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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5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열왕기하

열왕기하 15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6. 28. 07:07

<열왕기하 15장 흐름정리>

유다가 아사랴의 통치하에 국력 신장을 꾀하던 때에 이스라엘에서는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로 이어지는 왕위 쟁탈전이 되풀이되었다. 이는 곧 북왕국의 최후가 임박하였음을 시사한다. 한편, 아사랴는 선지자 스가랴가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하나님을 경외하였지만 그가 죽고나자 교만해져 자신이 친히 제사장 직무까지 수행하려 했다. 이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그는 그만 문둥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그의 뒤를 이은 요담은 웃시야의 좋은 점만을 본받아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그도 백성들의 타락을 바로잡지는 못했다.


<열왕기하 15장 줄거리>

1. 아사랴의 선한 통치.

5. 아사랴가 문둥병에 걸린 채 죽고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됨.

8. 예후 집의 마지막 왕인 스가랴가 악한 통치를 하다가 살룸에게 죽임을 당함.

13. 살품이 한 달 동안 치리하고 므나헴에게 죽임당함.

16. 므나헴이 불을 통해 강해짐.

21. 브가히야가 뒤이어 왕이 됨.

23. 브가히야가 베가에게 죽임당함.

27. 베가가 디글랏 빌레셀에게 압제당하다가 호세아에게 죽임당함.

32. 요담의 선한 통치.

36. 아하스가 요담을 이어 왕위에 오름.


<열왕기하 15장 개역한글>

1.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이십 칠년에 유다 왕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되니      

2.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 륙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 이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골리야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3. 아사랴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4. 오직 산당은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5.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궁중 일을 다스리며 국민을 치리하였더라      

6. 아사랴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7. 아사랴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다윗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8. 유다 왕 아사랴의 삼십 팔년에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여섯달을 치리하며 

9. 그 열조의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10.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저를 모반하여 백성 앞에서 쳐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1. 스가랴의 남은 사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12.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네 자손이 이스라엘 위를 이어 사대까지 이르리라 하신 그 말씀대로 과연 그렇게 되니라      

13. 유다 왕 웃시야 삼십 구년에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한 달을 치리하니라      

14.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디르사에서부터 사마리아로 올라가서 야베스의 아들 살룸을 거기서 쳐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5. 살룸의 남은 사적과 그 모반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16. 그 때에 므나헴이 디르사에서 와서 딥사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과 그 사방을 쳤으니 이는 저희가 성문을 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치고 그 가운데 아이 밴 부녀를 갈랐더라      

17. 유다 왕 아사랴 삼십 구년에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십년을 치리하며      

18.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19. 앗수르 왕 불이 와서 그 땅을 치려 하매 므나헴이 은 일천 달란트를 불에게 주어서 저로 자기를 도와주게 함으로 나라를 자기 손에 굳게 세우고자 하여      

20. 그 은을 이스라엘 모든 큰 부자에게서 토색하여 각 사람에게 은 오십 세겔씩 내게 하여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니 이에 앗수르 왕이 돌이키고 그 땅에 머물지 아니하였더라      

21. 므나헴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2. 므나헴이 그 열조와 함께 자고 그 아들 브가히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23. 유다 왕 아사랴 오십년에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년을 치리하며      

24.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25. 그 장관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반역하여 사마리아 왕궁 호위소에서 왕과 아르곱과 아리에를 죽이되 길르앗 사람 오십명으로 더불어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더라      

26. 브가히야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27. 유다 왕 아사랴 오십 이년에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이십년을 치리하며      

28.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29.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취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30. 웃시야의 아들 요담 이십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반역하여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쳐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31. 베가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32. 이스라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 이년에 유다 왕 웃시야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니      

33.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륙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루사라 사독의 딸이더라      

34. 요담이 그 부친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35. 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요담이 여호와의 전의 윗문을 건축하니라      

36. 요담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7. 그 때에 여호와께서 비로소 아람 왕 르신과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보내어 유다를 치게 하셨더라      

38. 요담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조상 다윗성에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아하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열왕기하 15장 성경주석>

15:1 아사랴.

 웃시야라는 이름으로 기록되기도 하였다(13, 30, 32, 34절). 이 축약형은 역대기(대상 3:12에 기록된 다윗의 계보는 예외임)와 이사야, 호세아, 아모스, 스가랴서에서도 사용되었다. 이것은 다양한 이름의 형태에 관한 여러 실례 중 하나이다.

15:3 정직히 행하였으나.

 일부 통치기간에만(참조 5절).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대하 26:5).

