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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3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열왕기하

열왕기하 3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6. 9. 07:38

<열왕기하 3장 흐름정리>

아하시야의 뒤를 이은 여호람이 유다 왕 여호사밧과 동맹하여 모압을 정벌한 내용이다. 아합 때까지만 해도 모압은 이스라엘의 지배하에 있어으나, 아합 사후에 세력이 약하된 틈을 타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다. 이 때문에 여호람은 모압 정벌을 꾀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연합군은 원정 중에 물이 떨어져 도리어 패전의 위기에 처하였다. 이때 여호사밧이 엘리사를 통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자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비를 내려 주셨으며 또한 연합군이 모압을 정복하게 되리라고 예고하셨다.


<열왕기하 3장 줄거리>

1. 여호람의 통치.

4. 메사가 반역함.

6. 여호람이 여호사밧, 에돔 왕과 함께 물이 부족하여 고통 받았으나, 엘리사를 통해 물과 승리의 약속을 받음.

21. 모압 사람들이 물 색깔에 속아, 약탈하러 갔으나 정복당함.

26. 모압 왕이 에돔 왕의 아들을 번제로 드려 포위 공격이 중지됨.


<열왕기하 3장 개역한글>

1. 유다 왕 여호사밧의 십팔년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 이년을 치리하니라

2.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저가 그 아비의 만든 바알의 주상을 제하였음이라      

3. 그러나 저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4.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의 털과 수양 십만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5.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      

6. 그 때에 여호람왕이 사마리아에서 나가서 온 이스라엘을 점고하고      

7. 또 가서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보내어 이르되 모압 왕이 나를 배반하였으니 당신은 나와 함께 가서 모압을 치시겠느뇨 저가 가로되 내가 올라가리이다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요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일반이니이다      

8. 여호람이 가로되 우리가 어느 길로 올라가리이까 저가 대답하되 에돔 광야 길로니이다      

9. 이스라엘 왕이 유다 왕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행하더니 길을 둘러 행한지 칠일에 군사와 따라가는 생축을 먹일 물이 없는지라      

10. 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는도다      

11. 여호사밧이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이스라엘 왕의 신복 중에 한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12. 여호사밧이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있도다 이에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그에게로 내려가니라      

13.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이스라엘 왕이 저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나이다      

14.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15.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 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      

16.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17.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육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18. 이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오히려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붙이시리니      

19.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과 모든 아름다운 성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하더니      

20. 아침에 미쳐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편에서부터 흘러와서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21. 모압 모든 사람이 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를 치려 한다 함을 듣고 갑옷 입을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그 경계에 섰더라      

22. 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찌기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취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23. 가로되 이는 피라 필연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모압 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 하고      

24. 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25. 그 성읍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맷군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26. 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 찬 군사 칠백을 거느리고 충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능히 못하고      

27. 이에 자기 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취하여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매 저희가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열왕기하 3장 성경주석>

3:1 십팔 년.

 참조 1:17 주석. 여호사밧 제17년에 아하시야가 아버지 아합을 계승했으므로(왕상 22:51), 아합의 죽음은 여호사밧 제17년에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 아합은 아람과의 전쟁에서 죽음을 맞았으며(왕상 22:34~37), 여호사밧은 그 전투에 아합과 동참하여 자신의 생명도 위협받았다(왕상 22:29~33).

3:2 그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여호람의 아버지인 아합은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들 중 한 명이었다. 그가 행한 죄악들에 관해서는 왕상 16:30~33을 참조하라. 여호람의 형제인 아하시야도 악을 행했으며 바알 숭배에 빠진 것 때문에 여호와가 그에게 죽음을 허락했다(1:16, 17). 하지만 여호람의 시대에는 엘리야와 엘리사의 개혁 사업이 분명 괄목할 만한 효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의로운 통치라는 평가는 내려지지 않지만 그가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않았다고 언급된다.

3:2 저가…제하였음이라.

 아합은 사마리아 도성에 바알 숭배를 위한 신전을 세우고 바알을 위한 단도 쌓았다(왕상 16:32). 그는 아마도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한 주상도 세웠을 것이며, 이제 여호람이 이를 제거했다.

