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ORY

전도서 12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전도서

전도서 12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5. 29. 16:54

<전도서 12장 흐름정리>

마지막 장에 이르러, 전도자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이 거듭 언급된다. 그것은 곧, 창조자를 기억하고 경외하며 그분의 명령을 지키라는 말이다(1, 7, 13절).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인생의 허무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특히, 전도자는 젊은 시절부터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권면한다. 그 이유는, 짧은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값지고 보람되게 보내는 것이 낫기 때문이요, 또한 인생의 종말이 언제 갑자기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전도서 12장 줄거리>

1. 조속히 창조자를 기억할 것임.

8. 교회를 위한 전도자의 노력.

13. 여호와를 경외함이 헛됨을 막아 주는 가장 요긴한 방책임.


<전도서 12장 개역한글>

1.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3.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4.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5.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원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      

6. 은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지고      

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8.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9. 전도자가 지혜로움으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묵상하고 궁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10. 전도자가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나니 기록한 것은 정직하여 진리의 말씀이니라    

11. 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고 회중의 스승의 말씀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의 주신바니라      

12. 내 아들아 또 경계를 받으라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전도서 12장 성경주석>

12:1 청년의 때.

 참조 11:9 주석. 사람은 성년의 초기에 육체적으로 힘의 절정에 이른다. 생명의 활력을 하나님께 바쳐서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야 할 때가 있다면 바로 이때이다.

12:1 곤고한 날.

 인생 절정기의 활기차고 희망찬 시절과는 대조적으로 쇠약해진 노년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노령은 병약과 무기력을 가져오므로 불행과 괴로움으로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는 뜻에서 그 날들은 “곤고”하다.

12:1 아무 낙이 없다.

 “낙”으로 번역된 말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단어가 문장의 말미에 놓였다. 풍요로운 젊음의 욕망과 의욕과 희망이 사라지면 삶의 열정이 거의 다 없어진다. 바르실래의 경험(삼하 19:34, 37)과 비교하라.

12:1 전에…기억하라.

 (「제임스왕역」에는 “remember now”[지금 기억하라]로 되어 있음-역자 주). 문자적으로 “그리고 기억하라” 혹은 “또한 기억하라”인데, 이는 12장과 11장, 특히 11:9과의 연결을 위해서이다. “지금”(now)으로 번역된 단어는 보통 “그리고”로 번역된 말이며, 영어에서 “now”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어떤 시간관념을 내포한 것은 아니다.

12:1 창조자.

 히브리어로는 창 1:1에 있는 “창조하다”라는 동사의 분사가 사용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을 우주의 설계자와 창조자로 지적한다. 여기서 히브리어로는 창 1:1의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복수형이듯이 창조자라는 단어가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참조 창 1:1, 26, 27).

12:2 해.

 1절의 곤고한 날, 곧 노령이 되어 가는 때를 예증하기 위하여 사라져 가는 하늘의 발광체들이 여기에 사용되고 있다. 어떤 주석자들은 약해져 가는 시력에 적용시킨다. 유대인 주석자들은 세부적인 적용에서 지나치게 극단으로 치우쳐 “해”는 이마, “빛”은 코, “달”은 영혼 그리고 “별”은 뺨을 나타낸다고 한다.

12:2 …전에.

 (「제임스왕역」에는 “while”[~할 동안]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2~6절에 기록된 지극히 상징적인 표현들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어 왔다. 많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주석자들은 다같이 이 일련의 장면들을 육체의 힘이 거의 다 소진된 인생의 황혼기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그리고 하나하나의 비유들을 신체의 해부학적 부위들에 관한 언급으로 설명해 왔다. 훌륭한 문장력을 가진 솔로몬이 1, 5, 7절에서 명확히 밝힌 것처럼, 여기서 노령과 죽음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체적인 면에서 이 비유의 의미는 노령이 되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고”, 본분과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너의 삶을 바치라는 것임이 분명하다. 이것은 물론 책 전체의 주제이다.