15:4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산당이 모두 우상숭배만을 위한 신전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들은 제사를 위하여 공인되지 않은 장소들이었으며,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하지 않고 이런 장소에서 희생을 드렸다(참조 12:3).

15:5 치셨으므로.

 이 사건에 관한 좀 더 자세한 기록에 대해서는 대하 26:16~21을 참조하라. 아사랴는 전쟁에서 승리하여 교만해져서 마음이 한껏 들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성전에서 분향하려던 중에 문둥병에 걸렸다.

15:5 별궁에.

 따로 떨어진 집을 말한다. 히브리 율법은 문둥병자들이 “진 밖에”(레 13:46) 홀로 거할 것을 요구한다.

15:5 궁중 일을 다스리며.

 요담은 부친이 문둥병에 걸린 시점부터 국가를 통치하는 섭정이 되었다.

15:5 국민을 치리하였더라.

 왕은 국가의 최고 법관이었다. 부친인 아사랴가 통치하는 형식을 취하고는 있었지만, 요담은 이제 부친을 대신하여 왕이 져야 할 모든 책임을 떠맡게 되었다.

15:6 남은 사적.

 블레셋인과 아라비아인, 마온 사람(Mehunimites) 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일, 암몬에 대한 세력 강화, 예루살렘의 요새화, 가축 사육과 농업에 대한 관심, 사막 지역에 망대를 건축한 것, 군대의 재조직 및 재정비, 공격 무기를 위한 기계 제조, 성전에서 분향하려다가 문둥병에 걸린 일, 그의 장례에 관한 사항 등이 아사랴의 “남은 사적”에 해당한다(대하 26:1~23).

15:7 아사랴가 자매.

 이사야는 아사랴가 죽던 해에 하나님의 이상을 보게 된다(참조 1절; 사 6:1, 8).

  여러 해 전 예루살렘에서 잘 조각된 석판이 발견되었는데, “이쪽으로 유다 왕 웃시야(아사랴)의 유골이 옮겨졌음. 개봉하지 말 것”이라는 명각이 적혀 있었다. 이 명각이 그리스도 당시에 사용되던 정방형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석판도 같은 시기에 준비한 것임이 분명하다. 이것은 필시 본래 무덤이 약탈당했거나 아니면 폐허가 된 후에 웃시야의 유골을 옮겨다 놓은 지점을 표시한 것일 것이다.

15:8 여섯 달.

 이스라엘은 이제 역사의 마지막 암흑기에 돌입하고 있었다. 왕과 왕의 계승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고, 암살은 당시의 일반적인 관례가 되어 버렸다.

15:9 악을 행하여.

 이것은 예후 가문의 마지막 왕에 관한 기록의 전부이다. 악함이 일상적인 삶이 되어 국가는 곧 패망될 것이었다.

15:10 살룸.

 살룸의 혈통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부친의 이름만으로는 단서를 찾기가 어렵다.

15:10 백성 앞에서.

 히브리어 카발-암(qabal-‘am). 이 히브리어 표현은 어떤 헬라어 필사본들에는 번역되지 않고, 그 대신 크블라암(keblaam)이라는 이름이 야베스 뒤에 첨가되어 있다. 후대의 한 역본에는 엔 이에블라암(en ieblaam) 곧 “이에블라암에서”라고 되어 있다(참조 9:27). 히브리어는 이 암살이 공공연히 자행되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행동은 당시의 끔찍한 타락상과 불안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은 값싼 것으로 여겨져 무고한 피가 흘려졌다. 여호와께서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실(호 1:4)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암 7:9)고 한 예언이 스가랴의 죽음으로 성취되었다.

15:12 여호와께서…말씀하여.

 참조 왕하 10:30.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예후의 자손은 여호아하스, 여호아스, 여로보암, 스가랴였다.

15:13 한 달.

 문자적으로 “날들의 한 달.” 살룸은 살인자였으며, 보좌에 오른 뒤 한 달 만에 그의 피도 또 다른 살인자에 의해 흘려졌다. 사람이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게 될 때 왕이나 백성은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으며, 그 생명은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다. 사람들은 시대의 악함을 감지했다. 그러나 그들은 악으로 악을 교정하려고 시도했다. 그 결과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으며 결국 국가 전체가 폐허로 휩싸이고 말았다.

15:14 디르사.

