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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8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열왕기상

열왕기상 8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2. 15. 06:01

<열왕기상 8장 흐름정리>

성전이 완공되자 솔로몬은 드디어 역사적인 봉헌식을 거행하고 봉헌 기도를 드렸다. 이때 솔로몬이 행한 설교의 요지는 성전 건축이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삼하 7:4~16)의 성취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을 통해 자신의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진정한 왕이셨다. 이에 솔로몬은 봉헌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당신께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축복을,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저주를 내려달라고 간구하였다. 이것은 백성들이 살 길은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는 데 있음을 각성시켜 저들의 순종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열왕기상 8장 줄거리>

1. 성전 봉헌식 .

12. 솔로몬의 송축.

22. 솔로몬의 기도.

62. 솔로몬의 화목제 희생.


<열왕기상 8장 개역한글>

1.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두목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 자기에게로 소집하니    

2.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에다님월 곧 칠월 절기에 솔로몬왕에게 모이고    

3.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 제사장들이 궤를 메니라    

4. 여호와의 궤와 회막과 성막 안의 모든 거룩한 기구들을 메고 올라가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가매

5. 솔로몬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저와 함께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으니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    

6.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내전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7. 그룹들이 궤 처소 위에서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8. 채가 긴고로 채 끝이 내전 앞 성소에서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그 채는 오늘까지 그곳에 있으며    

9.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10.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매    

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12. 그 때에 솔로몬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캄캄한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13.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거하실 처소로소이다 하고    

14. 얼굴을 돌이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니 때에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섰더라    

15. 왕이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찌로다 여호와께서 그 입으로 나의 부친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 손으로 이루셨도다 이르시기를    

16.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내 이름을 둘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다만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

17. 내 부친 다윗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18. 여호와께서 내 부친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19. 그러나 너는 그 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네 몸에서 낳을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라 하시더니

20.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이루시도다 내가 여호와의 허하신대로 내 부친 다윗을 대신하여 일어나서 이스라엘 위에 앉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    

21. 내가 또 그곳에 우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저희와 세우신 바 여호와의 언약 넣은 궤를 위하여 한 처소를 설치하였노라    

22. 솔로몬이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23.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상천 하지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24.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허하신 말씀을 지키사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2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것 같이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로 좇아나서 이스라엘 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26. 그런즉 이스라엘 하나님이여 원컨대 주는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28. 그러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종이 오늘날 주의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29.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30.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31.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이웃에게 범죄함으로 맹세시킴을 받고 저가 와서 이 전에 있는 주의 단 앞에서 맹세하거든    

32.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행하시되 주의 종들을 국문하사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돌리시고 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사 그 의로운대로 갚으시옵소서    

33.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전에서 주께 빌며 간구하거든    

34.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 열조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35. 만일 저희가 주께 범죄함을 인하여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의 벌을 받을 때에 이곳을 향하여 빌며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그 죄에서 떠나거든    

36.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옵시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    

37.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온역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무론하고

38.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3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유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인생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40. 그리하시면 저희가 주께서 우리 열조에게 주신 땅에서 사는 동안에 항상 주를 경외하리이다    

41.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42. 저희가 주의 광대한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43.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무릇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으로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옵시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44. 주의 백성이 그 적국으로 더불어 싸우고자 하여 주의 보내신 길로 나갈 때에 저희가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45. 주는 하늘에서 저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 일을 돌아보옵소서

46.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저희가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저희에게 진노하사 저희를 적국에게 붙이시매 적국이 저희를 사로잡아 원근을 물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    

47. 저희가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패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48. 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 열조에게 주신 땅 곧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4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저희의 일을 돌아보옵시며    

50. 주께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주께 범한 그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저희를 사로잡아 간 자의 앞에서 저희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그 사람들로 저희를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    

51. 저희는 주께서 철 풀무 같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주의 산업이 됨이니이다    

52. 원컨대 주는 눈을 들어 종의 간구함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간구함을 보시고 무릇 주께 부르짖는대로 들으시옵소서

53. 주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주의 종 모세로 말씀하심 같이 주께서 세상 만민 가운데서 저희를 구별하여 주의 산업을 삼으셨나이다    

54.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이 기도와 간구로 여호와께 아뢰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일어나    

55. 서서 큰 소리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며 가로되    

56. 여호와를 찬송할찌로다 저가 무릇 허하신대로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빙자하여 무릇 허하신 그 선한 말씀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    

5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함께 계시던것 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옵고 우리를 떠나지 마옵시며 버리지 마옵시고    

58. 우리의 마음을 자기에게로 향하여 그 모든 길로 행하게 하옵시며 우리 열조에게 명하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하시기를 원하오며    

59. 여호와의 앞에서 나의 간구한 이 말씀을 주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있게 하옵시고 또 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당하는대로 돌아보사    

60.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61. 그런즉 너희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화합하여 완전케 하여 오늘날과 같이 그 법도를 행하며 그 계명을 지킬찌어다    

62. 이에 왕과 왕과 함께한 이스라엘이 다 여호와 앞에 희생을 드리니라    

63. 솔로몬이 화목제의 희생을 드렸으니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이만 이천이요 양이 십 이만이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전의 낙성식을 행하였는데    

64. 그 날에 왕이 여호와의 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고 거기서 번제와 소제와 감사제의 기름을 드렸으니 이는 여호와의 앞 놋단이 작으므로 번제물과 소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다 용납할 수 없음이라    

65. 그 때에 솔로몬이 칠일 칠일 합 십 사일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로 지켰는데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하수까지의 온 이스라엘의 큰 회중이 모여 저와 함께 하였더니    

66. 제 팔일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 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여 축복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여호와께서 그 종 다윗과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 인하여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열왕기상 8장 성경주석>

8:1 솔로몬이…소집하니.