3:4 양을 치는 자.

 이때 모압은 하(下) 요단강과 사해 바로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지역은 비옥하고 물이 풍부하며, 대부분이 방대한 목초지였다. 오늘날까지도 그곳은 양떼와 소떼에게 중요하다. 그 당시 고대 모압 왕은 현대 아랍의 촌장(sheik)에 비견될 수 있으며, 그들의 부(富)는 양떼의 규모와 소떼의 수로 평가된다.

3:4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메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예속된 모압에 대한 구약의 이 기록은 모압 돌(Moabite Stone)로 확증된다(참조 제1관 134, 135). 그 기록은, 모압이 오므리와 아합에게 수 년 동안 압제받다가 모압 왕 메사가 반역에 성공한 일에 대해 말한다. 모압 돌에 나타난 명각의 번역을 보려면 이 장의 말미에 있는 추가적 설명을 참조하라.

  현물로 조공을 바치는 것은 당시 동방의 관습이었다. 앗수르인들은 종종 소, 말, 양, 기타 상품들을 조공으로 받았다. 여호사밧은 아라비아 사람들에게 “숫양 칠천칠백과 숫염소 칠천칠백을”(대하 17:11) 조공으로 받았다.

3:5 모압 왕이…배반한지라.

 아합의 죽음과 아하시야의 질병은 모압에게 반역의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개혁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모압 돌의 기록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모압이 주권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성읍들이 탈취되고 이스라엘 사람이 다수 죽임을 당했다. 그러므로 메사는 이스라엘로부터 느보를 탈취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곳을 탈취하고 거기 있는 모든 사람 곧 장정 7,000명, 소년들(?), 여인들, 소녀들(?), 여종들을 쳐서 모두 아스다롯-그모스에게 예물로 바쳤다”.

3:6 그때에.

 아마도 그의 통치 시초 곧 모압의 반역 직후일 것이다.

3:6 점고하고.

 여호람은 모압을 다시 정복하기로 결심했다.

3:7 여호사밧에게 보내어.

 두 왕국간의 긴밀한 동맹은 여전히 존재하였다. 아마도 여호사밧이 아합을 도와 길르앗 라못을 공격한 지 불과 1년 남짓 지났을 것이다. 모압과의 전쟁에서 여호람은 부친이 아람과 전쟁을 치를 때 받았던 것과 같은 도움을 기대했을 것이다.

3:7 내가 올라가리이다.

 여호사밧이 아람을 대적하기 위해 아합과 함께 가기로 동의했을 때 그는 예후 선지자에게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한다고 질책을 받았다(대하 19:2). 그러나 지금 그는 또다시 비슷한 요청에 승낙하고, 이번에는 모압을 치기 위해 여호람과 함께 가기로 했다. 여호사밧이 여호람과 동행하기로 한 이유가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그는 여호람이 그의 부친 아합보다는 악한 길로 행하려는 경향이 덜했으며 바알 신상을 제거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동했을 것이다. 아합이 죽은 후에도 여호사밧은 외국 무역에 사용될 배를 에시온게벨에서 짓는 일과 관련된 사업에 아하시야와 협력한 점으로 보아(대하 20:35~37), 두 나라는 여전히 이전의 동맹 관계로 결속돼 있었을 것이다. 후에 여호람은 아람과 치른 또 한번의 전쟁에서 여호사밧의 손자 아하시야의 원조를 받았다(대하 22:5).

3:8 어느 길로.

 여호람이 질문자로 보인다. 모압을 공격하기 위해 왕들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둘 있었다. 하나는 요단을 가로질러 북쪽에서 모압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정면 공격이 될 것이었다. 모압의 가장 강력한 방어선은 적군의 공격에 가장 많이 노출된 북쪽 경계에 있었다. 또한 북쪽에서부터 공격을 감행한다면, 동맹군들은 그들의 후방을 아람 군대의 공격에 노출하게 될 것이었다. 또 다른 접근은 남쪽에서 사해 남단을 돌아 에돔을 통과하는 길이었을 것이다. 이 길은 더 멀고 힘겨운 경로가 될 것이었지만 그들은 공격에 취약한 바로 그 지점에서 모압을 치려 했으며, 그렇게 하여 그때 적군이 아니라 동맹군으로 유다와 연합했던(9절) 에돔을 활용할 것이었다.

