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ORY

열왕기하 5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열왕기하

열왕기하 5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6. 13. 06:34

<열왕기하 5장 흐름정리>

엘리사가 아람 왕의 군대 장관인 나아만의 문둥병을 치유해 준 내용이다. 나아만이 친히 엘리사를 찾아왔으며 그의 푸대접에도 불구하고 신복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그의 말대로 순복한 것은 예수님도 칭찬하신 겸손한 행위였다(눅 4:24). 그 결과 그는 병을 고침받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자랑하면서도 불순종을 일삼던 이스라엘인들에게 좋은 교훈거리가 되었다. 한편,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거짓말로 나아만의 사례품을 착복했다가 문둥병에 걸린 것은 아간의 죄악(수 7장)을 상시시켜 주는 사건으로서, 탐심을 경계토록 교훈해준다.


<열왕기하 5장 줄거리>

1. 나아만이, 포로 소녀의 간증으로 자신의 문둥병을 치료하기 위해 사마리아로 감.

8. 엘리사가 요단강으로 나아만을 보내 치료함.

15. 엘리사가 나아만의 선물을 거절하고 그에게 약간의 흙을 줌.

20. 게하시가 스승의 이름을 나아만에게 이용하여 문둥병이 발병함.


<열왕기하 5장 개역한글>

1.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 주인에게 고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계집아이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5. 아람 왕이 가로되 갈찌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나아만이 곧 떠날쌔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개와 의복 열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 문둥병을 고쳐주소서 하였더라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어 가로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13.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15.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줄을 아나이다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16. 가로되 나의 섬기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받지 아니하리라 나아만이 받으라 강권하되 저가 고사한지라      

17. 나아만이 가로되 그러면 청컨대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18. 오직 한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9. 엘리사가 가로되 너는 평안히 가라 저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진행하니라      

20.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 가지고 온 것을 그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저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취하리라 하고      

21.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니 나아만이 자기 뒤에 달려옴을 보고 수레에 내려서 맞아 가로되 평안이냐      

22. 저가 가로되 평안이니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생도 중에 두 소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 왔으니 청컨대 당신은 저희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23. 나아만이 가로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저를 억제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저희가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24. 언덕에 이르러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취하여 집에 감추고 저희를 보내어 가게 한후      

25. 들어가서 그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대답하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26. 엘리사가 이르되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27.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문둥병이 발하여 눈 같이 되었더라


<열왕기하 5장 성경주석>

5:1 나아만.

 아람은 종종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였지만, 이때는 분명 평화의 시기였다. 얼마 전에 아합은 벤하닷과의 싸움에서 죽임을 당했다(왕상 22:34~37). 이스라엘 왕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 사건은 아합의 아들 요람의 치세에 일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기사는 나라들의 뒤바뀌는 운명을 드러내며, 당시의 국제 관계와 관습의 흥미로운 모습을 보여 준다.

5:1 큰 용사.

 나아만은 아람의 중요 인사였다. 그는 아람이 승리를 쟁취하는 데 기여하여 존경과 명성을 얻었지만, 문둥병자가 되는 불행을 겪었다. 하지만 그가 겪고 있는 무서운 질병으로 심각한 장애가 있었지만 아람의 군대장관의 지위를 유지했다.

5:2 떼를 지어.

 주로 약탈을 목적으로 자행되는 습격떼의 국경 침입이 잦았다.

5:2 사로잡으매.

 전쟁은 잔인하다. 어린 소녀가 자기 집에서 잡혀가, 지금은 위로나 소망도 없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처럼 적군의 땅에 있다. 그녀에게 인생은 좋은 것이 거의 없는 듯 보였으며, 만일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생각들을 자신과 자신의 불행한 처지에 맞추었다면 비통하고 침울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방 땅일지라도 하나님은 그녀가 할 수 있는 봉사를 준비해 두셨다.