 여로보암부터 오므리에 이르기까지 초기 이스라엘의 수도(왕상 14:17; 16:8, 9, 15, 17, 23).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텔 엘-파라(Tell el-Fra‘ah)일 것이다. 이곳은 세겜 북쪽 약 11킬로미터 지점의 넓은 둔덕으로 프랑스인들이 1946년부터 발굴 작업을 해왔다.

15:14 죽이고.

 요세푸스는 므나헴이 군대의 장군이었다고 주장한다(Antiquities ix. 11. 1). 그 당시 남자들은 권력욕이 강했으며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불사하지 않았다. 이때는 하나님의 심판이 그 땅에 널리 임하여 있었다. 여호와의 계명은 거절당했으며 사람의 계명도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584).

15:16 딥사.

 이곳은 왕상 4:24에 나오는 솔로몬 당시의 성읍이었던 딥사와 동일한 곳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 유명한 성읍 탑사쿠스(Thapsacus)는 유브라데강에 있었기 때문이다. 므나헴이 이 당시에 그렇게 멀리 있는 장소까지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디르사와 연관지어 언급된 것은 두 성읍이 근거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어떤 이들은 딥사를 키르베트 타프사(Khirbet Tafsa)와 동일시하는데, 이 성읍은 세겜 남서쪽 약 12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해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타포에(Tahpoe)라고 되어 있는 루키아누스의 개정판을 따라 탑푸아(Tappuah)와 동일시하는데, 그곳은 세겜에서 남서쪽으로 약 13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셰이크 아부 자라드(Sheikh Abu Zarad)라는 지역이다.

15:16 열지 아니하였음이라.

 므나헴은 자신에게 충성을 거절하는 도성에 본때를 보여 주었다.

15:16 갈랐더라.

 이러한 야만적인 행동은 그 당시 전형적이고 잔혹한 풍습이었다(참조 왕하 8:12; 호 13:16; 암 1:13).

15:18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한 왕조에서 다른 왕조로의 변화가 향상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에 필요한 것은 왕권의 교체가 아니라 마음의 변화이다.

15:19 불.

 바벨론과 앗수르의 문서들을 비교하여, 대부분의 현대 학자들은 “불”이 단순히 디글랏 빌레셀 Ⅲ세의 다른 이름이라고 결론짓는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61 156~159; 대상 5:26)

15:19 일천 달란트.

 이 정도 무게의 은이라면 당시 세겔을 근거로 계산하면 매우 큰 액수가 될 것이다. 앗수르의 명각들은 디글랏 빌레셀 Ⅲ세가 “사메리나의 므니힘메”(Menihimme of Samerina), 즉 “사마리아의 므나헴”을 지배하고 있으며 금과 은과 세마포를 조공으로 바치도록 했다고 기록한다. 이 일이 있기 수십 년 전에 아다드-니라리 Ⅲ세는 다메섹의 왕에게서 은 2,300달란트와 금 20달란트를 가져갔다.

15:20 각 사람에게.

 은 한 달란트는 3,000 세겔에 해당한다. 따라서 부유한 자들에게 부과된 이 특별한 세금은 60,000명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기 위해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여 이득을 얻고자 하는 욕심은 그 당시 가장 큰 악행 중 하나였으며, 선지자들은 이것을 끊임없이 지적하였다(암 2:6; 3:15; 5:11, 12; 6:4; 8:6).

15:22 브가히야.

 이스라엘의 마지막 다섯 왕 가운데 브가히야만이 아버지의 왕위를 그대로 계승하였다. 다른 모든 왕들은 통치자를 암살하여 왕권을 쟁취하였다.

15:24 악을 행하여.

 이 간략한 기록은 이 이스라엘 왕의 통치 기록 전체를 꼴 짓고 있다. 이때는 사람들이 자신을 악에 완전히 굴복시키는 시기였다. 회개하라고 호소하시는 여호와의 음성은 귀머거리의 귀를 향한 것일 뿐이었다.

15:25 장관.

 히브리어 샬리쉬(s∨alis∨). 문자적으로 “세 번째”라는 의미임. 아마도 중요한 부서의 장관이었을 것이다(참조 출 14:7). 요람의 경우에 샬리쉬는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참조 7:2)로 불린 왕의 보좌관이었다. 예후는 요람을 죽인 후 그의 샬리쉬인 빗갈을 명하여 죽은 왕의 시체를 처리하도록 하였다(참조 9:24, 25).

15:25 아르곱과 아리에.

 이 단어들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인명이나 지명이었을 것이다.

15:25 오십 명.

 아마도 베가와 함께 브가히야에게 반역했던 왕궁 호위병이었을 것이다.