  다행히 솔로몬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어리석은 것을 찾는 데 바쳤던 긴 인생의 끝, 즉 그가 이 책 전편에 걸쳐 그처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모든 것의 끝 무렵에 그의 창조자를 “기억”했다. 허송세월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솔로몬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전에 그가 행복을 찾아 헛되이 헤매던 때에 맛본 실망을 피하라고 기꺼이 권고한다. 그러나 성경이 여기에 사용된 상징들에 대해서 명확한 설명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여 그 상징들 하나하나를 해석할 때에는 주의하는 것이 좋다. 그 어떤 해석도 단지 그 해석자의 개인적인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며, 2~6절에 관한 아래의 주석에서 해석하는 것도 하나의 제안에 불과한 것이다.

12:2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여기서 유대인 주석자들은 이 구절이, 환난의 때에 많이 울 어서 약해진 시력을 의미한다는 의견을 주장한다. 이 비유는 타고난 신체적 기능이 둔해진 노인들을 묘사하는 일반적인 말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2:3 집을 지키는 자들.

 이 비유는 아마도 신체가 쇠약해지는 것을 묘사하기 위하여 광범한 의미로 사용한 것일 것이다. 어떤 유대인 주석자들은 이 표현을 옆구리와 갈비뼈에 적용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손과 팔에 적용한다.

12:3 힘 있는 자들.

 문자적으로 “힘의 사람들” 혹은 “능력의 사람들.” 보통은 다리와 대퇴부에 적용한다. 어떤 사람들은 무릎과 발 혹은 척추를 생각한다.

12:3 구부러질 것이며.

 “허리가 구부러질 것이며”가 더 좋을 것이다(참조 1:15; 7:13, 여기에 같은 히브리어 동사가 사용된다).

12:3 맷돌질하는 자들이…그칠 것이며.

 “맷돌질하는 자들”이라는 단어가 여성이므로 집안에서 맷돌질하는 여자들을 언급한 말이다(참조 출 11:5; 마 24:41). 어떤 주석자들은 이것을 치아와 관련된 것으로 본다(참조 렘 25:10).

12:3 적으므로.

 소수의 “맷돌질하는 자들”, 즉 아마도 썩은 치아 몇 개만 남은 그들은 연약하기 때문에 생명 유지에 필요한 “밀가루”를 마련할 수 없다.

12:3 내어다보는 자.

 이 단어의 여성형은 동방의 가정의 여자들을 언급하는데, 그들은 좀처럼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흔히 집안의 격자창(格子窓)을 통해서 살며시 밖을 내다보곤 하였다(참조 창 18:10 주석; 삿 5:28; 삼하 6:16).

12:3 어두워질 것이며.

 침침한 눈으로 격자창 밖을 내다보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비유이다.

12:4 문들.

 히브리어에서 이 단어는 쌍수(雙數)형태 이므로 문 하나에 문짝 둘이 달린 것을 말한다. 유대인 주석자들은 이 비유를 이를테면 몸에 나 있는 털구멍들 혹은 입의 두 입술에 관한 언급으로 본다.

12:4 새의 소리.

 이른 새벽에 새 소리를 듣고 잠이 깨는 노인들처럼, 고령의 잠 없는 상태에 관한 비유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12:4 음악하는 여자들.

 말하고 노래하는 기관, 즉 성대. 아마도 목이 쉬고 약해진 노인들의 목소리에 관한 언급일 것이다.

12:5 두려워할 것이며.

 노인은 흔히 매 발걸음을 매우 조심스럽게 살펴야 한다. 그들은 또 큰 길을 두려워한다. 노인들의 뼈는 푸석푸석하기 때문에 넘어지거나 조그마한 사고에도 쉽게 부서지고 치료가 잘 안 되거나 전혀 안 되는 수도 있다. 또 숨이 차고 몸이 뻣뻣하기 때문에 어디든 오르막에서는 힘이 많이 든다.

12:5 꽃이 필 것이며.

 즉 “꽃을 피울 것이며.” 살구는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일찍 꽃이 피는 나무이다. 여기 이 비유는 노인의 백발 혹은 대머리에 적용시켜 왔다. 살구나무의 풍성한 흰 꽃들은 솔로몬의 마음에 노인의 백발을 떠올리게 하였을 것이다.

12:5 메뚜기.