5:2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사로잡힌 소녀는 종의 인생을 살고 있었으며, 이스라엘을 굴복시킨 군대장관의 집에서 수종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일에 신실했음에 틀림없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중요한 관리의 집에 고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5:3 선지자 앞에.

 비록 포로였지만, 소녀는 고국과 하나님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포로로 잡고 강제 노역을 시키는 사람들을 향해 사악한 생각을 품지 않았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충만하여, 그녀의 마음은 병든 주인과 그의 아내를 향한 동정심이 일었다. 그녀에게 불행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나아만이 벌을 받아야 한다고 바라는 대신에, 그가 잘되기를 소망했고, 혹독한 질병에서 회복되기를 희망했다. 소녀는 고국에서 행한 엘리사의 놀라운 사역들을 기억하면서, 그 선지자가 나아만의 문둥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하나님이 행한 일, 이방 백성을 위해서도 행할 수 있다고 믿었다.

5:3 저가…고치리이다.

 문둥병은 불치의 병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히브리 소녀는 부모에게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배웠다. 그녀의 부모는 책임을 잘 이행했고, 그 결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땅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이런 놀라운 간증이 나타났다. 이스라엘의 신실한 부모가 여호와를 사랑하고 신뢰하도록 자녀를 양육했기 때문에 나아만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능력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5:4 나아만이 들어가서.

 즉 나아만은 그의 주군인 아람 왕에게 가서 포로 소녀가 말한 것을 전달했다. 소녀는 하나님을 믿는 자신의 믿음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나아만은 소녀의 믿음을 보고 믿었으며 아람 왕 앞에서 그녀의 간증을 전했다. 이로 인해 벤하닷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능력의 하나님이며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배워야 했다. 그는 전투에서 이스라엘 군대를 무찔렀으며, 따라서 아람의 신들이 여호와보다 더 강하다고 믿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인간의 능력과 아람 신들의 능력을 초월하여 역사한다는 사실을 배워야했다. 하늘의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간증은 그분을 온전히 확신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간증이다.

5:5 내가…보내리라.

 어린 소녀의 간증이 아람의 군대장관에게 확신을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아람 왕의 마음속에도 어느 정도 믿음을 생기게 했다. 믿음이 믿음을 낳고 사랑이 사랑을 낳는다. 믿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 땅에서 저 땅으로 나아가 마침내 지구를 두를 때까지 뻗어 나아가는 원(圓)이다. 오직 영원한 곳에서만 포로 소녀가 이방 땅에서 여주인 앞에서 행한,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한 확신의 간증이 낳은 결과를 평가할 수 있다. 왕들은 왕들과 상대했으며, 따라서 벳하닷은 나아만에 대한 봉사를 요청할 때 엘리사와 직접 상대하기보다는 이스라엘 왕을 통해 접촉하려고 생각했다. 편지를 쓰는 것은 당시 관례였고, 그와 같은 많은 편지 필사본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5:5 은 십 달란트.

 나아만은 대가 없이 치료를 요구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선지자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선지자에게 상당한 보상을 제공할 만한 보물을 가지고 갔다. 그는 여호와께서 자신을 고쳐주실 것이며 보상으로 은이나 금을 바라시지도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나아만은 엘리사가 세속적 이익을 바라는 정신이 아니라 그가 행하는 선을 위해 하나님과 동료들을 섬긴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당시에는 화폐가 주조되지 않아 무게로 결정되는 금과 은의 막대나 고리가 통용되었다. 은 한 달란트는 약 35킬로그램이었다. 6,000개의 금 조각이 아니고, 무게가 6,000세겔인 금이나 금 두 달란트였다. 나아만이 이처럼 많은 보물을 가지고 갔다는 사실은 그가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사태의 심각성과 낫고자 하는 열망의 간절함을 보여 준다.

5:6 고쳐주소서.

 아람 왕은 분명히 그런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명성을 지닌 선지자라면 국가의 관리와 왕의 명령 아래 있는 종교 계급의 일원일 것이라 생각했다.

