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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4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잠언

잠언 24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5. 1. 06:07

<잠언 24장 흐름정리>

여기서는 지혜의 유익을 중점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지혜는 큰 힘이 되며 특히 환난날에 강한 면모를 잃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기자는 영혼을 살찌우는 지혜를 송이꿀에다 비유한다(13절). 반면에 지혜가 없는 자는 죄악만을 생각하고 재판을 굽게 하며 게으르기 짝이 없다. 설사 그들이 번영을 누린다 해도 전혀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악인의 형통은 잠깐이고 마침내 등불이 꺼지듯이 소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혜자와 어리석은 자의 차이점이 16절에서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잠언 24장 개역한글>

1. 너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기도 원하지 말찌어다 

2.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 입술은 잔해를 말함이니라   

3.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히 되며    

4.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5.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6. 너는 모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모사가 많음에 있느니라      

7. 지혜는 너무 높아서 미련한 자의 미치지 못할 것이므로 그는 성문에서 입을 열지 못하느니라      

8. 악을 행하기를 꾀하는 자를 일컬어 사특한 자라 하느니라      

9.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 거만한 자는 사람의 미움을 받느니라      

10. 네가 만일 환난날에 낙담하면 네 힘의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11.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      

12.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찌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13.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14.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15. 악한 자여 의인의 집을 엿보지 말며 그 쉬는 처소를 헐지 말찌니라      

16.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찌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17.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18.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 아니하사 그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      

19. 너는 행악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20.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21.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22. 대저 그들의 재앙은 속히 임하리니 이 두 자의 멸망을 누가 알랴      

23. 이것도 지혜로운 자의 말씀이라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24. 무릇 악인더러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25.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26.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27.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밭에서 예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찌니라      

28. 너는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찌니라      

29.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 행한대로 갚겠다 말하지 말찌니라      

30. 내가 증왕에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31. 가시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풀이 지면에 덮였고 돌담이 무너졌기로      

32.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었노라      

33.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34.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잠언 24장 성경주석>

24:1 그와 함께 있기도.

 선량함이 우둔한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강한 매력을 가진 이들의 거리낌 없는 행동에는 일종의 흥분이 있다(참조 시 1:1; 잠 4:4~19).

24:2 강포를 품고.

 악인들과 사귀는 것은 최소한 세 가지 이유로 위험하다. (1) 고상한 도덕적 결의가 악행자들을 경멸하거나 제재에서 벗어난 생활에 매력을 느끼는 상태로 움츠러들 위험이 있으며, (2) 나쁜 친구들과의 교제로 신망이 손상을 입고, (3) 악행자들이 비교적 무관한 방관자들에 대하여 악을 도모하는 위험이 있다.

24:3 지혜로 말미암아.

 질투하는 악인들의 어리석음으로는 아무것도 견고히 서지 않는다(1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참지혜에 의해서만 가정이 복을 받고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약탈은 영구적인 부를 얻는 길이 결코 아니다. 현명하게 사용된 지식이 진정한 기쁨의 생애를 보장한다.

24:5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70인역」은 첫 구절을 “지혜 있는 자는 강한 자보다 낫다”라고 번역한다. 「제임스왕역」은, 솔로몬이 보기에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이므로, 지혜자는 상당한 지혜의 힘뿐 아니라 이에 더하여 정의의 힘까지 자기의 편에 갖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채택된 것 같다.

24:6 모사가 많음.

 참조 11:14 주석.

24:7 지혜는 너무 높아서.

 미련한 자는 그의 머리로 지혜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의 행동들은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고 욕망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지혜 있는 자들이 공적인 문제를 토의하기 위하여 성문에 모일 때(참조 22:22 주석), 미련한 자는 기여할 길이 전혀 없다. 분별력 있는 사람들을 지도하는 생각들을 그의 지성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그의 지혜를 증진시키고자 추구하지 않고 결국 그런 헤아림을 깨달 수 없다. 이는 그가 현명하게 되고자 하는 의향이 없기 때문이다(참조 시 10:4, 5).

