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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3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사무엘상

사무엘상 13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6. 4. 21. 07:13

<사무엘상 13장 흐름정리>

사울이 왕위에 오르면서 처음에는 사뭇 겸손하였다. 그러나 왕권을 행사하는 가운데 교만의 싹이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본장에서는 블레셋과의 전투 과정에서 사울이 범한 중대한 실책을 보도한다. 요나단의 선제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블레셋은 대대적인 침공을 감행했으며, 이스라엘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사울은 사무엘의 도착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제사장 직무를 침해하였던 것이다. 한편, 블레셋이 이스라엘 내에 철공을 없애버렸다고 하는 기사는(19~22절) 14장에 언급되는 이스라엘의 승리가 오직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에 따른 것임을 암시한다.


<사무엘상 13장 줄거리>

1. 사울이 군사를 뽑음.

3. 요나단이 블레셋 수비대를 치고, 사울이 블레셋에 대항하기 위해 히브리인들을 길갈로 소집함.

5. 블레셋 대군.

6. 이스라엘 백성들의 위기.

8. 사무엘을 기다리다 지친 사울이 제사를 드림.

11. 사무엘이 사울을 질책함.

17. 블레셋의 세 노략대.

19. 이스라엘에 철공을 허용하지 않는 블레셋의 정책.


<사무엘상 13장 개역한글>

1.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이년에  

2. 이스라엘 사람 삼천을 택하여 그 중에서 이천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산에 있게 하고 일천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내니라  

3.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하니  

4. 온 이스라엘이 사울의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친 것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가증히 여김이 되었다 함을 듣고 길갈로 모여 사울을 좇으니라  

5.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여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서 벧아웬 동편 믹마스에 진 치매  

6.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7.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은 떨더라  

8.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9.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0.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11. 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15.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사울이 자기와 함께한 백성을 계수하니 육백명 가량이라  

16.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과 그들과 함께한 백성은 베냐민 게바에 있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진 쳤더니  

17. 노략군들이 삼대로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나와서 한 대는 오브라 길로 말미암아 수알 땅에 이르렀고  

18. 한 대는 벧호론 길로 향하였고 한 대는 광야를 향한 스보임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 지경 길로 향하였더라  

19.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어졌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20. 온 이스라엘 사람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에게로 내려갔었는데  

21.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  

22.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으니라  

23. 블레셋 사람의 부대가 나와서 믹마스 어귀에 이르렀더라


<사무엘상 13장 성경주석>

13:1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제임스왕역」에는 “사울이 일 년을 다스렸더라”로 되어 있음-역자 주). 이 본문의 뜻은 모든 번역자들과 주석자들이 동의하는 대로 모호하다. 우리가 오늘날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본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통치를 시작할 때 사울은…세였고 그가 이 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이다(“…세였고”에 대하여는 제2권, 82, 83과 창 5:32 주석을 참조하라). 최초의 번역 성경이 나왔을 때부터 이 구절은 번역자들에게 난제(難題)였다. 초기의 「70인역」은 이 구절 전체를 생략하여 어려움을 피해갔다. 타르굼은 “사울은 다스리기 시작할 때 한 살 난 아이처럼 순진했더라”로 의역했다. 「수리아역」은 “사울이 한두 해를 통치했을 때”로 번역한다. 앞의 번역들처럼, 「제임스왕역」은 오늘날의 히브리어 성경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고, 번역자들이 히브리어 성경의 원래 구절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의역했다. 「개정표준역」은 두 가지가 생략된 것으로 가정하여, “사울이 다스리기 시작할 때…세였고, 이스라엘을…과 이 년 동안 다스렸다”로 번역했다. 

  일부 주석자들은 필사 과정에서 생략이 이루어진 한 경우가 바로 여기라는 사실에 동의하지만, 성경을 전달하는 과정 중 어느 시점에서 그런 생략이 발생했는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만일 현존하는 히브리어 본문이 생략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면 그것은 후대의 필사자들이 새 필사본을 만들어낼 때 아주 조심스럽고 성실하게 했다는 증거가 되는데, 이는 그들은 본문 자체에 함부로 손을 대지 않고 그 의미가 모호할지라도 있는 그대로 두었기 때문이다.

