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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0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사무엘상

사무엘상 10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6. 4. 18. 07:07

<사무엘상 10장 흐름정리>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으며, 그를 왕으로 선택하신 하나님의 뜻을 확신케 할 세 가지 징조를 약속하였다. 이 약속은 그대로 성취되었고(9~13절), 그리하여 사울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자각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사무엘은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포하기 위해, 당시의 종교, 정치, 군사의 중심지였던 미스바로 온 백성을 소집하였다. 거기서 사울은 제비 뽑기에 의해 왕으로 선택되었다. 당시만 해도 사울에 대한 백성의 평가는 긍정과 부정으로 엇갈렸으며(27절), 사울도 과연 자신이 왕으로서 적접한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 상태였다.


<사무엘상 10장 줄거리>

1.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음.

2. 사무엘이 세 가지 표적에 대한 예언으로 사울을 굳게 함.

9. 사울의 마음이 변화되어 예언함.

14. 사울이 숙부에게 왕국에 관한 일을 숨김.

17. 사울이 미스바에서 제비를 뽑아 선택됨.

26. 그에 대해 백성들이 다른 애정을 보임.


<사무엘상 10장 개역한글>

1.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취하여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 기업의 지도자를 삼지 아니하셨느냐

2.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 네 아비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를 인하여 걱정하여 가로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요

3.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께 뵈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이 너와 만나리니 하나는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하나는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하나는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진 자라

4. 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덩이를 주겠고 너는 그 손에서 받으리라

5. 그 후에 네가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그곳에는 블레셋 사람의 영문이 있느니라 네가 그리로 가서 그 성읍으로 들어갈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요

6. 네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7.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8.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일을 기다리라

9.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10.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11. 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이 사울의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함을 보고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의 당한 일이 무엇이뇨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고

12. 그곳의 어떤 사람은 말하여 이르되 그들의 아비가 누구냐 한지라 그러므로 속담이 되어 가로되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더라

13. 사울이 예언하기를 마치고 산당으로 가니라

14. 사울의 숙부가 사울과 그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디로 갔더냐 사울이 가로되 암나귀들을 찾다가 얻지 못하므로 사무엘에게 갔었나이다

15. 사울의 숙부가 가로되 청하노니 사무엘이 너희에게 이른 말을 내게 고하라

16. 사울이 그 숙부에게 말하되 그가 암나귀들을 찾았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더이다 하고 사무엘의 말하던 나라의 일은 고하지 아니하니라

17. 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으고

18.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셨거늘

19. 너희가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 하나님을 오늘날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 지파대로 천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

20. 사무엘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21. 베냐민 지파를 그 가족대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만나지 못한지라

22.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행구 사이에 숨었느니라

23. 그들이 달려 가서 거기서 데려오매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나 더 크더라

24.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의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25. 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 모든 백성을 각기 집으로 보내매

26. 사울도 기브아 자기 집으로 갈 때에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은 그와 함께 갔어도

27. 어떤 비류는 가로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그는 잠잠하였더라


<사무엘상 10장 성경주석>

10:1 기름병.

 감람유는 번영을 상징했다(신 32:13; 33:24). 몸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유사 이래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원시적인 종족들에게는 일반적인 관행이다. 나중에는 향유가 사용되었다. 다양한 이유 즉 존경의 표시로(눅 7:46; 요 11:2), 사교적인 만남을 위한 준비로(룻 3:3) 또는 어떤 특별한 사역, 지위, 기능, 특권에 대한 합당한 자격을 표하기 위해 기름을 부었다. 

10:1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히브리인들 사이에서 선지자가 한 사람에게 기름을 붓는 행위는 부과된 임무의 수행을 위한 성령의 특별한 부어 주심을 상징했다. 거룩한 기름부음을 위한 이 기름은 성막처럼 종교적 목적을 위해 사용될 물품의 성별(출 30:26~29)이나, 제사장의 위임식(출 29:7; 30:30; 레 8:10~12 등)에 사용되었다. 이 기름의 준비와 사용에는 특별한 주의가 따랐다(출 30:23~33). 물론 기름 자체에는 침례에 쓰이는 물처럼 신성함이 없다. 이것은 특별한 효력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상징에 불과했다. 어떤 이들은 왕에게 기름을 붓는 관행이 애굽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다른 이들은 고대 가나안의 종교 의식에서 이것의 초기 사용에 대한 증거를 찾는다. 