 성전 봉헌식에 관한 기사는 성경의 위대한 장들 중의 하나이다. 이 이야기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깊은 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각 시대를 통하여 교회의 지도자들은 예배하는 집의 봉헌을 위한 영감과 격려의 말을 이 기사에서 발견했다. 본 장은 앞장과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앞장에는 성전의 물질적인 것과 관련된 형식적이고 기술적인 사항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집과 관계된 사물들의 깊은 의미가 설명되어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 자신과 접촉하게 된다. 이 두 성경 장은 성전의 참되고 온전한 모습과 그 의미를 제시하는 데 각각의 역할을 지니고 있어서, 한 장은 다른 장 없이 온전할 수 없을 것이다. 

  솔로몬은 성전 봉헌과 관련된 여러 행사를 주도한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제왕다운 위엄이 돋보인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세속 정무에만 종사하는 왕 이상으로 보인다. 그는 지금 하나님을 위해 분명히 종교적인 일에 관여하고 있다. 그러한 업무가 왕의 권위를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고 오히려 높여 주었다. 그는 우리가 그에게서 기대하는 왕의 직무뿐 아니라 그 이상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그는 나라의 지도자들을 소집하여 행사 준비를 지시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한 후에는 분명하게 종교적인 직무는 제사장들에게 맡겨 주도하도록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여기서는 왕이 직접 성전을 봉헌하고, 봉헌 기도도 드렸으며,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라고 권면하고 하나님의 복도 선포하였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당신의 사업을 위해 지도자로 임명한 자들에게 요구하는 영적 지도력의 본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런 지도력은 잠시 동안만 계속되었다. 세속적 및 영적 품위를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오래지 않아 자기 숭배의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얼마 가지 않아 겸비와 헌신과 순종은 교만과 야만과 방종에 자리를 내 주었고, 한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였던 재능들은 이기적 목적과 세속적 야망을 위해 악용되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총의 징표를 지녀 심히 존경받던 사람이 폭군으로 전락하여 그가 죽을 때 왕국도 함께 와해되었다. 그의 본을 쫓아간 이스라엘은 이 땅에서 부와 평화를 찾는 비결을 잃었고 한때 융성하던 신정국가는 부패하여 폐허로 변했다.

8:1 언약궤.

 봉헌식에서 첫 순서는 법궤를 다윗 성에서 옮겨와 그것의 새 거처인 성전의 지성소에 두는 일이었다. 다윗이 법궤를 오벳에돔의 집에서 자신의 성에 만들어 놓은 회막으로 옮긴 일은 엄숙할 뿐 아니라 심히 기쁜 행사였다(삼하 6:2~19). 율법의 두 돌비를 담은 법궤는 성소에서 가장 중요한 기물이었다.

8:1 자손의 족장들.

 모리아산으로 법궤를 옮겨 오는 일에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는 각기 맡을 역할이 있었다. 다윗이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하나님의 법궤를” 아비나답 집에서 다윗 성으로 가져올 때 이스라엘 중에서 뺀 무리가 30,000명으로 계수된 것으로 보아(삼하 6:1~5), 이때도 백성, 장로, 모든 지파의 두목, 족장 등 큰 무리가 모였을 것이다.

8:2 에다님월.

 달만 주어져 있고 해는 주어지 않는다. 많은 이들은 그 해가 성전을 준공한 다음 해였다고 믿는다. 성전은 8월인 불(Bul)월에 준공되었고(6:38), 봉헌식은 7월인 에다님월에 있었으므로 이때는 성전이 필역된 지 열한 달째 되는 달이다. 다른 이들은 몇 년 뒤 희년, 아마도 솔로몬 재위 24년 즉 성전이 준공된 지 13년이 되어서야 봉헌식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바벨론 유수 후 일곱 번째 달을 티쉬리(Tishri)라고 불렀다. 

  이 말은 악갓어 혹은 초기 바벨론어 타쉬리투(Tashritu) 즉 “시작”이라는 말에서 왔다. 이 이름은 이 달과 함께 한 해가 시작된다는 뜻을 내포한다. 통일 왕국과 유다 왕국의 민력은 티쉬리월로 시작하였다. 이 달 초하룻날은 새해의 시작인 거룩한 성회의 날이었다. 이 달 10일에는 성소의 정결이 있었던 엄숙한 대속죄일이며(민 29:7; 레 16:29, 30; 23:27), 15일은 장막절이 시작되는 날이었다(민 29:12; 레 23:34; 신 16:13; 느 8:14~18; 겔 45:25). 이 달의 시작은 지금의 9월 혹은 10월의 시작과 거의 같다.

8:3 제사장들.

 대하 5:4에 보면 “레위 사람이 궤를 메니라”고 되어 있다. 제사장은 모두 레위 사람들이었지만(수 3:3) 레위 자손이라고 다 제사장은 아니었다. 여행 중에 궤를 메는 일은 당연히 고핫 자손 레위인의 책임이었다(민 3:31; 4:15; 대상 15:2~15). 하지만 고핫 자손도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여행을 위해 법궤를 준비한 후에만 멜 수 있었다(민 4:5, 15). 요단강을 건넌 후 여리고성을 돌 때 법궤를 멘 자들은 제사장이었다(수 3:6~17; 6:6). 법궤를 영원한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 곧 영원한 거처로 옮길 때도 이 중대한 임무는 제사장 가운데서 몇몇 지도자에게 위탁되었을 것이다.

8:4 회막.

