게 이르되 돌아가자 내 부친이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6.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의 갈 길을 가르칠까 하나이다

7. 사울이 그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그릇에 식물이 다 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8. 사환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치게 하겠나이다

9.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10. 사울이 그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 있는 성으로 가니라

11. 그들이 성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12. 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있나이다 보소서 그가 당신보다 앞섰으니 빨리 가소서 백성이 오늘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그가 오늘 성에 들어 오셨나이다

13. 당신들이 성으로 들어가면 그가 먹으러 산당에 올라가기 전에 곧 만나리이다 그가 오기 전에는 백성이 먹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제물을 축사한 후에야 청함을 받은 자가 먹음이라 그러므로 지금 올라가소서 금시로 만나리이다 하는지라

14. 그들이 성읍으로 올라가서 그리로 들어갈 때에 사무엘이 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고 마주 나오더라

15. 사울의 오기 전 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가라사대

16. 내일 이맘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아보았노라 하시더니

17.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통할하리라 하시니라

18 사울이 성문 가운데 사무엘에게 나아가 가로되 선견자의 집이 어디인지 청컨대 내게 가르치소서

19. 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선견자니라 너는 내 앞서 산당으로 올라가라 너희가 오늘날 나와 함께 먹을 것이요 아침에는 내가 너를 보내되 네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네게 말하리라

20. 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비의 온 집이 아니냐

21. 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22. 사무엘이 사울과 그 사환을 인도하여 객실로 들어가서 청한 자 중 수석에 앉게 하였는데 객은 삼십명 가량이었더라

23. 사무엘이 요리인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주며 네게 두라고 말한 그 부분을 가져오라

24. 요리인이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을 가져다가 사울 앞에 놓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보라 이는 두었던 것이니 네 앞에 놓고 먹으라 내가 백성을 청할 때부터 너를 위하여 이것을 두어서 이때를 기다리게 하였느니라 그 날에 사울이 사무엘과 함께 먹으니라

25. 그들이 산당에서 내려 성에 들어가서는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지붕에서 담화하고

26. 그들이 일찌기 일어날쌔 동틀 때 즈음이라 사무엘이 지붕에서 사울을 불러 가로되 일어나라 내가 너를 보내리라 하매 사울이 일어나고 그 두 사람 사울과 사무엘이 함께 밖으로 나가서

27. 성읍 끝에 이르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사환으로 우리를 앞서게 하라 사환이 앞서매 또 가로되 너는 이제 잠간 서 있으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리리라


<사무엘상 9장 성경주석>

9:1 기스.

 게세니우스(Gesenius)에 따르면, 기스(Kish)라고 음역된 단어는 “덫을 놓다” 또는 “함정을 만들다”를 뜻하는 코쉬(qos∨)에서 왔다(참조 사 29:21). 동계어인 아랍어 단어는 “활처럼 휘어져 있다”라는 뜻이다. 기스가 “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기시”(대상 6:44)는 “나의 활”이라는 뜻일 것이다(“하나님은 나의 활이다”를 뜻하는 엘코쉬(’elkos∨i)에서 나온 나 1:1의 “엘고스”라는 이름과 비교하라). 종종 이 이름이 “하나님의 활”을 뜻하는 구사야(Kushaiah, 대상 15:17)처럼 하나님의 이름과 합성되기도 한다. 기스의 아버지는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다”를 뜻하는 아비엘이고 그의 할아버지의 이름은 “함께 묶인”을 뜻하는 스롤이다. 같은 어근의 단어가 삼상 25:29~31에 사용되었는데 아비가일이 다윗에 대한 나발의 범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는 장면에서이다. 스롤의 아비는 “장자”를 뜻하는 브코르(bekor)에서 파생한 베고랏(Bechorath)이며, 스롤의 조부 이름은 뜻이 불분명한 아비아(Aphiah)이다. 이렇게 하여 사울의 족보를 한 세기 넘게 거슬러 올라가 추적했다. 

9:1 아비엘의 아들.

 참조 14:50 주석. 

9:2 사울.

 히브리어 샤울(s∨a’ul). “구하다”, “요청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샤알(s∨a’al)에서 나왔다. 에돔의 한 왕도 사울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창 36:37, 38). 만일 주변 국가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 때문에 기스를 “하나님의 활”로 생각한다면(참조 삼상 9:1 주석), 그분의 전통(箭筒)에는 틀림없이 화살도 들어있을 것이다. 스가랴는 유다를 하나님의 활로, 에브라임을 그분의 화살로 말한다. 시온은 “용사의 칼과 같”다(슥 9:13).

  신장이 보통 사람 위로 어깨와 머리가 올라올 만큼 컸던 사울은 백성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는 위풍당당한 풍채를 지녔다. 주변 국가처럼 되기 원했던 이들에게 사람의 표준에 따라 왕을 선택해 주는 것보다 더 좋은 교훈을 달리 줄 수 있었을까? 예수의 제자들도 유다의 마음을 둘러싼 어둠을 거의 알지 못한 채 그를 지도자로 여겼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이 참 지도자의 자질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도록 하늘의 안약을 위해 간구할 때가 아닌가? 