 아마도 작은 것이나 하잘것없는 것의 상징일 것이다(참조 민 13:33; 사 40:22). 나이 많은 이들은 매우 사소한 것들도 종종 큰 짐으로 생각한다.

12:5 원욕이 그치리니.

 문자적으로 “서양 풍조목 딸기가 아무 효험이 없게 될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서양 풍조목 딸기에 최음제(催淫劑)가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참조 창 30:14 주석). 여기서 번역자들은 “원욕”을 “성욕”에 대한 완곡어법으로 사용한다.

12:5 사람이…돌아가고.

 참조 욥 10:21; 눅 16:9.

12:5 조문자들.

 참조 삼하 3:31; 렘 22:10, 18.

12:6 은줄.

 이 “줄”은 굵고 튼튼한 줄, 즉 밧줄이다(삼하 17:13; 왕상 20:32에서 번역한 것과 같은 히브리어 단어를 참조하라). 은은 아마도 사람이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 대한 상징적 표현일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사람에게 가장 귀한 보물인 생명 그 자체를 말할 것이다. 문학적 관점에서 보아 “은줄”과 “금그릇”을 척추와 두뇌에 적용하는 해석들과, 이 글을 쓸 당시에 솔로몬이 아마도 염두에 두었던 것은 분명한 성경적 기초를 갖지 못한 것이다(참조 전 12:2 주석).

12:6 풀리고.

 곧 “딱 하고 소리내며 동강이 나고.” 여기에 나온 묘사는 한 가닥 은줄에 매달려 흔들거리는 커다란 등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그 줄이 끊어지면 등은 마루 바닥에 떨어져 깨진다. 6절의 첫 부분은 문자적으로 “은줄이 딱 소리를 내며 떨어질 때까지”라고 해석된다.

12:6 항아리.

 여러 세기 동안 동방의 여인들은 질그릇 항아리를 가지고 마을 우물로 물을 길으러 다녔다(참조 창 24:14, 15; 요 4:7, 28 등). 여기에 제시된 묘사는 깨져 조각이 난 질그릇 물동이에 관한 것이다(참조 레 6:28; 15:12). 동방의 마을 우물에는 대개 나무로 된 바퀴나 갈고리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각기 자기의 밧줄과 물항아리를 갖고 와서 사용하였다. 계속적인 사용과 기후적인 조건들은 마침내 그 바퀴를 닳아 부서지게 한다. 여기에 나오는 샘 혹은 우물은 분명 생명을 상징한다(참조 시 36:9; 요 4:10; 7:37). 6절에 나오는 여러 비유들은 모두 죽음을 나타낸다.

12:7 흙.

 사람의 육신적인 부분을 가리킨다(참조 창 2:7).

12:7 여전히.

 사람의 육신적인 부분은 썩어서 그것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죽을 때 사람은 “티끌 가운데 잠자는 것”이라 한다(욥 7:21; 참조 17:16; 20:11; 21:26). 지금 땅의 티끌 가운데 “잠자는” 자들은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참조 단 12:2; 요 11:11~13, 23~26; 살전 4:13~17).

12:7 신.

 히브리어 루아흐(ruah.), “호흡”, “바람”, “영”(참조 민 5:14 주석). 루아흐는 겔 37:5에서와 같이 33회는 우리 몸의 “호흡”으로, 117회는 창 8:1에서와 같이 “바람”으로, 76회는 생명력이라는 뜻에서 “정신”(삿 15:19; 수 2:11), “성질” 혹은 “노”(삿 8:3)로, 그리고 “마음”(사 54:6)을 가리키는 말로 번역되었다. 루아흐는 또 25회는 시 146:4에서와 같이 사람과 동물들에게 있는 생명의 소인(素因)을 묘사하기 위하여, 3회는 삼상 1:15에서와 같이 감정의 자리, 9회는 겔 11:5에서와 같이 “마음”(mind), 3회는 의지 혹은 의지의 작용, 즉 “마음”(heart, 대하 29:31), 16회는 겔 11:19에서와 같이 도덕적인 품성 그리고 94회는 사 63:10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영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루아흐는 구약 전반에 걸쳐 기록된 379회의 용례 중 사람에 관한 한 단 한 번도 육신을 떠나서 존재할 수 있는 어떤 지적인 존재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개념은 성경 자체의 교훈에 관한 한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참조 창 2:7; 35:18; 민 5:14; 전 3:19~21; 민 5:2; 9:6 주석). 여기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짐승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신 생명의 소인(素因)일 따름이다(루아흐가 “호흡”으로 번역된 전 3:19~21 주석을 참조하라).

