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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STORY
열왕기하 2장 & 성경주석 본문
<열왕기하 2장 흐름정리>
엘리야가 사역을 끝내고 승천한 것과 엘리사가 그 뒤를 이은 것에 대한 기록이다. 엘리야는 에녹과 함께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한 인물로서 장차 예수께서 오실 때 살아서 승천할 성도들의 대표자를 예시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엘리사에게 영감을 갑절이나 입혀 엘리야의 사역을 감당케 하신 것은 한 시대와 인물은 지나 갈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 증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엘리사의 놀라운 이적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엘리야의 후계자임을 분명히 깨달았을 것이다.
<열왕기하 2장 줄거리>
1. 엘리야가 엘리사가 작별하면서 겉옷으로 요단강을 가름.
9. 엘리야가 엘리사의 요청을 들어 주고,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 감.
12. 엘리사가 겉옷으로 요단강을 갈라 그의 계승자로 인정받음.
16. 젊은 선지자들이 어렵게 허락을 얻어 엘리야를 찾아 나섰으나 찾지 못함.
19. 엘리사가 소금으로 해로운 물을 고침.
23. 엘리사를 놀린 아이들을 곰들이 찢어 죽임.
<열왕기하 2장 개역한글>
1.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줄을 아나이까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4.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매
5.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줄을 아나이까 엘리사가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행하니라
7. 선지자의 생도 오십인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섰더니
8. 엘리야가 겉옷을 취하여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10.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
11.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12. 엘리사가 보고 소리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13.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가지고 돌아와서 요단 언덕에 서서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15.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저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의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저를 영접하여 그 앞에서 땅에 엎드리고
16. 가로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사 오십인이 있으니 청컨대 저희로 가서 당신의 주를 찾게 하소서 염려컨대 여호와의 신이 저를 들어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보내지 말라 하나
17. 무리가 저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저희가 오십인을 보내었더니 사흘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18.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저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19. 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20. 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21.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찌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22.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
23.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길에 행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하여 가로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24.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 이명을 찢었더라
25.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열왕기하 2장 성경주석>
2:1 엘리야를…올리고자.
여호와께서는 엘리야에게 그가 하늘로 올려갈 것이라는 사실을 계시로 주셨지만 그가 알아채지 못하자 이 사실을 엘리사와 선지자 생도들에게도 계시하셨다. 엘리야의 승천은 여호람이 유다를 다스리기 시작한 이후에 일어났다(대하 21:5, 12).
2:1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나가더니.
문자적으로 “엘리야와 엘리사가 갔다.” 엘리야를 수행한 사람은 엘리사였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왕상 19:21)다고 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처음 부르심을 받을 때부터 줄곧 엘리야를 섬겼던 것 같다. 젊은 선지자들은 선생님의 손에 물을 붓는 일과 같은 매일의 봉사를 수행하는 데 익숙하였고(왕하 3:11) 아들이 연로한 아버지께 하는 것처럼 기꺼이 그 같은 개인적 봉사를 하였다.
2:1 길갈.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기 전에 진 치고 여호수아가 열두 돌을 세웠던, 여리고 근처 요단 계곡에 있는 길갈은 아닐 것이다(수 4:19, 20). 주석자들은 이 지명과 관련된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한다. (1) 세 학교가 있는 본거지가 길갈, 벧엘, 여리고 순으로 언급된 점(2:1~4). (2) 길갈에서 벧엘로 가는 여행을 묘사할 때 사용된 “내려가다”라는 표현(2:2). 여기서 사용된 히브리어 야라드(yarad)는 번역하면 “내려가다”라는 의미이지만, 요단 계곡에 있는 해수면 아래 약 213미터 지점의 길갈에서 해발 약 914미터 지점에 위치한 벧엘로 가는 여정을 묘사하는 데 사용할 단어로는 적절하지 않다. 세겜 근처, 모레 상수리 나무 가까이에 또 하나의 길갈이 있었다(참조 창 12:6; 신 11:30 주석). 이곳은 벧엘에서 서북쪽으로 12킬로미터 떨어진 남부 사마리아의 질질리아(Jiljilia) 마을로 확인되어 이 길갈로 알려졌다. 실제로 질질리아는 동일한 팔레스타인 중앙 산맥에 있는 벧엘과 사실상 같은 고도에 위치하지만, 그곳은 높은 언덕이고 벧엘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벧엘로 갈 때 “내려”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2:2 여기 머물라.