9:3 암나귀들.

 인종과 민족의 운명이 얼마나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사건에 달려 있는가! 자신이 한 왕국을 책임져야 할 때가 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도 못하면서 사울은 잃어버린 당나귀(히브리어로는 “암나귀들”)를 찾으러 떠났다. 이후에 발생하는 사건들을 볼 때 사울은 하나님이 부르신 그 임무에 잘 준비되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그런 지도자를 맞으려고 준비된 백성은 거의 없다.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모세도 온전히 준비되지는 않았다. 지도자가 되라는 하나님의 부름의 긍정적인 측면은, 하나님은 사람을 발견한 그 상태로 사용하여 일하는 과정에서 그들을 훈련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기대하는 모든 것은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다(미 6:8). 문자적으로 말하면, “자신을 낮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렇게 했지만 유다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다윗은 그렇게 한 반면, 사울은 거절했다. 하나님이 사람을 훈련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낮추지 않으므로 적절한 시기가 왔을 때 하나님이 그를 높이지 못하는 것이다(벧전 5:6). 

9:4 에브라임 산지.

 요단 계곡에서 접근하든 서쪽 셰펠라 평지에서 접근하든, 에브라임 산지는 벧엘 근교에서 세겜 동쪽으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살림(Salim)까지 북쪽으로 뻗어 있는 중앙 산지에 불쑥 튀어나온 곳이다. 이 산맥은 해발 800~1000미터에서 분수령을 형성하여 시내들이 동쪽 요단강과 서쪽 지중해로 흐른다. 

9:4 살리사 땅.

 “살리사 땅”의 위치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것이 없다. 어떤 이들은 이곳이 벧엘 북서쪽의 서편 기슭에 있다고 주장하고, 다른 이들은 여리고 북서쪽 요단강 계곡에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9:4 사알림.

 혹은 수알(13:17). “여우” 또는 “자칼”을 뜻하는 슈알(s∨u’al) 아니면 “손바닥”을 뜻하는 쇼알(s∨o’al)에서 파생한 것 같다. 사알림 지역은 “자칼의 땅”으로 여겨진 것 같다. 중부 팔레스타인 산지의 동쪽 비탈은 대부분 거친 바위투성이 황폐지로, 주로 야생동물의 거처였다. 

  열거된 지역을 돌아다니며 수색한 지 사흘째에 사울과 그의 사환은 기브아에서 북쪽으로 약 9킬로미터 떨어진 라마에 당도했다(20절; 참조 1:1 주석). 동물을 잃어버린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서 몇 킬로미터 이상 가지 못했을 것이다. 잃어버린 나귀들을 찾는 과정에서 사울은 언덕과 골짜기, 협곡들을 조사했을 것이고, 여기 저기에서 멈춰 나귀들에 대해 물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2, 3일 동안 수색한 지역은 분명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울과 그의 사환이 베냐민 지역 북쪽과 에브라임 지역 남쪽에 위치한 기브아와 벧엘에서 멀리 가지 못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 13:17에 의하면, “수알 땅”은 벧엘에서 북동쪽으로 약 8킬로미터 떨어진 오브라 근교에 있었다. 사울이, 이름이 명시된 이 지역을 샅샅이 뒤진 것이 아니라 나귀들이 길을 잃고 헤맬 만한 지역을 골라 수색하였다. 집을 떠나 사무엘을 만나기까지 2, 3일 동안 사울은 산 정상에 올라가거나 골짜기나 협곡에 내려가는 발걸음을 포함하여 족히 50~60킬로미터는 여행했을 것이다. 

9:5 숩 땅.

 참조 1:1 주석. 

9:6 이 성.

 즉 사무엘의 고향 라마(부조와 선지자, 608; 참조 1:1 주석). 

9:11 비탈길로.

 당연히 나귀들은 마을에 있지 않을 것이다. 사울과 그의 사환은 사람들의 경작지가 있는 들판이나 시골 벌판에서 나귀들을 찾으려고 했을 것이다. 

9:14 마주 나오더라.

 즉 “그들을 향해 나오더라” 혹은 “그들을 부르러 나오더라.” 이 번역 중 어느 것이든 히브리어 본문과 문맥에 비추어 볼 때 가능하다. 

9:16 내가…보내리니.

 이 말이 14절의 배경을 말해 준다. 앞 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울은 예물 없이 선견자를 찾아가는 것에 자신이 없었고 성에 들어가는 것에 그가 동의하기까지 사환이 어느 정도 설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경우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과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성령의 역할을 잘 보여 준다.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룻은 섭리 가운데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되었고(룻 2:3), 빌립도 예루살렘에서 에디오피아로 돌아가는 내시에게 가게 되었다(행 8:26~29). 성령이 사무엘을 인도하듯이 도움이 필요한 영혼에게로 우리를 인도할 수 있도록 성령의 지배에 완전히 굴복하는 것은 거룩한 특권이다. 