5:7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문둥병자는 살아있는 송장으로 간주되었다. 이스라엘 왕은 이는 하나님만이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따라서 사람이 이런 질병에 걸린 어떤 사람을 회복시키도록 여호와의 손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믿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5:7 시비하려 함인 줄.

 이스라엘 왕은 벤하닷의 요청을 하나님의 기이한 능력을 드러내기 위한 기회로 이해하지 않고 상황의 어두운 부분만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람 왕의 편지가 좋은 신의에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싸움거리를 찾기 위한 핑계라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그는 벤하닷이 전쟁을 위한 기회로 사용하기 위해, 응하기에 불가능한 요청을 의도적으로 보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요람은 여호와나 그분의 선지자 엘리사를 생각하기보다, 오로지 그 상황을 처리하기에 무능력한 자신만을 생각했다(참조 1절 주석).

5:8 하나님의 사람.

 요람의 궁전에 나아만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어떻게 엘리사에게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람 장관의 믿음을 보상하기 위해 사건을 인도하고 계셨다.

5:8 어찌하여.

 요람이 재난으로 여긴 것을 엘리사는 기회로 간주했다. 이스라엘 왕이 완수할 수 없었던 것을, 선지자는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기꺼이 착수할 것이었다. 왕이 절망으로 가득 차있는 동안, 선지자는 소망으로 앞을 내다보았다. 힘들고 곤혹스러운 때에 이 땅의 연약한 자녀들을 사랑과 자비로 내려다보시는 하늘의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면 도움이 된다.

5:8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요람은 두려워했지만, 엘리사는 아람 군대장관의 방문을 환영했다. 왕은 나아만을 위한 어떤 격려의 기별과 소망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엘리사는 나아만이 육체의 치료와 영혼의 회복을 찾기 위해 자신에게 오도록 요청했다. 선지자는 나아만이 이스라엘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 친숙하게 되어,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소망에 관한 위로의 기별을 가지고 그의 백성에게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했다.

5:9 말들과.

 나아만의 수행원들은 말을 탔지만, 나아만 자신은 병거에 탔다.

5:9 엘리사의 집.

 분명 초라한 거처일 것이다. 이곳이 왕궁은 아니지만, 그 집에서 나아만은 왕궁에서 제공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을 발견할 것이었다. 소박한 시골집 대문은 나아만에게 생명과 소망의 문이 될 것이었다.

5:10 요단강에…씻으라.

 나아만에게 한 지시는 소경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요 9:7)는 예수의 명령을 떠올리게 한다. 두 사례 모두 명령은 받아들이는 자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주어졌다. 치료는 오직 온전한 순종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요단강물은 나아만에게 치료와 생명의 물이 되어야 했다.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는 데 지혜가 있다.

5:11 내 생각에는.

 나아만은 자신의 생각이 있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생각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문둥병을 고칠 수 있다는 사람에 대해 듣고서 즉시 그것이 정확히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고 이루어질지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그는 자기의 계획을 세워, 하나님께서 그 계획에 따라 행하시길 기대했다. 그러나 여호와의 행동 방식에 대해 사람이 지니는 선입견은 자주 어긋난다. 우리가 섭리의 길을 지레짐작할 때 실망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홍해를 통과하는 길로 이스라엘을 인도해 내시기로 선택했지만 그것이 인간의 생각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 마구간에서 태어나 구유가 요람이 되도록 했지만 그것이 세상의 위대하고 능력 있는 자의 생각에는 맞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궁핍한 사람들의 종으로서 그들 중에 살도록 하셨지만, 그것은 오실 메시야에 대한 유대인의 생각과 조화되지는 않았다. 구원받고 여호와의 길로 행하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각이 사람의 생각보다 훨씬 높고 좋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5:12 아마나와 바르발.

