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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8장 & 성경주석 본문

성경주석/열왕기하

열왕기하 18장 & 성경주석

Timberners-Lee 2017. 6. 30. 06:42

<열왕기하 18장 흐름정리>

본장에서부터 마지막 장까지는 히스기야에서 유다 멸망까지의 역사이다. 히스기야는 아하스가 건립한 산당과 각종 우상을 제거하고 정치적으로는 반 앗수르 정책을 펼쳐 나갔다. 본문은 이로 인해 앗수르의 침공을 당한 유다 백성들이 랍사게의 갖은 위협과 설득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히스기야와 하나님을 신뢰하였음을 보여 준다. 이처럼 위기 상황 중에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한 덕분에 유다는 일단 구원받았다. 그러나 히스기야와 요시야 같은 선왕을 제외하고는 왕과 백성들이 함께 계속 행악을 일삼았으니 유다의 마지막 역시 이스라엘과 같은 운명이 되고 말 것이다.


<열왕기하 18장 줄거리>

1. 히스기야의 선한 통치.

4. 우상숭배를 타파하여 형통해짐.

9. 사마리아가 자신들의 죄악 때문에 포로로 잡혀감.

12. 유다를 침공한 산헤립이 조공을 받고 돌아감.

17. 산헤립이 다시 보낸 랍사게가 히스기야를 멸시하고 백성들에게 반역을 일으키라고 참람된 말로 꼬드김.


<열왕기하 18장 개역한글>

1.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2.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 구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비라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3.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4.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6.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7.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척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8. 블레셋 사람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      

9. 히스기야왕 사년 곧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칠년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10. 삼년 후에 그 성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의 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구년이라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11.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할라와 고산 하볼 하숫가와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두었으니      

12. 이는 저희가 그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아니하고 그 언약을 배반하고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모든 명한 것을 거스려 듣지도 아니하며 행치도 아니하였음이더라      

13. 히스기야왕 십 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매      

14. 유다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로 내게 한지라      

15.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16. 또 그 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17.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왕을 치게 하매 저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저희가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18. 저희가 왕을 부르매 힐기야의 아들 궁내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저에게 나가니      

19. 랍사게가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고하라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의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20. 네가 싸울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이는 입에 붙은 말 뿐이라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였느냐      

21. 이제 네가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 손에 찔려 들어갈찌라 애굽 왕 바로는 무릇 의뢰하는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22. 너희가 혹시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마는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과 제단을 제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하기를 예루살렘 이 단 앞에서만 숭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셨나니      

23. 이제 너는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네가 만일 그 말 탈 사람을 낼 수 있다면 나는 네게 말 이천필을 주리라 

24. 네가 어찌 내 주의 신복 중 지극히 작은 장관 하나인들 물리치며 애굽을 의뢰하고 그 병거와 기병을 얻을듯하냐      

25. 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이제 이곳을 멸하러 올라왔겠느냐 여호와께서 전에 내게 이르시기를 이 땅으로 올라와서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26.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이르되 우리가 알아듣겠사오니 청컨대 아람 방언으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시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의 듣는데 유다 방언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지 마옵소서      

27. 랍사게가 저에게 이르되 내 주께서 네 주와 네게만 이 말을 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성 위에 앉은 사람들로도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게 하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고      

28. 랍사게가 드디어 일어 서서 유다 방언으로 크게 소리질러 불러 가로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29. 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저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30. 또한 히스기야가 너희로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저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정녕 우리를 건지실찌라 이 성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않게 하시리라 할찌라도      

31.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      

32. 내가 장차 와서 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기리니 그곳은 너희 본토와 같은 지방 곧 곡식과 포도주가 있는 지방이요 떡과 포도원이 있는 지방이요 기름 나는 감람과 꿀이 있는 지방이라 너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히스기야가 너희를 면려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      

33. 열국의 신들 중에 그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34.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스발와임과 헤나와 아와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35. 열국의 모든 신 중에 누가 그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능히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36. 그러나 백성이 잠잠하고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니 이는 왕이 명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37. 이에 힐기야의 아들 궁내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고하니라


<열왕기하 18장 성경주석>

18:1 히스기야.