 이때 회막은 기브온에 있었지만(대상 16:39, 40; 대하 1:3), 법궤는 예루살렘에, 즉 다윗이 “다윗 성”에 법궤를 위해 친 장막에 있었다(삼하 6:2, 16, 17; 대상 15:1; 대하 1:4). 그러나 이제부터는 국가적 예배의 중심이 하나가 되어야 했으므로 기브온의 회막과 다윗이 친 장막에 있던 성물들은 모리아산의 성전으로 옮겨서 사용하든지 아니면 성전 경내에 보관해야 하였다(참조 선지자와 왕, 38). 각급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은 저마다 위탁받은 성물들을 가지고 그 엄숙한 행렬에 끼어 있었을 것이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고핫 자손들은 진설병상, 등대, 번제단과 분향단, 기타 성소의 기물들을 맡았고, 게르손 자손들은 “성막과 장막과 그 덮개와 회막의 문장과 뜰의 휘장”을 맡았고, 므라리 자손들은 “성막의 널판과 그 기둥과 받침과 그 모든 기구”를 맡았다(민 3:25~37).

8:5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으니.

 이 낙성식의 희생제사는 웅장한 규모로 볼 때 다윗이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옮겨 올 때와 맞먹었다(삼하 6:13; 대상 15:26).

8:6 내전 지성소.

 법궤는 그룹 사이에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날 지성소에 안치되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율법의 신성성을 보여 준다.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이다. 하나님이 거룩한 것처럼 그분의 계명 또한 거룩하고 의롭고 순결하다.

8:7 그룹들이…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천군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보여 주는 경외심을 나타낸다.

8:8 채 끝이 내전 앞 성소에서 보이나.

 출 25:15에 의하면 “채를 궤의 고리에 꿰어 두고 빼지 말”아야 하였다. 그러나 이때는 채를 앞으로 빼내 그 끝을 성소에서 볼 수 있도록 한 것 같다. 법궤는 지성소의 남북으로 가로놓였는데, 법궤는 물론 그 채도 그룹의 날개가 덮었다. 회막에서 휘장으로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여(출 26:31~33) 성소에 있는 자가 궤를 볼 수 없도록 하였다. 그러나 솔로몬 성전에는 두 칸을 구분 짓는 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참조 왕상 6:16 주석) 거기에 휘장도 있었던 것 같다(대하 3:14). 헤롯 성전에도 휘장이 있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을 때 둘로 찢겨진 사실(마 27:51; 막 15:38; 눅 23:45)은 잘 알려져 있다. 법궤를 메는 채는 성소에 있는 사람들이 열린 문을 통해 휘장 끝 너머로 그 일부가 보이도록 놓였을 것이다(참조 6:31 주석).

8:8 오늘까지.

 이 표현은 이 기사가 성전이 느부갓네살의 손에 파괴되기 전에 기록되었음을 가리킨다. 열왕기의 편집이 완성되었을 때 성전은 파괴되고 성전 기구들은 바벨론으로 옮겨졌다(왕하 14:13, 14; 25:9, 13~17). 지금 열왕기에 나타나는 많은 기사는 바벨론 유수 이전에 기록되었음이 분명하며, 따라서 편집이 끝났을 당시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었을 것이다.

8:9 궤 안에는…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대하 5:10에도 기록된 이 진술은 법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히 9:4에 언급된 물품들 즉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지팡이는 본래 “증거궤 앞에” 두라고 명하신 것이다(출 16:33, 34; 민 17:2~10). 어떤 이들은 이 표현이 법궤 앞에 있는 어떤 자리를 가리킨다고 이해하지만, “법궤 안 증거 돌판 앞”을 의미할 수도 있다(참조 초기문집, 32). 이런 표현들이 상충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 보물들이 이스라엘이 격동기를 지내는 동안 옮겨져 이때는 법궤 안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율법의 두 돌비를 이렇게 특별히 구별한 데는 매우 인상적인 점이 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과 만나겠다고 하신 바로 그 법궤 안에 두 돌비를 둠으로써(출 25:22), 율법과 하나님 자신이 불가분적으로 묶인다. 성전에서 가장 거룩한 곳은 지성소였고, 지성소에서 가장 거룩한 기물은 하나님의 율법을 담고 있는 법궤였다. 하나님의 본성 자체가 거룩하고 영원한 것처럼 율법 또한 그러하다. 하나님은 거룩한 성전의 기물들을 통해 그의 자녀들의 마음에 율법의 영원한 신성성을 각인시키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을 다하였다. 옛 언약 하에서 율법은 두 돌비에 새겨졌고 새 언약 하에서는 의인의 마음에 새겨진다(렘 31:31~33).

8:10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매.

 시내산에서 나타났던 구름(출 24:15~18)과 회막을 봉헌할 때 다시 나타났던 구름(출 40:34~38)이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낸 것처럼, 이 영광의 구름도 마찬가지다. 에스겔은 이상 중에 하나님의 집 안에 가득한 영광을 보았다(겔 10:4). 제사장들이 목소리를 높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동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대하 5:13).

8:11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에 압도되어, 직무를 수행하던 제사장들이 잠시 움츠러들지 않을 수 없었다. 성막이 맨 처음 세워질 때도 그랬다. 모세가 거룩한 장막을 가득 채운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다(출 40:35). 이사야가 하나님의 이상을 보았을 때도 하나님의 영광스런 옷자락이 성전을 가득 채웠고, 여호와의 임재가 매우 가까이 있어서 자신은 이제 망했다고 생각하였다(사 6:1~5). 마찬가지로 예수의 제자들도 변형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저들을 덮었을 때 두려워 떨었다(눅 9:34). 인간은 왜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 그런 반응을 보이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본성 즉 그분의 위대함과 거룩함, 장엄함과 숭고함, 위엄과 능력 때문이다. 자연의 위대한 힘 앞에서도 인간은 두려워한다. 하늘의 하나님은 무한히 거룩하시므로 죄 많은 인간은 그분의 숭고한 임재 앞에 나아가 계속 살아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과 같아서 거룩하지 못한 인간은 그분의 임재 앞에 나아가면 반드시 멸망을 당한다. 