엘리야는 그의 지상 사역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알았다. 매번 엘리사에게는 머물라고 권하고 스승 혼자 가도록 함으로써 그의 의도와 충실성을 시험했다. 그가 지금 엘리야의 계승자로 부름을 받은 사명에서 돌이켜 쟁기질하러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선지자의 소명에 신실하여 엘리야가 시작한 개혁 사업을 그처럼 숭고하고 효과적으로 계속할 것인가?
2:2 나를…보내시느니라.
엘리야는 승천하기 전에 선지자 학교들을 한 번 더 방문하여, 여호와를 위하여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권면하고자 했다. 두 선지자(호 4:15; 9:15; 12:11; 암 4:4; 5:5)에게 비난받은 거짓 예배의 중심지가 이 북쪽 길갈인지 아니면 여리고 근처의 길갈인지는 알 수 없다. 만일 전자라면, 영성훈련을 위한 이 중요한 거점 중 두 곳은 산당이 있었거나 나라에 창궐한 거짓 예배를 위해 산당을 세우려던 장소였을 것이다. 이 두 학교는 길갈과 벧엘에 있었으며(참조 1절 주석), 세 번째 학교는 여리고에 있었다. 이런 학교들에서 훈련받은 젊은이들은 나라의 각처로 나아가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며 아합과 이세벨의 강력한 지지를 받던 우상숭배의 영향에 저항하는 사역을 수행했다. 이러한 열정적이고 연합된 노력의 결과로, 선(善)을 위한 강력한 영향력이 행사되었고 우상숭배는 결정적인 저항에 맞닥뜨렸다. 이스라엘은 그 악으로 인하여 멸망이 무르익은 듯이 보였으나 나라를 파멸로 몰아 가는 위험에서 얼마 동안 벗어났다.
2:2 여호와의 사심.
이 간절한 말은 길갈과 벧엘(4절) 그리고 여리고(6절)에서 세 번 발해졌다. 이것은 사명을 저버리지 않고 부름받은 사역을 선생인 엘리야와 함께 끝까지 계속할 것이라는 엘리사의 확고한 의지를 드러낸다. 하나님은 이 젊은이를 불러 연로한 선지자를 따르도록 하고, 얼마 후면 홀로 수행할 중대한 책무를 위해 선지자에게 훈련받도록 하였다. 섬길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는 한, 엘리사는 선생을 버리지 않기로 했다.
2:3 선지자의 생도들.
불과 몇 년 전 엘리야는 이스라엘에서 오직 자신만이 하나님께 신실하게 남아있는 자라고 믿었지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 7,000명 정도를 남겨두셨다는 보증을 받았다(왕상 19:18). 이들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 중 다수는 선지자 학교와 결속되어 엘리야와 엘리사가 위탁받은 동일한 개혁 사역의 한 부분을 맡을 준비를 갖추었다. 이 학교들은 이스라엘이 배교하는 동안에는 쇠퇴했지만 엘리야로 인해 재건되었다(선지자와 왕, 224). 나라 전역에서 엘리야는 이제 여호와를 향한 믿음과 용기의 증거들을 발견하였으며, 학교들에서 이루어지는 강력한 역사를 목도하면서 마음에 활력을 얻었다.
2:3 당신의 머리 위로.
엘리야는 이스라엘에서 진행되는 여호와의 개혁 사역에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일반적으로 인식되었다. 선지자 학교의 생도들도 이 사실을 인정했으며, 엘리사도 그러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함받은 지도자들을 통하여 이 땅에서 사역을 수행하신다. 하나님의 진실한 백성은 이런 지도자들을 하나님께 임명받은 사람으로 인정하여, 그들의 지도를 시기나 비판 없이 따른다.
2:3 아나이까.