9:18 성문 가운데.

 사무엘은 여호와의 지시를 받은 후 기별이 자기에게 온 시간을 기억하여 여호와가 말한 그 청년을 만나기 위해 아마 길을 나섰을 것이다. 장로들이 앉아 조언을 주거나 낯선 자에게 길을 안내해 주는 장소인 “성문 가운데”서 두 사람은 만났다. 사무엘은 이곳에서 성으로 올지 모르는 낯선 자에 관한 정보를 얻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타이밍이 정확했다. 사울이 말도 꺼내기 전에 사무엘은 그가 바로 전날 여호와가 말한 그 사람임을 알아챘다(17절). 오랫동안 충성스럽게 섬겨 온 하나님에 의해 자신이 인도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사무엘은 무척 흥분했을 것이다! 사무엘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굴복한다면 오늘날 그와 같은 흥분을 경험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18, 19절은 아마 14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일 것이다. 

9:20 찾았느니라.

 사무엘은 그 나귀들이 사흘 동안, 문자적으로는 “오늘, 사흘” 동안 잃어버린 바 되었다고 말한다. 사울에게 높은 부름에 대해 말하기 전에, 사무엘은 그의 방문의 실제적인 목적에 관해 사울을 안심시켰다. 그리스도는 항상 그의 청중의 영적인 갈망뿐 아니라 육체적인 필요도 충족시켰다. 그가 사람들의 신체적 행복에 관심을 보인 바로 그 사실이 그가 그들의 영적 필요에 대해 봉사할 때 그들로 하여금 그의 말을 듣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리하여 나귀를 찾았다는 소식은 왕국에 대한 사무엘의 기별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사울에게 확신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9:20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

 사무엘은 자신이 선지자와 사사였지만 이스라엘이 마음에 사모하는 자를 얻을 것이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블레셋인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책임을 이어 갈(16절) 이 젊은 청년을 만나면서 사무엘은 어떤 후회나 질투의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사울에게 명예와 존경의 표시를 나타냈다(참조 20~24절). 이로써 사무엘은 참된 이타심을 보여 주었다. 모세처럼, 그도 여호와의 신이 모든 백성에게 임하기를(민 11:29) 열망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 2:6), 다만 무아(無我)의 참된 원칙을 보여 준 것은 이기는 자가 그와 함께 보좌에 앉도록 하기 위함이다(계 3:21). 이와 마찬가지로 사무엘도 사울에게 그 책임을 기꺼이 넘겨줄 뿐 아니라 그 일을 위해 이 미래의 왕이 준비되도록 그의 모든 힘을 기울일 것을 보여 주었다. 

9:22 객실.

 희생제물을 먹는, 높은 곳에 붙어 있는 방을 말한다. 사울과 그의 사환은 약 30명의 장로가 임석한 가운데, 방 상석(上席)으로 안내되었다. 사울은 끈질기게 아버지의 나귀들을 찾는 일에 매달렸고, 따라서 장로들이 그를 주시하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블레셋의 적대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길을 집요하게 찾을 사람이 여기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9:24 넓적다리.

 (「제임스왕역」에는 “shoulder”[앞다리]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사울이 초대받은 잔치는 라마의 장로들이 동참한 화목제의 희생이 분명하다(참조 제2권, 130; 레 3:1 주석). 시내산에서 언약을 비준할 때 이스라엘 자녀들도 그런 희생제사를 드렸다(출 24:4~8). 이 희생제사에서 가슴과 “우편 뒷다리”(혹은 넓적다리)는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의 몫이었다(레 7:33, 34). 희생제물의 고기는 희생을 드린 그날에 틀림없이 먹어야 했고 아무것도 남겨서는 안 되었다(레 7:16). 사울에게 주어진 “뒷다리”가 평민도 먹을 수 있는 좌편의 것이었는지, 제사장에게 속한 우편의 것이었는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귀빈으로 초대한 사울을 위해 따로 두었던 부분이다. 

9:24 사무엘이 가로되.

 “사무엘”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 본문에는 없지만 그가 화자임에는 분명하다. 자신의 도착이 예견되고 그것을 위해 신중히 계획되었다는 사실이 사울에게 분명해졌고 지도자의 책임을 맡으라는 하나님의 초청을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9:25 사울과 함께…담화하고.

 사울은 자신에 대한 높은 부르심을 그날에는 듣지 못했다. 사무엘이 지난 수 세기 동안 시행된 신정통치의 대 원칙과 장로들에 의해 강력히 요청된 변화가 함축하는 바를 그의 손님에게 설명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선지자가 깨울 때까지 사울이 잠을 잔 것으로 보아 겉으로 보기에는 그날의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사울에게 큰 부담을 주지는 않은 것 같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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