  성전 안에 있던 구름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소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자신의 임재를 가린 수단이었다. 성전 봉헌식 때에는 그 영광이 너무나 커서 구름으로 가려졌는데도 직무를 수행하던 제사장들은 거룩한 경외감으로 잠시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법궤를 여호와의 장막으로 옮길 때 다윗의 입에서 경탄과 찬양의 말이 터져 나온 것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 의식(意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대상 16:25, 27, 34).

8:12 그때에 솔로몬이 가로되.

 솔로몬은 하나님의 위대함과 가까이 계심에 관한 장엄한 현시(顯示)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의 말들은 깊은 감동을 받은 사람에게서 엉겁결에 갑자기 터져 나오는 말이었다. 그는 기쁨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으로 말하였다. 그것은 미리 준비된 말이 아니고, 그가 방금 본 장엄한 광경과 함께 터져 나온 경이와 찬양의 말이었다.

8:12 캄캄한 데.

 솔로몬은 흑암과 영광, 빛과 어둠이 뒤섞인 광경을 보고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겔 48:35)고 확신했다. 그는 분명한 현상으로 목격되었던 과거의 사건들 곧 시내산에서 여호와의 임재가 빽빽한 구름 속에 나타났던 때, 광야에서 영광의 구름이 성막을 가득 채웠던 때를 회상했으며, 그 결과 구름이 나타난 것을 거룩하신 분의 임재가 자신이 지은 성전에 허락되었다는 징표로 인식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발한 첫 말은 목격하고 있던 현상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이는 바로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이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우리에게는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고 오직 이 영광스러운 행사에 대해 감사할 것으로 가득하다.

8:13 계실 전을.

 성전은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졌다. 성막을 광야에 처음 세울 때 하나님은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지”으라(출 25:8)고 말씀하셨다. 그 성소가 건립되었고, 거기에 여호와께서 임재하여 당신의 백성과 교통하셨다.

8:13 처소.

 이스라엘에는 성소가 있었지만 성소의 자리로 정해진 곳이 없었다. 회막은 광야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녔다. 약속의 땅에서도 성소는 정해진 처소가 없었다. 성소는 300년 동안 실로에 있다가 마침내 죄 때문에 다시 옮겨 다녀야 하였다. 처음에는 놉으로(삼상 21:1~6; 부조와 선지자, 656), 그 다음은 기브온으로(대상 16:39, 40; 대하 1:3) 옮겨 다니다가 이제야 마침내 성전이 완성되어 하나님의 법궤가 안정된 처소 곧 하나님이 영원히 거할 곳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 그분의 뜻하신 바였다.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면, 이 영광스러운 건물은 영원히 설 것이었다(선지자와 왕, 46). 여러 해 동안의 준비의 세월과 온갖 근심과 사려를 들여 지은 건물을 돌아보면서, 그의 임무가 완수되었으며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거처를 함께할 집이 완성되었음을 깨달았을 때 솔로몬에게 벅찬 기쁨이 있었을 것이다.

8:14 얼굴을 돌이켜.

 역대기에 의하면, 솔로몬은 놋으로 높이가 3규빗 되는 단을 만들어 뜰 가운데 제단 앞에 두고(대하 6:12, 13), 거기서 그가 백성들에게 연설하였다. 이때까지 솔로몬은 성전이 여호와의 영광으로 가득 차는 것을 엄숙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생각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향했고 하나님을 향하여 말했다. 이제 그는 성전에서 돌아서서 자신 앞에 서 있는 백성의 큰 무리를 향하여 말했다.

8:14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섰더라.

 백성들은 존경심을 갖고 주목했으며, 기쁘고 엄숙한 행사에 동참하여 왕의 은혜스러운 봉헌사를 열렬히 받아들일 태세로 서 있었다.

8:15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솔로몬은 백성들을 축복하고 있었지만 그의 첫 번째 생각은 다시 홀로 모든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향했다. 그는 기쁨과 감사로 벅차서 하나님이 부친 다윗을 위해 행한 일, 곧 성전에 관한 그의 뜻을 다윗에게 전하신 것을 언급했다.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다윗에게 아들 솔로몬이 여호와의 집을 지을 것이라는 사실을 계시하셨다(삼하 7:4~13).

8:16 다윗을 택하여.

 하나님의 선택은 맹목적 편애나 편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지혜와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이 열국 중에서 이스라엘을 택하고, 이스라엘의 많은 성읍 중에서 예루살렘을 택하신 것처럼 만백성의 축복과 구원을 위하여 다윗을 택하셨다. 하나님이 다윗을 택할 때 보신 것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이었다(삼상 16:7).

8:17 다윗이…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다윗의 소원과 목적은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에 있었다. 그래서 여호와의 집을 건축할 마음이 생긴 것이다. 만약 사람이 자신보다 하나님을 위해 집을 건축하는 일에, 인간의 나라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면 이 세상은 참으로 다른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다윗의 심중에 하나님을 위한 집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 결과 성전이 건립되었다. 장엄한 성전이라도 먼저 사람의 마음속에서 소박하고 겸허하게 시작된다.

8:18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다윗의 뜻은 비록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으나 선했다. 성전을 짓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지만 다윗은 전쟁의 사람이었으므로 성전 건축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바람이 아니었다(대하 22:7, 8; 28:3).

8:19 너는 그 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하나님이 다윗의 뜻은 인정하셨지만 다윗이 하고자 했던 그 일을 다른 사람이 해야 할 것이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을 위한 어떤 사업을 하고자 하는 좋은 뜻이 마음에 일어날 때가 종종 있지만 확실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이유, 아마도 경험과 수완 혹은 훈련 부족 등의 이유로 여호와께서는 지혜로써 그 일을 다른 사람이 해야 한다는 지시를 내리신다. 다윗이 하나님의 뜻에 순복한 것은 그의 지혜와 영적 경험의 깊이를 보여 주었다.

8:20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도다.