3:8 광야 길로니이다.

 여호람의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여호사밧이었을 것이다. 제안된 경로는 유대를 지나 사해 남단까지 내려가, 거기서 에돔의 건조한 사막 지역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3:9 에돔 왕으로.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에돔에는 왕이 없고”(왕상 22:47), 따라서 여호사밧은 에돔 지역을 통과하여 아카바 만(灣)의 에시온게벨까지 나아갔는데(왕상 22:48), 그곳은 솔로몬 때(왕상 9:26)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도 에돔의 항구였다. 그러므로 에돔의 현재 왕은 여호사밧이 임명한 유다의 봉신(封臣) 왕이었을 것이다.

3:9 길을 둘러 행한 지.

 즉 그들은 우회로로 행진했다. 분명 그들이 지나갔던 환경은 거칠고 황량한 지역이었을 것이며, 따라서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 직행로를 택하지 못하고 당시 자체적으로 생겨난 가장 적절한 길을 찾아 우회로로 가야만 했다.

3:9 칠 일.

 7일 여행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주어진 정보가 없다.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헤브론까지 그리고 물이 풍부한 길을 지나 모압 경계까지는 161킬로미터 남짓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정에는 어려움이 많고 기후 조건도 맞지 않았을 것이므로 더디게 진행했음이 분명하다. 아무리 잘 계획한다 해도 이런 시도는 실패할 수 있다. 그들은 지형 때문에 우회해야 했으며 수적으로도 열세였고, 군대의 규모조차 작아 고통이 심화되고 어려움은 늘어났다.

3:9 생축.

 그들은 식량과 짐을 싣는 수단으로 가축도 데려갔다(17절). 모압처럼 생축이 많으리라고 기대되는 지역으로 향하는 군대라면, 식량으로 사용하기 위해 많은 수의 가축을 끌고 가 과중한 부담을 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짐을 싣는 동물은 필요했을 것이다.

  물이 없는지라. 아무리 좋은 조건 아래 있다 해도 이 남부 광야 지역에는 물이 부족했다. 틀림없이 그들은 물 공급이 가장 원활한 경로를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 상태에서는 흐를 것으로 기대할 수 있던 강들조차도 이 건조한 지역에서는 말라버렸던 것 같다.

3:10 여호와께서…불러.

 이제 군대는 자신들이 곤경에 처한 것을 깨닫고, 여호람은 책임을 여호와께 돌리려 하였다. 이 군사 정벌은 스스로 계획한 것이었고, 여호와께서 하라고 한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원정에 착수한 후 극도의 궁지에 몰리자, 여호람은 자신과 동지들보다는 여호와께 책임을 떠넘기려고 했다.

3:10 붙이려 하시는도다.

 군대는 광야를 통과하는 무덥고 힘겨운 행군을 한 후에 물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 야영지에 도착했으나 물 공급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지치고 목이 탔으며, 행진으로 탈진했다. 그들이나 짐을 실은 가축들도 물 없이는 행군을 계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실망과 비탄에 빠진 무리였다. 그들 앞에는 모압 군대가 있었는데, 그때쯤에는 이미 경고를 받아 전에 없이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여호람에게 그 상황은 절망적으로 보였고, 따라서 그는 세 나라의 군대를 불러모아 모압의 손에 붙인 것에 대해 여호와를 비난하려 하였다. 하나님을 믿는 참된 믿음은 절망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호람은 믿음의 교훈과 의미를 배우지 않아, 하나님과 친밀하지 않았다. 불신은 이와 같은 고난의 시간에 아무런 방책도 없으며, 슬픈 자를 위한 위로나 낙담한 자를 위한 능력도 없다.

3:11 여호사밧이 가로되.

 여호람은 아래를 쳐다보았지만, 여호사밧은 위를 쳐다보았다. 이스라엘 왕은 자신과 자신의 약함을 보았지만, 유다 왕은 여호와를 쳐다보고 그가 아는 대로 그분 안에 있는 능력에 의지했다. 여호람은 하나님의 흠을 잡고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절망적인 재난에 대한 책임을 그분께 돌렸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현재의 어려움 너머를 쳐다보고 여호와 안에서 위로와 소망을 발견했다.