  추측으로 얻을 것이 별로 없지만, 잠정적인 설명을 하나 제시할 수는 있다. 지금 고찰하고 있는 진술 형태는 왕이 통치를 시작할 때와 통치 기간을 말할 때 성경 기자들이 보통 사용하는 형태의 문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다윗에 대해 사용된 동일한 문구가 삼하 5:4(참조 왕하 21:1; 24:8 등)에 나타난다. 만일 삼상 13:1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유사한 생략이 비견될 만한 왕하 21:1 같은 구절에서 일어났다면 그 구절은 이렇게 될 것이다. “므낫세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세라 예루살렘에서…과 오 년을 치리하니라.” 이 두 문장의 기본적 구조는 동일하다. 사울이 왕이 된 때의 나이를 밝히기 위해 숫자를 하나 삽입하고, 그의 통치 기간을 위해 또 다른 숫자를 삽입하면 다윗과 다른 왕들에 관한 진술과 평행을 이루게 된다. 아마도 히브리어 본문에 “…그리고 이 년이”라는 구절은 “사십”으로 되어 있었을 것이다(참조 행 13:21). 이처럼, 오늘날의 히브리어 성경의 13:1 본문은 본래는 사울의 나이와 통치 기간에 대한 진술이었음을 암시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사울은 구약에서 유일하게 그런 언급이 없는 히브리 왕이 될 것이다.

  또 다른 설명에 따르면, 13:1은 “사울이 일 년간 다스렸고, 이스라엘을 이 년간 다스렸더라”로 되어야 한다. 즉 그는 일 년간 다스리기를 마친 후 본 장에 기록된 사건들이 발생했을 때는 통치 2년째였다. 하지만 13:1의 히브리어 본문이, 사울의 통치 2년에 13장 사건이 일어났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어색할 뿐 아니라 왕들에 관한 성경의 기록 가운데 동일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문장 구조가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비록 최초의 실질적 공격 즉 여기 기록된 요나단의 공격은 다소 뒤에 이루어졌지만, 사울이 통치 제2년에 블레셋을 정복하려고 시도했다는 뜻으로 이 본문을 이해하는 것이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렇게 이해할 때, 이 번역과 삼상 3:1에 대하여 여기 언급된 첫 번째 해석이 조화를 이룬다. 그러므로 부조와 선지자, 616에 나타난 설명을 이 구절에 대한 「제임스왕역」의 해석에 근거한 것으로 결론짓는다면, 그 진술 자체는 첫 번째 시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구절을 어떻게 번역하고 해석하든지, 본문이 원래 무엇이었는지는 여전히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모호하고 어려운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교리와는 무관하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과 관계 있는 문제는 아니다.

13:2 기브아.

 기브아는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텔 엘-풀(Tell el-Fu-l)로 확인되었으며, 중앙 산맥 지역의 산마루에 있어 전망이 좋은 지점으로,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5.6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사울의 요새화된 수도로 생각되는 폐허가 근래에 그곳에서 발굴되었다(참조 제1권, 138, 139).

13:3 게바.

 이 기브아에서 북동쪽으로 약 6.4킬로미터 떨어진 지표면에 와디 메디네(Wadi Medineh)로 불리는 거대한 틈새가 있는데, 가장자리에 가까이 다가가도 거의 식별할 수 없을 정도다. 높이가 수백 미터나 되는 협곡의 양쪽 벽은 도저히 건너갈 수 없는 절벽을 이루고 있다. 그 와디의 서남쪽에 게바가 있고, 이 협곡 건너편 동북쪽으로 2.8킬로미터 지점에 믹마스라는 성읍이 있는데, 기브아(텔 엘-풀) 일대 지역보다 약 213.4미터가 낮은 평지에 위치해 있다. 믹마스 동쪽 지형은 상당히 먼 거리까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농사짓기에 아주 적합하고, 여리고에서 접근하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벧엘은 기브아 북쪽 9.6킬로미터 지점에 있고 기브아보다 30.5미터 가량 높다.

 


  믹마스는 여리고와 요단 계곡에서 벧엘로 가는 길과 예루살렘에서 세겜으로 가는 간선도로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다

  사울은 아들 요나단과 군대 3분의 1을 기브아에 두고 나머지 3분의 2는 자신이 친히 지휘하면서 동쪽의 적으로부터 벧엘과 기브아를 수비했다. 만일 암몬 사람들이 길르앗 야베스에서 거둔 사울의 승리에 보복하기 위해 침공해 온다면 이 길로 올 공산이 가장 클 것이다. 사울이 서쪽에서 침공해 오리라고 예상치 않은 것은 블레셋 사람들과는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참조 7:13).

13:3 블레셋 사람.