엘리야가 그날 옮겨갈 것이라는 사실은 선지자 자신뿐 아니라 엘리사와 선지자의 생도들에게도 알려졌다(참조 1절 주석).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 계시를 주실 때, 같은 계시를 또 다른 사람에게는 주시지 않는다는 암시는 없다.
2:3 너희는 잠잠하라.
히브리어 헤헤슈(heh.es∨u). 이 단어는 소리를 흉내낸 말로, 영어의 “hush”(쉿!)처럼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된다.
2:4 여리고로.
이곳 길갈이 남부 사마리아에 있었다면(참조 1절 주석), 엘리야와 엘리사는 동남쪽으로 여행하여 벧엘에 이르고, 이제 벧엘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여리고를 향해 남동쪽으로 계속 여행했을 것이다.
2:5 선지자의 생도들.
여호와의 사역의 거점들은 전략적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여리고에 선지자 학교를 설립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여리고는 많은 여행객이 요단 동편 지역에서 서편으로 지나가는 교통의 요지에 있었다. 이들은 여리고의 오아시스에서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 머물렀다. 여기서 그들은 선지자 학교의 생도들과 접촉하여, 그들을 통해서 나라 전역의 사람들에게 전해지도록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여호와의 소망과 진리의 기별을 받을 수 있었다.
2:7 오십 인.
이 말은 선지자 학교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다소간 보여 준다. 이 구절의 표현은 이들이 여리고 학교에 출석하는 학생 전부가 아니라 일부임을 암시한다.
2:7 멀리 서서 바라보매.
선지자의 생도들은 엘리야가 그들을 떠나 하늘로 갈 것과 이것이 그들이 사랑하던 지도자의 마지막 광경이 될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전망이 좋은, 아마도 성읍 뒤편의 가파른 곳에 섰고, 거기서 요단 전체의 강줄기와 수 킬로미터 너머의 강둑까지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2:7 요단가.
“오십 인”이 적절한 자리에 서서 지켜보는 가운데, 엘리야와 엘리사는 요단에 이르렀다. 여리고에서 가장 가까운 강가는 8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2:8 겉옷을 취하여.
엘리야의 겉옷은 그의 선지자 직분의 상징이 되었다. 그는 겉옷을 말아, 모세가 지팡이로 나일강을 내리쳤던 것처럼(출 7:20) 요단 강물을 쳤다. 그렇게 하여 기적적으로 요단강의 일부에 길이 만들어져 하나님의 종들이 마른 땅을 건너갔다. 이것은 분명 출애굽 당시 홍해가 갈라지는 것(출 14:21), 여호수아 시대에 요단 강물이 멈춘 것(수 3:13~17)과 비교된다. 그분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들과 함께하셨고, 필요한 때에 당신 자신과 능력 및 당신의 백성을 향한 변함 없는 사랑의 돌보심을 드러내시고자 하였다.
2:9 구하라.
엘리야는 자신의 신실한 종이요 제자 엘리사와 작별하려고 하면서, 그에게 마음속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구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엘리사는 부, 명성, 지혜, 세상의 존귀와 영화 등과 같은 일시적이고 물질적인 호의 또는 엘리야의 힘들고 궁핍한 삶과 대조되는 안락하고 즐거운 삶을 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중 어떤 것도 구하지 않았다. 그가 가장 원했던 것은 엘리야가 수행했던 바로 그 사역을 같은 영과 능력으로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는 하나님의 영의 똑같은 은혜와 도움이 필요했을 것이다.
2:9 갑절이나.
엘리사의 요청은 우리에게 솔로몬의 간청을 떠오르게 한다. 그는 어떤 세속적 유익, 지위, 이득이 아닌 그가 부름받은 엄숙한 책임을 올바르게 감당할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을 간구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영의 “갑절”을 구했을 때, 그것은 엘리야의 능력의 갑절을 구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노(老) 선지자에게 주어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한 것도 아니요, 엘리야에게 주어진 것보다 더 높은 지위나 큰 능력을 구한 것도 아니었다. 여기 사용된 히브리어 구절은 아비의 재산 중 장자에게 주어질 분깃을 지시한 신 21:17의 구절과 같다. 그러므로 엘리사의 요청은 떠나가는 선지자의 장자로 취급받고자 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그는 다른 선지자 생도들에게 주어진 것과 비교하여 갑절을 받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는 영적인 상속권에 대한 승인을 구했으며, 이로써 선배 선지자의 영적인 장자로 간주되어 엘리야가 시작한 사역을 계속 수행할 수 있을 것이었다.