24:8 사특한 자.

 사악한 자가 그의 극악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데 드러내는 오용된 재간은 지혜나 총명으로 분류될 수 없다. 아무리 그가 자기 자신을 능숙하게 보이고자 할지라도 그에 관하여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가 “사특한 자”, 문자적으로 “해악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가장 영리한 악한은 여전히 미련한 자의 동류로 분류되어야 한다. 이는 그가 영원한 만족이나 궁극적인 이득을 결코 줄 수 없는 것을 구하기 때문이다(참조 1:10~19; 12:2).

24:9 생각.

 히브리어 짐마(zimmah), “계획”, “책략”, “사악.” 오직 여기에서만 짐마가 “생각”으로 번역되었다. 다른 곳에서는 그것이 “악행”(레 18:17 등), “악특함”(시 26:10 등), “악한 계획”(사 32:7), “비루함”(렘 13:27 등)으로 번역되었다. 분명히 여기에서 죄로 지적된 것은 미련한 것에 관하여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잠 24:8에서 언급된 어리석은 방법으로 계획하는 것이다.

24:9 거만한 자.

 사람들은 진리를 옹호하는 체하면서도 그것을 몰래 훼손시킬 수 있는 약빠르고 교묘한 냉소자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묘사하기를 주저할 수도 있다. 오히려 그들은 그의 공격이 너무도 교활하기 때문에 그를 미워하고 무서워한다(참조 잠 19:29; 21:11; 사 29:20).

24:10 네가 만일…낙담하면.

 문자적으로 “네가 만일 네 스스로를 느슨하게 보인다면.” 분쟁이 생기면 사람은 온 힘을 싸움에 집중시켜야 한다. 비상사태에 대처하지 못하고, 그것을 우유부단하고 무방비 상태로 맞는 것은 그의 힘을 감소시키고 패배를 자초하게 된다.

24:11 너는…아니치 말라.

 (「제임스왕역」에는 “if thou fear”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에는 이 구절 처음에 “만일”(if)이라는 단어가 없다. 둘째 구절에 그런 낱말이 들어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하나의 감탄사로 읽혀져야 할 것 같다. 이런 견해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들과 살육을 향해 비틀거리는 이들을 구원하라. 아, 그들을 못 가게 방해하라”라는 번역을 가능케 한다. 「70인역」은 감탄사 대신에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들을 구원하고, 죽임을 당하도록 정해진 자들을 속량하고, [너의 도움을] 아끼지 말라”라고 되어 있다. 12절은, 하나님의 종은 처형장으로 거칠게 끌려가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부당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를 말한다. 주류 판매를 인가하고 그 밖에 영혼을 파괴하는 상업 형태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이 현명한 권면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서 희생자들이 그들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습관에 빠지지 않도록 제지하고 주류 판매업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파멸시켜 이득을 취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온갖 합법적인 수단을 이용해야 한다.

24:12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핑계가 쓸데없다. 사람들은 우리 마음속의 생각과 감정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의무를 어느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마음을 창조하신 분은 그것을 아신다(참조 16:2; 21:2). 우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품성의 계발을 살펴보시는 분은 모든 행동에 수반된 죄의 정확한 정도를 잘 아신다(참조 렘 17:9, 10). 이런 감정(鑑定)으로 모든 상황이 평가되고 우리의 타고난 재능과 환경의 모든 부분이 참작된다. 범죄는 회개하지 않은 고의적인 죄 때문에 성립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회개하지 않은 태만 때문에도 성립된다. 우리가 범죄자들에게 구주를 가르쳐줌으로써 방지할 수 있었던, 다른 사람들이 지은 죄 때문에 우리는 유죄 선고를 받아야 한다.

24:13 꿀을 먹으라.