 다윗이 아니라 솔로몬이 여호와의 집을 짓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으며, 이제 그분의 뜻이 실행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자리에 자신을 고집스럽게 앉혀 둠으로써 자신과 다른 사람의 운명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하나님의 사업에 가장 큰 발전을 가져오는 것은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전을 짓고 있을 때 솔로몬은 자신을 하늘의 축복의 통로에 두고 있었다. 이렇게 했을 때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셨다. 솔로몬은 도구였고 하나님은 그것을 움직이는 동력이었다.

8:21 언약.

 여기서 언약이라고 칭한 것은 십계명을 말한다. 왜냐하면 십계명이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의 기초를 이루기 때문이다. 언약은 율법에 계시된 거룩한 원칙들을 사람 속에 재연하기 위한 설계도였다. 그래서 비유적 표현으로 율법을 언약이라고 일컬었다. 인류 역사의 시초부터 거룩한 율법을 사람의 마음에 기록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다.

8:22 솔로몬이…마주 서서.

 역대기의 이야기는 더 자세하다. 솔로몬이 봉헌사를 하는 동안에는 서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의 연설이 끝나 봉헌 기도를 드리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대하 6:13).

8:24 말씀을 지키사.

 기도를 시작하면서 솔로몬은 다윗에게 보좌에 앉을 후계자와 성전 건축에 관하여 하신 약속들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렸으며, 후계자가 끊이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계속 이루어 주시기를 탄원하였다.

8: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성소는 하나님이 거할 처소로 건립되었다. 다윗은 법궤를 옮겨올 때 하나님이 시온을 택하여 그의 거처로 삼고자 하시면서 “이는 나의 영원한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기(시 132:13, 14) 때문이라고 약속하신 사실에 감사하였다. 그러나 솔로몬이 영원히 거하시는 분 곧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보신”(사 40:12) 하나님의 위대함과 장엄함을 묵상할 때, 그러한 하나님이 땅 곧 솔로몬이 지은 그런 집에 자신의 거처를 정할 것이라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 표현된 사상은 계속하여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대조를 보여 준다. 한편에는 영원하며 보이지 않고 불가해(不可解)한 하나님 곧 높고 거룩하신 분,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계 19:16) 여호와의 영원성을 말해 주는 매우 심오하며 변하지 않는 개념이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다른 한편에는 그 무한하신 여호와가 바로 곁에 계신 하나님이며, 사람의 친구요 모든 사람의 개인적인 동반자이고, 사람들과 함께 거닐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분이며, 지상 성소에 그분의 거룩한 거처를 정한 하나님이라는 생생한 개념이 있다. 그처럼 권능이 탁월하고 무한히 위대한 분이 몸을 낮추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돌아보아, 하잘것없는 나무와 돌로 지은 성소에 거주하고 인간의 마음에 내재한다는 것은 결코 다함이 없는 경탄의 근원이 될 것이다.

8:28 돌아보시며.

 이는 경외심과 겸손이 뒤섞인 감정으로 매우 고양된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말이다. 인간은 온 우주의 창조주를 친구로 삼을 자격이 없는 존재다. 지상의 성소는 “하늘을 차일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같이 베푸신”(사 40:22),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높은 분이 임재할 만한 곳이 못 된다. 비록 인간이 무가치하고 성전은 보잘것없다 할지라도 솔로몬은 “하나님이 당신의 참 거처인 하늘에서 주야로 지상의 이 건물을 보시고 사람들의 열렬한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한다.

8:30 사하여 주옵소서.

 솔로몬은 하늘을 향하여 기도를 올리는 사람은 누구나 사유하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죄책감과 하나님의 사유하심이 필요하다는 느낌은 솔로몬이 자신과 백성들을 위하여 드린 열렬한 기도에 줄곧 나타난다(34, 36, 39, 59절). 솔로몬은 죄의 용서가 기도하는 사람들의 열렬한 소망임을 알았다. 그는 탄원이 응답받을 수 있는 희망은 주로 죄를 사유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음을 알았다.

8:31 그 이웃에게 범죄함으로.

 이는 연속되는 일곱 가지 특정 경우를 위해 하나님의 사유하는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 가운데 첫 번째이다. 첫 번째 것은 이웃에게 개인적으로 과실을 범한 경우와 관련된다.

8:32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솔로몬은 악한 행실과 의의 길이 각각 관련된 자들의 삶에서 그에 마땅한 결과를 맺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한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선이나 악은 모두 이 세상에서 열매를 맺는데, 각각 그 종류에 따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갈 6:7) 된다. “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지만 “악은 죄인을 패망케”한다(잠 13:6; 참조 14:34; 11:5, 19). 이스라엘이 패망했을 때,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호 13:9; 14:1)고 말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적절한 표현이다.

8:33 이스라엘이…적국 앞에 패할 때.

 이스라엘 나라가 세워지기 전에 여호와는 범죄의 결과가 어떠할지 정확하게 예언하였다. 백성들은 저들의 대적 앞에서 패할 것이었다(레 26:14, 17; 신 28:15, 25). 하나님의 보호하는 은혜가 거두어질 것이며, 저들의 대적들이 저들을 멸망시키도록 허용될 것이었다.

8:33 주께로 돌아와서.

 징계는 종종 회개를 낳는데, “세계의 거민들이 의를 배우는 것은”(사 26:9) 땅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때이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계속 반역하고 죄를 고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주의 사유하는 은혜를 간구하지 않고, 죄를 인정하고 그분께 돌아오는 사람들에게만 그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하였다. 그런 모든 사람에게는 용서가 확실하게 주어진다(요일 1:9).

8:35 하늘이 닫히고.

 하나님이 보호의 손길을 거두실 때 자연의 힘은 흔히 심판의 대리자가 된다. 솔로몬은 모세가 말한 한발의 심판(레 26:19; 신 28:23, 24)이 미구에 현실로 나타날 때를 상정(想定)한다.