15:26 남은 사적.

 이 악한 왕들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다행스럽게도 매우 간략하다. 그들의 행위는 악했으며, 그들의 많은 악행에 관한 기록이 전해지는 것은 후대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15:27 베가.

 베가의 왕위 계승에 관한 비교 연대기와 통치기간에 대해서는 84, 85쪽을 참조하라.

15:29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때는 베가의 치세 후반기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디글랏 빌레셀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왕 베가를 버렸으며 자신이 호세아를 왕으로 임명하였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15:29 이욘과 아벨벳마아가.

 메롬(Merom) 호수 부근에 있는 납달리 지경의 성읍들. 바아사의 통치기간 중에 벤하닷이 침공한 성읍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왕상 15:20). 아마도 첫 번째 성읍은 텔 엣-딥빈(Tell ed-Dibbin) 그리고 둘째는 텔 아부 시프리(Tell Abu Sifri)일 것이다.

15:29 야노아.

 키르베트 야누(Khirbet Ya-nuh)와 동일한 지역으로 보인다. 두로 남동쪽 약 1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해 있다.

15:29 게데스.

 훌레(Huleh) 호수에서 북서쪽으로 약 6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성읍. 이곳은 여호수아가 취하여(수 12:22) 납달리 지파에게 할당했다(수 19:37).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성읍과 구분하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게데스-납달리(참조 삿 4:6)라고 불렀다. 게데스 지역은 현재 텔 카데스(Tell Qades)로 알려져 있다.

15:29 하솔.

 메롬 호수 남서쪽 약 6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도성으로, 지금의 텔 엘-왁카스(Tell el-Waqqas)이다.

15:29 납달리 온 땅.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겠다는 사 9:1의 기록은 아마도 이곳에 언급된 디글랏 빌레셀의 침입을 말하는 듯하다.

15:29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앗수르 사람들은 의례적으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정복한 지역에서 포로들을 잡아갔다. 이곳에 언급된 포로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완전히 정복하기까지 이어졌던 일련의 포로 사건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 심판은 모세의 예언을 성취시켰다(신 28:37, 64, 65). 디글랏 빌레셀은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도 사로잡아 갔다(대하 5:26).

15:30 요담 이십 년에.

 참조 33절.

15:30 반역하여.

 디글랏 빌레셀 Ⅲ세는 호세아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힌 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주장한다(참조 29절).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왕위를 얻기 전에 먼저 앗수르 왕의 종주권을 인정하도록 강요받았음이 틀림없다.

15:32 이 년에.

 아사랴의 통치 기록 후에 성경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다섯 왕의 통치에 대하여 기록한다. 그들은 모두 아사랴 통치기간 중에 왕위에 올랐다. 그 마지막 왕은 베가인데, 그는 아사랴 제52년부터 통치를 시작하였으며(27절) 그 해에 아사랴는 죽음을 맞이한다(2절). 따라서 이제 기록은 유다 나라와 요담의 통치 시대로 되돌아간다. 요담은 아버지 아사랴(웃시야)의 왕위를 계승하였다.

15:32 왕이 되니.

 요담은 웃시야가 문둥병에 걸려 별궁에 거하게 되었을 때(5절)부터 나라의 짐을 짊어지기 시작하였다.

15:33 십육 년.

 이 진술과 요담 제20년에 호세아가 왕위를 계승했다는 기록(30절)을 비교하기 원하면 84, 85쪽을 참조하라.

15:34 정직히.

 이스라엘의 왕들이 암살로 왕위를 계승하고 그들의 통치를 악으로 물들이고 있는 동안, 유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충성을 다하는 다윗 혈통의 자손들 때문에 전반적으로 축복을 받았다.

15:35 윗문.

 “여호와의 집 베냐민의 윗문”(렘 20:2)과 같은 문일 것이다. 에스겔은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 좇아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살육하는 기계를 잡았”다(겔 9:2)고 기록하였다.

15:36 남은 사적.

 이 남은 사적의 일부가 대하 27:3~6에 기록되어 있다.

15:37 아람 왕 르신.

 요담의 치세에 시작된 르신과 베가의 동맹 관계는 지속되어 아하스의 치세에 절정을 이루었다(16:7~9; 사 7:1). 유다와 이스라엘 그리고 주변 국가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지중해 연안에서 이루어지는 앗수르의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디글랏 빌레셀은 매우 공격적이었으며 서쪽의 모든 지역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두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르신은 디글랏 빌레셀의 명각에서 다메섹의 라히아누(Rahianu)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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