  기름을 바르는 것은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의 관습을 사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더 깊고, 더 참된 구원의 지식을 추구하도록 인도하는지에 대한 훌륭한 예증이다. 하나님은 성막의 기구와 기명들에 사용되는 덮개나 운반용 기둥 등과 같은 물품을, 애굽 사람들이 신전에 사용했던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하므로 낯익은 형태로 만들라고 이스라엘에게 지시했다. 유사한 공예품들이 투탕카멘의 무덤에서도 발견되었다. 그곳에서 바로(Pharaoh)의 석관(sarcophagus)에 양각으로 새겨져 있는, 날개가 서로 맞닿은 그룹 형상의 수호자 상(象)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리스도 당시의 동방박사들에게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친숙한 매개체를 통해 징조를 주었다. 즉 별을 통해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인도했다. 사람들의 연령과 관습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은 그들에게 당신의 거룩함과 구원의 계획의 아름다움을 가르칠 때 그들이 잘 알고 있는 매개체를 사용한다. 

10:2 라헬의 묘실 곁에서.

 제1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을 참조하라. 

10:2 만나리니.

 사건들이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가자, 사울이 어느 정도 당황한 것은 당연하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사무엘이 예의를 갖춰 자신을 영접하고 그의 주목의 대상이 된 것을 발견했을 때 사울에게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겠는가! 그가 이 모든 일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했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를 부르고 있다는 증거로서, 성령이 사무엘을 통해 말하고 미래에 될 일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의 예지에 대한 증거가 기름부음을 받은 후 불과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확인되면서 사울로 하여금 부름받은 그 직책을 받아들이도록 격려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한다는 확신을 느꼈다. 나귀들을 찾았다는 사실은 이미 사무엘이 알려 주었고, 선지자의 기별을 확인하는 가운데 영감의 증거들이 추가적으로 주어졌다.

  겸손하고 자원하는 심령들에게 하나님은 어느 길로 가야 할지 계속하여 증거를 제공한다(사 30:21; 렘 33:3; 참조 시대의 소망, 224, 330, 330, 331, 668; 산상수훈, 150). 더욱 좋은 것은, 하나님에게는 이러한 증거들을 보여 줄 수 있는 수천 가지 방법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분은 어떤 한정된 방법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사도 시대에 성령이 불의 혀로서 말씀했다는 사실이 다른 시기에도 꼭 똑같은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야 한다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사도들은 제비를 뽑아서 열두 번째 제자를 선택하도록 인도받았지만, 그것이 오늘날 개인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 동전 던지기가 최상의 방법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10:3 다볼 상수리나무.

 (「제임스왕역」에는 “plain of Tabor”[다볼 평지]로 되어 있음-역자 주). 문자적으로 “다볼 상수리나무.” 상수리나무는 종종 수명이 길며 거대한 크기로 자란다. 그런 나무들은 경계를 나타내는 훌륭한 표지 역할을 한다. 야곱은 가족들의 이상한 신상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었다(창 35:4).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는 벧엘 근처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되었다(창 35:8). 이 상수리나무는 다볼이라 불리는 어떤 지역에 있었거나 다볼이라 불리는 어떤 사람에게 속했을 것이고, 라헬의 묘실과 기브아 사이에 있었다. 

10:5 하나님의 산.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기브아.” 기브아(26절)는 사울의 집이었으므로 “하나님의 기브아”는 아마도 산당이 위치한 산의 한 부분이며 선지자의 무리가 거기서 내려오는 것을 볼 것이었다. 

10:5 선지자의 무리가.

 문맥에 비춰볼 때, 선지자들이 과거에 하나님이 인도하신 일에 관해 심령을 새롭게 하기 위해 거룩한 음악과 노래를 활용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이] 예언하며”라고 번역된 말은 문자적으로 “그들이 선지자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를 의미한다. 그들이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 이것은 마음을 정제하고 고상하게 하도록 사무엘에 의해 고안되어 사용된 방법의 하나로 그가 세운 선지자 학교의 과정의 일부로 보인다(참조 교육, 47 ). 

10:6 너도…예언을 하고.