 솔로몬은 원래 여기서 식사에 대한 권면을 하고 있지 않다. 이 말은 현명한 행동에 관한 권면에 앞서서 그리고 그것을 위한 하나의 예증적인 배경으로 사용된 것이다. 이 말은 25:16, 27과 비교해야 한다.

24:14 지혜.

 마치 꿀이 미각을 즐겁게 하고 육체를 튼튼하게 하는 데 좋은 것처럼 지혜는 영혼과 품성에 그러하다. 지혜는 그것을 깨닫고자 배우는 자들에게 그 자체가 달콤한데, 이생과 내세에서의 결과는 더욱더 그러하다. 만일 지혜를 발견하여 동화될 것 같으면, 미래의 상급의 때가 올 때, 지혜롭고 의로운 자는 그의 상급을 잃지 않을 것이다.

24:15 엿보지 말며.

 악인은 일반적으로 주님의 보호를 누리는 선한 사람을 질투한다. 그는 때때로 의인들을 죄 가운데로 이끌어 그들도 자기 자신처럼 불안정한 상태가 되게 하고자 사악한 욕망을 품는다. 더욱이 탐욕스런 사람은 때때로 불의의 이득을 얻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집을 빼앗고자 노력한다. 의인을 잡아먹은 자들은 그들이 야기한 슬픔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그 가운데서 쾌락을 누린다(참조 잠 1:11, 12; 4:16; 암 8:5, 6).

24:16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문맥은 여기서 말하는 “넘어지다”의 본래 의미는 “어떤 재난을 당하다”임을 시사한다. 악인은 의인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의 노력을 허비한다. 그가 그들을 가난과 불행 속으로 빠뜨릴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개입하신다. 반면에 죄인은 문자 그대로 “재난으로 넘어지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참조 시 34:19; 미 7:8).

  영적 의미에서 이 절은 죄를 대적하는 싸움에 실패함으로써 용기를 잃고 고투하는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위로가 된다.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란 “넘어질 때마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만일 우리가 실패할 때마다 새로운 희망으로 일어난다면,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그처럼 값없이 제공된 구원의 능력을 다시 붙잡는다면(마 11:28; 유 24절), 우리는 의인으로 인정되고 주님은 자신이 시작한 일을 우리 안에서 이루실 것이다(빌 1:6; 히 12:2). 의롭게 되고자 하는 욕망과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한 능력은 다 같이 그분에게서 온다(빌 2:13). 그러므로 자신이 스스로를 아무리 연약하다고 생각할지라도 그가 자원하는 마음으로 의를 행하고자 작정하고 있는 한 결코 낙심할 필요는 없다.

24:17 즐거워하지 말며.

 예수께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고 말씀하실 때 그분이 표현한 것과 같은 정서이다. 원수가 어려움 속에 빠질 때 즐거워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는 공의가 이룬 정당한 기쁨을 느낀다고 공언함으로써 그의 불행에 대한 우리의 죄악적인 만족감을 감추고자 시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내면의 감정은 원수들의 세상을 위하여 죽으신 예수의 모본이나 교훈과 반대된다(롬 5:8~10). 우리는 잃어버림을 당한 인류를 멸망시키고자 함이 아니고 구원하고자 하는 사랑을 나타내고, 의와 반대로 가는 자들의 운명을 슬퍼하는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참조 겔 33:11; 호 11:8; 눅 19:41, 42).

  하늘의 사랑을 더욱 완전하게 보여 준 이 계시에 대한 예시들은 옛적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그리스도의 영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벧전 1:11).

24:18 그 진노.