3:11 우리가…물을 만한.

 모든 사람에게는 기도의 특권과 여호와께 개인적으로 물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지만, 하나님이 응답을 주실 방법을 선택하신다. 하나님은 지혜와 섭리로 당신의 기별자 선지자들을 통해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며, 빛과 생명과 소망의 기별을 제공하기로 선택하신다. 이 기별을 들은 사람에게는 빛과 기쁨의 길이 열린다. 경청하기를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어둠과 실패와 절망만이 있을 뿐이다.

3:11 선지자.

 여호사밧은 이 상황에서 인간의 힘만으로는 부족함을 인식했다. 이처럼 극한 위기 중에는 선지자의 음성이 필요했다. 오직 하나님의 기별만이 사망의 골짜기를 벗어나는 길을 알려줄 권면과 안내자가 될 것이다.

3:11 이스라엘 왕의 신복 중에 한 사람이.

 이 신복의 지위가 얼마나 높은지 낮은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중대한 시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말해 준 이가 바로 그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지위는 이러한 순간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 선지자가 필요했고, 그 선지자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아는 자는 그 신복이었다. 여호와를 위한 사업에서 궁극적으로 가장 위대한 승리를 안겨 주는 어떤 제안이 비천한 개인에 의해 주어지는 일이 얼마나 자주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지위가 아무리 낮다 해도 당신의 명령을 행하기 위해 자신을 포기한 사람들을 통해 일하신다.

3:11 물을 붓던.

 이 흥미로운 세부 기사는 엘리사가 선배 선지자에게 수종들 때 늘 하던 사역 가운데 하나를 드러내 보여 준다. 엘리사는 자기에게 맡겨진 비천한 일들을 잘 수행했으며, 이제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책임들을 맡기셨다. 

  봉사의 징표로 어떤 사람의 “손에 물을 붓는” 관습은 오늘날에도 근동 지역에 널리 퍼져 있다. 물은 대부분의 성경 지방에서는 부족하여 낭비할 수 없는 것이다. 베두인 장막이나 지역 수도 시설이 없는 마을에서 식사를 제공하기 전에, 종이 주인과 손님들 앞에 대야를 놓는다. 그러면 그들은 비누를 잡고 대야 위로 손을 쳐들고 있다. 그런 후에 찻주전자처럼 생긴 물주전자 혹은 금속 그릇을 통해 가느다란 물줄기를 손에 붓는다. 숟가락이나 포크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음식을 들기 전에 이런 방법으로 손을 씻는다. 물을 붓는 사람은 항상 수종드는 사람이지 존귀한 사람이 아니다.

3:11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가까운 곳에 엘리사가 있었던 것 같다. 여호람은 선지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신복은 알았으며, 하나님도 아셨다. 여호와께는 위기란 결코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태를 예견하셨고, 따라서 빛이 매우 절실히 요구되는 바로 그때 필요한 빛을 받을 수 있도록 당신의 종을 예비해 두셨다.

3:1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사의 선지자 사역은 유다보다는 북방 이스라엘과 관련된 것처럼 보이지만, 유다 왕은 엘리사가 하나님의 선지자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의 사업에서 국경은 중요하지 않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사와 함께한 것은 이스라엘, 유다, 에돔 백성뿐 아니라 듣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이었다.

3:12 그에게로 내려가니라.

 세 왕은 엘리사를 자신들에게 불러오지 않고 자신들이 선지자에게 갔다. 이 경우에는 한 선지자가 세 왕보다 훨씬 더 영향력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는 대로 참 선지자만이 줄 수 있는 권면을 듣기 위해 그에게 갔다.

3:13 엘리사가…이르되.

 여호람의 외적인 겸손이 자신이 받아야 할 견책을 모면케 하지는 못했다. 그 왕이 이스라엘에서 몇 가지 개혁 조치를 마련한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2절). 조금 전에 그는 여호와에 대해 저속한 평가를 내렸고(참조 10절), 하나님 편에서 의도한 계획이라기보다는 인간의 판단 실수로 생긴 상황에 대한 책임을 그분께 돌리려 했다.