 지금부터 등장하는 왕들은 유다의 왕이다. 히스기야가 아버지 아하스의 뒤를 이어(부조와 선지자, 86 150) 보좌에 앉았을 때, 북방 이스라엘은 그 비극적인 역사의 막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남방 유다는 그보다 150여 년 더 존속하였다. 주변국들과 같은 길을 걸음으로써 백성들은 그 나라들의 희생물이 되었다. 히스기야의 선왕인 아하스는 남방 유다가 이스라엘과 같은 수준으로 전락하도록 이끌었다. 이방 신 숭배가 장려되었고 하나님의 전은 우상숭배의 장으로 바뀌었으며,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는 신세가 되었다. 히스기야는 그의 아버지가 펼쳤던 종교와 정치 문제에 대해 확실하고 신속하게 반전을 시도하였다. 성전은 정결케 되었으며, 거짓 신 숭배는 근절되었고, 앗수르에 바치던 조공은 중단되었으며, 나라는 정의와 하나님께 더욱 가까워졌다.

18:3 정직히 행하여.

 열왕기는 이어지는 세 장을 히스기야의 통치에 할애하고 있다. 적지 않은 용기가 요구되는 일임에도 히스기야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 그는 시대의 조류에 역행해야 했으며, 나라 안팎에서 반대에 맞닥뜨렸다. 그러나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용기를 얻은 히스기야는 두려움 없이 원칙에 굳게 섰으며, 종교적 개혁을 통해 유다 백성들을 그들의 조상들이 걸었던 길로 행하게 하였고, 주변 나라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안정과 힘을 유지하게 되었다.

18:4 산당을 제하며.

 유다가 국가로 존재한 이래 이때까지 산당이 완전히 제거된 적은 없었다. 히스기야는 북방 이스라엘이 불순종함으로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았으므로, 자신의 나라가 그와 유사한 운명을 당하지 않도록 결심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힘을 다하여 그의 나라에서 우상숭배에 관한 모든 것을 제거하기로 굳게 다짐하였다. 산당은 비록 율법에서는 금하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이 예배하기 위해 즐겨 찾았다(왕상 3:2; 14:23; 22:43; 왕하 12:3; 14:4; 15:4, 35). 히스기야 시대까지 산당들은 유다의 왕들에게 용인되어 왔으며, 지금까지도 국가 종교의 일부로 용납되어 왔다.

 

18:4 주상을 깨뜨리며.

 이 법령은 히스기야 통치 첫해에 있었던 성전 정결과 유월절?준수 이후에 선포되었다(대하 29:3, 17; 30:1, 15; 31:1).

18:4 놋뱀.

 참조 민 21:6~9. 모세 이후에 이 뱀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곳이 처음이다. 어떤 이들은 이 뱀은 성막이 존재할 때까지 그 안에 보관되어 오다가 솔로몬 시대에 성전으로 옮겨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증명할 자료는 없다. 그러나 이때까지 그것은 거룩한 유물로 여겨졌으며 그 자체에 무슨 효험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백성들은 그 앞에서 분향하면서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야 할 존경을 놋뱀에게 바치고 있었다.

18:4 느후스단.

 아마도 히브리어 느호셰트(neh.o- s∨et) 즉 “놋”이라는 말과 같은 어원에서 파생된 말로, “놋신[銅神]”을 의미한다. 다른 이들은 느후스단이 나하스(nah.as) 즉 “뱀”에서 파생되었다고 주장한다.

18:4 일컬었더라.

 「70인역」의 어떤 판(版)과 「수리아역」 그리고 타르굼에는 “그들이 일컬었다”로 되어 있다.

18:5 하나님 여호와를.

 주변 나라들처럼 군사적인 힘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함.

18:5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이 진술은 유다의 역사가 끝난 다음에 나왔을 것이다. 이것은 23:25에 나오는 요시야에 대한 평가와 모순되지는 않는데, 왜냐하면 거기에는 요시야가 특별히 모세의 율법에 충실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히스기야의 현저한 특징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심이었다.

18:6 떠나지 아니하고.