 얼른 생각하면 이것은 이타적인 태도를 위한 이기적인 동기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주께서 그대들의 이기적인 태도를 불쾌히 여기셔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서 어려움을 제거해 주고 그 대신에 그대들에게 그 어려움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위선과 자기 본위에 대한 호소처럼 보인다. 그리스도의 자아 희생적 사랑으로 충만해진 자는 죄인이 진노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라면 재난 속으로 들어가고 심지어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도 즐거워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고(사 53장), 모세도 그런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솔로몬의 경고는 원수를 사랑하는 선한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슬픔을 기뻐하는 악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제시된 이유가 매우 효과적이다. 진정한 자비는 강요될 수 없다. 그것은 사랑의 마음에서 절로 흘러나와서 어려움에 처한 모든 사람에게 전달된다.

24:19 분을 품지 말며.

 우리는 원수가 넘어질 때 기뻐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그의 번영에 격분하거나 질투하지 말도록 경고를 받고 있다(참조 시 37:1, 8; 73:2, 3; 잠 24:1). 그런 태도는 우리를 실망에 이르게 하고, 심지어는 악인이 분명히 기뻐하는 그 즐거움을 누리기 위하여 그의 길을 따르는 지경에까지 이끌릴 수도 있다. 그런 감정에 대한 방어책은 잠 24:20에 있다.

24:20 장래가 없겠고.

 참조 시 73:3, 17~24.

24:21 반역자.

 우리는 하나님과 국가의 통치자를 존경해야 할 뿐 아니라(참조 전 8:2; 10:20; 벧전 2:17), 여론에 배치되는 자들과의 교제를 피하기 위하여 조심해야 한다.

24:22 이 두 자의 (멸망).

 “두 자”는 하나님과 왕을 분명하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 표현은 그들이 자신들에게 반역하는 자들에게 과하는 멸망을 묘사해야 한다. 그런 멸망은 갑자기, 예기치 않게 그리고 압도적인 힘으로 올 수 있다. 선한 사람들은 이 두 큰 세력들의 원수들과의 우호 관계를 통하여 그 속에 휘말리지 않도록 좋은 충고를 받고 있다.

24:23 이것도.

 이 말들은, 하나의 추가, 즉 그 부분을 마무리짓는 일종의 추신에 대한 서론을 삼기 위해 나타난다.

24:23 낯을 보아 주는 것.

 참조 18:5; 24:24 주석.

24:24 옳다.

 범죄자를 무죄로 석방하는 재판관들은 그 범죄자에게 손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지 않다. 그러나 이 재판관들이 악인을 선하다고 칭찬할 때, 그들은 범죄자를 풀어주어 사회에 분쟁을 계속하게 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하게 된다. 그들은 선악의 모든 관념을 흐리게 하고 젊은이들이 법과 질서에 대한 존중심 없이 자라도록 조장한다. 그런 재판관들은전 국민의 미움을 산다. 왜냐하면 정의에 대한 존중심이 민중 전체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강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국민은 그들의 평화와 번영의 기초를 약화시키는 행동들에 대해 분개한다.

24:25 기쁨을 얻을 것이요.

 악행자에게 공정하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처벌하는 자들은 수행한 의무감을 즐거워할 것이다. 옳은 일을 할 때 큰 만족이 따른다. 일반 대중을 그들의 원수들에게서 보호해 주고 그들의 마음속에 권위에 대한 존중심을 높여 줌으로써 한층 더 그들을 도울 수 있게 된다. 선한 통치자들은 특별한 축복을 받는다. 그들은 백성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뿐 아니라 주께서는 특별한 보호와 지도로 친히 그들을 보상하신다(참조 시 72편). 그런 통치자들의 백성들에게도 또한 축복이 있다. 그들은 필요가 생길 때 공의가 주어질 것을 알고 있으므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

24:26 입맞춤.

 문자적으로 “올바른 대답을 하는 자는 입 맞출 것이다.” 왕이나 통치자나 재판관이 바른 말들을 할 때 그것들은 올바로 생각하는 백성들에게 입맞춤과 같이 즐겁다.

24:27 네 집을 세울지니라.