 사람의 안목에 분명히 이 강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강보다 좋았다. 다메섹 강은 깨끗했고 장미 같은 꽃들이 만발한 곳이었다. 자기 나라의 생명을 주는 강들과 비교해 볼 때, 나아만에게 요단강은 작고 기대에 어긋나는 개천이었다. 그러나 그의 문둥병이 낫기를 원했다면, 그가 목욕할 곳은 아마나가 아니라 요단강이었다. 아마나는 아 4:8의 아마나와 동일하다고 생각되며, 그 수원(水源)이 되는 산을 따라 이름이 붙여졌다. 그것은 다메섹의 중요한 강이었다. 바르발은 다메섹의 남쪽 강으로 생각되며, 헤르몬산 고지에서 발원하였다.

5:13 그 종들이.

 종종 종이 주인보다, 신하가 왕보다 지혜로운 것으로 판명된다. 나아만은 자기 종들의 말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생명과 회복의 방법을 발견할 것이었다.

5:13 큰 일.

 나아만은 지체 높은 사람이었고 따라서 큰 일을 해야 했다. 그는 오만하여, 요단강에서 씻는 것은 비참한 경험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선함에 대해 하나님께 시험받고 있는 중이었다. 오직 여호와의 지시에 온전히 순종해야만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교만한 마음을 굴복시켜야 했으며, 완고하고 이기적인 의지를 극복해야 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아람 숲들의 우상보다 더 능력 있는 분으로 인정하고, 엘리사의 지시를 자신의 생각과 욕망보다 우선으로 여겨야 했다.

5:14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나아만은 축복을 얻으려는 희망을 갖기 전에,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과 하늘의 대변자로 인정하는 자리에 자신을 두어야 했다. 만일 그가 선지자의 말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면 치료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선지자의 지시에 따라 행했을 때, 문둥병은 씻겨졌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실 때, 언제나 자신의 의견은 내려놓고 여호와의 기별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할 때만 우리는 하나님의 길에서 행하며 그분의 축복에 참여할 수 있다.

5:15 나아만이…도로 와서.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보답하기 위해 돌아와 감사를 표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자신의 길에서 멀리 벗어났지만 헛되지 않은 여정이었다. 나아만은 그의 모든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보다 하나님의 자녀가 지녀야 할 진정한 정신과 더 조화됨을 보여 주었다. 세월이 흘러 구주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엘리사의 시대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병자들이 있었지만 “그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다(눅 4:27)는 사실을 언급하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재와 축복을 감사하지 않았다. 이방 나라의 군대장관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한 사람들에게는 찾아 볼 수 없는 믿음과 감사를 나타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축복에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계시며 은혜를 베푸신다.

5:15 내가 이제…아나이다.

 나아만은 히브리 소녀의 간증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들었지만, 이제 그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그분을 알게 되었다. 믿음은 앎이 되었다. 이제 그의 간증에는, 그가 하나님께 이런 경이로운 축복을 받지 않았다면 갖지 못했을 확신이 있었다. 그는 이제 이스라엘 밖에는 신들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람과 이웃 나라들에서 섬기는 신들은 고작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천지의 창조주시며, 인간에게 생명과 소망을 주신 여호와이시다. 만일 하나님의 모든 자녀가 포로 된 히브리 소녀처럼 하나님을 신실히 증거했다면, 지상의 모든 백성이 창조주의 놀라운 사랑과 돌보심을 알았을 것이요, 많은 사람이 그분께 찬양과 감사를 돌렸을 것이다.

5:16 내가 받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선지자는 이득과 보상을 목적으로 봉사하지 않는다. 나아만에게 이르러 온 새로운 생명과 그의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믿음을 통해, 엘리사는 보상을 받았다. 일꾼은 마땅히 품삯을 받아야 하고, 또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사람은 그분께 감사의 제물을 드리지만, 이런 상황 아래서는 엘리사가 제공된 선물을 거절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나님의 참 선지자가 자기 만족을 목적으로 행했다거나 하나님의 축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느낌을 나아만에게 남겨서는 안 되었다.