 솔로몬(왕상 11:1~11), 요아스(대하 24:17~25), 아마샤(대하 25:14~16) 같은 많은 왕이 처음에는 훌륭하게 출발했으나 통치기간 중에 하나님에게서 돌아섰다. 히스기야 역시 실수한 적이 있었으나(20:12~19), 여호와를 버리지는 않았으며 실수를 보충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18:7 형통하였더라.

 물질적인 번영에 대해서는 대하 32:23, 27~30을 참조하라.

18:7 배척하고.

 아하스는 앗수르의 종주권을 받아들이고 조공을 바쳤으나 이제 히스기야는 그것을 거부하였다.

18:8 블레셋 사람을 쳐서.

 이것은 앗수르에 대항한다는 것을 나타내는데, 왜냐하면 사르곤은 블레셋을 정복하여 애굽의 경계까지 이르렀고 가사 왕인 하누누(Hanunu)를 잡았기 때문이다. 사르곤은 재위 11년에 아스돗의 아주루(Azuru)를 폐위시키고 블레셋과 유다, 에돔, 모압에 조공을 바치라고 요구하였다.

18:9 살만에셀.

 앗수르의 15번째 통치자. 그는 BC 727년부터 722년까지 다스렸다.

18:9 사마리아로.

 9절부터 12절까지는 17:5~23에 이미 언급한 사마리아의 멸망에 대한 설명을 반복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사마리아의 멸망이 히스기야와 호세야 두 사람의 통치기간에 일어났음을 알려 주며, 그 사건을 히스기야와 연관시켜서 다시 기록하고 있다.

18:10 삼 년 후.

 이것은 고대에 일반적이었던 포함식 계산법의 좋은 예이다. 오늘날에는 히스기야의 재위 4년부터 6년까지를 2년의 간격이 있는 것으로 계산하지만 고대에는 4년, 5년, 6년, 즉 3년으로 계산하였다(참조 68, 69쪽).

18:10 그 성이 함락되니.

 (「제임스왕역」에는 “they took it”[그들이 그것을 취했다]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복수 “그들”이라는 말이 흥미롭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앗수르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게 보기 힘든 이유는 바로 앞 절에는 살만에셀이 사마리아에 올라와 포위한 것으로 언급돼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곳의 “그들”은 살만에셀과 그를 돕는 어떤 사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살만에셀의 군대장관이요 후계자인 사르곤일 것이다(참조 17:6 주석).

18:11 할라.

 이 기록은 사마리아 멸망에 관해 앞서 기록한 17:6에서 가져와 반복한 것이다.

18:12 준행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관한 더 광범위한 기록의 요약은 17:7~23에서 찾을 수 있다.

18:13 십사 년.

 이것은 산헤립이 히스기야를 침공한 첫 번째 사건이다. 이 이야기는 18:3부터 19:37까지 계속된다. 사실상 이것과 거의 같은 표현으로 기록된 기사가 사 36장과 에 나타난다. 이것은 이사야가 열왕기하의 이 부분의 저자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대하 32:1~22에 나타나 간략한 역사적 기록은 히스기야가 전쟁을 위해 준비한 내용을 상세하게 보여 준다.

  이 이야기가 한번의 전쟁에 관한 것인지 혹은 두 번의 전쟁에 관한 것인지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현대의 주석자들은 대부분 이 이야기가 한번의 전쟁을 기술하고 있으며, 모든 사건이 히스기야 14년 곧 BC 701년에 일어난 것으로 생각한다. 다른 이들은 이 이야기는 두 번의 전쟁에 대한 기록들이 섞여 있는 것인데, 첫 번째 것은 성벽이 있는 유다의 성읍들이 침공당했던 히스기야 14년에 있었던 것이고, 두 번째는 히스기야 통치 후반에 있었던 것으로, 앗수르 군대의 많은 군사가 죽임을 당했던 것(19:35)이라고 주장한다. 성경에 나타난 이야기가 단절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실은 전자의 견해를 지지한다. 더욱이 기록이 불완전하거나 산헤립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패배에 대한 기록을 역사서에서 삭제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앗수르의 자료들은 일반적으로 산헤립의 유다 침공이 BC 701년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을 뿐 그 후의 침공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BC 701년에 있었던 전쟁에 관해서 산헤립은 “히스기야를 새장의 새처럼” 가두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은 예루살렘에 결정적 위협을 가했을 뿐 아니라 성벽으로 둘린 유다의 성읍들을 점령했던 전쟁과 매우 일치하는 기록이다.