2:10 어려운 일.
여호와께 어려운 일이 아니라 엘리야가 주기에 어렵다는 말이다. 선지자가 그의 계승자를 임명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이 선지자 직무를 수행할 자를 선택할 수 있다. 엘리야는 자신도 여호와께로부터 부름받은 사역을 계속할 사람을 임명하는 것이 자신의 영역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의 영감을 주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가 그 요청을 수락할지 않을지를 말할 수 없었다.
2:10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보면.
엘리사가 엘리야를 “취하시는 것”을 목격하면, 여호와께서 자신의 요청을 수락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겼음을 알게될 것이었다.
2:11 두 사람이 행하며.
문자적으로 “그들이 걷고 또 걸으며.” 즉 그들은 줄곧 걸어가면서 이야기하였다. 어디로 걸어갔는지 알 순 없지만, 아마도 모세가 죽은 후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했던 근처 산 중 어떤 봉우리를 향해 갔을 것이다(참조 6절 주석).
2:11 불수레.
“하나님의 병거”는 분명 천사들이었다(참조 시 68:17). 천사들은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신”(히 1:14) 하나님의 사자들이다. 하늘의 사자들과 하나님의 대리자들은 인간의 시야와 예언적 계시에서 다양한 형태로 출현한다. 스가랴는 다양한 색깔의 말들을 보았으며(슥 1:8), 사자들은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슥 1:10)이라고 선포되었다. 그는 말과 병거들을 보았으며(슥 6:1~3), 이들은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셨다가 나가는 것이라”(슥 6:5)고 해석되었다. 에스겔은 모양이 “숯불과 횃불” 같고 움직임이 “번개”에 비유되는 “생물들”을 보았다(겔 1:13, 14).
말과 병거들은, 여호와께서 그분의 대적들을 파멸하고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고 구원할 때 나타내는 능력과 위엄과 영광의 상징으로 성경에 자주 사용된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능력을 이렇게 표현한다.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합 3:8). 이사야는 여호와의 강림하심을 묘사하면서, “그 수레들은 회리바람 같으리로다”(사 66:15)고 말한다. 엘리사의 종이 아람의 거대한 군대와 말과 병거를 보고 공포에 질려 당혹해 할 때(6:14, 15), 엘리사는 그의 눈이 열리기를 기도했으며, 그 후에 그 젊은이는 수많은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선 것(6:17)을 보았다.
엘리야는 마지막 날에 죽음을 보지 않고 살아서 하늘로 옮겨질 성도들의 표상이다. 변형산에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능력과 영광 중에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미리 보았는데(참조 눅 9:28~32), 엘리야는 예수께서 오실 때 살아서 승천할 성도들의 대표자로, 모세는 죽었다가 무덤에서 일어나 구세주와 하늘로 동행할 의인들의 대표자로 나타났다.
2:11 회리바람.
폭풍의 무시무시한 힘은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의 엄청난 위엄과 능력을 떠올리게 한다.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욥 38:1), 그에게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능력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참조 사 66:15; 나 1:3). 엘리야는 큰일을 수행했고 영광스러운 보상을 받았다. 외로움과 실망, 고통과 고난 가운데서, 광야와 높은 산중에서, 왕과 백성들이 여호와에게서 등을 돌린 시대에 엘리야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어려운 과업을 수행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종이 그의 생명을 찾는 자들에게 죽임을 당하도록 내버려두거나, 낙담과 불명예 속에서 그의 사역을 수행하도록 하지도 않으셨다. 엘리야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으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그를 영화롭게 하셔서 무덤 속으로 내려가도록 하지 않고 하늘의 영광과 평화 속으로 직접 데려가셨다.
2:12 엘리사가 보고.
이렇게 하여 엘리야가 제시한 징표(10절)가 성취되었다. 이제 엘리사는, 자신이 간구했던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을 받았으며 그 앞에 중요한 사역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2:12 내 아버지여.