12:8 헛되도다.

 참조 1:2 주석.

12:9 전도자.

 참조 1:1 주석.

12:9 지식.

 히브리어의 어순은 “지식”에 강세(强勢)를 둔다. 솔로몬의 기록을 읽을 “백성”은 교육을 받은 계층들이었다.

12:9 지었으며.

 즉 “정리하였으며”(참조 왕상 4:32).

12:10 아름다운 말.

 (「제임스왕역」에는 “acceptable word”[받아들일 수 있는 말]로 되어 있음-역자 주). 곧 “즐거운 말”(「개역표준역」). 문자적으로 “기쁨의 말들.” 저자는 자기의 논설에 문학적 세련미를 더하려고 노력하였고, 그가 글을 쓰는 특정한 대상 곧 이 세상 사물에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권할 작정이었다.

12:10 정직하여.

 하지만 문학적 형식을 갖추려 했던 그의 노력 때문에 진리가 손상되는 일은 없었다.

12:11 채찍.

 이것은 통상 찌르고 행동을 자극하고 결과를 내게 하는 일에 사용되었다. 찔림을 당하는 것은 괴로운 일일지 몰라도, 그것이 없었더라면 이룰 수 없었을 결과를 낳게 하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참조 히 12:11.

12:11 회중의 스승.

 문자적으로 “수집물들의 주인들.” “회중”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아사프(’asap), “모으다”에서 온 말이다(참조 출 3:16; 23:10; 룻 2:7; 욜 2:16). 이 말은 대체로 “사람들을 모으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지만 아사프는 무엇이든 모으고 수집하는 것을 가리킬 수도 있으므로 문맥이 이 수집의 성격을 결정해야 한다. 11절에 있는 시적 대구법에서 “회중의 스승”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표현은 “지혜자의 말씀”과 평행을 이룬다. 이 평행의 의미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그 둘째 부분을 회중의 말씀이라기보다는 슬기로운 격언집 혹은 명문집에 관한 언급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스승(「제임스왕역」에는 “스승들”로 되어 있음-역자 주)으로 번역한 말은 그 질과 편제(編制)의 우월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관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 전체적인 구절은, “[지혜로운 격언들의] 완벽한 수집” 혹은 단순히 “명문선집”으로 적절히 해석될 수 있으므로 이 시적 대구법의 둘째 부분은 “목자의 명문선집은 잘 박힌 못과 같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리하여 전도자는 이 충고의 말씀들을 가리켜 사람들이 슬기로운 행동을 하도록 그들을 찌르는 채찍이라 하고, 그 말씀들을 잊지 않게 하는 것을 잘 박힌 못과 같다고 말한다.

12:11 잘 박힌 못.

 잘 박힌 못이나 말뚝은 빼내기가 어렵다(참조 사 22:23). 잘 간추린 요점들과 철저히 가르친 사상들은 마음에 남아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박힌”으로 번역된 말은 대개 “심다”를 의미하고, “확립하다”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다.

12:12 경계를 받으라.

 곧 “경고를 받으라.”

12:12 여러 책.

 솔로몬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책들은 실제적인 지혜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오히려 책의 저자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거나 아니면 책의 주인공에게 영광을 돌리는 책들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집필된 책들 중에서 진실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들이 얼마나 적은가! 분명히 솔로몬은 자신이 구할 수 있었던 책들은 모두 다 구해 읽었을 것이다. 그중에는 아마도 그 시대에 꽤 널리 알려진 가나안 문학(참조 제1권, 139~144; 제3권, 49, 50, 58~60, 44; 삿 1:11 주석)과 그 시대에 이미 유명해진 애굽의 지혜문학 등이 있었을 것이다(참조 왕상 4:30).