  히스기야의 광범위한 방어 준비(참조 대하 32:2~6)는 두 전쟁 사이에 어느 정도의 시간 간격이 있었을 것임을 암시한다. 또한 성경의 내용은 산헤립이 예루살렘 공격을 실패한 직후에 살해되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에 BC 701년에 있었던 전쟁밖에 없었다면 그에 대한 암살은 그가 앗수르로 돌아간 지 약 20년 후에 일어난 것이 된다. 더욱이 형제와 함께 공동왕이 되었을 때인 BC 690년에 자신의 나이가 20세라고 기록해 놓은 디르하가(19:9)의 명각은 그가 BC 709년경에 태어났음을 가리킨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된 사건들이 BC 701년에 일어났다면 그가 거기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했음을 보여 준다. 그가 BC 690년경에 애굽의 왕이 되기 전이었을지라도 군대장관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이미 제기되었다. 만약에 나이에 관한 디르하가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이것과 19:9의 기록을 조화시킬 수 있는 단 한 가지 길은 히스기야의 말년쯤에 두 번째 전쟁이 있었다고 추정하는 것이다(참조 선지자와 왕, 330). 첫 번째 전쟁에서 성벽이 있는 성읍들이 점령되고 조공을 바치게 되었으며, 두 번째 전쟁에서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통해 예루살렘이 구원함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이 기록이 연대기적인 개요를 제공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분을 찾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풍성한 보호하심을 나타내기 위해 기록된 사건이기 때문에, 이 부분이 이야기의 어디에 위치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고 해서 신경 쓸 필요는 없다.

18:13 견고한 성읍들.

 산헤립은 유다에서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읍 46개를 정복했다고 주장한다.

18:14 라기스.

 그의 “헷 족속의 땅”을 정복하기 위한 세 번째 전쟁 기록에서 산헤립은 먼저 돈을 언급하고 후에 블레셋의 성읍들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는 내륙의 라기스로 향했다. 라기스는 아스글론에서 남동쪽으로 약 31킬로미터,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약 4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라기스의 함락에 대해서 앗수르의 한 부조물(浮彫物)에 묘사되어 있다.

18:14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이때에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히스기야가 항복은 하지만 예루살렘을 넘겨 주지는 않았다. 그는 많은 배상금을 지불하고서 산헤립을 돌려보내려고 했다.

18:14 삼백 달란트.

 산헤립은 수많은 보석과 상아로 만든 침상, 값진 나무들 그리고 “모든 값진 보물”과 함께 “금 30달란트와 은 800달란트”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18:15 여호와의 전.

 히스기야가 산헤립에게 항복하여 불행히도 성전이 고통을 당해야만 했다.

18:16 금을 벗겨.

 바로 얼마 전에 아하스가 디글랏 빌레셀에게 도움을 얻기 위해 성전에서 보물들을 취하였다(16:8). 그러므로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요구한 금액을 채우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18:17 다르단.

 이것은 앗수르 군대의 최고 사령관의 직함이다. 사르곤은 앗수르 군대와 함께 자신의 다르단을 아스돗으로 보냈다(참조 사 20:1). 앗수르에서는 “다르단”(tartan)이라는 이 단어가 투르타누(turtanu) 또는 타르타누(tartanu)로 불린다.

18:17 랍사리스.

 이것은 앗수르 궁정의 고위 관리, 아마도 “내시의 최고 책임자”를 지칭하는 직함일 것이다. 느부갓네살의 랍사리스가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점령당할 때 거기에 있었다(렘 39:3, 13). 이 직함은 고대 아람어 명각에서 발견되었다.

18:17 랍사게.

 랍사게 역시 중요한 관리로, 왕에게 잔을 드리는 최고 책임자였다. 이때에 그는 앗수르 사절단의 대변인이었다(참조 19, 26~28절). 오직 그만이 산헤립에게 돌아간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19:8). 앗수르어 문서에는 이 직책에 관한 공식 명칭이 랍-샤쿠(rab-shaqu)로 나타난다.