 비록 이스라엘과 전쟁 중은 아니었지만,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 남서쪽 게바에 있는 수비대 같은 산지 주둔 부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게바는 믹마스보다 61미터가 더 높고 와디 건너편에 있었다. “수비대”로 번역된 느치브(nes.ib)라는 단어는 “수비 자세를 취하다”, “주둔하다” 즉 직무상 배치받는 것을 뜻하는 동사 나차브(nas.ab)에서 파생되었다. 거기서 과히 멀지 않은 라마(참조 1:1 주석)에는 사무엘이 조직한 선지자 학교가 있었다. 분명히 사무엘은 학교를 가까운 곳에 설립함으로써 이교를 신봉하는 블레셋의 영향을 저지하고 백성들이 다시 여호와를 경배하도록 이끌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만일 선지자 학교의 영향이 게바 주민의 개인적 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진정한 의미를 볼 수 있었더라면 유혈 전쟁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며, 후일 아람 사람 나아만이 그랬던 것처럼(왕하 5장) 많은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13:3 수비대.

 히브리어 느치브(nes.ib). “기둥”, “사령관”, “부관”, “수비대”, “주둔군”을 뜻함. 주석자들은 “사령관”이나 “총독”이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 문맥과 더 부합한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해왔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616). 창 19:26에는 느치브가 “기둥”으로 번역되어 있고, 왕상 4:19; 대하 8:10에는 “관장” 또는 “감독하는 자”로 번역되어 있다.

13:3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히브리 사람들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된 “히브리인”이라는 명사는 성경 전체에 35회 나오는데, 구약에 31회 신약에 4회 나온다. 구약의 31회 가운데 16회는 이스라엘의 애굽 체류와 관련하여, 5회는 여기 언급된 블레셋 사람과의 전쟁과 관련하여 나온다(13, 14장). 그와는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수백 번 사용되었는데, 왜 이 두 경우가 그렇게 현격하게 대조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일어난다. 그러나 한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히브리인”이라는 용어는 항상 외국인들이 사용하거나 아니면 히브리인들이 외국인에게 자신들에 대하여 말할 때 사용했다. “히브리인”은 주변 민족이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할 때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으로, 일반적으로 그 이름으로 알려졌을 것이라고 생각된다(참조 창 10:21; 14:13 주석). 바로와 그의 백성은 두 가지 이름을 번갈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참조 출 1:16; 5:2; 14:5; 삼상 13:7).

13:4 가증히 여김이 되었다.

 하룻밤 묵은 상한 만나를 기술할 때 같은 동사가 사용되었다(출 16:20, 24).

13:4 길갈로 모여 사울을 좇으니라.

 나라의 설립이 길갈에서 비준되었기 때문에(11:14, 15), 사울은 그들의 준비를 블레셋 사람들이 관찰할 수 있는 기브아나 믹마스 대신에 온 이스라엘을 길갈로 소집했다. 블레셋 사람들이 여러 지류(支流) 와디들을 통하여 진격한다면 기브아와 믹마스에 도달하는 데 별로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왜 사울이 베냐민 지역에 이미 주둔해 있는 군대를 보강할 것을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지 않았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 지역은 사무엘의 집 근처였고 성지 벧엘과 가까웠다(참조 1:1 주석). 게바에 있는 와디의 바위들은 장엄한 요새가 되었을 것이며, 그곳 주민은 지금 복수에 혈안이 된 블레셋 사람들보다 수비에 필요한 지형을 더 잘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궁지에 몰렸을 때 사울은 사무엘이 길갈로 가라고 말한 것이 생각났을 것이다(10:8)

13:5 삼만.

 「70인역」의 수정판인 「루키아누스역」과 「수리아역」의 본문은 “삼천”으로 되어 있다. 히브리어 단어의 3과 30이 매우 흡사해 보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잘못 읽기 십상이다.

13:6 숨으며.

 이스라엘은 몇 해 전 실로 근처에서, 특별히 사무엘의 부재 시에 당한 패배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공포에 사로잡혔다. 동원된 블레셋 군대를 보고 백성들이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에 사울은 진영의 질서를 유지할 수 없었고, 군대의 사기는 급속히 떨어졌다. 그들은 몇 달 전 야베스에서 거둔 승리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최근 그들이 바로 이 장소에서 죄를 고백하고 희생을 드리면서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했던 것도 잊었다(11:15). 공포에 질린 그들의 모습과, 후일 성문에 당도한 아람 군대를 보고 놀란 게하시의 눈을 뜨게 하여 산을 온통 뒤덮은 천사의 군대를 보게 해 주었던 엘리사가 나타냈던 믿음은 얼마나 대조적인가! 이 위기의 때에 사울과 그의 군사들이 전투를 하러 움직이기 전에 선지자의 권고와 축복을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던가!