 이 동사는 “하나님의 대변자 역할을 하다”를 뜻하는 나바(naba’)의 한 형태이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미래의 사건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노래의 형태로 신성한 진리를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동일한 형태의 같은 동사가 마치 악한 영에게 사로잡힌 것처럼 자신의 몸을 상해한 바알의 거짓 선지자들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는데(왕상 18:28, 29), 그 이방 선지자들을 지배한 것은 전혀 다른 영이었음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선지자의 아들들”은 하나님에게 찬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사울이 그들을 만나 찬양에 동참하였다. 지난 몇 시간 동안 그가 행하던 길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여러 증거가 실제로 변화를 불러 왔는데, 이것은 비록 일시적이지만, 그가 겸비하고 순종한다면 하나님이 그를 위해 기꺼이 이루고자 열망하시는 일에 대한 약속을 의미했다. 

10:6 새 사람이 되리라.

 사람의 인생에도 환경의 변화나 어떤 하늘의 선물이 그들을 이전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하는 때가 오는데, 이때는 방금 전까지도 눈에 보이는 증거가 전혀 없다가 갑자기 나방이 고치에서 나오고 또 밤에 꽃을 피우는 손가락 선인장이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경이로운 향기를 내뿜기 시작하는 것처럼 새롭고, 굉장한 변화에 지배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온전하고 좋은 모든 선물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약 1:17).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성막을 짓는 일을 위해 특별한 지혜와 재능을 받았다(출 31:2~6). 모세는 거의 하룻밤 사이에 소심한 목동에서 해방자로 담대히 왕 앞에 섰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드온도 큰 용사로 변하여, 정말로 자신의 지혜와 재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 군대를 승리로 이끌었다. 자만심이 강하고 독선적이었던 베드로도 초기교회의 담대한 지도자로 이와 비슷하게 변했다. 그러한 변화들은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비전을 나누어 주고, 그들의 영혼이 하나님이 주신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거룩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반응할 때 생겨난다. 

  사고와 습관과 생활에 변화가 생길 때 실제적인 변화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옛것은 지나가고 모든 것이 새롭게 된다(고후 5:17).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변화는 그렇게 결정된 선택을 매일 재확인할 때만 영구적으로 지속된다는 것이다. 일례로, 기드온은 불과 얼마 전에 이스라엘을 구원했던 그 위대함만큼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우상숭배로 인도했다(삿 6:1, 10, 25; 8:24~33). 사울도 이와 같이 계속하여 하나님을 알려 하지 않았고, 그 결과 사단의 통제에 완전히 빠지는 상태에 마침내 도달했다. 옛날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나을 수 있었던 사람”이라는 명찰을 달게 되는가! 

10:7 기회를 따라 행하라.

 사울은 그에게 닥친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이 그 임명에 대한 신적인 증거를 주고 있음을 깨달아야 했다. 왜 이전에는 나귀들을 찾아내지 못했을까? 왜 이 길을 헤매다가 아무것도 모른 채 사무엘에게 오게 되었을까? 그는,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그의 모든 길에 함께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였다. 그 앞에 펼쳐진 이런 모든 증거들을 가지고 그는 이후에 있을 하나님의 인도함에 대한 증거를 찾아야 하였다. 당분간 하나님은 사울에게 미래에 대해 이 정도만 알려주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10:7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온 하늘은, 그가 이제 자신의 삶을 위해 하나님의 지도를 받으리라는 결심을 하도록 돕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매일의 삶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볼 수 있어야 했다. 만일 사울이 기꺼이 여호와의 지시를 기다렸다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상황들이 여호와에 의해 조정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증거를 얻었다. 그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들었는데, 그것은 성령이 그를 가르치고, 보호하고, 그의 행동을 지시하게 허락함으로써 용기를 북돋아 하나님과 협력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10:8 내려가라.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나님이 그와 함께 일한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할 만큼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주었다. 사무엘이 그때에는 정확하게 어떤 상황이 그를 길갈로 불러갈지를 사울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 젊은이를 돕기보다는 혼란스럽게 할 뿐이었다(참조 11:15; 13:4, 8). 단순히 사무엘은 왕이 될 사람에게, 상황이 요구하는 대로 행함으로써 기름부음을 받던 날에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지도를 기다리는 일에 항상 성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증했다. 

10:9 새 마음을 주셨고.