엘리사는 연로한 선지자를 영적인 아버지로 여겼다. 아들과 후사로서, 젊은 선지자는 이제 선배 선지자의 책임을 떠맡았다. 엘리야가 훌륭하게 시작한 사역을 이제부터는 엘리사가 계속 수행해 나갈 것이었다.
2:12 이스라엘의 병거.
이 표현은 엘리야가 하늘로 데려감을 받은 위엄찬 모습에 영감받아 한 말이지만, 이스라엘의 진정한 보호책은 이 땅의 능력이나 군대 또는 기마병이나 병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선지자의 인식을 나타낸다.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보낸 천사는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보다 더 강하다.
2:12 다시…아니하는지라.
엘리사는 그의 선생님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으며, 그가 사라진 후로 엘리사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었다. 죽은 의인들이 그들의 무덤에서 부활할 때 비로소 엘리사는 엘리야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서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한 것(행 1:9)을 본 제자들도 그럴 것이다. 그분이 재림할 때 그들은 다시 한 번 그분을 볼 수 있을 것이다(행 1:11).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잠시 떨어져 이 땅에서 더 이상 그들을 볼 수 없지만, 그들을 다시 만나 더 이상 헤어지지 않아도 될 행복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2:12 옷을 잡아…찢고.
옷을 찢는 것은 일반적으로 슬픔과 당혹스러움을 가리키는 표현이다(민 14:6; 삼하 13:19; 대하 34:27; 스 9:3; 욥 1:20; 2:12). 하지만 엘리사가 겉옷을 찢은 이 경우는 슬픔의 표현이 아니라 이제부터 그의 옛 의복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음을 의미하는데, 그가 엘리야의 겉옷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2:13).
2:13 엘리야의…겉옷.
이 겉옷은 엘리야의 예언자적 직무의 표였다. 엘리야가 처음에 엘리사를 후계자로 생각했을 때, 그에게 겉옷을 던졌다(왕상 19:19). 이 겉옷은 나이 든 선지자에게서 받은 유품으로, 엘리사가 이제 엘리야가 수행해 온 지도자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는 표징으로 그에게 남겨졌다. 이 권위의 상징을 지니고 백성들에게 돌아갈 때, 그는 엘리야의 계승자로 인정받을 것이었다.
2:13 요단 언덕.
요단강은 장벽이기도 하고 기회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에게 그곳은 장벽이었다. 하나님의 종에게는 그곳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기회임이 입증되었다. 엘리사는 요단강에 섰지만 오래 머뭇거리지 않았다.
2:14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이 질문이 의심이나 불완전한 믿음의 질문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겉옷으로 물을 내리쳐 믿음과 행동의 사람임을 스스로 보여 주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의 선임자에게 머물렀던 것처럼, 이제 엘리사는 자신에게도 임할 것을 믿었다. 지금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위해 행하신 일을 자신을 위해서도 행하실 것을 기대하였다. 본질적으로 이 질문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할지 말지를 묻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 그분 자신을 드러내시도록 기도 또는 요청하는 것이다.
2:14 엘리사가 건너니라.
믿음으로 엘리사는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여호와께서 그의 믿음을 가납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전진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당신의 종들을 위해 수많은 은혜의 기적을 베푸신다. 어려움은 믿음과 용기를 지닌 사람에게 장벽이 아니라 기회이다.
2:15 저를 보며.
엘리사를 주목하고 있었다.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의 눈이 그에게 머물렀다. 만일 그가 실패했다면, 그들은 그의 실패의 증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의 성공의 증인이 되었다. 엘리사의 믿음이 믿음을 고양시켰고, 그의 승리가 나라의 종횡을 누비며 많은 승리를 이끌어냈다.
2:15 엘리야의 영감.