3:13 당신의…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즉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에게 가소서. 엘리야 당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이 있었는데, 후자는 왕비 이세벨의 후원을 받았다(왕상 18:19). 아합이 길르앗 라못을 탈환하기 위해 아람과 전쟁을 시작할 때, 궁중 선지자 400명과 상의하였는데, 이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했지만(왕상 22:6, 11) 유다 왕이 인식하기에는 여호와의 참 선자자와는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한 사람들이었다(왕상 22:7, 8). 여호람은 부친이 만든 바알의 “주상”을 제하여 어느 정도 종교적 개혁에 힘쓴 것은 사실이지만(왕하 3:2), 그는 여전히 여호와를 온전히 경배하는 것을 받아들이거나 하나님의 참 성품과 의도를 이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참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것에 대해, 비열한 동기를 가졌다고 여호와를 잘못 비난한 것(10절)에 대해 이스라엘 왕을 공개적으로 견책했다.

3:14 만군의 여호와.

 사무엘 시대부터 여호와를 지칭한 용어(참조 삼상 1:3, 11; 4:4; 15:2 등; 제1권, 154). 엘리사는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왕상 17:1; 18:15), 여호와 앞에 서서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는 여호와의 종 또는 대사로 자신을 칭했다.

3:14 여호사밧의 낯.

 유다의 왕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는(왕상 22:43) 하나님의 종이었다. 여호와께서 여호사밧을 존중한 이유는 그가 여호와를 섬겼기 때문이며, 지금 여호와의 선지자인 엘리사가 이 사실을 공적으로 인정했다.

3:14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이는 신랄한 질책이었지만 적절했고 필요했다. 하나님의 명예가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스라엘의 악한 왕은 순전히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생긴 재난에 대한 비난을 여호와께 돌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만일 여호사밧이 지금 이 계획에 동참하지 않았다면,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을 위해 중재하기를 거절했을 것이다. 악한 자들은 그들 중에 여호와의 의로운 종들이 함께하기 때문에 많은 축복을 누리지만, 좀처럼 이 사실을 인식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3:15 거문고 탈 자.

 각 시대를 통해서 세상 각처에서 음악의 힘은 심령을 평온하게 하고 마음을 고양시키는 효력을 발휘해 왔다. 영혼을 지상의 사물을 넘어 하늘의 분위기로 끌어올리는 데 적절한 음악보다 더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 그것은 생각을 활기차게 하며 우울함을 몰아내고 용기를 북돋아 주며 산란한 심령을 진정시켜, 평화와 기쁨과 소망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힘이 있다.

3:15 엘리사를 감동하시니.

 하나님의 백성들이 근심에서 놓이도록 도와주며, 악한 천사의 악영향을 몰아내 영혼을 근심, 의심, 분노, 비통함, 두려움 저편으로 끌어올리는 데 음악이 지닌 가치를 인식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가정과 직장과 학교에서 거룩한 노래를 더 많이 부를 때 하나님의 자녀들이 서로 친밀해지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하지만,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 음악을 서곡으로서 습관적으로 사용했다고 결론짓는 것은 오해이다. 사울 당시에 선지자의 무리가 다양한 악기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삼상 10:5)은, 선지자 시대에 음악이 가치 있게 여겨졌으며 그들이 영혼을 고무시키고 고상하게 하여 사상을 더 높고 고귀한 주제로 끌어올리기 위해 음악을 사용했음을 보여 주는데, 하나님의 모든 자녀도 음악을 이렇게 사용해야 한다. 예수께서도 음악의 가치를 인식하셨다.

3:16 이 골짜기에…파라.

 하나님은 종종 인간 대리자들을 통해 일하기로 선택하여, 그들에게 스스로 어떤 일들을 행하도록 허락하신다. 개천을 파라는 명령은 믿음의 시험이었고, 따라서 그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굴복한다는 것을 나타냈다. 