 집을 세운다는 것은 문자적으로 이해될 수도 있고 혹은 가정을 이루는 것과 자녀를 양육하는 것을 언급할 수도 있다. 젊은이가 여자의 부모로부터 아내를 얻고자 하는 희망을 나타내기 전에 그는 그 부모들과 그녀에게 막대한 선물을 주고 그녀를 부양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위치에 있어야 했다(참조 창 24:35, 53). 그러므로 그 일을 위하여 그는 가족의 필요를 공급할 수 있는 농장을 경작함으로써 스스로를 공고히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

  영적으로도 사람은 자기 속에 강하고 영속적인 품성을 이루고자 희망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에서 돌과 잡초들을 제거하고 그 속에 의로운 삶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참조 사 5:1~7; 호 10:12).

24:28 까닭 없이.

 이것은 누구든지 그의 이웃에게 불리한 정보를 자진하여 말해서는 안 되고 그가 증인이 되라는 요구를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문맥은 오히려 사람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들을 그의 이웃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시사한다(참조 3:30). 둘째 구절은 문자적으로 “네가 네 입술로 속이겠느냐”라는 질문이다.

24:29 나도 그에게 행하여.

 솔로몬은 사람이 황금률을 거꾸로 적용하지 못하도록 경고한다. 비록 원수가 우리를 대적하여 거짓으로 증언했을지라도 우리는 그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가 우리에게 어떠한 악을 저질렀든지 우리는 그에게 앙갚음을 해서는 안 된다. 보수(報讐)는 하나님께 속한다(히 10:30).

  원수에게 복수를 한다는 사상은 “내가 복수할 것이다”라고 한 옛 격언 속에 요약되어 있다. 우리의 적은 우리를 악한 방법으로 취급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타락시켰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의 수준까지 떨어뜨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만일 그러한 때 그가 우리를 다시 공격하기 위하여 자신의 품위를 더 떨어뜨린다면 우리는 반격하기 위하여 그의 수준까지 우리 스스로를 다시 하락시킨다. 그런 과정이 오랫동안 계속될 수 있다. 그러나 인류의 큰 원수 외에는 그것으로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한다.

24:30 밭.

 밭과 포도원은 팔레스타인의 농부를 위한 식물과 소득의 두 주요 원천이었다. 이 절은 게으른 자를 지각이 없는 자와 비교한다.

24:31 가시덤불.

 많은 히브리어 단어들이 “가시덤불”로 해석되는데, 다루기 힘든 잡초와 같은 많은 생장물 중 어느 것이 어떤 특정한 경우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방치된 밭은 농작물들을 질식시키는 식물로 빨리 무성해지고 더욱이 일단 퍼지도록 허용된 잡초들은 제거하기가 어렵다. 농장이 황폐케 하는 짐승들로부터 보호를 받으려면 울타리도 잘 수리하고 보존해야 한다(참조 사 5:1~7).

  어떤 사람들은 게으른 자에 관한 솔로몬의 시에서 영적 진리에 대한 예증을 찾는다. 성령께서만 우리를 죄에서 이길 수 있게 해 주지만, 그는 우리의 동의와 협력 없이는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잡초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이 나누어 주는 힘으로 전진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십계명에 대한 강한 순종의 울타리를 축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아가야 한다.

24:32 내가 보고.

 솔로몬은 게으른 자가 가진 농장의 상태를 주목하고 진취적 기상과 활력이 없는 모든 자를 위한 직접적인 교훈과 함께 영적 적용에 주목했다. 솔로몬을 지금껏 생존한 가장 지혜 있는 사람들 중 하나로 만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의 결과인 동시에 스치는 광경을 주목하고 그가 본 것에서 교훈들을 배우는 이 같은 능력이었다. 지혜롭게 되고자 원하는 모든 사람은 솔로몬이 지혜를 얻은 것처럼 그것을 얻을 수 있다(참조 왕상 4:29; 약 1:5; 선지자와 왕, 31).

24:33 자자.

 참조 6:10, 11; 20:13.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6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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