13:7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사울은 전쟁 소집을 명하면서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3절)라고 말했다. 그러나 7절에서는 히브리 사람들이 요단을 건너 도주했다고 말한 반면(“히브리 사람들”이라는 표현 앞에 있는 “어떤”은 원문에 없다), 6절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에브라임 산지”(14:22, 「개정표준역」)에 있는 “굴”에 숨었다고 진술한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대적을 언급할 때 일관되게 “히브리인들”이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사무엘서의 저자는 예컨대 19절에서처럼 “이스라엘 사람”과 “히브리인”이라는 말을 구별해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19절은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지 못하도록 블레셋 사람들이 모든 철공을 통제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저자 자신은 “온 이스라엘 사람이” 연장을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에게로 내려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70인역」은 이곳의 “히브리 사람”을 “노예”로 번역했다. 참조 3절 주석.

13:8 이레를 기다리되.

 이것은 사울이 이미 옹근 이레를 기다렸다거나, 사무엘이 제8일이 돼서야 도착했기 때문에 약속보다 하루 늦게 왔음을 반드시 의미하지는 않는다. 선지자가 약속한 그날 일찍 나타나지 않자(참조 부조와 선지자, 617 618) 사울이 제사드리는 책임을 친히 떠맡았을 것이다.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면서 사무엘은 이런 경우를 당할 때 어떻게 해야할지 지시를 주었다. 즉 그는 길갈로 가서 사무엘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었다(참조 10:8; 부조와 선지자, 617 618). 그러나 제사를 드리기로 약속한 시간이 지난 후 곧 도착한 사무엘은 사울이 불순종했음을 알았다(13:10).

13:11 백성은…흩어지고.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할 것을 예견하면서 모세는 통치자에게 “말을 많이 두지 말라”, 다시 말해 방어를 위해 물질적인 장비에 의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참조 신 17:16; 사 31:3). 나라의 지도자요 백성의 본보기인 왕은 그렇게 하는 대신 율법의 필사본을 입수하여 부지런히 연구하고 거기 기록된 지시에 순종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이웃 민족의 군사 장비와 상비군의 규모를 생각한 사울은 하나님을 믿는 단순한 믿음과 의뢰 없이 안전과 성공을 도모하려고 생각하였다. 그런 생각을 품었기 때문에 사울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비롯된 용기를 부하들에게 고취시킬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의지할 무기조차 없는 그의 군사들-사울보다 더 분명한 식별력이 있는-은 승리를 기대할 아무런 토대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망은 절망적으로 보였다. 이렇게 하여 사울의 군대는 대부분 위험이 닥쳐오고 있음을 분명하게 직감하자 안전을 염려한 나머지 탈영했고, 사울과 함께 길갈에 남아있는 군사라고 해봐야 고작 600명이었다. 사울은 적군이 18.4킬로미터 떨어진 믹마스에 집결하고 있다고 정찰병들이 보고하자 나라뿐 아니라 자신의 안전을 잃을까봐 두려워 떨었다. 

  사울은 자신의 군대의 신임과 존경을 잃어 버렸다. 날이 갈수록 더 많은 군사들이 탈주했다. 그는 완전히 낙담에 빠졌다. 그의 인기는 썰물처럼 급속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상황을 이렇게 만든 책임을 제때 나타나지 않은 사무엘에게 덮어씌울 참이었다. 사울은 사무엘이 함께 있지 않은 것을 통분히 여겼다. 이런 정신 상태에서 그는 선지자를 만났지만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변명의 정신으로 그를 대했다. 그가 암몬을 칠 준비를 할 때 가졌던 정신과 얼마나 큰 대조를 이루는가!

13:13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즉 과거의 섭리들에 기초하여 하나님을 믿는 믿음 대신 감정이 지배하도록 허락함으로써. 만일 하나님이 함께하면, 누가 감히 그대를 대적할 수 있겠는가. 3만 2천 명 중에서 남은 300명으로 기드온이 이루었던 일을 사울은 3천 명 중에서 남은 600명을 가지고 틀림없이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하나님의 약속과 선지자의 말을 신뢰하기를 거부하고 위기의 순간에 불신과 우유부단한 태도를 나타낸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계속 그와 함께할 수 있겠는가? 사울이 기꺼이 자신을 낮추었더라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얼마나 크게 달라졌겠는가!