  하나님의 능력은 사막에 강물을 흐르게 하며, 광야를 장미처럼 피어나게 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성령이 인간의 심령에 임할 때 황무지 같은 삶이 사랑의 역사로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성령을 영접할 길을 준비하는 일에 맡아야 할 몫이 있다.

3:17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사건들을 처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항상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쉽게 폭풍과 많은 비를 일으켜 부족한 물을 공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그런 방법으로 물을 대기로 선택하지 않았다. 만일 그렇게 하셨다면 모압인들은 웅덩이가 피가 아닌 물로 채워졌다고 결론지었을 것이고, 모압과의 싸움에서 그런 방법으로 승리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3:18 작은 일이라.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들이 여호와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스라엘은 물을 공급받은 것 자체도 충분히 위대한 기적으로 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나아가, 물을 이용하여 이중 목적 곧 그들 자신의 생명을 구하고 적군을 물리치는 수단을 제공하는 목적을 이루려 하였다.

3:18 당신의 손에.

 여호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모압의 손에 붙일 것으로 보였을 것이고, 따라서 그는 그런 뜻을 강하게 비쳤다(참조 10절). 하지만 이제 그와 반대로 하나님께서 모압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일 것이 나타날 것이었다.

3:19 모든 견고한 성.

 모압의 요새화된 도성들은 이스라엘 군대에게 아무런 방어도 하지 못하고 그들 앞에서 무너질 것이었다.

3:19 베고.

 이런 일련의 행동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신 20:19, 20에 주어진 지시를 역행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거기서 모세는 정복할 때 도성을 포위하는 것을 다루고 있으며, 나무를 베지 말라고 지시한 이유는 이스라엘에게 그 실과를 먹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해야 한다는 점으로 볼 때 그것은 자비의 규정이라기보다는 지혜로운 처사였고, 따라서 그들이 과수(果樹)를 베어버린다면 스스로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될 뿐이었다.

3:19 모든 샘을 메우고.

 샘을 메우는 것은 고대 동방의 전쟁에서 일반적 관습이었다. 이삭 시대에도 블레셋 사람들이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들을 메웠다(창 26:15~18).

3:19 돌로.

 그들은 그 땅에 많은 돌을 던져 경작하기에 부적절한 땅으로 만들 것이었다.

3:20 소제 드릴 때에.

 이것은 매일 소제(번제) 드리는 시간을 언급할 것이다. 성전 봉사를 가리키는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시간을 표시한 왕상 18:29을 참조하라. 아침 제사는 새벽 일출경에 드렸을 것이다(참조 제2권, 128, 129; 레 16:4).

3:20 에돔 편에서부터.

 물이 에돔에서부터 어떻게 나왔는지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물이 땅에서 솟아 나온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3:21 모압…사람이…듣고.

 기자는 시점을 거슬러 올라가, 왕들이 오고 있다는 말이 모압 사람들에게 전해지자 그들이 전쟁을 위해 어떻게 모였는지를 말한다.

3:21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즉 최고 연소자로부터 최고 연장자까지 싸울 수 있는 모든 남자. 칼을 쓸 수 있는 사람을 모두 징집하였다.

3:23 필연 저 왕들이 싸워.

 팔레스타인 백성들 사이의 우호 관계가 항상 확고하지는 않았고, 동맹이 오래 지속되지도 않았다. 각기 다른 종족들 사이의 동맹 관계는 자기들끼리 사이가 틀어져 서로 등을 돌릴 수도 있었다. 유다와 이스라엘과 에돔 사이에 시샘이 존재했던 점에 비추어, 모압에게는 자신들을 공격하기 위해 올라 온 세 왕이 서로에게 등을 돌린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3:23 모압 사람들아…노략하러 가자.

 모압 사람들은 그들의 적군들이 서로를 완전히 파멸시켰다고 믿고는 약탈하기 위해 돌진했다. 그들은 더 이상 훈련된 군대가 아니었고, 오직 죽은 자들을 약탈하려는 생각밖에 없는, 제멋대로 날뛰는 오합지졸이었다.

3:24 모압 사람을 쳐서.