18:17 윗못.

 이 연못의 위치가 어디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떤 이들은 도성 남쪽 기드론 골짜기 가까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어떤 이들은 북쪽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몇 년 전에 이사야와 그의 아들인 스알야숩이 이곳에서 아하스 왕을 만났고(사 7:3), 따라서 이 연못은 히스기야 시대 이전에 이미 있었고 히스기야가 거기에 수로를 만들었다.

18:18 엘리야김.

 엘리야김은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셉나가 낮추어진 후에 이 중요한 직책으로 승진되었다(사 22:20~24). 어떤 이들은 이사야 22장의 셉나는 여기에 기록된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18:18 셉나.

 참조 사 22:15~19.

18:18 요아.

 이 사람에 관한 다른 기록은 없다. 서기관 또는 “기록자”라고도 불렸던 이 직책은 왕국의 높은 지위 중 하나였는데 그는 왕의 조서를 반포하고 그의 서신들을 관리하였으며, 아마도 왕실의 재정까지도 맡고 있었을 것이다.

18:19 랍사게가 저희에게 이르되.

 왜 랍사게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그는 왕의 개인 대변인이었을 수도 있다. 그는 잔 맡은 자의 우두머리로서 궁정에서 행해지는 일종의 예식(禮式) 책임자였으며 앗수르어 외에 다른 방언을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18:19 대왕.

 이것은 앗수르 왕이 가장 좋아하는 칭호이다. 산헤립은 자신을 “대왕, 강한 왕, 우주의 왕,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라고 일컬었다.

18:19 이 의뢰가 무엇이냐.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대한 큰 확신과 믿음이 있었으며(대하 32:7, 8), 앗수르 사절단은 바로 이 확신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대하 32:10, 11).

18:20 싸울 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공격에 대비해 군대를 양성하고 예루살렘 성벽을 튼튼히 하며, 공격과 방어를 위한 무기를 갖추는 등 광범위한 준비를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였다(대하 32:2~6).

18:21 상한 갈대.

 애굽을 가리키는 적절한 표현이다. 나일 강변에서 자라는 파피루스는 애굽을 상징하기에 적절했다. 힘있고 안전한 것처럼 보이나 갈대는 기댈 만한 것이 못 되었다. 만일 사람이 그것에 기대려 하면 꺾일 것이요 그것을 잡았던 손에 상처를 남길 것이다. 호세아는 애굽에서 도움을 얻으려 했으나 결국 자신의 나라를 빼앗겼다(17:4~6). 현재 유다의 위기는 애굽 25왕조 때에 발생한 것인데, 당시 애굽은 내부의 불화로 인해 분열되어 있었으며 앗수르에게 정복당할 운명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구스 왕가가 지배하는 애굽은 앗수르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었다.

18:22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참조 대하 32:11.

18:22 제하고.

 산헤립은 히스기야가 어떻게 산당들을 신속하게 제거하고 지역의 신전들을 파괴했는가(18:4)에 대해 들은 것이 분명하다. 많은 백성은 공인되지 않은 이러한 예배장소에서 희생을 드려왔고, 아마도 히스기야가 자신들의 예배를 금지한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었을 것이다. 랍사게는 백성들로 왕에게 대적하도록 회유하고 있는데, 그는 히스기야가 백성들이 이용하는 지역 신당들을 파괴하므로 정말로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18:23 말 이천 필.

 앗수르의 사절단은 유다가 군사적인 힘을 갖고 있지 못함을 비웃고자 하였다. 앗수르인들은 많은 보병을 이끌고 올라왔으므로 말 2,000필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만약 유다에서 그만한 수의 훈련받은 마병을 보유하고만 있다면 말들을 내주었을 것이다.

18:24 장관 하나.

 다시 한 번 그 앗수르 사람은 유다의 군사적 열세를 얕잡아 보고 있다. 그는 유다 백성들을 조롱하기를, 들판에 진치고 있는 앗수르의 가장 취약한 부대의 장군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없다고 하였다.