5:17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흙 위에서 경배해야 하는 신으로 생각했다. 그 당시에 나라마다 각기 두드러진 신이 있었고, 많은 성읍들에는 자신들의 지역 신이 있었다. 나아만이 이스라엘 밖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이스라엘 땅과 결부돼 있다는 관점을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못했고, 따라서 그는 자신의 나라에서도 이스라엘의 흙 위에서 그 하나님을 섬기려고 했다.

5:17 다른 신에게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 때, 나아만은 그분께 마음을 드렸으며 젊어서부터 알아온 아람 신들을 경배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모든 지역마다 나아만처럼 진실하고 신실한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려고 그분의 백성들의 신실한 증언을 듣고 거룩한 삶을 보고자 고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5:18 여호와께서…사유하시기를.

 나아만이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했지만 우상숭배에 빠져있는 자신의 나라에서는 그것이 쉽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아람 왕은 여전히 림몬 신을 섬겼으며, 그 예배에서 나아만은 왕을 수행했을 것이다. 나아만은 이후로 오직 여호와만 섬길 것이라는 결심을 굳게 하였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지상 왕을 섬기는 일에서 등돌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왕이 림몬에게 예배할 때, 그는 나아만의 팔에 기댈 것이다(참조 7:2, 17). 나아만은 이방신에게 경배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여호와께 마음을 드렸기 때문에 림몬도 섬기면서 그의 신앙을 타협할 의도가 없었고 또한 그렇게 한다는 말이 엘리사에게 들리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예민한 양심을 지닌 사람이었고, 따라서 이스라엘을 떠나기 전에 자신이 따라야 할 원칙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5:19 평안히 가라.

 이 말을 나아만이 작별하면서 한 요청을 승인하거나 거절하는 표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는 의심이나 쉼 없는 불확실성이 아닌 평안 중에 떠나야 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며, 그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경배 속에서 행복과 평안을 찾아야 했다. 나아만은 갓 회심한 신자로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새로 발견한 믿음에 매달린다면 그의 능력과 지혜가 자라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새 신자를 한 걸음씩 인도하며, 어떤 문제에 개선이 필요한 적절한 시기를 아신다. 이것은 영혼 구원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늘 염두에 두어야 할 원칙이다. 엘리사는 이때가 특정한 행동에 급진적인 변화를 요구할 적절한 순간이 아님을 알았다. 그는 예리한 영적 통찰력을 지닌 사람이었고, 따라서 나아만을 대처할 때 재치 있고 신중하게 행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나아만을 보내면서 질책하지 않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한 고별사에 포함된 것(요 14:27)과 비슷한 평화의 기별을 주었다.

5:20 게하시.

 성경 기자는 아람의 중요 관리가 문둥병을 고침받고 심령이 변화되어 마음에 기쁨과 평화를 지닌 채 여호와의 새 회심자로서 이스라엘을 떠나는 아름다운 장면을 이제 막 언급했다. 그러나 장면이 “게하시가”라는 말과 함께 갑자기 바뀐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행복과 평화를 주실 때 사단은 문제를 끌어들이려 한다. 그는 모든 교향곡에 불협화음을 끼워 넣으려 한다. 여기서 선지자의 사환은 자신을 원수의 손에 들린 도구가 되도록 허용하여 이토록 아름답게 그려진 그림을 거의 망치고 있다.

5:20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이 말은 게하시의 생각과 심령을 드러낸다. 그는 나아만을 하나님의 새로운 회심자가 아니라 원수의 땅에서 온 군인으로 생각했다. 아람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약탈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 사람이 그들 중 한 사람을 살려 두어야 하는가? 게하시는 그의 주인 엘리사를 나아만이 주기를 원했던 선물을 거절한 나약하고 단순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5:20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여기 이 말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을 충분히 알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사역에 일조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려는 사람이 내뱉은 불경스런 맹세이다. 탐욕에 눈먼 게하시는 자신이 행하지도 않은 봉사에 대한 대가를, 엘리사가 아무것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 그 사람에게 취하려 하고 있다.

5:21 내려서.