 전쟁에 대한 준비가 없던 모압 사람들은 적군 앞에서 손쉬운 먹이가 되었다. 동맹군들은 조금의 저항도 받지 않고 그들 앞에 활짝 열린 모압 온 땅을 파죽지세로 밀어붙였다.

3:25 그 성읍을 쳐서 헐고.

 이 기록은 모압의 광범위하고 굴욕적인 패배를 묘사한다. 성벽으로 방비한 성읍들조차도 승승장구하는 침입자들 앞에 버틸 수 없었다.

3:25 각기 돌을.

 땅을 경작하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먼저 돌을 치우는 일이 필요하다. 침략자들은 치워낸 돌을 밭으로 내던졌으며, 각기 지주들에게 그들의 밭을 치우는 힘든 작업을 맡겼다.

3:25 길하레셋.

 길하레셋(사 16:11), 길헤레스(렘 48:31, 36), 아마도 “모압 길(Kir)”(사 15:1)과 동일한 곳으로 생각된다. 오늘날 그곳 이름은 엘-케락(el-Kerak)이다. 이 성읍은 모압의 중요한 요새로, 사해 남부의 동편 고지대의 전략적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서 홍해로 이어지는 무역로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곳은 사방이 깊고 협착한 계곡으로 둘러싸인 가파른 언덕 꼭대기에 세워져, 성읍보다 더 높이 치솟은 주변의 산들이 마치 병풍처럼 에워쌌다. 그 요새는 사실상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다. 십자군 시대에 그곳은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십자군은 그곳을 점령하기 위해 대대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 요새는 현존하는 같은 종류의 고대 건축물 중 가장 크며, 오늘날도 여전히 사용된다.

3:25 물맷군이 두루 다니며.

 물맷군들은 분명 성읍을 둘러싼 산 위에 자리를 잡고, 거기서 성읍으로 돌을 던졌을 것이다.

3:26 당하기 어려움.

 이렇게 훌륭한 요새에 있었지만 메사는 전쟁이 자신에게 불리함을 알아차렸다.

3:26 충돌하여 지나서.

 돌격대를 이용하여 성읍을 빠져 나와 에돔 왕이 주둔해 있는 곳으로 가려고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3:27 성 위에서.

 아마도 포위한 자들이 모두 보는 가운데, 그들에게 공포를 불어넣으려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모압 사람들은 그모스가 거절할 수 없는 이 희생제물을 바침으로써, 공격자들에게 미신적 공포를 이용하려고 했을 것이다.

3:27 드린지라.

 법적 상속자를 이교 제물로 드린 것은 틀림없이 국가 신 그모스를 달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참조 5절 주석). 이 희생을 드림으로 그모스의 은혜와 공격자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도움을 얻고자 했다. 인신(人身) 제사는 팔레스타인 종교의 가증스러운 행위 중 하나였다.

3:27 통분함.

 히브리어 케체프(qes.ep).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참조 민 1:53; 18:5; 수 9:20; 22:20; 대상 27:24; 대하 19:10; 24:18 등). 하지만 여기서는 이스라엘 측의 어떤 특별한 죄악이 언급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그렇게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케체프와 어근이 같은 동사 카차프(qas.ap)는 인간의 분노를 가리키는 데 쓰이기도 한다(창 40:2; 출 16:20; 삼상 29:4; 왕하 5:11; 에 1:12, 18). 이스라엘에게 대한 통분함의 정확한 성격이 무엇인지는 묘사되지 않으며, 그들에게 통분함을 어떻게 나타냈는지 자세한 방법도 드러나지 않는다. 포위를 푼 것이 방어자들의 저항이 거세져서인지, 그들의 왕이 드린 극단적인 제사 때문인지 아니면 통분함을 다른 어떤 방법으로 나타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70인역」에는 메타멜로스(metamelos) 곧 “후회함”이라고 되어 있다.

3:27 저희가 떠나.

 포위자들은 그 성읍을 탈취하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왕과 수비대들을 남겨 둔 채 완전한 목적을 달성하지 않고 그들의 땅으로 돌아갔으나 상당히 큰 승리를 보상받았다.

 

<제3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문서 중 하나는 BC 9세기경의 것인 유명한 모압 돌(Moabite Stone)에 있는 메사 왕의 명각이다.