18:24 애굽을 의뢰하고.

 랍사게는 유다의 약함과 애굽 같은 매우 약한 세력을 신뢰하는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18:25 여호와께서…내게 이르시기를.

 이 말은 한 앗수르인의 입에서 나온 놀랄 만한 선언이다. 그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심판하시기 위해 앗수르를 이용하겠다는 이사야의 기별(참조 사 7:17~24; 10:5~12)을 들었다는 말인가? 어쨌든 그는 앗수르에 저항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며 자신은 유다를 멸망시키라는 거룩한 소명을 받았고, 남방왕국의 멸망은 필연적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고자 노력하였다.

18:26 아람 방언.

 이 말은 수리아 또는 아람 방언이 적어도 앗수르와 히브리인들 사이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동시대의 자료들은 아람 방언이 이제 막 외교 문서와 상거래 문서로 서아시아 전역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히브리인들 사이에서 아직 일반화되지 않은 것은 평민들이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벨로 포로 이후에 아람 방언은 점차 유대인들 사이에서 히브리어를 대신하게 되었다.

18:26 성 위에 있는.

 협상은 병사들과 성 위에 있는 다른 이들이 듣는 가운데 진행되었고, 따라서 앗수르 사절단의 말들은 성읍 전체에 퍼져 나갔을 것이다.

18:26 유다 방언.

 같은 내용이 기록된 대하 32장과 사 36장을 제외하고는 이 표현이 hemiah/13/24e에만 나타난다. “유다”라는 단어는 왕하 16:6에서 처음 등장하지만 후기의 성경들에서 이 이름은 일반화되었다. 동시대에 살았던 앗수르인들의 관습에 의하면 남방 유다 백성들은 예후딤(Yehudim) 즉 유대인으로, 그들의 언어는 유다 방언으로 이미 알려져 있었다.

18:27 성 위에 앉은 사람들.

 그들은 단지 왕만이 아니라 예루살렘 백성들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었다. 랍사게는 백성들의 마음을 두려움으로 떨게 해서 히스기야에 대하여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하여, 그로 저항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도록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18:27 먹게 하고.

 랍사게는 이러한 말들로 자신들에게 저항함으로 맞게 될 비참한 결과들을 알려주며 유대인들을 위협하였다. 만약에 포위가 계속된다면 백성들은 그렇게 궁핍하게 되어서 어쩔 수 없이 가장 더럽고 비정상적인 음식으로 자신들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채워야 할 것이었다(참조 왕하 6:26~29; 대하 32:11).

18:28 유다 방언.

 랍사게에게 백성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으로 말하지 말도록 요청함으로써 히브리 대표들은 자신들의 약점 중 하나를 노출시켰고, 그 앗수르인은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였다. 이제 랍사게는 왕이 아닌 백성들에게 말하고자 하였다.

18:29 속지 말라.

 이제 랍사게는 자신을 유다 백성들의 친구로 격상시키고, 히스기야는 자기 자신의 유익에만 관심이 있을 뿐 백성들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것 그리고 그가 속임수를 써서 백성들이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는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18:29 내 손.

 (「제임스왕역」에는 “his hand”[그의 손]로 되어 있음-역자 주). 많은 히브리어 필사본과 역본에는 “내 손”(my hand)으로 되어 있다. 사 36:14에 나오는 평행 구절에는 이 말이 빠져 있다.

18:30 히스기야가 너희로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앗수르인들은 하나님을 향한 히스기야의 굳은 신뢰심과 백성들로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하려는 그의 노력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히스기야는 처음부터 그의 백성들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라고 격려하였다(참조 대하 32:7, 8).

18:31 듣지 말라.

 이것은 유다 백성들로 그들의 왕의 말을 듣지 말고 그들 스스로 결정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18:31 [화친하고].

 (「제임스왕역」에는 “Make an agreement”[화친하고]라는 말이 들어 있음-역자 주). 이 초청은 유다 백성들에게 산헤립과 화친하고 그를 자신들의 왕과 친구로 받아드리라는 것이었다.

18:31 너희는 각각 그 포도와.