 이는 존경을 나타내는 동방의 표현이다. 게하시는 엘리사의 종에 불과했고, 따라서 나아만은 그에게 불필요한 호의를 나타낼 의무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가슴속에서 감사하는 마음이 강하게 일었음을 가리킨다. 나아만은 그의 천성적 교만과 악의를 극복했고, 따라서 이제 이스라엘과 싸워 승리했던 아람의 군대장관인 그가 히브리 선지자의 종과 자신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표로 병거에서 내린다.

5:21 평안이냐.

 나아만은 게하시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선지자에게 어떤 불행이 임했거나 어떤 재난이 발생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5:22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게하시는 이제 거짓말로 자신의 탐욕을 은폐하려고 했다. 엘리사가 종의 욕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이타적인 선지자의 덕망 있는 이름이 그의 비열한 종의 욕심으로 오염되었다. 악은 항상 더 많고 큰 악의 길로 인도하기 때문에, 한 가지 죄가 한 가지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는 드물다.

5:22 두 소년.

 게하시는 자신의 탐욕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아, 궁핍한 두 소년을 염려해 주는 친구 역할까지 하려 했다. 과연 나아만이 은 열 달란트 중 하나와 의복 열 벌 중 두 벌로 그들을 돕는 일에 관심이 없었겠는가?

5:22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에브라임 고지대에는 적어도 두 개의 선지자 학교, 벧엘과 길갈이 있었다(참조 2:1 주석).

5:23 바라건대.

 문자적으로 “제발” 혹은 “기꺼이”, 한 달란트 말고 두 달란트를 받으라는 뜻이다. 나아만은 감지덕지하여 게하시가 요구한 것의 두 배를 주고, 선지자의 집으로 짐을 지고 갈 두 종들도 보냈을 것이다.

5:24 언덕에.

 히브리어 오펠(‘opel), “구릉”(丘陵) 혹은 “언덕.” 언덕 위에 있는 망대, 집, 요새, 전망대 등과 같은 구조물을 가리키기도 한다. 엘리사의 집은 사마리아에 있었고, 아마도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을 알아 볼 수 있는 고지대에 있었을 것이다(참조 6:30~32). 그러나 이때 은 두 달란트를 가지고 돌아온 게하시는 주인이 바라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 언급된 이 언덕은, 엘리사의 집과 게하시가 나아만을 따라잡은 위치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곳에서 나아만의 종들을 돌려보내고, 게하시가 보물을 받아 집에 숨겼다.

5:25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게하시는 주인의 책망을 막기 위해 이제 또 다른 거짓말에 호소했다. 또다시 죄는 죄로 인도하고, 한 가지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로 이어진다. 죄악의 꼬리는 끝이 없다. 기만의 과정에 착수한 자는 기만을 덮기 위해 불가피하게 또 다른 기만에 골몰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5:26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와께서는 엘리사에게, 정확하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게하시가 나아만을 쫓아갔는지, 어떻게 그가 나아만에게 거짓말을 하여 갈망하던 선물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는지, 그것을 어떻게 숨겼는지 보여 주셨다. 사람이 자신의 동료는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악한 행실은 인간의 눈에는 가려질 수 있어도, 여호와의 눈에는 모두 보인다(참조 히 4:13).

5:26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사환의 마음을 찌르는 엘리사의 말은 얼마나 통렬한 질책인가!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었다. 아람의 군대장관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새로 발견한 신앙으로 기뻐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종들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하늘은 땅과 매우 가까워졌다. 베푸신 놀라운 축복을 인해 게하시의 마음은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로 고양되어야 했다. 그는 나아만이 얼마나 좋은 인상을 받았는지, 아람 장관이 이스라엘의 신앙만이 사람을 이타적이고 정직하며 친절하게 만드는, 세상에서 유일한 참 종교라는 믿음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생각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자신과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했다.