엘리야의 기적은 엘리사에 의해 반복되었고,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께서 노(老) 선지자를 통해 행하신 일을 그의 후임자를 통해서도 행하실 것이라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막중한 영적 책임을 수행했던 지도자가 직무를 놓고 쉼을 얻어야 할 때, 하나님은 후임자로 선택한 다른 사람에게 도움과 힘을 주신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다른 어떤 사람보다 위대하다. 그 역사는 한 사람이 그의 사역을 끝마칠 때도 그치지 않고, 사역을 이어받은 손이 선임자의 임무에 착수할 때 승리에서 승리로 계속된다. 엘리야를 지도하고 강하게 했던 동일한 성령이 그의 후임자에게 지혜와 힘을 주었다.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이 젊은이로 말미암아 많은 위대한 일들이 이루어질 것이었다.
2:16 저희로 가서.
선지자의 생도들은 엘리야와 엘리사가 이별하는 모습을 보았고,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을 입고 홀로 돌아오는 것을 목격했다. 전에 그들은 엘리야를 그들로부터 데려갈 것이라는 계시를 여호와께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데려가는 정확한 방식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않으셨고, 따라서 엘리사만큼 그렇게 분명하게 승천의 모든 장면을 자세히 목도할 수는 없었겠지만 엘리사가 그들에게 일어난 일을 말했을 것이고, 따라서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으며, 그리하여 엘리야의 육신이 요단강 저편 지경의 외딴 산꼭대기나 어느 깊은 계곡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17 무리가…강청하매.
선지자의 생도들은 그들의 방법대로 하기를 고집했다. 그들이 너무 끈질기게 청하므로 마침내는 엘리사가 지쳐 그들의 간청을 거절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끈질김이 미덕일 때도 있지만 약점과 어리석은 짓이 될 때도 있다. 잘못된 것을 고집하는 것은 결코 현명하거나 올바르지 않다. 엘리사가 사실을 말했을 때 생도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만족했어야 했다.
2:17 보내라 한지라.
한 사람이 자신의 방법을 계속 고집할 때는, 여호와의 선지자나 하나님 자신일지라도 더 이상 안 된다고 말할 수 없는 때가 있다. 엘리사는 원해서가 아니라 결국 어쩔 수 없어서 본의 아니게 승낙했다. 엘리사는 무익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선지자의 생도들은 그들 스스로 조사하여 실상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했다. 엘리사가 그들에게 알려준 사실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2:17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그들은 3일 동안 찾았으나, 단지 자신들이 얼마나 잘못되었고 엘리사의 말이 얼마나 옳았는지 발견했을 뿐이다. 지식과 지혜를 얻는 데 쉬운 방법도 있고 힘든 방법도 있다. 종종 청년들은 오직 힘든 방법으로 그 교훈들을 배운다. 사실에 대한 증언을 거절하거나 하나님의 선지자의 권면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지혜나 분별력에 속하지 않는다.
2:18 내가…이르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의 요구가 잘못되었다는 소식을 가지고 엘리사에게 돌아온 생도들은 분명 의기소침해 있었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엘리사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고, 단지 무시된 자신의 충고를 상기시켰다.
2:19 그 성.
즉 여리고. 엘리야가 승천한 후, 엘리사는 윤택하고 아름다운 오아시스에 선지자 학교 중 하나가 설립되었던 여리고에 얼마 동안 머물렀다.
2:19 아름다우나.
주변의 척박한 지역에 비하면 여리고의 환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여기에 건조하고, 불모의 태양이 이글거리는 벌거숭이 황토 땅 유대 광야가 있다. 가나안에 이주할 당시 생명을 주는 샘들이 이 황량한 계곡 중 신록의 땅에 자리잡고 있었다. 종려나무와 무화과, 향기로운 관목과 들판이 있었다. 여리고는 살기 좋은 곳이었다.
2:19 물이 좋지 못하므로.
한때 수질이 좋고 신선했던 여리고의 물이 오염되고 부패해, 아름답던 계곡이 소산 없는 불모지가 되었다. 마치 여리고의 거주민에게 임한 저주(수 6:26; 왕상 16:34)가 그 땅에도 임한 것처럼 보였다.
2:20 소금을 담아.
엘리사는 전에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라고 요구했는데, 그것으로 물을 순수하고 유익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소금을 가져오라고 요구한 것은 그것이 보존의 수단으로 부패와 부식을 방지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순수한 샘으로 회복시키는 수단으로서 소금 그 자체에는 어떤 효능도 없었고, 그것은 단지 생명력을 지닌 이전의 물로 회복시키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정결케 하고 회복시키는 능력의 상징이었다.
