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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2장 본문

성경일독학교 1학년/마태복음

마태복음 22장

Timberners-Lee 2017. 3. 5. 22:44

<마태복음 22장 흐름정리>

하나의 비유(혼인 잔치)와 네 가지 논쟁(세금 납부 문제, 부활 문제, 율법 논쟁, 메시야 논쟁)을 기록하고 있다. 혼인 잔치 비유는 지속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거부해 온 유대 민족의 역사와 당시의 유대인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네 가지 논쟁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벌어진 것이며, 예수님은 각각의 질문에 대해 유연하고도 명확하게 대답하심으로 사악한 자들의 의도를 무력화시키셨다. 특히 맨 마지막의 논쟁은 예수님이 먼저 문제를 제기하여 당신의 신성을 확증함으로써 한 인간으로 격하시키려는 시도를 차단하셨다.


<마태복음 22장 줄거리>

1. 왕이 아들을 위해 베푼 혼인 잔치의 비유.

9. 이방인을 초청함.

12.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자를 처벌함.

15. 가이사에게 바쳐야 하는 세금.

23. 그리스도가 부활에 관하여 사두개인들을 침묵시킴.

34. 무엇이 첫째가는 큰 계명인지 법관에게 대답함.

41. 메시야에 관하여 바리새인들에게 질문함.


<마태복음 22장 도움말>

* 3절 : 그 종들을 보내어.

손님들이 이미 초청 즉 “청함”을 받았음에 유의하라. 손님들에게 이미 받았던 초청을 상기시켜 주기 위하여 바로 그 당일에 개별적인 기별자를 파송함으로써 손님들을 예우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동양 나라들의 관례다.


* 3절 : 그 청한[초대한] 사람들.

이 비유에서는 유대인들을 말한다.


* 3절 : 오라 하였더니.

유대인들을 향한 최초의 초청은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을 통해 주어졌다. 이 비유에서 첫 번째 부름이자 유대인들에 대한 두 번째 초청인 이것은 침례자 요한과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다.


* 6절 : 종들을 잡아.

이것은 일차적으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핍박을 가리킨다.


* 7절 : 그 동네를 불사르고[온 도시를 불태워 버렸다].

AD 70년 로마의 군단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암시임이 틀림없다.


* 11절 : 예복[결혼 잔치 예복].

혼인 예복은 “그리스도의 의”(실물교훈, 310)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혼인 예복을 거절하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자격을 부여하는 품성의 특징들을 거절하는 것을 나타낸다. 비유에 나오는 손님들처럼 우리에게는 입기에 합당한 자신의 옷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그분의 완전한 의의 옷을 입을 때에만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라고 권면한 “흰옷”이다(계 3:18).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품성이 변화되어야 할 필요를 깨닫지 못하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을 상징한다. 이 손님은 임금이 후하게 베푼 것을 먹는 특권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자신에게 부여된 특권을 진정으로 감사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임금의 명예와 그 행사의 중요성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는 잔치가 임금 자신이나 다름없는 임금의 아들을 위해 베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그가 임금의 상에 앉아 혼인 예식에 따르는 잔치와 풍성한 음식을 즐길 자격을 부여해 주는 유일한 것을 거절했다는 이야기이므로, 그가 옷을 얼마나 잘 차려 입었느냐 하는 것은 요점에서 벗어난다.


* 13절 : 내어 던지라[던져 버려라].

사람들은 자신의 그릇된 선택의 결과로 하늘나라에서 추방된다. 비유 속의 이 사람은 임금의 초청에 의해서 잔치 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으나, 쫓겨난 것은 그의 잘못 때문이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며 다만 자신에게 정죄를 초래할 수 있다. 거꾸로 하나님은 “온전히 구원하”(히 7:25)실 수 있지만 어느 누구도 독단적으로 정죄하거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지는 않으신다.


* 16절 : 헤롯 당원들.

헤롯 당원들은 헤롯 안티파스의 가문을 지지하는 유대의 정당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열렬한 민족주의자들로서 가이사뿐 아니라 헤롯도 반대하지만, 헤롯당은 로마에 협력하는 자들이었다. 정치계에서는 철천지 원수 사이인데도 그들은 침례자 요한에게 대항할 때도 그랬듯이 예수에게 대항하기 위해 연합하였다. 이 경우에 헤롯 당원들은 예수의 대답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했고 만약 정부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불충성의 암시를 내보인다면 그분을 고소할 채비가 다 되어 있었다.


* 17절 : 세[세금].

이것은 아마 로마의 직접적인 관할 아래에 있는 영토에 부과된 로마의 인두세였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 세금 내는 것을 유별나게 괴로워했는데, 그것이 부당하게 지워진 부담이라서라기보다는 이방 권세에 복종한다는 상징이었으며 또 자신들이 잃어버린 자유를 생각나게 하는 쓰라림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가 직면한 문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것이며 “우리가 로마에 굴복해야 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독립을 위해 싸워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직결된다.


* 23절 : 사두개인들[사두개파 사람].

그들은 비록 성경을 믿는다고 공언은 했지만 실제적으로는 물질주의적이고 회의적인 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었으나 하나님이 인류의 일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부인했다. 그들은 천사와 부활과 내세와 인간의 삶 속에 임하는 성령의 역사를 부인했다. 사두개인들은 동료 인간들에 비해 자신들이 지적으로 우월하다는 태도를 취했으며 바리새인들이 강조한 엄격한 율법주의와 전통을 업신여겼다.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나올 때에 그들은 만들어 둔 질문 가운데 하나를 가지고 그분을 놀라게 해줄 심산이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질문들은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들을 언제나 몹시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들은 예수가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대답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 29절 :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사두개인들은 스스로 바리새인들보다 성경을 더 꼼꼼하게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들의 모든 과시적 지식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여기에서 그들이 몹시 무지하다고 단언했다. 불완전한 정보에서 비롯된 사변적 추론에 근거한 신학적 관념들은 이런 공상적인 방법에 의존하여 진리에 도달하려는 자들을 분명히 타락으로 이끌 것이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 36절 :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어느 것이 가장 중요합니까].

이 질문 자체는 근본적인 원칙을 다루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모든 율법의 계명들을 중요도에 따라 순서대로 배열하려는 랍비들의 시도에 의하여 제기되었을 것이다. 두 계명이 요구하는 것이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 “더 큰” 계명으로 여겨지는 것이 우선하고 그래서 “더 작은” 계명을 위반한 책임을 면제해 주었다. 여기서 “크다”라는 말은 실제로는 “가장 크다”를 의미한다. 바리새인들은 십계명 중에서 처음 네 계명을 나중의 여섯 계명보다 더 중요하다고 높였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그것이 실제적인 신앙 문제로 대두되었을 때에는 실패했다.


* 39절 : 네 몸과[자신] 같이.

사람은 하나님과 동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기에게 부과된 의무와는 상관없이 자신을 먼저 챙기려는 타고난 성향이 있다. 동료를 대할 때 완전히 이타적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올바른 모든 행실의 근원이다.


* 40절 : 율법과 선지자[예언자].

구약 전체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히브리 관용구이다. 달리 말하면 예수는 여기에 선언된 위대한 두 원칙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설명보다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은 것이 구약이라는 점을 단언하고 있다.


* 46절 :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아무도 예수님께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더 이상 예수에게 질문하는 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를 궁지로 몰아 넣으려 했던 난처한 문제들이 오히려 자신들에게 되돌아 왔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성경에 대한 무지함과 백성의 영적 지도자로서의 무능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예수를 폄하하려는 시도는 모두 부메랑처럼 그들에게 되돌아 갔음이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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