8:37 기근.

 계속하여 열거되는 재앙들은 모세의 율법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레 26:16, 20, 25; 신 28:22, 35, 38, 42). 사람들이 의의 길을 버릴 때 그런 심판은 증가하며, 도처에서 그런 일을 목격할 때 억제하시는 주의 손길이 거두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8:38 재앙.

 모든 사람이 “자신의 마음의 재앙”을 아는 것은 곧 자신의 죄됨을 인정하고, 땅을 황폐케 하고 있는 재난을 초래한 책임의 일부가 자신의 죄됨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땅에 있는 재앙의 원인은 마음의 재앙에 있다. 죄의 재앙이 진짜 재앙이며 다른 모든 재앙의 근본 원인이다. 죄의 악함을 인정하지 않고 죄를 버리지 않는다면 세상을 재앙에 빠뜨리고 황폐케 하는 기타 수많은 병폐를 처리할 희망이 없다.

8:39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오직 하나님만이 마음을 제대로 아신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의 악뿐 아니라, 저들의 마음에 잠복하고 있는 죄의 결과로 자신과 주변 세상에 초래된 재난들에 대해 거의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은 마음을 아시며, 따라서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는(시 51:10) 방법을 아신다.

8:41 이방인이라도.

 이것은 이스라엘과 관련된 일련의 사항을 언급하다가 주제에서 눈에 띄게 벗어난 부분이다. 먼 이방 나라 사람들이 와서 하나님을 높여 경배할 것이었다.

8:42 저희가…소문을 듣고 와서.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었다. 이스라엘이 온 세상에 여호와의 이름을 알려, 도처의 사람들이 그분의 선함과 은혜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스라엘과 함께 그분을 경배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8:43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이때 솔로몬이 가졌던 정신은 이어지는 시대에 히브리 백성을 움직였던 정신과 얼마나 다른가! 하나님의 언약에는 한 국가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관련된다. 그분의 언약은 히브리 민족뿐만 아니라 그분을 기꺼이 인정하는 모든 민족을 위한 것이다. 성전이 처음 건립되었을 때 솔로몬은 타국의 이방인들을 기억하고, 그들도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을 듣고 성전으로 올라와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스라엘은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하였다. 그들이 이 거룩한 사명에 충실했다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나라를 아우를 때까지, 예루살렘이 세계의 중심이 될 때까지, 성전이 온 세상에 건강과 치료를 전해 주는 생명강의 근원이 될 때까지 계속 성장했을 것이다(슥 14:8).

8:46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솔로몬은 육신의 연약함을 알았으며, 범죄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범죄하지 않는 나라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통탄스러운 죄를 저질러 하나님의 임재가 저들에게서 거두어지고 저들이 원수의 손에 빠져들 수 있다는 생각이 솔로몬의 마음에 떠올랐다. 그는 그러한 비극의 시간에 하나님께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시기를 열렬히 기도했다. 영광과 파멸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가까운지! 완성된 성전과 훼파된 성전, 영광의 날과 운명의 날은 얼마나 가까운지! 솔로몬은 이 봉헌의 시간에 죄가 가져다줄 비극적인 결과를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집을 여호와의 영원한 거처로 삼아 주시기를 목소리를 높여 열렬히 간구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기도 속에 기쁨과 슬픔, 영광과 굴욕, 영예와 수치가 묘하게 뒤섞여 있음을 볼 수 있다. 성전 봉헌식의 이 순간만큼, 드높은 희망을 품고 백성들을 위해 드린 기도가 일찍이 없었고, 사람이 그처럼 겸손한 정신으로 기도를 발한 적도 없었다. 그것은 약속과 예언의 기도였으며, 하나님의 영광과 죄 많은 인간의 비열함에 관한 이상(異像)의 기도였다.

8:46 저희가 주께 범죄함으로.

 이것은 솔로몬의 마지막 탄원이다. 그의 생각은 선지자적 통찰력으로 이스라엘이 죄로 인해 여호와께 버림받아 대적의 손에 망하여 낯선 나라로 끌려 갈 미래의 한 날로 향하였다. 모세도 그러한 가능성이 있다고 분명하게 예언하였다(신 28:45, 49~52, 63, 64).

8:47 스스로 깨닫고.

 가장 처참한 비극의 시간에도 언제나 희망은 있다. 죄의 결과로 이스라엘이 아무리 비참한 처지에 놓인다 할지라도 저들이 스스로 깨달아 자신들의 잘못과 사악함을 인정하고 더 나은 길을 선택하기만 한다면 저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할 것이다.

8:48 그 열조에게 주신 땅.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기도할 때 창문을 열어놓고 예루살렘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8:50 주께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바벨론 유수가 있기 350년 전쯤에 드린 솔로몬의 이 기도는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나 가던 때에 드린 다니엘의 기도(단 9:2~19)와 매우 흡사하다. 성전이 봉헌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기도를 드릴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영감받은 예지로 솔로몬은 화려한 성전이 폐허가 되는 때, 약속의 땅이 고난과 비탄의 땅이 되는 때, 이스라엘 자손이 낯선 땅으로 쫓겨나는 때를 그려보았다. 이스라엘의 가장 큰 영광의 시간에 솔로몬이, 가장 비참한 국치(國恥)의 시간에 다니엘이 드렸던 기도와 같은 기도를 드렸다는 사실에 비애감이 서려 있다. 이 두 기도는 다 필요했고 다 응답을 받았다. 솔로몬의 기도는 단순히 기도만이 아니라 죄가 몰고 올 운명을 피하도록 돕는 경고의 기별이기도 하였다. 다니엘의 기도는, 그의 백성들을 포로 생활에서 되돌리기 전에 저들이 진심으로 회개하기만을 기다리고 계신 하늘의 하나님께 상달되었을 것이다.