2:21 그 가운데.
엘리사는 여호와의 이름에 의지하여 샘에 소금을 던졌다. 이런 상징적 행동을 통해 선지자는 백성들 앞에서 여호와께서 샘을 정결케 하기 위해 행할 사역을 나타냈다. 효력을 나타내기 위해서 소금은 보존해야 할 대상과 섞이고 융합해야 한다. 따라서 소금을 샘 속에 던져 넣어 오염된 모든 부분에 뚫고 들어가 스며들도록 했다. 이는 소금에 비유된 신자들(마 5:13)이 복음을 전달하기 원하는 자들과 개인적으로 접촉해야 함을 예시한다.
2:21 내가…고쳤으니.
백성들은 어떻게 그 물을 고쳤는지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마술이 아니라 신비로운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쳤다.
2:22 오늘날에.
그때 회복된 영향은 지속되었다. 엘리사의 샘물로 알려진 소위 아인 엣-술탄(‘Ain es-Sult.a-n)이 오늘날에도 그 지역에 풍부한 물을 공급하고 있다. 엘리사의 기적이 있은 이래 여러 해를 거쳐 여리고의 샘은 계속 솟아 나와 치유와 생명을 주는 물줄기를 쏟아내 계곡의 그 부분을 기쁨과 아름다움의 오아시스로 만들어 왔다. 여호와께서 자비로 여리고 샘을 기꺼이 고쳐주신 것처럼, 그분은 영적 질병에 걸린 인간의 마음과 생명도 기꺼이 고쳐주신다. 그 샘이 회복되었던 것처럼,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택하신 종의 사명을 받아들였다면 회복되었을 것이다. 여리고의 물이 계속 흘러 넘쳐 주변 지역에 생명과 축복을 내보낸 것처럼, 이스라엘에서 영적인 생명과 치유의 물줄기가 흘러나왔다면 지상의 모든 백성에게 하늘의 평화와 축복이 이르렀을 것이다.
죄의 독소는 여전히 인간의 마음속에서 작용한다. 사랑과 기쁨이 있는 것처럼 보일 때라도, 미움과 비통함의 샘물이 세상에 흘러넘치고 있다. 인간의 마음과 생애에 새로운 삶과 능력을 불어넣도록 그리스도의 복음의 치유하시는 능력이 모든 곳에 필요하다. 부패의 물줄기를 멈추기 위해서는 인간의 영혼 속에 하늘의 생명이 임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삶을 달콤하게 하시고, 순결과 은혜와 영적 능력의 삶을 주는 강물을 흘려보내시고자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된 심령을 가진 자는 세상에 생명과 기쁨과 화평과 아름다움의 강물이 된다. 그 강물이 흐르는 땅은 어디나 살기 좋고 행복한 곳이 되며, 절망과 비애의 사막 가운데 기쁨의 오아시스가 된다. 그리스도는 오늘도 인간의 빛이요 생명이며, 그분의 축복은 그분의 사랑과 은혜에 접촉함으로 변화된 사람들의 심령을 통해 이 땅 모든 백성에게 흘러나간다.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에서 정결한 샘물이 되어야 하며, 심령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하늘과의 접촉점을 잃어버린 지역에 소망과 의와 기쁨을 회복해야 한다.
2:23 벧엘로.
엘리사는 조금 전 엘리야와 함께 갔던 길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 노(老) 선지자는 떠나갔지만, 그가 훌륭하게 시작했던 사역은 여전히 수행되고 있었다. 사무엘이 설립하고 쇠퇴 상태로 빠진 후 엘리야가 다시 회복한 선지자 학교는 여호와의 사업을 위해 젊은이들을 훈련시키는 기능을 계속하고 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데 이 학교들이 중요함을 인식했다. 적절하게 훈련된 사람이 없었더라면, 개혁 사업은 계속 부진했을 것이며 진보를 기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엘리사가 이 학교들을 강화하고 장려하는 것을 자신의 첫 번째 사업으로 삼은 것은, 이 학교들이 이 땅의 자녀들의 마음속에 의로운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는 위대한 사역에 효과적인 역할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2:23 저를 조롱하여.