13:14 [네 나라].

 사울은 사무엘의 지시를 오해했다든지 또는 지시가 분명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그는 자기의 생각을 따르기 위해 사무엘의 지시를 고의적으로 범했음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사울의 입장을 에덴 동산의 아담이나 시험의 산에 계신 그리스도의 입장과 비교해 보라. 광야로 들어가 마귀에게 시험받기 전에 그리스도는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보증을 받았다. 6주 후, 몹시 굶주려 탈진 상태에 빠져 그의 앞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참을성 있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렸다. 사단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분의 확신을 흔들어 놓기 위해 온갖 시도를 다 기울인 것은 그가 버림받은 것처럼 느껴지고 정신적 긴장으로 지쳐 수척해졌을 때이다. 그러나 아담이 실패하고 사울이 내리막길을 선택한 곳에서 그리스도는 승리했다! 

  사무엘의 책망은 통회와 겸비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주어졌으나 허사에 그쳤다. 사무엘이 나타났을 때 사울은 지난 여러 달 동안 기울인 사무엘의 염려와 사심 없는 관심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어야 했다. 그러나 비통하게도 이 모든 것을 깡그리 잊고 말았다. 사울은 잘못이 사무엘에게 있다고 비난하면서 자신을 정당화하려 했다. 사울과 마찬가지로 시대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러했다. 난관이 쇄도해 올 때, 임박한 위험에 대한 공포로 분별력 있는 판단은 밀려나고 문제를 당장 해결하고 싶어 조바심이 난다. 이와 같은 압박감 아래서 이성은 의무에 눈멀게 되며, 그 대신 다른 사람들을 비평하고 정죄하며 그러한 선택을 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굳게 결심한다. 전에 가졌던 하나님의 보호와 지도와 돌보심에 대한 확신은 냉소적인 불신으로 바뀌고, 마침내는 반역한다.

13:15 기브아.

 참조 16절 주석.

13:16 게바.

 (「제임스왕역」에는 “기브아”로 되어 있음-역자 주). 원문에는 15절에서처럼 기브아가 아니라 게바로 되어 있다. 게바는 와디를 사이에 두고 막마스 바로 맞은편에 있었다(참조 14:4, 5). 번역상의 이런 혼란은 옛 지도에서 여전히 확인되듯이, 게바와 기브아가 철자는 틀리지만 같은 곳이라는 견해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게바가 가끔 기브아로 불린 것은 사실이지만 각기 다른 두 지역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참조 14:16 주석). 근래의 발굴과 성경의 단서들을 통해 사울의 요새를 게바에서 서남쪽으로 5킬로미터 떨어진, 예루살렘 바로 북쪽에 있는 텔 엘-풀(Tell el-Fu-l)로 보는 해석이 옳다면, 요나단은 거기로 간 것이 아니라 게바에 머문 것이 확실하다. 요나단은 블레셋에게 게바를 빼앗은 후 여기 언급된 믹마스 맞은편 게바에 유했고(3절), 사울은 길갈에서 돌아온 후 그와 합류했을 것이다.

13:17 삼 대.

 오브라는 두 개의 간선 도로가 만나는, 여리고 서북쪽에 있었을 것이다. 문자적으로 “자칼의 땅”을 의미하는 수알은 에브라임산 정상에서 요단강 쪽으로 지형이 급하게 경사진, 오브라 동쪽 지역의 굴이 많은 비탈을 지칭할 것이다. 이 지역은 벌집 같은 석회암 동굴들이 있어서 숨기에 안성맞춤이다.

13:18 벧호론.

 위 벧호론과 아래 벧호론은 믹마스에서 서쪽으로 각각 15.2킬로미터 및 18.4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으로, 에브라임과 베냐민의 경계에 가깝고 거기서부터 셰펠라 쪽으로는 산이 깎아지른 듯 경사가 심하다. 느 11:34에는 스보임이 아나돗과 믹마스 남쪽의 다른 성읍들 즉 유다 광야쪽의 성읍들에 인접한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지도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블레셋 군대는 길갈로 진격하지 않고 북, 서, 남쪽을 우회하여, 그들이 생각하기에 믹마스 동쪽의 동굴들에 들어가 숨은 사울의 군대로부터 증원군이 오지 못하게 차단하려고 했다.