 문자적으로 “하나님이 그에게 다른 마음을 주셨다”이며, 따라서 “하나님이 그를 개심시켰다”라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마음의 변화에는 정신적인 활동의 방향 전환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사울은 나귀와 농장을 생각하는 대신에 정치 지도자나 군대 장군이나 왕에게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하나님은 그가 맡게 될 새로운 직무에 걸맞는 능력을 사울에게 나누어 주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날 사무엘이 예언한 대로 한 사건 한 사건이 이루어질 때(2~7절) 어떤 생각들이 사울의 마음을 스쳐 지나갔을까?

  하나님은 사울의 시각과 야망과 포부를 바꾸어 그의 삶에서 하나님의 일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되도록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몇 세기 후에 한 선지자가 “내가…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리라(겔 11:19)고 말했다. 사울은 개인적인 곤란을 극복하기 위해 길을 찾는 과정에 사무엘을 통하여 하나님에게 물었다. 하나님은 먼저 개인적인 지도를 부탁한 것에 답변한 후에 나라 전체의 안녕에 영향을 미칠 문제와 관련된 하나님의 지도를 받아들이도록 초청했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다. 하나님은 사람이 현재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들을 취한 후에 그들의 생애를 위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계획을 이루도록 초청한다. 

10:11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이것은 당시의 백성들에게 믿을 수 없는 일로 보였던 것 같다. 외관상으로 볼 때 이때까지의 사울의 삶은 경건한 삶에 대한 모본이 되기 어려웠다. 실제로 예언자의 직무에 부름을 받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가 선지자가 되었다는 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여기서 그는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을 찬양하고 영감을 받아 거룩한 진리들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마음에 가만히 감춰둘 수 없는 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에게 특별히 허락된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에 대한 최근의 증거들이 그의 영혼을 깊이 흔들었다. “새 사람이 되리라”(6절)는 사무엘의 말이 정말로 실현되었다는 증거가 보여지자 사울의 억제되었던 감정이 분출했다. 그의 경험은 하나님은 전혀 신통치 않은 사람도 변화시켜 하나님의 일에 유용한 도구가 되게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증거했다. 더 나아가, 사울의 이 놀랄 만한 변화는 사람들의 주목과 확신을 이끌어 내어 그를 지도자로 따르도록 준비시킬 것이었다. 

  하나님은 때때로 인간의 계획과 반대되는 방법으로 일하신다.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오순절에 제자들이 다른 나라 방언으로 말한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스도가 유다의 품성을 알면서도 그를 제자의 재정 담당자로 삼은 것(요 12:6)은 우리의 눈에는 어리석게 보인다. 요단강의 진흙탕 물이 다메섹의 맑게 흐르는 강물보다 더 큰 치료 능력이 있다(왕하 5:12)는 사실이 나아만 장군에게는 어처구니없이 보였다. 세상을 구원하는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가장 미련한 것이라며 헬라인들은 이를 경멸했다(고전 1:18~24). 아비멜렉이 온전한 마음으로 사라를 취했지만 사라를 남편에게 돌려주고 그의 기도를 구하라고 여호와가 그에게 지시한 것이 현대의 사람에게는 불공평하게 보일지 모른다(창 20:5). 침례자 요한에게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침례를 베푸는 것이 적절하지 않게 보였다(마 3:13~15). 마리아가 어떤 부류의 여자임을 안다면 예수가 그녀에게 자신의 발에 기름을 붓도록 허락한 것은 그분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시몬은 생각했다(눅 7:37~40).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이 모든 불일치는 성령의 사역과 능력을 고려할 때 다 해결된다. 

  사무엘의 관할 아래 선지자 학교들이 조직되어 젊은이들을 하나님의 진리로 교육했다. 역사, 성경 암송, 기도, 찬송 등에 많은 연구를 기울였다. 이스라엘은 폭풍의 신인 바알에 관한 시적인 표현들 대신 여호와의 놀라운 사역에 대해 배웠고, 그분에 대한 찬양이 노래로 표현되었다. 하나님이 베푼 은혜를 묵상함으로 그들의 혼란한 심령에 기쁨과 화평이 있었고, 그들의 얼굴은 성령의 내적인 조명을 반영하며 밝게 빛났다. 

10:16 고하지 아니하니라.