엘리사는 평화의 기별을 지닌 평화의 선지자였다. 그의 사업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명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그가 이 중요한 사역을 시작할 때 여러 젊은이가 벧엘 성에서 나와 그를 비웃고 하나님의 기별자로서 맡은 사명을 조롱하였다.
2:23 대머리여 올라가라.
엘리야의 승천은 가장 엄숙한 사건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신실한 종에게 죽음을 맛보지 않게 하고 당신 자신에게로 데려가셨다. 벧엘의 젊은이들은 엘리야의 승천 소식을 듣고 이 신성한 사건을 농담거리로 삼았다. 엘리야는 갔고, 그래서 그들은 이제 엘리사에게 화살을 돌려 엘리야처럼 승천하여 그들 중에서 떠나가라고 조롱했다. 사단은 이 젊은이들을 부추기고, 분명 그 땅 백성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겨 주었을 그 엄숙한 사건의 영향을 상쇄시키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엘리사가 사역을 시작할 때 사단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파괴하려 했다. 이 젊은이들의 조롱을 간과했다면, 엘리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려 하신 사업은 훨씬 지체되어 악의 세력이 승리를 얻었을 것이다. 신속하고 단호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2:24 저주하매.
엘리사는 천성이 온유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여호와의 사업을 위해서는 온유함에도 한계가 있다.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는 유지되어야 하며, 그분의 엄숙한 행위가 불경스러운 잡배들의 조롱과 농담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존중받아야 하며 그의 권위는 유지되어야 한다. 확고함, 결단력, 의연한 행동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한 책임을 수행하도록 부르신 사람이 지닌 지도력의 증거이다. 연약하거나 우유부단할 때가 아니었다. 엘리사는 무례하고 방종한 젊은이의 무리를 향해, 하늘의 영감을 받아 하나님의 저주를 선포했다.
2:24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뒤따른 심판은 하나님께로부터 임한 것이다. 징벌의 혹독함은 문제가 된 사건의 심각성에 걸맞았다. 불경스러움이 자라는 것을 저지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조롱하거나 임명받은 하늘의 사역자들을 경멸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따끔하게 본때를 보여 주는 것이 필요했다. 하나님의 성직자들을 존경심을 가지고 대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하고 말하도록 부름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대표자로 이 땅에 있으며, 따라서 그들을 모욕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의 택한 사역자들에게 취한 대우에 대해 책임을 물으신다. 조롱하던 벧엘의 젊은이들에게 내린 혹독한 심판은 거룩함을 욕보이고 하나님의 기별자를 모욕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보여 준다.
2:25 갈멜산으로.
엘리사는 사역을 시작하면서 먼저 나라를 전체적으로 조망하여, 엘리야가 사역했던 전략적 장소들을 둘러본 후 추가 사업을 어디서 진행할지 살폈다. 갈멜산은 신성한 추억이 깃든 곳이었다. 엘리야가 선지자로서의 경력에서 혁혁한 승리를 얻었던 곳이 바로 여기였다. 그는 자주 담대한 책망의 음성을 발했고, 왕과 백성들의 사악함을 정죄하여 악에서 돌이켜 여호와의 길로 행하라고 호소했다. 그 사역이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이전 승리의 현장을 방문했을 때 엘리사는 틀림없이 그 감동적인 날들을 생각했을 것이고, 그에게 위탁된 화해의 사역에 자신의 모든 심령을 쏟아 붓고 싶은 생각으로 다시 한 번 고무되었다. 엘리사는 그의 사역의 후기에 갈멜산에 거처를 정한 것으로 보인다(참조 4:23~25).
2:25 사마리아로.
사마리아는 북방 왕국의 수도였으며, 이제 엘리사는 이 중요한 지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후에 그는 그곳 지도자들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것이었다. 그가 받은 빛은 백성들뿐 아니라 왕을 위한 빛이었고, 따라서 그는 나라의 가장 중요한 거점 지역들에서 담대하게 사역에 착수했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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