  모압 돌의 사진과 그것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보려면 제1권, 134, 135을 참조하라. 아래 번역에 나타나는 문단은 원래 명각에는 없지만 편의를 위해 구분했다. [ ] 안의 단어는 명각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첨가했다. 줄임표(…)는 명각에서 끊긴 부분을 가리키며, 문맥으로도 본문이 무엇인지 단서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물음표가 들어 있는 괄호(?) 앞에 있는 단어들은 문맥에 비추어 구절의 끊긴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첨가된 것이다.

  모압 돌(Moabite Stone)

  “나는 그모스[케모쉬]의 아들 메사…디본 사람 모압 왕이다.

  내 아버지는 30년 이상 모압을 치리하였으며, 나는 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나는 코르카에 그모스를 위한 산당을 마련하였다.…왜냐하면 그가 나를 모든 왕들에게서 구원해 주고, 또 나로 하여금 나의 모든 원수들을 이기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모스가 자기 땅에 진노를 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왕 오므리가 모압을 오랫동안 지배하였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대를 이었으며, 그도 ‘내가 모압을 지배하리라’고 말했다. 나의 임기 중에 그가 그렇게(?) 말했으나, 나는 그와 그의 집안을 무찔렀으며, 이스라엘은 영원히 멸망하였다. 전에는 오므리가 메드바 땅을 차지하여, 그와 그의 아들의 임기 절반인 40년간을 [이스라엘]이 그곳에 머물렀으나, 내 시대에는 그모스가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바알-므온을 건설하여, 그곳에 저수지를 두었으며, 키르야탄[키르야타임]도 건설하였다. 가드 사람들이 아타롯 땅에 오래 거하였는데, 아타롯은 이스라엘 왕이 자신을 위하여 만들었지만, 나는 그 성읍과 싸워 이겼으며, 그모스와 모압을 위하여 술 취한 듯 그 성읍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쳤다. 그곳에서 나는 그들의 우두머리 오렐을 그리옷에 있는 그모스 앞으로 끌고 갔으며, 샤론과 마하라트의 주민들을 그 성읍에 정착시켰다. 

  그리고 그모스는 나에게 ‘가서 이스라엘에게서 느보를 취하라’고 명하셨으며, 나는 야간에 가서 새벽부터 정오가 될 때까지 싸웠고, 드디어 성읍을 탈취하여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 곧 장정 7,000명과 소년들(?), 여인들, 소녀들(?) 그리고 여종들까지 모두 아쉬타르달-그모스에게 예물로 바쳤다. 나는 그곳에서 야훼[여호와]의 기명들을(?) 취하여 그모스 앞에 끌고 왔다. 이스라엘의 왕은 나와 싸우는 동안 야하스 성읍을 건설하여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그모스가 그를 내 앞에서 쫓아내 버렸고 그리고(?) 나는 모압의 용사 200명과 우두머리들을 모두 거느리고 올라가 야하스를 쳐서 디본에 예속시켰다.

  나는 코르하(Qorchah), 나무 벽 그리고 성벽을 건설하고, 또한 성문을 세우고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세우고 성읍 안에 저수지도 만들었다. 전에는 코르하 성읍 내에 물 저장소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주민에게 말하였다. ‘각 사람은 자기 집에 물 저장소를 만들어라.’ 그러고는 이스라엘의 포로들과 함께 코르하를 위해 목재를 다듬었다. 

  나는 아로엘을 건설하고, 아르논 골짜기에 대로를 냈다. 나는 벧-바못이 파괴되었었기 때문에 그곳을 건설했다. 나는 황폐된 베체르를 디본 사람 50명과 함께(?) 세웠는데, 디본 사람은 순종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땅에 예속시킨 100여 개의 성읍을 다스렸다. 그리고 나는 메드바와 벧-디블라덴과 벧-바알-므온 등을 세웠고, 그 땅의 양들을 위해(?) 그곳에 양 우리를(?) 두었다.…그러나 그모스가 나에게 ‘가서 하우로넨과 싸우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나는 내려가, 그것을(?) 취하고(?) 내 임기 중에 그모스가 거기 거했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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