  엘리사의 질책은 그의 종 게하시뿐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에서 게하시가 가졌던 것과 동일한 정신을 나타내는 자들에게도 주어진다.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은 매우 가까이 계시며 여러 지역에서 놀라운 은혜의 기적을 행하신다. 도처에서 죄인들이 회심하고 감사와 승리의 노래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탐욕의 영이 퍼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을 섬기는 일에 열심이다.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사용해야 할 은을 축적하며 숨기고 있다.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다보시고,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을 때인가?”라고 질문한다.

5:26 감람원.

 게하시는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선지자는 그의 종이 구입하려던 것들을 열거했을 것이다.

5:27 네게 들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큰 축복의 날이 되었고, 히브리 사람 하나님의 선지자의 종에게는 지독한 저주의 날이 되었다. 나아만은 화평 중에 자기 길로 갔으며, 그의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소망 때문에 기뻤다. 게하시는 자신의 죄의 결과를 무덤으로 지고 갔다. 그는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저주받고 동포에게는 경멸받는 문둥병자로 남아, 하나님 나라의 보물보다는 이 세상의 보물을 먼저 구하는 탐욕의 어리석음과 삶의 헛됨에 대한, 모든 시대를 위한 실물교훈이 되었다. 엘리사와 교제하는 세월 동안, 게하시는 이타적인 헌신과 사랑의 삶에 기쁨과 만족이 있다는 교훈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그가 암처럼 인간의 영혼을 먹어들어 가는 세상 보물에는 집착했으나 하늘의 선물은 걷어찼다. 그는 하나님을 위한 사역에 종사하는 동안 자기부인의 정신을 계발하지 않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물질적 이익에 관심을 갖도록 자신을 내버려두었다. 그는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은에, 의의 옷이 아니라 베옷에 관심을 두었다.

5:27 영원토록.

 게하시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든 시대를 통해 지속될 저주를 그의 후손들에게 발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호와께서는 친절하고 자비로우셔서 어느 누구에게도 불공평하거나 불필요한 고통을 주지 않으신다. 게하시에게 두려운 심판이 초래된 것은 그의 탐욕 때문이었다. 그 심판 때문에 그의 자녀들도 어쩔 수 없이 고통받게 될 것이다. 질병과 그 영향은 종종 무죄한 후손에게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게하시가 문둥병자가 되었기 때문에 후손들이 자자손손 문둥병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여기 사용된 히브리어 르올람(le‘olam)이 반드시 중단 없음 곧 영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올람(‘olam)이라는 단어가 하나님께 적용될 때는 끝이 없는 것을 의미하며, 사람의 생명에 적용될 때는 단지 인간의 삶의 끝에 한정된다. 출 21:6에서 종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겨야 했다. 이스라엘은 그 땅에 체류하는 이방인 중에서 “영원한 종”을 삼아야 했다(레 25:46). 다윗이 죽은 직후, 밧세바는 왕 앞에 엎드려 “내 주 다윗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라고 말했다(왕상 1:31). 그리고 또한 느헤미야도 아닥사스다 왕에게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라고 말했다(느 2:3). 여호와의 진노의 날에 지상의 연기가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라 묘사되었다(사 34:10). 요나가 자신이 고래 뱃속에 떨어진 것을 묘사하면서,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다고 말했다(욘 2:6). 르올람이라는 표현은 “세대가 지속되는 것”을 의미하며, 포함된 시간의 길이는 그 표현과 관련된 특정한 개념에서 추론해 내야 한다(참조 출 12:14; 21:6 주석).

5:27 눈같이 되었더라.

 이 표현은 다른 곳에서 문둥병이 갑작스럽게 발병하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된다(참조 출 4:6; 민 12:10).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성경주석 > 열왕기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왕기하 7장 & 성경주석  (0) 2017.06.16
열왕기하 6장 & 성경주석  (0) 2017.06.15
열왕기하 4장 & 성경주석  (0) 2017.06.12
열왕기하 3장 & 성경주석  (0) 2017.06.09
열왕기하 2장 & 성경주석  (0) 2017.06.08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