 지혜자는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고(전 3:7) 단언했다.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예후의 반응(왕하 9:4~13)에 비해 사울의 반응은 얼마나 달랐는가. 만일 하나님이 왕의 지위에 사울을 부른 것이 사실이라면 그분이 적절한 때에 적절한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릴 것이다. 성령의 지배 아래 사울은 하나님의 지도를 기다리라는 사무엘의 지시를 따랐다. 높은 직책에 적합한 자가 되기 위해 사울은 먼저 자신의 혀를 통제할 줄을 알아야 했다. 그의 침묵은 지금 그에게 맡겨진 그 책임을 올바로 평가했음을 증거한다. 

10:19 너희 하나님을…버리고.

 사람이 자신의 유한한 지혜로 창조주의 전지(全知)하심에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얼마나 근시안적인가! 사사 시대에 애굽의 군대가 종종 팔레스타인 땅을 두루 행군했을 때, 이스라엘은 그곳 성읍들을 하나씩 정복한 공격에서 안전하게 보호되었다. 애굽 방백들이 산에 거하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보고를 가지고 귀환했다는 것을 이스라엘은 모르고 있었다. 그 땅을 두루 원정했던 그 군대가, 요단 서쪽에 있는 물이 풍부한 이 산지를 분명 탐욕스런 눈으로 바라보았을 인근 족속들을 제어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은 알지 못했다(참조 출 23:28 주석).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인간은 하나님의 계획의 타당성에 의혹을 제기하려는 유혹을 받아 왔다. 홍수 후에, 하나님은 지구를 다시는 물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인류와 언약을 맺었다. 사람들은 그 약속을 신뢰하는 대신 어떤 홍수라도 미칠 수 없는 높은 탑을 세워야 한다고 느꼈다. 그들은 안전을 위해 성읍을 건설하고 그들의 이웃과 가까이 접촉하며 살고자 했다. 그리스도 당시의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첫째로 삼아야 하나님이 보기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현세적 삶에 필요한 생필품을 더해 줄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주변의 국가와 같이 되려는 열망 가운데 자신의 하늘 왕의 계획에 또 하나의 장애물을 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신의 선택에 의해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었으며(시 78:41), 그렇게 하는 가운데 이기심과 반역의 씨를 심고 있었다. 비참한 추수 때가 반드시 오겠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분의 자비와 오래참음으로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 

10:22 행구.

 문자적으로 “물건들”, “도구.” 특별한 집회를 위해 모아둔 물자를 뜻한다. 

10:24 여호와의 택하신 자.

 많은 사람이 의문을 제기한다. 사울의 미래의 삶에 대해 잘 알면서도 하나님은 왜 그를 왕으로 선택했는가? 전쟁터에서 강한 지도력을 보여 줄 수 있는 군대 장관과 같은 인물을 백성들이 원했다는 사실을 문맥을 통해 알 수 있다(8:19, 20).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그들의 희망에 따라 선택했다. (1) 그는 그들의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았다. (2) 그는 그들의 어리석은 선택에도 불구하고 왕국에 닥칠 악한 영향들을 제어할 것이다. (3) 심은 것은 반드시 거둔다는 것을 그들이 경험으로 배워야 한다는 사실. (4) 하나님이 원하는 길에서 국가적으로 이탈할지라도 그것이 그 나라에 속한 개인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며 그의 축복을 누리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는 사실. 

10:27 비류.

 (「제임스왕역」에는 “Children of Belial”[벨리알의 자녀들]이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즉 “쓸모 없는 무리”(「개정표준역」, 참조 2:12 주석). 이스라엘의 가장 작은 지파의 일원인 사울이, 두 부류의 사람 즉 “하나님께 감동”되어(26절) 하나님의 인도를 기꺼이 따를 것으로 보이는 이들과, 가장 큰 지파인 유다 지파에서 왕을 구하기 위해 왔던 바로 그 장로들 중의 몇몇을 포함하여 자신들이 푸대접을 받았다고 느껴서 충성을 거절한 이들을 대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예상된 것이었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612). 이와 똑같은 상황이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여 모든 지파의 장자 자리를 레위인으로 대신하게 함으로 제사장 직무를 아론의 아들에게 국한시켰을 때 전개되었다. 그때에 고라와 이스라엘 족장 250명이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기 거절하고 자신의 가족을 그 자리에 앉혔다고 모세를 비난하였다. 사울이 이렇듯 자신의 권위를 거부하는 자들을 참을성 있게 받아들이고, 보좌에 대한 권리를 억지로 유지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그 사실이,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감동시켜 그에게 왕의 직분에 필수적인 지혜를 나눠주고 있다는 최선의 증거이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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