13:19 철공이 없어졌으니.

 한동안 블레셋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서 철이나 기타 금속으로 제련하는 일을 독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때 팔레스타인에서 사용된 철은 소아시아에서 해안 성읍들을 통해 수입되었다. 물론 그 성읍들은 블레셋 사람들의 관할 아래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히브리 사람들이 무장하지 못하게 막는 정책 곧 그들의 관점에서 그 지혜로운 정책을 시행하기가 비교적 쉬웠을 것이다.

13:20 보습.

 밭 가는 연장.

13:20 삽.

 또는 “괭이.”

13:20 괭이.

 또는 “낫.”

13:21 그들이…그리하였으므로.

 (「제임스왕역」에는 “They had a file”[그들은 줄을 가졌으므로]로 되어 있음-역자 주). 근자의 여러 발견에 의하면, 이렇게 번역된 구절을 “그 값은 한 핌(a pim)이었다”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하다(「개정표준역」, 참조 제2권, 107, 108). 한 “핌”은 2/3세겔 즉 7.6그램에 해당하는 화폐 단위이다.

13:21 괭이.

 원문에는 “보습과 괭이”로 되어 있다.

13:21 쇠스랑.

 (「제임스왕역」에는 “fork”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리셸로쉬 킬레숀(lis∨elos∨ qilles∨on). 의미는 확실치 않다. 리셸로쉬는 “세 부분으로 가르다”를 뜻하는 샬로쉬(s∨alos∨)에서 온 말로, “위하여”를 뜻하는 르(le)와 “세 번째 부분”을 뜻하는 셸로쉬(s∨elos∨)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다. 킬레숀이라는 단어는 구약의 다른 곳에서는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의미가 불확실하다. “포크”(fork)라는 번역은 부분적으로 “얇다”를 뜻하는 비슷한 아람어 단어와 리셸로쉬에 근거한 추측일 뿐이며, 리셸로쉬는 무엇이든 “얇은” 물건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졌음”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르카비(Harkavy)의 현대 히브리어 역본에는 그 표현이 “삼지창”으로 되어 있는데, “포크”라는 단어보다는 히브리어의 원뜻에 더 가깝다.

  「개정표준역」에는 리셸로쉬 킬레숀이 “삼분의 일 세겔”로 번역되어 있다. 「제임스왕역」과 기타 번역의 경우처럼 이 번역도 하나의 추측일 뿐인데, 킬레숀이라는 단어의 글자 위치를 바꾸어, 킬레숀 대신에 “세겔”을 뜻하는 셰켈(s∨eqel)로 읽고 온(on)을 지소사(指小辭)로 간주하는 데 근거한다.

  “포크”(fork)라는 번역이 불확실한 것은, 그 당시 “포크”는 오늘날에도 원시적인 농기구를 사용하는 동방 전역의 여러 지역에서 그렇듯이 철제가 아니라 목제였기 때문이다. 목제 연장이라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것을 벼리러 블레셋 사람에게 가지 않았을 것이다(참조 19~21절). 아무튼 리셸로쉬 킬레숀을 연장으로 간주해야 한다면, 분명히 그것은 “철공”이 제작했다(19절). 21절의 “핌”이 “줄”(file)이 아니라 화폐 단위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삼분의 일 세겔”로 되어 있는 「개정표준역」은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그럴듯하게 보인다(참조 제2권, 107, 108). 그러므로 “보습을 벼리는 값이 한 핌이었다”(「개정표준역」)라는 번역이 더 낫다.

13:22 칼이나 창이 없고.

 여러 해 블레셋의 압제를 받은 결과 사울과 요나단 외에는 철제 무기를 소유한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병사들은 활과 물매를 가졌을 것이다. 그것들이 노련한 병사들의 손에 들리면 결코 하찮은 무기가 아니다(참조 삿 20:16). 그러나 그들은 백병전이 벌어졌을 때는 적의 철제 무기를 당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구절은 두 가지 사실을 밝혀준다. (1) 그 전쟁은 이스라엘이 아직 제대로 편제를 갖추기 전, 아마도 사울의 통치 초기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 병기의 부족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해 개입했다는 사실을 양측 모두 확실히 보게 했다. 사울이 반역했을 것이고, 그 결과 많은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여전히 역사하여 각 사람이 그분의 나라에 가담하고 그분을 의뢰하도록 격려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데로 좇아가기를 거부했지만, 요나단은 부친이 하지 못한 일을 기꺼이 행하고자 열망했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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