8:51 저희는…주의 백성.

 구별된 한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는 여호와가 저들을 열국 중에서 택하여 언약의 땅에 세웠다는 것이다(출 19:29 삼하 7:23 시 135:4).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저들을 사랑하셔서 도와줄 뿐만 아니라, 당신의 오른손으로 붙들어 줄 것이므로 가장 혹심한 고통의 시간에도 두려할 이유가 없다(신 33:26, 27; 사 41:8~14; 43:1~6)는 보증이 있었다. 주의 백성의 행복과 안녕이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이므로, 그의 자녀들은 탄원을 올릴 때 그의 소유된 백성을 버리지 말라고 하나님께 강요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그들의 성공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조건적이며, 따라서 축복을 기대하는 사람은 그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8:51 애굽에서.

 애굽에서 구원받은 일은 역사였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쇠풀무 같은 애굽에서 구원해 낸 것은 결코 변경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스라엘이 또다시 다른 나라 군주의 말발굽 아래 멸망되는 신세가 될지라도 솔로몬은 또 다른 구원을 위한 강력한 논거(論據)를 바로 그 사실에서 발견하였다. 훗날 예레미야는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구원받은 것을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과 비교하면서 다가오는 더 큰 회복에 비추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라고 말했다(렘 16:14, 15, 23:7, 8)

8:53 주의 산업.

 솔로몬이 생각하기에, 이것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기억해야 할 이유로 제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최종적 근거였다. 하나님 자신의 거듭된 주장과 약속에 근거해 볼 때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기업이다.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지상 만인 중에서 택하여 그의 특별한 백성으로 삼겠다고 말씀하셨다(출 19:5, 6; 신 14:2). 그들은 “기업의 백성”으로 알려질 것이었다(신 4:20; 참조 9:26, 29). 이제 와서 여호와가 저들을 거절한다면 그의 거룩한 이름의 영광을 위태롭게 하는 격이 될 것이다(출 32:12, 13; 민 14:13, 14). 곤경에 처했을 때마다 주의 이름의 영광과 주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성과 백성을 위하여(시 79:9, 10; 단 9:19) 이스라엘을 구원해 달라고 여호와께 열렬히 탄원하였다. 에스겔 시대에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그처럼 강한 힘으로 구원해 낸 것은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목전에서 더럽히지 않으려 하여 행하였음이로다”(겔 20:9, 14; 참조 20:22)라고 천명하였다.

  

8:54 아뢰기를 마치고.

 솔로몬은 매우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기도를 드렸다. 그는 자신의 기도에 이스라엘은 물론 멀리 있는 이방인들까지 포함시켰다. 그 기도는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을 위한 기도였고, 그때 성전 뜰 안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를 위한 기도였으며, 주의 사업을 신실하게 받드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였을 뿐 아니라 길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였다. 이 기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여호와께 거슬러 범죄하여 회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향한 깊고도 진정한 관심을 나타낸 점이다. 그러한 기도는 동정과 사랑의 마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따뜻해진 마음에서만 나올 수 있다. 솔로몬의 이 기도에는 웅변적 효과를 꾀한 흔적이 없고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과시하고자 하는 시도도 없으며, 사람들의 갈채를 받지만 하나님의 귀에는 이르지 못하는 말들을 하고자 하는 욕망은 엿보이지 않는다. 이 기도는 순전하였고, 하나님의 사람의 입술에서 나온 것이었다. 기도가 끝났을 때 여호와는 능력과 광채의 특별한 현시를 통해 그분이 인정하시는 표를 보여 주셨다. 하늘에서 불을 내려 희생제물을 사르고 성전을 영광으로 가득 채웠다(대하 7:1~3).

8:55 온 회중을…축복하며.

 이 공식적인 축도를 드린 것은 분명하게 예식적인 행위였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하는 특별한 의무와 특권이 주어졌었다(민 6:23~26). 솔로몬이 마지막으로 이 축복을 선포한 사실은 그가 영적인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 준다. 왕으로서 그는 일반 국사(國事)뿐 아니라 신민(臣民)의 영적 안녕에도 관심을 두고 있었다.

8:56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

 여호수아도 이와 비슷한 표현을 하였다(수 21:45; 23:14). 하나님은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의 백성에게 많은 약속을 하셨고, 그것들을 신실히 이행하신다(히 10:23). 만약 사람들이 하나님이 약속한 복을 받지 못한다면 사람 편에서 지켜야 할 약속을 태만히 하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을 영원한 유업으로 주겠다고 약속하셨다(창 12:7; 13:15; 17:8). 그러나 육신을 따라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자들은 여호와께 범죄하여 그 유업을 잃고 말았다(왕하 17:7~23; 렘 7:3~15; 25:4~9).

8:57 우리와 함께 계시옵고.

 사랑의 하나님 여호와는 그의 백성과 함께 있기를 원하신다. 성전이 건립된 것은 그분이 저들 가운데 거하시기 위함이었다(출 25:8; 왕상 6:12, 13). 예수님은 이 땅에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마 1:23)으로 오셨고, 그분이 떠나가실 때도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약속하였다. 하나님의 모든 참된 자녀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실감하는 것보다 더 높은 소망이나 더 깊은 갈망은 없다(시 42:1, 2; 계 22:20, 21).

8:58 우리의 마음을 자기에게로 향하여.

 주의 길을 따라가고자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고자 하는 열망은 하나님이 심어 놓은 거룩한 충동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끊임없이 역사하여 사람들을 진리와 순종의 길로 인도하신다. 사람이 여호와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땅에 속한 죄된 것들은 더욱 온전히 버리고,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기꺼이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하나님의 영은 사람을 인도하여 순종케 하고 그들을 이끌어 계명을 지키도록 하지만 사람의 의지를 거스르면서까지 이 일을 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즐겨 순종하려 하면 더욱 더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사람이 여호와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하나님의 사상은 그의 사상이 되고 하나님의 길은 그의 길이 된다. 사람이 그분의 길을 배워 그 안에서 행하고자 하여 겸손하고 자원하는 심령으로 여호와께 나아가면(시 119:26, 27, 30, 32~26),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이 의무라기보다는 즐거운 일이며 하나님의 율법이 멍에라기보다는 자유의 법(시 119:45, 47, 97; 약 1:25; 2:12)임을 깨닫기 시작한다.