 이 표현은 솔로몬 시대에 누렸던 것과 같은 평화와 번영(왕상 4:24)을 상기시키고, 유다 백성들이 앗수르 왕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그것을 다시금 누리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18:32 너희 본토와 같은.

 앗수르의 잔인한 추방 정책이 이곳에서는 되도록 좋게 유대인들에게 제시되고 있다. 그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질 수도 있지만 그곳은 그들의 고향처럼 행복하고 풍요로운 곳일 것이다.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는데, 추방되었던 사람 중 다수는 새로운 환경에 만족하여 다시금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허락되었을 때에도 돌아가기를 주저하였다.

18:33 열국의 신들.

 앗수르인들은 이렇게 자랑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사방으로 진군하여 거침없이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신도 앗수르의 세력으로부터 그들의 땅을 지킬 수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슈르(Ashur)가 모든 신 중에 가장 강한 신인 듯 보였다. 히브리인들의 하나님조차 아슈르보다는 못한 것으로 보였는데, 이미 사마리아가 종말을 고했고 유다 역시 오랫동안 앗수르의 영향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앗수르인들은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 때문이며, 앗수르인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은 지금 그들이 대적하고 있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허락했기 때문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18:34 하맛.

 여기에 기록된 성읍들은 최근에 앗수르 군대에 의해 멸망한 곳이다. 하맛은 다메섹에서 북쪽으로 189킬로미터 떨어진 곳인 오론테스(Orontes)에 위치해 있다. 사르곤은 여러 번 자신이 이 성읍을 정복했으며 그 백성들을 추방했다고 언급한다. 하맛에 살던 주민들이 사마리아에 정착하기도 했으며(왕하 17:24), 히브리인 포로들도 하맛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사 11:11).

18:34 아르밧.

 알렙포(Aleppo) 북서쪽에 위치한 북 수리아의 주요 성읍. BC 754, 742, 741, 740년에 앗수르는 아르밧과 전쟁을 치렀다. 743년에 이 성읍은 디글랏 빌레셀의 사령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해에 앗수르 군대가 “아르밧에” 주둔해 있었기 때문이다. 720년에 이곳을 사르곤이 초토화시켰다. 아르밧은 현재 텔 에르파드(Tell Erfad)로 알려져 있다.

18:34 스발와임.

 사르곤이 이곳 주민 중 일부를 사마리아에 정착하게 했던 성읍(참조 17:24 주석).

18:34 헤나.

 이 성읍의 위치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이 성읍이 유브라데 강변에 있는 아나(A-nah)와 동일한 장소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이들은 이 절에서 언급된 다른 성읍들과 마찬가지로 북 수리아의 어느 곳이라고 여긴다.

18:34 아와.

 (「제임스왕역」에는 “Ivah”[이와]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아마도 아와(Ava)와 같은 지역으로 여겨지며, 이곳에서도 사마리아로 이주민이 왔다(참조 17:24 주석).

18:34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이것은 절정을 이루는 주장으로 보이는데, 사마리아인들도 히브리인이었으며, 적어도 어느 정도는 그들도 같은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18:35 열국의 모든 신 중에.

 앞 절에 열거된 성읍들은 유다의 북쪽에 이웃해 있는 상읍들이었다. 그러나 앗수르는 서아시아 지역까지 정복지를 넓혀갔다. 산헤립은 자신과 자신이 믿는 신의 능력이 온 세상의 어떤 신보다 강하며, 유다의 하나님도 예외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18:36 백성이 잠잠하고.

 침묵이 금일 경우가 있다. 이런 때에 유다 백성 중 누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앗수르 사절단에게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필요한 대답을 준비하실 것이었다.

18:36 왕이 명하여.

 랍사게는 대중들의 소요를 촉발할 어떤 말이 들리기를 기대하였으나, 백성들은 그렇게 하는 대신 자신들의 왕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18:36 그 옷을 찢고.

 히브리인들은 애곡할 때(욥 1:20) 또는 큰 충격과 슬픔을 당했을 때(창 37:29; 삼상 4:12; 삼하 13:19; 15:32; 대하 34:27; 스 9:3; 렘 36:24) 자신의 옷을 찢었다.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4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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