12:12 많이 공부하는 것.

 공부는 마치 그것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거기에 몰입하게 되는데, 솔로몬이 자신의 삶의 상당 부분을 바쳐서 한 그런 유(類)의 공부는 무익한 것임이 드러났다. 그것은 실용성이 없었으므로 헛된 것이었다. 공부가 공부 그 자체보다 더 큰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수단이 될 때에만 “몸을 피곤하게 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모든 진리의 창시자가 “지혜의 근본”(시 111:10)이라는 사실이 인정될 때 그리고 공부가 우리의 삶을 우리의 거룩한 존재 목적에 일치되게 하고자 그분의 사상을 좇아 그분을 생각하는 수단이 되는 그때에 그것은 감격적인 기쁨이 된다. 이교 저술가들의 철학적 사색이 그리스도인 사상에 기여하는 바는 아무것도 없다(참조 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444).

12:13 하나님을 경외하고.

 참조 신 4:10; 6:2; 눅 1:50 주석; 계 14:6, 7.

12:13 명령.

 히브리어 미츠와(mis.wah). 참조 시 78:1~7. 분명히 도덕적 율법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모든 요구를 언급하는 일반적인 말이다. 미츠와와 토라(torah), 율법(참조 민 19:14 주석)은 실제적인 목적을 위하여 사용될 때는 동의어로 쓰인다.

12:13 본분.

 (「제임스왕역」에는 “whole duty”[모든 의무]로 되어 있음-역자 주). 13절의 마지막 구절은 문자적으로 “이것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것”이라는 말은 분명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그 명령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앞에서 한 말이다. “본분”(duty)이라는 말은 히브리어에는 없기 때문에 “모든”이라고 번역된 말은 “사람”이라는 말에 덧붙여진 것이다. 같은 히브리어 구문이 3:13; 5:19에서는 “사람마다” 혹은 “어떤 사람에게든지”로 번역되었다. 솔로몬은 여기서,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현명한 요구에 순종하는 것을 삶의 최고 목적으로 생각한다. 바울도 행 17:24~31; 롬 1:20~23에서 같은 진리를 말한다(참조 약 2:10~12).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사람의 의무요 숙명이므로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최상의 행복을 발견할 것이다. 사람이 번영일로에 있든지 역경에 처하든지, 그의 운명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의 창조자에게 사랑으로 순종하는 것이 그의 본분이다.

12:14 행위.

 (「제임스왕역」에는 “work”[일]로 되어 있음-역자 주). 행위는 물론 말도 심판을 받을 것이다(마 12:36, 37). 그러나 하나님은 그보다 더한 것, 즉 그의 생각으로까지도 순종하기를 요구하신다(참조 마 5:22, 28 주석; 고후 10:5 등).

12:14 모든 은밀한 일.

 사람들은 그들의 말과 행위를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는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난다(히 4:13). 우리 마음의 생각까지도 그분의 정밀한 검사를 받고 있다(삼상 16:7; 시 7:9; 렘 17:10; 참조 행 1:24; 히 4:12).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은밀한 동기까지 읽고 계신다. 그분은 얼마나 많은 진리의 빛이 우리 마음의 어둠을 뚫고 들어갔는지를 아신다. 빛줄기마다 그분은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참조 롬 2:16; 고전 4:5). 최후 심판의 그 큰 날에 그 나라에 들어갈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 사람들이다(마 7:21~27).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노라고 공언하면서 동시에 그분의 지혜와 사랑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요구들 가운데 단 하나라도 불순종하는 것은 그 충성의 실재(實在)를 부정하는 것이다(참조 요 15:10; 요일 2:3~6). 하나님의 요구보다 적게 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것이다(참조 막 7:7~9). 왜냐하면 그 큰 날에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줄 것이기 때문이다(마 16:27; 참조 계 22:12).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6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성경주석 > 전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도서 11장 & 성경주석  (0) 2017.05.29
전도서 10장 & 성경주석  (0) 2017.05.29
전도서 9장 & 성경주석  (0) 2017.05.29
전도서 8장 & 성경주석  (0) 2017.05.29
전도서 7장 & 성경주석  (0) 2017.05.19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