8:60 세상 만민에게.

 이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이며, 따라서 세상 만민이 여호와를 알고 교제와 예배에 동참하도록 하기 위해 그 나라의 모든 자녀들의 마음속에 최우선으로 두어야 할 목적이다.

8:61 완전케 하여.

 성경은 품성의 완전이 천국에 들어가는 필요 조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완전의 표준은 하나님의 계명들에 나타나 있는 의와 사랑의 원칙들에서 찾을 수 있다(마 19:16~21; 눅 10:25~28; 신 5:2~22, 29~33; 6:3~5). 구약에서는 표상을 통해, 신약에서는 완전히 투명하게 계시된 복음은 솔로몬이 말한 그 완전에 어떻게 이를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8:63 솔로몬이 화목제의 희생을 드렸으니.

 솔로몬이 이 희생을 드릴 때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일반인들이 여호와 앞에 희생제물을 드리는 것과 같은 의미로 제물을 드리고 있었다(레 2:1; 3:7, 12). 여기에 언급된 희생제물은 화목제로 밝혀진다. 화목제 희생은 제물의 일부만 “여호와께 드리는 향기로운 냄새”(레 3:3~5, 14~17)로 번제단에서 태웠다. 나머지 부분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과 그의 가족 혹은 친구들이 먹었다(레 7:15~21). 이것은 속죄제물이 아니고, 받은 축복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는 감사제이다. 그것은 많은 사람이 참여한(삼하 6:18, 19; 대상 16:2, 3) 즐거운 축제 행사였다. 성전 봉헌식 때 제물로 드린 짐승이 엄청난 수였지만,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하수까지 큰 회중이 모여”(왕상 8:65) 14일 동안 거기 함께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8:64 놋단.

 열왕기에는 이 제단을 만들었다는 말이 없지만 대하 4:1에는 언급돼 있다. 이 단은 길이가 10.2미터, 폭이 10.2미터, 높이가 5.1미터로 상당히 컸다. 하지만 제물이 너무나 많아 제물의 기름을 다 용납할 수 없었다. 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제사장들은 전의 “뜰 가운데”를 구별하여 거대한 제단으로 쓰게 하고, 어느 부분에서든지 여러 종류의 희생제물을 드릴 수 있게 하였다(참조 대하 7:7).

8:65 절기.

 절기는 14일 동안 계속되었고, 7월 23일에 백성들을 돌려보냈다(대하 7:10). 따라서 이 절기는 7월 10일에 시작되었고, 이날은 엄숙한 대속죄일이었다(레 16:29, 30: 23:27; 민 29:7). 이 달에 들어 있는 초막절은 7월 15일에 시작하여 7일간 계속되었다(레 23:24, 39).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은 나뭇가지로 만든 초막에 거하였다(레 23:34, 40~42).

8:65 하맛 어귀.

 하맛은 성지(聖地)의 최북단 한계선을 이룬다(참조 민 13:4; 34:8; 수 13:5; 삿 3:3; 왕하 14:25; 대상 13:5; 암 6:14). “하맛 어귀”의 위치에 대해서는 민 34:8과 수 13:5 주석을 참조하라. 레바논 산맥과 동 레바논 산맥 사이에 있는 큰 계곡, 곧 헬라인들에게는 코엘레-수리아(Coele-Syria)로 알려진 지역이 북방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가는 주요 입구를 이룬다. 이 계곡을 통해 침략군들이 북방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들어왔다.

8:65 애굽 하수까지.

 여기서 “하수”(river)라는 말에 사용된 히브리어는 보통 “강”을 나타내는 단어 나하르(nahar)가 아니라 나할(nah.al)이다. 이것은 건기(乾期)에는 말라 버릴 수도 있는 시내 혹은 급류로, 욥기에는(6:15) “시냇물”(brooks)로 번역되어 있다. 이 시내는 팔레스타인 남단 경계에 있던 와디 엘-아리쉬(Wadi el-Arish)일 것이며(민 34:5; 수 15:4, 47; 왕하 24:7; 사 27:12), 가사(Gaza)에서 남서쪽으로 80킬로미터 지점에 있다(참조 347쪽 지도).

8:66 장막.

 “집”(수 22:4, 6~8; 삿 7:8; 20:8; 삼상 4:10; 13:2; 삼하 18:17; 20:1; 왕상 12:16)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히브리식 표현.

8:66 즐거워하였더라.

 참 종교는 기쁨의 종교이다. 하나님과 평화를 이룬 사람은, 다른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진정한 행복과 조용한 만족감을 마음에 지니고 있다. 성전 봉헌 예배는 참석자들에게 영감과 기쁨의 근원이 되었다. 상호간에 교제를 나누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며, 그분의 축복을 돌이켜 보고 그분의 거룩한 이름에 합당한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동안, 저들은 세상의 어떤 쾌락도 가져다줄 수 없는 충만한 평화와 기쁨을 발견하였다.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때 평화롭고 기쁜 마음으로 매일의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다. 이 예배자들은 여호와께서 저들뿐 아니라 다윗과 솔로몬에게 베푸신 은혜로 인해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했다고 말한다(대하 7:10). 통치자와 백성들이 서로를 위해 복을 빌고 서로의 번영과 기쁨을 기뻐하는 땅, 또한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일하는 땅의 복됨이여!(참조 시 85:9~12).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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